'국민 아버지' 최불암 영면..."마지막 아니야"

'국민 아버지' 최불암 영면..."마지막 아니야"

2026.11.02. 오전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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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행 : 이세나 앵커
■ 출연 : 김성수 문화평론가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인용 시 [YTN 뉴스UP] 명시해주시기 바랍니다.


[앵커]
'국민 아버지'로 사랑받던 배우 최불암 씨가 오늘 아침 발인을 끝으로 영원한 안식에 듭니다. 잠시 뒤, 오전 9시에는 서울 여의도성당에서 장례미사가 거행될 예정입니다. 김성수 문화평론가 모시고, 고인이 남긴 발자취 짚어보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1시간 전쯤에 발인이 엄수됐습니다. 67년 연기 인생을 뒤로하고 우리 곁을 떠났는데 고인이 남긴 방송계의 자취 어떤 게 있을까요.

[김성수]
배우로서 최불암 선생은 배우란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를 보여준, 그래서 모든 배우들의 전범과도 같은 표상과도 같은 분이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본인이 다양한 캐릭터들을 도전하고 성공적으로 연기를 해내서 스크린에서도 TV에서도 두루두루 사랑을 받았지만 무엇보다도 모든 국민들이 기억할 수 있는 캐릭터를 3개씩이나 만들고 가신 분이기 때문에 배우로서는 아주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는데 단지 배우로서의 삶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삶도 굉장히 모범적인 발자취들을 남겨주었는데요. 평소에도 그런 소신을 갖고 있었어요. 사람이 되지 않으면 배우를 하지 못한대요. 배우가 되기 전에 먼저 사람이 돼야 된다는 얘기를 하셨거든요. 그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대본에 적혀 있는 영혼 없이 움직이는 게 배우가 아니다. 실제로 자기가 마음속에서 정해져 있는 배역과 아주 깊이 있는 소통을 해야 되고 그 소통 자체가 사람을 성장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사람이 먼저 돼야 배우를 할 수 있다는 얘기를 하셨던 게 아닌가 생각돼서 여러모로 배우들에게는 늘 한 번씩 자기가 벽에 부딪힐 때마다 돌아가서 봐야 되는 그런 교과서 같은 그런 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앵커]
배우가 되기 전에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 말 있는 그대로 삶을 살아내신 분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드네요. 잠시 뒤 오전 9시부터는 여의도성당에서 염수정 추기경의 집전으로 장례미사가 거행됩니다. 염 추기경과의 인연도 각별했다고요?

[김성수]
2018년에 가톨릭의 세례를 받으면서 이분이 가톨릭 신자가 되었습니다. 그때 직접 세례를 주셨던 분이 염수정 추기경이고, 재미난 것은 이분이 선택했던 세례명이 프란치스코예요. 프란치스코는 보통 가난한 사람의 수호성인, 특히 어린 아이들의 성자로 불리는 분입니다. 그러니까 본인의 삶에서 신으로부터 받은 사명이 가난하고 힘 없는 어린아이를 위한 지킴이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세례명을 받았고요. 지난달 10월 20일이라고 기록돼 있고 이미 사진도 나왔지만 그때 병자성사를 받았다고 합니다. 병자성사를 받음으로써 본인의 인생을 정리하는 그런 과정도 가톨릭식으로 진행한 것으로 알려져서 염 추기경이 직접 집전하는 장례미사를 갖게 됐습니다.

[앵커]
오늘 장례미사에선 팝페라 가수 임형주 씨가 아베 마리아를 부르며 고인을 배웅합니다. 임형주 씨는 고인을 생전에 이모부라고 불렀다고 하더라고요. 어떤 인연인가요?

[김성수]
그렇습니다. 평소에 임형주 씨의 노래를 굉장히 좋아하셨고 그래서 공연에 참석하면서 각별한 친분들을 쌓으셨다고 했는데 임형주 씨가 가톨릭 평화방송 라디오에 DJ로 데뷔했었어요. 임형주의 너에게 주는 노래로 데뷔를 할 때, 직접 축하메시지를 보내줄 정도로 각별하게 애정을 표시하셨다고 합니다. 몇 달 전에 병문안을 갔던 것 같아요. 그런데 병문안에서 인사하고 작별인사했던 것이 마지막이 될 줄 몰랐다면서 SNS를 통해서 애통한 심정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앵커]
임형주 씨는 고인이 생전에 자신의마지막 길엔 웃으며 인사해달라,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하는데 고인의 주변 사람들을 배려하는 따뜻한 성품이 느껴지는 대목인 것 같아요.

[김성수]
기본적으로 이분은 김혜수 씨한테도 병석에서 문자를 보냈는데 그래, 네가 꾸었던 꿈에 대해서 얘기해 보자. 이런 얘기들을 보냈다고 하잖아요. 기본적으로 두루두루 후배 배우들이나 후배 예술인들에게 정말 편안한 중재자나 혹은 지혜로운 조언자, 아버지 이런 위치에 있었던 분이라서 최불암 선생을 인간적으로 가깝게 사귀었던 분들은 정말 편안한 형이나 아버지처럼 그렇게 대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 성품들이 그대로 느껴지는 대목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앵커]
장례미사 이후엔 고인의 운구 행렬이 서울 중구 무교동에 위치한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본부에 들를 예정이라고 하는데 많은 장소들이 있을 텐데 그중에서 마지막 작별장소로 이곳을 선택한 이유 어떤 걸까요?

[김성수]
본인의 세레명을 프란치스코로 선택한 것과 같은 의미가 아닐까 생각되는데요.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의 인연을 맺은 게 1985년이라고 알고 있어요. 그때는 단순한 후원회원이었는데 아예 초록우산 지킴이가 되어주셨는데 40년 넘게 인연을 맺은 겁니다. 지금 현재도 전국후원회장이라고 58만 후원자를 대표하고 46개의 지역후원회 후원자들을 총괄하는 리더 역할을 하셨어요. 특별히 자기가 연기로써 이룬 나름대로의 위치만큼이나 아이들을 지원하고 지키는 일들을 평생 자기가 해야 될 일로 삼았고 그리고 더 기억하고 돌아보고 싶어서 마지막은 꼭 여기를 들러달라고 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앵커]
오늘 장례도 초록우산어린이재단장으로 치러졌다고 하더라고요.

[김성수]
맞습니다. 이분이 초록우산과 인연을 맺었던 이야기가 배우들한테 특히 삶을 살아나가면서 자기의 말과 행동을 일치시키려고 노력하는 사람들한테는 하나의 전설이 돼 있습니다. 81년도 전원일기에서 금동이라고 업동이를 입양하는 장면을 연기했는데. 그 장면이 많은 사람들한테 굉장히 큰 칭찬을 받은 거예요. 그런데 그걸 극에서 했을 뿐이란 말이죠. 그러면 내가 그렇게 사는 사람인가. 그 마음은 도대체 뭔가. 이런 걸 알고 싶어서 직접 실천 속에서도 그런 일들을 해야겠다고 해서 초록우산을 찾았다는 거죠. 이것은 배우로서의 인격적 성숙이 또 캐릭터를 통해서 배운 교감이 현실을 바꿔내는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또 보여준 것이라고 봅니다. [앵커]
브라운관 안에서의 모습과 현실의 모습이 정말 일치하는 어떻게 이런 삶을 살아낼 수 있을까 경이로운 정도인데요. 어제도 동료와 후배 배우들의 추모가 계속 이어졌습니다. 특히 배우 이제훈 씨는 고인과 함께 연기했던 순간이 인생의 영광이었다고 소감을 밝히기도 했는데 드라마 수사반장으로 연이 닿은 것 같아요.

[김성수]
그렇습니다. 수사반장을 고인은 18년 동안 지켰고요. 그러면서 실제로 처음 시작했을 때는 치안이 그렇게 우리가 자랑할 만한 수준이 아니었는데 그리고 경찰들이 신뢰를 받지 못했던 시기에 이 수사반장이 진행된 거예요. 그러면서 경찰 혹은 사정기관이 국민들에게 어떤 신뢰를 줘야 되는지 이미 그 시절부터 사회적 합의란 이런 수준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걸 극에서 보여준 거예요. 그런데 그것을 프리컬로 만든 것이 수사반장1958이라고 하는 2024년도 작품이었는데 이때 본인이 짧게 출연했던 특별출연 신이 저는 아직도 기억납니다. 이분이 무슨 얘기를 했냐면 국민이 가는 길에 가시덤불이 있으면 치우는 게 광대정신이다. 그러니까 배우 자체가 가시덤불을 치는 거라고 생각했고요. 그러면 당연히 공무원이라면 더더욱 그런 일을 해야 되잖아요. 그래서 자기가 몸으로 그런 신을 연출하면서 수사반장이나 공무원으로 끝까지 자기가 살고 있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수사반장 드라마를 기념해줬기 때문에 이런 장면들을 후배 배우가 보면 정말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될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거든요. 그런 측면에서 전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앵커]
이제훈 씨도 고인의 편안한 웃음을 유심히 관찰했다 손감을 밝히기도 했는데 최불암 씨의 생전 표정을 보면 항상 인자한, 푸근한 미소를 갖고 계시잖아요. 후배들이 닮고 싶어 했던 고인의 여러 가지 매력이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보십니까?

[김성수]
배우로서 자기의 실천을 통해서 연기로 일정한 성과를 보여주고 계시는데 거기의 삶도 연기와 일치시키려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이것이 많은 분들한테 깊은 울림을 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은 자기가 그렇게 일정한 업적들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보통 후배들하고 만나면 훈계부터 시작하거든요. 우리가 흔히 꼰대다, 이렇게 얘기하게 되는데. 이분은 남의 얘기를 듣는 분이에요. 너 요즘 어떻게 지내니, 뭐 했니. 남의 얘기를 듣고 그 얘기 속에서 평생 힘이 될 만한 위로를 한마디씩 전달해줬다고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가장 기억하는 위로의 말 중의 하나가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게 사람이다. 이런 말들을 듣다 보면 혼자서 여러 사람에게 상처를 입고 특히나 배우들 같은 경우 연예인이기 때문에 사람으로부터 얻는 상처가 제일 커요. 가까이에서 회사를 만나게 되고 또 같이 작업 환경에서도 사람과 같이 해야 되고 심지어 악플들도 사람들과 만나는 행위이기 때문에 거기서 상처를 더 많이 받거든요. 그럴 때마다 이 말을 되짚어가면서 그래도 결국 사람 속에서 살아야 된다. 사람 속에서 인기를 얻고 있지 않냐. 이런 생각들을 하게 만들어주는 말인데 이런 모습들이 전반적으로 최불암 배우를 기억하게 했던 어르신이라고 생각했던 매력들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앵커]
참어른의 표본이다라는 생각이 들고 많은 후배를 동료 배우들이 최불암 배우로부터 따뜻한 위로 같은 걸 받았기 때문에 더욱더 추모를 많이 하고 슬퍼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배우 김혜수 씨는 사흘 연속 빈소를 지켰다고 하더라고요. 조문객들의 신발을 정리하는 모습이 온라인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사흘 연속 빈소를 지킨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고 조금 전 운구차가 나가는 현장에서도 모습이 포착됐거든요. 정말 딸 같더라고요.

[김성수]
진짜 딸처럼 고인을 대했고 그리고 늘 아버지라고 불렀습니다. 게다가 작품 밖에서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그렇게 고백하고 있거든요. 그것은 고인이 항상 작품 밖에서도 자기와 함께 협업했던 후배 배우들과 꾸준히 인간관계를 유지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그것이 바로 이분을 전설로 기억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앵커]
'전원일기'에서 아들로 출연했던 유인촌 전 장관도 빈소를 다시 찾았고강부자, 채시라 씨 등 원로와 후배 배우들의 추모도 이어졌습니다. 지금 화면에 신현준 배우의 모습도 나왔습니다. 그리고 최휘영 장관은 빈소에서 금관문화훈장을 전달하기도 했고 최불암 배우가 한국 연기계에 남긴 발자취로는 어떤 게 있다고 보시나요?

[김성수]
최불암 배우는 지상파의 전성시대를 지나온 사람입니다. 그런데 지상파 시대는 방송국에 전속되어서 자기가 주어진 대본에 충실할 수밖에 없는 그런 시절이었어요. 자기가 하고 싶다고 해서 오디션 가서 작품을 선택하거나 이런 시대가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그때 당시에 여러 가지 선택들을 할 수 있습니다. 자기가 힘이 생기고 나면 전속도 옮길 수 있고 자기가 욕심대로 살 수 있어요. 그런데 최불암 배우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최불암 배우는 대중들이 자기가 기억해 주는 대로 살고 싶어했어요. 그래서 제가 최불암 배우에 대해서 한 단어로 이분을 수식해라 그러면 저는 공적인 배우였다. 그러니까 배우라고 하는 삶이 사적으로 살게 되면 정말 욕심만 좇으면서 살 수 있거든요. 자기가 하고 싶은 연기, 자기가 하고 싶은 배역. 이런 것만 좇아서 할 수 있어요. 그런데 공적으로 주어지는 기대와 역할이 있단 말이죠. 그런데 거기에 부응하면서 산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수사반장 박영한으로 18년 살았죠. 전원일기 김 회장으로 22년 살았습니다. 그리고 한국인의 밥상에서 밥친구로 14년을 살았어요. 정말 오랫동안 하나의 역할에 깊이 있는 탐구를 하는 배우들 요즘에 저요 없습니다. 그래서 배우들에게 한 캐릭터를 깊이 있게 탐구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경험해 보라는 조언을 돌아가셔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 한국 방송계의 잊을 수 없는 캐릭터 3개와 깊이 있게 캐릭터를 탐구하는 법을 가르쳐주신 그런 선배 배우로서 영원히 기억될 거라고 생각됩니다.

[앵커]
지금 화면으로는 이 시각 여의도성당의 모습 나가고 있습니다. 잠시 뒤에 국민 아버지 최불암의 장례미사가 열립니다. 고인의 세례를 집전했던 염수정 추기경이 직접 주례를 받는다고 하는데요. 취재기자 연결해서 현장 상황 알아보겠습니다. 이준엽 기자, 오늘 장례미사는 어떤 순서로 진행되나요?

[기자]
잠시 뒤 오전 9시부터 이곳에서 최불암 배우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하는 미사가 열립니다. 유가족과 지인, 신자들이 대성당에 모여조금 전 1층에 고인의 운구 행렬도 성당에 도착한 모습이었습니다. 미사는 대성당 중앙 통로 앞에 고인의 관을 모신 채 진행됩니다. 염수정 추기경이 지난 2018년 10월 세례식과 별세 아흐레 전 병자성사에 이어 오늘 장례미사 주례도 직접 맡습니다. 미사는 기도와 영성체 등 미사 의식을 마친 뒤, 추모사와 추모곡으로 이어집니다. 팝페라 가수 임형주가 부를 추모곡은 가톨릭 대표적인 기도인 성모송을 바탕으로 한 '아베 마리아'입니다. 고인을 '이모부'로 부르며 각별한 인연을 이어온 임형주는 영원한 안식과 유가족을 위로하는 마음을 담아 노래할 예정입니다. 이후 고인을 하느님께 맡기며 작별을 고하는 고별식을 끝으로, 운구 행렬은 성당을 떠나게 됩니다.

[앵커]
오늘 나머지 절차도 설명해 주시죠.

[기자]
장례미사에 앞서 서울 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발인식이 비공개로 열렸습니다. 배우 김혜수, 신현준, 정준호와 방송인 김경란 등 후배들이 운구 차량이 출발할 때까지 함께했습니다. 이제 미사를 마친 뒤 운구 행렬은 생전 고인의 뜻에 따라 서울 무교동에 있는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본부로 갑니다. 초록우산 임직원들이 늘어서 고인의 영정을 맞이하고, 직원 대표가 추도사를 헌정합니다. 본부 1층에 마련된 추모 공간에서 장례위원들이 헌화한 뒤, 영정이 재단을 돌아보는 것을 마지막으로 고인은 영면에 들게 됩니다. 장지는 경기 파주시에 있는 동화경모공원입니다. 지난달 29일 별세한 고인의 빈소에는 대표작인 '전원일기'와 '수사반장'을 함께한 동료 배우들은 물론, 각계의 수많은 조문이 이어졌습니다. 따뜻한 웃음과 연기로 시대를 보듬었던 '국민 아버지'는 이들의 애도 속에 87세를 일기로, 영원한 안식에 들어갑니다. 지금까지 서울 여의도성당에서 YTN 이준엽입니다. [앵커]
계속해서 김성수 문화평론가와 함께 고인의 발자취 짚어보겠습니다. 고인의 별세 이후 방송계에서는 한 시대가 저물고 있다. 이런 평가가 나옵니다. 지난해 이순재 배우에 이어서 안성기 배우에 이어 최불암 배우까지 세상을 떠났는데. 한국 방송의 성장기를 이끌었던 배우들이 이렇게 모두 우리 곁을 떠났잖아요. 앞으로 어떻게 예상해 볼 수 있을까요?

[김성수]
이분들 그야말로 존재 그 자체로 후배들한테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했던 분들인데. 이런 분들이 사라지게 되면서 어떤 의미에서는 연기라는 기술들이 더 대접을 받고 일정한 캐릭터 하나만 잘 만나게 되면 여러 가지 연기에 있어서 다양한 선택들을 할 수 있는 그런 시대들로 가고 있는 것 같아요. 무한경쟁 시대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거든요. 그럴 때마다 연기하는 사람으로서 존재, 나는 무엇인가 돌아봐야 되거든요. 그럴 때 광대정신을 얘기했던 최불암 배우는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할 거라고 봅니다. 그리고 이렇게 시대가 IP를 중심으로 해서 결국 사람들에게 시장 안에서 인정받는 그런 시리즈가 아니면 쉽게 만날 수 없는 그런 상황들이 계속 만들어질 텐데 그때마다 배우로서 한 캐릭터를 어떻게 탐구해야 영혼을 사로잡는 그런 연기를 할 수 있는지를 더욱더 많이 고민하게 만드는 시대가 될 것이라고 보기 때문에 김혜자 배우가 이런 얘기를 했어요. 이거 마지막 아니야. 난 또 만날 거야. 이런 얘기를 했지만 실제로 작품과 연기를 할 때 정신을 가지고 계속 우리 곁에 살아 있기 때문에 끊임없는 원로와의 대화를 통해서 내가 어디에 뭘 하고 있는지 자꾸 발견하는 배우들이 계속적으로 살아남을 거라고 믿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시대가 바뀐다고 해서 원로의 역할이 사라지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앵커]
고인은 수사반장에서는 정의로운 형사, 또 전원일기의 인자한 아버지, 그리고 한국인의 밥상에서의 이웃들의 얘기를 잘 들어주는 그런 진행자로 우리에게 다가왔는데 오늘날 방송과 대중문화에서 이런 인물이 또 나올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듭니다.

[김성수]
굉장히 어렵죠.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깊이 있게 한 인물에 천착할 수 있었던 상황은 방송계의 여러 가지 환경하고도 밀접한 관계가 있어요. 전속으로 특정 방송국에 항상 연기라는 노동을 제공해야 되는 그런 입장에 있는 계약관계가 기본이 있었고 그리고 시청률이 어느 정도 보장되어 있는 상태에서 시청률에 약간 부침이 있더라도 거기에 흔들리지 않으면서 작품을 계속할 수 있는 그런 시대가 장기적인 드라마가 가능했던 시기였거든요. 그리고 KBS라는 플랫폼이 없었으면 한국인의 밥상 같은 기획이 이렇게 오랫동안 살아남기가 어려웠어요. 그런데도 14년을 지켜왔거든요. 이런 것들을 총체적으로 보면 최불암 배우의 캐릭터 3개는 어떻게 보면 방송 시스템과 맞물려서 탄생시킨 보석 같은 결과인 거죠. 그렇지만 앞으로도 이런 분이 탄생하기 어렵기는 하겠지만 본인이 최불암이라는 배우를 모범으로 삼고 노력한다면 불가능한 건 아닙니다. 지금도 해외에서 시즌을 10개 이상을 하면서 평생을 한 캐릭터에 몰입하는 그런 배우들도 있거든요. 그러면 중요한 것은 자기의 소신이죠. 내가 내 욕심을 계속 찾아가면서 여러 캐릭터들을 연기하느냐, 아니면 내가 대중들과 함께 시대를 바꿔가면서도 호흡할 수 있는가. 그런 선택들에 따라서 이런 배우들을 다시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해봅니다.

[앵커]
최불암이라는 배우, 우리 사회에 정말 소중한 유산을 남기고 우리 곁을 떠났는데요. 잠시 뒤 9시에서 서울 여의도성당에서 관련 소식은 들어오는 대로 전해 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 김성수 문화평론가와 함께했습니다. 고맙습니다.


YTN 안윤학 (yhahn@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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