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와 명예 다 잡은 남자, 죽음 앞에서 초라해진 이유

부와 명예 다 잡은 남자, 죽음 앞에서 초라해진 이유

2026.04.29. 오후 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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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 라디오 (FM 94.5) [YTN ON-AI RADIO]

□ 방송일시 : 2026년 04월 29일 (수)
□ 진행 : AI 챗봇 “에어”
□ 보조진행 : 김우성 PD
□ 출연 : 최민석 작가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를 바랍니다.





◆ 김우성 : 금요일 방송을 기다리시는 분들은 안타깝게도 금요일은 빨간 날입니다. 노동절이죠. 누구나 예외 없이 노동하시는 분들 쉴 수 있게 하도록 저희는 금요일 방송을 수요일로 옮겼습니다. 4월 29일 수요일, 오늘 특별히 선보이는 최민석 작가와 함께하는 <벽돌 책 뿌수기> 독서 셰르파 최민석 작가님 오늘도 스튜디오에 나오셨습니다. 작가님, 주드라스드부이쩨(Zdrastvuyte). 오늘은 작품 때문에 제가 러시아어로 인사드렸어요.

◇ 최민석 : 네, 오늘은 왜 진행자께서 이 인사말을 했냐면, 오늘 작품은 우리가 ‘위대한 작가’라고 떠올렸을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작가의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 김우성 : 네, 이 작가를 모른다고 하면 “아유, 그 사람을 몰라?” 이럴 정도입니다. 대문호죠.

◇ 최민석 : 그렇죠. 도스토옙스키와 함께 러시아 양대 문학 거장으로 꼽히는 작가죠.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의 작품을 준비해 왔습니다.

◆ 김우성 : 톨스토이, 저도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영화로도 많이들 보셨을 거고요. 톨스토이의 어떤 작품을 오늘 봐야 됩니까?

◇ 최민석 : 오늘은 《이반 일리치의 죽음》.

◆ 김우성 : 이것도 많이 들어봤습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이거 읽으면 톨스토이의 작품 세계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을까요?

◇ 최민석 : 감은 잡으실 수 있을 거예요.

◆ 김우성 : 톨스토이 작품은요, 어릴 때도 많이 접하긴 하지만 그 이유가 인생의 어떤 원리 원칙이나 교훈에 대해서 얘기를 많이 하는 것 같아요.

◇ 최민석 : 그렇죠. 오늘 작품도 제목에 ‘죽음’이 들어갔잖아요. 그런 만큼 우리 삶에서 과연 죽음이란 무엇인가 이런 질문을 던지면서, 죽음을 기억할 때 우리의 삶은 오히려 더 풍성해진다 이런 생각을 갖게 만듭니다.

◆ 김우성 : “영생하고 싶어, 죽지 않고 싶어.” 이러고 싶지만, “아니야, 죽음을 기억해. 죽음을 생각해.”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굉장히 유명한 말이죠.

◇ 최민석 : 그렇죠. “죽음을 기억하라.”라는 라틴어죠. 오늘 소설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말씀하신 ‘메멘토 모리’가 됩니다. 라틴어 격언을 말했으니까 이어받자면, 우리가 메멘토 모리, 즉 죽음을 기억하면 카르페 디엠(Carpe Diem) 할 수 있는 거죠. 그 ‘시즈 더 데이(Seize the day)’, 날을 잡을 수 있는 거죠. “어차피 우리는 죽을 존재니까 매일매일 지나가는 이 하루를 움켜잡듯이 살아라.” 그래서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이 역설적으로 현재에 충실해질 수 있다, 결국 이런 말을 이 소설은 하는 것 같아요.

◆ 김우성 : 톨스토이의 작품 속에서 죽음은 또 엄마, 아버지, 가족이 일찍 죽은 걸 어릴 때부터 봤기 때문에, 전쟁터도 겪어서 많이 등장합니다. ‘카르페 디엠’ 하니까 또 《죽은 시인의 사회》도 떠오르네요. 어쨌든 이렇게 죽음에 대한 걸 염두에 두고 한번 들어가 보죠. 줄거리 알려주십시오.

◇ 최민석 : 네, 때는 1882년 러시아의 법원입니다. 휴정 시간에 모여서 대화를 나누던 판사와 검사들한테 소식이 하나 전해집니다.

◆ 김우성 : 무슨 소식입니까?

◇ 최민석 : “여러분, 이반 일리치가 저세상으로 갔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이반 일리치의 동료였고, 평소에 이반 일리치와 가깝게 지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 김우성 : 소설의 핵심 인물이죠. 이반 일리치, 왜 세상을 떠난 겁니까?

◇ 최민석 : 원인을 알 수 없는 질병에 걸렸다고 해요. 이미 몇 주째 누워 있었던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다들 이반 일리치의 건강이 나쁘다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병석에 누운 지 몇 주 만에 황망하게 떠나버릴 걸 아무도 예상을 못 했죠. 그런데 이렇게 이반 일리치가 갑자기 떠나버리자 다들 머릿속이 복잡해졌습니다.

◆ 김우성 : 슬프고 애도하고 이런 생각을 할 줄 알았는데 다들 복잡하다?

◇ 최민석 : 다들 겉으로는 애도를 표했지만, 속으로는 자기의 승진에 관련된 보직 이동을 생각한 거죠. ‘이반 일리치가 죽었으니까 그 자리는 누군가 가겠군. 그렇다면 이제는 내가 승진할 차례야.’ 예컨대 A가 이런 식으로 승진을 하면, 그 A의 빈자리는 또 누군가가 채울 거잖아요. 이런 식으로 다들 어떤 보직을 맡고 또 어떤 승진을 하게 될 건지 기대하게 됐습니다.

◆ 김우성 : 굉장히 사실주의적이죠. 엄마 장례식 가던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도 기억이 납니다.

◇ 최민석 : 갔는데 카페오레가 맛있었다…

◆ 김우성 : 다들 앉아서 슬퍼할 생각은 안 하고요. “아, 저 자리 내가 가고, 그러면 그 자리는 또 누가 가고.” 이러고들 있습니다. 굉장히 19세기 소설인데 현실적이에요.

◇ 최민석 : 네, 그래서 이런 걸 보면 인생살이가 결국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팍팍하고 차가운 것 같죠. 아무튼 장례식에서도 이런 분위기가 계속 이어집니다.

◆ 김우성 : 장례식까지요?

◇ 최민석 : 일단 이때까지 소설에서 이반 일리치는 등장을 하지 않아요. 그래서 사실상 그 첫 챕터의 주인공은 이반 일리치의 친구인 표도르 이바노비치인데, 이 인물이 죽은 이반 일리치의 절친이었어요. 표도르 이바노비치는 친구가 죽고 나자 이 사람도 자리 이동과 보직 변경에 신경을 쓰게 됩니다. 그런데 이 사람보다 더한 친구가 있어요.

◆ 김우성 : 더한 사람? 누구입니까?

◇ 최민석 : 시바르츠라는 인물인데, 이 인물은 장례식이 끝나고 난 후에 약속한 카드 게임에 온통 정신이 팔려 있습니다. 그리고 방금 말한 친구 표도르 이바노비치도 장례식 후에 바로 카드 게임을 하러 가버립니다.

◆ 김우성 : 장례식장에서 이른바

◇ 최민석 : 고스톱을 치죠.

◆ 김우성 : 고스톱 치는 분들, 거기에 정신 팔려 있다는 소리잖아요. 이거 조금 고인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아요. 친한 친구마저도 그렇고요.

◇ 최민석 : 일단 고인의 아내인, 프라스코비야 표도로브나. 고인의 아내는 자기를 위로하러 온 친구, 그 죽은 사람의 친구 표도르 이바노비치한테 자신은 과부가 됐으니 어떻게 해야 연금을 더 탈 수 있는지 물어봅니다.

◆ 김우성 : 왜 망설이셨는지 알 것 같아요. 아니, “산 사람은 살아야 된다.”도 되지만 장례식장인데…

◇ 최민석 : 아내의 관심사 역시 남편의 죽음으로 인해서 받게 될 연금이었던 거죠. 작품이 이렇게 첫 장부터 세속적인 주변 인물들을 등장시키면서, 이 소설이 굉장히 차가운 우리의 현실을 다룰 거라는 걸 예고를 하죠. 그리고 소설은 진짜 주인공인 이반 일리치를 등장시킵니다.

◆ 김우성 : 이 부분까지 왔을 때 궁금할 거예요. “도대체 어떻게 살았길래 사람들이 이래?”라고 할 텐데, 이반 일리치가 등장합니다. 시간이 거꾸로 흘러가는 거네요?

◇ 최민석 : 네, 주인공이 죽기 전으로 돌아가죠. 소설은 주인공이 학창 시절부터 죽은 마흔다섯 살까지의 생을 쭉 되짚어 봅니다.

◆ 김우성 : 학창 시절부터 마흔다섯 살까지 살았습니다. 장례식에 와서 다들 딴생각해요. 자리 욕심, 카드 게임, 또 연금 어떻게 받나… 그 주인공 이반 일리치, 어떤 사람이었어요?

◇ 최민석 : 네, 그는 모범생의 전형이었죠. 남부러울 것 없이 해야 할 일들을 모두 완벽하게 달성하면서 살아왔습니다. 또 출신 가문도 훌륭했어요. 아버지는 페테르부르크에서 정부 고위직을 지냈고 형도 관료로서 출세 가도를 걸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가문에서도 둘째 아들인 우리의 주인공 이반 일리치가 집안의 자랑거리였습니다.

◆ 김우성 : 이야, 러시아 대도시에서 고위직, 형도 관료. 이른바 번듯한 집안에 잘난 둘째 아들이라는 거예요.

◇ 최민석 : 일단 이반 일리치는 법률 학교를 졸업하고 10등 문관으로 일을 시작했는데, 맡은 일을 항상 똑 부러지게 해냈습니다. 그렇다고 또 일벌레는 아니었어요. 사교계에 진출해서 고위층들과 친분을 쌓으면서 인맥도 훌륭하게 쌓아 왔습니다.

◆ 김우성 : 여기까지 들어보면 앞서 첫 장례식의 장면이 이해가 안 돼요. 겉으로만 위로도 하고, 이거 참 아이러니하네요.

◇ 최민석 : 그렇죠. 이 소설은 첫 장부터 사람들의 실제 속내를 보여주는 거죠. 그리고 둘째 장부터는 이반 일리치가 살아 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을 보여주는데, 서로 다르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대비되는 효과를 자아내는 거죠. 아무튼 이반 일리치는 누구보다도 빠르게 예심 판사가 되어서 아주 빠르게 승진을 했고, 또 훌륭한 귀족 가문의 출신인 아름다운 프라스코비야 표도로브나를 만나면서 결혼도 했습니다. 그래서 주인공은 품위 있게 사교계에서 인정받으면서 사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고 이때까지는 모든 게 순조로워 보였죠. 그런 이반 일리치는 자기의 삶을 성공으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생기면서부터 결혼 생활이 약간 삐걱대기 시작합니다.

◆ 김우성 : 아이가 생긴 건 축복일 텐데, 이 성공 가도를 달리는 것 같은 법원 공무원 우리 주인공 이반 일리치와 아내 프라스코비야 표도로브나 사이에 삐걱댐이 발생했다. 둘 사이에 어떤 문제가 생긴 거예요?

◇ 최민석 : 아이가 생기니까 아내가 아이한테 더 관심을 쏟아붓고, 그러다 보니까 이반 일리치는 집에 오면 소외감을 느낀 거죠.

◆ 김우성 : 이거 조금 남편분들 공감하실 것 같긴한데요.

◇ 최민석 : 그래서 이반 일리치는 일에 더 파묻혀 지내면서 소외감을 해소하기 시작했죠.

◆ 김우성 : 이렇게 되면 업무할 때 굉장히 일에 마음을 많이 썼고, ‘업무 지향적 사람이다’ 이렇게 평가받을 것 같아요.

◇ 최민석 : 그렇습니다. 그런 인간이 된 겁니다. 이 동료들이 이반 일리치가 죽었을 때 인사 이동을 떠올렸듯이, 이반 일리치도 다른 사람의 보직 이동이 있으면 자기한테 어떤 영향이 있을지 항상 생각하면서 지내왔습니다. 게다가 이반 일리치는 그 사는 맛, 삶의 기쁨을 자신이 갖고 있는 권력에서 찾았어요.

◆ 김우성 : 이런 분들 요즘도 많아요. 여기저기 많습니다. 그 권력이 어떤 걸까요?

◇ 최민석 : 법관이잖아요, 주인공의 직업이. 그래서 실제로는 그 권력을 행하지 않아도 마음속으로 늘 은밀하게 “내가 마음만 먹으면 너까지 것 집어넣을 수 있어.” 이런 우월 의식을 품으면서 지냈는데, 바로 그의 행복을 보장했던 거죠. 자신의 높은 지위가 행복을 보장했던 거죠.

◆ 김우성 : 이거 “내가 느그 서장이랑 다 했어!” 이거잖아요. 굉장히 권력욕에서 “우월해, 나 잘났어, 행복해.” 글쎄요, 진짜 행복일지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업무 지향 플러스 권력 지향적인 삶을 살아왔네요.

◇ 최민석 : 게다가 법정에 들어설 때면, 그때는 물론이고 길을 가다가 또 부하 직원을 마주칠 때면 언제나 자신을 향해 보내주는 존경 어린 시선, 이걸 또 즐겼어요. 과시할 수 있는 성공과 탁월한 업무 처리 능력, 이런 것을 삶의 기쁨으로 삼았던 거죠. 이렇게 법관이 되어서 17년을 지냈고, 이러다가 삶이 지루해질 때쯤에 마침내 사건 하나가 발생합니다.

◆ 김우성 : 그러니까요. 이렇게 가버리면 장례식장이 이해돼요. “아유, 저 사람—.” 이럴 텐데, 17년 뒤 바로 사건이 발생합니다. 무슨 사건입니까?

◇ 최민석 : 이반 일리치가 고속 승진자거든요. 그래서 동료들보다 무려 두 단계나 빨리 승진을 했어요. 그래서 돈도 많이 버니까 더 좋은 집으로 이사를 해서 집을 막 꾸미기 시작합니다. 19세기에도 그때보다 더 앞선 것을 가꾸죠. 18세기 소품으로 가꾸죠.

◆ 김우성 : 이른바 돈 될 만한 오래된 골동품들.

◇ 최민석 : 앤티크(Antique)죠. 이 앤티크처럼 보이는 골동품들을 사서 집을 막 꾸미기 시작을 한 거예요.

◆ 김우성 : 이것도 역시나 권력욕이죠. 남들한테 보여주고 싶은...

◇ 최민석 : 그렇죠. 과시욕을 실현한 거죠. 그러고 도배공한테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해달라고 시범을 보이다가 그만 사다리에서 발을 헛디뎌서 떨어지고 맙니다. 이때 옆구리를 다쳐요. 그런데 이 사소한 사건 때문에 주인공한테 죽음의 그림자가 덮칩니다.

◆ 김우성 : 과시욕 때문에 집을 꾸미다 다쳤다, 이런 클리셰(Cliché)는 되게 많아요.

◇ 최민석 : 좀 상징적이죠. 게다가 또 사다리에서 떨어졌잖아요. 우리가 흔히 ‘계급의 사다리’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더 높이 올라가려다가 떨어졌다는 것을 톨스토이가 문학적으로 짚어낸 거죠. 아무튼 이때 몸에 이상을 느낀 이반 일리치는 의사를 찾아갑니다. 그런데 의사들을 찾아갈 때마다 의사들의 진단이 다 달라요.

◆ 김우성 : 참 신기하네.

◇ 최민석 : 병명을 잘 모른다는 거죠. 정확히 알면 진단이 통일될 텐데 다 진단을 다르게 합니다. 그리고 통증은 그사이에 점점 더 심해져만 가고요.

◆ 김우성 : 결국은 아픈 것도 괴로운데 아픈 이유를 모르면 사람이 더 미치잖아요. 그 병의 원인을 모르는 상태네요.

◇ 최민석 : 이반 일리치는 굉장히 억울해졌죠. 그래서 흔히 말하는 암 환자의 5단계 심리를 겪습니다.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 일단은 첫 단계가 부정이잖아요. 그래서 나한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도무지 받아들이지 못해서 막 몸부림칩니다. 그런데 진짜 괴로운 거는 그동안 그토록 자랑스러웠던 자기의 인생이 사실은 다 가짜였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는 겁니다.

◆ 김우성 : 다 가짜였다? 왜 그런 생각을 했습니까?

◇ 최민석 : 약간 죽음이 다가오면서 지난 삶을 한번 쭉 돌이켜보니까, 자신이 진짜 행복했던 때는 바로 유년 시절이었어요. 이 유년 시절에는 특별한 걸 하지 않았거든요. 그냥 뛰어놀면서 삶을 즐겼던 겁니다.

◆ 김우성 : 이반 일리치에게 지금 아픔과 고통 때문에 내면에 변화가 생긴 거네요.

◇ 최민석 : 그렇죠. 그동안은 법률 학교 때부터 이런 성취가 자기 삶을 돋보이게 한다고 여겼고 그것을 삶의 행복으로 여겼는데, 죽을 때가 돼서 생각을 해보니까 이건 심하게 말하자면, 자기 자신을 자기는 이때까지 학대하면서 살아온 거죠. 자기 삶이 가짜라고 여겨진 겁니다. 그리고 이반 일리치는 암 환자 5단계 심리의 두 번째 단계에 이릅니다.

◆ 김우성 : 분노죠.

◇ 최민석 : 그래서 내면에 분노가 막 싹틉니다. 지금껏 지내온 삶이 싫어졌고 이대로 죽기는 더욱 싫어진 거죠. 게다가 아프고 나니까 가족도 오직 계약 관계로만 느껴지는 거죠.

◆ 김우성 : 그런 기분 들 수 있어요.

◇ 최민석 : 이렇게 되니까 아내와 아들과 딸까지 모두 혐오하게 된 거죠.

◆ 김우성 : 걱정하면 이럴 거예요. “왜, 내 재산 탐나서 걱정해 주냐?” 이런 식으로 되는 거죠. 이런 상태가 계속됩니까?

◇ 최민석 : 다행히 그렇지는 않습니다. 이반 일리치는 영민한 사람이었던 거죠. 그래서 그는 한 명의 자연인으로서 죽음이 다가오자 깨닫게 됩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요. 죽음이라는 대자연의 운명적인 진실 앞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죽음을 수용하는 것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 김우성 : 또 한 번의 심리적 변화, 아까 말씀하신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 이 과정으로 흘러가는 것 같기도 해요. 변화를 겪었네요.

◇ 최민석 : 네, 이렇게 생각을 하게 되니까 마음속에 쌓였던 가족들에 대한 분노와 원망이 눈 녹듯이 싹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자기 때문에 고통받았을 가족들이 불쌍하게 느껴집니다. 병간호도 했고 자기가 또 원망의 시선도 보냈을 거잖아요. 그래서 우리의 주인공은 세상을 떠나기 전에 가족들한테 온 힘을 다해서 한마디 하고 싶어졌죠.

◆ 김우성 : 엄친아 같은 사람의 성공 지향형에다가 엄청나게 권력도 좋아하고 남들한테 과시도 하고 싶었던 사람인데, 아파서 죽어가게 되면서 이렇게 변화했습니다. 그리고 가족들한테 꼭 한마디 하고 싶어졌거든요. 뭐라고 말했습니까?

◇ 최민석 : “프로스찌(Prosti)”, “용서해줘”입니다. 그런데 이 말을 너무 힘주어서 하고 싶었기 때문일까요? 그는 ‘프로스찌’라고 말해야 하는데 그만 혀에 힘이 너무 들어간 나머지, ‘프로부스찌(Propusti)’라고 한 음절 더 말하고 맙니다.

◆ 김우성 : 이건 무슨 뜻이에요?

◇ 최민석 : ‘프로부스찌’는 “용서해줘”가 아니라 “보내줘”. 그러고 그는 이 한마디를 하기 위해서 사력을 다했는지 그만 숨을 거두고 맙니다.

◆ 김우성 : ‘프로스찌’와 ‘프로부스찌’, 한 글자 차이잖아요, 한 음절 차이잖아요. 뜻이 완전 달라져 버리는데요.

◇ 최민석 : 그렇죠. “용서해줘”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보내줘”, 더 이상 너희도 싫고 이 세상도 싫다는 함축적인 의미를 본의 아니게 말하고 세상을 떠나고 만 것이죠. 그런데 이반 일리치는 죽을 때가 됐기 때문에 더 말을 안 보태고 그냥 포기하고 맙니다. 가족들이 자기를 이해해 줄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도 가족을 용서한 것처럼 자기도 용서받을 거라고 생각을 하죠. 이렇게 그는 평안하게 세상을 떠납니다. 이때 한 가지 생각을 하죠. “끝난 건 내 삶이 아니다. 끝난 건 바로 죽음이다.”

◆ 김우성 : 종교적으로 보면 정말 용맹하게 죽음을 맞이한 것 같아요. 앞서의 긴장 관계와 그 스토리와 달리 마지막은 조금 해탈하고 뭔가 죽음을 바라보는 것 같고, 마지막 장면이 의미심장해요.

◇ 최민석 : 그렇죠. 이반 일리치는 엘리트였지만 살아 있을 때는 삶의 참의미를 깨닫지 못했죠. 그리고 죽을 때가 되어서야 그 의미를 깨달았습니다. 이렇듯 완벽해 보이는 인간도 결국은 모두 실수투성이에 부족한 존재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실수를 하고, 살면서 때로는 다른 사람들한테 잘못도 저지르는데, 상대 역시 똑같이 실수하고 잘못하는 인간이기 때문에 서로 용서하고 용서받을 수 있는 거잖아요. 이런 의미를 톨스토이는 마지막 장에 심어 넣은 거죠.

◆ 김우성 : 여러분, 최민석 작가님이 워낙 아주 리얼리티 있게 쏙쏙 상상되도록 설명해 주시잖아요. 처음에 그 장례식 장면이 조금 이해가 되시나요?

◇ 최민석 : 이반 일리치가 죽을 때 하는 생각이 있잖아요. “끝난 건 내 삶이 아니라 끝난 건 그냥 죽음이다.” 그게 《이방인》에도 나오고 하루키도 그런 말을 했던 것 같은데, “죽음은 그냥 존재 양식의 변화일 뿐이다.” 그렇게 얘기하거든요. 그렇게 생각하면 이반 일리치가 죽을 때 “용서해줘” 대신 힘을 너무 줘서 “보내줘”라고 얘기했지만, 이반 일리치 자신도 사람들을 용서했기 때문에 자기도 용서받고 이해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할 수 있는 거죠. 더 마음이 넓어지는 거죠.

◆ 김우성 : 맞습니다. 인간의 삶을 놓고 보면 탄생, 생명과 죽음, 떠나감이 사실은 한 몸뚱이 안에 있잖아요. 그리고 그것 또한 거대한 흐름에 있을 겁니다. 아직 저는 더 살아봐야겠지만. 이렇게 마지막과 첫 장면이 연결되는, 물론 고전이기도 하고 워낙 명 소설가고 문학계의 거장이셔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첫 장면이 자꾸 떠올라요. 앞서도 얘기했지만 사다리에서 떨어진다라는 거, 이거는 톨스토이의 시대나 삶하고 연결이 있죠?

◇ 최민석 : 그렇죠. 이거는 굉장히 명징한 메타포(Metaphor)죠. 사다리에서 떨어졌다는 거는 물론 그렇게 높은 데서 떨어져야 다치지만, 소설에서 옆구리를 다쳤다, 그런데 그것 때문에 사람이 죽을 리는 없잖아요. 이것 때문에 죽을 리는 없는데 이것 때문에 결국은 죽었다는 것은 명백한 작가의 의도가 개입된 설정이거든요. 그런데 왜 하필이면 사다리냐, 더 높이 올라가려고 했기 때문에. 계단도 아니고 보통 ‘계급 사다리’라고 하니까, 그 높이 올라가려고 하는 그 상승 욕구가 이반 일리치의 삶을 스스로 파괴시켰다, 이런 명징한 메타포인 거죠.

◆ 김우성 : 그 하나의 은유, 사다리. “네가 그렇게까지 올라가려고 했기 때문에 너는 떨어지고 다치고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것.” 그게 사다리 하나에 딱 들어 있는, 사다리라는 장치를 그냥 지나치시면 안 됩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 오늘 이후에 또 사서 읽어보실 분들은 이 장면에서는 천천히 멈춰서 읽어보시면 좋겠네요.

◇ 최민석 : 네, 그래서 이반 일리치가 병상에 누워서 자신의 삶을 회고했을 때, “유년 시절이 가장 행복했고 그 이후로는 내가 성공 가도를 달려온 것이 결국은 나 스스로를 학대하는 삶을 살아온 게 아닌가.”라고 생각을 하게 되는 거죠. 그렇게 연결이 되는 거죠. 그래서 더 올라가고 집을 더 꾸미고 싶었던 것 역시 자신을 학대하고 해치는 행위였다, 이렇게 톨스토이가 정리하고 있는 거죠.

◆ 김우성 : 그걸 설명하는 틀이 사실은 죽음이라는 사건, 시작할 때의 장례식, 그리고 마지막 순간 그 안에 있는데 톨스토이가 워낙에 죽음을 많이 경험한, 가족뿐만 아니라 전쟁 그런 작가여서 그런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을 읽고 접근하기 위한 여러 가지 틀과 맥락을 더 알려주세요.

◇ 최민석 : 제일 핵심인 건 이건 것 같아요. 결국은 우리도 모두 죽는 존재인데 아등바등할 필요 없고, 살면서 가장 중요한 거는 우리는 부족하고 실수를 저지르는 인간이다, 우리가 타인을 용서할 때 우리도 용서받을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 부족한 인간이니까. 서로의 실수를 덮어주고 용서해 주면서 살되 동시에 너무 완벽해지려고 하지 마라, 어차피 다른 사람들도 당신을 용서해 줄 거다, 완벽해지려고 하는 삶은 이반 일리치의 학대하는 삶과 다르지 않다.

◆ 김우성 : 약간 “느슨해라.” 이 말일 수도 있겠네요.

◇ 최민석 : 그렇죠. 살면서 실수해라, 대신 너도 그만큼 다른 사람들을 이해해 주고 용서해 주고 포용해 줘라, 그런 말을 톨스토이가 하고 있다고 봐야겠죠.

◆ 김우성 :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여러분? “너 먼저 손 내밀어, 나 못 믿겠어. 너 먼저!” 막 이런 시대에 살고 있잖아요. 지금 우리가 AI 때문에 더 촘촘합니다, 그런 시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도 용서할게, 너도 용서하겠지.” 이거 참 어려워요. 정말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오늘 큰 울림입니다. 이 작품, 저는 최민석 작가님이 고전과 명작을 가져오는데도 불구하고 늘 드는 생각이 “지금 이 시대, 대한민국 얘기야”라는 느낌이 잘 들어요. 어떤 분들이 읽어보면 좋을까요?

◇ 최민석 : 정말 바쁘게 살고 계신 분들. 이 책이 되게 얇아요. 결국 우리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것은 시간이거든요. 이 공평하게 주어지는 물리적인 속성의 그 시간을 어떻게 하면, 더 좋게 말해서 효율적으로, 냉정하게 얘기해서 한계가 명백하게 있는 것을 그 한계를 뛰어넘으려고 쓰면서 너무 힘들어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폭넓게 볼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우리가 늘 나무가 아니라 숲을 봐야 되잖아요. 그래서 삶의 시간을 진정으로 잘 이용하고 싶은 분, 내가 시간에 이끌려 다니지 않고 시간의 주체가 되고 싶은 분한테 이 책을 추천드립니다.

◆ 김우성 : 유년 시절이 가장 행복했다는 이반 일리치의 말, 아무 생각도 없다 이런 거랑 다른 것 같아요. 온전히 하루를 내 것으로 즐기는, 방금 말씀하신 내가 주인공이 돼서 주체가 돼서 삶을 쓴다는 마음은 조금 느슨하고 여유로움이 필요할 것 같죠. 그 의미에서 고민하시는 분들은 오늘 이 작품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접근하기 어렵지 않지만 굉장히 한 작가와 시대를 상징했던 문호들을 싹 들어갈 수 있는 그런 작품들을 오늘도 최민석 작가님이 소개해 주셨네요.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 최민석 : 감사합니다.


YTN 김세령 (newsfm0945@ytnradi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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