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틀리에산책] 천년 고목이 바라본, 자연의 숨겨진 아름다움 - 정지윤 작가

[아틀리에산책] 천년 고목이 바라본, 자연의 숨겨진 아름다움 - 정지윤 작가

2022.11.11. 오전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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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틀리에산책] 천년 고목이 바라본, 자연의 숨겨진 아름다움 - 정지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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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내음 가득한 흑백의 그림, 자세히 들여다보면 연필로 그려낸 세밀함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정지윤 작가의 초대전이 YTN 아트스퀘어에 열렸다.

흑백의 이미지 속에 과거와 현대의 사람이 어우러져 있고, 거대한 용과 봉황새가 숲을 지나는 모습이 마치 꿈속을 노니는 듯하다.

화폭의 중앙에는 천 년을 살아온 고목나무가 자리 잡고 있다. 역사의 숨결이 깃든 자연물을 매개로 작가는 과거와 현재를 잇고, 자연과 사람을 잇는다.

'연필 드로잉'이라는 세밀한 작업은 숲의 본질에 가까이 다가가려는 작가의 진정성을 담고 있다. 가는 연필로 선 하나하나를 그리고 쌓아 숲의 형상을 채우며, 자연이 품은 오랜 시간과 깊이를 드러낸다.

대자연의 숨결과 생명력을 불어 넣는 그의 풍경은, 상생과 포용의 가치를 떠올리게 한다. 전시는 30일 까지다.

나는 자연이 가진 다양한 이미지를 환영과 더불어 포착하고자 한다. 나의 작품을 감상하면서 자연이 가진 본연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미처 관심조차 줄 수 없었던 숨겨진 모습들에서 새로운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발견하는 계기로 작용하여 일상화된 삶속에서 어쩌면 무심코 지나쳐 버렸을 지도 모를 것들에 대한 주의를 환기 시켰으면 하는 바람이다. - 작가 노트 중


YTN 아트스퀘어 정지윤 초대전 (11.1~11.30)

정지윤 작가는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조형예술과 예술전문사 졸업, 성신여자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했다. '2020 밤이 머문 자리', '2020 이미지의 환영, 그것의 풍경' 등 개인전과 '2022 INTO THE UNKNOWN (미지의 세계로)' 등 단체전에 다수 참여했다. 2016 아시아프 DDP어워드 수상, 2015 한국은행 신진작가 선정, 2013 35회 중앙미술대전 선정작가 등 수상 이력이 있다. 그의 작품은 서울특별시청, 한국은행, 포스코, 알피바이오 등에 소장돼 있다.

정지윤 작가의 또 다른 작품이 궁금하다면 에코락갤러리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다음은 정지윤 작가와의 일문일답

Q. 자연을 소재로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가 있나요.

유년기 시절을 시골에서 보냈어요. 충남 아산에서 6살 때까지 살았는데, 동네가 완전히 시골이었어요. 할아버지께서 벼농사를 하시면서, 경운기를 함께 타던 기억도 있어요. 그때 감수성이 어른이 돼서도 쭉 이어지고 있는 것 같아요. 자연은 제게 늘 친근한 대상이었고, 지금도 등산이나 산책을 하면서 자연에서 영감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Q. 아이디어나 영감은 어떻게 떠올리나요?

가장 큰 영감을 받은 건 ‘천년된 고목나무’와의 만남이었어요. 20대 초반에 가족들과 금산에 가서, 천년 고목 은행나무를 봤어요. 정말 일천 년 된 나무라고 하는데, 사람으로 치면 천 살인 거잖아요. 나무가 엄청 컸는데, 영험함이랄까요. 굉장히 신비롭고 묘한 기운을 느꼈어요. 이 나무는 천년의 시간을 다 바라본 거잖아요. 나무의 시점으로 생각하니 재미난 상상이 들었어요. 그때부터 천년 된 나무를 중심으로, 나무가 바라본 과거의 사람도 등장하고, 시공간을 초월한 스토리를 넣는 계기가 되었어요.

최근에는 ‘환경 보호’에 관한 메시지를 좀 더 드러내고 있는데요. ‘환경 보호’가 우리 사회의 중요한 과제잖아요. 개인적으로 환경보호 활동을 실천하는 모임을 하면서 우리 주변에 보호받아야 할 멸종 위기종들이 참 많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멸종 위기종, 야생화를 그리면서 우리가 지켜야 할 대상을 많이 알리고자 그림 곳곳에 멸종 위기 동물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Q. 현대와 과거 사람들을 같이 그려 넣은 것이 재미있습니다. 과거 사람들을 그릴 때 참고하는 것이 있다면?

고고학을 전공하신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아버지가 수집하시는 고서, 고서화를 어렸을 때부터 많이 보고 자랐는데, 옛 서적과 그림을 보면 무언가 울림이 있더라고요. 그림을 그릴 때, 궁궐의 역사를 찾아보거나, 역사 자료, 이미지를 많이 수집하면서 아이디어를 구체화합니다.

전시 작품 중 ‘심연’이라는 그림에는 봉황 새가 등장하는데, 조선시대 왕비가 머물렀던, 창덕궁 대조전에 그려진 '봉황도'의 이미지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어요. 봉황 새는 상상의 동물이잖아요. 역사 속에서 실존하는 공간과 더불어 옛날 사람들의 상상력을 그려 넣는 게 좀 더 신비로운 느낌을 주는 것 같아요. 과거와 현대 사람들을 함께 상상하고, 시공간을 초월해서 그리는 만큼, 꿈같은 신비로운 감상을 주기 위해 봉황 새, 용과 같은 이미지를 곳곳에 숨겨 놓기도 합니다.

Q. 연필로 그리는 '드로잉화'는 언제부터 그렸나요?

'드로잉'은 밑그림 작업이라고 많이들 생각하는데요, 드로잉 자체가 작품이 되는가에 관해서는 여전히 편견이 많은 것 같아요. 저도 학부에서는 서양화를 전공했고, 수채화나 유화 그림을 많이 그렸어요. 유화는 물감이 마르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즉흥적 표현을 좋아하는 저와 맞지 않더라고요. 드로잉의 즉흥성, 연필 특유의 흑백 감수성이 제 스타일과 잘 맞았습니다. 당시 학부 교수님께서 드로잉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한 작품이 될 수 있다고 격려해 주신 덕분에 드로잉 작품에 집중할 수 있었어요. 이후 15년 넘게 꾸준히 드로잉화를 그려왔습니다.

특히, 제가 과거와 현대의 시간을 초월한 소재를 그려내는 데에 흑백의 이미지가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대상의 색채를 명확하게 설정하기보다, 무채색의 표현으로, 감상자에게 상상의 여지를 줄 수 있기 때문이죠.

Q. 굉장히 섬세한 작업인데, 특별한 노하우가 있다면?

가는 선을 그리기 위해서 가장 얇은, 0.3mm 샤프심을 사용합니다. 연필은 마모가 쉽게 돼, 수시로 깎아야 해서 샤프펜이 가장 적절한 도구가 됐어요.

특별한 노하우라기보단, 선을 하나하나 그려가는 데 상당한 노동력이 필요해요. 작품을 완성하는 데 길게는 6개월에서 1년도 걸렸죠. 한 획에 담긴 의미도 있겠지만, 저는 쌓임의 시간성을 강조하고 싶어요. 자연이 한순간에 나타난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을 품고 있잖아요. 고목나무가 천 년의 역사를 품고 있는 것처럼, 선의 쌓임을 통해 시간성, 역사성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무수히 많은 선을 그리며 정성을 쏟는 만큼, 진정성도 담을 수 있죠.

명암 표현도 중요합니다. 흑백의 컬러로만 표현하기 때문에, 농담을 이용해서 어둠과 밝기, 풍경의 깊이를 표현해 내는데 신경을 많이 쓰고 있어요.

Q.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 있다면?

'Beyond My Dreams'라는 작품입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드라마의 OST 제목을 차용했어요.
드라마에서 주인공 우영우의 상상 속에 고래가 등장하는 모습은 마치 꿈꾸는 것 같고, 힐링이 되는 장면이었는데요. 저 또한 등산이나 산책을 하다가 제게 영감을 주는 풍경을 봤을 때, 재미있는 상상들이 다가와요. 제 그림에도 용이나 봉황새와 같이 신비로운 동물이 등장하는데, 우영우가 떠올리는 고래와 비슷하다고 생각해 드라마 OST 제목을 따왔어요.

또, 그림에서 중요한 포인트는 '아이들'의 모습입니다. 제가 아동미술교육을 하고 있어서 아이들은 제가 애착을 가진 대상이기도 하고요. 아이들이 무언가 뚝딱뚝딱 만드는 모습, 만들어낸 결과물을 보면 순수함이나 희망이 느껴져요. 아이들의 순수성, 성장, 꿈, 미래를 얘기하며 미래 세대를 위한 자연 보호의 메시지를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아이들이 순수하다 보니 동물과 거리낌 없이 교감하는 모습, 호랑이에 올라탄 모습들이 나오는데, 개인적으로 에덴동산과 같은 낙원을 꿈꾸면서, 무서운 동물, 약한 동물 할 거 없이 강자 약자 할 거 없이 서로 어우러졌으면 좋겠다는 저의 이상도 담겨 있습니다.

Q. 작품 관람 팁이 있다면? 또, 작품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Please remember us' 작품에 특히 멸종 위기 동물이 많이 등장합니다. 호랑이, 수달, 레서판다, 코알라 등 곳곳에 숨어 있는 동식물, 야생화들을 발견하고, 찾아보시면 관람의 재미가 더해질 것 같습니다.

요즘 ‘생태 감수성’이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환경을 사랑하는 마음,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동식물을 생각하는 공감적 정서인 것 같아요. 동식물이 있어야 인간이 공존해서 사는 거잖아요. 그림을 통해 자연과 공존하는 삶을 함께 꿈꾸고 상상하면서 자연에서 위로를 얻길 바랍니다. 또한, 자연, 환경의 미래를 함께 고민하는 기회가 된다면 더욱 보람이 될 것 같습니다.



YTN 커뮤니케이션팀 김양혜 (kimyh1218@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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