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을 되살리다...김훈 작가 '하얼빈'을 말하다

안중근을 되살리다...김훈 작가 '하얼빈'을 말하다

2022.08.08. 오후 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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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행 : 박석원 앵커
■ 출연 : 김 훈 / 소설 '하얼빈' 작가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인용 시 [YTN 뉴스Q] 명시해주시기 바랍니다.

[앵커]
수많은 문학과 예술 작품에서 다뤄진 안중근 의사, 그 내면은 어땠을까요? 역사가 기록하지 못한 인간 안중근의 고뇌가 소설로 재현됐습니다.

얼마 전 그 작업을 마친 김훈 작가가 나오셨습니다. 책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김훈]
안녕하십니까? 김훈입니다.

[앵커]
하얼빈이라고 하면 많은 국민들이 제목에서도 유추할 수 있겠지만 안중근 의사의 생애 가운데서 거사 직전과 그리고 그 후의 짧은 시간을 압축적으로 다뤘습니다. 일단 하얼빈이라는 책 소개부터 해 주시죠.

[김훈]
이 책은 안중근의 생애 중에서 극히 일부만을 다루고 있습니다. 안중근 의사가 블라디보스토크를 떠나서 하얼빈으로 가는 가는 일주일, 그동안 또 이토는 하얼빈으로 오고 있었어요.

두 사람이 극적으로 하얼빈에서 만나는 것이죠. 두 사람이 거사를 하고 사형을 당하기까지 5개월 정도의 시간 배경을 소설에 담았습니다.

[앵커]
두 인물이 하얼빈에서 극적으로 만났다라고 표현을 해 주셨는데 이러한 이야기도 잠시 후에 나눠보기로 하고요.

젊었을 때부터 생각해 둔 일이었다, 이 집필 과정을 또 그렇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왜 안중근의 이야기를 쓰고 싶으셨는지도 답변해 주시죠.

[김훈]
제가 대학교 다닐 때 안중근 신문 저서를 읽었어요. 안중근 의사가 체포된 다음에 일본 검찰에 끌려가서 심문을 받는 대목이죠. 관동도독부 검찰부.

그리고 재판에서 신문받는 기록을 읽었는데 그걸 보니까 그 안에 그 인간의 야만성, 제국주의가 갖는 야만성과 거기에 저항하는 젊은이들의 에너지 같은 게 거기 들어 있더군요. 그때 큰 충격을 받았어요.

그래서 이걸 내가 언젠가는 뭔가 글을 쓰게 되겠다는 예감을 받았는데 그로부터 50년 후에 완성을 했어요. 50년이 걸렸어요, 50년.

[앵커]
50년이나 걸린 작품입니다.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유예해뒀던 작품이기도 했고 작가님의 말을 빌리자면 필생 동안 방치한 소설이다, 이렇게 표현을 하셨는데 그만큼 인물에 대한 고뇌가 많이 담겨있다 이렇게 봐야 되겠죠?

[김훈]
그런데 50년이 걸렸다고 했는데 내가 50년 동안 거기에 매달려 있었던 것은 아니고 그 충격을 내가 간직하고 있기는 했지만 그걸 차일피일 미루고 나도 또 여러 가지 직업에 종사하면서 밥벌이를 하느라고 바쁘고 그래서 미뤄놓은 거예요.

그렇지만 내 마음속에서 떠난 적은 없었습니다. 그걸 금년 1월부터 쓰기 시작해서 완성한 것이죠.

[앵커]
책 이야기를 좀 더 해 보겠습니다. 소설 속에 있는 안중근 의사가 조금 낯설다 이런 평가들도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동안 영웅성에 주목했던 작품들이 꽤 많이 있었는데 이 하얼빈 속의 안중근은 조금 이전에 비춰졌던 안중근보다는 좀 다른 모습들이 있다라고 얘기를 하고 있더라고요.

[김훈]
안중근 의사에 관한 기록이나 소설, 무슨 연구서, 보고서, 다큐멘터리 이런 것들은 굉장히 많죠. 한국에서 나온 것, 북한에서 나온 것도 있고 중국에서 나온 책들도 있습니다. 제가 이것을 다 읽어본 것은 아니지만 제가 읽은 한도 안에서 말씀드리자면 거기서 안중근은 매우 이야기 속의 안중근처럼 그려져 있어요.

설화, 옛이야기에 나오는 영웅, 소년 영웅처럼 그려져 있죠. 그런데 저는 이 소설에서 안중근 의사는 우리 이웃에 있는 청년, 생활 속의 청년, 고뇌와 망설임과 그런 것들을 간직한 인간으로 그리려고 애를 썼던 것이죠.

[앵커]
실제 안중근 의사가 어땠을지 궁금해지는 대목들도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거사를 치르기 직전이었죠. 전날 밤에 총구를 쥔 자가 살아있는 인간이므로 총구는 늘 흔들렸다. 이런 문구도 나오고요.

거사 전날 안중근 의사의 심리를 굉장히 적절하게 묘사를 하셨는데 어떻습니까? 가장으로서, 독립투사로서, 또 천주 교인으로서의 안중근의 고뇌를 발견했던 부분들이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김훈]
지금 말씀하신 대로 이 소설에 여러 가지 갈등 구조가 겹치고 있는데 가장 큰 결정은 안중근과 이토의 갈등이죠. 그다음에 안중근은 천주교 신자잖아요. 그런데 천주교 사제들과의 갈등이 있었습니다.

이 천주교 사제들은 영혼은 하나님의 나라에 있고 그 육신은 제국주의적인 속세에 있었던 아주 복잡한 내면을 가진 성직자들이었죠. 이런 성직자들과의 갈등이 있었고, 안중근이 또 하얼빈에서 거사를 하러 블라디보스토크로 가고 있던 시점에 안중근의 부인과 아이들은 또 하얼빈으로 오고 있었거든요.

그러니까 안중근이 여러 가지 가족에 대한 갈등이 있었겠죠. 그런 여러 가지 중첩되는 갈등의 구조를 소설 안에 들여놓은 것입니다. 그리고 아까 말씀하신 총구가 늘 흔들리고 있었다. 그 대목은 총을 쥔 인간의 몸, 몸에 대해서 쓴 것이죠. 저도 육군에 있을 때 사격 훈련을 해봤는데 총구가 항상 흔들리거든요, 조금씩.

그런데 교관들은 자꾸만 총구를 고정시키라고 가르치죠. 그런데 이게 살아있는 인간의 몸을 반영하기 때문에 아주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죠. 그것은 결국 안중근이 자기의 몸으로 그걸 감당할 수밖에 없는 고뇌를 쓴 것이죠. 총구가 늘 흔들린다는 것은. 그런 자기 자신의 몸과의 갈등 그런 것까지도 거기다 쓰려고 했습니다.

[앵커]
앞서 처음에 말씀하셨던 부분들 중에 이토와 안중근이 하얼빈에서 극적으로 만났다, 이렇게 표현을 하셨습니다. 책을 보게 되면 특이한 점이 이토 히로부미에 대한 서술입니다.

이토의 내면 묘사를 시도했다는 점이 굉장히 눈에 띄는데 두 인간, 그러니까 안중근과 이토의 두 인물의 내면을 나란히 두면서 묘사를 했던 부분은 어떤 의도를 갖고 있었다고 봐야 될까요?

[김훈]
그런데 이토는 아주 복잡한 내면을 가진 사람이죠. 이토는 자기 조국 일본을 봉건에서 근대로 전환시킨 일본 최고의 엘리트 집단 중에서 최선봉에 있었던 인물입니다. 그리고 그 인간의 꿈은 근대성에 있었던 거예요.

인간 역사 속의 근대성. 그런데 근대성이라는 건 양면을 갖고 있는 것이죠. 문명계와 합리주의를 통한 문명계와라는 것은 결국 현실적으로는 서구화를 지향하는 것이죠. 그 문명개화의 목표와 또 약육강식 이런 야만성, 이런 양극단의 모습을 동시에 가진 인물이죠.

이런 인물이 일본을 근대화를 해 놓고 그 거대한 세력을 가지고 한반도와 만주로 들어오는 것이죠. 그런데 안중근은 그런 거대한 세력에 대해서 총알 7발과 여비 100루블을 가지고 하얼빈으로 가서 부딪치는 것이죠. 거기서 두 인물의 운명이 하얼빈역에서 만나서 비극적으로 폭발하는 대목을 제가 쓴 것입니다.

[앵커]
두 인물의 극적인 만남과 비극적인 폭발 이런 말씀을 해 주셨는데 이 거사 속에 있는 비극성, 비극성 안에서도 희망을 엿볼 수 있다 이렇게 말씀하신 부분은 어떤 겁니까?

[김훈]
그것은 안중근의 희망이죠. 안중근의 희망은 동양평화입니다. 동양평화라는 저술을 했죠. 그것은 동양에 대한 토털 픽처를 자기가 만든 것이죠. 그것은 민족주의의 개념보다는 상위 개념입니다.

동양 전체가, 동양 각국은 한국, 중국, 일본뿐 아니라 인도차이나반도, 인도네시아까지 다 합친 거대한 동양이 모든 동양이 독립성을 유지하는 것이 동양평화다라는 설계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죠. 그런데 이토의 설계는 정반대였어요.

일본이 동양 전체를 일본의 패권으로 지배하고 안정된 세력을 만드는 이것이 동양평화다라는 것이죠, 이토는. 그러니까 두 인물의 운명은 불가피하게 마주칠 수밖에 없었던 대목에 있었던 것이죠. 그런데 안중근의 희망은 동양평화에 있었던 거예요.

그리고 안중근의 희망은 그 총에 있었다기보다는 말에 있었던 거죠, 말. 거사를 치른 다음에 법정으로 가잖아요. 거기서 자기 할 말은 다 하는 것이죠. 이토의 죄악을 성토하고 동양평화의 논리를 거기서 말하는 것이죠. 그러니까 총에서 말로, 언어로 넘어가는 과정, 거기에 이토의 희망이 있었던 것이죠. 그런데 그분은 희망을 다 이루고 갔어요. 물론 그의 희망이 당대에는 경청되지 않았지만 그 후세에 두고 두고 경청이 되는 것이죠.

[앵커]
책을 보게 되면 총 30개 장 중에 정작 이 거사 내용은 1개 장. 읽어보니까 페이지로는 3장 정도로 표현이 됐습니다.

긴장이 응축된 사건이긴 한데 여러 장면들 중에 거사 내용은 3장 정도로 증축을 하고 나머지 것들은 조금 더 여러 가지 갈래로 이야기를 많이 나누고 있어서 애초에 이런 사건 자체에 무게를 뒀다기보다 다른 이야기를 조명하고 싶었다, 이런 느낌도 들었거든요.

[김훈]
소설이 나온 다음에 그런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독자들이 총을 쏘는 대목이 너무 짧다. 거기를 기대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독자들은. 그런데 저는 그걸 비교적 짧게 처리했죠.

하얼빈에서 총을 쏘는 대목은 이 사건이 갖는 물리적 구조 속에서의 클라이맥스겠지만 내가 쓴 소설 전체는 거기가 클라이맥스가 아니고 오히려 그 총을 쏘고 나서 법정에 끌려가서 그 동양평화를 얘기하고 자기가 이걸 할 수밖에 없었던 당위성을 설명하는 대목. 그리고 천주교 사제들과의 갈등을 해소하는 대목. 이런 대목이 오히려 더 비중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을 두고 역점을 좀 바꾼 것입니다.

[앵커]
지금 작가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많은 독자분들은 아마 또 책을 새롭게 또 더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요령들, 팁들을 받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도 드는데요. 하얼빈이라는 제목에 많은 메시지가 담긴 것 같습니다.

제목의 의미, 그리고 하얼빈의 어떤 공간을 담고 있는지 이런 부분도 설명을 해 주신다면요?

[김훈]
하얼빈은 철도의 교차점인데 대련에서 하얼빈으로 오는 남만주 철도, 그리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얼빈으로 오는 동청 철도가 하얼빈에서 만나는 것이죠. 그러니까 남만주철도는 일본 세력이 들어오는 길이었고 동청철도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러시아 쪽이 들어오는 것이죠.

이것이 거대 양대 세력이 하얼빈에서 만나는 대목인데 거기가 지점이 하얼빈이죠. 그러니까 거기는 아주 상징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갖는 도시죠. 그런데 안중근이라는 청년은 총알 7발을 들고 그 핵심부로 뛰어드는 것이죠.

안중근은 하얼빈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어요. 하얼빈은 거대 도시거든요. 북만주에서 가장 큰 거대 도시로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도시로 들어간 것이죠. 그래서 하얼빈을 제목으로 했습니다.

하얼빈은 글자 3개는 저는 참 갖는 의미는 매우 크다고 생각했어요. 하얼빈이라는 세 글자가 무정한 제목입니다. 무정하고 불친절한 제목이죠. 그런데 그 대신 완결성을 갖는, 하얼빈 세 글자가. 그 상징성이나 역사성으로 볼 때. 그래서 무정한 제목을 세 글자를 제목으로 한 것입니다.

[앵커]
작가님이 지금 하얼빈을 집필하시면서 31살 안중근의 청춘, 그 생명력에 집중했다, 이런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안중근 의사를 통해 지금 시대에 전하고픈 메시지가 있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김훈]
안중근은 결국 문명개화로 위장된 약육강식에 저항한 것이죠. 약육강식의 시대. 그런데 약육강식의 문제는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문제예요. 아직도 계속 유효한 문제입니다. 인류사에 수많은 혁명이 있었잖아요.

이 혁명은 인간이 약육강식을 견딜 수 없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죠. 그런데 이 혁명들은 약육강식을 해결하지 못했어요, 아직도. 우리 인류는 아직도 약육강식 밑에서 신음하는 것이죠. 안중근의 메시지는 영원히 유효한 거예요.

그리고 안중근이 말했던 동양평화라는 것은 지금 더욱 절박한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이 어저께까지 뉴스를 봤더니 대만을 둘러싼 중국과 미국의 그렇게 참 위태위태로운 무력대결이 벌어지고 역시 동양에서도 결국 중국이 강대국이 되고 북한이 핵을 무장을 하니까 브로커가 돼서 양대 패권이 또 동양에서 부닥치려고 하는 그런 위험한 조짐이 벌어지니까 안중근이 얘기했던, 절규했던 약육강식과 동양평화에 대한 메시지는 지금 더욱 생생하게 살아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앵커]
건강 문제로 절박함이 들어서 지금 회복하시자마자 서둘러서 집필하셨다고 들었는데 또 집필을 마치자마자 또 고뇌의 시간을 재촉하는 것 같아서 겸연쩍기는 합니다마는 다음 작품 혹시 구상하시는 게 있습니까?

[김훈]
저는 작품 하나 써놓으면 아무것도 하기 싫어요, 사실은. 그러다가 몇 달 지나면 또 하는데 지금으로서는 좀 쉬려고 하는데 또 몇 달 지나면 또 뭔가 하게 되겠죠. 그런 예감을 갖고 있습니다.

[앵커]
알겠습니다. 이번 하얼빈이라는 작품도 독자로서는 또 반가웠는데 작가님의 예감대로 또 다음 작품을 통해서 어떤 작품이 나올지도 기대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김훈 작가님과 이야기 나눴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김훈]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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