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거리의 낙서는 어떻게 '대작'이 됐을까?

뉴욕 거리의 낙서는 어떻게 '대작'이 됐을까?

2020.10.25. 오전 0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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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그래피티'라고도 부르는 거리의 낙서를 캔버스로 옮긴 화가들이 많죠.

이른바 '낙서 미술'로 불리는데, 낙서 미술의 대가, 장 미셸 바스키아의 작품 150여 점이 우리나라에 왔습니다.

김혜은 기자가 소개합니다.

[기자]
노란 화면에 빈틈없는 낙서가 모였습니다.

왕관을 쓴 유색의 영웅들, 정의의 저울을 든 사람이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작품 아래를 채운 거친 붓의 터치는 유색인들의 고난을 대변하는 듯합니다.

스무 살의 화가가 그린 뉴욕의 거리에서도 주인공은 유색 인종입니다.

[채보미 / 롯데뮤지엄 에듀케이터 : 가운데 부분을 보시면 유색 인종을 나타내는 인물이 보입니다. 바스키아의 다른 작품들에서도 흑인을 상징하는 유색 인종의 모습을 보실 수 있고.]

흑인 예술가, 검은 피카소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던 바스키아는 인종차별에 대한 거부감을 신랄하게 그려냈습니다.

어린 시절 책으로 접한 해부학 지식과 능통한 스페인어를 동원해 독특한 상징과 은유로 캔버스를 채웠습니다.

마음껏 지우고 덧칠하고 자르고 이어붙인 표현 방식은 거리에서 미술을 시작한 그의 자유분방함을 잘 보여줍니다.

바스키아는 스무 살에 혜성처럼 등장해 약물 중독으로 요절하기까지 8년 동안 무려 3천여 점의 작품을 남겼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의 작품세계를 훑어볼 수 있는 150여 점이 소개됩니다.

그에게는 아버지와도 같았던 앤디 워홀과의 기록물이나, 공동 작품도 만날 수 있습니다.

[조기헌 / 롯데뮤지엄 전시사업파트장 : 소규모의 전시에서만 바스키아 작품을 볼 수 있었는데 150여 점의 원화를 들여와서 많은 국민이 바스키아의 작품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최고가 기록'이라는 수식어로 바스키아의 작품에 대작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하지만,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그림에, 유머와 비극, 삶의 부조리까지 녹여낸 대담함이 그의 작품을 대작으로 올려놓았습니다.

YTN 김혜은[henism@ytn.co.kr]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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