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에서 가족의 의미를 찾다...영화 ‘남매의 여름밤’ 윤단비 감독' 

'식탁에서 가족의 의미를 찾다...영화 ‘남매의 여름밤’ 윤단비 감독' 

2020.09.28. 오후 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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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에서 가족의 의미를 찾다...영화 ‘남매의 여름밤’ 윤단비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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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규의 행복한 쉼표, 잠시만요]
■ 방송 : FM 94.5 (17:10~19:00)
■ 방송일 : 2020년 9월 27일 (일요일)
■ 대담 : 윤단비 감독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식탁에서 가족의 의미를 찾다...여화 ‘남매의 여름밤’ 윤단비 감독' 


◇ 이성규 한국장애인재단 이사장(이하 이성규)>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온 식구가 모인 식탁에서 갈등이 빚어지기도 합니다. 그걸 볼 때마다 이거 소화가 제대로 될까? 싶을 때도 있는데요. 이 영화에서는 정말 훈훈하게 식사 장면이 그려집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화제의 영화 남매의 여름밤을 만든 윤단비 감독입니다.

◆ 윤단비 감독(이하 윤단비)> 안녕하세요.

◇ 이성규> 남매의 여름밤이 8월 20일에 개봉을 했는데. 관객 수가 벌써 2만 명 가까이가 되네요. 이런 거 예상하셨나요?

◆ 윤단비> 영화를 만들 때는 사실은 극장에서 개봉할 수 있을까 조차도 불투명했거든요. 근데 소개가 되고 개봉까지 하고 개봉을 앞두고 사회적 거리두기가 격상되면서 좀 걱정을 했었어요. 그 와중에 영화가 그래도 의미 있는 행보를 하는 것 같아서 너무 다행이다라는 생각도 들고. 항상 제 예상 밖의 결과들이 다가오는 것 같아요.

◇ 이성규> 관람하신 분들의 평도 상당히 좋아요. 이렇게 좋은 평을 받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사후적인 해석이기는 하지만.

◆ 윤단비> 수치보다도 평들에서 힘을 얻긴 하는데. 제가 영화를 만들 때도 관객들이 영화를 보면서 인물의 감정을 따라가기 급급한 게 아니라 그 사이에서 자신들의 기억이나 경험을 환기시킬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런 여백들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했었거든요. 인물에게서 자신의 모습, 과거의 모습들을 기억하는 것 그런 점에서 영화를 좋게 봐주시는 것 같고. 영화를 찍을 때 영화적 쇼트 구성을 하고 싶다 이런 생각을 했었는데. 그런 점을 우직하게 밀고 나갔다라고 봐주시는 지점들도 있는 것 같아요.

◇ 이성규> 관객들이 많은 평을 해주셨는데, 그 중에서 기억에 남는 관객이 계신가요?

◆ 윤단비> 부산영화제 때가 제일 긴장이 됐었거든요. 그때가 아예 한 번도 관객 반응을 만난 적이 없으니까 GV 끝나고 목발을 짚은 여성 관객분이셨는데 할아버지 생각이 났다고 하면서 절 안아주시는 거예요. 그때의 포옹이 저도 되게 위로가 많이 됐었어요. 제가 그래도 누군가한테 이런 힘이 됐구나. 그래서 그때가 제일 인상에 남는 것 같아요.

◇ 이성규> 남매의 여름밤인 관객들 평도 말씀을 드렸지만 요즘 여러 영화제에서 상을 휩쓸고 계세요.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4관왕, 그 다음에 제49회 로테르담 국제영화제에서 밝은 미래상, 또 45회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새로운 선택상, 최근에는 한국 영화로는 유일하게 2020뉴욕아시안영화제에 경쟁 부문에 초청되고, 또 제68회 산세바스티안 국제 영화제, 51회 내슈빌 영화제, 제 16회 취리히영화제 등에 초청을 받았어요. 왜 이렇게 됐어요?

◆ 윤단비> 모르겠어요. 저도 처음 만들 때 부산에서 상영을 했으면 좋겠다 이런 마음이었거든요. 영화가 그래도 공개가 됐으면 좋겠다. 근데 로테르담은 첫 해외 영화제여서 더 가늠이 안 되는 거예요. 해외의 관객들의 반응이나 아니면 심사위원들의 반응이나 근데 가족 정서에 대한 공감을 많이 해주시기도 했고. 해외 영화제 심사하시는 분들은 영화적인 미학이라든가 용기 있게 잘 촬영을 한 것 같다 이런 식의 격려를 해주셨어요. 초청된 것에 대해서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이런 한국형 가족 영화 이런 거를 예전에 어떤 영화적인 방식 그런 것에 대한 향수와 그런 것들이 작용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만 하고 있어요.

◇ 이성규> 남매의 여름밤을 아직 못 본 분들이 계실 텐데. 어떤 내용인지 잠깐 소개해주시겠어요?

◆ 윤단비> 남매의 여름밤은 아빠 병기랑 여고생 옥주, 초등학생 남동생 동주가 반지하 방에서 살다가 재개발이나 이런 이유들로 집을 떠나게 되고 아빠가 무책임한 우유부단한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할아버지와 상의도 없이 할아버지 2층 양옥집에 들어가게 돼요. 여름방학 동안만 지내겠다 이렇게 하는데. 별로 대책이 없는 아버지고, 그 와중에 고모도 이혼을 앞두고 할아버지 집으로 들어오게 되거든요. 그 다섯 식구가 여름방학 동안 지내게 되는 이야기인데. 극적인 서사나 갈등 이런 것보다 그들이 머물면서 느끼는 빛나는 순간들, 정서적인 관계, 미묘한 감정선들에 대해서 좀 생각을 많이 했었고. 영화를 보면서 이들이 어떻게 될까 불안감을 느끼면서 보기보다는 우리 가족이나 옆집 가족의 풍경을 보는 것 같은 그런 편안한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그리고 이게 다 지나가고 나면 모두들 어떤 필연적으로 겪어야 되는 순간이고 이게 괜찮을 거다 그런 위안을 주고 싶었고. 이 영화가 친구가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만든 영화입니다.

◇ 이성규> 남매의 여름밤에서는 식구들이 정말 밥을 맛있게 먹는 것같이 정감이 넘치는데. 조금 전에도 설명을 하셨지만 이렇게 연출하신 이유가 있었어요?

◆ 윤단비> 어떤 서스펜스나 긴장감을 주는 영화도 너무 좋은데 제가 살아오면서 일상적인 만남들, 이웃들이나, 부모님을 봤을 때 되게 평범한 사람들인데 사실 그 이야기들이 흥미롭다고 생각을 했거든요. 이들이 주인공인 영화를 좀 만들고 싶다. 그리고 가족의 이야기가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감이 있는 가까운 이야기였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했고. 밥 먹을 때 좀 편하게 먹었으면 좋겠는데 밥 먹는 게 중요한 어떤 건데. 영화들에서 항상 중요한 얘기를 한다거나 누가 찾아와서 밥을 뒤엎는다거나 이럴 때 너무 이 사람들이 밥을 편하게 먹었으면 좋겠는 거예요. 이 영화는 무조건 밥을 먹을 때는 편안하게, 즐겁게 먹는 장면들로 만들어야 되겠다. 밥 먹는 장면들에서 긴장감 없고 일상적인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먹는 장면들로 연출했어요.

◇ 이성규> 이 영화가 감독님께서 만드신 첫 번째 장편영화라고 들었는데. 그리고 이 안에는 결혼, 이혼, 한부모 가정, 노인문제, 유산 갈등 이런 현대 사회에서 일어나는 많은 문제들을 녹여놓으셨어요. 이런 부분에 대해서 평상시에 관심이 있었던 건가요?

◆ 윤단비> 사회적인 문제로 생각을 했다기보다 저희 가족의 연대기를 생각했을 때 다 이런 것들이 녹아있었던 것 같아요. 부모님이 이혼을 하시지 않았지만 갈등이 있었던 적도 있었고, 할머니가 저희 집에 들어와서 사셨던 적도 있었고. 항상 어렸을 때 저는 엄마가 돌아가시면 엄마가 내 옆에 없어지면 어떡하지하는 불안감이 항상 있었기 때문에 영화의 가족을 만들 때 이런 것들이 자연스럽게 녹아든 거 같아요. 영화를 만들 때는 이렇게 사회적인 문제들을 다뤄야지 이런 마음보다 우리 가족의 단면들을 보여주고 싶다. 그게 더 공감이나 여러 이야기들을 함의할 수 있겠다 그런 생각을 했었어요.

◇ 이성규> 시나리오 구상 시간이 얼마나 됐어요?

◆ 윤단비> 이 시나리오로 작업을 정하고 나서 2달 정도 걸렸는데. 그 전까지 헤매는 시간이 있었어요. 4달 정도는 이 방향으로 해봤다가 저 방향으로 해봤다가. 장편영화가 처음이니까 사건이 강렬해야 되지 않을까하는 부담감도 있었고. 이런 이야기가 영화가 될 수 있을까 이런 걱정도 있고 해서. 좀 헤매다가 집을 발견하고 다시 수정하고 2달 정도 본격적으로 작업을 했었어요.

◇ 이성규> 배경 계절을 여름으로 잡으셨더라고요. 왜 그렇게 잡으셨어요?

◆ 윤단비> 굳이 배경이 여름이어야 되겠다기보다 근데 여름이 주는 약동감이라든가 여름에 더 활동 반경이 더 넓어지잖아요. 겨울에는 다 움츠러들고 집안에서 생활을 하게 되는데 이들이 이 집에서 움츠러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텃밭의 풍요로움이나 미풍이나 그런 것들이 잘 느껴졌으면 좋겠다. 그래야 인물들이 생기가 있어지겠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 병기가 자기는 겨울이 되면 코끝이 시린 게 아니 찡해진다고 하거든요. 가족들이 고독하지 않았으면 좋겠다해서 여름에 찍었고. 제목이 여름밤인 거는 여름은 좀 후덥지근하기도 하고 좀 지치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여름보다는 여름밤이 주는 의미가 더 영화에 맞겠다 싶어서 남매의 여름밤이라고 짓게 됐어요.

◇ 이성규> 그리고 또 영화에서 주인공이 물론 중요하지만 할아버지의 양옥집이잖아요. 이런 생각은 어떻게 하셨어요?

◆ 윤단비> 제가 지금까지 항상 주택에 살았거든요. 아파트에 살아본 경험이 없어요. 제가 생각하는 할머니 집이라든가, 저희 집이라든가 이런 게 항상 목조 주택의 집이었는데. 요새는 사라져가는 추세잖아요. 할아버지의 존재처럼 이 집도 이제 곧 사라질 수 있겠다라는 향수, 그리고 기억 속에 있는 것들을 끄집어내려면 목조 주택에 옛날에는 잘 살았을 것 같은 단독주택이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을 했고. 그 집을 찾는 것도 2달 걸렸어요. 저희가 세트를 하기에도 생활감을 연출해내기가 쉽지 않잖아요. 동인천쪽에 구옥이 늘어선 골목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거기서 집을 찾았는데. 유독 집을 들어서는 순간 그 집의 개성이 너무 강하더라고요. 그래서 무조건 이 집에서 찍어야 되겠다라고 생각을 하고 승낙을 받은 다음에 그 집에서 이제 시나리오를 많이 수정을 했어요.

◇ 이성규> 주인공인 사춘기 소녀 옥주하고 감독님하고 연결고리가 있나요?

◆ 윤단비> 가족의 전체적인 이야기가 크게 닮아있는 영화는 아닌데 주인공 옥주는 그 시기에 저와 되게 닮아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 친구가 잘 살겠다라는 믿음을 갖는 것도 제가 그런 시기를 지나서 지금 어쨌든 성장을 했기 때문에. 보시는 분들이 옥주는 과연 잘 살았을까요? 좋은 어른이 됐을까요? 이런 질문을 해주시는데 되게 잘 살 것 같다라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게 저랑 너무 닮아있어서 저도 사춘기 때 벽이 되게 두꺼운 사람이었거든요. 제일 많이 투영된 캐릭터인 것 같아요.

◇ 이성규> 남매의 여름밤에서는 어느 부분을 가장 공들여서 찍으셨어요?

◆ 윤단비> 다 치열하게 찍어서 다 공들여서 찍었지만, 식사 장면 중에서도 생일파티를 하는 장면이 있는데. 거기서 동주가 말도 안 되는 영화 역사상 가장 어이없이 댄스를 추거든요. 그 장면을 찍을 때 배우가 계속 춤을 안 보여주겠다고 하는 거예요. 이게 만약에 되게 화기애애한 분위기인데 뻘줌해지면 어떻게 하지 이런 걱정을 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 사랑스럽게 연출이 돼서 그리고 또 가족의 앙상블이나, 진짜 가족 같은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그 장면이 인상 깊기도 하고 그 장면 찍을 때도 공을 많이 들였던 것 같아요.

◇ 이성규> 감독이 되겠다라는 생각은 언제 하셨어요?

◆ 윤단비> 오히려 대학교 와서 나도 감독이 될 수 있겠다 이런 생각을 했었거든요. 연극영화과를 진학을 하긴 했는데 그전까지는 영화가 너무 좋다. 왜냐하면 제가 지방에서 자라서 영화에서 보면 넓은 세계들이 펼쳐지고 이러는데 그런 경험을 해보고 싶은 거예요. 그런 경험들을 영화로 할 수 있는 게 너무 좋고 그래서 무턱대고 연극영화과에 진학을 했는데. 저희 아버지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특히나 아빠가 봉준호, 박찬호가 영화를 하는 거지, 너 같은 평범한 사람이 어떻게 영화를 하냐 이런 얘기를 하셨는데. 저도 오기가 생겨서 학교 진학한 다음에 영화들을 만들면서 조금씩 배우면서 영화를 만들고 싶고 내가 어렸을 때 봤던 영화들에서 얻은 감정들을 함께 공유하고 싶다 이런 생각을 했었어요.

◇ 이성규> 나한테는 지키고 싶은 원칙이 있어요?

◆ 윤단비> 일단 제가 영화를 만드는 것 자체가 권위적이거나 그런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걸로 해서 다른 사람한테 상처를 주는, 상처를 건드리는 일 있잖아요. 특히나 배우나 스탭들에게도 마찬가지고 연기를 연출할 때 배우에게 어렸을 때 기억이나 상처나 이런 거를 끄집어내면서 그런 거를 건드리지 말아야겠다하는 원칙과 왜냐하면 촬영을 하면서 이 사람이 상처를 받았을 때 사람의 삶이 또 바뀔 수가 있잖아요. 영화 안에서는 피해 서사를 그릴 때 주의해야겠다. 인물의 설정을 위해서 누군가가 살해를 당하는 것을 이런 거를 피하고 싶다. 의미 있는 게 아니라면 피하고 싶다 이런 생각이 있어요.

◇ 이성규> 어떤 글에 보니까 여성 감독 이렇게 썼어요. 이런 얘기를 들으면 어떠세요?

◆ 윤단비> 사실 여성 감독이라는 게 많이 등장은 했지만 주류가 아니라는 생각이 아직도 있는 것 같아요. 어떤 글을 봤는데 옛날에는 감독하면 어떤 중년의 아저씨 이미지를 생각했다면 요새는 그런 이미지들이 자신도 많이 변하고 있다라고 얘기를 하더라고요. 조금씩 흐름이 바뀌고 있구나 이게 조금 더 확장되면 앞에 여성 감독이 아니라 그냥 감독으로 지칭될 수 있다 생각도 들고. 이거는 문화계 전반이나 사회 전반에서 조금씩 변화들이 생기고 있는 것 같아서 그 흐름 안에 있다라는 것만으로도 의의가 있어요.

◇ 이성규> 다음에는 어떤 작품을 구상하고 계세요?

◆ 윤단비> 조금 판타지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그런 막연한 생각을 갖고 있어요. 아니면 연애이야기라든가.

◇ 이성규> 특히 어떤 분들이 많이 봤으면 좋겠습니까?

◆ 윤단비> 원래는 어린 친구들이 봤으면 좋겠다. 옥주 나이 때 청소년들이 보면 위안이 되겠다 생각을 했는데. 오히려 부모님이 보시고 향수에 많이 젖으시더라고요. 중년분들이 보셔도 본인의 어렸을 때 기억이나 이런 것들을 되짚어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아요.

◇ 이성규> 좋은 작품 더 나오기를 바라겠습니다.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영화 남매의 여름밤을 연출한 윤단비 감독입니다. 감사합니다.

◆ 윤단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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