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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한국 대중음악사의 거장' 정태춘
Posted : 2019-04-02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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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행 : 이광연 앵커
■ 출연 : 정태춘 / 가수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앵커]
한국 사회의 모순과 저항을 시와 노래로 담아냈던 정태춘 씨. 아내 박은옥 씨와 함께 노래한 지 벌써 40년이 흘렀다고 합니다. 앨범과 출판 등 다양한 콘텐츠로 지난날의 의미를 짚어보는 시간도 마련했다고 하는데요. YTN 스튜디오에 정태춘 씨 나오셨습니다. 반갑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앞서 저희 영상에 한국의 밥 딜런 정태춘 이렇게 나가니까 YTN 사내에 있던 어떤 팬이 아니다, 밥 딜런이 미국의 정태춘이다 이렇게 말을 하더라고요. 그런 표현 어떻게 생각하세요?

[인터뷰]
별로 동의 안 해요.

[앵커]
어떤 면에서 동의 안 하세요?

[인터뷰]
우리 서로 다르죠. 다르고 또 나는 그렇게 유명한 사람도 아니고, 다르죠.

[앵커]
국내에서는 대한민국에서는 훨씬 더 이름도 알려지셨고 더 의미 있는 가수로 아마 팬들은 기억할 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벌써 40년 되셨어요. 저희 배경으로 노래라는 마침 단어가 눈에 띄는데 노래하신 지 벌써 40년 되셨다고 들었습니다. 어떠세요, 소감이?

[인터뷰]
저는 사실 10여 년 전부터 노래 창작을 접고 있었기 때문에 아주 힘차게 달려오다가 지금 40년을 맞은 것은 아니고요. 주춤주춤하면서 여기까지 와서 특별히 깊은 소감이나 이런 것들은 없어요.

[앵커]
그냥 똑같다, 39년이나 29년이나 40년이나? 그런데 제가 듣기로 공식적인 기록으로 하면 정태춘 씨 같은 경우는 41년이고 아내이신 박은옥 씨 기준으로 40년 됐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이걸 보면서 이런 기준도 아내에 주로 맞춰주시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인터뷰]
제가 30주년 때 기념 콘서트를 제안받았는데 제가 사양을 했고요. 그 다음 해에 박은옥 씨 30주년 때에 기념 공연을 했는데 이름이 박은옥 30주년이 아니고 정태춘-박은옥 30주년 이렇게 됐었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그냥 그 10년 뒤라서 그냥 편안하게 서로 정태춘-박은옥 40주년 이렇게 얘기하고 있죠.

[앵커]
소감은 따로 없으시다고 하셨지만 그래도 팬들이 바라보는 40년은 의미가 있는 해인데 어떻게 준비하고 계세요? 다양한 계획들을 갖고 계시더라고요.

[인터뷰]
주위에 우리를 의미 있다고 생각되는 부분들을 끌어내보자라고 그렇게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이 모였어요. 음악만이 아니고 다른 장르에서도 그렇고. 그래서 우리가 가지는 대중음악 또는 대중문화사 속에서의 의미가 무엇일까. 저 사람들이 뭘 했나. 그런 것들을 드러내보이는 프로그램으로 40프로젝트라는 걸 준비를 해서 지금 진행하고 있고. 거기에 콘서트가 우선적으로 전국 순회공연으로 들어가고요.

그리고 기념앨범 그다음에 시집을 포함한 출판이 있고 그다음에 제가 노래를 한동안 만들다 접고 나서 최근 10여 년 제가 몰두했던 글쓰기, 붓으로 쓰는 글. 그리고 미술인들이 오십여 분이 40주년을 축하하는 출품을 해 주셔서 그분들과 함께하는 전시. 이런 것들이 준비되고 있죠, 진행되고 있고.

[앵커]
40년을 어쨌든 돌아보셨을 텐데 이런 걸 준비하시면서 지난 시간을 돌아보셨을 때 어떻게 수렴이 되었나요, 정태춘 씨의 노래 인생은?

[인터뷰]
많은 말을 했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요. 많은 말을 했다...

[앵커]
많은 말을 했다?

[인터뷰]
네, 40년 동안 많은 말을 했고 그리고 다양한 표현들을 했구나. 폭이 좀 넓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요. 그리고 나의 변화, 내 생각의 변화와 내 노래의 변화들이 부끄럽지 않았다는 생각도 들고요.

[앵커]
어떤 말이 가장 내가 생각해도 그 말은 참 속시원했다라고 해야 될까요?

[인터뷰]
글쎄, 특별한 말이라기보다는 나는 나의 존재 자체에 관해서 관심이 있을 때에는 그것에 몰두해서 노래를 만들었던 것 같고. 그다음에 사회적인 관심, 그리고 세상의 변화와 또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떤 작품으로 어떻게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지 하는 생각의 변화들 속에서 나름대로 제 생각에 충실하게 작품 활동을 하고. 그리고 얼마간의 사회적 실천도 함께 이루어졌다고 생각을 하죠.

[앵커]
그래서 실천적인 예술가 이렇게 이름이 붙어 있으신데. 10년 넘게 음악 활동을, 앞서 제가 대기시간 중에 중단했다는 표현을 썼더니 중단한 건 아니었다고, 창작 활동을 이어오셨다고 하는데 제 기억으로는 2016년에 잠시 또 촛불집회에서 모습을 뵀던 것 같아요. 어떻습니까? 그때는 공식적으로 다시 요즘 말로 컴백하신 건 아니었고...

[인터뷰]
아니었죠. 그냥 일회성으로 사람들과 만나자, 광화문에서 잠깐이라도, 그냥 한 곡만 가지고 사람들과 함께하자 하는 그런 정도였죠.

[앵커]
그때 한 곡이?

[인터뷰]
92년 장마, 종로에서라는 노래였고요. 그리고 활동은 초청 공연들에는 쭉 갔었고요. 우리가 적극적으로 앨범을 만든다든지 또 콘서트를 준비해서 전국을 돈다든지 하는 것들을 쫓고 있었죠.

[앵커]
말씀 나온 김에 사실 그 노래는 90년대 초반에 나온 노래인데 가사를 다시 돌아봐도 2016년 당시 상황과 맞물리면서 화제가 되지 않았습니까? 그때 3년이 지난 시간이긴 합니다마는 그때 기억을 떠올렸을 때 무대에 올랐을 때 사실은 80년대 후반, 90년대 초반을 온몸으로 겪으신 예술가시기도 하지만 우리 시대의 어떤 기성세대로서 어떤 생각 드셨어요, 당시에?

[인터뷰]
90년대 초반에 시민들이 생각했던 꿈이 있었고요, 우리 사회에 관한 꿈. 그리고 지금 말씀하신 촛불집회 당시에 꿈들이 있었고. 그런 거 하면 그 밑바닥에는 어떤 불만이나 또는 분노나 이런 것들이 있었는데. 그 변화가 얼마나 있었던 것이냐. 90년대와 2000년대 10년 이상 지난 뒤에. 그랬을 때 저는 변화가 그렇게 많지 않다고 보는 사람이죠. 그래서 광화문의 촛불집회에 올라가서도 어떤 한 정부, 어떤 한 권력자의 문제에 관한 어떤 뭐랄까, 저항이나 이런 것들이 아니고 우리 사회가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가 담겨진 그런 촛불이었다고 생각하고 그 한 곡만 가지고 가서 노래를 불렀죠.

[앵커]
그때를 포함해서 젊은 세대들이 듣는 그 노래, 혹시 반응에 대해서 들으신 적이 있으세요?

[인터뷰]
제 노래들을... 세월이 지나도...

[앵커]
최근에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리메이크 되기도 했고요.

[인터뷰]
세월이 지나도 그 시의성이 여전하다는 그런 쪽으로 평가들을 해 주시죠.

[앵커] 시의성이 여전하다. 앞서 여러 가지 말을 40년 동안 했더라, 이런 말씀을 하셨는데 이번 새 앨범에는 어떤 말을 닫으셨습니까?

[인터뷰]
아무 말도 안 담으려고 했는데요. 그냥 노래.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기념앨범 정도로 생각을 했는데 거기에 한 곡 정도가, 사람들이라는 노래에서 다시 내 삶의 주변에서 보여지는 어떤 풍경들, 그런 풍경들을 가사로 만들면서 결국은 또 사회적인 문제의식이랄까, 이런 것들이 다시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앵커]
이번 앨범을 통해서도?

[인터뷰]
한 곡만 그래요

[앵커]
어떤 노래인지 앨범을 통해서 직접 확인을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또 정태춘 씨 하면 음반 사전 심의 철퇴와 맞물려서 많이 기억들 하시는데 어떻습니까? 그때 당시의 음악계나 문화의 화두나 그런 것들이 표현의 자유였다면 지금 또 새 앨범을 내셨잖아요. 2019년에. 어떠세요? 많이 바뀌었다고 보세요?

[인터뷰]
그때는 군부의 권력의 연장이었고요. 그래서 그 당시에는 법률로써 표현의 자유를 통제를 하고 했었다면 지금은 군부 대신에 어떤 시장이 전체를 장악하고 있죠. 그래서 시장 권력이라고 할 수 있는 그런 것의 눈치를 보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문화 상황이 됐어요, 내 생각에는. 그래서 시장에서의 이윤을 창출하지 못하는 것은 세상에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 것처럼 돼버린 상황들. 그래서 제도로써의 검열은 철폐가 됐지만 문화예술 쪽의 상황은 그다지 좋아졌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앵커]
그렇군요. 지금 마침 자막에 대중성과 멀어져서 소통 방식을 바꿨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어떤 식으로 멀어지셨고 또 어떻게 해서 방식을 바꾸게 될 계획이신지요?

[인터뷰]
소통 방식은 이제 노래를 통해서 이야기하던 방식은 지금 안 하고 있으니까. 글로 조근조근 글로 써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는데. 그냥 그런 정도는 하고 싶어요, 얘기를.

[앵커]
그 정도로. 알겠습니다. 앞서 음악과 미술, 영화까지 장르를 넘나들면서 40년을 기념하신다고 하셨는데 꼭 이거는 대중에게 알리고 싶다, 이런 부분이 있으세요?

[인터뷰]
근래 한 10여 년 몰두했던 붓글, 저는 그게 서예도 아니고 캘리그래피도 아니고 나의 말을 노래에서 풀어냈듯이 나의 말을 풀어내는 방식이라서 그게 나의 새로운 이야기 그릇이라서 그 전시가 지금 가장 제 관심사입니다.

[앵커]
알겠습니다. 오늘 사실 혼자 나오셔서 박은옥 씨 얘기는 많이 못 드렸는데 끝으로 우리가 흔히 현실 속 부부들은 의리로 산다, 이렇게 표현을 하잖아요. 정태춘 선생님에게 박은옥 씨는 당연히 반려자일 것이고 사실 동지애도 있으실 것 같고. 어떤 의미인가요?

[인터뷰]
반려자, 음악적인 반려자이기도 하고요. 또 음악적으로 저한테 상당히 영향력 있는 사람이기도 하고. 그다음에는 저를 남편으로서만이 아니고 음악하는 사람으로서 저를 또 케어해 주는 사람이기도 하죠. 고마운 분입니다.

[앵커]
네, 알겠습니다. 박은옥 씨에 대한 남편으로서 또 동료 가수로서의 평까지 듣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도 말씀하신 대로 젊은 세대하고도 오랜 기간 노래로써 소통하는 가수 정태춘 씨를 기대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나와주셔서 대단히 고맙습니다.

[인터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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