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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민족 최대의 명절 설을 앞두고 한복 꺼내 입으시는 분들 많을 텐데요. 한복을 입을 때마다 우리 전통 옷 참 아름답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은 한복 세계화를 위해 앞장서는 분을 모셨습니다. '바람의 옷'이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는데요. 한복 디자이너 이영희 선생님입니다. 어서 오십시오.
[인터뷰]
안녕하세요.
[앵커]
저희도 지금 이영희 선생님께서 직접 디자인 하신 옷을 입었는데 어떻게 잘 어울립니까?
[인터뷰]
색상이 아주 멋있게 보입니다.
[앵커]
무슨 색깔이라고 하는 겁니까?
[인터뷰]
자주색인데요. 대추색하고 가깝죠, 자주가 여러 가지 색깔이 있기 때문에. [앵커] 앵커들이 한복을 많이 입었는데 어떻게 잘 입었나요?
[인터뷰]
잘 입으셨는데요. 이런 걸 두르는 게, 여기에 꼽아야죠.
[앵커]
저희 의상 도와주시는 분도 엄청 긴장하시더라고요.
[인터뷰]
여기에 꼽아야 되는데 조금 그게 불만입니다.
[앵커]
저희 이렇게 색을 서로 맞춰주셨는데 어떻게 해 주신 거예요?
[인터뷰]
자주색과 노란, 먹자주 치마 이렇게 맞췄습니다.
[앵커]
왠지 평소보다 다소곳해진 것 같고.
[인터뷰]
이런 노란저고리를 입을 때 고름이 빨간 고름이 달려 있으면 이렇게 좀 연한 자주가 달려 있어요, 이런 자주가 여기에 달려 있으면 노란색이 기를 못 펴요. 자주에 눌려버려서요, 엄청 센 색이거든요.
[앵커]
한복을 가장 예쁘고 맵시 있게 입는 방법 한 가지만 설명해 주신다면요?
[인터뷰]
색깔에 아주 신경쓰셔야 돼요.
고름 하나가 어떤 색을 달았느냐에 따라서 자기의 격이 땅에 떨어질 수도 있고 천상의 천사처럼 보일 때도 있거든요. 여자분들은 고름 색깔, 치마와 저고리의 조화. 제 것 보세요, 저는요, 고운색이 맞지 않아요.
빨간 저고리니 먹자 치마니, 무슨 보라 짙은 치마, 이런 게 잘 안 맞고 조금 눌러주는 이런 색, 무거운 색이 잘 맞거든요.
[앵커]
선생님 옷을 바람의 옷이라고 부르지 않습니까? 왜 바람의 옷이라고 불리는 걸까요?
[인터뷰]
제가 지은 것도 아니고 파리에서 처음 제가 한복을 가지고 거기에 나갔을 때 모든 사람들이 너무 아름다워서요. 하여튼 표현을 못 합니다. 그래서 어떤 기자분이 르몽드 기자가 그때 바람의 옷이라고 하면 너무나 어울리겠다고요.
바람이 불 때면 치마자락이 날리고, 고름이 날리고 너무나 아름다우면서 세계에서 다 당신들의 나라 옷을 좋아할 것이다, 바람을 타고 날라다니겠다, 이런 의미랍니다. 그래서 그때 굉장히 좋았었죠.
[앵커]
저쪽으로 앉아서 계속 해 볼까요.
[앵커]
바람의 옷에 관해서 더 얘기를 깊이 있게 나누어보면 좋을 것 같아요. 바람의 옷이라는 찬사를 받은 한복디자이너 이영희 선생님을 모셨는데요.
이영희 선생님은 오늘부터 설 연휴가 시작이 됐는데요. 어떻습니까, 배우 전지현 씨의 시할머니죠. 전지현 씨가 세배하러 오시는 건가요?
[인터뷰]
우리는 양력에 다 새배는 했습니다.
[앵커]
양력에.
[인터뷰]
신정이요.
[앵커]
세뱃돈은 오히려 배우가 드려야 되는 것인가요? 아니면...
[인터뷰]
내가 좋아하는 거, 자기가 필요한 거, 내가 주고 싶은 게 있으면 그걸 주죠.
[앵커]
뭐를 주세요?
[인터뷰]
돈을 주죠. 그거는 비밀입니다.
[앵커]
전지현 씨야 어떤 옷을 입어도 다 잘 소화하시겠지만 한복 잘 어울리시나요?
[인터뷰]
한복이 참 어울리더라고요. 드레스도 어울리지만 한복도 굉장히 아름다웠어요.
[앵커]
전지현 씨 기분이 좋으시겠네요, 시할머니께 이런 칭찬 받으셨는데 연휴에 어떤 계획을 갖고 계세요, 바쁘실 것 같아요.
[인터뷰]
연휴가 굉장히 짧아요, 5일 동안. 그래서 연휴 계획보다도 뮤지컬 가고 계획이 있기는 있습니다마는 금년 9월달에 제가 40주년, 한복집을 오픈한 지, 여러 가지 옛옷도 찾아야 되고, 디자인도 해야 되고, 40주년을 위한 한복 옷도 한 벌 만들어야 되고요.
무슨 그런 게 많아서 다른 계획이 별로 없어요. 일을 하는 게 계획이에요.
[앵커]
특별기획전을 계획하고 계시는군요. 선생님 이력 앞에는 최초라는 기록들이 많습니다.
1993년에 파리에서 한복을 처음 선보였고, 2000년에 뉴욕 카네기홀에서 또 최초로 한복을 선보이셨는데요. 이렇게 한복 패션쇼를 많이 하셨는데 최초를 기록할 때 느낌이 남다르시겠어요?
[인터뷰]
그런데 최초를 기록하려고 제가 기를 써서 하는 게 아니고 자기의 꿈이 있고, 또 한복 발전을 위해서 일하고 싶은 게 있잖아요. 그때 계획을 세워서 하다 보면 제가 처음 했더라고요, 하나같이 파리며 독도며 카네기홀 같은 데요.
다 평양에서도 쇼를 했죠. 독도는 3번 가서 2번 성공했어요. 1번은 실패했고요. 그래서 제가 계획을 하고 하다 보면 그 일을 저는 저와의 약속을 꼭 지키거든요.
[앵커]
화면에 나오는 게 독도 패션쇼 화면인 것 같은데요.
[앵커]
설명 좀 해 주세요. 실패라고 하셨는데 어떤 면에서 실패라는 말씀이죠?
[인터뷰]
울릉도까지 가서 못 들어갔어요.
[앵커]
이때는 성공하신 거죠?
[인터뷰]
이때는 울릉도라서 못 했어요. 첫 번째는 실패했어요. 그래도 울릉도에서라도 쇼를 하자. 또 관광객도 많고 하니까 하자, 이랬더니 그다음에 두 번째 성공, 세 번째도 성공을 하고요.
한 번 목표를 세우면 나와 약속을 해서 목표를 세우기 때문에요. 그게 이제 달성을 하고 성취를 하면 제가 최초가 되더라고요. 그걸 일부러 최초를 하려고 애를 쓴 건 아니지만.
[앵커]
평양에서도 쇼를 하셨는데요. 평양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궁금한데요.
[인터뷰]
서로 그냥 굉장히 예술로써 마음과 마음이 통했죠. 서로 울고 굉장히 오랜만에 본 친구처럼요.
[앵커]
좀 다르다고 하던가요? 우리 한복과 평양 사람들이 보는 한복이 다른가요?
[인터뷰]
평양 사람들은 아직까지 디자인에 대한 개념이 없죠. 옛날에 입던 옷을 그냥.
[앵커]
섬에서 패션쇼를 하니까 정말 바람의 옷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인터뷰]
딱 그 색깔이며 모든 게 잘 맞았어요.
[앵커]
작품을 직접 지금도 디자인을 하고 계십니까?
[인터뷰]
40주년입니다, 금년에.
[앵커]
40년 되셨는데.
[인터뷰]
9월 15일쯤이요.
[앵커]
그 작품을 만드실 때 주로 어디에서 이렇게 영감을 얻으십니까?
[인터뷰]
영감은 전통에서 얻어요, 저는. 옛날 옷들 또 노리개, 비녀, 옛날 또 어머님들이 하던 옷, 또 선비들이 입던 옷을 보면 거기에서 어떤 아이디어를 얻게 되죠. 색감 또 바느질 기법 또 거기에 나오는 문양이요. 한 10가지는 더 얻을 겁니다.
[앵커]
우리나라 사람들이 기모나나 아오자이를 볼 때 느끼는 신비함이 있는데 오히려 외국 사람들이 또 한복을 봤을 때 어떤 점을 특징적으로 잡던가요?
[인터뷰]
이번에 슬로바키아에 가서 쇼를 할 때도 4개 방송국, 또 예술가들이 화가들이 왔어요.
[앵커]
지금 나오는 화면인 것 같은데요.
[인터뷰]
작가들이 많이 오고 했는데 다 이 저고리에 짧은 기장의 옷, 또 치마는 우아하면서도 길고 색상이며 소재가 세계에서는 없을 거라는 이런 말을 하면서 제가 파리에 처음 나갔을 때 그 말과 똑같더라고요.
그래서 거기에 갈 때 힘들게 갔는데 잘 갔다, 내가 잘 왔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앵커]
외국인들이 좋아하는 색감이 저희랑 다른가요?
[인터뷰]
제가 하는 색은 다 좋다고 그래요. 외국 사람들이 좋아하고 나쁜 게 없고요. 한복에 도취가 돼서 너무 인터뷰가 많고, 작가들이 자기가 아이디어를 많이 얻었다는 이런 말을 굉장히 많이 했어요.
[앵커]
어떤 실용적인 측면에서 보면요. 물론 한복은 우리 옷이기 때문에 예프고 합니다마는 조금 어떤 측면에서는 불편하다, 이런 의견도 있을 것 같아요?
[인터뷰]
그런데요, 한복은 너무나 어려운 옷이에요. 쉬운 옷이 아닙니다. 한복은 몇 가지로 분산돼야 돼요.
일할 때 입는 작업복 또 파티에 나가는 옷. 또 이렇게 평상시에 입는 옷으로 몇 가지로 구분해서 해야지 한 가지 옷으로 해서 일할 때도 입고 도자기 구울 때도 입고, 또 외국에 갈 때도 입고 파티에 나갈 때도 입고 하는 그런 옷이 아니에요. 한복은 너무나 어려우면서도 예술적이면서도 이해하기 어렵고 세계에서 이런 옷이 없답니다.
그래서 자기 분야, 자기가 어떤 길을 나아가겠다고 하면 한 가지 길로 나가야 될 것 같아요. 여러 가지는 다 할 수 없는 것 같아요. 왕실 옷이 있지 않습니까, 아주 어려운. 그런데 제가 왜 우리나라에서는 옷을 여러 가지, 저렇게 옷이 좋은 옷도 있고 별로 안 좋은 옷도 있나 했더니 100가지가 넘어요, 옷 종류가. 여자, 남자를 합해서요. 한 200가지가 된다고 합니다.
석 박사님이 살아계실 때 저에게 적어준 게 있는데 100 몇 가지를 적어주셨어요. 옷 이름이요. 그러니까 이 옷에서 아이디어를 얻고요. 옷 종류가 그렇게 이상한 옷들이 많이 나오는 거예요.
[앵커]
2005년에 부산 APEC이 열렸었는데 그때 21개 나라 정상들 옷을 직접 입히지 않았습니까? 그때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두루마기를 입지 않겠다고 했다고 하는데 불편해서 그랬나요?
[인터뷰]
그분이 그 전 해 판초를 남미에서 누가 해 주었는데 걸치는 거 있잖아요. 그게 너무 마음에 안 들었대요. 색도 이상하고 그래서 전통 의상은 안 입겠다는 결론을 내렸지, 두루마기를 안 입는다는 소리는 안 했어요. 그런데 와서 치수도 제일 나중에 주셨어요. 그래서 내가 힘들었어요.
[앵커]
지금 나오고 계시거든요.
[인터뷰]
그리고 제일 마음에 들고 칭찬을 무척 해 주셨어요. 디자이너하고 만나고 싶다고 해서 저하고 만나기도 하고요. 자기가 직접 들고 갔어요, 너무 마음에 든다고요.
[앵커]
지금 정상들마다 색깔이 다르거든요. 그거는 선생님께서 직접 정해주신 거예요?
[인터뷰]
내가 7가지 색을 그 나라 대사관을 통해서 보내서 자기가 선호하는 색을 주셨어요.
[앵커]
푸른 계열을 선택하셨네요.
[인터뷰]
서양에서는 푸른색이 많이 나왔고, 동양은 황금색이 많이 나갔어요. 그래서 자기가 원하는 색인데 7가지 색이라서 내가 무척 걱정을 했는데요. 우리 한복의 미는 자연 속에서 더 아름답거든요.
그래서 바다의 물결색, 또 소나무의 색, 기왓장의 색 이런 걸 제가 7가지 색을 정했어요. 그래서 자연 속에, 저기가 해변가잖아요. 저기에는 파란색이 있고요.
고이즈미 전 총리는 기왓장 색이요. 저기에 기와집이 조그마한 게 있었어요. 그래서 푸른색은 또 소나무의 색깔도 있었어요. 그 색이 자연 속에서 더 아름다워요. 한복은요. 이런 데서 만날 때보다요.
한복을 입고 자연 속에 들어가면, 숲속이나 대나무 속에 들어가면 더 아름답고 빛을 내죠. 한복이. 자연미요, 색의 조화, 색깔의 미, 자연미, 인격미. 우리 한복은 정말 특별한 옷입니다. 그래서 한복을 입으실 때 아무렇게나 요새 젊은 사람들 옷을 한다면 어떤 분이 청바지 다 찢어진 데다가 저고리만 이상하게 길게 입었다고 그게 한복이 아니거든요. 다 격에 맞게 입어야 되니까.
[앵커]
한복을 특별한 이런 명절 때만 입는 그런 경향이 있지 않습니까? 어떻게 보시나요?
많은 분들이 한복을 더 많이 입으려면 어떻게 해야 된다고 보십니까.
[인터뷰]
그런데 많이 입게 하려면요. 지금 다 큰 사람들을, 대학생, 결혼할 사람들한테 한복을 입어라, 입어라 해도 입지 않아요. 그게 몸에 배지도 않고 입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은요.
그런데 조기계획을 하는 거 있죠. 저는 이 시간에 이런 말을 드리고 싶어요. 부모님들 과시로 돌 때 해요. 그 아기가 자라서 자기가 돌 때 옷을 입었던 게 한복이라는 걸 알 수가 없어요.
저는 유치원 때 또 초등학교 때 자기 생일 때 자기가 걸어다니면서 이해하고 색깔을 알 때, 그때 한복을 한두 벌 해 놨다가 입히면 그것이 커서 결혼할 때도 입는 건지 알고 명절 때도 입어야 되는 그 개념이 제일 좋지. 다 큰 사람 한복 안 입는다고 꾸중을 해서 아무 소용이 없어요.
우리는 지금도 늦지 않았거든요. 초등학교 때, 유치원 때, 생일 때, 한복을 입히세요. 싼 옷도 좋고, 예쁜옷도 좋고 다 좋습니다.
[앵커]
기념일 때마다 한복을 꺼내서.
[인터뷰]
저는 제가 지금 한복을 정말 죽도록 사랑하는 이유가 어머니께서 항상 한복을 입혀주셨어요. 학교 갔다 오면 딱 갈아입을 옷을 걸어놨거든요. 그러면 그 옷을 입고 그 정신이에요.
어머님의 정신으로 제가 지금 한복을 사랑하게 됐지요. 책을 읽고요. 한복 대학이 없습니다. 지금, 의상학과만 있지 의상학과에서 한복대학이 없어요. 그런데 우리가 한복 잘 입지 않는다고 야단을 칠 수가 없어요.
조기교육이 없어요. 그래서 이럴 때 어떻게 해야 되나 이런 생각을 많이 해도 안 입어요, 요즘은.
[앵커]
다음에 한 번 더 모셔서 고민을 들어봐야 될 것 같아요. 대학에 한복학과가 없군요.
[인터뷰]
의상학과에서 한두 시간, 수업이 일주일에 한 번도 없는 것 같아요. 제가 겸임교수를 많이 했잖아요. 그래서 이렇게 가르쳐줬죠, 제가.
[앵커]
올해 40주년을 맞으셨다고 하는데 행사 잘하시고요. 건강하시고요.
[인터뷰]
그때 내가 어떤 걸 할지 계속 고민을 하는데 우리 한복이 이렇게 아름답다, 우리 한복은 잘 입으면 천사인데 못 입으면 밑에 천박한 사람이 돼요. 격조가 있어요, 한복은. 격이 있어야 되고, 그 아름다움을 과시하면서 한복의 발전사를 쭉 보여주고 싶고 또 보는 사람으로 인해서 한복의 감동을 주고 싶어요. 어떻게 할까 고민입니다.
[앵커]
그때 한번 더 모시겠습니다. 성공적으로 잘하시기뱌라겠습니다.
[인터뷰]
저는 한복을 너무 사랑하니까 어떻게 해서 아이디어를 얻느냐, 전통에서 얻고 있고요. 옛날 옷을 다 봐야 돼요. 그걸 공부하기 위해서.
[앵커]
한복 디자이너 이영희 선생님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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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최대의 명절 설을 앞두고 한복 꺼내 입으시는 분들 많을 텐데요. 한복을 입을 때마다 우리 전통 옷 참 아름답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은 한복 세계화를 위해 앞장서는 분을 모셨습니다. '바람의 옷'이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는데요. 한복 디자이너 이영희 선생님입니다. 어서 오십시오.
[인터뷰]
안녕하세요.
[앵커]
저희도 지금 이영희 선생님께서 직접 디자인 하신 옷을 입었는데 어떻게 잘 어울립니까?
[인터뷰]
색상이 아주 멋있게 보입니다.
[앵커]
무슨 색깔이라고 하는 겁니까?
[인터뷰]
자주색인데요. 대추색하고 가깝죠, 자주가 여러 가지 색깔이 있기 때문에. [앵커] 앵커들이 한복을 많이 입었는데 어떻게 잘 입었나요?
[인터뷰]
잘 입으셨는데요. 이런 걸 두르는 게, 여기에 꼽아야죠.
[앵커]
저희 의상 도와주시는 분도 엄청 긴장하시더라고요.
[인터뷰]
여기에 꼽아야 되는데 조금 그게 불만입니다.
[앵커]
저희 이렇게 색을 서로 맞춰주셨는데 어떻게 해 주신 거예요?
[인터뷰]
자주색과 노란, 먹자주 치마 이렇게 맞췄습니다.
[앵커]
왠지 평소보다 다소곳해진 것 같고.
[인터뷰]
이런 노란저고리를 입을 때 고름이 빨간 고름이 달려 있으면 이렇게 좀 연한 자주가 달려 있어요, 이런 자주가 여기에 달려 있으면 노란색이 기를 못 펴요. 자주에 눌려버려서요, 엄청 센 색이거든요.
[앵커]
한복을 가장 예쁘고 맵시 있게 입는 방법 한 가지만 설명해 주신다면요?
[인터뷰]
색깔에 아주 신경쓰셔야 돼요.
고름 하나가 어떤 색을 달았느냐에 따라서 자기의 격이 땅에 떨어질 수도 있고 천상의 천사처럼 보일 때도 있거든요. 여자분들은 고름 색깔, 치마와 저고리의 조화. 제 것 보세요, 저는요, 고운색이 맞지 않아요.
빨간 저고리니 먹자 치마니, 무슨 보라 짙은 치마, 이런 게 잘 안 맞고 조금 눌러주는 이런 색, 무거운 색이 잘 맞거든요.
[앵커]
선생님 옷을 바람의 옷이라고 부르지 않습니까? 왜 바람의 옷이라고 불리는 걸까요?
[인터뷰]
제가 지은 것도 아니고 파리에서 처음 제가 한복을 가지고 거기에 나갔을 때 모든 사람들이 너무 아름다워서요. 하여튼 표현을 못 합니다. 그래서 어떤 기자분이 르몽드 기자가 그때 바람의 옷이라고 하면 너무나 어울리겠다고요.
바람이 불 때면 치마자락이 날리고, 고름이 날리고 너무나 아름다우면서 세계에서 다 당신들의 나라 옷을 좋아할 것이다, 바람을 타고 날라다니겠다, 이런 의미랍니다. 그래서 그때 굉장히 좋았었죠.
[앵커]
저쪽으로 앉아서 계속 해 볼까요.
[앵커]
바람의 옷에 관해서 더 얘기를 깊이 있게 나누어보면 좋을 것 같아요. 바람의 옷이라는 찬사를 받은 한복디자이너 이영희 선생님을 모셨는데요.
이영희 선생님은 오늘부터 설 연휴가 시작이 됐는데요. 어떻습니까, 배우 전지현 씨의 시할머니죠. 전지현 씨가 세배하러 오시는 건가요?
[인터뷰]
우리는 양력에 다 새배는 했습니다.
[앵커]
양력에.
[인터뷰]
신정이요.
[앵커]
세뱃돈은 오히려 배우가 드려야 되는 것인가요? 아니면...
[인터뷰]
내가 좋아하는 거, 자기가 필요한 거, 내가 주고 싶은 게 있으면 그걸 주죠.
[앵커]
뭐를 주세요?
[인터뷰]
돈을 주죠. 그거는 비밀입니다.
[앵커]
전지현 씨야 어떤 옷을 입어도 다 잘 소화하시겠지만 한복 잘 어울리시나요?
[인터뷰]
한복이 참 어울리더라고요. 드레스도 어울리지만 한복도 굉장히 아름다웠어요.
[앵커]
전지현 씨 기분이 좋으시겠네요, 시할머니께 이런 칭찬 받으셨는데 연휴에 어떤 계획을 갖고 계세요, 바쁘실 것 같아요.
[인터뷰]
연휴가 굉장히 짧아요, 5일 동안. 그래서 연휴 계획보다도 뮤지컬 가고 계획이 있기는 있습니다마는 금년 9월달에 제가 40주년, 한복집을 오픈한 지, 여러 가지 옛옷도 찾아야 되고, 디자인도 해야 되고, 40주년을 위한 한복 옷도 한 벌 만들어야 되고요.
무슨 그런 게 많아서 다른 계획이 별로 없어요. 일을 하는 게 계획이에요.
[앵커]
특별기획전을 계획하고 계시는군요. 선생님 이력 앞에는 최초라는 기록들이 많습니다.
1993년에 파리에서 한복을 처음 선보였고, 2000년에 뉴욕 카네기홀에서 또 최초로 한복을 선보이셨는데요. 이렇게 한복 패션쇼를 많이 하셨는데 최초를 기록할 때 느낌이 남다르시겠어요?
[인터뷰]
그런데 최초를 기록하려고 제가 기를 써서 하는 게 아니고 자기의 꿈이 있고, 또 한복 발전을 위해서 일하고 싶은 게 있잖아요. 그때 계획을 세워서 하다 보면 제가 처음 했더라고요, 하나같이 파리며 독도며 카네기홀 같은 데요.
다 평양에서도 쇼를 했죠. 독도는 3번 가서 2번 성공했어요. 1번은 실패했고요. 그래서 제가 계획을 하고 하다 보면 그 일을 저는 저와의 약속을 꼭 지키거든요.
[앵커]
화면에 나오는 게 독도 패션쇼 화면인 것 같은데요.
[앵커]
설명 좀 해 주세요. 실패라고 하셨는데 어떤 면에서 실패라는 말씀이죠?
[인터뷰]
울릉도까지 가서 못 들어갔어요.
[앵커]
이때는 성공하신 거죠?
[인터뷰]
이때는 울릉도라서 못 했어요. 첫 번째는 실패했어요. 그래도 울릉도에서라도 쇼를 하자. 또 관광객도 많고 하니까 하자, 이랬더니 그다음에 두 번째 성공, 세 번째도 성공을 하고요.
한 번 목표를 세우면 나와 약속을 해서 목표를 세우기 때문에요. 그게 이제 달성을 하고 성취를 하면 제가 최초가 되더라고요. 그걸 일부러 최초를 하려고 애를 쓴 건 아니지만.
[앵커]
평양에서도 쇼를 하셨는데요. 평양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궁금한데요.
[인터뷰]
서로 그냥 굉장히 예술로써 마음과 마음이 통했죠. 서로 울고 굉장히 오랜만에 본 친구처럼요.
[앵커]
좀 다르다고 하던가요? 우리 한복과 평양 사람들이 보는 한복이 다른가요?
[인터뷰]
평양 사람들은 아직까지 디자인에 대한 개념이 없죠. 옛날에 입던 옷을 그냥.
[앵커]
섬에서 패션쇼를 하니까 정말 바람의 옷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인터뷰]
딱 그 색깔이며 모든 게 잘 맞았어요.
[앵커]
작품을 직접 지금도 디자인을 하고 계십니까?
[인터뷰]
40주년입니다, 금년에.
[앵커]
40년 되셨는데.
[인터뷰]
9월 15일쯤이요.
[앵커]
그 작품을 만드실 때 주로 어디에서 이렇게 영감을 얻으십니까?
[인터뷰]
영감은 전통에서 얻어요, 저는. 옛날 옷들 또 노리개, 비녀, 옛날 또 어머님들이 하던 옷, 또 선비들이 입던 옷을 보면 거기에서 어떤 아이디어를 얻게 되죠. 색감 또 바느질 기법 또 거기에 나오는 문양이요. 한 10가지는 더 얻을 겁니다.
[앵커]
우리나라 사람들이 기모나나 아오자이를 볼 때 느끼는 신비함이 있는데 오히려 외국 사람들이 또 한복을 봤을 때 어떤 점을 특징적으로 잡던가요?
[인터뷰]
이번에 슬로바키아에 가서 쇼를 할 때도 4개 방송국, 또 예술가들이 화가들이 왔어요.
[앵커]
지금 나오는 화면인 것 같은데요.
[인터뷰]
작가들이 많이 오고 했는데 다 이 저고리에 짧은 기장의 옷, 또 치마는 우아하면서도 길고 색상이며 소재가 세계에서는 없을 거라는 이런 말을 하면서 제가 파리에 처음 나갔을 때 그 말과 똑같더라고요.
그래서 거기에 갈 때 힘들게 갔는데 잘 갔다, 내가 잘 왔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앵커]
외국인들이 좋아하는 색감이 저희랑 다른가요?
[인터뷰]
제가 하는 색은 다 좋다고 그래요. 외국 사람들이 좋아하고 나쁜 게 없고요. 한복에 도취가 돼서 너무 인터뷰가 많고, 작가들이 자기가 아이디어를 많이 얻었다는 이런 말을 굉장히 많이 했어요.
[앵커]
어떤 실용적인 측면에서 보면요. 물론 한복은 우리 옷이기 때문에 예프고 합니다마는 조금 어떤 측면에서는 불편하다, 이런 의견도 있을 것 같아요?
[인터뷰]
그런데요, 한복은 너무나 어려운 옷이에요. 쉬운 옷이 아닙니다. 한복은 몇 가지로 분산돼야 돼요.
일할 때 입는 작업복 또 파티에 나가는 옷. 또 이렇게 평상시에 입는 옷으로 몇 가지로 구분해서 해야지 한 가지 옷으로 해서 일할 때도 입고 도자기 구울 때도 입고, 또 외국에 갈 때도 입고 파티에 나갈 때도 입고 하는 그런 옷이 아니에요. 한복은 너무나 어려우면서도 예술적이면서도 이해하기 어렵고 세계에서 이런 옷이 없답니다.
그래서 자기 분야, 자기가 어떤 길을 나아가겠다고 하면 한 가지 길로 나가야 될 것 같아요. 여러 가지는 다 할 수 없는 것 같아요. 왕실 옷이 있지 않습니까, 아주 어려운. 그런데 제가 왜 우리나라에서는 옷을 여러 가지, 저렇게 옷이 좋은 옷도 있고 별로 안 좋은 옷도 있나 했더니 100가지가 넘어요, 옷 종류가. 여자, 남자를 합해서요. 한 200가지가 된다고 합니다.
석 박사님이 살아계실 때 저에게 적어준 게 있는데 100 몇 가지를 적어주셨어요. 옷 이름이요. 그러니까 이 옷에서 아이디어를 얻고요. 옷 종류가 그렇게 이상한 옷들이 많이 나오는 거예요.
[앵커]
2005년에 부산 APEC이 열렸었는데 그때 21개 나라 정상들 옷을 직접 입히지 않았습니까? 그때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두루마기를 입지 않겠다고 했다고 하는데 불편해서 그랬나요?
[인터뷰]
그분이 그 전 해 판초를 남미에서 누가 해 주었는데 걸치는 거 있잖아요. 그게 너무 마음에 안 들었대요. 색도 이상하고 그래서 전통 의상은 안 입겠다는 결론을 내렸지, 두루마기를 안 입는다는 소리는 안 했어요. 그런데 와서 치수도 제일 나중에 주셨어요. 그래서 내가 힘들었어요.
[앵커]
지금 나오고 계시거든요.
[인터뷰]
그리고 제일 마음에 들고 칭찬을 무척 해 주셨어요. 디자이너하고 만나고 싶다고 해서 저하고 만나기도 하고요. 자기가 직접 들고 갔어요, 너무 마음에 든다고요.
[앵커]
지금 정상들마다 색깔이 다르거든요. 그거는 선생님께서 직접 정해주신 거예요?
[인터뷰]
내가 7가지 색을 그 나라 대사관을 통해서 보내서 자기가 선호하는 색을 주셨어요.
[앵커]
푸른 계열을 선택하셨네요.
[인터뷰]
서양에서는 푸른색이 많이 나왔고, 동양은 황금색이 많이 나갔어요. 그래서 자기가 원하는 색인데 7가지 색이라서 내가 무척 걱정을 했는데요. 우리 한복의 미는 자연 속에서 더 아름답거든요.
그래서 바다의 물결색, 또 소나무의 색, 기왓장의 색 이런 걸 제가 7가지 색을 정했어요. 그래서 자연 속에, 저기가 해변가잖아요. 저기에는 파란색이 있고요.
고이즈미 전 총리는 기왓장 색이요. 저기에 기와집이 조그마한 게 있었어요. 그래서 푸른색은 또 소나무의 색깔도 있었어요. 그 색이 자연 속에서 더 아름다워요. 한복은요. 이런 데서 만날 때보다요.
한복을 입고 자연 속에 들어가면, 숲속이나 대나무 속에 들어가면 더 아름답고 빛을 내죠. 한복이. 자연미요, 색의 조화, 색깔의 미, 자연미, 인격미. 우리 한복은 정말 특별한 옷입니다. 그래서 한복을 입으실 때 아무렇게나 요새 젊은 사람들 옷을 한다면 어떤 분이 청바지 다 찢어진 데다가 저고리만 이상하게 길게 입었다고 그게 한복이 아니거든요. 다 격에 맞게 입어야 되니까.
[앵커]
한복을 특별한 이런 명절 때만 입는 그런 경향이 있지 않습니까? 어떻게 보시나요?
많은 분들이 한복을 더 많이 입으려면 어떻게 해야 된다고 보십니까.
[인터뷰]
그런데 많이 입게 하려면요. 지금 다 큰 사람들을, 대학생, 결혼할 사람들한테 한복을 입어라, 입어라 해도 입지 않아요. 그게 몸에 배지도 않고 입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은요.
그런데 조기계획을 하는 거 있죠. 저는 이 시간에 이런 말을 드리고 싶어요. 부모님들 과시로 돌 때 해요. 그 아기가 자라서 자기가 돌 때 옷을 입었던 게 한복이라는 걸 알 수가 없어요.
저는 유치원 때 또 초등학교 때 자기 생일 때 자기가 걸어다니면서 이해하고 색깔을 알 때, 그때 한복을 한두 벌 해 놨다가 입히면 그것이 커서 결혼할 때도 입는 건지 알고 명절 때도 입어야 되는 그 개념이 제일 좋지. 다 큰 사람 한복 안 입는다고 꾸중을 해서 아무 소용이 없어요.
우리는 지금도 늦지 않았거든요. 초등학교 때, 유치원 때, 생일 때, 한복을 입히세요. 싼 옷도 좋고, 예쁜옷도 좋고 다 좋습니다.
[앵커]
기념일 때마다 한복을 꺼내서.
[인터뷰]
저는 제가 지금 한복을 정말 죽도록 사랑하는 이유가 어머니께서 항상 한복을 입혀주셨어요. 학교 갔다 오면 딱 갈아입을 옷을 걸어놨거든요. 그러면 그 옷을 입고 그 정신이에요.
어머님의 정신으로 제가 지금 한복을 사랑하게 됐지요. 책을 읽고요. 한복 대학이 없습니다. 지금, 의상학과만 있지 의상학과에서 한복대학이 없어요. 그런데 우리가 한복 잘 입지 않는다고 야단을 칠 수가 없어요.
조기교육이 없어요. 그래서 이럴 때 어떻게 해야 되나 이런 생각을 많이 해도 안 입어요, 요즘은.
[앵커]
다음에 한 번 더 모셔서 고민을 들어봐야 될 것 같아요. 대학에 한복학과가 없군요.
[인터뷰]
의상학과에서 한두 시간, 수업이 일주일에 한 번도 없는 것 같아요. 제가 겸임교수를 많이 했잖아요. 그래서 이렇게 가르쳐줬죠, 제가.
[앵커]
올해 40주년을 맞으셨다고 하는데 행사 잘하시고요. 건강하시고요.
[인터뷰]
그때 내가 어떤 걸 할지 계속 고민을 하는데 우리 한복이 이렇게 아름답다, 우리 한복은 잘 입으면 천사인데 못 입으면 밑에 천박한 사람이 돼요. 격조가 있어요, 한복은. 격이 있어야 되고, 그 아름다움을 과시하면서 한복의 발전사를 쭉 보여주고 싶고 또 보는 사람으로 인해서 한복의 감동을 주고 싶어요. 어떻게 할까 고민입니다.
[앵커]
그때 한번 더 모시겠습니다. 성공적으로 잘하시기뱌라겠습니다.
[인터뷰]
저는 한복을 너무 사랑하니까 어떻게 해서 아이디어를 얻느냐, 전통에서 얻고 있고요. 옛날 옷을 다 봐야 돼요. 그걸 공부하기 위해서.
[앵커]
한복 디자이너 이영희 선생님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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