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명량 열풍'으로 돌아본 이순신 리더십 [김태훈·김헌식]

영화 '명량 열풍'으로 돌아본 이순신 리더십 [김태훈·김헌식]

2014.08.05. 오전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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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영화의 한 장면인데요.

12척의 배로 330척 왜군의 배를 무찌른 이순신 장군을 그린 영화 '명량'이 한국 영화사를 새롭게 쓰고 있습니다.

연일 관객 신기록을 세우면서 600만 관객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는데요.

[앵커]

2014년 대한민국, 무엇 때문에 이렇게 400년 전 이순신에 열광하는 걸까요?

전문가 두 분과 함께 이야기나눠보겠습니다.

이순신 평전, '그러나 이순신이 있었다'의 저자 김태훈씨, 김헌식 문화평론가와 함께합니다.

두 분 어서 오세요.

[인터뷰]

안녕하십니까.

[앵커]

일단 장민정 앵커는 이 출연 때문에 영화 보셨죠?

[앵커]

원래 보려고 했었는데 그동안 못 보고 있었는데 어제 출연한다고 해서 급하게 봤습니다.

재미있더라고요.

[앵커]

다 보셨죠?

[인터뷰]

다 봤습니다.

[앵커]

재미는 있었습니까?

[인터뷰]

재미는 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보면 한 시간 정도는 액션씬 때문에 거의 빨려들다시피 볼 수밖에 없는 그런 영화였습니다.

[앵커]

작가님 입장에서는 또 다른 느낌일 텐데요.

[인터뷰]

역시 이순신, 저로서는 감동적으로 봤습니다.

물론 팩트가 기록과 다른 부분들이 전반적으로 보이기는 하는데 그러한 이순신의 모습을 잘 나타냈다고 생각합니다.

[앵커]

아침기록이 매일 나오는데.

어제 하루에만 98만명이니까요.

이렇게 가면 1000만명 그냥 가겠어요.

[인터뷰]

그렇습니다.

최고 영화가 아바타인데 1630만 정도 되는데 이 정도 속도라면 1300만도 돌파할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 입니다.

왜냐하면 다른 1000만 영화보다 3, 4일 정도 앞서서 500만을 돌파했고 평일에도 거의 100만에 육박하는 그런 관객수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충분히 1000만은 돌파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앵커]

흥행에 어떤 요소, 어떤 게 있을까요?

[인터뷰]

일단 콘텐츠 자체 요소를 말씀을 드릴게요.

일단 국민들이 너무 이순신 관련영화를 보고 싶은데 사실 영화가 별로 없어요.

1962년에 성웅 이순신, 1971년에 성웅 이순신, 또 71년 영화, 81년 영화 그 정도밖에 없고 2005년에 코믹한 방식으로 다뤘던 천군이라고 하는 그런 영화도 있었는데 그거는 이순신 장군의 면모가 아니죠.

그 뒤에 조선왕조 500년, 그 뒤에 또 불멸의 이순신 정도밖에 없어서 사실은 이순신 장군이 활약하는 해전을 다룬 영화가 없어요.

그런데 그동안 해전이 제작비도 많이 들어가고 제작하기 어렵기 때문에 없었던 측면이 있었는데 이번에 국민들이 원하는 해전영화를 그야말로 그대로 잘 보여준 영화가 나왔기 때문에 많이 보시는 거라고 이렇게 생각이 듭니다. [앵커]

그야말로 한국판 블록버스터 아니겠습니까.

[앵커]

관객수가 지금 나가고 있네요.

지금 명랑이 처음에 하루 역대 최고 오프닝이었습니다.

68만명, 그리고 바로 어제 98만명.

이게 하루에 98만명이 본 날은 평일 치고 가장 많은...

[인터뷰]

없습니다.

그 전에 아바타가 있었는데 그것과는 더 많은 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앵커]

그리고 600만 관객까지 돌파했다는 소식이 들어와 있습니다.

김태훈 선생님, 왜 하필 지금 이순신인가, 이런 궁금증이 생기는데.

선생님은 10년 동안 이순신 장군만 연구를 해 오셨다고 해요.

어떤 계기가 있었던 것인가요?

[인터뷰]

계기라기보다는요.

제가 전쟁 영웅, 그러니까 전쟁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피가 튀고 오랜가의 비극이 난무하는 그런 곳입니다.

그 전쟁영웅에 대해서 제가 재미있게 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서양의 시저, 알렉산더 이런 걸 읽다가 한국의 영웅을 한번 찾아보자 해서 한 것이 이순신이었죠.

그런데 이순신의 독자로서 처음 접했는데 독자로서 처음 접할 때는 그야말로 어린이 위인전 수준의 그런 책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신과 같은 그런 이순신이었죠.

그래서 제가 찾은 것이 이순신 난중일기를 찾게됐고요.

그러다가 그 안에서 이순신의 인간적인 또는 신이 아닌 그야말로 우리과 같이 피가 흐르는 그러한 면모를 발견하고 더 나아가서 선조실록이라든지 이렇게 책을 쓰게 된 겁니다.

지금 작가님께서 쓰신 책이 바로 저희들이 들고 있는 그러나 이순신이 있었다, 이런 책도 있고요.

그런가 하면 칼의 노래라든가 많은 책들이 요즘 서점가에서 베스트셀러가 되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인터뷰]

그렇습니다.

사실 영화가 개봉할 때는 특히 이순신에 관련해서 팬들이 굉장히 많기 때문에 이순신에 관련된 리더십책도 이미 많이 쏟아져 나왔고요.

또 이 책도 많이 주목을 받고 있고 또 칼의 노래 같은 경우에는 예전보다 7배 정도의 출고량을 보이고 있다고 합니다.

또 영화 명량을 다뤘던 원작소설도 출간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한 3, 40% 정도의 초기의 판매율이 점차 증가하고 있는 그런 상황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앵커]

방금 들어온 속보 일단 간단하게 정리를 해 드리고 질문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최근 윤 일병 사건, 또 이 모 상병 사건. 관련 군대 내 폭행사건이 계속 잇따르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이 오늘 윤 일병 폭행 사망사건과 관련해서 앞으로 이런 일이 다시는 없도록, 이런 일이 있으면 어떤 책임을 주는지 보여주는 차원에서라도 일벌백계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얘기를 했습니다.

[앵커]

오늘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 모두 발언에서 나온 얘기인데요.

잠시 뒤에 출연이 끝나고 취재기자 연결해서 자세한 내용 전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앵커]

이순신 장군도 군인이었지 않습니까?

이순신 장군 시절에도 만약에 이런 일이 있었으면, 이순신 장군이었다면 관련 현안이니까요.

어떻게 대처를 했을까요?

군대내 폭행 때문에.

여기도 말하자면 전시상황에서 이런 게 벌어졌다면 어떨 것 같습니까?

[인터뷰]

이순신 장군이라면 일벌백계로 처단했을 겁니다.

이순신 장관이 행동하시는 부분들은 말보다는 행동이었습니다.

현재 우리 지도자는 너무 말이 많고 그것이 우리한테 가슴에 닿지 않고 그것이 결과물로 이어지지 않고 있는데 이순신 장군은 직접 행동으로 본인이 앞장서서 실천하는 그런 분이시기 때문에 이런 사건이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고 일어난다고 해도 이순신 장군은 현명하게 처리했을 거라고 봅니다.

[앵커]

영화에서도 그런 장면이 도망가려고 할 때 단죄를 하잖아요.

[인터뷰]

그게 실제로 난중일기에도 그런 장면이 나오죠.

처음에 전쟁이 발발하게 되면서 탈영병이 많이 생기면서 탈영병을 잡아서 참하게 하는 그런 상황이 벌어지죠.

그러니까 잘못에 대해서는 원칙에 따라서 눈물을 머금고 처단하는 그런 모습들이 나옵니다.

[앵커]

이런 군부대 폭행사망사건 말고도 최근 세월호 사건도 있었고 이런 부분과 관련해서 더 이순신 장군이 주목을 받는 것 같아요.

[앵커]

어떻게 보십니까?

[인터뷰]

최근 우리국민들이 재난사고 등으로 많이 아파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회지도자층들은 그 아픈 국민의 가슴을 위로하기는커녕 오히려 못질만 해대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이 우리 국민들을 더욱더 이순신을 찾고 위로를 얻으려 하는 것이 아니냐, 그렇게 보여집니다.

[앵커]

이순신 리더십, 최근 들어서 왜 지금 이순신이 이렇게 각광을 받는지 문화적으로는 어떻게 보십니까?

[인터뷰]

제가 봤을 때는 요즘에 의리 패러디도 있었고요.

여러 가지 책임지지 않는 모습 때문에 더욱 더 부각이 되고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사실 영화에도 나오지만 결국 다 자기 살길만을 챙겼거든요.

어차피 질 전쟁이 승산이 없으니까 다른 식으로 육군으로 합류하라 이렇게 하는데 끝까지 이순신은 바다을 잃으면 우리가 살아남지 못한다겠기본원칙을 가지고 있었고 그게 가능했던 이유는 정말 어려운 상황속에서 자기 실력을 쌓고 소신을 갖고 그에 따라서 일해 왔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결국 실력과 자기 연마를 통해서 자기 소신을 지키면서 책임을 지는 그런 모습들이 우리 사회에 결핍되어 있기 때문에, 이러한 점들이 부각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앵커]

그래서 우리가 지금 이 시점에 왜 이순신의 리더십이 주목받고 있는지 이순신의 리더십 특징을 세 가지를 작가님께 뽑아달라고 부탁을 드렸거든요.

[앵커]

그러면 지금 부터 저희들이 이순신 리더십의 특징을 세 가지로 요약을 해서 보여드리겠습니다.

첫 번째 특징입니다.

명량해협에 거북선이 등장을 합니다.

첫 번째 리더십은 바로 직진입니다.

작가님, 직진 무슨 의미입니까?

[인터뷰]

이순신은 어떤 문제를 만났을 때 결코 우회하거나 애둘러 가지 않았습니다.

직진 그 자체였죠.

이순신이 문제를 해결하고 또 그것을 받아들이는 반응은 올바른 원칙으로부터 직진, 정면돌파 그 자체였습니다.

명랑해전에서 그야말로 절망의 전투가 명량해전인데 국왕 선조가 이순신에게 해전을 포기하라는 지시를 내립니다.

그리고 수군의 제2인자였던 경남우수사 배설은 그 상황에서 이순신은 머뭇거리지 않고 직진으로 들어갑니다.

그 선조의 지시를 일축하고 바로 전쟁으로 나간 거죠.

그러한 면에서 봤을 때는 이순신의 타협하지 않는, 물러서지 않는 직진의 자세야말로 오늘날 우리가 본받아야 될 그런 리더십이 아닌가 그렇게 보여집니다.

[앵커]

간단하게 덧붙이실 말씀이 있으십니까?

[인터뷰]

일단 직진이라는 것은 결국 에둘러가지 않고 본질을 정확하게 보고 그것을 정면으로 돌파해 가는 모습들, 이런 점이 사실 우리 사회에 결핍되어 있는 점이 있기 때문에 또 상대적으로 높은 가치라고 볼 수 있겠고요.

그 과정에서 남을 시키지 않고 본인이 직접 한다는 거죠. 그런 점들이 훨씬 더 솔선수범과 연결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앵커]

그러면 아마 두 번째 내용도 지금 말씀하신 솔선수범과도 관련이 있을 것 같은데요.

두 번째 이순신 리더십의 특징입니다.

[앵커]

감동.

[앵커]

감동, 이거는 어떤 의미입니까?

[인터뷰]

제가 이순신 리더십의 두 번째로 꼽은 것이 감동인데요.

감동은 어디에서 나올까요?

말씀하신 대로 솔선수범.

본인이 앞장설 때 감동이 일어납니다.

곧 돌격 앞으로 하고 자기 자신은 뒤에 숨어 있으면 그것은 결국 감동으로 이어지지 않을 겁니다.

명랑해전에서도 적선과 전투 초기에는 이순신 함선 한 대 만이 적선에 맞습니다.

당시에 조선함대쪽으로 왔습니다.

그 상태에서는 노를 열심히 저어야지 앞으로 나가고 그나마 버틸 수 있는 그러한 형국이었는데 부하 장수들이 탄 함선은 뒤로 슬금슬금 물러났죠.

열심히 노를 젓지 않는 바람에.

이때 이순신 함선만이 혼자 나갑니다, 대장선만이.

그리고 적과 맞서는데.

결국 그렇게 감동을 주는 솔선수범하는 그러한 이순신의 리더십이 명랑해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앵커]

그러면 바로 이어서 세 번째 이순신 리더십의 마지막 세 번째 직진, 감동.

세 번째는 무엇일까요?

내려놓음.

내려놓는다, 이거 약간 좀 철학적인데요.

내려놓음 뭡니까, 이거는?

[인터뷰]

내려놓는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내려놓는다는 것입니다.

제가 먼저 말씀드린 직진 그리고 감동이 가능한 배경에서는 자기 자신의 대레를 위해서 내려놓는다.

결국 그러한 마음이 있기 때문에 직진과 감동이 이순신에게서 나왔다고 저는 생각하고요.

그리고 예를 들어서 이순신이 명랑해전이 발발하기 5일 전에 나중에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혼자 배에 앉아 있으니 그리움에 눈물이 났다.

세상에 나 같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

아들이 내 심정을 알고 심히 언짢아 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전쟁의 신이라고 할 수 있는 이순신이 혼자 배 위에서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두 번째는 세상에 나갔던 사람이 어디 있느냐 하면서 진저리를 칩니다.

그리고 더 황당한 건 그 광경을 보고 아들에게 들킵니다.

아들이 이순신의 모습을 보고 언짢아 했다고.

불가능한 전투를 앞두고 인간 이순신의 그런 면모가 바로 나옵니다.

그런데 막상 명량해전이 벌어지니까 이순신 장군께서는 그야말로 홀로 적선의 숲으로 들어갑니다.

홀로 맞서는 거죠.

이것이야말로 내려놓음의 절정이고 더 큰 절정은 노량해전에서 이순신은 자기 자신을 내려놓죠, 죽음으로.

이순신의 내려놓음은 이 나라를 구하고 백성을 구했다.

그래서 저는 이순신의 리더십의 세 번째로 내려놓음을 꼽았습니다.

[앵커]

어떻게 보십니까, 현대적으로 보면?

[인터뷰]

사실 가장 유명한 말씀을 하신 것이 죽을 각오로 싸우면 살려고 싸우면 죽는다는 말이 결국에는 이순신 장군이 목숨까지도 내려놓음으로 볼 수 있죠.

그래서 결국에는 어떤 공적을 세우고 자기가 뭔가 잘 사는 모습들을 생각을 하면서 싸우게 되면 결국 죽게 된다.

결국 우리가 잘살려고 하면 오히려 못살게 될 수 있다.

오히려 욕심을 버리게 되면 욕심 이외의 다른 가치들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을 현대적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앵커]

알겠습니다.

저희가 이순신 장군에 대해서 출연 준비를 하면서 여러 가지 일반인들이 이순신 장군에 대해서 잘못 알고 있는 것들, 진실들을 밝혀보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이순신에 대한 오해와 진실이라는 시간 마련했는데요.

질문을 드리면 이게 맞는지, 아닌지 좀 설명을 덧붙여주시기 바랍니다.

[앵커]

첫 번째 오해와 진실.

첫 번째입니다.

이순신에 대한 오해와 진실.

첫 번째, 이순신은 자살했다?

[앵커]

노량해전에서 보면 유명한 한마디 남겼잖아요.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

이거 할 때 혹시 이순신이 적에게 일부러 , 갑옷을 벗고 총탄을 맞았다 이런 얘기가 나오더라고요.

[인터뷰]

숙종 때 이민서가 쓴 글을 보면 이순신 장군께서 스스로 갑옷을 벗고 적의 탄환을 맞고 죽었다라는 글이 있습니다.

자살설의 요체가 거기서부터 시작되는데요.

이순신의 자살설 한 가지 배경으로서는 국왕 선조가 이순신이 그야말로 연전연승하고 있고 그리고 훌륭한 업적을 가지고 있으니 시기를 하고 질투를 했다.

그래서 이순신 장군께서 노량해전을 승리로 이끌면 선조가 이순신을 가만 뒀겠느냐 하는 것이 그 배경인데요.

[앵커]

이게 한번 귀향도 가고 그랬었잖아요.

[인터뷰]

그렇죠.

그런데 이순신이 사망한 노량해전은 그야말로 근접전이었습니다.

적의 얼굴이 보일 정도의 근접전이었고 심지어는 각목에 불을 붙여서 적진에 던졌다는 상식 밖의 그런 전투 공격방식이 보일 정도로.

그야말로 아수라장 전투였습니다.

그 전투에서 사망한 사람이 이순신만이 아니고 이영남이라든지 많은 장수들이 사망했습니다.

그리고 그당시에 선조실록이라든지 유승룡의 징비록이라든지 기록을 보면 이순신이 자살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선조의 질투라든지 이런 걸 유추해서 그렇게 말하는데 사실과는 분명히 다르다, 이렇게 말씀을 드립니다.

[앵커]

진실은 화살에 맞아 전사했다.

[인터뷰]

화살이 아니고 당시에 일본 병사들은 조총을 쐈으니까 조총의 탄환에 맞아서 사망했다, 이렇게 보시면 됩니다.

[앵커]

그러면 자막을 수정했습니다.

조총에 탄환을 맞아 사망했다.

자살은 아니고.

물론 본인이 마지막으로 갑옷까지 벗고 전투에서 정말 죽을 각오로 싸웠다는 거는 어느 정도 정치적 배경은 있지만, 알겠습니다.

두 번째 진실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두 번째 진실입니다.

[앵커]

이순신은 백전 백승?

[앵커]

이순신은 백전백승.

보면 이순신은 항상 이겼다, 이렇게 나오고 있는데.

실제로 이순신 장군이 백전백승.

백선은 아닙니다마는 싸울 때마다 다 이겼습니까?

[인터뷰]

그게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인데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아니라고 말씀드립니다.

[앵커]

어디에서 졌습니까?

[인터뷰]

승리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적을 물리적으로 제압하는 데 있습니다.

그 개념에서 보면 제2차, 1597년에 일어난 제2차 부산해전에서는 물리적으로 적을 완전히 제압하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승리하지 못했지만 그나마 아군의 전력에 손실이 없었으니까 무승부였다, 이런 전투는 일부 있다고 이렇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앵커]

알겠습니다.

지금 오해하시는 것 몇 가지 살펴봤는데.

끝으로 이순신 장군이 지금 우리 이 시대의 리더라면, 다시 태어났다면 어떤 인물이 됐을까.

이런 궁금증도 있고요.

우리가 이순신 장군을 다시 부활시킨다면 어떤 직을 맡게 됐을지, 이런 것도 궁금합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인터뷰]

사실 이순신 장군 같은 경우에는 임진왜란에 임박해서 비로소 인정을 받았어요.

그러니까 굉장히 오랫동안 자기 실력과 소신을 가지고 싸워왔던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리더가 한 사람 탄생을 하려면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려요.

그러니까 오늘날에도 우리가 정말 조선시대보다도 훨씬 더 많은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복잡다단합니다.

그러려면, 한 사람의 리더가 탄생하려면 굉장히 오랫동안 훈련과 그런 것에서 탄생을 하는 거죠.

그런 점들이 좀 우리가 봐야 될 그런 점이라고 볼 수 있겠고요.

무엇보다 저는 2인자 리더십이 결국 1인자가 된다라는 지적을 하고 싶습니다.

뭐냐하면 임금의 말을 들어야 되는 장수였는데 결과적으로 1인자가 됐거든요.

그런 점들이 아마 우리 현대 사회를 살아가면서 한 번쯤 반추해야 될 그런 사항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앵커]

알겠습니다.

우리 시대에 필요한 이순신 리더십이 무엇인지 잠시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습니다.

두 분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인터뷰]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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