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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 33km에 막힌 세계 경제…호르무즈 봉쇄 40일이 남긴 '비싼 청구서' [와이파일]](https://image.ytn.co.kr/general/jpg/2026/0410/202604101740367831_t.jpg)
호즈무즈 해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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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0여일간, 세계 경제는 폭 48km짜리 물길 하나에 발목이 잡혀 있습니다.
하루에 유조선 100여 척이 오가던 바닷길이 사실상 닫히자, 국제유가는 배럴당 126달러까지 치솟았습니다. 독일은 올해 성장률 전망을 절반으로 낮췄으며, 우리나라 주유소 기름값은 또다시 2천 원대를 넘어서기 시작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 중동 분쟁이 불거질 때마다 뉴스에 등장하던 이름. 하지만 이번엔 달랐습니다. '언급'이 아니라 '봉쇄'였습니다.
지도를 펼쳐보면, 호르무즈 해협은 페르시아만 끝자락, 이란과 오만 사이에 낀 가느다란 물길입니다. 가장 좁은 구간은 불과 33킬로미터. 서울에서 수원 정도 되는 거리입니다.
하지만 이 좁은 물길을 통해 전 세계 해상 원유 물동량의 20%, 액화천연가스 거래량의 20% 이상이 지납니다.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 이라크 등 중동 주요 산유국의 수출 물량이 사실상 전부 이곳을 거쳐야 세계 시장에 도달합니다.
우회로가 없는 건 아닙니다. 아랍에미리트의 내륙 송유관, 사우디의 동서 파이프라인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우회로들의 총 수송 능력은 하루 약 300만 배럴 수준입니다. 호르무즈를 통과하는 하루 2,000만 배럴의 7분의 1에 불과합니다. 말하자면 도로가 막혔는데, 골목길 하나로 버텨야 하는 상황인 겁니다.
2026년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은 '에픽 퓨리(장대한 분노) 작전'이라는 대규모 합동 공습을 이란 본토에 단행했습니다. 이란의 핵 시설과 군사 지휘부를 겨냥한 이 작전에서 이란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가 사망했습니다. 하루 아침에 절대 권력자를 잃은 이란은 즉각 보복 조치에 들어갔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을 사실상 봉쇄한 겁니다.
"호르무즈를 막겠다"는 이란의 위협은 수십 년 된 레퍼토리였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실제로 실행됐습니다. 통과 선박에 대한 위협과 나포 시도가 잇따르면서, 하루 100여 척이 오가던 상업 유조선의 수가 한 자릿수로 줄어들었습니다.
미국은 왜 대비하지 못했나?
이 지점에서 자연스럽게 드는 의문이 하나 있습니다. 미국은 이란을 공격하면서 호르무즈 봉쇄를 예상하지 못했을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단순한 판단 착오가 아니라 세 가지 오판이 겹친 결과로 보여집니다.
첫 번째는 '늑대 소년 효과'입니다. 앞서 설명했듯 이란이 "호르무즈를 봉쇄하겠다"고 위협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2011년, 2018년, 2019년에도 같은 레퍼토리가 반복됐고, 단 한 번도 실행된 적이 없었습니다. 반복되는 위협이 오히려 실제 가능성에 대한 감각을 무디게 만들었을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참수 작전'에 대한 과신입니다. 최고지도자 하메네이를 제거하면 이란의 지휘 체계가 흔들리고, 조기에 협상 국면으로 전환될 것이라는 계산이었습니다. 실제로는 정반대가 됐습니다. 절대 권력자가 사라지자 IRGC, 이란혁명수비대 내 강경 세력이 중앙의 제어 없이 더 강경하고 공격적으로 움직였습니다. "머리를 자르면 조직이 무력해진다"는 가정이 이란에는 맞지 않았던 겁니다.
세 번째가 가장 결정적인 오판입니다. 미국은 이란의 재래식 해군을 개전 하루 만에 사실상 궤멸시켰습니다. 그리고 이를 '호르무즈 위협 제거'와 동일하게 읽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함선이 없어도 봉쇄는 가능했습니다. 이란 본토 해안의 육상 발사 미사일과 드론만으로도 유조선을 위협하기에 충분했습니다. 군사 전문가들은 미국이 호르무즈를 완전히 열려면 이란 본토 해안선 전체를 장악해야 하는데, 그 비용과 리스크는 전쟁 자체보다 클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전쟁을 시작하는 것과 전쟁의 결과를 통제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이번 사태는 그 교훈을 다시 한번, 매우 비싼 대가로 확인시켜주고 있습니다.
IEA, 국제에너지기구는 이번 사태를 "역사상 최대 규모의 석유 공급 차질"이라고 규정했습니다. 1973년 아랍의 석유 금수 조치, 1979년 이란 혁명,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그 어떤 에너지 위기보다 실질 물동량 충격이 크다는 겁니다.
유가는 한때 배럴당 126달러까지 올랐습니다. 2022년 이후 4년 만에 세 자릿수를 돌파했습니다. 당연히 세계 경제는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독일의 주요 경제연구소들은 올해 성장률 전망을 1.3%에서 0.6%로 낮췄습니다. 이탈리아는 서비스업이 이미 위축 국면에 진입했고, 유로존 전체가 '성장은 정체되는데 물가는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 공포에 사로잡혔습니다.
우리나라 상황도 예외가 아닙니다.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가 수입한 원유의 61%, 나프타의 54%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했습니다. 에너지 가격이 오르면 정유·화학 업계의 원가가 오르고, 그 충격은 결국 운송비, 제조 원가, 식료품 가격을 거쳐 소비자 장바구니에 도달합니다. 지구 반대편 40km 물길이 우리 식탁을 흔드는 구조입니다.
중국이라는 변수, 그리고 파키스탄의 중재
그런데 이번 사태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나라는 따로 있습니다. 바로 중국입니다.
중국은 소비 원유의 약 75%를 수입에 의존합니다. 그 중 중동산 비중이 약 44%이고, 그 물량의 대부분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합니다. 계산해보면 중국 전체 원유 수입의 약 3분의 1, 하루 300만~350만 배럴이 호르무즈 해협의 좁은 바닷길을 지나는 겁니다.
세계 최대 에너지 소비국인 중국에게 호르무즈는 일종의 아킬레스건입니다.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지만, 이 물길이 막히는 순간 중국 경제도 함께 흔들리는 구조입니다.
물론 중국이 완전히 손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2025년부터 전략 비축유를 공격적으로 확대해왔고, 2026년 초 기준 약 15억 배럴 이상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수입이 완전히 끊겨도 120일에서 140일을 버틸 수 있는 규모입니다. 봉쇄 초반 중국이 비교적 조용히 관망할 수 있었던 데는 전략 비축유라는 ‘안전 ‘장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봉쇄가 길어질수록 비축유도 한계에 다가섭니다. 결국 중국이 움직인 이유입니다.
파키스탄이 전면에 나선 이번 중재, 이면엔 중국이 있다는 관측이 지배적입니다. 파키스탄·튀르키예·이집트를 통해 이란을 설득한 실질적인 배후는 중국이었다는 겁니다.
호르무즈 해협 위기는 세계 에너지 공급망이 얼마나 취약한지, 그리고 그 취약함이 우리 일상에 얼마나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휴전은 끝이 아닌 시작일 수 있습니다. 미국과 이란의 협상 테이블에서 무엇이 오가느냐에 따라, 40일의 충격이 일시적 역사의 에피소드로 끝날지, 아니면 새로운 에너지 질서의 출발점이 될지 결정될 겁니다.
한달이 넘는 봉쇄가 남긴 건 유가 충격만이 아닙니다. 폭 33km 물길 하나가 세계를 멈출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우리는 그 사실을 여전히 준비 없이 마주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YTN digital 김재형 (jhkim03@ytn.co.kr)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
하루에 유조선 100여 척이 오가던 바닷길이 사실상 닫히자, 국제유가는 배럴당 126달러까지 치솟았습니다. 독일은 올해 성장률 전망을 절반으로 낮췄으며, 우리나라 주유소 기름값은 또다시 2천 원대를 넘어서기 시작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 중동 분쟁이 불거질 때마다 뉴스에 등장하던 이름. 하지만 이번엔 달랐습니다. '언급'이 아니라 '봉쇄'였습니다.
지도를 펼쳐보면, 호르무즈 해협은 페르시아만 끝자락, 이란과 오만 사이에 낀 가느다란 물길입니다. 가장 좁은 구간은 불과 33킬로미터. 서울에서 수원 정도 되는 거리입니다.
하지만 이 좁은 물길을 통해 전 세계 해상 원유 물동량의 20%, 액화천연가스 거래량의 20% 이상이 지납니다.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 이라크 등 중동 주요 산유국의 수출 물량이 사실상 전부 이곳을 거쳐야 세계 시장에 도달합니다.
우회로가 없는 건 아닙니다. 아랍에미리트의 내륙 송유관, 사우디의 동서 파이프라인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우회로들의 총 수송 능력은 하루 약 300만 배럴 수준입니다. 호르무즈를 통과하는 하루 2,000만 배럴의 7분의 1에 불과합니다. 말하자면 도로가 막혔는데, 골목길 하나로 버텨야 하는 상황인 겁니다.
2026년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은 '에픽 퓨리(장대한 분노) 작전'이라는 대규모 합동 공습을 이란 본토에 단행했습니다. 이란의 핵 시설과 군사 지휘부를 겨냥한 이 작전에서 이란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가 사망했습니다. 하루 아침에 절대 권력자를 잃은 이란은 즉각 보복 조치에 들어갔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을 사실상 봉쇄한 겁니다.
"호르무즈를 막겠다"는 이란의 위협은 수십 년 된 레퍼토리였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실제로 실행됐습니다. 통과 선박에 대한 위협과 나포 시도가 잇따르면서, 하루 100여 척이 오가던 상업 유조선의 수가 한 자릿수로 줄어들었습니다.
미국은 왜 대비하지 못했나?
이 지점에서 자연스럽게 드는 의문이 하나 있습니다. 미국은 이란을 공격하면서 호르무즈 봉쇄를 예상하지 못했을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단순한 판단 착오가 아니라 세 가지 오판이 겹친 결과로 보여집니다.
첫 번째는 '늑대 소년 효과'입니다. 앞서 설명했듯 이란이 "호르무즈를 봉쇄하겠다"고 위협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2011년, 2018년, 2019년에도 같은 레퍼토리가 반복됐고, 단 한 번도 실행된 적이 없었습니다. 반복되는 위협이 오히려 실제 가능성에 대한 감각을 무디게 만들었을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참수 작전'에 대한 과신입니다. 최고지도자 하메네이를 제거하면 이란의 지휘 체계가 흔들리고, 조기에 협상 국면으로 전환될 것이라는 계산이었습니다. 실제로는 정반대가 됐습니다. 절대 권력자가 사라지자 IRGC, 이란혁명수비대 내 강경 세력이 중앙의 제어 없이 더 강경하고 공격적으로 움직였습니다. "머리를 자르면 조직이 무력해진다"는 가정이 이란에는 맞지 않았던 겁니다.
세 번째가 가장 결정적인 오판입니다. 미국은 이란의 재래식 해군을 개전 하루 만에 사실상 궤멸시켰습니다. 그리고 이를 '호르무즈 위협 제거'와 동일하게 읽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함선이 없어도 봉쇄는 가능했습니다. 이란 본토 해안의 육상 발사 미사일과 드론만으로도 유조선을 위협하기에 충분했습니다. 군사 전문가들은 미국이 호르무즈를 완전히 열려면 이란 본토 해안선 전체를 장악해야 하는데, 그 비용과 리스크는 전쟁 자체보다 클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전쟁을 시작하는 것과 전쟁의 결과를 통제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이번 사태는 그 교훈을 다시 한번, 매우 비싼 대가로 확인시켜주고 있습니다.
IEA, 국제에너지기구는 이번 사태를 "역사상 최대 규모의 석유 공급 차질"이라고 규정했습니다. 1973년 아랍의 석유 금수 조치, 1979년 이란 혁명,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그 어떤 에너지 위기보다 실질 물동량 충격이 크다는 겁니다.
유가는 한때 배럴당 126달러까지 올랐습니다. 2022년 이후 4년 만에 세 자릿수를 돌파했습니다. 당연히 세계 경제는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독일의 주요 경제연구소들은 올해 성장률 전망을 1.3%에서 0.6%로 낮췄습니다. 이탈리아는 서비스업이 이미 위축 국면에 진입했고, 유로존 전체가 '성장은 정체되는데 물가는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 공포에 사로잡혔습니다.
우리나라 상황도 예외가 아닙니다.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가 수입한 원유의 61%, 나프타의 54%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했습니다. 에너지 가격이 오르면 정유·화학 업계의 원가가 오르고, 그 충격은 결국 운송비, 제조 원가, 식료품 가격을 거쳐 소비자 장바구니에 도달합니다. 지구 반대편 40km 물길이 우리 식탁을 흔드는 구조입니다.
중국이라는 변수, 그리고 파키스탄의 중재
그런데 이번 사태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나라는 따로 있습니다. 바로 중국입니다.
중국은 소비 원유의 약 75%를 수입에 의존합니다. 그 중 중동산 비중이 약 44%이고, 그 물량의 대부분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합니다. 계산해보면 중국 전체 원유 수입의 약 3분의 1, 하루 300만~350만 배럴이 호르무즈 해협의 좁은 바닷길을 지나는 겁니다.
세계 최대 에너지 소비국인 중국에게 호르무즈는 일종의 아킬레스건입니다.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지만, 이 물길이 막히는 순간 중국 경제도 함께 흔들리는 구조입니다.
물론 중국이 완전히 손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2025년부터 전략 비축유를 공격적으로 확대해왔고, 2026년 초 기준 약 15억 배럴 이상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수입이 완전히 끊겨도 120일에서 140일을 버틸 수 있는 규모입니다. 봉쇄 초반 중국이 비교적 조용히 관망할 수 있었던 데는 전략 비축유라는 ‘안전 ‘장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봉쇄가 길어질수록 비축유도 한계에 다가섭니다. 결국 중국이 움직인 이유입니다.
파키스탄이 전면에 나선 이번 중재, 이면엔 중국이 있다는 관측이 지배적입니다. 파키스탄·튀르키예·이집트를 통해 이란을 설득한 실질적인 배후는 중국이었다는 겁니다.
호르무즈 해협 위기는 세계 에너지 공급망이 얼마나 취약한지, 그리고 그 취약함이 우리 일상에 얼마나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휴전은 끝이 아닌 시작일 수 있습니다. 미국과 이란의 협상 테이블에서 무엇이 오가느냐에 따라, 40일의 충격이 일시적 역사의 에피소드로 끝날지, 아니면 새로운 에너지 질서의 출발점이 될지 결정될 겁니다.
한달이 넘는 봉쇄가 남긴 건 유가 충격만이 아닙니다. 폭 33km 물길 하나가 세계를 멈출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우리는 그 사실을 여전히 준비 없이 마주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YTN digital 김재형 (jhkim03@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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