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 대표작 '별밤'이 물리학 현상 '난류' 묘사?...학계 논쟁 가열

네덜란드 화가 빈센트 반 고흐(1853-1890)의 가장 유명한 작품 '별이 빛나는 밤'(1889)에 '난류'라는 물리학 현상이 드러나 있다는 논문을 둘러싸고 논쟁이 치열하다고 워싱턴 포스트가 보도했습니다.

'난류'(turbulance)는 물리학과 기계공학의 유체 역학 부문에 나오는 개념으로, 압력과 속도 등이 불규칙하게 변화하면서 움직이는 기체, 액체 등 유체의 흐름을 가리킵니다.

지난해 9월 학술지 '유체의 물리학'(Physics of Fluids)에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 숨겨진 난류'라는 제목의 논문이 게재되면서 논란이 본격적으로 불붙기 시작했습니다.

이 논문에서 중국 샤먼대 소속 마인샹, 황용샹 등 연구자들은 '별이 빛나는 밤'에 나타난 반 고흐의 필치를 분석해 본 결과 난류 현상이 파악됐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고흐의 필치에 나타나는 패턴이 소련의 위대한 수학자 안드레이 콜모고로프(1903-1987)가 밝혀낸 난류 관련 스펙트럼 법칙에 부합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연구 결과는 비전문가를 대상으로 한 언론 매체들의 대대적인 보도로 발표 당시 엄청난 화제를 끌었습니다.

워싱턴 포스트는 자사를 포함한 많은 언론사들이 당시 이 논문에 대해 보도했다며, 복잡한 대기 현상을 다루는 연구와 대중이 공감할 수 있는 주제가 드물게 교차한 사례였다고 설명했습니다.

유체 역학 전문가인 미국 워싱턴대 기계공학부의 제임스 라일리 명예교수는 "논문을 내려받아 읽어봤더니 말도 안 되는 얘기라는 걸 알게 됐다"면서 "그냥 아예 말도 안 된다"고 평가했습니다.

라일리 교수의 대학원 지도교수는 콜모고로프의 난류 스펙트럼 법칙을 확장한 연구도 했던 유체 역학의 대가 스탠리 코신(1920-1986) 존스홉킨스대 교수였습니다.

라일리 교수 등은 지난 3월에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 난류가 숨겨져 있는가?'라는 제목의 반박 논문을 학술지 '난류학회지'에 게재했습니다.

이들은 마인샹, 황용샹 등이 낸 논문에 대해 "전혀 근거가 없는 결론"이라며 "정상적인 경우라면 저자들의 주장은 난류 연구자들에 의해 당장 기각될 것"이고 비판했습니다.

라일리 교수는 문제의 논문이 철회돼야 마땅하다며 샤먼대 연구팀의 잘못된 연구 결과가 유명세를 너무나 많이 탔기 때문에 기록을 바로잡으려는 노력은 반드시 해야만 한다고 말했습니다.

라일리와 가드-엘-하크의 반박 논문 3편 외에도 샤먼대 연구팀의 결론을 반박하는 또 다른 논문이 미국기상학회 회보(BAMS)에 올해 8월 실렸습니다.

난류과 무관한 것이 명백한 에드가 드가(1834-1917)의 '꽃병 옆에 앉아 있는 여인'(1865)에 대해서도 샤먼대 연구팀과 같은 방법을 적용해 분석했더니 똑같은 수학적 패턴이 나왔다는 주장입니다.

논문 제목은 '만약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이 완벽한 난류를 묘사한다면, 드가의 꽃병 옆에 앉아 있는 여인도 마찬가지라고 해야 한다'였습니다.

이후 원래 논문이 실렸던 학술지 '유체의 물리학'에도 반박 논평 논문이 실렸습니다.

2024년 논문의 교신저자인 황용샹 샤먼대 교수는 입장문에서 "주제에 관한 중대한 차이점을 지적해야겠다"고 밝혔습니다.

또 "꽃은 구름이 아니다. 꽃 그림에서 특정 스펙트럼 결과를 발견하는 것은 구름에서 대기의 난류 패턴을 연구하는 것과는 무관하다"고 말했습니다.

샤먼대 연구자들의 논문에 공저자로 참여한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 소속 연구자 프랑수아 슈미트는 라일리 교수 등의 반박에 대해 입장을 발표했습니다.

슈미트는 "30년간 수많은 논문을 발표했지만, 동료들로부터 이처럼 적대적인 반응을 받은 적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또 "라일리 교수 등이 우리를 이렇게 가혹한 어조로 비판한 건 이번이 벌써 세 번째"라고 주장했습니다.



YTN 이승윤 (risungyoon@yt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