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거리 해제' 선언...우크라이나 전쟁 뒤흔든 '한 문장' [와이파일]

'사거리 해제' 선언...우크라이나 전쟁 뒤흔든 '한 문장' [와이파일]

2025.05.30. 오후 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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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거리 해제' 선언...우크라이나 전쟁 뒤흔든 '한 문장' [와이파일]
독일 타우러스 미사일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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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5월 26일, 베를린. 독일의 프리드리히 메르츠 총리는 유로파포럼에서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우크라이나에 지원한 서방의 무기에는 이제 사거리 제한이 없다.”

이 한 문장은 단순한 무기 지원 정책의 조정이 아닙니다. 전장의 규칙을 다시 쓰는 정치적 선언이며, 유럽 안보 구조의 대전환점을 알리는 경고탄입니다.

서방은 지금까지 우크라이나에 장거리 타격 수단을 제공하면서도, 러시아 본토를 향한 직접적인 공격은 자제시켜 왔습니다. 표면적 이유는 명확했습니다. 전면전 확대에 대한 공포, 러시아의 보복 가능성, 그리고 외교적 해결의 여지를 남겨두기 위한 일종의 ‘자기 억제’였습니다.

그러나 러시아는 이 억제를 전략적으로 활용해 왔습니다. 국경 뒤 안전지대를 병참 기지화하고, 그곳에서 드론과 미사일을 발사해 우크라이나의 도시와 에너지 인프라를 무차별 타격해왔습니다. 전쟁의 비대칭성은 구조적 불균형으로 고착되었고, 우크라이나는 ‘반격할 수 없는 전쟁’을 강요받는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메르츠 총리의 선언은 그 질서에 대한 정면 반기입니다. 이제 우크라이나는 스톰 섀도우(영국), 스칼프(프랑스), ATACMS(미국)와 같은 장거리 미사일을 러시아 본토의 군사 거점을 겨냥하는 데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군사 지원이 아니라, 억제의 무게중심을 ‘수동적 방어’에서 ‘공세적 방어’로 옮기는 결정입니다. 전선은 바뀌지 않았지만, 전장의 윤리와 전략은 명백히 달라졌습니다.

독일 내부에서는 파열음도 감지됩니다. 사회민주당(SPD)과 좌파당은 메르츠의 발표가 일방적이며, 연립정부 내 조율도 없이 나온 선언이라고 비판합니다. 외교적 해결의 가능성마저 좁히는 위험한 선을 넘었다는 것입니다.

반면, 녹색당과 자유민주당(FDP)은 이 조치가 오히려 “너무 늦었다”며, 독일도 타우루스(Taurus) 미사일을 즉각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최대 500km 사거리의 타우루스는 러시아의 전략시설을 정밀 타격할 수 있는 결정적 카드입니다.

국제 무대의 반응도 격렬합니다. 러시아는 “정치적 해결을 무력화하는 극단적 선택”이라 비난하며, 핵무기를 포함한 비대칭 전략을 다시 전면에 꺼내들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조치는 미국, 영국, 프랑스가 동조했다는 점에서 사실상 ‘서방 전략의 전환’을 상징합니다. 더는 러시아의 보복 위협에 정책을 가두지 않겠다는 메시지이며, 방어와 외교 사이에서 오랫동안 유지해온 회색지대를 걷어낸 행위입니다.

메르츠 총리의 말처럼, “우크라이나는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은 정당해 보입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러시아가 오히려 더욱 파괴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방식으로 반응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이 결정이 ‘억제’일지, ‘도발’일지를 가를 진짜 대답은 앞으로 수주 내 전장의 흐름이 말해줄 것입니다.

분명한 사실 하나는 남습니다. ‘사거리 제한 해제’는 군사적 결정 이전에 정치적 선언입니다. 유럽의 핵심 국가들이 이제 러시아의 위협과 심리전에 끌려다니지 않겠다고, 오히려 전략의 주도권을 다시 손에 쥐겠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이는 곧 유럽 안보 질서의 재편을 예고하며, 전후 유럽 질서 이후 가장 깊은 균열이 시작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모든 변화는, 단 한 문장에서 시작됐습니다.

"더 이상 사거리 제한은 없다.”

이 문장은 단지 우크라이나의 전장 지도를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유럽의 안보 질서를 재구성하고, 전쟁의 윤리마저 다시 묻는 시작점이 되고 있습니다. 역사는 지금, 이 문장을 통해 방향을 바꾸고 있습니다.

YTN digital 김재형 (jhkim03@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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