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쪽 판사' 데이비드 수터 전 미 대법관 별세...생전 정부 권력 집중 경고

'대쪽 판사' 데이비드 수터 전 미 대법관 별세...생전 정부 권력 집중 경고

2025.05.11. 오전 0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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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와 보수에 얽매이지 않고 법리에만 입각한 판결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 미국의 데이비드 수터 전 연방대법관이 현지시각 8일 뉴햄프셔주 자택에서 향년 85세를 일기로 별세했습니다.

하버드대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옥스퍼드대에서 로즈 장학생으로 석사 학위를 받은 수터 전 대법관은 뉴햄프셔주 법무장관 등을 역임했습니다.

이후 1990년 조지 H.W. 부시 대통령 시절 연방 대법관으로 임명되자 공화당 진영에서는 온건한 보수주의자로 분류된 수터가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판결을 할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수터 전 대법관은 여성의 낙태 권리를 인정하는 '로 대 웨이드' 판례를 유지하고, 공립 고등학교 졸업식에서 종교 의례를 금지하는 판결에 참여해 보수층의 기대와 다른 행보를 보였습니다.

또 지적 장애를 가진 살인범에 대한 사형 집행 금지, 성인 간의 합의된 동성 성관계 처벌 금지 등 여러 차례 진보적 판결에 참여했습니다.

2000년 미국 대선을 둘러싼 '재개표 소송전'에서는 자신을 지명한 부시 전 대통령의 아들인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당선을 확정 지은 다수 의견의 편에 서지 않기도 했습니다.

이런 수터의 판결에 실망한 보수 진영에서는 "더 이상의 수터는 안 된다"(No more Souters)라는 구호와 함께 대법원 구성을 더 보수 성향으로 쏠리도록 바꾸려는 운동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수터 전 대법관의 전기를 쓴 작가 틴슬리 야브로는 수터가 "편향된 입장에 서지 않았다"고 기술했습니다.

실제로 2008년 미국 최대 에너지 기업 엑손모빌이 알래스카 기름 유출 사고와 관련해 피해자들에게 지급할 징벌적 배상금을 대폭 감액하는 등 사안에 따라 진보와 보수 사이를 넘나들었습니다.

연방 대법관 재직 시절 수터는 집무실에서 요구르트와 사과로 점심을 해결하는 등 소탈한 생활 태도를 유지했다고 AP는 전했습니다.

대법원의 업무가 본격적으로 이뤄지는 10월부터 이듬해 여름까지는 청사에서 가까운 곳에 방을 얻고 주 7일, 하루 12시간을 사무실에 머물렀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수터는 이 기간에 여가를 위해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며 '지적 뇌 수술'을 받는 기분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역대 연방 대법관 중 6명뿐인 독신자였던 수터가 임명됐을 때 언론에서는 "수도인 워싱턴 DC에서 가장 주목받는 총각"이라는 농담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수터는 업무 기간에는 집 근처 군 기지에서 조깅을 하는 것 외에는 사교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또 여름에 휴정기가 찾아오면 고향인 뉴햄프셔로 돌아가 산을 타는 데 열중하는 등 수도승 같은 생활을 했습니다.

퇴임 뒤 뉴햄프셔에 새 주택을 구매했을 때는 수터가 보유한 책의 무게 때문에 집 바닥이 무너질까 걱정했다는 일화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2012년 인터뷰에서 "문제가 제기되지 않으면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지 알 수 없게 된다"고 언급하는 등 생전 수터 전 대법관은 정부 권력에 대한 견제를 강조했습니다.

당시 수터는 "문제가 심각해졌을 때, 어떤 이가 등장해 '내게 권력을 몰아준다면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할 것이다. 이것이 로마 공화정이 붕괴한 방식"이라고 경고했습니다.





YTN 이승윤 (risungyoon@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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