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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행 : 호준석 앵커, 김선영 앵커
■ 출연 : 최은미 /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앵커]
일본 상원 격인 참의원 선거에서자민당 등 연랍여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했고 개헌에 찬성하는 정당까지 치면 3분의 2, 여유 있게 넘었습니다. 아베 효과인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앵커]
앞으로 한일 관계에도 보다 변화가 생길 거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데요. 전문가와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최은미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님 나오셨습니다. 어서 오세요.
[앵커]
이제 기시다 총리 앞으로의 행보, 그다음에 한일 관계 전망하기 전에 우선 아베 전 총리 장례식이 내일 열린다면서요? 절차가 어떻게 되는 건지 자세히 말씀해 주십시오.
[최은미]
우선은 오늘 가족들과 그리고 친지들이 모여서. 일본에서는 통야라고 부르는데, 우리말로 했을 때 가족들이나 친지들이 함께 모여서 고인을 기리는 시간을 갖고요. 그리고 내일 가족장으로 치러지고 아베 총리의 경우에는 전직 총리였기 때문에 또 당이나 국가 차원에서 다시 합동 장례식이 있을 예정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앵커]
일본 열도가 그야말로 충격에 휩싸였다고 볼 수 있는데요. 아베 전 총리가 일본 정치사에 굉장히 존재감이 컸던 인물이잖아요. 어떤 인물로 역사에 남게 될까요?
[최은미]
우선 아베 총리 같은 경우는 2006년부터 2007년까지 1차 내각을 포함해서 통산 8년 8개월 정도, 그러니까 9년 정도 총리를 했었고요. 역대 최장기간 총리를 했었고 정계에 입문한 다음부터는 유력한 총리 후보가 되면서 소위 보수의 황태자라고 불릴 정도로 굉장히 주목을 받았고요.
현재까지 보수의 상징이기도 하고 자민당 최대 파벌, 아베파라고 하는데 우리로 치면 계파인 거죠. 파벌의 영수로 있었고 보수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런 데다가 총리를 하면서 6번의 국정선거를 치르면서 모두 선거를 승리로 이끌었고요.
자민당 총재만 3연임을 했고 자민당 내에서 아베 1강 구도라고 할 만큼 굉장히 정치적인 영향력이 컸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사실 총리를 그만두고 나서도 그 이후에 스가 총리나 기시다 총리가 들어설 때도 다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킹메이커로서도 굉장한 입지를 굳히고 있었고요.
물론 호불호는 갈리겠지만 역대 최장기간의 총리였고 또 영향력을 많이 행사하다 보니까 일본 정치를 논하면서 아베 총리를 빼고 이야기할 수는 없을 거라고 보고 있습니다.
[앵커]
우리나라와의 관계나 또 한국에 대한 정서 이런 것은 어땠는지도 덧붙여서 말씀해 주시죠.
[최은미]
개인적으로는 한국을 좋아했고 또 부인도 한국의 팬이다라는 얘기를 많이 하셔서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좋아하고 친근감을 많이 표시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다만 외교안보적인 측면에 있어서는 본인이 가지고 있는 보수적인 성향들, 이런 것들이 많이 드러나면서 한국과는 대립각이 많이 섰던 그런 정치인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앵커]
아무래도 많은 분들이 그럴 거다 예상은 했는데 참의원 선거 결과 보니까 이번 피습 사건이 큰 영향이 있었다는 분석이 많습니다. 지금 보수가 결집했다, 이런 분석이 나오고 있죠?
[최은미]
사실상 이번 선거의 모든 이슈를 다 덮었다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굉장히 큰 사건이었고 또 이 사건을 통해서 참의원 선거 이틀 전이었고 이게 선거 전에 있었다라는 것 때문에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다, 이런 얘기가 나왔고 또 아베 총리라고 하는 굉장히 일본 정치 자민당 보수의 상징 같은 인물이 피습이 되면서 정치적으로 영향력이 클 것이다라고 생각을 했는데 용의자는 정치적인 이유 때문은 아니라고 했습니다마는 어쨌든 선거에 미치는 영향력은 컸고 보도를 봤더니 교도통신 보도를 보니까 최종 투표율이 51.68%로 나왔더라고요.
3년 전에 투표율이 48% 정도 됐었는데요. 투표율은 다소 높아졌다고 볼 수 있고 또 TV도쿄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13%가 자민당으로 투표를 할 것으로 바꿨다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사실상 수치로만 보면 생각했던 것보다 그렇게 많은 변화가 있지는 않았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일본에서 워낙 투표율이 낮았던 것도 있고 이번에 더 떨어질 수도 있을 거다라는 관측이 있었던 것에 비하면.
[앵커]
민심이 좀 안 좋았었잖아요.
[최은미]
그렇기도 하고 워낙 일본에서는 투표율 자체가 그렇게 높지는 않습니다. 그러던 상황이다 보니까 투표율에 대한 기대는 별로 없었는데 이번에 이런 사건들로 인해서 사람들이 제 생각에는 오히려 무당파나 기존에 투표를 하지 않으려고 하셨던 분들이 많이 움직이셨을 것 같아요.
그래서 투표를 하러 많이 갔고 결과적으로 자민당은 압승을 했고 또 개헌 4당이라고 부르는데 자민당, 공명당, 일본유신회 그리고 국민민주당을 합쳐서 개헌 발의가 필요한 3분의 2의 의석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인가라고 했는데 확보를 했고요.
그래서 사실 앞으로는 자민당은 더 강해질 거라고 보고요. 다만 그 방향이 아베 총리가 남겼던 뜻, 유지를 따라서 기존에 자민당이 하려고 했던 아베 총리가 중심이 돼서 하려고 했던 그 정책들을 더 강하게 추진을 할 것인지, 아니면 다른 방향으로 갈 것인지, 이 부분은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앵커]
저희가 우려하는 부분이 바로 앞부분이지 않습니까? 앞의 선택일 가능성, 개헌을 추진하고 그래서 평화헌법을 바꾸고 군대를 헌법에 명문화하는. 그 개헌을 하기 위해서는 일본에서 어떤 절차가 필요한지를 말씀을 해 주시죠.
[최은미]
개헌을 하기 위해서는 일단은 중의원에서 발의가 돼야 되고 그리고 참의원에서 발의가 된 다음에 국민투표까지 거쳐야 되는데요. 이게 필요한 의석수가 있다 보니까 저희가 얘기하는 개헌에 찬성하는 의원들이 얼마나 있느냐. 그리고 그 인원 수가 전체 3분의 2가 되어야 돼서.
[앵커]
중의원, 참의원 다?
[최은미]
그래서 그게 다 됐을 경우에 그다음에 국민투표를 해서 50% 이상이 찬성을 해야 되는데 이러한 절차적인 부분에 있어서 사실상 어렵다라는 이야기가 많이 있었고요. 만약에 중의원과 참의원에서 통과를 해서 국민투표로 간다 하더라도 국민 여론은 사실 개헌에 대해서 거의 반반이라고 할 정도로 찬성 여론이 높지는 않아서 불가능할 거라고 많이 봤었는데 최근에 우크라이나 사태나 여러 국제 정세들이 굉장히 위협적인 그런 상황들이 오면서 방위비 증액이라든지 혹은 방위력 증강, 나아가서 개헌에 대한 논의에 대해서는 찬성 여론이 높은 편입니다.
탄력을 받았다라고 볼 수 있는데 다만 개헌 논의의 필요성에는 동조를 하나, 그렇다고 해서 실제로 개헌을 할 것인가, 이 부분에 대해서는 또 여론이 갈리는 부분이 있어서 이 부분도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앵커]
개헌이 아무래도 아베 전 총리의 필생의 과업이었기 때문에 이게 여론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지도 봐야 될 것 같고 기시다 총리하고 아베 전 총리하고는 결이 다르잖아요. 같은 보수지만. 기시다 총리가 좀 더 유연한 보수로 꼽히는데 그러면 이제는 아베 전 총리가 날 밀어주기는 했지만 이제 내 목소리 낼 거다, 이렇게 갈 수도 있을까요?
[최은미]
말씀하신 것처럼 보수라고 하는, 자민당이라고 하는 큰 틀에서 자민당 내에도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기 때문에 기시다는 온건 보수, 비둘기파였다면 아베 총리 같은 경우는 매파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이게 앞으로 어떻게 될 거냐 하는 시나리오를 세 가지 정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하나는 보수가 아베 총리가 이렇게 사망을 한 것들로 인해서, 그게 계기가 돼서 더 결집을 해서 보수 우파의 목소리를 내는 시나리오가 하나가 있고요.
두 번째는 이 틈에 말씀하신 것처럼 기시다 총리가 본인의 색깔을 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경우에는 좀 더 온건한 목소리를 내겠죠. 그래서 이게 시나리오 두 번째고.
[앵커]
우리한테 좋은 거죠?
[최은미]
네, 그렇게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시나리오 세 번째 같은 경우는 역시나 구심점이 사라졌기 때문에 그다음 차기를 노리는 정치인들이 많이 나오게 될 거예요. 이럴 경우에는 여러 사람들, 사실 아직까지는 누가 다음 될 것 같다라는 게 잘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예전에 춘추전국시대처럼 여러 정치인들이 서로 구심점이 되기 위한 노력을 하면서 그 혼란이 지속되는 것을 세 번째 시나리오로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세 가지 시나리오 중에서 저는 사실은 두 번째는 조금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요.
만약에 기시다 총리가 본인의 목소리를 내려면 역시나 그 정도의 리더십을 보이고 뭔가 많이 끌어와야 되는데 여태까지 보여준 기시다 총리의 리더십은 주도하는 리더십이라기보다는 좀 대화를 많이 듣고 신중하게 결정하는 이런 리더십이었던 데다가 이 혼란의 상황에서 뭔가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게 쉽지는 않을 거라고 보고요.
그런 차원에서는 오히려 자민당 세력을 결집시키기 위해서 기존에 자민당이 추진했던 정책들을 더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 가능성도 있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앵커]
한일 관계는 어쨌든 개선이 돼야 될 텐데 이번에 윤석열 대통령도 일본 대사관 가서 조문을 하고 우리 쪽 아마 총리나 직접 가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고 하는데 잘하는 선택이라고 보셨습니까? 어떻습니까?
[최은미]
이 부분은 한일 관계와 관계 없이 주변국, 바로 이웃나라에서 일어난 사건이고 또 굉장히 민주주의에 대한. 총기 규제라는 것은 총기 소지가 엄격하게 금지가 되어 있는 나라에서 일어난 일이다 보니까 그런 차원에서 저희가 같이 아픔을 나누는 측면에서 저는 조문을 결정하는 것은 좋다고 보고요.
다만 이걸 계기로 해서 한일 관계를 풀어보려거나 이런 것들보다는 우선 아픔을 나누고 그리고 다시 또 한일 관계 관련한 부분들을 논의하는 게 맞을 거라고 봅니다.
[앵커]
아베 전 총리 피격 사건과 관련해서 우리 측에서도 조문을 갔는데요. 지금 화면이 들어온 것 같습니다. 주한 일본대사관에 마련된 분양소에 박진 외교부 장관이 조문을 갔는데요. 화면을 보여주시죠.
박진 외교부 장관 모습이 나오고 있고요. 방명록에 깊은 애도와 위로의 뜻을 전한다. 이런 조문의 말을 남겼습니다.
[앵커]
조금 전에 최 박사님 말씀하신 대로 이런 일을 계기로 해서 두 나라가 같은 부분을 확인하고 또 서로를 위로하고 이런 것이 앞으로의 관계 개선에 자양분이 되는, 토대가 되는 그런 것이고 그런 의미를 또 담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박진 외교장관이 직접 일본 대사관. 사실 몇 년 동안 일본 대사관에 우리 고위 인사들이 가기가 어려운 그런 상황이었죠. 그런데 오늘 직접 외교 장관이 방문을 해서 조문을 했고 아마도 우리 대통령도 직접 방문할 것으로 알려졌고 일본으로도 우리 고위 사절단이 가게 될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앵커]
한덕수 총리와 정진석 국회부의장 또 중진 의원들로 구성된 조문 사절단이 일본에 파견이 될 예정인데요. 앞서서 나토 정상회의 윤석열 대통령이 참석했을 때 기시다 총리와 여러 번 대면할 기회가 있었는데 분위기가 좋았고 이것이 정상 간의 만남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이런 기대 섞인 전망들이 많이 나왔거든요. 이런 분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십니까?
[최은미]
정상회의를 많이 기대를 하고 있기는 합니다마는 역시나 양국 간에 있는 현안들 때문에 섣불리 만나기 어려운 그런 상황들이 있는 것 같고요. 여건이 마련이 되면 양측 간에 의지가 강한 만큼 정상회의라든지 한일 관계 개선이라든지 이런 부분들이 좀 더 속도감 있게 진행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기대해봅니다.
[앵커]
우리가 직접 가거나 기시다 총리가 직접 오거나 하기 어려우니까 다른 나라에서 다같이 모이는 기회가 있을 때 그때 하는 방안이 어떠냐라는 의견도 있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최은미]
제3국에서 개최를 해서 다자회의 계기에 개최가 되는 게 사실은 양자 간에 부담이 가장 덜한 부분이기는 한데요. 역시나 저는 그래도 상호 방문 간에 이루어지는 양자회담은 필요하다고 보고 제 기억이 맞다면 저희가 마지막으로 한 게 2011년이어서 11년이 벌써 지나서 이제는 상호 간에, 정상 간에 자주 만나면서 신뢰 회복을 하는 게 급하다고 생각합니다.
[앵커]
아베 전 총리 피격이 이번에 충격적이었던 것은 일본에서 정말 볼 수 없었던 총격 사건이 일어났다는 점에서 충격이 있었고 그리고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많은 사람들이 궁금증을 가지고 있는데 지금까지 밝혀진 것을 다시 한 번 정리를 해 볼까요?
[최은미]
우선 나라시에서 아베 총리가 연설을 하던 중에 총성이 두 발이 울렸고 두 번째 총성에 의해서, 아마도, 화면에 나온 것은 아베 총리의 모습이 사라지면서 그때 많이 피해를 입으신 것 같은데 그 당시에 있었던 용의자는 바로 현장에서 검거가 됐고 그리고 검찰 조사에 의해서 그런 일을 하게 된 경위를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특정 종교를 거론을 했고 그 종교와 아베 총리와의 연관성 때문에 본인이 그런 일을 했다라고 이야기를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앵커]
특정 종교가 어디인지는 아직 우리가 특정할 수는 없습니다마는 과거에는 통일교에 속해 있었다, 이 범인의 어머니가. 하는 데까지는 확인이 됐다면서요?
[최은미]
네, 보도에서 일단은 일본의 한 주간지에서 먼저 통일교라는 보도를 한 것으로 알고 있고요. 또 그 이후에도 여러 군데서 보도가 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한국에서도 그 정도로 얘기가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현재는 신자는 아니지만 신자였던 것은 확인이 된다, 이 정도로.
[앵커]
지금 또 현지에서 걱정이 되는 것은 처음에 재일한국인 범행이다, 이런 잘못된 얘기가 나오면서 거기 동포분들도 안전에 위협을 받고 했다고 하죠?
[최은미]
보통 이렇게 사회적으로 물의가 큰 사건이 일어났을 때 이건 굉장히 안 좋은 시각이기는 한데 재일한국인이다라든지 혹은 국적이 어디냐, 이렇게 물어보는. 트위터나 온라인상에서 무분별하게 퍼지는 부분이 있어서 우려가 많이 되는 부분인데요. 그게 아니다라는 게 판명이 되면서 그 부분은 사그라든 것 같기는 합니다.
[앵커]
충격을 더한 것이 총기 사고라는, 이게 일본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일인데 그런데 또 전직 총리들이 과거에도 이렇게 살해됐었던 적이 여러 번 있었다고 하니까 또 그것도 놀랐고요. 이런 총기 사고가 과거에서 일본에서 있었습니까?
[최은미]
정치인에 대한 피습 사건은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고요. 그런데 총을 사용해서 한 것은 전에는 있었는데 제 기억이 맞다면 전후에는 아마 처음이지 않을까 싶고요.
[앵커]
2차 대전 후에는 처음이란 말씀이십니까?
[최은미]
그러다 보니까 경호도 총은 예상을 못했을 것 같아요. 여태까지 없었고 혹시 있다고 하더라도 칼에 의한 게 많았었다 보니까 그 부분에 대한 것을 신경을 썼던 것 같고. 그러다 보니 뒷부분이 사실 화면을 보면 거의 다 무방비 상태로 놓여져 있었기 때문에 경호도 부실했고 또 일본 사회에서의 충격도 굉장히 큰 것 같습니다.
[앵커]
참 안타까운 사건이었고 어쨌든 자민당이 압승을 거뒀는데 온건파로 분류가 되는 기시다 총리의 앞으로 정치적 변화가 한일 관계에는 훈풍이 될지 이 부분도 관심 있게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최은미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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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연 : 최은미 /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앵커]
일본 상원 격인 참의원 선거에서자민당 등 연랍여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했고 개헌에 찬성하는 정당까지 치면 3분의 2, 여유 있게 넘었습니다. 아베 효과인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앵커]
앞으로 한일 관계에도 보다 변화가 생길 거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데요. 전문가와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최은미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님 나오셨습니다. 어서 오세요.
[앵커]
이제 기시다 총리 앞으로의 행보, 그다음에 한일 관계 전망하기 전에 우선 아베 전 총리 장례식이 내일 열린다면서요? 절차가 어떻게 되는 건지 자세히 말씀해 주십시오.
[최은미]
우선은 오늘 가족들과 그리고 친지들이 모여서. 일본에서는 통야라고 부르는데, 우리말로 했을 때 가족들이나 친지들이 함께 모여서 고인을 기리는 시간을 갖고요. 그리고 내일 가족장으로 치러지고 아베 총리의 경우에는 전직 총리였기 때문에 또 당이나 국가 차원에서 다시 합동 장례식이 있을 예정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앵커]
일본 열도가 그야말로 충격에 휩싸였다고 볼 수 있는데요. 아베 전 총리가 일본 정치사에 굉장히 존재감이 컸던 인물이잖아요. 어떤 인물로 역사에 남게 될까요?
[최은미]
우선 아베 총리 같은 경우는 2006년부터 2007년까지 1차 내각을 포함해서 통산 8년 8개월 정도, 그러니까 9년 정도 총리를 했었고요. 역대 최장기간 총리를 했었고 정계에 입문한 다음부터는 유력한 총리 후보가 되면서 소위 보수의 황태자라고 불릴 정도로 굉장히 주목을 받았고요.
현재까지 보수의 상징이기도 하고 자민당 최대 파벌, 아베파라고 하는데 우리로 치면 계파인 거죠. 파벌의 영수로 있었고 보수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런 데다가 총리를 하면서 6번의 국정선거를 치르면서 모두 선거를 승리로 이끌었고요.
자민당 총재만 3연임을 했고 자민당 내에서 아베 1강 구도라고 할 만큼 굉장히 정치적인 영향력이 컸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사실 총리를 그만두고 나서도 그 이후에 스가 총리나 기시다 총리가 들어설 때도 다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킹메이커로서도 굉장한 입지를 굳히고 있었고요.
물론 호불호는 갈리겠지만 역대 최장기간의 총리였고 또 영향력을 많이 행사하다 보니까 일본 정치를 논하면서 아베 총리를 빼고 이야기할 수는 없을 거라고 보고 있습니다.
[앵커]
우리나라와의 관계나 또 한국에 대한 정서 이런 것은 어땠는지도 덧붙여서 말씀해 주시죠.
[최은미]
개인적으로는 한국을 좋아했고 또 부인도 한국의 팬이다라는 얘기를 많이 하셔서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좋아하고 친근감을 많이 표시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다만 외교안보적인 측면에 있어서는 본인이 가지고 있는 보수적인 성향들, 이런 것들이 많이 드러나면서 한국과는 대립각이 많이 섰던 그런 정치인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앵커]
아무래도 많은 분들이 그럴 거다 예상은 했는데 참의원 선거 결과 보니까 이번 피습 사건이 큰 영향이 있었다는 분석이 많습니다. 지금 보수가 결집했다, 이런 분석이 나오고 있죠?
[최은미]
사실상 이번 선거의 모든 이슈를 다 덮었다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굉장히 큰 사건이었고 또 이 사건을 통해서 참의원 선거 이틀 전이었고 이게 선거 전에 있었다라는 것 때문에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다, 이런 얘기가 나왔고 또 아베 총리라고 하는 굉장히 일본 정치 자민당 보수의 상징 같은 인물이 피습이 되면서 정치적으로 영향력이 클 것이다라고 생각을 했는데 용의자는 정치적인 이유 때문은 아니라고 했습니다마는 어쨌든 선거에 미치는 영향력은 컸고 보도를 봤더니 교도통신 보도를 보니까 최종 투표율이 51.68%로 나왔더라고요.
3년 전에 투표율이 48% 정도 됐었는데요. 투표율은 다소 높아졌다고 볼 수 있고 또 TV도쿄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13%가 자민당으로 투표를 할 것으로 바꿨다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사실상 수치로만 보면 생각했던 것보다 그렇게 많은 변화가 있지는 않았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일본에서 워낙 투표율이 낮았던 것도 있고 이번에 더 떨어질 수도 있을 거다라는 관측이 있었던 것에 비하면.
[앵커]
민심이 좀 안 좋았었잖아요.
[최은미]
그렇기도 하고 워낙 일본에서는 투표율 자체가 그렇게 높지는 않습니다. 그러던 상황이다 보니까 투표율에 대한 기대는 별로 없었는데 이번에 이런 사건들로 인해서 사람들이 제 생각에는 오히려 무당파나 기존에 투표를 하지 않으려고 하셨던 분들이 많이 움직이셨을 것 같아요.
그래서 투표를 하러 많이 갔고 결과적으로 자민당은 압승을 했고 또 개헌 4당이라고 부르는데 자민당, 공명당, 일본유신회 그리고 국민민주당을 합쳐서 개헌 발의가 필요한 3분의 2의 의석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인가라고 했는데 확보를 했고요.
그래서 사실 앞으로는 자민당은 더 강해질 거라고 보고요. 다만 그 방향이 아베 총리가 남겼던 뜻, 유지를 따라서 기존에 자민당이 하려고 했던 아베 총리가 중심이 돼서 하려고 했던 그 정책들을 더 강하게 추진을 할 것인지, 아니면 다른 방향으로 갈 것인지, 이 부분은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앵커]
저희가 우려하는 부분이 바로 앞부분이지 않습니까? 앞의 선택일 가능성, 개헌을 추진하고 그래서 평화헌법을 바꾸고 군대를 헌법에 명문화하는. 그 개헌을 하기 위해서는 일본에서 어떤 절차가 필요한지를 말씀을 해 주시죠.
[최은미]
개헌을 하기 위해서는 일단은 중의원에서 발의가 돼야 되고 그리고 참의원에서 발의가 된 다음에 국민투표까지 거쳐야 되는데요. 이게 필요한 의석수가 있다 보니까 저희가 얘기하는 개헌에 찬성하는 의원들이 얼마나 있느냐. 그리고 그 인원 수가 전체 3분의 2가 되어야 돼서.
[앵커]
중의원, 참의원 다?
[최은미]
그래서 그게 다 됐을 경우에 그다음에 국민투표를 해서 50% 이상이 찬성을 해야 되는데 이러한 절차적인 부분에 있어서 사실상 어렵다라는 이야기가 많이 있었고요. 만약에 중의원과 참의원에서 통과를 해서 국민투표로 간다 하더라도 국민 여론은 사실 개헌에 대해서 거의 반반이라고 할 정도로 찬성 여론이 높지는 않아서 불가능할 거라고 많이 봤었는데 최근에 우크라이나 사태나 여러 국제 정세들이 굉장히 위협적인 그런 상황들이 오면서 방위비 증액이라든지 혹은 방위력 증강, 나아가서 개헌에 대한 논의에 대해서는 찬성 여론이 높은 편입니다.
탄력을 받았다라고 볼 수 있는데 다만 개헌 논의의 필요성에는 동조를 하나, 그렇다고 해서 실제로 개헌을 할 것인가, 이 부분에 대해서는 또 여론이 갈리는 부분이 있어서 이 부분도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앵커]
개헌이 아무래도 아베 전 총리의 필생의 과업이었기 때문에 이게 여론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지도 봐야 될 것 같고 기시다 총리하고 아베 전 총리하고는 결이 다르잖아요. 같은 보수지만. 기시다 총리가 좀 더 유연한 보수로 꼽히는데 그러면 이제는 아베 전 총리가 날 밀어주기는 했지만 이제 내 목소리 낼 거다, 이렇게 갈 수도 있을까요?
[최은미]
말씀하신 것처럼 보수라고 하는, 자민당이라고 하는 큰 틀에서 자민당 내에도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기 때문에 기시다는 온건 보수, 비둘기파였다면 아베 총리 같은 경우는 매파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이게 앞으로 어떻게 될 거냐 하는 시나리오를 세 가지 정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하나는 보수가 아베 총리가 이렇게 사망을 한 것들로 인해서, 그게 계기가 돼서 더 결집을 해서 보수 우파의 목소리를 내는 시나리오가 하나가 있고요.
두 번째는 이 틈에 말씀하신 것처럼 기시다 총리가 본인의 색깔을 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경우에는 좀 더 온건한 목소리를 내겠죠. 그래서 이게 시나리오 두 번째고.
[앵커]
우리한테 좋은 거죠?
[최은미]
네, 그렇게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시나리오 세 번째 같은 경우는 역시나 구심점이 사라졌기 때문에 그다음 차기를 노리는 정치인들이 많이 나오게 될 거예요. 이럴 경우에는 여러 사람들, 사실 아직까지는 누가 다음 될 것 같다라는 게 잘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예전에 춘추전국시대처럼 여러 정치인들이 서로 구심점이 되기 위한 노력을 하면서 그 혼란이 지속되는 것을 세 번째 시나리오로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세 가지 시나리오 중에서 저는 사실은 두 번째는 조금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요.
만약에 기시다 총리가 본인의 목소리를 내려면 역시나 그 정도의 리더십을 보이고 뭔가 많이 끌어와야 되는데 여태까지 보여준 기시다 총리의 리더십은 주도하는 리더십이라기보다는 좀 대화를 많이 듣고 신중하게 결정하는 이런 리더십이었던 데다가 이 혼란의 상황에서 뭔가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게 쉽지는 않을 거라고 보고요.
그런 차원에서는 오히려 자민당 세력을 결집시키기 위해서 기존에 자민당이 추진했던 정책들을 더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 가능성도 있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앵커]
한일 관계는 어쨌든 개선이 돼야 될 텐데 이번에 윤석열 대통령도 일본 대사관 가서 조문을 하고 우리 쪽 아마 총리나 직접 가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고 하는데 잘하는 선택이라고 보셨습니까? 어떻습니까?
[최은미]
이 부분은 한일 관계와 관계 없이 주변국, 바로 이웃나라에서 일어난 사건이고 또 굉장히 민주주의에 대한. 총기 규제라는 것은 총기 소지가 엄격하게 금지가 되어 있는 나라에서 일어난 일이다 보니까 그런 차원에서 저희가 같이 아픔을 나누는 측면에서 저는 조문을 결정하는 것은 좋다고 보고요.
다만 이걸 계기로 해서 한일 관계를 풀어보려거나 이런 것들보다는 우선 아픔을 나누고 그리고 다시 또 한일 관계 관련한 부분들을 논의하는 게 맞을 거라고 봅니다.
[앵커]
아베 전 총리 피격 사건과 관련해서 우리 측에서도 조문을 갔는데요. 지금 화면이 들어온 것 같습니다. 주한 일본대사관에 마련된 분양소에 박진 외교부 장관이 조문을 갔는데요. 화면을 보여주시죠.
박진 외교부 장관 모습이 나오고 있고요. 방명록에 깊은 애도와 위로의 뜻을 전한다. 이런 조문의 말을 남겼습니다.
[앵커]
조금 전에 최 박사님 말씀하신 대로 이런 일을 계기로 해서 두 나라가 같은 부분을 확인하고 또 서로를 위로하고 이런 것이 앞으로의 관계 개선에 자양분이 되는, 토대가 되는 그런 것이고 그런 의미를 또 담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박진 외교장관이 직접 일본 대사관. 사실 몇 년 동안 일본 대사관에 우리 고위 인사들이 가기가 어려운 그런 상황이었죠. 그런데 오늘 직접 외교 장관이 방문을 해서 조문을 했고 아마도 우리 대통령도 직접 방문할 것으로 알려졌고 일본으로도 우리 고위 사절단이 가게 될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앵커]
한덕수 총리와 정진석 국회부의장 또 중진 의원들로 구성된 조문 사절단이 일본에 파견이 될 예정인데요. 앞서서 나토 정상회의 윤석열 대통령이 참석했을 때 기시다 총리와 여러 번 대면할 기회가 있었는데 분위기가 좋았고 이것이 정상 간의 만남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이런 기대 섞인 전망들이 많이 나왔거든요. 이런 분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십니까?
[최은미]
정상회의를 많이 기대를 하고 있기는 합니다마는 역시나 양국 간에 있는 현안들 때문에 섣불리 만나기 어려운 그런 상황들이 있는 것 같고요. 여건이 마련이 되면 양측 간에 의지가 강한 만큼 정상회의라든지 한일 관계 개선이라든지 이런 부분들이 좀 더 속도감 있게 진행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기대해봅니다.
[앵커]
우리가 직접 가거나 기시다 총리가 직접 오거나 하기 어려우니까 다른 나라에서 다같이 모이는 기회가 있을 때 그때 하는 방안이 어떠냐라는 의견도 있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최은미]
제3국에서 개최를 해서 다자회의 계기에 개최가 되는 게 사실은 양자 간에 부담이 가장 덜한 부분이기는 한데요. 역시나 저는 그래도 상호 방문 간에 이루어지는 양자회담은 필요하다고 보고 제 기억이 맞다면 저희가 마지막으로 한 게 2011년이어서 11년이 벌써 지나서 이제는 상호 간에, 정상 간에 자주 만나면서 신뢰 회복을 하는 게 급하다고 생각합니다.
[앵커]
아베 전 총리 피격이 이번에 충격적이었던 것은 일본에서 정말 볼 수 없었던 총격 사건이 일어났다는 점에서 충격이 있었고 그리고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많은 사람들이 궁금증을 가지고 있는데 지금까지 밝혀진 것을 다시 한 번 정리를 해 볼까요?
[최은미]
우선 나라시에서 아베 총리가 연설을 하던 중에 총성이 두 발이 울렸고 두 번째 총성에 의해서, 아마도, 화면에 나온 것은 아베 총리의 모습이 사라지면서 그때 많이 피해를 입으신 것 같은데 그 당시에 있었던 용의자는 바로 현장에서 검거가 됐고 그리고 검찰 조사에 의해서 그런 일을 하게 된 경위를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특정 종교를 거론을 했고 그 종교와 아베 총리와의 연관성 때문에 본인이 그런 일을 했다라고 이야기를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앵커]
특정 종교가 어디인지는 아직 우리가 특정할 수는 없습니다마는 과거에는 통일교에 속해 있었다, 이 범인의 어머니가. 하는 데까지는 확인이 됐다면서요?
[최은미]
네, 보도에서 일단은 일본의 한 주간지에서 먼저 통일교라는 보도를 한 것으로 알고 있고요. 또 그 이후에도 여러 군데서 보도가 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한국에서도 그 정도로 얘기가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현재는 신자는 아니지만 신자였던 것은 확인이 된다, 이 정도로.
[앵커]
지금 또 현지에서 걱정이 되는 것은 처음에 재일한국인 범행이다, 이런 잘못된 얘기가 나오면서 거기 동포분들도 안전에 위협을 받고 했다고 하죠?
[최은미]
보통 이렇게 사회적으로 물의가 큰 사건이 일어났을 때 이건 굉장히 안 좋은 시각이기는 한데 재일한국인이다라든지 혹은 국적이 어디냐, 이렇게 물어보는. 트위터나 온라인상에서 무분별하게 퍼지는 부분이 있어서 우려가 많이 되는 부분인데요. 그게 아니다라는 게 판명이 되면서 그 부분은 사그라든 것 같기는 합니다.
[앵커]
충격을 더한 것이 총기 사고라는, 이게 일본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일인데 그런데 또 전직 총리들이 과거에도 이렇게 살해됐었던 적이 여러 번 있었다고 하니까 또 그것도 놀랐고요. 이런 총기 사고가 과거에서 일본에서 있었습니까?
[최은미]
정치인에 대한 피습 사건은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고요. 그런데 총을 사용해서 한 것은 전에는 있었는데 제 기억이 맞다면 전후에는 아마 처음이지 않을까 싶고요.
[앵커]
2차 대전 후에는 처음이란 말씀이십니까?
[최은미]
그러다 보니까 경호도 총은 예상을 못했을 것 같아요. 여태까지 없었고 혹시 있다고 하더라도 칼에 의한 게 많았었다 보니까 그 부분에 대한 것을 신경을 썼던 것 같고. 그러다 보니 뒷부분이 사실 화면을 보면 거의 다 무방비 상태로 놓여져 있었기 때문에 경호도 부실했고 또 일본 사회에서의 충격도 굉장히 큰 것 같습니다.
[앵커]
참 안타까운 사건이었고 어쨌든 자민당이 압승을 거뒀는데 온건파로 분류가 되는 기시다 총리의 앞으로 정치적 변화가 한일 관계에는 훈풍이 될지 이 부분도 관심 있게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최은미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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