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못하는 분위기"...아베의 '올림픽 강행' 이유는?

"말 못하는 분위기"...아베의 '올림픽 강행' 이유는?

2020.03.20. 오후 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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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일본 현지 연결해서 분위기 알아보겠습니다. 이경아 특파원!

오늘 오전에 열린 도착식 표정 전해주시죠?

[기자]
도착식은 오늘 오전 11시 20분부터 일본 미야기 현에 있는 항공자위대 기지에서 열렸습니다.

오늘 현지에는 강풍경보가 내려진 상태였는데요.

거센 바람 속에 도착한 올림픽 성화는 개최 여부를 둘러싸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도쿄올림픽이 처한 입장과도 닮아 보였습니다.

성화 도착식은 원래 천여 명이 참석해 국민적 축제로 치를 계획이었는데요.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 관계자 일부만 참석한 채 조용히 열렸습니다.

도착식의 하이라이트로 기대를 모았던 게 항공자위대 곡예비행팀이 올림픽 마크를 하늘에 그리는 이벤트였는데요.

이것도 바람이 거세다 보니 제대로 보이지 않은 채 흐지부지 끝났습니다.

[앵커]
그리스에서는 코로나19 여파로 성화 봉송 행사가 취소됐는데요.

일본에서는 계획대로 진행하나요?

[기자]
성화 봉송 행사는 오는 26일 후쿠시마 현 올림픽 시설인 J 빌리지를 출발해 전국을 돌 예정입니다.

성화 봉송에는 주자 약 만 명이 참여할 예정입니다.

원래 올림픽 성화 봉송길은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박수와 환호 속에 치러지지만 이번에는 그러지 못할 것 같습니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행사를 자제하라는 정부 방침 때문인데요.

성화 도착식도 그렇고 봉송 행사도 필수 인원만 참석한 채 조용히 진행될 것으로 보입니다.

성화는 앞으로 1주일간 후쿠시마와 미야기, 이와테 현에 '부흥의 불꽃'이라는 이름으로 전시될 예정입니다.

이 3개 현은 지난 2011년 동일본대지진 당시 가장 큰 피해를 입었던 곳인데요.

이번 전시는 도쿄올림픽을, 동일본 대지진을 딛고 일어선 '부흥 올림픽'으로 치르겠다는 아베 정권의 의지가 강하게 엿보이는 대목입니다.

[앵커]
올림픽 개최를 둘러싼 여론도 연기하는 게 낫다는 쪽으로 최근 돌아섰다면서요?

[기자]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국민 다수가 도쿄올림픽을 연기하는 게 낫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지난 14일과 15일 실시한 아사히신문 여론 조사 결과 올림픽을 연기하자고 응답한 사람이 63%였습니다.

예정대로 실시하자는 응답자는 23%에 머물렀고요.

지난 17일 교도통신 조사 결과를 보면 올림픽을 예정대로 치를 수 없을 것이라고 보는 응답자가 69.9%로 다수를 차지했습니다.

일본 내 올림픽 관계자들도 하나 둘씩 연기를 공식적으로 거론하고 있습니다.

지난주 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 다카하시 이사가 1~2년 연기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밝혔고요.

오늘은 일본 올림픽위원회 야마모토 카오리 이사가 "선수들을 생각한다면 연기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올림픽을 연다고 누가 기뻐하겠느냐"며 신랄한 비판을 쏟아냈습니다.

야마모토 이사는 '다들 이런 상황을 알고 있으면서도 말 못하는 분위기가 조직위 안에 있다'고 지적했는데요.

아베 총리가 대회 강행 의지를 수차례 밝힌 것이 관계자들 사이에서 일종의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앵커]
국내외 여건이 녹녹치 않은 상황인데요.

아베 총리가 정상 개최에 대한 의지를 강력하게 밝히고 있는 배경은 뭘까요?

[기자]
지난 리우올림픽 폐막식 당시 슈퍼 마리오 모자를 쓰고 등장한 아베 총리의 모습, 기억하는 분들 있으실 겁니다.

국가 원수로서는 참 이례적인 퍼포먼스였는데요.

아베 총리에게 이번 올림픽은 동일본 대지진 이후 침체에 빠진 일본 사회가 역경을 이겨내고 다시 태어났음을 알리는 일종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지난 11일 열린 동일본 대지진 추도식에서도 이런 의지를 강하게 드러냈는데요.

화려하게, 성공한 올림픽으로 마감한 뒤 국민 여론을 움직여 자신이 정치적 명운을 걸고 추진해 온 개헌을 이뤄내겠다는 꿈도 있었을 겁니다.

실제로 자민당이 올해 가장 중요한 활동 목표로 삼고 있는 것도 바로 개헌 추진입니다.

아베 총리는 내년 9월 임기가 끝나기 전 개헌을 마무리하고 싶다는 뜻을 수차례 밝혔고, 임기 연장을 추진할 것이라는 전망도 많았지만 지금으로는 둘 다 어려워 보입니다.

우군으로 믿었던 트럼프 대통령까지 연기하는 게 어떻겠냐고 공개적으로 말하는 상황에서 정상 개최만을 고집하는 것도 곧 한계에 이를 것으로 보입니다.

[앵커]
지금은 유럽에서 폭발적인 감염 확산이 이어지고 있지만 일본 상황도 심상치 않죠? 도쿄는 안전한 겁니까?

[기자]
일본 정부 전문가 회의가 밝힌 입장을 주목해 봐야 합니다.

어젯밤 열린 기자회견에서 대도시를 중심으로 한 폭발적인 감염 확산을 경계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는데요.

일본에서 가장 많은 인구가 모여 사는 도쿄가 대표적인 곳이 되겠죠.

그 이유는 최근 감염자들을 조사해 본 결과 경로를 알 수 없는 사람들이 크게 늘었다는 겁니다.

일본 정부는 증세가 심한 사람을 우선으로 검사를 실시하고 있는데요.

이 때문에 전문가들도 증상이 나타나지 않거나 가벼운 정도에 그치는 사람들은 검사를 받지 않은 채 이미 지역 사회 곳곳에 바이러스를 확산시키고 있을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일본 내 코로나19 감염자 수는 오늘 오전 통계를 기준으로 1,674명입니다.

하루 전보다 39명 늘어난 수치인데요.

일본 내 검사 건수가 전국에 걸쳐 하루 천여 건에 불과해 실제 확산 상황을 알 수 있겠느냐는 의문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앵커]
도쿄올림픽 취소는 일본 입장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울 테고, 연기를 하게 되더라도 풀어야 할 문제가 만만치 않죠?

[기자]
그렇습니다.

연기할 경우 문제가 되는 것이 비용이 늘어나는 것과 각종 시설, 그리고 일정 확봅니다.

올림픽이 연기되면 그 기간 만큼 시설 관리뿐 아니라 관련 인건비, 각종 홍보에 들어가는 비용 등이 더 들어가게 되고요.

대회 운영에 필요한 경기장 등 시설 예약도 다시 해야 하는데 이걸 원하는 기간에 확보할 수 있느냐는 겁니다.

또 내년에 열 경우는 당장 올림픽 기간에 세계육상선수권과 세계수영선수권, 2개의 국제 대회와 일정이 겹쳐서 조정이 불가피한 상황이고요.

이뿐 아니라 5,600가구 정도 되는 올림픽 선수촌 아파트 입주도 늦어져서 계약자들에 대한 보상 문제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일본의 한 증권사는 대회가 열리지 않을 경우 일본이 입게 될 경제적 손실이 89조 원에 이를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을 내놓기도 했는데요.

대회 취소든 연기든 일본이 입게 될 유무형의 손실은 막대한 수준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상황이 점점 불리해지고 있는데도 일본 정부가 쉽게 연기를 말하지 못하는 속내도 이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도쿄에서 전해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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