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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뉴스-더넓은세계] 홍콩 시위, '우산혁명'의 좌절 반복되나?
Posted : 2019-07-05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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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행 : 노종면 앵커, 박상연 앵커
■ 출연 : 박원곤 / 한동대 국제지역학과 교수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앵커]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지 22년이 지났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여전히 홍콩을 홍콩으로 인식합니다. 이른바 일국양제의 원칙 아래 홍콩이 사회주의 중국과 전혀 다른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런 홍콩에서 대규모 시위가이어지고 있고 중국의 개입 가능성이 흘러나옵니다. 알수록 볼수록 더 넓은 세계, 오늘은 우산 혁명 세대의 분노와 좌절로 뒤덮인 홍콩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과 교수 자리하셨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인터뷰]
안녕하세요.

[앵커]
어서 오세요. 먼저 홍콩의 특수성에 대해서 이해를 해야 지금 홍콩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도 좀 더 설명이 될 것 같습니다. 홍콩은 어떤 곳입니까?

[인터뷰]
홍콩을 얘기하려면 중국과의 관계를 얘기를 안 할 수 없죠. 지금 중국, 정확한 명칭으로는 홍콩특별행정구라고 돼 있고 중국에 속해 있습니다. 19세기 후반에 서구 제국주의 침탈의 역사가 그대로 묻어나오는 거죠. 아편전쟁을 영국이 정말로 정당성이 전혀 없는 전쟁을 걸어와서 그 후에 난징조약 역시 불평등조약이죠. 그 조약을 통해서 중국의 영토인 홍콩을 100년 동안 사실상 강탈하는 그런 협정을 맺게 됩니다. 그리고 나서 중국이 1982년에 다시 이 홍콩에 대한 주권선언을 했고요. 그리고 84년부터 우리한테도 잘 알려진 마가렛 대처 당시 영국 수상이 협의를 시작해서 84년에 반환이 최종적으로 결정되는, 어떻게 보면 중국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뼈아픈 역사가 있는 그런 지역이다라고 생각이 됩니다.

[앵커]
그때 결정됐지만 실제로 넘어온 건 1997년이죠.

[인터뷰]
97년에 넘어왔죠.

[앵커]
반환될 때 자치권 등에 대한 내용이 협정에 담겨 있었나요?

[인터뷰]
그렇습니다. 그것이 핵심이었고요. 영국에서 반환을 할 때 중국과 협약을 맺은 것이고 두 가지가 핵심이었는데, 원칙이죠. 첫 번째는 홍콩은 홍콩인에 의해서 통치된다라는 게 첫 번째였고 두 번째는 아까 잠깐 나왔습니다만 일국양제. 하나의 국가이기는 하지만 두 가지 다른 체제를 유지한다. 그런 의미라서 홍콩의 외교와 국방은 중국이 담당을 하되 그 안에서 입법, 사법, 행정권은 최대한 자치를 보장한다. 두 가지가 사실상 협약에도 포함돼 있습니다.

[앵커]
그렇군요. 지금으로써는 현실성이 떨어질 수 있는 궁금증인데요. 만약에 중국이 그 협정을 어기면 영국이 다시 개입할 수도 있나요?

[인터뷰]
협정을 어기는 모습이 너무나도 많이 드러나 있는 상황인데요. 그렇다고 이미 영국이 굉장히 반발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 차례 영국의 외무부 장관 같은 경우에도 문제가 있다는 얘기를 하고 있는데 협정 자체를 어겼다고 영국이 어느 수준에서 지금 중국에 문제 제기를 할 것인지 그리고 국제사회에서 사실 협정이라는 것, 특히 국가와 국가, 양자협정 같은 경우에는 강제성이 없습니다. 사실상 일방이 어기더라도 그것을 다시 하기 위해서는 쉽지 않은 방법들이 있죠. 우리 지금 한일관계도 그런 부분이 많이 있는 것도 사실이고요. 그렇지만 지금 영국의 입장에서는 매우 심각하다라고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영국이 브렉시트 문제로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고 또 중국이 워낙 국력이 많이 상승된 상태에서 어느 정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라고 판단합니다.

[앵커]
홍콩의 경제적 위상은 어느 정도인가요?

[인터뷰]
홍콩의 경제적 위상이 꽤 높았죠. 그래서 97년에 반환될 때만 하더라도 국민총생산, GDP 대비, 그러니까 중국 전체 GDP 대비 18.4%였습니다.

[앵커]
거의 5분의 1이네요.

[인터뷰]
그렇죠, 굉장히 높았죠.

[앵커]
그 작은 곳이.

[인터뷰]
작은 곳이.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홍콩이 반환되면서 중국이 홍콩화될 것이다라는 얘기들도 있었거든요. 그런데 지금 그런 예상이 다 빗나갔죠. 지금 현재 상황을 보면 홍콩이 전체 중국 GDP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3%도 안 됩니다. 2007년인가요? 상하이보다 낮아져 있고 그리고 홍콩 바로 옆에 선전이라고 어느 정도 낙후됐다라고 하는데 그곳에도 조만간 추월당할 그런 위험이 있을 정도로 홍콩이 전체적인 중국에 차지하는 비중은 낮아진 것이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홍콩은 여전히 상징적인 의미가 있죠. 여전히 아시아 지역의 금융 중심지입니다. 그만큼 세계 모든 기업들이나 금융기관들이 자유롭게 그곳에서 여러 가지 활동을 할 수 있는 제도는 보장돼 있죠.

[앵커]
홍콩의 그런 금융 중심지로서의 위상은 변화가 없지만 중국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떨어진 건 중국 경제력이 확장된 거죠.

[인터뷰]
워낙 짧은 기간에 우리 알다시피 지난 4세기 동안 매년 10%의 성장을 한 전무후무한 그런 역사를 갖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중국이 워낙 급격하게 팽창을 하니까 거기에 비해서 홍콩이 줄어든 모습들이 나타나는 거죠.

[앵커]
이해가 됐습니다. 지금 홍콩의 상황을 앞서 저희가 우산혁명의 좌절과 분노 이렇게 표현을 했는데요. 우산혁명도 잠깐 짚고 본론으로 들어가죠.

[인터뷰]
우산혁명은 매우 중요합니다. 2014년에 있었던 혁명이라고. 우리가 왜 혁명이라고 얘기를 붙이냐면 중국에 지금 홍콩이 속해 있기는 합니다마는 전체적으로 볼 때 중국의 일종의 체제에 대한 문제점을 최초로 제기를 한 거죠. 사실은 그전에 천안문, 톈안문 하나 있기는 있었는데 그 이후에는 홍콩의 우산혁명이 최초입니다. 지금 홍콩을 통치하고 있는 것은 홍콩행정수반, 행정장관이거든요. 그 행정장관을 간선제로 뽑습니다. 그래서 당시 홍콩 사람들이 이것은 일국양제가 잘못된 거다. 직접선거를 해야 되는데 그래서 직접선거를 요구하는 시위가 시작이 돼서 특히 우산혁명이라고 불리는 게홍콩 당국이 강력하게 탄압을 했죠. 최루탄을 많이 쏘고. 그런데 그 최루탄을 막는 수단으로 우산을 썼습니다. 그만큼 비폭력적인 거죠. 많은 국가에서 최루탄에 대한 대항은 화염병을 던지거나 아니면 돌을 쓰거나 하는데 굉장히 평화적인 방법으로 저항을 했다. 일종의 혁명이다라고 불리고요. 그만큼 몇 가지 의미가 있는데 일단 일국양제 우리가 말한 것, 중국이 약속한 것이 얼마나 허구인가라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 것이고 또 그 당시에 참여했던 대다수의 사람들이 젊은 사람들입니다. 젊은 사람들이 정치에 관심이 없었는데 이것을 계기로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런 여러 면에서 그냥 우산시위가 아니라 지금 우산혁명이다, 그렇게 불리고 있죠.

[앵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 행정장관 직선제를 관철을 못 했잖아요. 그러면 지금 있는 홍콩의 시위 상황이 그때 이루지 못한 데서 이어지고 있다, 이렇게 볼 수 있나요?

[인터뷰]
그렇습니다. 이것은 1997년부터 돌아가면 되는 거고요. 97년에 반환이 됐는데 97년 전후로 태어난 세대들이 일종의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시위다라고 많이들 우리가 분석을 하거든요. 말씀드린 2014년에 그들이 경험을 했고 그리고 다시 2019년 현재에 경험을 하고 있는데 그들이 태어나서는 어쨌든 홍콩이라는 곳은 중국이랑 매우 다르죠. 체제 자체가 민주적인 질서를 갖고 있고 자유가 보장된 체제인데 자꾸만 중국이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홍콩을 중국화하려는 모습들이 보이니까 2014년에 우산혁명을 경험했고 다시 2019년에 그런 모습들이 드러난 거고요. 또 특히 핵심 중에 하나는 아까 잠깐 얘기한 경제적인 문제. 점차 홍콩이 경제적인 여러 가지에 대해서 축소가 되고 또 빈부격차가 지금 굉장히 심합니다. 왜냐하면 중국 부자들의 굉장히 많은 숫자가 홍콩으로 이주를 해 왔거든요. 그랬더니 홍콩의 물가가 굉장히 높아지면서 서로 간에 빈부격차가 굉장히 심해진 그런 상황이 연출되니까 젊은 세대들의 좌절감이 지금 굉장히 큰 상황이죠.

[앵커]
지금 홍콩에서 발생하고 있는 시위의 발단이 범죄인 인도법안 아니겠습니까? 왜 문제가 된 거죠?

[인터뷰]
이거는 좀 복잡한 문제인데요. 홍콩은 이른바 속지주의라는 것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작년 2월달에 홍콩 사람 1명이 대만에 가서 자기 여자친구를 살해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홍콩으로 돌아왔는데 문제가 홍콩은 속지주의니까 범인임을 뻔히 알면서도 살인죄로 기소가 안 됩니다. 그래서 그냥 단순히 절도죄로 기소가 된 거죠. 그렇다면 범인이 발생한 대만으로 인도를 하면 되는데 그런 인도조항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도는 안 되는 상태고 원칙적으로는 그런 범인 인도조약을 맺는 것이 맞죠. 문제가 어디서 시작이 되냐 하면 그 인도조약을 맺는 국가 중에 중국이 들어갔다라는 거죠. 그런데 홍콩 사람들, 홍콩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아직 중국의 사법체제에 대한 신뢰성이 전혀 없습니다. 중국은 여전히 영장 없이 많은 사람들을 구속하고 있고 또 없어지기도 하고 여전히 인권에 심각한 문제가 있죠. 그렇기 때문에 홍콩 사람 입장에서는 지금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계속 중국이 여러 가지 문제 제기를 하고 있는데 여기에 범인 인도조약까지 맺는다면 중국이 더 공개적으로 쉽게 홍콩에 있는 중국 반체제 인사들을 전부 다 중국으로 데려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폭발하기 시작한 거죠. 그래서 본격적인 시위로 연결됐습니다.

[앵커]
그런 살인사건이었지만 반체제인사들에 대한 정치적인 탄압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라고 홍콩 사람들이 경계하는 계기가 된 사건도 있었다고 들었어요. 서점주들이 실종됐다, 그건 어떤 사건입니까?

[인터뷰]
그렇습니다. 2015년에 있었는데요. 그 서점은 중국에 대해서 굉장히 반중국적인 출판물들을 많이 냈습니다. 시진핑 주석의 개인적인 사생활도 많이 내고 있고요. 그래서 직원과 주주, 그러니까 여러 명의 주인이었는데 5명이 실종됐거든요. 태국에 있다 없어졌고 또 중국에 갔다가 실종됐고 심지어는 홍콩에 있는 한 명도 실종이 됐었습니다. 그러다가 그 주주 중에 1명이 나중에 다시 홍콩으로 돌아오는데 그러면서 일종의 폭로를 한 거죠. 중국 당국이 자신들을 그렇게 불법으로 감금을 했다. 문제가 심각해지는 거죠. 이게 범인인도조약이랑 직접 관련이 있는 게 그렇게 인도조약이 없음에도 불법적으로 일종의 납치를 해가는 그런 형태까지 나타났는데 인도조약이 있으면 너무나도 당당하게 법적으로 이런 반체제인사들을 다 데려가지 않을까. 그렇기 때문에 2015년 서점 사건이 다시 불거진 그런 상황입니다.

[앵커]
그동안의 과정을 짚어보면 홍콩 정부가 약간 후퇴하는 모습도 보였고요. 이 법안에 대해서 홍콩 정부의 입장은 어떻습니까?

[인터뷰]
그렇습니다. 시위 규모가 아까 말씀드린 우산혁명 같은 경우에는 10만 명 정도 됐고 79일간 지속이 됐는데 이번에 이 범인인도조약 반대시위는 100만 명 단위가 모였어요. 200만까지도 얘기가 있을 정도고 그 정도로 엄청난 숫자가 모였다라고 하니까. 캐리 람 홍콩 행정수반이죠, 행정장관의 입장에서도 더 이상 주장을 할 수가 없죠. 그런데 문제가 그렇다고 범인인도조약을 완전히 폐기하겠다라는 얘기는 안 하고 무기 연기를 얘기했습니다. 무기 연기는 다시 할 수도 있다라는 그런 의미죠. 그러니까 시위하는 데 입장에서는 본인들이 생각하는 것이 관철이 안 됐다라는 것이고요. 더불어서 캐리 람 행정장관에 대한 사퇴 요구도 계속 있습니다. 워낙 친중파이기 때문에요.

[앵커]
아까 시위 규모가 검은 대행진이 많게는 200만, 적게 잡아도 한 150만 명은 나왔다고 하잖아요. 홍콩 인구가 750만 정도 아닙니까? 5분의 1이 다 나온 거예요. 그래도 어떤 평화 시위의 기조를 유지해 오다가 최근에 입법회 건물을 점거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시위대에서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요?

[인터뷰]
이게 시위라는 게 격화될 가능성은 늘 있죠. 그러니까 시위대들이 자극을 받고 있고 그래서 입법회 점거가 어려운, 새로운 국면으로 전개된 것은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말씀드린 우산혁명이라든지 지금 이 시위는 굉장히 평화적인 시위거든요. 그래서 전체적으로 캐리 람이나 중국 당국, 홍콩 당국에서도 이것을 뭔가 시비 걸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입법회에 들어가서 한 것은 그 안에 폭력성이 충분히 보이고 있거든요. 지금 화면에도 나옵니다마는 저건 홍콩 당국이 의도적으로 모든 언론들을 한 시간 반 동안 데리고 다니면서 1, 2층을 다 공개해서 지금 전 세계에 다 보여주고 있습니다. 상당히 많이 부서진 모습들 또 낙서가 돼 있는 모습들. 이전에 홍콩 시위가 보여줬던 평화적인 모습과는 굉장히 다른 모습이 연출되고 있는 거죠.

[앵커]
이런 과거와는 다른 모습의 시위에 대해서 홍콩 여론은 어떻습니까?

[인터뷰]
홍콩 여론도 지금 나뉘고 있습니다. 홍콩 여론 중에 친중 여론이 굉장히 많고요. 친중 여론은 아예 폭도다라고 규정을 했고 저것은 당연히 사법 처리가 필요하다라고 얘기를 하고 있고 반면에 다른 언론들은 조금 왜 저런 사태까지 가게 됐는가에 대한 그런 보다 본질적인 문제 제기를 하고 있죠.

[앵커]
본질적인 문제 의식과는 또 별개로 이게 행정장관 측, 그러니까 정부 측에서 유도한 게 아니냐, 이런 음모론입니까? 그건 뭡니까?

[인터뷰]
그런 얘기도 들리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홍콩 당국과 사실 중국 당국도 마찬가지지만 상당히 밀리고 있는 상황이었거든요. 이런 상황에서 자신들이 다시 뭔가 반격을 하려면 뭔가 계기가 있어야 된다. 그래서 저는 이게 음모론까지 갔을지는 제가 정확히는 모르겠고요. 그래서 나중에 사과들이 빈번해진 문서를 봐야 음모론에 대한 진위 여부는 파악이 되는데 어쨌든 이게 계기가 돼서 지금 강력하게 홍콩 당국에서 체포령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 입법회 점거한 불법 시위고 폭도라고 규정한 사람들에 대해서 체포가 진행되고 있는 약간 전반적인 분위기가 역전돼가는, 역전까지는 아니지만 분위기가 이전과는 다른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앵커]
그러면 시위대가 진입하려고 할 때 경찰이 적극적으로 막기는 했나요?

[인터뷰]
그 과정에서 공방이 분명히 있었죠. 있었고 그리고 특히 시위대가 들어가서 점거를 다시 못하게 하는 그 과정에서는 분명히 충돌들이 있었고요. 그래서 전반적인 상황들에 대해서는 지금 당장 어느 쪽의 탓이다라고 보기는 시간이, 정확한 상황들이 확인이 되어야 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앵커]
덫을 놓아놓고 경찰이 슥 빠지고 그런 상황은 아니었군요.

[인터뷰]
글쎄요, 거기까지는 제가 정확하게는 모르겠습니다.

[앵커]
제2의 우산혁명 이런 얘기까지 나오고 있는데 앞서 말씀해 주신 과거의 우산혁명과 다른 점이 있습니까?

[인터뷰]
우산혁명은 말씀드린 것처럼 대단히 비폭력적인 혁명이었죠. 우산으로 최루탄을 막는 그런 형태고 그리고 당시에는 이른바 집행부가 있었습니다. 전체적인 시위를 주도해 갔는데 이번에는 굉장히 자발적이었죠. 지금 최근 나타나는 시위 양상은 대부분 그렇습니다. SNS를 활용해서 자발적으로 모였고 훨씬 많은 숫자가 모였다라는 게 차이고요. 그리고 폭력성은 점거 사태가 있기 전까지는 양쪽 다 폭력성이 없었는데 지금 폭력성이 마지막 부분에서 나타났다고 보입니다.

[앵커]
우산혁명 때 행정장관 직선제를 요구했다가 관철은 못했다고 말씀해 주셨잖아요. 지금 행정장관 사퇴 요구가 나오고 있는 마당에 직선제를 다시 요구하는 그런 목소리는 없습니까?

[인터뷰]
직선제 요구는 계속 있죠. 왜냐하면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일국양제의 핵심적인 거고 또 행정장관이라는 것이 입법, 사법, 행정. 삼권분립이 형식상 돼 있습니다. 돼 있는데 그중에 가장 핵심적인 위치에 있고. 그런데 지금 현재 상황에서 가능성이 매우 낮죠. 왜냐하면 결국 중국이 여전히 좌지우지하고 있거든요. 선출 과정을 보면 거의 다 친중국파에 의해서 간접선거고요. 그러니까 중국이 거의 낙점하다시피 하는 그런 형태로 되고 있습니다.

[앵커]
어떤 기구에서?

[인터뷰]
간접선거인데 간접선거단을 뽑기는 뽑습니다. 뽑는데 대부분이 직능별, 38개 직능별에서 16명에서 몇 명을 뽑는데 그 직능별 대표가 다 친중국이고요. 그외에도 홍콩의 입법위원회라든지 홍콩에 있는 전인민대표대의원, 또 정협이라고 부르는 정치협의회 의원들, 다 중국계의 친중국파들이거든요. 그래서 그 안에서 결국 간접선거가 이루어지는 거니까 정말 홍콩 사람들의 민의를 반영하기는 어려운 구조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앵커]
홍콩에 주둔하는 인민해방군의 훈련 사진도 공개되지 않았습니까? 중국이 개입을 할까요?

[인터뷰]
중국은 굉장히 이게 민감한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천안문, 우리 톈안먼 사태를 얘기했듯이 중국의 지금 체제, 특히 시진핑 주석 들어서 체제가 다시 권위주의 전체주의 체제에 가깝게 지금 돌아서고 있지 않습니까. 1인 지배 체제로. 이러한 상태에서 다시금 어쨌든 홍콩이 특별행정구역이기는 한데 거기서 일종의 민주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들이 드러나는 것은 중국 체제 자체에 대한 큰 도전이거든요. 구 세계사회, 국제사회가 뭐라고 얘기하든 중국 입장에서는 이것을 용납할 수 없죠. 그렇기 때문에 일종의 경고의 메시지로 조금 더 시위가 격화되면 일정 수준에 들어서. 지금 폭도라고 이미 중국 인민일보 같은 경우에는 아주 강력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다 폭도들이다. 그렇게 되면 결과적으로 군대도 동원할 수 있다. 지금 치안권은 홍콩에게 있습니다. 그런데도 중국이 지금 일부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죠.

[앵커]
병력 규모는 얼마나 됩니까?

[인터뷰]
병력 규모는 지금 알려진 거로는 한 3200명. 지난번에 나타난 건 그 정도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앵커]
미국에서 이런 중요한 문제, 특히나 중국과 갈등을 빚고 있는 상황에서 가만히 있을 것 같지 않고요. 트럼프 대통령 특성상도 그렇고요. 입장이 나왔습니까?

[인터뷰]
트럼프 대통령이 입장을 내기는 냈는데요.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부의 기본적인 입장은 이전의 미국 행정부와는 다르게 다른 국가의 내정에 간섭하지 않고 특히 정치 체제에 대해서는 간섭하지 않는다는 얘기를 계속합니다. 특히 이전에 미국 민주당 행정부들이 했던 민주주의 확산 같은 거를 굉장히 비판하고 있거든요. 그런 걸 왜 하느냐. 그렇기 때문에 이런 운동에 대해서 뭔가 심정적으로 동정하는 메시지를 얘기를 하기는 했는데 또 트럼프 대통령이 이렇게 얘기한 것은 사실 G20를 앞두고 중국을 압박하려고 하는 요소가 있다라고들 많이 해석을 합니다. 정말로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에서 이쪽 편을 들 것인지는 조금 두고 봐야 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앵커]
입장이 살짝 최근으로 오면서 바뀌기는 했습니다. 일부 정부는 민주주의를 원하지 않는다여기서 일부 정부가 중국이겠죠?

[인터뷰]
중국을 얘기하는 거죠.

[앵커]
더 개입할 가능성은 낮다고 보시는 건가요?

[인터뷰]
상황에 따라서 결국 미중 관계의 큰 틀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결정할 문제고요. 말씀하신 것처럼 이것은 어떻게 보면 중국의 아킬레스건이거든요. 그걸 또 트럼프 대통령이 잘 활용할 여지도 있죠.

[앵커]
알겠습니다.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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