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뉴스 앵커리포트] 북러정상회담, 2002년과의 유사점은?

[더뉴스 앵커리포트] 북러정상회담, 2002년과의 유사점은?

2019.04.24. 오후 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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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북러 정상회담은 8년 만입니다.

지난 2011년에 김정일-메드베데프 간 정상회담이 열렸고 그 전에는 2002년 김정일-푸틴 회담이 있었습니다.

이번 북러 정상회담은 2011년보다 2002년 회담과 여러모로 유사점이 있습니다.

우선 2002년 북러 정상회담과 이번 정상회담은 무려 17년의 시간차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정상이 동일 인물입니다.

당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마흔아홉살, 집권 4년차를 맞이한 젊은 지도자였습니다.

반면 김정일 위원장은 69세로 집권 9년차였습니다.

물론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러시아 정상이 서른두살이나 많고 국내외 위상도 더 견고해졌습니다.

2002년 북러 정상회담 장소도 블라디보스토크였습니다.

블라디보스토크는 러시아 동방 정책의 상징적인 지역이고 북한 입장에서는 개방의 교두보로 삼는 주요 접경지역 중 한곳입니다.

이번 김정은 위원장의 동선 역시 과거 김정일 위원장의 동선과 일부 겹칠 것으로 예상됩니다.

중요한 유사점은 정상회담이 열리게 된 국제 정세입니다

2002년 북러 정상회담이 열리기 전에는 1994년 제네바 합의 이후 지속된 북미 간 핵협상에 한계가 분명해지고 있었습니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이 개최될 정도로 한반도 평화 분위기가 호전됐지만 클린턴 대통령 임기 말 북미 정상회담 개최가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이후 들어선 부시 행정부의 대북 강경 입장은 9.11 테러를 계기로 더욱 공고해졌고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위세 역시 극대화 됐습니다.

당시 고립에서 벗어나려던 북한이 이른바 '신사고'를 내세우며 경제 재건을 강조한 것도 최근의 북한 경제 중시 행보와 유사합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강조한 자력갱생과는 다소 차이 있지만 경제에 집중한다는 점에선 맥을 같이 합니다.

17년 전 북러 정상회담 이후엔 어땠을까.

북한은 곧바로 핵 개발을 시인하는 초강수를 둡니다.

이후 고조되던 긴장은 이듬해 6자회담이 시작되면서 국제사회가 공동 관리하는 다자협상 체제로 이어졌습니다.

6자회담은 2007년 6차회담을 끝으로 중단됐지만 극단적인 대결 국면을 완화시켰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이번 2019 북러 정상회담 이후엔 어떤 변화가 생길지 관심입니다.

주변 국가가 담당할 역할의 한계를 확인하고 북미 직접 협상이 재개될 것인지, 러시아와 중국 등의 비중이 커지게 될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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