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N팩트] '일왕 사죄' 발언에 발끈한 日 "무례하다! 사죄하라!"

[취재N팩트] '일왕 사죄' 발언에 발끈한 日 "무례하다! 사죄하라!"

2019.02.13. 오후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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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일왕이 피해자들에게 사죄해야 한다"는 문희상 국회의장 발언에 일본 정부가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갈등이 골이 깊은 한일관계에 앞으로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되는데요.

도쿄 특파원 연결해 관련 내용 자세히 짚어보겠습니다. 황보연 특파원!

일단 문 의장의 정확한 발언 내용과 일본의 첫 반응은 어떠했는지 설명을 해 주시지요?

[기자]
문희상 의장은 발언은 지난 8일 블룸버그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나왔습니다.

블룸버그통신이 인터뷰 당시 음성 15초 정도를 홈페이지에 공개해 제가 들어봤습니다.

말 하나하나가 중요하기 때문에 그대로 전해 드리겠습니다.

문 의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왕이 했으면 좋겠어요. 그분은 얼마 뒤면 퇴임한다고 하시니까. 그분은 전범의 주범의 아드님 아니세요? 그러니까 그런 양반이 할머니 한 번 손 잡고 정말 잘못했어요. 그 말 한마디에 그냥 다 풀어지는 거예요."

좀 부연 설명을 하면 "현재 아키히토 일왕이 전쟁범죄의 주범 즉 히로히토 일왕의 아들 아니냐? 퇴위를 앞두고 있는데 그런 분이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손을 잡고 사과하면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다"라는 의미입니다.

이 인터뷰 내용이 일본에는 9일 그러니까 지난주 토요일부터 조금씩 보도되기 시작해 일요일인 10일 필리핀을 방문 중이던 고노 다로 외무상이 처음으로 반응을 내놨습니다.

고노 외무상은 기자들에게 "2015년 말 한일 위안부합의로 위안부 문제가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면서 "제대로 알고 발언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습니다.

즉 "위안부 문제가 다 해결됐는데 왜 일왕이 또 사과해야 하느냐"는 해석이 되는 부분입니다.

[앵커]
어제는 이 문제에 대해 아베 총리까지 나서 강하게 반발했지요.

[기자]
10일 일요일에 고노 외무상이 일본 정부 첫 반응을 내놨지만, 다음 날일 월요일은 일본 건국 기념일로 공휴일이어서 별다른 움직임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제 국회가 열리면서 일본 정부의 격한 반응들이 나왔습니다.

아베 총리는 국회에 출석해 "문 의장 발언에 대한 보도를 접하고 정말 놀랐다"고 말했습니다.

"대단히 부적절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어 외교 경로를 통해 극히 유감이라는 의사 표시를 했다"고 밝혔습니다.

또 외교 경로를 통해 "발언에 대해 사죄할 것과 발언을 철회할 것을 요청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역시 국회에 출석한 고노 외무상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매우 무례한 발언"이라며 한발 더 나갔습니다.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도 정례 브리핑에서 기자들에게 관련 내용을 전하는 등 일본 정부가 일사분란하게 대응하는 자세를 취했습니다.

[앵커]
일본이 이렇게 반발하고 있지만 문 의장은 발언에 대해 사과할 사안이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지요?

[기자]
미국을 방문 중인 문 의장은 현지시간 12일 '워싱턴DC에서 열린 특파원 간담회에서 "사과할 사안이 아니다"라고 일축했습니다.

문 의장은 "평소 지론으로 10년 전부터 얘기해온 것"이며 "근본적 해법에 관해서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위안부 문제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문제는 딱 하나로, 진정 어린 사과"라면서 "진정성 있는 사과 한마디면 끝날 일을 왜 이리 오래 끄느냐에 내 말의 본질이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문 의장은 또 "합의서가 수십 개가 있으면 뭐하냐"면서 "피해자의 마지막 용서가 나올 때까지 사과하라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일본 정부의 격한 반응에 대해서도 한마디 했습니다.

문 의장은 "왜 이렇게 크게 문제 되는지, 더군다나 관방장관이 나서더니 아베 총리까지 나서서 이러는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습니다.

문 의장은 그러면서 "얼마 전 타계한 김복동 할머니가 원한 것은 일본을 상징하는 최고의 사람인 아베 총리가 사과한다는 엽서 하나라도 보내 달라는 것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과거에 아베 총리가 털끝만큼도 그럴 의사가 없다고 한 것을 보니, 이렇게 가서는 마무리가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습니다.

[앵커]
일왕에게 사죄를 요구한데 대해 "놀랍다" "무례하다"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데요.

일왕은 일본에서 어떤 위치, 어떤 의미를 가지나요?

[기자]
일왕은 1868년의 메이지유신을 계기로 최고 권력자 겸 신적인 존재로 추앙받았다가 일본이 태평양전쟁에서 패전국이 된 뒤 당시 제정된 헌법을 통해 실권을 잃었습니다.

일본 헌법은 일왕의 지위에 대해 "일본의 상징이자 일본 국민통합의 상징"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또 헌법 개정, 법률·조약 등의 공포, 각료 임면 등의 국정 업무를 내각의 조언과 승인을 받아 행사하도록 하고 있는데요.

정리해 보자면 일왕은 실권은 갖지는 않고, 내각이 하는 일을 일부에 한해 형식적으로 승인을 해주는 역할을 맡는 상징적인 존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 언론에서는 현재 일왕이 재위 기간 중 전쟁범죄와 관련돼 있지 않고 또 정치적 권한도 갖고 있지 않아 사죄가 불가능하다는 논리를 전하고 있습니다.

[앵커]
일왕 사죄 발언 논란이 앞으로 한일관계에도 적지 않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이는데요?

[기자]
한일 간에는 갈등의 요소가 상당히 많이 쌓여 있습니다.

역사교과서 독도 망언 등은 항상 내재한 것이고요.

지난 10월 말 우리 대법원이 일본 기업에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내리면서 갈등이 더 깊어졌고

연말에 동해 상에서 일어난 우리 군함과 일본 초계기의 레이더 공방과 위협비행 문제도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일왕 사죄' 발언으로 다시 한 번 일본 정부가 발끈하고 나서면서 발언의 정당성을 떠나 경색된 한일관계에는 또 하나의 악재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특히 일왕은 일본 국민에게 큰 어른 같은 존재로 인식되는 게 보통인데 일본 정부나 일본 보수 언론에서 큰 어른을 한국이 건드렸다는 식으로 분위기를 이끌어 갈 가능성이 높아 일본 국민의 반한 감정을 부추길 수도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일본 언론들은 2012년엔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일왕의 반성'을 언급한 뒤 일본 내 반한 감정이 극에 달했던 점을 거론하며 문 의장의 '일왕 사죄' 발언이 앞으로 양국 관계에 큰 악재가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도쿄에서 전해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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