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 쇼 폐지' 불러온 범고래 틸리쿰의 소리 없는 비명

'고래 쇼 폐지' 불러온 범고래 틸리쿰의 소리 없는 비명

2017.01.09. 오후 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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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들이 환호하는 가운데 고래들이 열을 맞춰 점프하고, 후프를 통과하며 사람에게 애교를 부린다. 재미있고 진귀한 광경이다. 그러나 사실 멋진 고래 쇼에는 사람에게 포획돼 잔인한 학대를 겪어야 하는 고래의 눈물이 스며들어 있다.

1983년, 바다를 누비던 세 살 무렵의 어린 범고래 틸리쿰은 고래 불법 포획업자들에게 잡혔다. 틸리쿰은 갖은 고초를 겪은 뒤 1992년 세계 최대 돌고래 공연 업체 '씨월드'에 판매됐고, 그 후 공연을 하는 동시에 인공 수정용 정자 공급을 하며 살아왔다.

틸리쿰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한 것은 이 고래가 1991년과 1999년, 2010년 세 건의 인명 사고와 관련되면서부터다. 특히 틸리쿰은 2010년 16년이나 함께한 조련사 돈 브랜쇼를 공격해 숨지게 하면서 전 세계에 '범고래 쇼'에 대한 윤리 문제를 불러일으켰다.

야생의 범고래가 사람을 공격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과학계에서 유명한 정설이다. 범고래는 사람에게 매우 우호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심지어 인간의 목숨을 구해준 사례가 보고되기도 했다. 하지만 틸리쿰은 예외였다. 전문가들은 범고래 틸리쿰이 학대와 감금 생활에 의한 스트레스 때문에 사람을 해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틸리쿰의 이상 행동과 고래 쇼의 비윤리성은 다큐멘터리 영화 '블랙피시'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 블랙피시에는 고래 쇼를 하기 위해 벌어지는 학대와 훈련 과정이 소상히 드러나 있었다. 그 결과 영화 상영 이후 고래쇼와 동물 학대에 대한 비판론이 거세게 일었고, 실제로 고래 쇼의 티켓 판매가 점차 감소했다. 또한 범고래 쇼를 비롯한 '동물 쇼'에 대한 윤리적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결국 미국 볼티모어 국립수족관은 돌고래를 바다 안 가두리 수족관 시설로 옮기기로 하는 등 처우를 개선하기로 했다. 틸리쿰이 공연하던 씨월드 역시 "범고래 쇼를 없애고, 앞으로 범고래 번식 프로그램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조엘 맨비 씨월드 최고경영자는 미 일간 LA타임스에 "씨월드는 사람들의 인식 변화에 맞추기 위해 범고래 쇼와 사육 프로그램을 중단한다"고 말했다. 고래 쇼 폐지 움직임은 점차 미국 전역으로 확대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샌안토니오와 텍사스, 올랜도 역시 2019년까지 범고래 쇼 프로그램을 단계적으로 폐지하겠다고 발표했으며, 샌디에이고는 이미 "이번 주 일요일(8일) 쇼를 마지막으로 더이상의 범고래 쇼를 진행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난 6일, 이 모든 변화를 일으킨 주인공 틸리쿰은 결국 수족관 안에서 숨지고 말았다. 바다에서 사는 범고래의 수명은 평균 60세 정도지만 틸리쿰은 불과 36세, 수명의 절반밖에 살지 못하고 죽은 셈이다. 원인은 박테리아 감염으로 추정된다.

전 세계 동물보호단체가 틸리쿰의 죽음에 대한 애도를 표했다. 그러나 틸리쿰이 원한 것은 자신을 향한 사람들의 애도가 아닌 죽을 때까지 찾지 못한 '진정한 자유'였음이 분명하다.

우리나라 고래보호단체 '핫핑크돌핀스'도 틸리쿰의 죽음을 애도하며 국내 고래 전시와 고래 쇼 현황을 지적했다. 이에 따르면 우리나라 수족관에는 여전히 40여 마리의 틸리쿰들이 갇혀 있다고 한다.

머지않아 우리나라도 아이들에게 '고래 쇼'를 보여줄 것인지, 아니면 '고래 쇼'를 위한 인간의 이기심과 잔인한 포획 과정을 경계하라고 가르칠 것인지 결정해야 할 순간이 올 것이다.

YTN PLUS 정윤주 모바일 PD
(younju@ytnplus.co.kr)
[사진 출처 = 영화 '블랙피시'(blackf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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