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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니파 vs. 시아파...1400년째 싸우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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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니파 vs. 시아파...1400년째 싸우는 이유

2016년 01월 06일 09시 00분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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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지향, 아산정책연구원 중동센터장

[앵커]
사우디아라비아가 자국의 시아파 성직자를 처형하면서 시작된 중동 위기가 연일 격화되고 있습니다. 시아파 그리고 수니파의 갈등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그 속에 숨어 있는 종교 갈등은 복잡합니다. 1400년이나 이런 갈등을 겪어 왔다고 합니다. 중동 얘기 이해하는 데 이 두 종파는 꼭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정말 쉽게 알아보는 시간 마련했습니다. 장지향 아산정책연구원 중동연구센터장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인터뷰]
안녕하세요.

[앵커]
제가 한 초등학교 6학년이라고 알고 설명해 주시죠. 632년인가요. 그때로 가보겠습니다. 이슬람 창시자 무함마드가 사망을 합니다. 그 뒤에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인터뷰]
불행하게도 이 사람이 죽은 후에 후계자가 누가 되어야 된다는 얘기를 안 하고 죽었습니다.

[앵커]
후계자가 안 정해졌군요.

[인터뷰]
그럴 경우에 후계자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그런 제안을 합니다. 즉 이슬람 공동체가 모여서 함께 합의한 다음에 선출을 하자고 얘기를 합니다. 이제 그런 사람들이 나중에 수니파가 되는 거죠.

하지만 소수파들은 아니다, 무함마드의 혈통을 이어받은 사람만이 후계자 될 수 있다고 얘기를 하죠. 굉장히 가능성이 희박해지는 거죠, 혜택이 돌아올 수 있는 가능성이요. 당시 혈통이라고는 유일하게 사촌이자 자신의 사위였던 알리가 있었습니다.

[앵커]
그럼 그 사람이 돼야 된다?

[인터뷰]
그렇죠. 하지만 당연히 다수의 의견에 밀려서.

[앵커]
누가 됐어요, 그래서?

[인터뷰]
아부바크르라고 무하마드 곁에 있었던 가장 신임을 받았던 조언자가 됐습니다.

[앵커]
지금 화면에 나오고 있네요. 아부 바크르. 이분은 수니파였군요. 당연히 칼리프가 되는, 칼리프는 지도자를 말하는 거죠. 칼리프가 되려면 능력이다, 무슨 혈통이냐. 이렇게 따져서 아부 바크르가 되고 그다음에 오마르.

[인터뷰]
그다음에는 오스만. 오스만까지도 다수의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의논을 해서 능력에 따라서 선출을 한 사람들이 됩니다. 그러다가 네 번째 결국 알리도, 즉 유일한 형통이었던 알리도 기회를 얻게 되죠. 그러면 이제 시아파도 만족을 했을 텐데 불행은 그때부터 시작이 됩니다. 알리가 수니파에 의해 암살을 당합니다.

[앵커]
4대 칼리프가 됐는데 암살을 당하는군요.

[인터뷰]
게다가 알리의 두 아들마저 1명은 또 수니파에 의해서 암살을 당하고 차남은 수니파와의 전투에서 죽음을 맞이하죠. 그러면서 정말 무함마드의 직선이 끊어지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서 시아파는 정말 적임자가 없다고 하면서 알리가 사실은 죽은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 숨어 있을 것이다라고 하면서 시아파는 아직도 이 4대 칼리프인 알리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앵커]
아직도 시아파 종파는 알리는 언제가 돌아올 것이다.

[인터뷰]
그렇죠. 수니파의 정당성을 인정 안 하려고 하는 거죠.

[앵커]
그러면 수니와 시아는 그때 이후에 완전히 갈라섰고 지역적으로 떨어져나가게 되는 거죠?

[인터뷰]
맞습니다.

[앵커]
그래서 그게 벌써 1400년 전이고 그동안 계속 그런 갈등을 겪어 오다가 저희들이 지도로 나눴습니다. 나라별로 보니까 완전히 나라가 갈라지게 되는 거예요. 화면 보여주시죠. 중동 이슬람국가 종파 분포입니다. 빨간색이 수니파고요, 파란색이 시아파인데 수니파의 대표적인 나라가 사우디아라비아입니다. 메카가 여기 있지 않습니까?

[인터뷰]
메카가 여기 있고 메디나. 두 성지가 사우디아라비아에 있습니다.

[앵커]
물론 그 성지는 수니파 성지이기도 하지만 시아파 성지이기도 하죠. 그러다 보니까 메카에서 사고가 나면 지난번에도 이란이 거 봐, 너희들이... 죄송합니다. 너희들이라는 표현 죄송합니다. 수니파가 제대로 관리를 못하고 있다, 이런 불만을 제기했다고요?

[인터뷰]
그래서 당시 사우디 왕실의 권위가 추락했다고 얘기를 했는데 그 배후에 이란 정부가 계속적으로 비난을 했기 때문에 그런 이유도 있습니다.

[앵커]
그렇군요. 그리고 시아파와 수니파의 대표적인 종교갈등, 사건, 전쟁은 어떤 게 있었을까요? 여러 가지가 있겠습니다마는 서로 계속 갈등을 겪지 않았습니까?

[인터뷰]
사실 수니와 시아의 갈등이 1400년 내내 지속되어 왔던 것은 아니라고 보고 있고요. 그러니까 양대 종파에서 주요 세력들이 그러니까 집권 세력들이 굉장히 강경노선을 취하고 싶을 때 항상 이 종교분쟁이라는 카드를 쓰는데 그것이 가장 결정적인 사건이 이란, 이라크전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라크는 지도에서 아까 시아파 다수 지역으로 나와 있었지만 당시에 정부는 수니파, 사담 후세인이 지배하고 있었죠.

[앵커]
그래서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면서 지금은 시아파가 됐지만 그 전에는 수니파였고요. 1차 이라크전쟁이라고 하는 쿠웨이트 침공도 역시 시아파가 수니파를 침공을 한 그런 전쟁이라고 볼 수 있나요, 그러니까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거는 여러 가지 전쟁이 있으니까요. 거기까지는 하나하나 따지기는 어렵습니다마는 전쟁이 일어날 때마다 꼭 시아와 수니가 왜 등장을 하는 거죠? 그러니까 내가 정권을 잡으려면 종교가 필요한 겁니까?

[인터뷰]
물론입니다. 지금 우리 사우디와 이란의 단교 사태도 보면 굉장히 전형적인 종파갈등을 내세우는 그런 정치적인 계산이 배후에 깔린 이런 사태라고 볼 수 있는데요. 지금 현재 사우디의 국왕인 살만이 지금 직위한 지 1년이 됐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의 리더십이 시험대에 올라와 있다는 얘기를 많이 해요. 지금 유가 때문에 정부보조금도 삭감해야 되고. 그다음에 시리아내전, IS격퇴전 그리고 예멘 내전에 출구전략없이 너무 깊숙이 발을 담가서 안 그래도 재정압박이 있는데 이제 계속 그런 대외 활동에 돈을 쓰니까 시민들의 불만도 자꾸 높아가고 있고 또 살만 국왕이 작년 1월에 직위한 다음에 왕실 멤버들이 다 같이 합의를 했던 왕위 승계 구도를 바꿉니다. 자기 자신의 차남, 자신의 왕자를 제2왕세자로 순서를 올려버렸어요. 그러니까 왕실 내부에서도 불만이 많고.

[앵커]
이거는 법도가 아닙니다 했겠죠.

[인터뷰]
그리고 말씀하신 성지순례 압사사고가 있으면서 왕실의 권위가 추락하자 굉장히 전형적인 수법이죠. 다시 한 번 종파갈등 카드를 꺼내면서 적이 외부에 있다.

[앵커]
이른바 희생양, 그걸 찾는 거군요.

[인터뷰]
맞습니다.

[앵커]
그게 누구였습니까?

[인터뷰]
그게 바로 자신들의 우방인 미국이 갑자기 친구가 되고 싶다고 하면서 손을 잡는 이란이죠.

[앵커]
갑자기 요즘에 이란과 미국이 핵협상타결하고 그러니까 이란이 요즘에 미국이랑 친해. 그러니까 사우디가 이란을 타깃으로 잡은 거군요.

[인터뷰]
맞습니다.

[앵커]
그러면 사우디는 그동안 미국이랑 좋은 관계를 가지고 있었고 우방이라고 지금도 생각을 했습니다. 엄청난 우방이에요. 그런데 이라크, 이란을 견제하기 위해서 지원한 측면도 있고요. 그런데 왜 이슬람들은 왜 미국이랑 친한거를 좋아하지 않는 거죠? 그러니까 항상 미국을 공적으로 만드는 이유가 뭡니까?

[인터뷰]
이것도 또 다른 급진세력들이 조금 다른 급진세력이죠. 아까 말씀드렸던 사람들은 정부에 있는 강경파이고 지금은 사회 내부에 있는 급진 지하디스트들이 그러니까 이슬람 지하디스트들이 늘 미국을 공적으로 삼는 이유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습니다마는 역사적으로 가장 결정적인 원인은 1980년대 아프간전쟁에서 소련연방이 아프간의 사회주의 정부를 지원하고자 침공을 했을 때 미국이 이에 저항하는 이슬람 세력을 지원했잖아요. 그때 바로 그 유명한 미국 정부와 오사마 빈 라덴 사이에 밀월관계가 형성이 됐고요. 그런데 문제는 아프간 전쟁이 끝나고 또 탈냉전이 시작되면서 소련연방의 위협이 그렇게 크지 않자 미국이 그렇게 열심히 지원을 해 주었던 이슬람 세력을 그냥 내팽기고 배반하고 등을 돌리고 가버립니다. 그때부터 빈 라덴이 우리의 가장 큰 적은 미국이라고 주장을 하기 시작한 거죠.

[앵커]
거기에 또 하나, 예루살렘, 이스라엘도 영향을 미칩니까? 간단하게 설명을 해 주시죠.

[인터뷰]
이-팔 분쟁. 그러니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의 얘기 없이는 이슬람 급진주의자들이 주도하는.

[앵커]
배경이 안 되는 거군요.

[인터뷰]
그러니까 이스라엘의 건국에 가장 큰 지지세력은 영국 프랑스 제국주의. 19세기의 영국과 프랑스 제국주의와 20세기, 21세기의 미국이라고 이슬람 급진주의자들은 늘 강조를 하고 있습니다.

[앵커]
미국은 이스라엘이 지원을 받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싫기 때문에 미국과 이스라엘은 다 싫다라는 게 다 모든 무슬림들의 생각은 아닙니다마는. 그런 전반적인 사상이 깔려 있는 거는 맞는 거군요.

[인터뷰]
게다가 사실 미국이 중동에 민주주의를 수출한다고 하면서 굉장히 비일관적인 잣대를 대거든요. 사우디 정부 같은 경우에는 굉장히 솜방망이 잣대를 대고. 그런 반면에 시리아나 이라크에는...

[앵커]
없는지 알고 있습니다마는 대량살상무기가 있다고 들어갔죠.

[인터뷰]
맞습니다.

[앵커]
알겠습니다. 지금들이 여성들이 시위를 하거든요. 여성시위대가, 저분들은 원래 저렇게 히잡이나 이런 걸 쓰고 정치활동을 안 하시던 분인데 갑자기 이렇게 하는 배경은 어디에 있습니까?

[인터뷰]
사실 이란 내에서 여성들의 이런 활동은 사실 사우디의 여성보다는 좀더 활발했던 거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제가 저 자료사진을 보니까 굉장히 또다시 동원된 것이고 이제 누가 동원했을까를 생각해 보면 이란 내에서 점차 입지가 약해지는 급진 강경파들, 지금 현재 이란 내에서는 핵협상을 타결시킨 로하니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온건개혁파가 굉장히 많은 지지를 얻고 있거든요. 이것에 위협을 느낀 급진파들이 너무 불 보듯 뻔하게 시위대들을 동원했고 이렇게 여성들까지도 동원한 것으로 봐집니다.

[앵커]
점점 사회갈등으로 확산을 시키는 것 같습니다, 일부 정치지도자들이. 결국 정치와 종교가 만나면 그 끝은 좋지 않은 경우가 훨씬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장지향 아산정책연구원 센터장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인터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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