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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 : YTN 이슈오늘 (08:00∼10:00)
■ 진행 : 이종구 앵커
[앵커]
싱가포르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리콴유 전 총리가 향년 91세로 별세했습니다.
대한민국은 물론 박정희 전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 부녀와 2대에 걸친 인연이 각별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박근혜 대통령은 리콴유 전 총리의 국장에 직접 참석하기로 했습니다. 먼저 박근혜 대통령의 애도 성명 그래픽으로 보시겠습니다.
고인은 한, 싱가포르 관계 발전을 위해 귀중한 지혜를 주신 우리 국민의 친구였다. 세계 지도자들에게 큰 귀감이 되신 리 전 총리의 영원한 안식을 기원한다, 이렇게 애도 성명을 발표를 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한 나라의 대통령이 다른 국가 지도자에 장례식에 직접 참석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이렇게 봐야 합니까?
[인터뷰]
이례적이죠, 왜냐하면 대통령은 한 국가의 통치자죠, 국가 수반이죠. 대통령 행보 자체가 던져주는 메시지는 굉장히 중요한 메시지라고 봅니다.
그래서 행보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보는데 박근혜 대통령이 이번에 가는 것은 2000년 당시김대중 전 대통령이 오부치 총리 별세 때 가고 15년 만에 처음이라고 얘기를 하는데 이 부분에는 두 가지 질문이 있을 것 같습니다.
첫 번째는 아버지와 고 박정희 대통령과의 인연, 그리고 또 박근혜 대통령과의 인연. 그에 따른 리콴유 전 총리의 한국에 대한 애정, 이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을 했지만 그래도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포퓰리즘그리고 인기영합, 일종의 부정부패, 이러한 이미지에 대해서 상당한 어떤 영향을 받을 수 있다라는 것이 저는 작용하고 있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리콴유 전 총리가 싱가포르를 가장 깨끗하고 청결한 국가로 만드는 그런 것들이 청렴과 부정부패 척결이었죠. 이런 것들이 지금 대한민국에서 일고 있는 부정부패 척결, 이런 정국과 무관치 않다고 봐서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리콴유의 장례석에 참석함으로써 이에 대한 조금 더 이미지를 쇄신 시킬 필요가 있다 라는 그런 생각이 있고 영향을 더 긍정적으로 가져올 수 있다는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앵커]
그러니까 2013년에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 장례식 때100개국이 넘는 정상들이 가서 조문외교를 펼쳤을 때 우리는 총리를 보냈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이번에 박대통령이 직접 현지에 간다는 것은 그만큼 리 전 총리와의 인연이 얼마나각별했는지를 반증할 수 있는 것 같은데 먼저 예전 사진 보면서 어떤 인연이 있었는지 살펴보고 이야기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1979년 10월달 찍은샤진입니다. 당시 왼쪽에 있는 박근혜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어찌보면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했죠. 만찬장에서 건배하는 모습입니다. 또 다른 사진 하나 보시죠. 박정희 전 대통령이 리콴유 전 총리에게 훈장을 주는 모습. 79년 10월 19일, 시기도 상당히 중요해요. 10월26일에 서거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엿새 전에 리콴유 전 총리를 만났고 단체 사진을 찍은 모습인데 왼쪽에 박근혜 대통령 모습도 보입니다. 퍼스트레이디 역할도 했지만 통역을 했다, 대통령의 딸이 직접 통역을 했다.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와닿지는 않은데.
[인터뷰]
그 당시에 박근혜 대통령은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고 있죠. 1974년도에 육영수 여사가 서거하셨으니까 직접 통역했다라는 것은 단순히 영어, 통역의 의미를 떠난 거겠죠. 그당시에 번역사, 통역사가 없었겠습니까? 그런 거하고 다른 거죠.
그만큼 국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고 리콴유 총리에 대해서 싱가포르의 국부, 그리고 싱가포르를 지금의 선진국 반석으로 올려놓은 지도자다, 평가에 인색하지 않는데 박근혜 대통령으로서는 아버지와의 인연이 상당히 애틋하게 생각났을 겁니다.
지금 아까 사진 두 장을 봤습니다마는 박정희 전 대통령께서 서거하시기 불과 며칠 전에 만났거든요. 그리고 리콴유 총리가 한국을 방문한 것이 97년에 처음 이었어요.
그때 박정희 전 대통령과 인연이 있고 통역에 참석했던 건데. 박근혜 대통령으로서는 상당히 여러 만감이 교차할 것으로 봐요. 아버지와의 만남도 생각이 날 거고 또 아버지와의 인연이 대단히 소중한것과 더불어서 이미지도 상당히 비슷해요.
리콴유 총리는 박정희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개발 독재를 통해서 국가를 부의 반석에 올려놓은 지도자고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굉장히 권위주의적 지도자였죠. 독재자라는 표현도 가능할 정도의 그런 통제정치, 언론집회의 결산을 막았던 그런 지도자였다라는 거예요.
그러면서 아시아에 있어서 한때 세 마리 용. 한국, 싱가포르, 대만 이런 얘기. 바로 그런 지도자가 박정희 대통령과 리콴유 총리. 박근혜 대통령으로서는 상당히 여러 가지 감회가 새로웠다. 그런 점에서 이례적으로 직접 조문에 참석하는 게 아니냐, 이렇게 생각이 듭니다.
[앵커]
리콴유 전 총리는 말씀하신 것처럼 박정희 전 대통령과 경제 부국하는 과정, 이런 것에서 많이 겹치는 부분이 있지 않습니까, 명과 암 모두. 그런데 리 전 총리는 박정희 당시 대통령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남겼습니다. 어떤 이야기를 하고 어떻게 평가를 했는지 보시겠습니다.
아시아 3대 지도자는 중국의 덩샤오핑, 일본의 요시다 시게루 총리, 그리고 한국의 박정희 대통령이다, 이렇게 한국을 79년에 방문하고 나서 미국에 타임지와 인터뷰를 하면서 이렇게 평가를 했습니다. 높게 평가를 했죠. 또 다른 내용을 보시면 박정희 전 대통령이 한국은 변형을 이룰 것이고 반드시 성공하리라고 강하게 의지를 보인 것에 감명을 받았다.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리 전 총리, 박정희 전 대통령, 비슷한 부분이 상당히 많습니다.
[인터뷰]
어쨌든 나라들 세계 중진국, 또는 선진국 대열에 올라서게 했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서는 어쨌든 평가받는 것이고 서구의 시각에서 봤을 때는 사실 지구상에 없는 현상을 만들어 낸 것이기 때문에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낸 것이기 때문에 바라보는 시각이 굉장히 다를 수밖에 없다고 할 수 있겠고 어쨌든 아까 최 교수님 말씀하셨습니다마는 국가를 개발하는 과정, 발전시키는 과정에 있어서 비슷한 국가적인 경로를 밟았다는 점에서 양국 지도자들이 과거에 동질감들, 공감대를 상당히 폭넓게 가지고 있었다고 할 수 있겠고 그런 상황에서 외국의 시선도 비슷하게 보는 측면이 있었는데 다만 어쨌든 리콴유 전 총리가 우리나라 전직 대통령들에 대한 평가를 많이 했는데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굉장히 긍정적인 평가를 많이 했습니다.
강단이 있는 모습이고 어쨌든 국가를 발전시키는 데 기여한 측면이 강하다는 통찰력 있는 인물로 묘사를 많이 했는데 전두환, 노태우 전직 대통령들에 대해서도 이렇게 평가를 했어요.
그들은 당시에 통용되는 기준에 따라서 행동했을 뿐이다, 악당이 아니다라고 하면서 어쨌든 그런 것들을 다소간면죄부를 주는 듯한 발언을 하기도 했었거든요.
그런 측면들이 눈에 띄는 측면들이 있고 또 한 가지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해서 민주화운동이라든가 이런 걸 하게 되면서 그늘이 졌다라는 평가도 하면서 당시에 김대중 전 대통령과는 이른바 아시아적 가치, 아시안밸류를 놓고 상당히 설전을 벌인 바가 있거든요.
리콴유 총리 같은 경우 아시아는 서구 민주주의와 다른 독특한 경로로 발전해 왔기 때문에 거기에 맞는 독특한 민주주의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던 데 비해서 김대중 전 대통령은 민주주의와 또 시장경제 자본주의 이런 것들이 서구와 아시아가 별반 다르지 않고 같은 경로로 발전할 수 있다는 인식을 갖고 있으면서 미국에 포렌어페어지에 기고를 하면서 논쟁을 하는 모습들을 보여준 측면이 있어서 어떤 대통령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측면도 있고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측면이 있었는데 어쨌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대해서 상당히 애착을 가지고 관심을 두고 있었던 인물이었음에는 틀림이 없다고 하겠죠.
[앵커]
아시아적 가치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는데 그러니까 리콴유 전 총리가 됐든 박정희 전 대통령이 됐든서구형 민주주의가 과연 아시아에 맞는가, 그 문제에 대해서 많은 논란이 있지 않았습니까?
[인터뷰]
역사적 평가는 아직까지 단정짓기는 이르다고 볼 수 있습니다. 94년도에 논쟁된 사건인덴 아시아적 가치라는 것이 서구의 물질문명, 아시아가 거기에 따라간다는 것이 아시아적 가치에 부합되지 않는다는 것이 즉문화적 숙명론을 이야기한 거거든요.
문화적 숙명론에 대해서 그 당시에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지금 우리한테 중요한 것은 문화가 아니고 숙명적인 민주화다, 이렇게 설전이 벌어졌고 거기에 따라서 리콴유 총리에 대한 여러 가지 역사적 평가, 이런 부분들이 아직까지 논란되고 있는 그런 실정으로 봐야 될 것 같아요. 문제는 박근혜 대통령이 국가 수반으로서 굉장히 드물게 지금 조문을 하러 간단 말이죠.
장례식에 간다고 한다, 앞서도 말씀드렸습니다마는 결국 박정희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 2대에 걸쳐서 나타나는 통치적 이념과 철학 이런 부분들이 리콴유 전 총리가 가지고 있는 통치 이념과 어철학에 굉장히 부합됐다는 점이 굉장히 중요하게 작용한다, 이렇게 봐야 되는 것이죠.
지금 박근혜 대통령이 갖고 있는 통치 스타일은 근본적으로 가장 쉽게 이야기하기에는 원칙 아니겠습니다, 원칙, 그다음 투명성, 이런 것들인데 리콴유 총리가 독재자였나 독재자가 아니었냐, 이런 논란을 차치하고라도 이때부터 싱가포르를 세계 8위의 부국으로 올려놓은 것들이 그러한 통치적 이념과 철학에서 기인한다라고 봐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박근혜 대통령이 아버지와의 선대와의 인연, 이런것도 중요하지만 통치이념에 있어서 국가적 지지, 국민적 지지, 이런 것들을 리콴유 총리의 장례식을 통해서 상당히 다시 한 번 국민에게 투영시킬 수 있는 그런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봅니다.
[인터뷰]
이런 점이 있는 것 같아요. 리콴유 전 총리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는 긍정적인 평가가 많은 것 같아요. 그 이유가 두 분 다 말씀하신 것처럼 상당히 독재자적인 통치행태를 보여왔고 아시아적 가치 말씀하셨습니다마는 싱가포르 국민들이 그것을 받아들였다는 겁니다.
독재라는 체제 자체를. 사실 싱가포르 체제는 경제와 정치가 다르잖아요. 어떻게 보면 사회 민주주의적인 것도 강한 나라고 사회민주적으로 우리나라에 통했을까,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그런 부분들을 지적하고. 또 하나 문제가 아까 말씀하신 게 부패와의 전면전을 선포한 우리 대한민국의 현실이에요, 지금. 리콴유 총리가 상징한 두 단어는 경제부국과 부패해소였거든요.
부패조사국을 만들어서 청렴한 공무원, 깨끗한 나라가 리콴유 총리의 트레이드 마크거든요. 그것이 현재싱가포르를 부국으로 만드는 원동력으로 보는데 우리가 하나 배워야 할 것이 리 총리에 대해서 여러 가지 긍정적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우리가 부패와의 문제에 대해서 배워야 될 게 이 총리는 어쨌든 부패에 대해서 처벌과 단속을 대단히 단순화했다는 거예요. 우리나라와 비교를 해 보면 격세지감을 느끼는 부분이 있는 게우리 김영란법을 하나 만드는 데얼마나 말이 많았습니까? 1년 6개월동안 유예를 했고 또 그 부분도 상당히 누더기법이 되는 게 아니냐, 이런 비판들도 있는 상황이에요.
이 총리는 어쨌든 처벌에 있어서 부패에 있어서 업무의 연관성 같은 것, 우리로 말하면 직무연관성 같은 것, 이런 것들을 보지 않았다는 거예요.
극단적으로 호화 생활을 한다든지 이런 것들 자체가 뇌물수수의 증거가 될 정도로. 물론 그 자체가 우리가 현재 그대로 답습할 수 없겠습니다마는 그러한 것들을 배울 필요가 있다. 청렴하고 부패한 것을 일소한 것에 있어서 리콴유 총리에 대해서 여러 가지 긍정적 평가를 내놓고 있습니다마는 그런 것들을 다 제외하고는 이 총리에 대해서 우리가 지나치게 극찬으로 가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다, 정말 배워야 될 건 그런 것들이다, 부패를 정말 일소했던 리콴유 전 총리에 대한 인식, 이런 것들을 우리가 배울 점이 있다는 거예요.
[인터뷰]
그런 점도 중요하고요. 실제적으로 리콴유 총리의 통치적 기반은 강력한 통치를 기반해서 국가를 개정하겠다는 거거든요.
그 사람들이 남긴 말 중에서 좋은 말들이 많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질서를 넘어선 자유는 용납되지 않는다, 이거예요. 이런 것들이 이 사람이 갖고 있는 싱가포르의 그런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있다고 봐야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리콴유 총리에 대해서 상당히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부분이 있고 물론 리콴유 전 총리가 박정희대통령한테 좋은말을 많이 했죠. 79년도 그 당시에 방문을 했을 때도 지금도 회자될 정도로 그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 어떤 지지자들은 여론조사와 국민적 지지를 받기 위해서 그게 자신을 다 소모시키는데 박정희 대통령은 그렇지 않는다, 현실에 집착하지 않는다국가의 백년대계 즉 미래를 보고 국가를 경영하는 그모습이 좋다라고 평가를 했기 때문에 그 평가 자체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상당히 감동적이었을 거다. 이렇게 봐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리콴유 총리가 가지고 있는 수많은 국정 취약점 중에서 방금 교수님께서 지적하셨습니다마는 저는 그중에서도 부정부패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본받아야 할 게 어록 중에 하나가 있습니다.
뭐냐, 적어도 지도자들은 국가의 20년을 내다보고 정책을 만들어야 된다, 20년을 보고 정책을 집행해야 된다는 이야기가 있거든요. 이것이 결국 국가를 만들어나가는 데 국민적 인기에 영합하지 않고 포퓰리즘과 인기영합에 얽매이지 않고 꾸준하고 성실하게 좌고우면하지 않고 정책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단시간에 평가를 받지 말라, 그것이거든요. 지금 우리 국가현실에 비춰보면 상당히 뼈아픈 얘기라고 봐야 됩니다.
[인터뷰]
한국에서 리콴유 총리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어쨌든 싱가포르를 선진국으로 잘사는 나라로 만들었다기보다 우리 교수님 말씀하신 대로 부패에 대해서 단도한 모습들을 보여주었던 것그래서 우리나라 정치 지도자들이 재산을 부정적으로 축적하고 그런 부분과 대비되는 그 부분이 부각됐다고 할 수 있을 텐데, 부패방지법 같은 경우 김대중 정부 들어와서 많이 논의가 됐는데, 그이후에 됐는데 싱가포르는 1960년에이미 부패방지법이 만들어 졌거든요.
그러면서 부패조사국을 총리 직속에 설치하고 그래서 혐의가 있는 공직자에 대해서는 가족에 대해서까지 이조사국이 직권으로 조사할 수 있게 실시하면서 이런 것들을 뿌리뽑았는데요.
한국에서는 공수처, 공직비리수사처 설치하는 것도 사실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모습이기 때문에 그런 모습들을 박근혜 대통령이 지금 적폐해소를 전면에 내세고 있는 상황에서 그런 면을 정치적으로 효과를 보기 위한 측면도 아마도 방문에 상당히 반영되었을 것이라고 봅니다.
[앵커]
리콴유 전 총리 이력을 살펴보면 아주 부유한 중국 부자 집안에서 태어나서 영국의 명문 대학에서 유학도 하고 30대 총리가 돼서 31년간 총리를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좋은 말을 많이 했는데 국민에게 뭐가 필요하냐 했을 때 밥과 쌀, 돈 이런 걸 얘기하지 자유 이런 건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런 얘기를 하고 사실저도 개인적으로 중학교 때그게 제대로 된 교육인지는 모르겠지만 중학교때배웠을 때 교과서에 그런 얘기가 있었더라고요.
민주주의의 기본 조건은 어느 정도의 경제적인 수준이다, 이런 걸 배웠는데 그런 얘기랑 약간 일맥상통하고 그런 것이 우리의 산업화 논란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있습니다.
[인터뷰]
이 부분이 중요한 부분인데전 총리에 대해서 국정 철학이 맞냐, 틀리느냐, 이런 것은 재단하는 자리는 아닙니다마는 실질적으로 리콴유 전 총리가 통치한 스타일은 70년대 중반에우리가 혹시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마는 박정희 대통령 한국적 민주주의토착화라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 부분하고 상당히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리콴유 총리가 싱가포르를 절대 부국으로 만들어 놨기는 했습니다마는 부가 먼저냐 인권이 먼저냐 아니면 인권 우선을 하느냐, 부가 우선하느냐는 가치적인 부분이 계속 진행돼야 할 부분으로 남겨두고 있습니다.
물론 결과적으로 싱가포르가 부국이 돼서 국민들이 그 부에 흡족해서 살고 있다고는 하나 이런 것들이 오랜 강압적 통치와 강압적 법 제도 속에서 일종의 국민의 길들이기식으로 이야기한다 그러면 그게 토한 사실상 부정적 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는 그런 논리라고 봐야 되거든요.
그래서 지금 현재의 리콴유 전 총리가 세상을 떠났습니다마는 여기에 대해서 싱가포르에 대한 평가, 민주적 평가 이런 부분들은 섣불리 평가하는 것보다 다만 지금 박근혜 대통령도 대통령이 행보를 통해서 장례식에 조문갈 정도로 리콴유 전 총리에 대한 개인적인 각별함, 애정그리고 국가대 국가의 외교적 예유, 이런 부분만 신경써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인터뷰]
저는 한국적 민주주의라고 말씀을 하셨는데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것은 리콴유 전 총리에 대비시키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봐요.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것, 민주주의 앞에 한국적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던 것은 그당시에 정당하지 못했 정통하지 못한정권을 합리화, 정당화, 합법화 시키기 위한 하나의 수식어였어요. 말하자면 윤 센터장께서 말씀하신 아시아적 가치, 그 부분은 조금 다른 얘기인 것 같아요.
아시아적 가치라는 것이 경제발전민주주의의 문제입니다. 우리나라식으로 얘기하면 산업화와 민주화는 다 소중한 것이고, 하나가 없이는 안 되는 거거든요. 앵커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최소환의 물적토대가 없이 민주주의는 가능하겠느냐, 맞는 말씀이에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아시아적 가치라는 싱가포르의 관점하고 한국직 민주주의의 상황은 다르다는 겁니다.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것은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유신을 정당하는 거였고 싱가포르가 우리와 다른 게정당하기 위한 것들이었어요.
유신을 정당하기 위한 것이었고, 우리와 싱가포르는 다르죠. 인구가 500만밖에 안 되는 작은 나라고, 천연자원이 전무하다 싶고 우리나라도 부존자원이대단히 적은 나라이기는 합니다마는 그런 부분에서 부를 이룩하기 위해서 그렇기 때문언론통제도 좀 했고 집회와 시위자유화, 그러면서 우리와 비슷한 측면이 있어요.
산업화위해서 민주화. 개발독재라는 통치 방식을 했고, 그런 것까지 모든 것이 합리화돼서 안 된다는 우리 인식은 반드시 가져야 된다는 생각해야해요.
[인터뷰]
긍정적인 평가가 있는데 싱가포르에 대한 평가들은 사실 냉정하게 볼 필요가 있거든요.
지금 잘 살게 된 세계 부국이 된것에 대해서 아시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가 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데일면에어두운 측면이 많이 있어요.
이것이 리콴유 총리에 대한 맞물리는 부분이 있을 수 있는데요.
지금 보면 빈부격차같은 경우 거의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하거든요, 그런 상황이고 흥미로운 조사들이 있는데 미국 갤럽에서 2012년에 조사를 했는데 세계에서 감정을 가장 잘 드러내지 않는 나라로 싱가포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추정해 보기는 여러 가지 규제, 감시이런 것들이 사실 있는 부분에 있어서는 영향받았을 가능성이있거든요. 그리고 가장 또 불행한 나라 군에 속해있는 상황이에요.
이것이 조사를 어떻게 했느냐 하는 사회적으로 존중받았다고 느꼈지만 행복했는지, 이런 것들을 전날 느낌들을 가지고 물어봐서 평가를 한 것인데 그런데 불행한 나라 상위권에속했거든요.
그런 부분들은 여러 가지 잘 사는 나라에 비해서 어두운 면이라고 할 수 있겠고 그 부가 국민들에게 충분하게 이것이 퍼져있지 못하다는 측면이있고 또 한 조사에 보면 2012년 건데요.
기회가 되면 외국으로 이민가고 싶다라는 싱가포르 국민들이 한 56%가 응답을 하고 있다니까 모든 면들이 많이.
[인터뷰]
행복 지수가 한 때 싱가포르가 세계에서 가장 낮은 국가로 지적됐었죠. 최 교수님이 말씀하셨던 한국적 민주주의 토착화에 대한 부분은 제가 말씀드린부분은 그런 뜻으로 말씀드린 것은 아니고요.
일일종의 싱가포르는 싱가포르 방식대로싱가포르의 경제개발 정책을 반드시 했다, 통치에 있어서 환경적인 영향은 크지 않습니까?
대한민국과 싱가포르가 같을 수 없죠. 싱가포르는 인구 500만의 조그만한 나라였기 때문에 어쩌면 통치에 있어서 상당히 쉽게 또 용이할 수 접근할 수 있었던 부분이있었다라고 보면 대한민국도 전혀 다른 양상을 가지고 있었죠.
이데올로기부터 시작해서 헌법적인 자유민주주의의 가치실현 이런 것들이 중첩되다 보니까 통치 환경에 있어서 싱가포르와 대한민국이 같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다만 이제 우리가 여기서 조심해야 될부분은 자칫 잘못하면 싱가포르의 리콴유 전 총리를 말미암아통치스타일그리고 여러 가지 민주적 가치, 이런 부분을 얘기하게 되면 이 부분이 이상한 걸로 오해가 될 수 있고 또 설전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것은 박근혜 대통령이 조문에서는 피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 봅니다.
[앵커]
워낙 박정희 전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과 인연이 있고 그 얘기를 하다보면 또 개발독재라고 하는 흔히 말하는 경제성장 과정이 저희가 주관적으로 비슷하다고 한 것이 아니라 이미 세계 석학들이 다 비교하고 분석이 끝난 것이기 때문에 다만 평가가 조금 엇갈릴 뿐이지 분석은 이미 끝났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영국 식민통치, 우리는 일제 한국전도 겪었지만 싱가포르 같은 경우는 영국 식민 통치를 벗어나서 말레이연방에 합류하려다가 합류도 못한 그런 야주 가난한 어촌도시였습니다.
그래서 리콴유 전 총리가 총리를 맡았을 때 만 하더라도 1인당 GDP가 400달러였는데 지금은 5만 달러가 넘어서 세계경제규모로는 8위, 아시아에서는 가장 잘사는 나라 이런 부분이 있었는데 또 윤 센터장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그런데 국민들은 행복하냐. 분명한 경제지표는 상당히 좋은데 국민들은 그렇게 행복하지 않고 표정도 잘 웃질않고 밝지가 않다. 그런 면들이 어쨌든 시사하는 바는 있는 것 같습니다.
[인터뷰]
일정한 단계에 올라서게 되면 절대 빈곤의 문제라든지 절대가난의 문제가 해결되고 나면 인간이 어떤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이거든요.
그러니까 싱가포르의 척박한 정치환경도 그랬고 여러 가지 자연환경도 그렇고 그런 면에리콴유 전 총리 같은 경우는 영웅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이런 인물들이 나타나서 비록 31년의 독재정치였습니다마는 받아들였던 거예요.
중요한 것은 일정한 단계가 올라온 다음 에 국민들의 행복지수 말씀하셨이게 언제까지 가능할 것인지 또 아들이 총리를 맡았는데 이러한 통치 방식이라는 것이 5만달러까지 와서 세계 8위의 경제대국이 됐어요. 이런 단계에서 과연 국민들에 대한 일률적인 통체가 가능하다고 저는 보지 않습니다.
남의 나라를 우리가 걱정해 줄 필요가 없습니다마는 싱가포르의 통치방식이나여러 가지 정치적인 부분 같은 것들도 뭔가 새로운 변화를 모색할때가 됐다거기서 또 하나 우리가 볼 필요가 있다 라는 거예요. 그런 부분이 너무 간과되면 안 된다는 거죠.
[인터뷰]
싱가포르 같은 경우에 우리가 심한 표현들 중에 여러 가지가 있는데 잘 사는 북한이다, 통제가 워낙 심하니까. 또는 그런 표현도 있고. 국가가 사실 국민들의 굉장히 세밀한 부분까지 관여하는데 어떤 불임수술을 실제로 권고했던 부분도 있고 껌을 못 씹게 한다든지 여러 가지가 있는데 보면 흡연하면 80만원 벌금을 내고 쓰레기 무단투기해도 마찬가지.
또 화장실 변기물 내리지 않았다, 이게 걸렸을 때 또 80만원 정도 벌금을 내고 또 지하철에서 음식물을 먹었을 때 또 벌금을 내고, 물론 걸렸을 때의 문제들인데 사실 보면 국민들이 인간으로서 개별적 자율성, 이런 부분을 제고하고 증진시킬 고양시킬 측면이다른 통제의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는 측면도 반드시 있고 과거에 보면 태형 문제 때문에. 그것도 상당히 세게 때린다고 해도 가볍게 때리는 것이 아니라 그리고 그것이 만약에 5대라고 한다면 한번에 5대를 때리지 못하고 심하기 때문에 띄엄띄엄 며칠의 간격을 주기도 한다고 하는데
[앵커]
얼마전에 부산 서면에 쓰레기 안 치웠는데. 거기에 태형이 있었으면 만날 맞았겠네. [인터뷰] 얼마 전에 미국 관광객이 범죄를 저질러서 그것이 큰 것도 아니죠. 태형을 맞는데 미국의 자존심을 상당히 상처를 냈다, 이런 평가도 있었죠. 미국과 싱가포르 간에 자존심 싸움도 있었고 결국 태형을 때리기도 했습니다.
[앵커]
적합한 표현은 아닌 것같은데 국가 차원에서 군기가 상당히 강하네요.
[인터뷰]
그러니까 우리가 상대국을 이야기를 했을 때 거기에 대한 선입견을 많이 얘기를 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싱가포르 이야기하게 되면 거기에 간다라고 하면 아, 거기가서 참 조심해야지, 이런 단어가 먼저 떠오릅니다. 그만큼 법과 질서가 강력하다라고 인식되는 것이죠. 그것이 인권이 먼저냐, 부가 먼저냐, 법과 질서가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 하는 논란과 똑같습니다마는 태형에 대한 부분은 바로 그것을 단적으로 드러낼 싱가포르의 가장 대표적인 태형제도죠. 그래서 지적하셨던 것이 93년도에 있었던 그 사건이 전세계로 유명한 사건입니다.
곤장 6대를 그냥 맞는 게 아니고 간호사로 입회시켜놓고 상처가터지면 소독하고 또 때리고, 이런 부분인데 사실 잘못된 부분들이 없지 않아 보죠. 잘못 오해가 된 부분. 왜냐하면 태형히 그렇게 무조건 하는 건 아니고 공공의 이익에 아쥬악의적인 사건에 있어서 태형을 집행하는 그런 걸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관광객도 99년도에 한 사람이 태형을 받았죠.
호텔 여직원을 추행해서 잘못으로 인해서 거기에서 감옥 생활도 하고 태형도 맞았는데 이런 부분들은 문화적 기인해서 이야기한다 그러면 싱가포르의 태형 제도를 이해할 수 있는데 인권적 차원에서 이야기하면 사실 인권이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굉장히 많은 것이죠.
[인터뷰]
제가 1978년도에 싱가포르를 갔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갔는데 싱가포르 가서 이 교수님 말씀하신게 생각이 난 건데 담배를 단속을 하더라고요. 담배 피우면 큰일난다.
지금 우리나라 강남 이런 데 피우면 벌금내고 그렇습니다마는 그때는 담배 천국이었거든요, 대한민국이 그때 담배 피우면 벌금이 얼마나 해서 귀국도 못 한다, 이런 얘기를 들었던 것이 기억이 나요.
그정도로 통제가 강했던 나라예요. 아마 그러한 것들이 싱가포르가 생존을 위한 조건들이 아니었나 봅니다.
[앵커]
그러니까 통치형식은 개발독재였다 어디에 주안점을 두고 그만큼 어떤 부분은 제약이 있었다, 사실관계는 이미 평가는 다 끝났는데 그런 싱가포르에 대해서 리콴유 전 총리에 대해서 개발독재냐, 아니냐라는 논란 자체는 무의미하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우리쪽으로 해서 과연 필요했느냐 그 시대에. 그리고 어떤 것이 부족했느냐, 이러면 되는데 그런 논의 자체가 어느 정도 막혀버리면 그것도 합리적인 사회는 아닌 것 같다고.
[인터뷰]
지나 치게 외국의 인물에 대해서 긍정평가를 하는 게 당연한 거겠죠. 우리와많은 부분이 겹치고. 그러나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싱가포르 역사적 환경, 그리고 개발과정, 이런 것들에서 우리가 배울점은 배우고 또 비판할 점은 비판하고, 이런 것들이 고인에 대한 추모덕에 가깝지 않다 싶어요.
[인터뷰]
하나만 더 말씀을 드리자면 1963년도에 박정희 대통령이 그 당시에 국가, 사실상 국가수반이죠. 케네디 장례식에참석을 했거든요. 그 당시에 참석을 한 것을 두고 계속회자가 됐습니다.
일종의 조문외교였다, 원조를 받기 위한 평가였다, 이러는데 박근혜 대통령이 장례식에 참석하는 건앞으로 당분간은 여기에 대해서 상당한 논란이 있을 겁니다.
왜냐하면 리콴유 전 총리에 대한 통치적 스타일이 독특했기 때문에 대통령 행보가 그런 것을 벤치마킹이냐, 아니면 그것을 같이 일맥상통하기 위한 투영시키기 위한 노력들이냐,이런 논란은 대통령 행보이기 위해서 있을 수 밖에 없다 라는 생각을 합니다.
[앵커]
일시적이겠지만 국장이 29일날 열리는데 일시적이겠지만 어쨌든 국장 조문을 하면서 통치 스타일이 비슷하기 때문에 당분간 짧은 기간이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 얘기가 다시 한 번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 같은데. 저희가 마지막으로 하나, 박정희 전 대통령 이야기 외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시절을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2006년에 한나라당 대표로 박근혜 당시 대표가 지방선거 때문에 유세를 하다가 이른바 테러, 면도칼 테러를 당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그날 하필 리콴유 전 총리가 방문을 하고 여러 가지 도움도 얘기를 하고 했다는데 아침에 멀쩡히 만나서 서로 안부를 나눴는데 나중에 내 소식을 듣고 너무나 안타깝다는 말씀을 하셨다. 쾌유비는 편지도 보내주셨다, 박근혜 대통령 자서전에나오는데 아버지 그리고 딸, 좋지 않은 그런 상황과도 인연도 있고 해서 어쨌든 박근혜 대통령으로서는 개인적으로 애착이 가는 다른 나라의 지도자, 정상이다, 이런 점은 분명할 것 같습니다.
리콴유 전 총리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조문일정과 관련해서 저희가 한번 리콴유 전 총리, 싱가포르의 통치스타일, 개발과정, 그리고 우리나라와의 공통점에 대해서 세 분 패널과 이야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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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행 : 이종구 앵커
[앵커]
싱가포르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리콴유 전 총리가 향년 91세로 별세했습니다.
대한민국은 물론 박정희 전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 부녀와 2대에 걸친 인연이 각별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박근혜 대통령은 리콴유 전 총리의 국장에 직접 참석하기로 했습니다. 먼저 박근혜 대통령의 애도 성명 그래픽으로 보시겠습니다.
고인은 한, 싱가포르 관계 발전을 위해 귀중한 지혜를 주신 우리 국민의 친구였다. 세계 지도자들에게 큰 귀감이 되신 리 전 총리의 영원한 안식을 기원한다, 이렇게 애도 성명을 발표를 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한 나라의 대통령이 다른 국가 지도자에 장례식에 직접 참석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이렇게 봐야 합니까?
[인터뷰]
이례적이죠, 왜냐하면 대통령은 한 국가의 통치자죠, 국가 수반이죠. 대통령 행보 자체가 던져주는 메시지는 굉장히 중요한 메시지라고 봅니다.
그래서 행보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보는데 박근혜 대통령이 이번에 가는 것은 2000년 당시김대중 전 대통령이 오부치 총리 별세 때 가고 15년 만에 처음이라고 얘기를 하는데 이 부분에는 두 가지 질문이 있을 것 같습니다.
첫 번째는 아버지와 고 박정희 대통령과의 인연, 그리고 또 박근혜 대통령과의 인연. 그에 따른 리콴유 전 총리의 한국에 대한 애정, 이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을 했지만 그래도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포퓰리즘그리고 인기영합, 일종의 부정부패, 이러한 이미지에 대해서 상당한 어떤 영향을 받을 수 있다라는 것이 저는 작용하고 있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리콴유 전 총리가 싱가포르를 가장 깨끗하고 청결한 국가로 만드는 그런 것들이 청렴과 부정부패 척결이었죠. 이런 것들이 지금 대한민국에서 일고 있는 부정부패 척결, 이런 정국과 무관치 않다고 봐서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리콴유의 장례석에 참석함으로써 이에 대한 조금 더 이미지를 쇄신 시킬 필요가 있다 라는 그런 생각이 있고 영향을 더 긍정적으로 가져올 수 있다는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앵커]
그러니까 2013년에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 장례식 때100개국이 넘는 정상들이 가서 조문외교를 펼쳤을 때 우리는 총리를 보냈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이번에 박대통령이 직접 현지에 간다는 것은 그만큼 리 전 총리와의 인연이 얼마나각별했는지를 반증할 수 있는 것 같은데 먼저 예전 사진 보면서 어떤 인연이 있었는지 살펴보고 이야기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1979년 10월달 찍은샤진입니다. 당시 왼쪽에 있는 박근혜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어찌보면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했죠. 만찬장에서 건배하는 모습입니다. 또 다른 사진 하나 보시죠. 박정희 전 대통령이 리콴유 전 총리에게 훈장을 주는 모습. 79년 10월 19일, 시기도 상당히 중요해요. 10월26일에 서거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엿새 전에 리콴유 전 총리를 만났고 단체 사진을 찍은 모습인데 왼쪽에 박근혜 대통령 모습도 보입니다. 퍼스트레이디 역할도 했지만 통역을 했다, 대통령의 딸이 직접 통역을 했다.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와닿지는 않은데.
[인터뷰]
그 당시에 박근혜 대통령은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고 있죠. 1974년도에 육영수 여사가 서거하셨으니까 직접 통역했다라는 것은 단순히 영어, 통역의 의미를 떠난 거겠죠. 그당시에 번역사, 통역사가 없었겠습니까? 그런 거하고 다른 거죠.
그만큼 국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고 리콴유 총리에 대해서 싱가포르의 국부, 그리고 싱가포르를 지금의 선진국 반석으로 올려놓은 지도자다, 평가에 인색하지 않는데 박근혜 대통령으로서는 아버지와의 인연이 상당히 애틋하게 생각났을 겁니다.
지금 아까 사진 두 장을 봤습니다마는 박정희 전 대통령께서 서거하시기 불과 며칠 전에 만났거든요. 그리고 리콴유 총리가 한국을 방문한 것이 97년에 처음 이었어요.
그때 박정희 전 대통령과 인연이 있고 통역에 참석했던 건데. 박근혜 대통령으로서는 상당히 여러 만감이 교차할 것으로 봐요. 아버지와의 만남도 생각이 날 거고 또 아버지와의 인연이 대단히 소중한것과 더불어서 이미지도 상당히 비슷해요.
리콴유 총리는 박정희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개발 독재를 통해서 국가를 부의 반석에 올려놓은 지도자고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굉장히 권위주의적 지도자였죠. 독재자라는 표현도 가능할 정도의 그런 통제정치, 언론집회의 결산을 막았던 그런 지도자였다라는 거예요.
그러면서 아시아에 있어서 한때 세 마리 용. 한국, 싱가포르, 대만 이런 얘기. 바로 그런 지도자가 박정희 대통령과 리콴유 총리. 박근혜 대통령으로서는 상당히 여러 가지 감회가 새로웠다. 그런 점에서 이례적으로 직접 조문에 참석하는 게 아니냐, 이렇게 생각이 듭니다.
[앵커]
리콴유 전 총리는 말씀하신 것처럼 박정희 전 대통령과 경제 부국하는 과정, 이런 것에서 많이 겹치는 부분이 있지 않습니까, 명과 암 모두. 그런데 리 전 총리는 박정희 당시 대통령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남겼습니다. 어떤 이야기를 하고 어떻게 평가를 했는지 보시겠습니다.
아시아 3대 지도자는 중국의 덩샤오핑, 일본의 요시다 시게루 총리, 그리고 한국의 박정희 대통령이다, 이렇게 한국을 79년에 방문하고 나서 미국에 타임지와 인터뷰를 하면서 이렇게 평가를 했습니다. 높게 평가를 했죠. 또 다른 내용을 보시면 박정희 전 대통령이 한국은 변형을 이룰 것이고 반드시 성공하리라고 강하게 의지를 보인 것에 감명을 받았다.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리 전 총리, 박정희 전 대통령, 비슷한 부분이 상당히 많습니다.
[인터뷰]
어쨌든 나라들 세계 중진국, 또는 선진국 대열에 올라서게 했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서는 어쨌든 평가받는 것이고 서구의 시각에서 봤을 때는 사실 지구상에 없는 현상을 만들어 낸 것이기 때문에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낸 것이기 때문에 바라보는 시각이 굉장히 다를 수밖에 없다고 할 수 있겠고 어쨌든 아까 최 교수님 말씀하셨습니다마는 국가를 개발하는 과정, 발전시키는 과정에 있어서 비슷한 국가적인 경로를 밟았다는 점에서 양국 지도자들이 과거에 동질감들, 공감대를 상당히 폭넓게 가지고 있었다고 할 수 있겠고 그런 상황에서 외국의 시선도 비슷하게 보는 측면이 있었는데 다만 어쨌든 리콴유 전 총리가 우리나라 전직 대통령들에 대한 평가를 많이 했는데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굉장히 긍정적인 평가를 많이 했습니다.
강단이 있는 모습이고 어쨌든 국가를 발전시키는 데 기여한 측면이 강하다는 통찰력 있는 인물로 묘사를 많이 했는데 전두환, 노태우 전직 대통령들에 대해서도 이렇게 평가를 했어요.
그들은 당시에 통용되는 기준에 따라서 행동했을 뿐이다, 악당이 아니다라고 하면서 어쨌든 그런 것들을 다소간면죄부를 주는 듯한 발언을 하기도 했었거든요.
그런 측면들이 눈에 띄는 측면들이 있고 또 한 가지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해서 민주화운동이라든가 이런 걸 하게 되면서 그늘이 졌다라는 평가도 하면서 당시에 김대중 전 대통령과는 이른바 아시아적 가치, 아시안밸류를 놓고 상당히 설전을 벌인 바가 있거든요.
리콴유 총리 같은 경우 아시아는 서구 민주주의와 다른 독특한 경로로 발전해 왔기 때문에 거기에 맞는 독특한 민주주의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던 데 비해서 김대중 전 대통령은 민주주의와 또 시장경제 자본주의 이런 것들이 서구와 아시아가 별반 다르지 않고 같은 경로로 발전할 수 있다는 인식을 갖고 있으면서 미국에 포렌어페어지에 기고를 하면서 논쟁을 하는 모습들을 보여준 측면이 있어서 어떤 대통령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측면도 있고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측면이 있었는데 어쨌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대해서 상당히 애착을 가지고 관심을 두고 있었던 인물이었음에는 틀림이 없다고 하겠죠.
[앵커]
아시아적 가치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는데 그러니까 리콴유 전 총리가 됐든 박정희 전 대통령이 됐든서구형 민주주의가 과연 아시아에 맞는가, 그 문제에 대해서 많은 논란이 있지 않았습니까?
[인터뷰]
역사적 평가는 아직까지 단정짓기는 이르다고 볼 수 있습니다. 94년도에 논쟁된 사건인덴 아시아적 가치라는 것이 서구의 물질문명, 아시아가 거기에 따라간다는 것이 아시아적 가치에 부합되지 않는다는 것이 즉문화적 숙명론을 이야기한 거거든요.
문화적 숙명론에 대해서 그 당시에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지금 우리한테 중요한 것은 문화가 아니고 숙명적인 민주화다, 이렇게 설전이 벌어졌고 거기에 따라서 리콴유 총리에 대한 여러 가지 역사적 평가, 이런 부분들이 아직까지 논란되고 있는 그런 실정으로 봐야 될 것 같아요. 문제는 박근혜 대통령이 국가 수반으로서 굉장히 드물게 지금 조문을 하러 간단 말이죠.
장례식에 간다고 한다, 앞서도 말씀드렸습니다마는 결국 박정희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 2대에 걸쳐서 나타나는 통치적 이념과 철학 이런 부분들이 리콴유 전 총리가 가지고 있는 통치 이념과 어철학에 굉장히 부합됐다는 점이 굉장히 중요하게 작용한다, 이렇게 봐야 되는 것이죠.
지금 박근혜 대통령이 갖고 있는 통치 스타일은 근본적으로 가장 쉽게 이야기하기에는 원칙 아니겠습니다, 원칙, 그다음 투명성, 이런 것들인데 리콴유 총리가 독재자였나 독재자가 아니었냐, 이런 논란을 차치하고라도 이때부터 싱가포르를 세계 8위의 부국으로 올려놓은 것들이 그러한 통치적 이념과 철학에서 기인한다라고 봐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박근혜 대통령이 아버지와의 선대와의 인연, 이런것도 중요하지만 통치이념에 있어서 국가적 지지, 국민적 지지, 이런 것들을 리콴유 총리의 장례식을 통해서 상당히 다시 한 번 국민에게 투영시킬 수 있는 그런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봅니다.
[인터뷰]
이런 점이 있는 것 같아요. 리콴유 전 총리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는 긍정적인 평가가 많은 것 같아요. 그 이유가 두 분 다 말씀하신 것처럼 상당히 독재자적인 통치행태를 보여왔고 아시아적 가치 말씀하셨습니다마는 싱가포르 국민들이 그것을 받아들였다는 겁니다.
독재라는 체제 자체를. 사실 싱가포르 체제는 경제와 정치가 다르잖아요. 어떻게 보면 사회 민주주의적인 것도 강한 나라고 사회민주적으로 우리나라에 통했을까,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그런 부분들을 지적하고. 또 하나 문제가 아까 말씀하신 게 부패와의 전면전을 선포한 우리 대한민국의 현실이에요, 지금. 리콴유 총리가 상징한 두 단어는 경제부국과 부패해소였거든요.
부패조사국을 만들어서 청렴한 공무원, 깨끗한 나라가 리콴유 총리의 트레이드 마크거든요. 그것이 현재싱가포르를 부국으로 만드는 원동력으로 보는데 우리가 하나 배워야 할 것이 리 총리에 대해서 여러 가지 긍정적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우리가 부패와의 문제에 대해서 배워야 될 게 이 총리는 어쨌든 부패에 대해서 처벌과 단속을 대단히 단순화했다는 거예요. 우리나라와 비교를 해 보면 격세지감을 느끼는 부분이 있는 게우리 김영란법을 하나 만드는 데얼마나 말이 많았습니까? 1년 6개월동안 유예를 했고 또 그 부분도 상당히 누더기법이 되는 게 아니냐, 이런 비판들도 있는 상황이에요.
이 총리는 어쨌든 처벌에 있어서 부패에 있어서 업무의 연관성 같은 것, 우리로 말하면 직무연관성 같은 것, 이런 것들을 보지 않았다는 거예요.
극단적으로 호화 생활을 한다든지 이런 것들 자체가 뇌물수수의 증거가 될 정도로. 물론 그 자체가 우리가 현재 그대로 답습할 수 없겠습니다마는 그러한 것들을 배울 필요가 있다. 청렴하고 부패한 것을 일소한 것에 있어서 리콴유 총리에 대해서 여러 가지 긍정적 평가를 내놓고 있습니다마는 그런 것들을 다 제외하고는 이 총리에 대해서 우리가 지나치게 극찬으로 가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다, 정말 배워야 될 건 그런 것들이다, 부패를 정말 일소했던 리콴유 전 총리에 대한 인식, 이런 것들을 우리가 배울 점이 있다는 거예요.
[인터뷰]
그런 점도 중요하고요. 실제적으로 리콴유 총리의 통치적 기반은 강력한 통치를 기반해서 국가를 개정하겠다는 거거든요.
그 사람들이 남긴 말 중에서 좋은 말들이 많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질서를 넘어선 자유는 용납되지 않는다, 이거예요. 이런 것들이 이 사람이 갖고 있는 싱가포르의 그런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있다고 봐야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리콴유 총리에 대해서 상당히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부분이 있고 물론 리콴유 전 총리가 박정희대통령한테 좋은말을 많이 했죠. 79년도 그 당시에 방문을 했을 때도 지금도 회자될 정도로 그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 어떤 지지자들은 여론조사와 국민적 지지를 받기 위해서 그게 자신을 다 소모시키는데 박정희 대통령은 그렇지 않는다, 현실에 집착하지 않는다국가의 백년대계 즉 미래를 보고 국가를 경영하는 그모습이 좋다라고 평가를 했기 때문에 그 평가 자체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상당히 감동적이었을 거다. 이렇게 봐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리콴유 총리가 가지고 있는 수많은 국정 취약점 중에서 방금 교수님께서 지적하셨습니다마는 저는 그중에서도 부정부패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본받아야 할 게 어록 중에 하나가 있습니다.
뭐냐, 적어도 지도자들은 국가의 20년을 내다보고 정책을 만들어야 된다, 20년을 보고 정책을 집행해야 된다는 이야기가 있거든요. 이것이 결국 국가를 만들어나가는 데 국민적 인기에 영합하지 않고 포퓰리즘과 인기영합에 얽매이지 않고 꾸준하고 성실하게 좌고우면하지 않고 정책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단시간에 평가를 받지 말라, 그것이거든요. 지금 우리 국가현실에 비춰보면 상당히 뼈아픈 얘기라고 봐야 됩니다.
[인터뷰]
한국에서 리콴유 총리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어쨌든 싱가포르를 선진국으로 잘사는 나라로 만들었다기보다 우리 교수님 말씀하신 대로 부패에 대해서 단도한 모습들을 보여주었던 것그래서 우리나라 정치 지도자들이 재산을 부정적으로 축적하고 그런 부분과 대비되는 그 부분이 부각됐다고 할 수 있을 텐데, 부패방지법 같은 경우 김대중 정부 들어와서 많이 논의가 됐는데, 그이후에 됐는데 싱가포르는 1960년에이미 부패방지법이 만들어 졌거든요.
그러면서 부패조사국을 총리 직속에 설치하고 그래서 혐의가 있는 공직자에 대해서는 가족에 대해서까지 이조사국이 직권으로 조사할 수 있게 실시하면서 이런 것들을 뿌리뽑았는데요.
한국에서는 공수처, 공직비리수사처 설치하는 것도 사실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모습이기 때문에 그런 모습들을 박근혜 대통령이 지금 적폐해소를 전면에 내세고 있는 상황에서 그런 면을 정치적으로 효과를 보기 위한 측면도 아마도 방문에 상당히 반영되었을 것이라고 봅니다.
[앵커]
리콴유 전 총리 이력을 살펴보면 아주 부유한 중국 부자 집안에서 태어나서 영국의 명문 대학에서 유학도 하고 30대 총리가 돼서 31년간 총리를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좋은 말을 많이 했는데 국민에게 뭐가 필요하냐 했을 때 밥과 쌀, 돈 이런 걸 얘기하지 자유 이런 건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런 얘기를 하고 사실저도 개인적으로 중학교 때그게 제대로 된 교육인지는 모르겠지만 중학교때배웠을 때 교과서에 그런 얘기가 있었더라고요.
민주주의의 기본 조건은 어느 정도의 경제적인 수준이다, 이런 걸 배웠는데 그런 얘기랑 약간 일맥상통하고 그런 것이 우리의 산업화 논란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있습니다.
[인터뷰]
이 부분이 중요한 부분인데전 총리에 대해서 국정 철학이 맞냐, 틀리느냐, 이런 것은 재단하는 자리는 아닙니다마는 실질적으로 리콴유 전 총리가 통치한 스타일은 70년대 중반에우리가 혹시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마는 박정희 대통령 한국적 민주주의토착화라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 부분하고 상당히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리콴유 총리가 싱가포르를 절대 부국으로 만들어 놨기는 했습니다마는 부가 먼저냐 인권이 먼저냐 아니면 인권 우선을 하느냐, 부가 우선하느냐는 가치적인 부분이 계속 진행돼야 할 부분으로 남겨두고 있습니다.
물론 결과적으로 싱가포르가 부국이 돼서 국민들이 그 부에 흡족해서 살고 있다고는 하나 이런 것들이 오랜 강압적 통치와 강압적 법 제도 속에서 일종의 국민의 길들이기식으로 이야기한다 그러면 그게 토한 사실상 부정적 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는 그런 논리라고 봐야 되거든요.
그래서 지금 현재의 리콴유 전 총리가 세상을 떠났습니다마는 여기에 대해서 싱가포르에 대한 평가, 민주적 평가 이런 부분들은 섣불리 평가하는 것보다 다만 지금 박근혜 대통령도 대통령이 행보를 통해서 장례식에 조문갈 정도로 리콴유 전 총리에 대한 개인적인 각별함, 애정그리고 국가대 국가의 외교적 예유, 이런 부분만 신경써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인터뷰]
저는 한국적 민주주의라고 말씀을 하셨는데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것은 리콴유 전 총리에 대비시키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봐요.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것, 민주주의 앞에 한국적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던 것은 그당시에 정당하지 못했 정통하지 못한정권을 합리화, 정당화, 합법화 시키기 위한 하나의 수식어였어요. 말하자면 윤 센터장께서 말씀하신 아시아적 가치, 그 부분은 조금 다른 얘기인 것 같아요.
아시아적 가치라는 것이 경제발전민주주의의 문제입니다. 우리나라식으로 얘기하면 산업화와 민주화는 다 소중한 것이고, 하나가 없이는 안 되는 거거든요. 앵커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최소환의 물적토대가 없이 민주주의는 가능하겠느냐, 맞는 말씀이에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아시아적 가치라는 싱가포르의 관점하고 한국직 민주주의의 상황은 다르다는 겁니다.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것은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유신을 정당하는 거였고 싱가포르가 우리와 다른 게정당하기 위한 것들이었어요.
유신을 정당하기 위한 것이었고, 우리와 싱가포르는 다르죠. 인구가 500만밖에 안 되는 작은 나라고, 천연자원이 전무하다 싶고 우리나라도 부존자원이대단히 적은 나라이기는 합니다마는 그런 부분에서 부를 이룩하기 위해서 그렇기 때문언론통제도 좀 했고 집회와 시위자유화, 그러면서 우리와 비슷한 측면이 있어요.
산업화위해서 민주화. 개발독재라는 통치 방식을 했고, 그런 것까지 모든 것이 합리화돼서 안 된다는 우리 인식은 반드시 가져야 된다는 생각해야해요.
[인터뷰]
긍정적인 평가가 있는데 싱가포르에 대한 평가들은 사실 냉정하게 볼 필요가 있거든요.
지금 잘 살게 된 세계 부국이 된것에 대해서 아시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가 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데일면에어두운 측면이 많이 있어요.
이것이 리콴유 총리에 대한 맞물리는 부분이 있을 수 있는데요.
지금 보면 빈부격차같은 경우 거의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하거든요, 그런 상황이고 흥미로운 조사들이 있는데 미국 갤럽에서 2012년에 조사를 했는데 세계에서 감정을 가장 잘 드러내지 않는 나라로 싱가포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추정해 보기는 여러 가지 규제, 감시이런 것들이 사실 있는 부분에 있어서는 영향받았을 가능성이있거든요. 그리고 가장 또 불행한 나라 군에 속해있는 상황이에요.
이것이 조사를 어떻게 했느냐 하는 사회적으로 존중받았다고 느꼈지만 행복했는지, 이런 것들을 전날 느낌들을 가지고 물어봐서 평가를 한 것인데 그런데 불행한 나라 상위권에속했거든요.
그런 부분들은 여러 가지 잘 사는 나라에 비해서 어두운 면이라고 할 수 있겠고 그 부가 국민들에게 충분하게 이것이 퍼져있지 못하다는 측면이있고 또 한 조사에 보면 2012년 건데요.
기회가 되면 외국으로 이민가고 싶다라는 싱가포르 국민들이 한 56%가 응답을 하고 있다니까 모든 면들이 많이.
[인터뷰]
행복 지수가 한 때 싱가포르가 세계에서 가장 낮은 국가로 지적됐었죠. 최 교수님이 말씀하셨던 한국적 민주주의 토착화에 대한 부분은 제가 말씀드린부분은 그런 뜻으로 말씀드린 것은 아니고요.
일일종의 싱가포르는 싱가포르 방식대로싱가포르의 경제개발 정책을 반드시 했다, 통치에 있어서 환경적인 영향은 크지 않습니까?
대한민국과 싱가포르가 같을 수 없죠. 싱가포르는 인구 500만의 조그만한 나라였기 때문에 어쩌면 통치에 있어서 상당히 쉽게 또 용이할 수 접근할 수 있었던 부분이있었다라고 보면 대한민국도 전혀 다른 양상을 가지고 있었죠.
이데올로기부터 시작해서 헌법적인 자유민주주의의 가치실현 이런 것들이 중첩되다 보니까 통치 환경에 있어서 싱가포르와 대한민국이 같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다만 이제 우리가 여기서 조심해야 될부분은 자칫 잘못하면 싱가포르의 리콴유 전 총리를 말미암아통치스타일그리고 여러 가지 민주적 가치, 이런 부분을 얘기하게 되면 이 부분이 이상한 걸로 오해가 될 수 있고 또 설전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것은 박근혜 대통령이 조문에서는 피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 봅니다.
[앵커]
워낙 박정희 전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과 인연이 있고 그 얘기를 하다보면 또 개발독재라고 하는 흔히 말하는 경제성장 과정이 저희가 주관적으로 비슷하다고 한 것이 아니라 이미 세계 석학들이 다 비교하고 분석이 끝난 것이기 때문에 다만 평가가 조금 엇갈릴 뿐이지 분석은 이미 끝났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영국 식민통치, 우리는 일제 한국전도 겪었지만 싱가포르 같은 경우는 영국 식민 통치를 벗어나서 말레이연방에 합류하려다가 합류도 못한 그런 야주 가난한 어촌도시였습니다.
그래서 리콴유 전 총리가 총리를 맡았을 때 만 하더라도 1인당 GDP가 400달러였는데 지금은 5만 달러가 넘어서 세계경제규모로는 8위, 아시아에서는 가장 잘사는 나라 이런 부분이 있었는데 또 윤 센터장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그런데 국민들은 행복하냐. 분명한 경제지표는 상당히 좋은데 국민들은 그렇게 행복하지 않고 표정도 잘 웃질않고 밝지가 않다. 그런 면들이 어쨌든 시사하는 바는 있는 것 같습니다.
[인터뷰]
일정한 단계에 올라서게 되면 절대 빈곤의 문제라든지 절대가난의 문제가 해결되고 나면 인간이 어떤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이거든요.
그러니까 싱가포르의 척박한 정치환경도 그랬고 여러 가지 자연환경도 그렇고 그런 면에리콴유 전 총리 같은 경우는 영웅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이런 인물들이 나타나서 비록 31년의 독재정치였습니다마는 받아들였던 거예요.
중요한 것은 일정한 단계가 올라온 다음 에 국민들의 행복지수 말씀하셨이게 언제까지 가능할 것인지 또 아들이 총리를 맡았는데 이러한 통치 방식이라는 것이 5만달러까지 와서 세계 8위의 경제대국이 됐어요. 이런 단계에서 과연 국민들에 대한 일률적인 통체가 가능하다고 저는 보지 않습니다.
남의 나라를 우리가 걱정해 줄 필요가 없습니다마는 싱가포르의 통치방식이나여러 가지 정치적인 부분 같은 것들도 뭔가 새로운 변화를 모색할때가 됐다거기서 또 하나 우리가 볼 필요가 있다 라는 거예요. 그런 부분이 너무 간과되면 안 된다는 거죠.
[인터뷰]
싱가포르 같은 경우에 우리가 심한 표현들 중에 여러 가지가 있는데 잘 사는 북한이다, 통제가 워낙 심하니까. 또는 그런 표현도 있고. 국가가 사실 국민들의 굉장히 세밀한 부분까지 관여하는데 어떤 불임수술을 실제로 권고했던 부분도 있고 껌을 못 씹게 한다든지 여러 가지가 있는데 보면 흡연하면 80만원 벌금을 내고 쓰레기 무단투기해도 마찬가지.
또 화장실 변기물 내리지 않았다, 이게 걸렸을 때 또 80만원 정도 벌금을 내고 또 지하철에서 음식물을 먹었을 때 또 벌금을 내고, 물론 걸렸을 때의 문제들인데 사실 보면 국민들이 인간으로서 개별적 자율성, 이런 부분을 제고하고 증진시킬 고양시킬 측면이다른 통제의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는 측면도 반드시 있고 과거에 보면 태형 문제 때문에. 그것도 상당히 세게 때린다고 해도 가볍게 때리는 것이 아니라 그리고 그것이 만약에 5대라고 한다면 한번에 5대를 때리지 못하고 심하기 때문에 띄엄띄엄 며칠의 간격을 주기도 한다고 하는데
[앵커]
얼마전에 부산 서면에 쓰레기 안 치웠는데. 거기에 태형이 있었으면 만날 맞았겠네. [인터뷰] 얼마 전에 미국 관광객이 범죄를 저질러서 그것이 큰 것도 아니죠. 태형을 맞는데 미국의 자존심을 상당히 상처를 냈다, 이런 평가도 있었죠. 미국과 싱가포르 간에 자존심 싸움도 있었고 결국 태형을 때리기도 했습니다.
[앵커]
적합한 표현은 아닌 것같은데 국가 차원에서 군기가 상당히 강하네요.
[인터뷰]
그러니까 우리가 상대국을 이야기를 했을 때 거기에 대한 선입견을 많이 얘기를 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싱가포르 이야기하게 되면 거기에 간다라고 하면 아, 거기가서 참 조심해야지, 이런 단어가 먼저 떠오릅니다. 그만큼 법과 질서가 강력하다라고 인식되는 것이죠. 그것이 인권이 먼저냐, 부가 먼저냐, 법과 질서가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 하는 논란과 똑같습니다마는 태형에 대한 부분은 바로 그것을 단적으로 드러낼 싱가포르의 가장 대표적인 태형제도죠. 그래서 지적하셨던 것이 93년도에 있었던 그 사건이 전세계로 유명한 사건입니다.
곤장 6대를 그냥 맞는 게 아니고 간호사로 입회시켜놓고 상처가터지면 소독하고 또 때리고, 이런 부분인데 사실 잘못된 부분들이 없지 않아 보죠. 잘못 오해가 된 부분. 왜냐하면 태형히 그렇게 무조건 하는 건 아니고 공공의 이익에 아쥬악의적인 사건에 있어서 태형을 집행하는 그런 걸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관광객도 99년도에 한 사람이 태형을 받았죠.
호텔 여직원을 추행해서 잘못으로 인해서 거기에서 감옥 생활도 하고 태형도 맞았는데 이런 부분들은 문화적 기인해서 이야기한다 그러면 싱가포르의 태형 제도를 이해할 수 있는데 인권적 차원에서 이야기하면 사실 인권이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굉장히 많은 것이죠.
[인터뷰]
제가 1978년도에 싱가포르를 갔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갔는데 싱가포르 가서 이 교수님 말씀하신게 생각이 난 건데 담배를 단속을 하더라고요. 담배 피우면 큰일난다.
지금 우리나라 강남 이런 데 피우면 벌금내고 그렇습니다마는 그때는 담배 천국이었거든요, 대한민국이 그때 담배 피우면 벌금이 얼마나 해서 귀국도 못 한다, 이런 얘기를 들었던 것이 기억이 나요.
그정도로 통제가 강했던 나라예요. 아마 그러한 것들이 싱가포르가 생존을 위한 조건들이 아니었나 봅니다.
[앵커]
그러니까 통치형식은 개발독재였다 어디에 주안점을 두고 그만큼 어떤 부분은 제약이 있었다, 사실관계는 이미 평가는 다 끝났는데 그런 싱가포르에 대해서 리콴유 전 총리에 대해서 개발독재냐, 아니냐라는 논란 자체는 무의미하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우리쪽으로 해서 과연 필요했느냐 그 시대에. 그리고 어떤 것이 부족했느냐, 이러면 되는데 그런 논의 자체가 어느 정도 막혀버리면 그것도 합리적인 사회는 아닌 것 같다고.
[인터뷰]
지나 치게 외국의 인물에 대해서 긍정평가를 하는 게 당연한 거겠죠. 우리와많은 부분이 겹치고. 그러나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싱가포르 역사적 환경, 그리고 개발과정, 이런 것들에서 우리가 배울점은 배우고 또 비판할 점은 비판하고, 이런 것들이 고인에 대한 추모덕에 가깝지 않다 싶어요.
[인터뷰]
하나만 더 말씀을 드리자면 1963년도에 박정희 대통령이 그 당시에 국가, 사실상 국가수반이죠. 케네디 장례식에참석을 했거든요. 그 당시에 참석을 한 것을 두고 계속회자가 됐습니다.
일종의 조문외교였다, 원조를 받기 위한 평가였다, 이러는데 박근혜 대통령이 장례식에 참석하는 건앞으로 당분간은 여기에 대해서 상당한 논란이 있을 겁니다.
왜냐하면 리콴유 전 총리에 대한 통치적 스타일이 독특했기 때문에 대통령 행보가 그런 것을 벤치마킹이냐, 아니면 그것을 같이 일맥상통하기 위한 투영시키기 위한 노력들이냐,이런 논란은 대통령 행보이기 위해서 있을 수 밖에 없다 라는 생각을 합니다.
[앵커]
일시적이겠지만 국장이 29일날 열리는데 일시적이겠지만 어쨌든 국장 조문을 하면서 통치 스타일이 비슷하기 때문에 당분간 짧은 기간이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 얘기가 다시 한 번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 같은데. 저희가 마지막으로 하나, 박정희 전 대통령 이야기 외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시절을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2006년에 한나라당 대표로 박근혜 당시 대표가 지방선거 때문에 유세를 하다가 이른바 테러, 면도칼 테러를 당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그날 하필 리콴유 전 총리가 방문을 하고 여러 가지 도움도 얘기를 하고 했다는데 아침에 멀쩡히 만나서 서로 안부를 나눴는데 나중에 내 소식을 듣고 너무나 안타깝다는 말씀을 하셨다. 쾌유비는 편지도 보내주셨다, 박근혜 대통령 자서전에나오는데 아버지 그리고 딸, 좋지 않은 그런 상황과도 인연도 있고 해서 어쨌든 박근혜 대통령으로서는 개인적으로 애착이 가는 다른 나라의 지도자, 정상이다, 이런 점은 분명할 것 같습니다.
리콴유 전 총리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조문일정과 관련해서 저희가 한번 리콴유 전 총리, 싱가포르의 통치스타일, 개발과정, 그리고 우리나라와의 공통점에 대해서 세 분 패널과 이야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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