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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라디오(FM 94.5) [YTN 뉴스FM 슬기로운 라디오생활]
□ 방송일시 : 2026년 8월 14일 (금)
□ 진행 : 박귀빈 아나운서
□ 출연자 : 정용상 사무총장 / 동북아역사재단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를 바랍니다.
◆ 박귀빈 : 내일은 광복절입니다. 광복 직후였던 1947년에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종합적인 학술조사가 처음 진행됐습니다. 그러고 나서 48년, 53년 이렇게 진행이 됐고, 그 이후 73년 만에 우리 영토의 역사와 문화, 자연을 다시 종합적으로 살펴보는 대규모 학술 조사가 재개됐는데요. 이번 조사에서는 조선시대 울릉도를 정기적으로 살피면서 영토를 수호했던 ‘수토’ 활동과 관련한 각석문에서 새로운 글자와 인명이 발견됐고, 고품질 탁본도 새롭게 확보됐다고 합니다. 관련해서 자세히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동북아역사재단’ 정용상 사무총장 모셨습니다. 총장님, 어서 오세요.
◇ 정용상 : 네, 안녕하세요. 정용상입니다.
◆ 박귀빈 : 저희 인사 한 말씀 먼저 짧게 부탁드립니다.
◇ 정용상 : 불러주셔서 감사드리고요. 오늘 독도와 관련되는 그런 정책에 대해서 말씀드릴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 박귀빈 : ‘동북아역사재단’ 사무총장이신데요. 먼저 동북아역사재단에 대해서 설명 부탁드릴게요.
◇ 정용상 : 올바른 역사의 정립을 위한 연구, 정책 개발, 교육 등을 통해서 동북아의 역사를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맡고 있고, 아울러서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 더 나아가서 인류 공존, 공영을 선도하는 그런 연구 기관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 박귀빈 : 우리 땅 독도를 수호하고, 주변국의 역사 왜곡에 대해 대응하는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계시네요.
◇ 정용상 : 네. 영토 주권, 해양 영토 주권 이런 것들을 수호하기 위한 최전방에서 글로써 전쟁을 하는, 지금 역사 왜곡이 심각하지 않습니까? 중국 쪽에서 동북공정이라든지, 일본의 경우에 일제 때 강제동원 문제, 위안부 문제, 그다음에 역사 교과서 문제, 이런 ‘왜곡에 대응해서 반듯한 역사를 정립하는 데 선도 역할을 한다’ 이렇게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 박귀빈 : 그래서 연구를 하고, 그 기반은 그야말로 실증적인 자료를 모으는 것부터 시작이 되는 것 같습니다. 맞습니까?
◇ 정용상 : 그렇습니다. 굳이 역사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고, 우리 대한민국과 관련되는 국제 정세에 관한 동향 분석 등을 통해서 정책을 입안하는 그런 기초 자료를 제공하는데, 특히 현장에 답이 있기 때문에 실사구시적인, 융복합적인, 통섭적인 그런 연합 작전으로 이해를 하시면 되겠습니다.
◆ 박귀빈 : 네, ‘울릉도·독도 종합 학술조사’가 다시 재개됐습니다. 다시 진행됐는데, 73년 만이라고요?
◇ 정용상 : 그렇습니다. 53년도 이후에 처음입니다.
◆ 박귀빈 : 그러니까 47년에 처음 시작돼서 53년까지 진행이 되다가 2026년에 다시 하게 된 겁니다. 이번에 조사를 다시 하게 된 배경이 있을까요?
◇ 정용상 : 그전에는 자연과학, 기후, 그다음에 어떤 영토, 해양 이런 데 단발적, 단편적으로 했었는데요. 이번에는 그야말로 ‘학자 간 연구의 필요성이 점증되는 그런 상태에서 융복합적인 통섭적 연구가 필요하다’ 해서 진행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함께한 우리 구성원이 20명인데 내외 합쳐서 역사학자, 역사지리학자, 금석문 전공, 미술사, 그다음에 국제법, 지질학, 해양과학, 탁본 등 각종 전문가, 서예, 사진, 영상, 게다가 현지의 향토사학자들까지 총집합한 그런 연합체로서 상당한 총론적인 것뿐만이 아니고 디테일한 것들을 다 연결시켜서 그야말로 ‘종합 학술조사’를 한 셈이죠.
◆ 박귀빈 : 말 그대로 울릉도·독도의 종합 학술조사입니다. 거의 모든 분야, 자연부터 시작해서 문화까지, 인문학적인 분야까지 모든 분야를 총망라해서 종합 조사를 한 겁니다. 이번 조사의 내용을 조금 자세히 짚어보겠습니다. 핵심적으로 나오는 내용이 ‘조선시대 울릉도 수토와 관련한 각석문’이네요. 이게 뭔가요?
◇ 정용상 : 일반적으로 조선시대에는 섬에 사람을 살지 않게 하는 공도 정책으로 인해서 섬이 그냥 우리 요즘으로 치면 정부로부터 도외시된 것처럼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1700~1800년대 한 200여 년만 보더라도 그 사이에 우리 조선 중앙정부에서 수토관을 파견해서... 수토라는 게 수사하다 할 때 '수' 자고, 토는 토벌하다 할 때 '토' 자거든요? 그래서 우리 공무원이 나가서 2년 내지 3년, 200년이면 한 60회 정도 되겠죠? 매년 나가서 거기에 일본 사람들이 무단으로 들어와서 활동을 한다든지 그런 거 쫓아내고, 그다음에 거기에 자연환경에 대한 요즘으로 치면 통계 조사를 하고, 그 결과를 중앙정부에 보고를 하고 하는 그런 시스템이 단일 지역이 아니고 꾸준히 이루어진 거죠. 그러니까 결코 포기한 적이 없는 우리의 영토 주권이 늘 미쳤던 것인데, 일본에서는 다른 이야기들을 더 하고 있죠.
◆ 박귀빈 : 아, 조선 때부터 ‘수토’, 아까 말씀하신 수토관 분들을 파견해서? 수색하고 토벌한다는 뜻이라고 설명하셨잖아요.
◇ 정용상 : 일본 사람들이 무단으로 들어오는 걸 쫓아내는 거죠.
◆ 박귀빈 : “나가, 어디 남의 나라 와서. 나가!” 하고 그 안을 찾고 하는 그런 역할을 꾸준히 우리는 해왔다. 이 역할을 안 한 적이 없다. 지속적으로 조선에서 울릉도, 그 주변 섬 독도까지 해서 꾸준히 우리 땅 관리를 해왔다는 거네요.
◇ 정용상 : 예, 그렇습니다.
◆ 박귀빈 : 그 증거가 되는 거예요.
◇ 정용상 : 예, 명확한 증거입니다. 그 외에도 최근에 저희들에게 기증한 분이 ‘항길고택문고’라고 강릉의 명문가에서 보존하고 있던 문고 한 천여 점을 저희들이 기증을 받았는데, 거기도 보면 삼척영장... 요즘으로 치면 동해안 경비사령부쯤 될까요? 아니면 삼척시청이나 될까요? 그래서 꾸준히 이렇게 관리, 경영, 행정력이 미쳤다는 것을 여러 면에서 확인할 수 있는 그런 증거 자료들, 실증적 자료들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이죠.
◆ 박귀빈 : 그러니까요. 수토관들이 가서 섬 구석구석 수색해서 불법으로 침입한 일본인들 확인하고 단속하고 이런 순찰 활동도 했다는 건데, 이번에 그 ‘수토관 각석문’ 얘기가 많이 나옵니다. 기존에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던 글자, 인명들이 이번에 새로 발견됐다면서요? 어떤 내용인가요?
◇ 정용상 : 저도 가서 깜짝 놀랐는데요. 제가 울릉도·독도를 한두 번 간 것은 아닙니다마는, 거기에 각석문에서 지금까지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흥선 스님이라고 불교계에서는 아주 유명한, 세계적으로 유명한 그런 탁본 전문가 스님을 모시고 갔는데, 그분의 눈에 안 보였던 것이 다 보인 거예요.
◆ 박귀빈 : ‘각석문’이 뭐죠?
◇ 정용상 : ‘바위에 새겨진 글’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 박귀빈 : 바위에 새긴 글, 각석문. 이번에 그거를 정확하게 내용을 확인하셨다는 건가요?
◇ 정용상 : 그렇죠. 수토관들이 어디를 통해서 어떻게 가서 무엇을 했으며, 어떤 내용을 정리해서 조정에 보고를 했는가, 누가 왔는가, 그런데 그 규모는 어떠한가... 그런데 그게 디테일한 부분입니다마는, 한자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이 사용하다 할 때 '사' 자, 그다음에 공로가 있다 할 때 '공' 자, 이런 것하고 '사' 자를 재후할 때 '후' 자, 그다음에 성공할 때 '공' 자가 일절 일치할 때 '채' 자... 이렇게 전에 잘못 본 내용들을 이번에 초전문가의 시각에서 확인을 해서 이렇게 보니까 그런 내용이에요. 임금의 교화가 동쪽 울릉도에까지 미쳤고, 그 관리가 서쪽, 울릉도에서 서쪽이죠? 이렇게 와서 잘 선정을 베풀었다, 이런 내용이 있고. 그다음에 그 규모를 알 수 있는 거예요. 거기 이 '사공'으로 나오는 것은 이 뱃사공이 아니고, 요새로 치면 함장을 뜻하거든요. 사공이 2명이면 배가 2척 갔다는 거거든요. 그런데 그 배에 조리사도 있고 있을 거 아닙니까? 그런 내용들이 거기에 비교적 상세히 나와 있어요. 그래서 한 번에 수토관이 이렇게 이끌고 간 인원이 한 100명, 110명 정도 되는 거예요. 배 두 척에. '사공'이라는 용어가 선장 이런 뜻이거든요. 2명이 나오고, 그중에 어떤 사람은 강릉 출신이고 그런 게 아주 구체적으로 나와 있는 거예요. 그런데 100% 저희들이 판독을 한 것은 아닌데, 더 좋은 과학적인 기법으로 앞으로 더 지속적인 확인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 박귀빈 : 이번에 정밀 조사와 전문가를 통해 탁본을 해서 거의 아주 정확하게 이번에 내용을 확인을 하셨다는 거고, 앞서 말씀하셨어요. 임금의 교화가 동쪽 울릉도까지 미쳤다. 그 이야기는 엄연하게 울릉도·독도까지 우리 영토로 통치되고 있었다, 이렇게 봐도 무방한 거잖아요?
◇ 정용상 : 이렇게 각석문으로 명확하게 쓰여 있습니다, 그런데 오래돼 가지고 조금 마모된 부분, 판독이 조금 불가능한 부분들이 있는데 그거는 첨단 기법으로 앞으로 그것이 확인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 박귀빈 : 그 외에 의미 있는, 유의미한 자료들이 확보된 게 있습니까?
◇ 정용상 : 우리가 지금 이번에 탁본 뜬 게 15개를 떴습니다. 그게 규모가 어마어마하게 큰 내용들도 있고, 그다음에 그냥 단순히 이 바위에 새겨진 글을 우리가 각석문을 탁본해 왔다는 것뿐만이 아니고, 구전으로 전해오던, 전승되어 오던 그런 이야기들하고 시, 때, 장소가 딱 맞아떨어지는 그런 것들을 확인했습니다.
◆ 박귀빈 : 맞춰보니까요?
◇ 정용상 : 각각이 아니고 거기에서 이렇게 구전돼 오는 내용들. 현장에 가서 확인을 해보니까 그 탁본에 있는 내용하고 아귀가 딱 맞는 거예요. 그래서 저희들이 굉장히 흥분했죠.
◆ 박귀빈 : 그러신 것 같아요. 지금도 살짝 말씀하시면서 흥분하셨어요. 아니, 그런데 이건 누구라도 흥분할 만한 거예요. 솔직히 저는 되게 그런 게, 아니, 그냥 우리 땅인데 우리 땅인 걸 우리가 자꾸 증거를 찾아서 주장을 해야 되는 그 상황이 마음이 아파요.
◇ 정용상 : 그래서 저희들이 일본의 잔꾀에 말려들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법학 교수 출신인데, 자꾸 국제사법재판소에 가져가려고 하는데요.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를 성공시키려면 양쪽이 다 동의를 해야 되거든요. 우리가 거기 빨려 들어가면 안 된다. 자꾸 이렇게 분쟁 지역화시키는 거는 저희들로서는 위험하다. 아니, 당연히 우리 땅인데. 우리가 아니라는 것을 너희들이 입증을 해야지. 그 대신 저희들은 학술적으로, 합리적으로, 그다음에 실증적으로 요지부동한 그런 자료들을 계속적으로 모아야 되는데, 그걸 국제법적으로, 환경 통섭적으로 모아야 힘이 생긴다 하는 것이죠. 이것은 분쟁 지역화시킬 이유가 없습니다.
◆ 박귀빈 : 맞습니다. 최근에 미국에서도 독도의 역사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 하나가 나왔습니다. 저희도 전갑생 성공회대 교수를 인터뷰를 했었거든요. 그 당시에 해주신 말씀인데, 1948년에 미 극동공군사령부가 독도 폭격 사건 보고서를 작성했습니다. 그런데 그 안의 내용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셨어요. 이 자료가 독도의 현대사를 이해하는 데 어떤 의미가 있는 겁니까?
◇ 정용상 : 해방 전후사, 우리 현대사에 대해서 정확하게 지금 정리가 안 된 부분들이 많은데요. 특히 이 독도하고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 저희들이 확인할 수 있는 객관적 증거를 가지고 있는 자료들을 수합할 수 있는 방법이 어려웠습니다. 저희들이 1948년 이전에는 어떤 주체적인 그런 지위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은 그때 연합군,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미군에서 이것을 어떻게 처리했는가, 어떤 자료가 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데, 그때 그 독도 폭격했을 때 우리 어민들이 희생을 당했잖아요. 그런데 그때 자기들끼리 주고받은 그 전문들, 상급 부대, 하급 부대, 극동군사령부, 공군사령부, 이렇게 미 국방성과 주고받은 내용들이 전부 대외비니까 그걸 알 수가 없었죠. 그래서 그 나라라고 하는 문서 관리하는 거기에 전갑생 교수님이 가서... 사실은 다른 거 찾으러 갔었는데 가서 보니까 있길래 그걸 전부 원본을 스캔해 온 거죠. 거기 보니까 미군 상하 부대 간에 자기들끼리 지휘명령 체계가 분명한데 거짓 보고를 할 리가 없지 않습니까? 거기에 보니까 이 울릉도·독도는 명확하게 한국 땅이라는 것이 정리가 돼 있는 거예요. 그런데 그 이후에 일본에서 이런 러스크 관련 발언이니 등등 이렇게 해서... 그건 아주 지엽말단적인 것이고, 근본적인 그 당시에 현실 상황에서 파악할 수 있는 마그나카르타가 이런 거예요. 그런데 여기에 보니까 ‘더도 덜도 말고 한국 땅’이라고 돼 있는 거예요.
◆ 박귀빈 : 미국도 당시에 "독도는 한국 땅이야"라고 그냥 생각하고 있었다는 거잖아요? 그리고 독도에서 일어난, 한국 땅 독도에서 자기네들이 와서 어떤 일을 벌였고 그게 어떻게 지금 진행되고 있는지 서로 보고하고, 지금 이런 문서인 거잖아요. 그래서 비공개 자료인데 이번에 그 자료를 전갑생 교수님이 찾으셔서 기증을 하셨죠?
◇ 정용상 : 예, 적지 않습니다. 222면인데, 울릉도 갔을 때 제가 놀란 것 이상으로 놀랐습니다. 아주 그냥 해진 그 종이에 있는 내용인데, 거기에는 미군들끼리 주고받은 내용뿐만이 아니고, 거기에 대한 폭격 이후에 이렇게 민간인들을 불러놓고 증거력을 확보하기 위해서 증언을 수집하고 했을 것 아닙니까? 우리 동북아역사재단 독도실장이 ‘홍성근 실장’이라고 울릉도 태생인데, 그 독도의용수비대장 홍순칠 친조카거든요. 이분의 증조할아버지가 증언을 한 게 이번에 거기 보니까 있더라고요.
◆ 박귀빈 : 우리 홍성근 실장님의 증조할아버지가 증언을 당시에...
◇ 정용상 : 육필로 한 게 있더라고요. 이렇게 이런 색깔로 해지기는 했지만. 거기 보니까 이렇게 막 한자로 쭉 적은 증언록 같은 것도 있고... 이번에 그 비밀문서 꼭 자기들끼리 커뮤니케이션한 것뿐만이 아니고, 그 곁에 보안 첨언된 내용들도 저희들로서는 굉장히 고귀한, 그런 증거력을 백업해 줄 수 있는 자료여서 저는 계속 놀랐습니다.
◆ 박귀빈 : 이거 앞으로 어떻게 활용됩니까?
◇ 정용상 : 저희들이 그것을 전문적으로 분석하고 해제하고... 각각으로 놓으면 이 평범한 사람들, 비전공자들은 어려우니까 그것을 제대로 읽을 수 있게 저희들이 해제하고, 평론. 이렇게 하면서 잘 정리해서 공개할 겁니다.
◆ 박귀빈 : 많이 알려주셔야 됩니다.
◇ 정용상 : 전시도 하고, 그 자료들을 저희 재단에서 독점적으로 그렇게 우리끼리만 쓰는 것이 아니고 연구자들에게 널리 공개할 예정입니다.
◆ 박귀빈 : 최근에 학술회의가 있었는데요. 1877년 일본의 태정관 지령 제223호 그리고 첨부지도 기죽도약도를 분석한 연구 결과가 발표됐습니다. 이거는 어떻게 평가해 볼 수 있습니까?
◇ 정용상 : 이때 저희 재단 독도연구소 김영수 소장의 그런 연구 성과인데, 이 태정관이라는 걸 어떻게 쉽게 설명해야 될까 저도 망설였는데, 저희들로 치면 내각 회의, 국무회의, 그 당시에 일본의 최고 의사결정 기관이에요. 거기에서 "이 땅은 한국 땅이니 거기서 어로도 하지 말고 가지 마라"라고 자기들이 그렇게...
◆ 박귀빈 : 이거 스스로 만든 자료입니다.
◇ 정용상 : ‘태정관’ 지령이 바로 그겁니다. 태정관이라는 게 이를테면 옛날로 치면 의정부, 지금으로 치면 국무회의 이런 정도 수준이거든요. 네, 정부의 의사 결정을 선포하는 지령이라는 게 영어로 한 디렉티브 이렇게 표현하면 될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자꾸 이것을 자기들 이익 중심으로 자꾸 부정하는 거예요.
◆ 박귀빈 : 그 첨부 지도인 ‘기죽도약도’면 거기에 독도가 나오나요?
◇ 정용상 : 예, 거기에 첨부로 ‘간도’라고 해서 나오는데, 지금 자기들이 자기 발등 찍힌 거죠. 완전히 전도되는 그런 내용인데, 이게 해학적으로 설명하기도 그렇고, 이 일본 쪽이 갈수록 자꾸 수렁에 빠지는 그런 자료들로 이해를 할 수 있겠죠. 이 태정관 지령은 굉장히 강조합니다.
◆ 박귀빈 : 그러니까요. 당시 일본 정부의 최고 기관이었던 태정관에서 "울릉도와 독도는 일본 영토 아니다. 이거 한국 영토니까 거기 가지 마."
◇ 정용상 : "응, 침범하지 마라."
◆ 박귀빈 : 이렇게 써 있다는 거잖아요? 거기 그 태정관 지령 제223호와 첨부 지도까지 돼 있다는 겁니다. 이런 자료가 있는데도 지금 일본은 계속 영유권 분쟁 지역으로 독도를 만들고 있고 자기네 거라고 막 이러고 있는데... 아, 제가 가슴이 아픈 건 뭐냐 하면 이런 말도 안 되는, 역사적인 자료도 굉장히 미흡하지 않습니까? 그걸 주장할 수 있는 자료가 있을 수가 없잖아요. 일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네 땅이라고 독도를 계속 주장하고 있고, 지금 해외의 어떤 일부 기관, 일부 지도에도 이 표기가 한국 땅으로 명확하게 표기 안 된 부분도 있잖아요? 저는 그런 게 너무 가슴이 아파요.
◇ 정용상 : 참 아쉽습니다. 구글 지도라든지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할 수 있는데, 어제도 저희들 이 동해 표기 명칭 대사직에 있었던 분들하고 토론회를 했거든요. 지금 동해를 일본해로 이렇게 저쪽에서 지금 표기를 하고, 그게 한 20년 전만 해도 국제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일본해로 이렇게 돼 있었는데, 지금은 동해하고 병기하는 그런 작업을 해서 한 40~50%가 이제는 다 이렇게 병기돼 있습니다. 그게 동해 안에 독도가 들어 있기 때문에, 이 앞에서도 말씀드렸습니다마는 이것을 자꾸 분쟁, 무슨 트러블이 있는 것처럼 하면 저희들이 그렇게 유익하지 않기 때문에, 종합적으로 지금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수토관, 그다음에 그 내용 각석문, 미군 기밀문서, 자기들이 스스로 만든 태정관 지령 이런 것을 그냥 하나하나 별개로 놓고 이렇게 할 것이 아니라, 실증적인 자료를 놓고 분석해서 통합적으로 이렇게 상품화시켜서 저희들이 불필요하게 공격적으로 독도 문제를 이슈화시킬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대신 그냥 놀면 안 되죠. 꾸준히 연구를 해야죠. 지금 독도 문제에 대해서는 일본에서는 주로 시마네현 조례에다 이렇게 해서 달게 되는데... 그래서 저희들이 대한민국 국가 차원, 정부 차원에서 "이거 너무 시마네현하고 격도 안 맞는데, 그래서 우리가 적절하게 젠틀하게 접근하자" 이런 입장을 잡고 있습니다.
◆ 박귀빈 : 우리 국민들도 잘 그 말씀을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독도 클라이밍으로 올라가셨던 분입니다. 지금까지 동북아역사재단 정용상 사무총장님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 정용상 : 감사합니다.
YTN 이시은 (sieun0805@ytnradi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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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일시 : 2026년 8월 14일 (금)
□ 진행 : 박귀빈 아나운서
□ 출연자 : 정용상 사무총장 / 동북아역사재단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를 바랍니다.
◆ 박귀빈 : 내일은 광복절입니다. 광복 직후였던 1947년에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종합적인 학술조사가 처음 진행됐습니다. 그러고 나서 48년, 53년 이렇게 진행이 됐고, 그 이후 73년 만에 우리 영토의 역사와 문화, 자연을 다시 종합적으로 살펴보는 대규모 학술 조사가 재개됐는데요. 이번 조사에서는 조선시대 울릉도를 정기적으로 살피면서 영토를 수호했던 ‘수토’ 활동과 관련한 각석문에서 새로운 글자와 인명이 발견됐고, 고품질 탁본도 새롭게 확보됐다고 합니다. 관련해서 자세히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동북아역사재단’ 정용상 사무총장 모셨습니다. 총장님, 어서 오세요.
◇ 정용상 : 네, 안녕하세요. 정용상입니다.
◆ 박귀빈 : 저희 인사 한 말씀 먼저 짧게 부탁드립니다.
◇ 정용상 : 불러주셔서 감사드리고요. 오늘 독도와 관련되는 그런 정책에 대해서 말씀드릴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 박귀빈 : ‘동북아역사재단’ 사무총장이신데요. 먼저 동북아역사재단에 대해서 설명 부탁드릴게요.
◇ 정용상 : 올바른 역사의 정립을 위한 연구, 정책 개발, 교육 등을 통해서 동북아의 역사를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맡고 있고, 아울러서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 더 나아가서 인류 공존, 공영을 선도하는 그런 연구 기관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 박귀빈 : 우리 땅 독도를 수호하고, 주변국의 역사 왜곡에 대해 대응하는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계시네요.
◇ 정용상 : 네. 영토 주권, 해양 영토 주권 이런 것들을 수호하기 위한 최전방에서 글로써 전쟁을 하는, 지금 역사 왜곡이 심각하지 않습니까? 중국 쪽에서 동북공정이라든지, 일본의 경우에 일제 때 강제동원 문제, 위안부 문제, 그다음에 역사 교과서 문제, 이런 ‘왜곡에 대응해서 반듯한 역사를 정립하는 데 선도 역할을 한다’ 이렇게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 박귀빈 : 그래서 연구를 하고, 그 기반은 그야말로 실증적인 자료를 모으는 것부터 시작이 되는 것 같습니다. 맞습니까?
◇ 정용상 : 그렇습니다. 굳이 역사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고, 우리 대한민국과 관련되는 국제 정세에 관한 동향 분석 등을 통해서 정책을 입안하는 그런 기초 자료를 제공하는데, 특히 현장에 답이 있기 때문에 실사구시적인, 융복합적인, 통섭적인 그런 연합 작전으로 이해를 하시면 되겠습니다.
◆ 박귀빈 : 네, ‘울릉도·독도 종합 학술조사’가 다시 재개됐습니다. 다시 진행됐는데, 73년 만이라고요?
◇ 정용상 : 그렇습니다. 53년도 이후에 처음입니다.
◆ 박귀빈 : 그러니까 47년에 처음 시작돼서 53년까지 진행이 되다가 2026년에 다시 하게 된 겁니다. 이번에 조사를 다시 하게 된 배경이 있을까요?
◇ 정용상 : 그전에는 자연과학, 기후, 그다음에 어떤 영토, 해양 이런 데 단발적, 단편적으로 했었는데요. 이번에는 그야말로 ‘학자 간 연구의 필요성이 점증되는 그런 상태에서 융복합적인 통섭적 연구가 필요하다’ 해서 진행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함께한 우리 구성원이 20명인데 내외 합쳐서 역사학자, 역사지리학자, 금석문 전공, 미술사, 그다음에 국제법, 지질학, 해양과학, 탁본 등 각종 전문가, 서예, 사진, 영상, 게다가 현지의 향토사학자들까지 총집합한 그런 연합체로서 상당한 총론적인 것뿐만이 아니고 디테일한 것들을 다 연결시켜서 그야말로 ‘종합 학술조사’를 한 셈이죠.
◆ 박귀빈 : 말 그대로 울릉도·독도의 종합 학술조사입니다. 거의 모든 분야, 자연부터 시작해서 문화까지, 인문학적인 분야까지 모든 분야를 총망라해서 종합 조사를 한 겁니다. 이번 조사의 내용을 조금 자세히 짚어보겠습니다. 핵심적으로 나오는 내용이 ‘조선시대 울릉도 수토와 관련한 각석문’이네요. 이게 뭔가요?
◇ 정용상 : 일반적으로 조선시대에는 섬에 사람을 살지 않게 하는 공도 정책으로 인해서 섬이 그냥 우리 요즘으로 치면 정부로부터 도외시된 것처럼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1700~1800년대 한 200여 년만 보더라도 그 사이에 우리 조선 중앙정부에서 수토관을 파견해서... 수토라는 게 수사하다 할 때 '수' 자고, 토는 토벌하다 할 때 '토' 자거든요? 그래서 우리 공무원이 나가서 2년 내지 3년, 200년이면 한 60회 정도 되겠죠? 매년 나가서 거기에 일본 사람들이 무단으로 들어와서 활동을 한다든지 그런 거 쫓아내고, 그다음에 거기에 자연환경에 대한 요즘으로 치면 통계 조사를 하고, 그 결과를 중앙정부에 보고를 하고 하는 그런 시스템이 단일 지역이 아니고 꾸준히 이루어진 거죠. 그러니까 결코 포기한 적이 없는 우리의 영토 주권이 늘 미쳤던 것인데, 일본에서는 다른 이야기들을 더 하고 있죠.
◆ 박귀빈 : 아, 조선 때부터 ‘수토’, 아까 말씀하신 수토관 분들을 파견해서? 수색하고 토벌한다는 뜻이라고 설명하셨잖아요.
◇ 정용상 : 일본 사람들이 무단으로 들어오는 걸 쫓아내는 거죠.
◆ 박귀빈 : “나가, 어디 남의 나라 와서. 나가!” 하고 그 안을 찾고 하는 그런 역할을 꾸준히 우리는 해왔다. 이 역할을 안 한 적이 없다. 지속적으로 조선에서 울릉도, 그 주변 섬 독도까지 해서 꾸준히 우리 땅 관리를 해왔다는 거네요.
◇ 정용상 : 예, 그렇습니다.
◆ 박귀빈 : 그 증거가 되는 거예요.
◇ 정용상 : 예, 명확한 증거입니다. 그 외에도 최근에 저희들에게 기증한 분이 ‘항길고택문고’라고 강릉의 명문가에서 보존하고 있던 문고 한 천여 점을 저희들이 기증을 받았는데, 거기도 보면 삼척영장... 요즘으로 치면 동해안 경비사령부쯤 될까요? 아니면 삼척시청이나 될까요? 그래서 꾸준히 이렇게 관리, 경영, 행정력이 미쳤다는 것을 여러 면에서 확인할 수 있는 그런 증거 자료들, 실증적 자료들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이죠.
◆ 박귀빈 : 그러니까요. 수토관들이 가서 섬 구석구석 수색해서 불법으로 침입한 일본인들 확인하고 단속하고 이런 순찰 활동도 했다는 건데, 이번에 그 ‘수토관 각석문’ 얘기가 많이 나옵니다. 기존에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던 글자, 인명들이 이번에 새로 발견됐다면서요? 어떤 내용인가요?
◇ 정용상 : 저도 가서 깜짝 놀랐는데요. 제가 울릉도·독도를 한두 번 간 것은 아닙니다마는, 거기에 각석문에서 지금까지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흥선 스님이라고 불교계에서는 아주 유명한, 세계적으로 유명한 그런 탁본 전문가 스님을 모시고 갔는데, 그분의 눈에 안 보였던 것이 다 보인 거예요.
◆ 박귀빈 : ‘각석문’이 뭐죠?
◇ 정용상 : ‘바위에 새겨진 글’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 박귀빈 : 바위에 새긴 글, 각석문. 이번에 그거를 정확하게 내용을 확인하셨다는 건가요?
◇ 정용상 : 그렇죠. 수토관들이 어디를 통해서 어떻게 가서 무엇을 했으며, 어떤 내용을 정리해서 조정에 보고를 했는가, 누가 왔는가, 그런데 그 규모는 어떠한가... 그런데 그게 디테일한 부분입니다마는, 한자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이 사용하다 할 때 '사' 자, 그다음에 공로가 있다 할 때 '공' 자, 이런 것하고 '사' 자를 재후할 때 '후' 자, 그다음에 성공할 때 '공' 자가 일절 일치할 때 '채' 자... 이렇게 전에 잘못 본 내용들을 이번에 초전문가의 시각에서 확인을 해서 이렇게 보니까 그런 내용이에요. 임금의 교화가 동쪽 울릉도에까지 미쳤고, 그 관리가 서쪽, 울릉도에서 서쪽이죠? 이렇게 와서 잘 선정을 베풀었다, 이런 내용이 있고. 그다음에 그 규모를 알 수 있는 거예요. 거기 이 '사공'으로 나오는 것은 이 뱃사공이 아니고, 요새로 치면 함장을 뜻하거든요. 사공이 2명이면 배가 2척 갔다는 거거든요. 그런데 그 배에 조리사도 있고 있을 거 아닙니까? 그런 내용들이 거기에 비교적 상세히 나와 있어요. 그래서 한 번에 수토관이 이렇게 이끌고 간 인원이 한 100명, 110명 정도 되는 거예요. 배 두 척에. '사공'이라는 용어가 선장 이런 뜻이거든요. 2명이 나오고, 그중에 어떤 사람은 강릉 출신이고 그런 게 아주 구체적으로 나와 있는 거예요. 그런데 100% 저희들이 판독을 한 것은 아닌데, 더 좋은 과학적인 기법으로 앞으로 더 지속적인 확인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 박귀빈 : 이번에 정밀 조사와 전문가를 통해 탁본을 해서 거의 아주 정확하게 이번에 내용을 확인을 하셨다는 거고, 앞서 말씀하셨어요. 임금의 교화가 동쪽 울릉도까지 미쳤다. 그 이야기는 엄연하게 울릉도·독도까지 우리 영토로 통치되고 있었다, 이렇게 봐도 무방한 거잖아요?
◇ 정용상 : 이렇게 각석문으로 명확하게 쓰여 있습니다, 그런데 오래돼 가지고 조금 마모된 부분, 판독이 조금 불가능한 부분들이 있는데 그거는 첨단 기법으로 앞으로 그것이 확인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 박귀빈 : 그 외에 의미 있는, 유의미한 자료들이 확보된 게 있습니까?
◇ 정용상 : 우리가 지금 이번에 탁본 뜬 게 15개를 떴습니다. 그게 규모가 어마어마하게 큰 내용들도 있고, 그다음에 그냥 단순히 이 바위에 새겨진 글을 우리가 각석문을 탁본해 왔다는 것뿐만이 아니고, 구전으로 전해오던, 전승되어 오던 그런 이야기들하고 시, 때, 장소가 딱 맞아떨어지는 그런 것들을 확인했습니다.
◆ 박귀빈 : 맞춰보니까요?
◇ 정용상 : 각각이 아니고 거기에서 이렇게 구전돼 오는 내용들. 현장에 가서 확인을 해보니까 그 탁본에 있는 내용하고 아귀가 딱 맞는 거예요. 그래서 저희들이 굉장히 흥분했죠.
◆ 박귀빈 : 그러신 것 같아요. 지금도 살짝 말씀하시면서 흥분하셨어요. 아니, 그런데 이건 누구라도 흥분할 만한 거예요. 솔직히 저는 되게 그런 게, 아니, 그냥 우리 땅인데 우리 땅인 걸 우리가 자꾸 증거를 찾아서 주장을 해야 되는 그 상황이 마음이 아파요.
◇ 정용상 : 그래서 저희들이 일본의 잔꾀에 말려들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법학 교수 출신인데, 자꾸 국제사법재판소에 가져가려고 하는데요.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를 성공시키려면 양쪽이 다 동의를 해야 되거든요. 우리가 거기 빨려 들어가면 안 된다. 자꾸 이렇게 분쟁 지역화시키는 거는 저희들로서는 위험하다. 아니, 당연히 우리 땅인데. 우리가 아니라는 것을 너희들이 입증을 해야지. 그 대신 저희들은 학술적으로, 합리적으로, 그다음에 실증적으로 요지부동한 그런 자료들을 계속적으로 모아야 되는데, 그걸 국제법적으로, 환경 통섭적으로 모아야 힘이 생긴다 하는 것이죠. 이것은 분쟁 지역화시킬 이유가 없습니다.
◆ 박귀빈 : 맞습니다. 최근에 미국에서도 독도의 역사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 하나가 나왔습니다. 저희도 전갑생 성공회대 교수를 인터뷰를 했었거든요. 그 당시에 해주신 말씀인데, 1948년에 미 극동공군사령부가 독도 폭격 사건 보고서를 작성했습니다. 그런데 그 안의 내용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셨어요. 이 자료가 독도의 현대사를 이해하는 데 어떤 의미가 있는 겁니까?
◇ 정용상 : 해방 전후사, 우리 현대사에 대해서 정확하게 지금 정리가 안 된 부분들이 많은데요. 특히 이 독도하고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 저희들이 확인할 수 있는 객관적 증거를 가지고 있는 자료들을 수합할 수 있는 방법이 어려웠습니다. 저희들이 1948년 이전에는 어떤 주체적인 그런 지위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은 그때 연합군,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미군에서 이것을 어떻게 처리했는가, 어떤 자료가 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데, 그때 그 독도 폭격했을 때 우리 어민들이 희생을 당했잖아요. 그런데 그때 자기들끼리 주고받은 그 전문들, 상급 부대, 하급 부대, 극동군사령부, 공군사령부, 이렇게 미 국방성과 주고받은 내용들이 전부 대외비니까 그걸 알 수가 없었죠. 그래서 그 나라라고 하는 문서 관리하는 거기에 전갑생 교수님이 가서... 사실은 다른 거 찾으러 갔었는데 가서 보니까 있길래 그걸 전부 원본을 스캔해 온 거죠. 거기 보니까 미군 상하 부대 간에 자기들끼리 지휘명령 체계가 분명한데 거짓 보고를 할 리가 없지 않습니까? 거기에 보니까 이 울릉도·독도는 명확하게 한국 땅이라는 것이 정리가 돼 있는 거예요. 그런데 그 이후에 일본에서 이런 러스크 관련 발언이니 등등 이렇게 해서... 그건 아주 지엽말단적인 것이고, 근본적인 그 당시에 현실 상황에서 파악할 수 있는 마그나카르타가 이런 거예요. 그런데 여기에 보니까 ‘더도 덜도 말고 한국 땅’이라고 돼 있는 거예요.
◆ 박귀빈 : 미국도 당시에 "독도는 한국 땅이야"라고 그냥 생각하고 있었다는 거잖아요? 그리고 독도에서 일어난, 한국 땅 독도에서 자기네들이 와서 어떤 일을 벌였고 그게 어떻게 지금 진행되고 있는지 서로 보고하고, 지금 이런 문서인 거잖아요. 그래서 비공개 자료인데 이번에 그 자료를 전갑생 교수님이 찾으셔서 기증을 하셨죠?
◇ 정용상 : 예, 적지 않습니다. 222면인데, 울릉도 갔을 때 제가 놀란 것 이상으로 놀랐습니다. 아주 그냥 해진 그 종이에 있는 내용인데, 거기에는 미군들끼리 주고받은 내용뿐만이 아니고, 거기에 대한 폭격 이후에 이렇게 민간인들을 불러놓고 증거력을 확보하기 위해서 증언을 수집하고 했을 것 아닙니까? 우리 동북아역사재단 독도실장이 ‘홍성근 실장’이라고 울릉도 태생인데, 그 독도의용수비대장 홍순칠 친조카거든요. 이분의 증조할아버지가 증언을 한 게 이번에 거기 보니까 있더라고요.
◆ 박귀빈 : 우리 홍성근 실장님의 증조할아버지가 증언을 당시에...
◇ 정용상 : 육필로 한 게 있더라고요. 이렇게 이런 색깔로 해지기는 했지만. 거기 보니까 이렇게 막 한자로 쭉 적은 증언록 같은 것도 있고... 이번에 그 비밀문서 꼭 자기들끼리 커뮤니케이션한 것뿐만이 아니고, 그 곁에 보안 첨언된 내용들도 저희들로서는 굉장히 고귀한, 그런 증거력을 백업해 줄 수 있는 자료여서 저는 계속 놀랐습니다.
◆ 박귀빈 : 이거 앞으로 어떻게 활용됩니까?
◇ 정용상 : 저희들이 그것을 전문적으로 분석하고 해제하고... 각각으로 놓으면 이 평범한 사람들, 비전공자들은 어려우니까 그것을 제대로 읽을 수 있게 저희들이 해제하고, 평론. 이렇게 하면서 잘 정리해서 공개할 겁니다.
◆ 박귀빈 : 많이 알려주셔야 됩니다.
◇ 정용상 : 전시도 하고, 그 자료들을 저희 재단에서 독점적으로 그렇게 우리끼리만 쓰는 것이 아니고 연구자들에게 널리 공개할 예정입니다.
◆ 박귀빈 : 최근에 학술회의가 있었는데요. 1877년 일본의 태정관 지령 제223호 그리고 첨부지도 기죽도약도를 분석한 연구 결과가 발표됐습니다. 이거는 어떻게 평가해 볼 수 있습니까?
◇ 정용상 : 이때 저희 재단 독도연구소 김영수 소장의 그런 연구 성과인데, 이 태정관이라는 걸 어떻게 쉽게 설명해야 될까 저도 망설였는데, 저희들로 치면 내각 회의, 국무회의, 그 당시에 일본의 최고 의사결정 기관이에요. 거기에서 "이 땅은 한국 땅이니 거기서 어로도 하지 말고 가지 마라"라고 자기들이 그렇게...
◆ 박귀빈 : 이거 스스로 만든 자료입니다.
◇ 정용상 : ‘태정관’ 지령이 바로 그겁니다. 태정관이라는 게 이를테면 옛날로 치면 의정부, 지금으로 치면 국무회의 이런 정도 수준이거든요. 네, 정부의 의사 결정을 선포하는 지령이라는 게 영어로 한 디렉티브 이렇게 표현하면 될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자꾸 이것을 자기들 이익 중심으로 자꾸 부정하는 거예요.
◆ 박귀빈 : 그 첨부 지도인 ‘기죽도약도’면 거기에 독도가 나오나요?
◇ 정용상 : 예, 거기에 첨부로 ‘간도’라고 해서 나오는데, 지금 자기들이 자기 발등 찍힌 거죠. 완전히 전도되는 그런 내용인데, 이게 해학적으로 설명하기도 그렇고, 이 일본 쪽이 갈수록 자꾸 수렁에 빠지는 그런 자료들로 이해를 할 수 있겠죠. 이 태정관 지령은 굉장히 강조합니다.
◆ 박귀빈 : 그러니까요. 당시 일본 정부의 최고 기관이었던 태정관에서 "울릉도와 독도는 일본 영토 아니다. 이거 한국 영토니까 거기 가지 마."
◇ 정용상 : "응, 침범하지 마라."
◆ 박귀빈 : 이렇게 써 있다는 거잖아요? 거기 그 태정관 지령 제223호와 첨부 지도까지 돼 있다는 겁니다. 이런 자료가 있는데도 지금 일본은 계속 영유권 분쟁 지역으로 독도를 만들고 있고 자기네 거라고 막 이러고 있는데... 아, 제가 가슴이 아픈 건 뭐냐 하면 이런 말도 안 되는, 역사적인 자료도 굉장히 미흡하지 않습니까? 그걸 주장할 수 있는 자료가 있을 수가 없잖아요. 일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네 땅이라고 독도를 계속 주장하고 있고, 지금 해외의 어떤 일부 기관, 일부 지도에도 이 표기가 한국 땅으로 명확하게 표기 안 된 부분도 있잖아요? 저는 그런 게 너무 가슴이 아파요.
◇ 정용상 : 참 아쉽습니다. 구글 지도라든지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할 수 있는데, 어제도 저희들 이 동해 표기 명칭 대사직에 있었던 분들하고 토론회를 했거든요. 지금 동해를 일본해로 이렇게 저쪽에서 지금 표기를 하고, 그게 한 20년 전만 해도 국제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일본해로 이렇게 돼 있었는데, 지금은 동해하고 병기하는 그런 작업을 해서 한 40~50%가 이제는 다 이렇게 병기돼 있습니다. 그게 동해 안에 독도가 들어 있기 때문에, 이 앞에서도 말씀드렸습니다마는 이것을 자꾸 분쟁, 무슨 트러블이 있는 것처럼 하면 저희들이 그렇게 유익하지 않기 때문에, 종합적으로 지금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수토관, 그다음에 그 내용 각석문, 미군 기밀문서, 자기들이 스스로 만든 태정관 지령 이런 것을 그냥 하나하나 별개로 놓고 이렇게 할 것이 아니라, 실증적인 자료를 놓고 분석해서 통합적으로 이렇게 상품화시켜서 저희들이 불필요하게 공격적으로 독도 문제를 이슈화시킬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대신 그냥 놀면 안 되죠. 꾸준히 연구를 해야죠. 지금 독도 문제에 대해서는 일본에서는 주로 시마네현 조례에다 이렇게 해서 달게 되는데... 그래서 저희들이 대한민국 국가 차원, 정부 차원에서 "이거 너무 시마네현하고 격도 안 맞는데, 그래서 우리가 적절하게 젠틀하게 접근하자" 이런 입장을 잡고 있습니다.
◆ 박귀빈 : 우리 국민들도 잘 그 말씀을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독도 클라이밍으로 올라가셨던 분입니다. 지금까지 동북아역사재단 정용상 사무총장님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 정용상 : 감사합니다.
YTN 이시은 (sieun0805@ytnradi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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