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만요]70주년 한국여자의사회 박혜영 부회장"선배들 덕에 성장했듯, 우리도 후배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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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만요]70주년 한국여자의사회 박혜영 부회장"선배들 덕에 성장했듯, 우리도 후배들에게"

2026.06.25. 오후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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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만요]

■ 방송 : YTN 라디오 FM 94.5 (20:20~21:00)
■ 날짜 : 2026년 6월 21일 (일요일)
■ 진행 : 강현구 아나운서
■ 대담 : 한국여자의사회 박혜영 수석 부회장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내용 인용 시 YTN라디오 <행복한 쉼표, 잠시만요> 인터뷰 내용임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 강현구 아나운서 (이하 강현구) : 과거 빛바랜 신문 기록을 보면 여자 의사라는 단어가 낯설게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답니다. 하지만 요즘 병원에 가보면 다정하시고 또 훌륭하신 여성 의사 선생님들 정말 자주 뵙게 되죠. 낯설게 여겨지던 여자 의사가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게 되기까지에는 지난 70년간 묵묵히 길을 다져온 여자 의사 선배들의 헌신이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올해로 창립 70주년을 맞은 한국여자의사회 박혜영 수석 부회장 모셨습니다. 부회장님 어서 오세요.

◇ 한국여자의사회 박혜영 수석 부회장 (이하 박혜영) : 안녕하십니까.

◆ 강현구 : 한국여자의사회 박혜영 수석 부회장님이신데요. 부회장님 청취자분들께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 박혜영 : 저는 한국여자의사회 수석부회장을 맡고 있는 내과의사 박혜영입니다. 반갑습니다.

◆ 강현구 : 반갑습니다. 올해로 한국여자의사회가 창립 7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사람으로 치면 칠순, 그러니까 고희(古稀)를 맞은 셈인데 먼저 축하드린다는 말씀드리고 싶어요.

◇ 박혜영 : 네, 감사합니다.

◆ 강현구 : 올해로 창립 70주년을 맞은 한국여자의사회, 어떤 조직인지 또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요.

◇ 박혜영 : 한국여자의사회는 말 그대로 우리나라에서 활동하고 있는 여자 의사들의 모임입니다. 국민 건강에 도움을 드리고자 의료 봉사, 의학 교류, 미래의 여자 회사를 키우기 위한 장학 사업까지 여성 의사들이 건강한 사회 지도자가 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단체입니다.

◆ 강현구 : 여성 의사들을 위한 모임이라고 생각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한국여자의사회가 1956년에 출범을 했습니다. 그 당시에만 해도 여성 의사의 숫자가 지금보다는 훨씬 적었을 것 같은데 어느 정도였을까요?

◇ 박혜영 : 1950년대에 총 의사 수가 약 6천 명 남짓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요. 1956년 출범할 당시에 여자 의사 수가 620명 정도라고 하니까 10% 내외가 여자 의사였습니다. 대략 10명 중에 1명인 꼴이죠.

◆ 강현구 : 굉장히 소수였네요. 아마 이런 배경에서 한국여자의사회가 탄생하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이 드는데 한국여자의사회가 만들어진 과정이 궁금합니다.

◇ 박혜영 : 놀랍게도 6.25 전쟁이 제대로 끝나기도 전, 부산에 피난을 가 있을 때 몇몇 여자 의사 선생님들이 이야기를 나누셨다고 합니다. 휴전이 된 후에 서울로 복귀해서 친목으로 시작했던 여의사 모임인데, 1956년도에 보건사회부로부터 사단법인 인가를 받아서 본격적인 여성 의료 전문가 단체가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그 당시에 시대적으로 정말 어렵고 굉장히 어수선할 때였을 텐데 여자의사회를 창립했다는 것은 우리 선배님들의 미래를 보는 안목 덕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 강현구 : 여성 의사 선배님들이 국가적으로 굉장히 혼란한 시기에도 시간을 내 모이셔서 한국 여자 의사회의 시초가 되는 모임을 만들어 주셨는데 그게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군요.

◇ 박혜영 : 네, 맞습니다.

◆ 강현구 : 과거에는 그랬는데 요즘 병원 가보면 여성 의사 선생님들 정말 많이 뵙게 됩니다. 실제로 현재 대한민국 전체 의사 중에 여성 의사의 비율이 어느 정도 되는지가 궁금해요.

◇ 박혜영 : 2025년도 의사 통계 자료를 보면 전체 의사 수가 대략 14만 2천여 명이 되는데요. 그중에 여자 의사 수가 3만 8400명 이 정도 되어서 대략 27%에 달합니다. 의과대학에는 여학생 수의 비율이 거의 반반이기 때문에 조만간 여자 의사 비율이 50%를 육박할 시기가 얼마 안 남은 것 같습니다. 현재도 30,40대의 젊은 여자 의사 선생님들이 전체 여의사의 한 3분의 2 정도를 차지할 정도로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 강현구 : 한국여자의사회가 처음 출발했던 그 시점 그리고 지금을 비교를 해보면 의료계 안에서 여성 의사들의 대우나 역할이 굉장히 달라지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 드는데 부회장님 부회장님께서 보시기에는 가장 큰 변화가 있다면 뭘까요?

◇ 박혜영 : 한 세 가지 정도로 나누어서 이야기 드리고 싶습니다. 첫 번째는 이미 말씀드린 건데, 수적인 성장 말씀을 드리는데요. 과거에 10%에 불과했던 여성에서의 비율이 27%, 거의 30%를 육박할 정도로 수적인 성장이 있었고요. 혹시 우리 강현구 앵커는 여자 의사라고 하면 어떤 과목 선생님들이 제일 먼저 생각나세요?

◆ 강현구 : 제가 여성 의사 선생님을 많이 봤던 거는 소아과 다닐 때여가지고 소아과에 또 많이 있을 것 같고, 길을 가다 보면 여성 의원, 산부인과에 그런 문구가 많이 있는 걸 봤어요. 그래서 여성 의사분들은 주로 소아과나 산부인과에 많지 않을까 생각이 드는데 실제로는 어떤가요?

◇ 박혜영 : 과거에는 여자 의사 선생님들이 산부인과와 소아과에 국한되었던 게 맞습니다. 다른 과에 진입하기가 쉽지도 않았고요.

◆ 강현구 : 범위가 한정돼 있었군요.

◇ 박혜영 : 네. 여성 의사의 거의 쿼터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어느 과만 뽑고 경우에 따라서 우리는 여성 의사 안 뽑아 이런 거를 과거에는 공공연히 얘기하기도 했었습니다.

◆ 강현구 : 그런 시절이 있었군요.

◇ 박혜영 : 네 맞습니다. 지금은 내과, 외과, 정형외과 심지어 비뇨의학과까지 여성의사의 진출이 전공 분야를 나눈다 이런 게 전혀 없는 것이 두 번째 특징이라는 생각이 들고요. 마지막으로는 과거에 비해서 대학병원장이라든지 학회회장, 의학단체장 이런 식으로 여성 의사들의 리더십이 맹활약을 하고 있는 걸 볼 수 있어서 굉장히 참 뿌듯하고 기쁩니다.

◆ 강현구 : 크게 세 가지 짚어주셨습니다. 실제로 수적인 규모적인 증가 그리고 전공의 다양화 그리고 리더십까지 세 가지 짚어주셨습니다. 말씀 들어보니까 정말 많은 변화가 있었구나 생각이 듭니다. 이런 변화를 우리가 해석을 할 때 최초 그러니까 처음의 이야기를 들여다보지 않을 수가 없잖아요. 우리나라 최초의 여자 의사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한국 최초의 여성 의사로서는 박에스더, 본명 김점동 선생님이 많이 이야기가 되죠. 여성 의사의 역사를 이야기를 할 때 이분을 어떻게 생각하면 좋을까요?

◇ 박혜영 : 한국 최초의 여성의사 박에스더 선생님은 도전과 성취의 아이콘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1880년대 후반 그러니까 조선시대입니다. 그 당시에는 여성들이 본인의 이름이 없어서 청주댁, 개똥이 엄마 이렇게 불리던 시절이었고 남성 의사에게 몸을 보이느니 아파도 죽겠다 이런 마음이 있던 그런 시절입니다. 보구녀관(普救女館), 이름이 어렵습니다. ‘여성을 보호하고 구한다’는 뜻인데요. 고종께서 이 이름을 하사하셨다고 전해지는 보구녀관은 여성을 위한 최초의 의료 시설입니다. 여기서 박에스더 선생님은 서양인 선교사 중에 한 분인 로제타 셔우드 홀 선생님의 영어 통역을 맡고 또 수술 보조를 하면서 시작을 했는데요. 그 후에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서 정말 너무나 많은 어려움 끝에, 현지에서 남편이 사망하신다든지 하는 그런 어려움 끝에 미국의 볼티모어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의사가 되어 1900년도에 다시 조선으로 돌아오셨습니다. 안타깝게도 그 후 한 10년쯤 뒤에 34세라는 굉장히 젊은 나이로 폐결핵에 걸려서 사망할 때까지 조선 여성들의 건강을 지키고 보건 위생 교육에 평생을 마친 정말 위대한 스승이십니다.

◆ 강현구 : 와 정말 대단하시네요. 박에스더 선생님 같은 경우에는 미국에서 의사 면허를 받으신 셈이네요.

◇ 박혜영 : 네 그렇습니다.

◆ 강현구 : 그러면 국내에서 의사 면허를 받은 최초의 여성 의사로는 어떤 분이 있는지도 궁금해요.

◇ 박혜영 : 국내에서 여성 의사를 교육시키는 게 굉장히 힘들었던 모양입니다. 왜냐하면 1900년도에 박에스더 선생님이 돌아왔는데 한 10년, 20년 가까이 한국에서는 여성 의사가 없었거든요. 앞에 잠깐 언급 드린 로제타 홀 선생님이 굉장히 많은 노력을 해서 정식 입학생도 아니고 청강생으로 여성의사 세 분의 입학을 겨우겨우 사정해서 입학시키신 후에 1918년에 공부를 마치고 의사가 처음 되신 여성의사 세 분이 계시고요. 또 다른 한편에서는 외국 유학을 다녀오십니다. 그래서 허영숙 선생님이란 분은 동경여자의과대학을 졸업한 다음에 1918년 같은 해에 외국에서 졸업을 했으니까 한국에 와서 의사 면허 시험을 보고 한국 의사가 됩니다. 그 당시는 여성들이 의사가 되고 싶은 마음이 있어도 길이 없는 그런 굉장히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 강현구 : 정식 입학생이 아니라 청강생으로서 공부를 해서 의사 면허를 쟁취를 하고 또 외국 유학을 통해서 의사 면허를 받고, 정말 쉽지 않았는데 그래서 더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부회장님 제가 슬기로운 의사생활 같은 드라마를 보면 전미도 배우가 연기한 채송화 선생님처럼 여성 전문의들의 활약이 굉장히 눈부시게 그려질 때가 많아요. 드라마를 보면서 실제로 저럴까, 실제 현장에 뛰는 여성 의사분들의 현실은 드라마랑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드는데 실제로 어떨까요?

◇ 박혜영 : 드라마에서 여성 의사들이 참 매력적이고 능력도 출중하고 아주 멋있죠. 실제로도 그런 분들이 많이 계신데요. 다만 시간적인 제약이라든지 결혼을 하고 나서 육아를 해야 된다든지 이런 한계가 있는 경우가 있어서 많은 것들을 포기하면서 삽니다. 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라고 그래서 일과 육아의 양립을 하는 것은 세계여자의사회에서도 화두로 떠오를 만큼 굉장히 모든 사람들의 고민입니다.

◆ 강현구 : 많은 분들 전 세계에 있는 여성 의사들이 함께 논의하는 워라밸 문제가 또 있군요.

◇ 박혜영 : 네 그렇습니다.

◆ 강현구 : 부회장님 다가오는 7월 11일에 대규모 한국여자의사회 70주년 기념식이 열리고 학술 심포지엄도 열린다고 들었습니다. 지난 70년을 집대성한 영상도 상영된다고 들었는데 이번 행사에서 가장 공들여 준비하고 계신 게 있다면 뭘까요?

◇ 박혜영 : 한 번 더 제가 강조하고 싶어서, 7월 11일 토요일에 대한의사협회 종합학술대회 중에 한 섹션을 저희 한국여자의사회에서 맡게 되었습니다. 한국여자의사회는 시작부터 세계 여자의사회와 발맞춰서 발전을 했습니다. 지난 70년 동안도 그랬고 앞으로 100년도 그러할 것인데요. 저희가 가장 공들여 준비한 게 있다면 그동안 70년 역사를 정리하는 아주 제대로 된 영상을 잘 마련하고 있어서 우리 국민들께나 또는 후배 의사 선생님들한테 멋진 자료로 남길 것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 강현구 : 7월 11일 토요일에 열리는 행사입니다. 많은 분들께서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습니다. YTN 라디오 행복한 쉼표 잠시만요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한국여자의사회 박혜영 수석 부회장님과 함께 이야기 나눠보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출연하신 분들의 신청곡 들어보는 나의 인생 나의 노래 순서입니다. 부회장님 어떤 곡 신청해 주셨을까요?

◇ 박혜영 : 저는 시인과 촌장의 풍경을 듣고 싶습니다.

◆ 강현구 : 풍경이요?

◇ 박혜영 : 네 제가 학생 때부터 좋아했어서 공연장 가서 들었던 기억도 있고 그런 곡인데요. 세상 풍경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이라는 이 가삿말이 너무 좋아서 신청을 했습니다.

◆ 강현구 : 학생 때부터 좋아하신 곡이시군요. 이야기를 나눠보니까 부회장님의 학창시절은 어떤 모습이었는지가 궁금한데, 노래 듣고 와서 또 관련된 이야기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노래 듣고 오시죠. 한국여자의사회 박혜영 수석 부회장님께서 신청해 주신 시인과 촌장의 풍경 듣고 오셨습니다. 행복한 쉼표 잠시만요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한국여자의사회 박혜영 수석 부회장님 모시고 이야기 나눠보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부회장님 개인의 이야기를 여쭙고 싶어요. 의사가 되신 지는 얼마나 되셨을까요?

◇ 박혜영 : 제가 1989년에 졸업을 해서 올해로 의사 된 지 37년이 되었습니다.

◆ 강현구 : 37년이요?

◇ 박혜영 : 네. 제 느낌은 그렇게 오래된 것 같지 않아서 잘 살았나 봐요.

◆ 강현구 : 37년이라는 긴 세월이 길지 않은데라고 느껴질 정도로요. 선생님 그러면 언제부터 의사를 꿈꾸셨을까요? 특별한 계기 같은 게 있었을까요?

◇ 박혜영 : 저한테는 계기라기보다는 돌아가신 친정아버지께서 내과 의사셨어요.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주사기, 청진기 이런 것들이 굉장히 저한테 익숙한 환경이었습니다. 제가 원래 노래하는 걸 좋아하는데요. 어렸을 때 청진기를 귀에 꽂고 그거를 마이크처럼 들고 노래했던 기억이 있어요. 그러면 굉장히 잘 들리거든요. 제가 대학 입학하던 때는 1980년대였고 그 당시에는 졸업정원제라고 입학은 많이 시키고 졸업을 제한하는 일명 졸정제라는 게 있었거든요. 입학을 많이 시켜서 제가 의대를 갈 수 있었지 아마 요즘같이 치열했으면 의대 못 갔었을 것 같아요.

◆ 강현구 : 아이고 이런 겸손까지 또 보여주셨습니다. 선생님 그러면 수많은 진료 과목 중에서 내과 전문의십니다. 내과를 선택하신 이유가 뭘까요?

◇ 박혜영 : 제가 내과를 선택한 거는 정말 의사다운 의사다,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의사다 이런 거에서 시작을 했고요. 그중에서도 세부 전공인 내분비내과라는 거를 정하게 됐는데요. 내과가 워낙 여러 분야를 하다 보니까 분과라는 것을 개념으로 나누고 있습니다. 제가 내분비내과를 선택하게 됐던 거는 내과 레지던트를 시작하는 1년 차 3월, 그러니까 첫 달에 제가 내분비 내과를 돌았는데 그때 담당 과장님께서 저를 너무 예뻐하시면서 아유 박 선생하고는 1년 내내 같이 했으면 좋겠어 이런 칭찬을 하셨어요. 제가 칭찬에 약해서 평생 내분비 내과를 하고 있습니다.

◆ 강현구 : 과장님의 말 한마디가 우리 부회장님의 인생을 여기까지 오게끔 한 거네요.

◇ 박혜영 : 네 맞습니다.

◆ 강현구 : 현재 부회장님께서는 내과 전문의이시면서 종합병원 인천힘찬종합병원의 이사장으로 또 계십니다. 내과 전문의 그리고 이사장, 하루가 24시간이 모자라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드는데 부회장님의 하루 일과 요즘 어떠세요?

◇ 박혜영 : 보통 한 새벽 5시쯤 일어나요.

◆ 강현구 : 새벽 5시요.

◇ 박혜영 : 네. 아침 식사는 꼭 하고 출근을 합니다. 제가 아침을 먹지 않으면 그날 하루를 잘 못 지내서요. 그리고 진료가 있는 날에는 거의 진료실에 매여 있다시피 하고 진료가 없는 날에는 회의를 한다든지 병원을 살펴보기도 하고 그럽니다. 요새는 저녁 모임이 많아가지고 퇴근이 늦다 보니까 집에서 약간 불만이 있습니다.

◆ 강현구 : 빨리 오셨으면 하는데.

◇ 박혜영 : 네. 많이 바쁜 건 맞지만 정말 감사한 마음이고 아주 잘 지내고 있어서 건강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도 스스로 하고 있습니다.

◆ 강현구 : 그렇군요. 부회장님 남편분께서 이수찬 대표 원장님께서도 유명한 정형외과 전문의신데 의사 부부시잖아요. 아 이걸 여쭤볼 수 있게 돼서 참 좋은데, 두 분 어떻게 만나셨어요?

◇ 박혜영 : 이거를 마이크에다 대고 얘기해야 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저희는 인천의 길병원 에서 함께 근무를 했었습니다. 남편이 정형외과 레지던트 2년 차 때 그리고 저는 인턴 때였는데요. 제가 응급실 당직을 하고 있으면 보통 인턴 때는 의사 환자가 오면 그 과 선생님들한테 연락을 드립니다. 정형외과 환자가 와서 전화를 연락을 드리면 제 목소리가 들리기만 하면 부리나케 전화를 끊고 달려 내려오셨었고요. 정형외과 인턴을 돌 때는 보통 소독하는 드레싱이라고 하는 게 인턴의 역할인데 그중에 가끔 어렵고 커다란 힘든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그런 복잡한 드레싱은 저도 모르게 어느새 하고 가시고, 제가 찍혀서 결혼했다고나 할까요? 뭐 그렇습니다.

◆ 강현구 : 남편분께서 같이 근무하실 때 굉장히 신경을 많이 쓰시고 또 마음을 많이 표현하셨네요. 또 남편분과 가정을 꾸리고 뭐 자제분도 계시죠. 육아를 하시면서 동시에 커리어를 쌓고 있는 과정에 있는데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아요. 어떠셨습니까?

◇ 박혜영 : 애들이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도움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시부모님께서 애들 어릴 땐 육아를 도와주시기도 했고요. 엄마아빠가 바쁘게 지내다 보니까 애들이 철이 잘 들어서 형이 동생을 챙기기도 하고 그런 식으로 주변에 많은 도움을 받으면서 지금까지 지내고 있습니다.

◆ 강현구 : 아무래도 그러니까 수많은 어려움들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 위기를 넘긴 건 또 주변 사람들의 많은 도움이 있었다 이렇게 또 정리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부회장님 개인적으로도 사회 공헌과 봉사 활동에 아주 앞장서고 계신다고 제가 들었는데요. 관련해서 최근 어떤 나눔 활동들을 하고 계시는지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 박혜영 : 멋지게 또 열심히 지내시는 분들에게 비하면 부끄러운데요. 제가 한 15년째 매달 방문하고 있는 전진상의원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여기서도 진료를 보고 있는데요. 제가 병원에서 진료하는 분위기랑은 사뭇 다르게 이곳에서 만나는 분들은 서로 감사의 마음을 주고받으면서 더 뜻 깊은 진료가 되고 있습니다.

◆ 강현구 : 그렇군요. 37년간 의사로서 지내오셨습니다. 진료실을 지켜오시면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환자, 아무래도 많은 분들을 보셨을 것 같은데 그중에서도 특별히 기억나는 환자나 아 내가 의사되길 정말 잘했다 생각했던 순간이 있다면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 박혜영 : 제 전공하고 연관되는 상황인데요. 과거에 난산을 하셨던 그러니까 한마디로 출산 가정에서 아주 심한 출혈이 있던 그런 어머니들은 막내 아이 낳고 난 다음에 내가 산후조리를 못해서 몸이 평생 안 좋다 이렇게들 말씀을 하셔요. 이 과정 중에는 시한 증후군(쉬한 증후군, Sheehan's syndrome)이라고 해서 뇌하수체 호르몬 검사를 통해서 우리 몸에 부족하게 된 호르몬들이 있는지 이런 거를 확인하고 그런 호르몬을 보충해 드리면 어렵지 않게 아주 건강해지시거든요. 이 병은 통증도 없고 겉으로 드러나는 표시가 없다 보니까 내내 꾀병이라고 본인도 주변에서도 생각을 하고 계셨다가 원인도 밝히고 몸이 좋아지고 나니까 저더러 평생 은인이다 이러면서 매번 이렇게 표현하시는 거를 들으면 정말 보람되고 굉장히 기쁩니다.

◆ 강현구 : 아무래도 많은 환자분들로부터 감사하다는 말씀을 정말 많이 들으실 것 같아요.특히 본인도 잘 모르는 병을 발견을 해서 치료를 해 주시니까 그 환자분은 선생님 절대 잊지 못하시지 않을까 또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의료 현장에서 여성 의사들만이 가질 수 있는 특별한 강점이라든지 혹은 환자를 대할 때 선생님만의 남다른 소통 방식이 있다면 뭐가 있을까요?

◇ 박혜영 : 저는 환자분 진찰을 할 때 보통 청진을 한다 그러면 숨소리를 듣는 걸로 생각들을 하시는데요. 간혹 숨을 멈추시라고 한 뒤 소리를 청진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건 뭐냐 하면 혈관 소리 같은 거를 들을 때는 그런 식으로 접근을 하는데요. 이럴 때는 저도 같이 숨을 참습니다. 그러면 집중하는 의미도 있지만 환자분이 불편하지 않게 언제까지 숨을 참을 수 있는지를 제가 같이 느끼기 때문에 그 시간까지만 진찰을 하는 스스로 확인하면서 하는 과정이 있는데요. 여자 의사들은 더 섬세하게 접근하는 것 같습니다.

◆ 강현구 : 청취자분들 중에서도 의사를 준비를 하거나 혹은 의사를 꿈꾸는 여학생들도 있을 것 같아요. 만약 조언을 해 주신다면 어떤 조언 해 주시겠어요?

◇ 박혜영 : 요즘 의사 되는 길이 공부를 통해서만 할 수 있는 것처럼 되다 보니 대부분 공부에 올인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습니다. 제가 그동안 30여 년 의사로서 지내다 보면 공부를 잘해야만 의사가 되는 거라기보다는 인간에 대한 따뜻한 마음으로 접근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요즘 학생들이 생각한다면 그러니까 열심히 공부하는 와중에도 인간에 대한 따뜻함을 계속해서 유지할 수 있는 본인만의 여유도 꼭 찾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 강현구 : 물론 공부가 중요하지 않은 건 절대 아닙니다만 공부뿐만 아니라 마음가짐까지 갖출 수 있으면 좋겠다 이런 조언을 해 주셨네요. 부회장님 마지막 질문이 될 것 같습니다. 한국여자의사회 수석 부회장으로서 또 의사 박혜영으로서 앞으로 꼭 이루고 싶은 꿈이나 목표가 있다면 듣고 싶습니다.

◇ 박혜영 : 의사 박혜영으로서는 이제까지 한 것처럼 진료실에서 만나 뵙는 우리 환자분들께 최선의 의사가 되는 거 그걸 계속 유지하는 거고요. 수석 부회장으로서는 회장님을 잘 보좌해서 후배 여자 의사들이 승승장구할 수 있는 그런 여건을 함께 만들어 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선배님들의 관심과 애정으로 지금까지 성장했듯이 우리 후배들에게 그런 선배가 되고 싶습니다.

◆ 강현구 : 오늘 정말 따뜻한 시간 함께 했네요. 행복한 쉼표 잠시만요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오늘은 한국여자의사회 박혜영 수석 부회장님과 함께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 박혜영 : 초대 감사합니다. 무척 재밌고 굉장히 소중한 체험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강현구 :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는 YTN 라디오 홈페이지를 통해서 다시 들으실 수 있습니다.

YTN 박준범 (pyj@ytnradi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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