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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행 : 이여진 앵커, 장원석 앵커
■ 출연 : 김헌식 대중문화 평론가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인용 시 [YTN 뉴스PLUS] 명시해주시기 바랍니다.
[앵커]
현역 최고령 배우로대중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원로배우 이순재 씨가향년 91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대중문화사에 한 획을 그었던고인의 연기 인생을 김헌식 대중문화 평론가와 짚어봅니다. 어서 오십시오. 오늘 아침에 많은 분들께서 이 소식 듣고 놀라셨을 것 같습니다. 최근에 위독하다는 소식이 전해진 적이 없거든요.
[김헌식]
그렇습니다. 그래서 작년부터 건강이 안 좋다라는 이야기는 있었지만 갑자기 이렇게 비보가 전해질 줄은 아마 출근길에 많은 분들이 당황하셨을 거라고 생각이 들고요. 그래서 작년 10월달에 고도를 기다리며를 준비하시다가 건강이 좀 좋지 않아서 하차를 한 그런 소식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올해 한국피디대상 시상식에도 좀 나오시는 거 아니냐 했는데 등장하지 않으셔서 건강이 안 좋은 것 같다는 이야기들이 계속 나왔고요. 또 박근형 씨 같은 경우도 지난 8월에 면회를 신청했는데 여러 차례 이순재 선생님께서 응하지 않으셔서 걱정이 많이 됐다 이런 이야기를 했고. 또 백일섭 씨 같은 경우는 오늘 인터뷰를 통해서 건강이 안 좋으시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세상을 떠나시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고 했고 사실 평소에 그런 의지와 또 결기가 굉장히 강하셨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 많은 분들이 오늘 놀라셨던 것 같습니다.
[앵커]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이순재 씨의 사위로 연기했었던 정보석 씨, 3주 전에 병문안을 갔었다고 했는데요. 그때는 어떤 얘기가 나왔습니까?
[김헌식]
정보석 씨가 3주 전에 병문안 갔는데 그때 당시에는 그렇다고 해서 원활하게 대화를 했던 것은 아니고 정보석 씨가 얘기했을 때 거기에 대해서 고개를 끄덕거린다든지 약간의 소극적인 반응을 보이셨던 거죠. 그런데 사실은 3주 전에 이렇게 응하셨던 건 두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죠. 일단 정보석 씨가 시트콤 시리즈에서 같이 워낙 돈독했었고 또 평소에 이순재 선생께서 후배들을 많이 챙기셨어요. 그렇기 때문에 정보석 씨를 만나서 응했던 것 같고요. 그렇지만 잠시 좋아질 수는 있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 아마 소속사에서도 지금 건강 이상 그렇게 심각하지 않다, 그리고 재활하고 있고 복귀 의사가 있다. 이렇게 말했던 맥락이 이때는 그래도 좋아졌을 가능성이 있는데 다만 11월 같은 경우는 환절기이기 때문에 면역력이 굉장히 취약해질 수 있는 상황이어서 그런 점이 작용하지 않았나 이렇게 추측을 해 봅니다.
[앵커]
배우 이순재 씨가 지난해 YTN에 출연하셨는데 그때 당시에도 정정하셨거든요. 연기의 경지에는 끝이 없다고 강조했는데 당시의 목소리 듣고 오겠습니다. 지금 끊임없이 나이 구십이 되도록 끊임없이 계속해서 도전을 하고 노력을 했던 분인데, 이걸 몸소 실천하신 분 아니겠습니까?
[김헌식]
그래서 예전에 함석환 선생님도 그런 말씀을 하셨거든요.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 된 이유가 부족하고 결핍됐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이순재 선생께서도 결핍 그러니까 나는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그걸 채우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하신 부분들이 구순까지 이렇게 오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요. 후배들한테 그런 말씀도 하셨어요. 후배 연기자들이 너무 뜨려고 하는데 뜨려고 하지 말아라. 오히려 자기의 완벽함을 위해서 추구하다 보면 기회가 오고 계기가 된다라는 말씀, 그런 부분들을 쭉 돌아보면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가 있겠고 본인이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서 노력을 하셨다, 구순까지. 이렇게 볼 수가 있겠습니다.
[앵커]
고인을 공식석상에서 마지막으로 봤던 게 지난해 KBS연기대상이었더라고요. 당시에 또 수상소감이 큰 반향을 일으켰는데 오래 살고 보니 이런 날이 온다. 보고 계실 시청자 여러분께 평생 신세 많이 지고 도움 많이 받았다고 말하고 싶다. 구순의 연기자가 한 수상소감으로는 굉장히 겸손한 것 같군요.
[김헌식]
사실 드라마 개소리라고 하는 제목이 듣기는 거북하실 수 있지만 반려동물과 같이 문제 해결을 하는 탐정으로 활약을 하셨습니다. 정말 약간의 보이기 싫은 그런 모습도 보이시면서 연기를 하셔서 정말 투혼 연기다, 이렇게 생각이 드는데요. 이때 수상소감하러 나오시는데 약간 부축을 받고 나오셨어요. 그래서 저때도 몸이 그렇게 완전하시지는 않으시다 이렇게 생각이 들었었는데 거기서 여러분께 평생 신세지고 도움 받았다라는 것은 결국에는 팬들, 시청자들, 국민께 그런 도움을 많이 받은 것을 말씀을 하셨고요. 그리고 사실 우리가 시상식의 의미 같은 경우에도 그 맥락이 뭐냐 하면 60세 넘어가면 아무리 연기를 잘해도 상을 받지 못한다. 왜냐하면 히트작을 중심으로 해서 상을 주다 보니까 젊었을 때 히트작이 나오면 상을 받는데 어느 정도 나이가 지나 면 못 받는데 그렇지만 연기는 연기로 평가해야 한다. 그래서 오래 기다렸더니 기회가 왔다 이런 말씀을 하신 거죠. 그래서 결국에는 우리 사회에서 연기뿐만 아니고 성과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해야 되는지를 연기대상에서 마지막으로 깨달음을 주셨다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앵커]
언젠가 기회가 오겠지 하고 늘 준비하고 있었다, 이렇게 수상소감을 밝히기도 했는데 자다가도 대사가 튀어나올 정도로200분 공연의 방대한 대사량을 석 달 전부터 통째로 외웠다 이렇게도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김헌식]
그러니까 굉장히 사전에 대사 연습을 치밀하게 완벽하게 하시기로 유명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로 시나리오가 됐든 연극 대본 혹은 드라마 대본을 읽고 현장에 가서 한 번도 실수를 하지 않기로 유명하십니다. 그만큼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하는 거고. 또 후배들한테도 그런 말씀을 많이 하셨어요. NG를 내면 안 된다. 안 된다라기보다는 사전에 준비를 그만큼 철저히 해야 된다는 것이고요. 그리고 지금 현재 우리 사회가 고령화 시대로 들어섰지 않습니까? 그래서 구순까지 연기 인생을 보여줬다는 것이 사실은 전 국민에게 굉장히 귀감이 된다 이렇게 볼 수가 있겠고 140여 편의 작품에 출연하셨거든요. 그런데 어떤 때는 한 달에 30편 정도도 하셨다고 그래요. 그래서 특히 예능 하실 때는 중국어, 스페인어 해서 외국어도 굉장히 학습을 많이 하셔서 그냥 단순히 대사를 외우는 게 아니고 끊임없이 공부를 많이 하셨던 부분이다. 그래서 결국에는 실망하지 말고 후배들한테도 말씀하셨던 기회가 올 수밖에 없는 상황. 그리고 지금 우리 사회가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먼저 보여주셨다는 생각이 들고요. 특히 국민들, 팬들에게 원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하셨기 때문에 이런 기회의 의미가 더 각별해 보입니다.
[앵커]
고인의 연기 경력을 살펴보면 입이 떡 벌어질 정도예요. 연기 경력이 70년. 연극 무대로 시작했죠?
[김헌식]
그렇습니다. 그래서 작품을 보고 서울대 철학과 작품임에도 연기자의 길을 가겠다 이렇게 결심하셨고요. 사실 원래는 1956년에 연극 지평선을 너머로 데뷔를 하셨고 그 뒤에 1965년에 TBC 1기로 전속 데뷔를 하십니다. 사실 우리가 예전에는 연극배우가 드라마배우로 되게 되면 약간 지탄을 받기도 했었어요. 그리고 사실 연극 발성이 남아서 드라마 배우로 가게 되면 좀 적응을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순재 선생께서는 드라마와 연극, 정극의 차이를 너무나도 잘 아셨고 또 나중에 시트콤과 예능의 차이를 잘 아셔서 그에 맞춰서 활동을 많이 하시니까 그때마다 이렇게 좋은 반응을 얻으셨다. 그만큼 많이 연구하시고 또 거기에 맞춰서 대중성을 높였다 이렇게 생각을 할 수가 있겠고요. 특히 사극과 일일드라마, 주말드라마에서도 아버지 역할 혹은 스승의 역할을 잘 보여주었던 그런 배우로도 기억할 수 있겠습니다.
[앵커]
아까 한 달에 30편 넘는 작품에 출연한 적도 있다고 말씀해 주셨는데 지금 고인의 출연작이 모든 매체를 합치면 약 425편에 달한다 이런 얘기가 있던데요.
[김헌식]
왜냐하면 그건 단역으로 출연한 것까지 말씀드리겠고 140편은 주요 배역만 했던 작품들만 이렇게 볼 수가 있기 때문에 대부분 예전에 보면 주연배우급들은 주연작만 찾는데 이순재 선생은 가리지 않고 연기의 폭을 넓히셨다 이렇게 볼 수가 있겠습니다.
[앵커]
그러면 국민배우로 입지를 굳히게 된 건 어떤 계기라고 봐야 합니까?
[김헌식]
아무래도 국민이라고 하는 것은 결과적으로는 연극만 해서는 곤란할 것 같고요. 아무래도 매스미디어 시대, 대중문화 시대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라고 하는 대중적인 드라마로 볼 수가 있는데 이게 시청률이 65%를 기록하기도 했고 중국에서는 한류의 시초이기도 합니다. 그때 당시에는 CCTV를 통해서 방영이 됐습니다. 그래서 중국 정부가 깜짝 놀랐던 적이 있어요. 왜냐하면 중국 국민들이 너무나 좋아했기 때문에 한국의 콘텐츠에 대한 위력을 실감하게 했던 그런 측면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류 열풍의, 드라마 열풍의 시초였던 작품으로 국민배우가 됐고 아시아에서도 각인을 시켰다라는 생각이 들고요. 그뒤에 목욕탕집 남자들에서도 가부장적인, 그러면서도 약간 속이 깊은 그런 아버지의 역할들을 계속해 왔습니다.
[앵커]
가부장적이면서 속이 깊은 아버지, 시트콤으로도 보여주셨어요.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그때가 70세가 넘어서더라고요.
[김헌식]
70이 넘으셨죠.
[앵커]
그때 아마 젊은 그리고 어린 초등학생들한테도 인기가 많았던 걸로 기억하거든요.
[김헌식]
학생들한테 그 이유를 찾아보면 뭐냐 하면 야동순재라는 단어 때문이었는데요. 그 장면이 사실은 야한 동영상을 일부러 보는 그런 게 아니고 우연한 상황 때문에 그렇게 몰려가는 상황이어서 웃음을 줬습니다. 그때 당시에는 그 장면이 너무 재미있으니까 초등학생들도 많이 좋아했던 거고요. 사실은 70대 나이에 이렇게 시트콤으로 새로운 모습을 보인다는 게 쉽지가 않았기 때문에 그만큼 언제나 변화하고 시도하고 이런 모습들이 좋았고 너무 반응이 좋았기 때문에 그 뒤에 이렇게 여러 시리즈가 연출됐었고요. 그리고 그게 원동력이 돼서 나중에 예능 프로그램에도 출연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사실은 이때 하이킥 시리즈 같은 경우에 지금도 10대, 20대들이 찾아 보는 시트콤이에요. 지금은 시트콤이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이제 세대를 넘어서서 굉장히 시트콤의 전설을 만드셨다. 이렇게 볼 수가 있겠습니다.
[앵커]
지금 말씀하신 대로 시트콤에서 코믹연기에도 도전을 했고 또 예능 출연도 했었고 연출까지 직접 맡았다면서요?
[김헌식]
그렇습니다. 연출 같은 경우에는 사실은 연극으로 돌아가셔서 연극의 연출을 맡으신 거죠. 사실 대중적으로 많이 활동하신다 하더라도 연극에 토대를 두신 분들은 연극을 떠나지 않으십니다. 사실은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요. 첫 번째는 모든 극의 중심은 혹은 토대는 연극일 수밖에 없는 것이고요. 그리고 두 번째는 아무래도 연극이라는 것은 관객과 직접적으로 대면하지 않습니까? 거기서 오는 감흥이나 정서 같은 경우는 배제할 수 없는 측면이 있거든요. 더더군다나 언제나 배우만이 아니고 직접 연출을 하심으로써 결과적으로는 마지막 퍼즐을 완성했다. 이렇게 볼 수가 있겠고 예능 같은 경우에 사실은 고령층, 그러니까 80대에 도전하셨거든요. 그런데 이게 특히 해외 예능 투어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굉장히 힘듭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서도 가장 체력이 훌륭하셨고 추진력도 보였고 전체적으로 아울렀던 그런 역할들을 해 주셨습니다.
[앵커]
그래서 직진순재라는 별명도 있었잖아요.
[김헌식]
직진순재라는 그런 별명이 있었고 이게 또 그 뒤에 연작 시리즈가 있거든요. 그런데 그 연작 시리즈도 제작진이 만들겠다고 한 게 아니고 이순재 선생께서 우리 같이 모아서 다시 한 번 도전해 보자 그래서 다시 스핀오프 시리즈가 나온 그런 상황도 나영석 PD가 밝힌 바가 있었습니다.
[앵커]
앞서서 평론가께서 고인이 후배들을 잘 챙겼다고 말씀해 주셨는데 석좌교수로도 재직을 하면서 후배 양성에도 힘쓰셨더라고요.
[김헌식]
그렇습니다. 그래서 가천대에서 연기예술학과 석좌교수로 재직을 했고요. 그런데 최근에 미안한 감정도 표현했었습니다. 왜냐하면 사실은 연기예술학과 같은 경우는 졸업발표를 하기도 하고 또 학기 발표를 하게 되는데 일정상 다 지도하지도 못하고 그래서 미안하다 이렇게 얘기를 했고요. 또 학생들 같은 경우는 구순 나이에 너무 열정적이고 눈빛이 살아 있으셔서 오히려 놀랐다 이런 표현도 했었어요. 그리고 발인날 또 제자들이 아마 관을 들 것으로 알려지고 있기 때문에 끝까지 후배들을 챙겼던 모습들, 이런 부분들도 결국에는 귀감이 된다 이렇게 볼 수가 있겠습니다.
[앵커]
2008년에 모친상을 당했을 때도 연극 무대에 오르면서 관객과의 약속이기 때문에 무슨 일이 있어도 공연을 해야 한다, 이런 말하지 않았습니까?
[김헌식]
그렇습니다. 2010년부터 사실은 연극무대에서 후배들과 함께 공연을 했습니다. 더군다나 태연 씨도 있었고 샤이니 멤버들도 있었습니다마는 아이돌과 함께하는 연극, 그래서 이게 무슨 말씀이냐면 사실 뮤지컬계 같은 경우에도 시아준수 때문에 중흥을 했던 측면이 했어요. 그러니까 연극계가 좀 어려운데 그런 때일수록 대중적인 그런 아이돌 그룹과 같이 하게 되고 젊은층과 같이 하게 되면 연극의 가치를 좀 더 공유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런 차원에서 연극을 좀 더 많은 관객들, 국민들이 봐줬으면 좋겠다. 그 연장선상에서 약속과 신뢰를 굉장히 평소에 중요하게 생각하셨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 있어서 끝까지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을 많이 하셨다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원칙과 소신, 이런 것들이 굉장히 중요하고 사실은 그동안에 제가 개인적으로 생각했을 때는 건강이 많이 안 좋으셨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활동들을 하셨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 속마음을 보면 굉장히 힘드셨음에도 불구하고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혹은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또 연극의 중흥을 위해서 노력을 많이 하시려고 노력했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앵커]
그런데 고인은 연기활동만 한 건 아니고 국회의원으로서도 활동도 했잖아요.
[김헌식]
14대 국회의원을 지내면서 민자당 부대변인도 하셨는데요. 사실은 예술계에 있다 보면 문화예술이 진흥돼야 하는데 그게 좀 미흡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꽤 있습니다. 그런 부분에서 문화예술 정책 이런 것들을 생각하셔서 입후보를 하셨고 몸담기도 하셨습니다마는 연기자들이 현실 정치에서 입지를 펴기에는 좀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에 사실은 오래 하지 않으시고 아마 결심을 하시고 국회의원직은 떠나신 게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고 그 뒤에는 오롯이 연기 생활, 문화예술 활동에 전념하신 것을 확인할 수가 있겠습니다.
[앵커]
고인의 명복을 빌면서 오늘 마무리하겠습니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였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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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연 : 김헌식 대중문화 평론가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인용 시 [YTN 뉴스PLUS] 명시해주시기 바랍니다.
[앵커]
현역 최고령 배우로대중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원로배우 이순재 씨가향년 91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대중문화사에 한 획을 그었던고인의 연기 인생을 김헌식 대중문화 평론가와 짚어봅니다. 어서 오십시오. 오늘 아침에 많은 분들께서 이 소식 듣고 놀라셨을 것 같습니다. 최근에 위독하다는 소식이 전해진 적이 없거든요.
[김헌식]
그렇습니다. 그래서 작년부터 건강이 안 좋다라는 이야기는 있었지만 갑자기 이렇게 비보가 전해질 줄은 아마 출근길에 많은 분들이 당황하셨을 거라고 생각이 들고요. 그래서 작년 10월달에 고도를 기다리며를 준비하시다가 건강이 좀 좋지 않아서 하차를 한 그런 소식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올해 한국피디대상 시상식에도 좀 나오시는 거 아니냐 했는데 등장하지 않으셔서 건강이 안 좋은 것 같다는 이야기들이 계속 나왔고요. 또 박근형 씨 같은 경우도 지난 8월에 면회를 신청했는데 여러 차례 이순재 선생님께서 응하지 않으셔서 걱정이 많이 됐다 이런 이야기를 했고. 또 백일섭 씨 같은 경우는 오늘 인터뷰를 통해서 건강이 안 좋으시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세상을 떠나시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고 했고 사실 평소에 그런 의지와 또 결기가 굉장히 강하셨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 많은 분들이 오늘 놀라셨던 것 같습니다.
[앵커]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이순재 씨의 사위로 연기했었던 정보석 씨, 3주 전에 병문안을 갔었다고 했는데요. 그때는 어떤 얘기가 나왔습니까?
[김헌식]
정보석 씨가 3주 전에 병문안 갔는데 그때 당시에는 그렇다고 해서 원활하게 대화를 했던 것은 아니고 정보석 씨가 얘기했을 때 거기에 대해서 고개를 끄덕거린다든지 약간의 소극적인 반응을 보이셨던 거죠. 그런데 사실은 3주 전에 이렇게 응하셨던 건 두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죠. 일단 정보석 씨가 시트콤 시리즈에서 같이 워낙 돈독했었고 또 평소에 이순재 선생께서 후배들을 많이 챙기셨어요. 그렇기 때문에 정보석 씨를 만나서 응했던 것 같고요. 그렇지만 잠시 좋아질 수는 있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 아마 소속사에서도 지금 건강 이상 그렇게 심각하지 않다, 그리고 재활하고 있고 복귀 의사가 있다. 이렇게 말했던 맥락이 이때는 그래도 좋아졌을 가능성이 있는데 다만 11월 같은 경우는 환절기이기 때문에 면역력이 굉장히 취약해질 수 있는 상황이어서 그런 점이 작용하지 않았나 이렇게 추측을 해 봅니다.
[앵커]
배우 이순재 씨가 지난해 YTN에 출연하셨는데 그때 당시에도 정정하셨거든요. 연기의 경지에는 끝이 없다고 강조했는데 당시의 목소리 듣고 오겠습니다. 지금 끊임없이 나이 구십이 되도록 끊임없이 계속해서 도전을 하고 노력을 했던 분인데, 이걸 몸소 실천하신 분 아니겠습니까?
[김헌식]
그래서 예전에 함석환 선생님도 그런 말씀을 하셨거든요.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 된 이유가 부족하고 결핍됐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이순재 선생께서도 결핍 그러니까 나는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그걸 채우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하신 부분들이 구순까지 이렇게 오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요. 후배들한테 그런 말씀도 하셨어요. 후배 연기자들이 너무 뜨려고 하는데 뜨려고 하지 말아라. 오히려 자기의 완벽함을 위해서 추구하다 보면 기회가 오고 계기가 된다라는 말씀, 그런 부분들을 쭉 돌아보면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가 있겠고 본인이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서 노력을 하셨다, 구순까지. 이렇게 볼 수가 있겠습니다.
[앵커]
고인을 공식석상에서 마지막으로 봤던 게 지난해 KBS연기대상이었더라고요. 당시에 또 수상소감이 큰 반향을 일으켰는데 오래 살고 보니 이런 날이 온다. 보고 계실 시청자 여러분께 평생 신세 많이 지고 도움 많이 받았다고 말하고 싶다. 구순의 연기자가 한 수상소감으로는 굉장히 겸손한 것 같군요.
[김헌식]
사실 드라마 개소리라고 하는 제목이 듣기는 거북하실 수 있지만 반려동물과 같이 문제 해결을 하는 탐정으로 활약을 하셨습니다. 정말 약간의 보이기 싫은 그런 모습도 보이시면서 연기를 하셔서 정말 투혼 연기다, 이렇게 생각이 드는데요. 이때 수상소감하러 나오시는데 약간 부축을 받고 나오셨어요. 그래서 저때도 몸이 그렇게 완전하시지는 않으시다 이렇게 생각이 들었었는데 거기서 여러분께 평생 신세지고 도움 받았다라는 것은 결국에는 팬들, 시청자들, 국민께 그런 도움을 많이 받은 것을 말씀을 하셨고요. 그리고 사실 우리가 시상식의 의미 같은 경우에도 그 맥락이 뭐냐 하면 60세 넘어가면 아무리 연기를 잘해도 상을 받지 못한다. 왜냐하면 히트작을 중심으로 해서 상을 주다 보니까 젊었을 때 히트작이 나오면 상을 받는데 어느 정도 나이가 지나 면 못 받는데 그렇지만 연기는 연기로 평가해야 한다. 그래서 오래 기다렸더니 기회가 왔다 이런 말씀을 하신 거죠. 그래서 결국에는 우리 사회에서 연기뿐만 아니고 성과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해야 되는지를 연기대상에서 마지막으로 깨달음을 주셨다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앵커]
언젠가 기회가 오겠지 하고 늘 준비하고 있었다, 이렇게 수상소감을 밝히기도 했는데 자다가도 대사가 튀어나올 정도로200분 공연의 방대한 대사량을 석 달 전부터 통째로 외웠다 이렇게도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김헌식]
그러니까 굉장히 사전에 대사 연습을 치밀하게 완벽하게 하시기로 유명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로 시나리오가 됐든 연극 대본 혹은 드라마 대본을 읽고 현장에 가서 한 번도 실수를 하지 않기로 유명하십니다. 그만큼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하는 거고. 또 후배들한테도 그런 말씀을 많이 하셨어요. NG를 내면 안 된다. 안 된다라기보다는 사전에 준비를 그만큼 철저히 해야 된다는 것이고요. 그리고 지금 현재 우리 사회가 고령화 시대로 들어섰지 않습니까? 그래서 구순까지 연기 인생을 보여줬다는 것이 사실은 전 국민에게 굉장히 귀감이 된다 이렇게 볼 수가 있겠고 140여 편의 작품에 출연하셨거든요. 그런데 어떤 때는 한 달에 30편 정도도 하셨다고 그래요. 그래서 특히 예능 하실 때는 중국어, 스페인어 해서 외국어도 굉장히 학습을 많이 하셔서 그냥 단순히 대사를 외우는 게 아니고 끊임없이 공부를 많이 하셨던 부분이다. 그래서 결국에는 실망하지 말고 후배들한테도 말씀하셨던 기회가 올 수밖에 없는 상황. 그리고 지금 우리 사회가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먼저 보여주셨다는 생각이 들고요. 특히 국민들, 팬들에게 원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하셨기 때문에 이런 기회의 의미가 더 각별해 보입니다.
[앵커]
고인의 연기 경력을 살펴보면 입이 떡 벌어질 정도예요. 연기 경력이 70년. 연극 무대로 시작했죠?
[김헌식]
그렇습니다. 그래서 작품을 보고 서울대 철학과 작품임에도 연기자의 길을 가겠다 이렇게 결심하셨고요. 사실 원래는 1956년에 연극 지평선을 너머로 데뷔를 하셨고 그 뒤에 1965년에 TBC 1기로 전속 데뷔를 하십니다. 사실 우리가 예전에는 연극배우가 드라마배우로 되게 되면 약간 지탄을 받기도 했었어요. 그리고 사실 연극 발성이 남아서 드라마 배우로 가게 되면 좀 적응을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순재 선생께서는 드라마와 연극, 정극의 차이를 너무나도 잘 아셨고 또 나중에 시트콤과 예능의 차이를 잘 아셔서 그에 맞춰서 활동을 많이 하시니까 그때마다 이렇게 좋은 반응을 얻으셨다. 그만큼 많이 연구하시고 또 거기에 맞춰서 대중성을 높였다 이렇게 생각을 할 수가 있겠고요. 특히 사극과 일일드라마, 주말드라마에서도 아버지 역할 혹은 스승의 역할을 잘 보여주었던 그런 배우로도 기억할 수 있겠습니다.
[앵커]
아까 한 달에 30편 넘는 작품에 출연한 적도 있다고 말씀해 주셨는데 지금 고인의 출연작이 모든 매체를 합치면 약 425편에 달한다 이런 얘기가 있던데요.
[김헌식]
왜냐하면 그건 단역으로 출연한 것까지 말씀드리겠고 140편은 주요 배역만 했던 작품들만 이렇게 볼 수가 있기 때문에 대부분 예전에 보면 주연배우급들은 주연작만 찾는데 이순재 선생은 가리지 않고 연기의 폭을 넓히셨다 이렇게 볼 수가 있겠습니다.
[앵커]
그러면 국민배우로 입지를 굳히게 된 건 어떤 계기라고 봐야 합니까?
[김헌식]
아무래도 국민이라고 하는 것은 결과적으로는 연극만 해서는 곤란할 것 같고요. 아무래도 매스미디어 시대, 대중문화 시대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라고 하는 대중적인 드라마로 볼 수가 있는데 이게 시청률이 65%를 기록하기도 했고 중국에서는 한류의 시초이기도 합니다. 그때 당시에는 CCTV를 통해서 방영이 됐습니다. 그래서 중국 정부가 깜짝 놀랐던 적이 있어요. 왜냐하면 중국 국민들이 너무나 좋아했기 때문에 한국의 콘텐츠에 대한 위력을 실감하게 했던 그런 측면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류 열풍의, 드라마 열풍의 시초였던 작품으로 국민배우가 됐고 아시아에서도 각인을 시켰다라는 생각이 들고요. 그뒤에 목욕탕집 남자들에서도 가부장적인, 그러면서도 약간 속이 깊은 그런 아버지의 역할들을 계속해 왔습니다.
[앵커]
가부장적이면서 속이 깊은 아버지, 시트콤으로도 보여주셨어요.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그때가 70세가 넘어서더라고요.
[김헌식]
70이 넘으셨죠.
[앵커]
그때 아마 젊은 그리고 어린 초등학생들한테도 인기가 많았던 걸로 기억하거든요.
[김헌식]
학생들한테 그 이유를 찾아보면 뭐냐 하면 야동순재라는 단어 때문이었는데요. 그 장면이 사실은 야한 동영상을 일부러 보는 그런 게 아니고 우연한 상황 때문에 그렇게 몰려가는 상황이어서 웃음을 줬습니다. 그때 당시에는 그 장면이 너무 재미있으니까 초등학생들도 많이 좋아했던 거고요. 사실은 70대 나이에 이렇게 시트콤으로 새로운 모습을 보인다는 게 쉽지가 않았기 때문에 그만큼 언제나 변화하고 시도하고 이런 모습들이 좋았고 너무 반응이 좋았기 때문에 그 뒤에 이렇게 여러 시리즈가 연출됐었고요. 그리고 그게 원동력이 돼서 나중에 예능 프로그램에도 출연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사실은 이때 하이킥 시리즈 같은 경우에 지금도 10대, 20대들이 찾아 보는 시트콤이에요. 지금은 시트콤이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이제 세대를 넘어서서 굉장히 시트콤의 전설을 만드셨다. 이렇게 볼 수가 있겠습니다.
[앵커]
지금 말씀하신 대로 시트콤에서 코믹연기에도 도전을 했고 또 예능 출연도 했었고 연출까지 직접 맡았다면서요?
[김헌식]
그렇습니다. 연출 같은 경우에는 사실은 연극으로 돌아가셔서 연극의 연출을 맡으신 거죠. 사실 대중적으로 많이 활동하신다 하더라도 연극에 토대를 두신 분들은 연극을 떠나지 않으십니다. 사실은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요. 첫 번째는 모든 극의 중심은 혹은 토대는 연극일 수밖에 없는 것이고요. 그리고 두 번째는 아무래도 연극이라는 것은 관객과 직접적으로 대면하지 않습니까? 거기서 오는 감흥이나 정서 같은 경우는 배제할 수 없는 측면이 있거든요. 더더군다나 언제나 배우만이 아니고 직접 연출을 하심으로써 결과적으로는 마지막 퍼즐을 완성했다. 이렇게 볼 수가 있겠고 예능 같은 경우에 사실은 고령층, 그러니까 80대에 도전하셨거든요. 그런데 이게 특히 해외 예능 투어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굉장히 힘듭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서도 가장 체력이 훌륭하셨고 추진력도 보였고 전체적으로 아울렀던 그런 역할들을 해 주셨습니다.
[앵커]
그래서 직진순재라는 별명도 있었잖아요.
[김헌식]
직진순재라는 그런 별명이 있었고 이게 또 그 뒤에 연작 시리즈가 있거든요. 그런데 그 연작 시리즈도 제작진이 만들겠다고 한 게 아니고 이순재 선생께서 우리 같이 모아서 다시 한 번 도전해 보자 그래서 다시 스핀오프 시리즈가 나온 그런 상황도 나영석 PD가 밝힌 바가 있었습니다.
[앵커]
앞서서 평론가께서 고인이 후배들을 잘 챙겼다고 말씀해 주셨는데 석좌교수로도 재직을 하면서 후배 양성에도 힘쓰셨더라고요.
[김헌식]
그렇습니다. 그래서 가천대에서 연기예술학과 석좌교수로 재직을 했고요. 그런데 최근에 미안한 감정도 표현했었습니다. 왜냐하면 사실은 연기예술학과 같은 경우는 졸업발표를 하기도 하고 또 학기 발표를 하게 되는데 일정상 다 지도하지도 못하고 그래서 미안하다 이렇게 얘기를 했고요. 또 학생들 같은 경우는 구순 나이에 너무 열정적이고 눈빛이 살아 있으셔서 오히려 놀랐다 이런 표현도 했었어요. 그리고 발인날 또 제자들이 아마 관을 들 것으로 알려지고 있기 때문에 끝까지 후배들을 챙겼던 모습들, 이런 부분들도 결국에는 귀감이 된다 이렇게 볼 수가 있겠습니다.
[앵커]
2008년에 모친상을 당했을 때도 연극 무대에 오르면서 관객과의 약속이기 때문에 무슨 일이 있어도 공연을 해야 한다, 이런 말하지 않았습니까?
[김헌식]
그렇습니다. 2010년부터 사실은 연극무대에서 후배들과 함께 공연을 했습니다. 더군다나 태연 씨도 있었고 샤이니 멤버들도 있었습니다마는 아이돌과 함께하는 연극, 그래서 이게 무슨 말씀이냐면 사실 뮤지컬계 같은 경우에도 시아준수 때문에 중흥을 했던 측면이 했어요. 그러니까 연극계가 좀 어려운데 그런 때일수록 대중적인 그런 아이돌 그룹과 같이 하게 되고 젊은층과 같이 하게 되면 연극의 가치를 좀 더 공유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런 차원에서 연극을 좀 더 많은 관객들, 국민들이 봐줬으면 좋겠다. 그 연장선상에서 약속과 신뢰를 굉장히 평소에 중요하게 생각하셨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 있어서 끝까지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을 많이 하셨다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원칙과 소신, 이런 것들이 굉장히 중요하고 사실은 그동안에 제가 개인적으로 생각했을 때는 건강이 많이 안 좋으셨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활동들을 하셨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 속마음을 보면 굉장히 힘드셨음에도 불구하고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혹은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또 연극의 중흥을 위해서 노력을 많이 하시려고 노력했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앵커]
그런데 고인은 연기활동만 한 건 아니고 국회의원으로서도 활동도 했잖아요.
[김헌식]
14대 국회의원을 지내면서 민자당 부대변인도 하셨는데요. 사실은 예술계에 있다 보면 문화예술이 진흥돼야 하는데 그게 좀 미흡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꽤 있습니다. 그런 부분에서 문화예술 정책 이런 것들을 생각하셔서 입후보를 하셨고 몸담기도 하셨습니다마는 연기자들이 현실 정치에서 입지를 펴기에는 좀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에 사실은 오래 하지 않으시고 아마 결심을 하시고 국회의원직은 떠나신 게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고 그 뒤에는 오롯이 연기 생활, 문화예술 활동에 전념하신 것을 확인할 수가 있겠습니다.
[앵커]
고인의 명복을 빌면서 오늘 마무리하겠습니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였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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