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적 폭언·모욕에 극단선택한 '압구정 아파트 경비원', 산재인정에도 보상금은 '0?'

반복적 폭언·모욕에 극단선택한 '압구정 아파트 경비원', 산재인정에도 보상금은 '0?'

2025.10.31. 오전 0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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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 : FM 94.5 (06:40~06:55, 12:40~12:55, 19:40~19:55)
■ 방송일 : 2025년 10월 31일 (금)
■ 진행 : 이원화 변호사
■ 대담 : 이동연 변호사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를 바랍니다



◆이원화: ‘강남 땅에는 악마가 산다’, 50대 남성 이 씨의 장례식에서 그의 오랜 친구가 추모사로 남긴 말입니다. 강남 땅에는 악마가 산다니, 도대체 무슨 뜻으로 한 이야기였을까요? 용역업체 소속으로 당시 53살이던 이 씨는 압구정동의 한 아파트에 배정돼 경비원으로 일하게 됐습니다. 의욕도 있었고 무엇보다 성실했죠. 그런데 근무 시작 한 달여 만에 이 씨는 우울증 진단을 받게 됐습니다.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그 원인은 바로 해당 아파트에 살던 한 입주민의 반복되는 모욕과 폭언이었다고 하죠. 이 씨는 병가를 내고 근무지 변경도 요청했지만 회사 측에선 오히려 사직을 권하기도 했다고 알려졌죠. 그렇게 매일 같이 반복되던 입주민의 폭언과 모욕, 결국 이 씨는 극단적 선택을 하고야 말았습니다. 이른바 ‘압구정동 아파트 경비원 분신 사건’이라 불리며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이 사건이 발생한 지도 어느덧 11년이 지났습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과연 이 씨의 비극적 사건 이후 경비원들의 처우는 조금이라도 나아졌을까요? 아파트 경비원을 대상으로 한 입주민들의 갑질이 언론에서 보도될 때마다 예방책이 논의되곤 합니다만 왜 현실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 걸까요? 어떤 법적 맹점이 있는 건지 오늘 사건의 X파일에서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사건의 X파일 이원화입니다. 오늘은 로엘 법무법인 이동연 변호사와 함께합니다. 변호사님 어서 오세요.

◇이동연: 안녕하세요. 로엘 법무법인의 이동연 변호사입니다.

◆이원화: 사건이 불거졌을 당시 우리 사회가 정말 떠들썩했던 기억이 나는데요. 서울 압구정동의 한 아파트에서 근무하던 경비원이 입주민의 갑질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이었습니다. 근무를 시작한 지 석 달 남짓이었다고 하죠. 도대체 어떤 일들이 있었던 건가요?

◇이동연: 2014년 7월 당시 53세였던 경비원 이만수 씨는 서울 압구정동 신현대 아파트에 배치되었습니다. 그런데 배치된 곳이 문제였습니다. 한 입주민의 악명 높은 괴롭힘 때문에 다른 경비원들이 모두 기피하던 곳이었거든요. 해당 입주민은 경비원을 머슴처럼 대했습니다. 분리수거를 제대로 못한다며 질타하고 화장실을 다녀오면 왜 자리를 비우냐 따졌습니다. 심지어는 5층에서 상한 음식을 화단으로 던지면서 ‘이거나 먹어’라고도 했습니다. 이런 괴롭힘이 세 달 동안 지속되면서 이 씨는 배치 한 달 만에 중증의 우울증 진단을 받고 결국 2014년 10월 7일 아침 30분간 욕설을 듣고 난 뒤 극단적인 선택을 했습니다. 이 씨는 그날부터 한 달 정도 투병하다가 11월 7일에 숨졌습니다.

◆이원화: 아파트에서 직접 고용한 형태가 아니라 용역업체를 통해 파견된 형태였고요. 그래서 경비원 이 씨가 이 업체 측에 근무지를 옮겨 달라 이런 요청도 여러 번 했던 모양이던데요?

◇이동연: 네, 맞습니다. 이 씨는 너무 힘들어서 경비팀장에게 다른 동으로 배치해 달라 여러 차례 요청했습니다. 병가도 신청했고요. 그런데 관리회사 경비팀의 반응은 충격적이었습니다. 병가는 무급이고 힘들면 일단 권고 사직해라. 연말에 자리가 생기면 받아주겠다 오히려 그만두라고 한 거죠. 근무지를 옮겨주는 게 아니라 사직을 권유했습니다. 결국 이 씨는 중증의 우울증을 겪으면서도 괴롭힘을 참고 일할 수밖에 없었던 거죠.

◆이원화: 누가 봐도 명백한 피해 상황인데 업체가 이렇게 노동자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 것 이것도 혹시 법적으로 문제 삼을 만한 부분이 있나요?

◇이동연: 당연히 문제 삼을 수 있습니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고인이 근무하는 동안 입주민으로부터 심한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을 관리회사가 알았으면서도 이를 방치했다 라고 하면서 사용자의 근로계약상 보호 의무 위반이라고 명확히 판시했습니다. 즉 이 씨가 입주민의 괴롭힘으로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으니 근무지를 옮겨 달라라고 요청했을 때 관리 회사는 근무 부서를 변경하거나 다른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오히려 사직을 권유했으니 명백한 보호 의무 위반이라는 것입니다.

◆이원화: 폭언과 모욕에 시달리던 경비원 이 씨. 많은 분들이 회복을 바랐습니다만 끝내 병원에서 숨을 거두고 말았는데 이 씨를 괴롭혔던 입주민 이 사람은 제대로 된 사과를 하고 본인의 잘못을 인정했을지 이것도 궁금합니다. 어땠나요?

◇이동연: 처음에는 빈소를 찾아와 사과했다라고 알려졌지만 실상은 달랐습니다. 가해 입주민은 자기가 아무런 잘못을 하지 않았다, 사과할 이유도 없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더 충격적인 건, 해당 입주민이 소장 부본을 송달받지 않으려고 계속 거부했다는 것입니다. 집행관이 야간 특별 송달을 시도했지만 화를 내면서 받지 않겠다라고 거부했고 다시는 오지 말라고도 했다고 합니다. 결국에는 재판 과정에서 본인의 잘못을 인정하기는 했지만요. 본인 명의로 된 재산이 아무것도 없어서 배상을 실질적으로 할 수 없다 이렇게 버텼습니다. 진정성 있는 반성이라고 보기는 어렵겠죠. 물론 법원은 관리회사와 해당 입주민의 공동 불법 행위 책임을 인정했습니다.

◆이원화: 이런 사건이 발생한 경우에는 아파트 측에도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거 아닌가 싶은데요, 어떻습니까?

◇이동연: 도의적인 책임은 명백하겠지만 법적인 책임은 모호한 상황입니다. 당시 시행되던 공동주택관리법 제65조 제6항은 입주자뿐만 아니라 입주자 대표 회의, 그리고 관리 주체도 근로자에게 업무 이외에 부당한 지시를 하거나 명령해서는 안 된다라고 규정하고 있었지만 강제할 수단은 없었고요. 해당 아파트는 관리업체에 관리 사무를 위탁하고 있었기 때문에 법적인 책임을 묻기는 어려웠습니다. 실제로 해당 입주자 대표회의는 처음부터 한 주민의 개인적인 문제이지 입주자 대표회의와 아무런 관계가 없으니 사과해야 할 이유도 없다라고 주장했고, 대표 회장도 이미 아파트 주민들이 조문도 했고, 성금도 전달했으니 할 만큼 했다 이런 반응을 보였습니다. 심지어는 사건 이후 해당 관리회사와 계약을 연장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바람에 경비원들이 전원 해고될 위기에 처해서 더 큰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원화: 혹시 자칫 잘못 사과를 했다가 보상이라든지 법적인 문제가 생길 것을 우려해서 사과를 안 한 측면도 있을까요? 흔히들 사고가 났다고 해서 함부로 사과 먼저 해서는 안 된다 이런 이야기들 하고 하잖아요. 실제 사과가 법적 불이익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겁니까?

◇이동연: 이 부분은 많은 분들이 오해하시는 부분인데요. 명확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진심 어린 사과 자체가 법적인 책임을 인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모든 책임을 인정한다처럼 구체적인 법적 책임을 인정하는 듯한 표현은 나중에 소송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겠지만 정말 안타깝고 유감이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처럼 인간적인 위로와 애도의 표현은 법적인 책임의 인정과는 별개입니다. 오히려 책임 소재가 명확한 경우에는 진심 어린 사과가 법원의 판결에 긍정적으로 고려되는 경우가 많으니 사과를 안 하는 것이 법적으로 반드시 유리하다 이렇게 볼 수도 없겠습니다.

◆이원화: 산재 인정은 됐나요?

◇이동연: 네, 근로복지공단은 이 씨가 업무 중 입주민과의 심한 갈등과 스트레스로 인해 기존의 우울증이 악화되었으며 정상적인 인식 능력이 떨어져 분신을 시도했다라고 판단하면서 산업재해를 인정했습니다. 그전까지는 근로자의 자살을 산재로 인정한 사례가 거의 전무했기 때문에 의미 있는 결정이라고 볼 수 있겠죠.

◆이원화: 그런데 보통 산재가 인정되면 보상금이 나온다라고 알고 계시지만 이 사건의 유족들은 한 푼도 못 받았다고 알고 있거든요. 이건 왜 그런 겁니까?

◇이동연: 해당 부분도 많은 분들이 오해하시는 포인트인데요. 산재가 인정되더라도 정신적 손해에 대한 배상 그러니까 위자료는 산재 보험 범위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산재보험은 치료비, 휴업 급여, 장애급여, 유족급여 등을 지급하지만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는 별도로 가해자나 사용자를 상대로 민사 소송을 통해서 청구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 씨의 유족들도 가해 입주민과 관리회사를 상대로 별도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진행했습니다. 산재 승인만으로는 유족들의 정신적 고통에 대한 손해배상을 전혀 받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원화: 재판 결과는 어땠죠?

◇이동연: 앞에서 짧게 설명 드렸었는데요. 해당 입주민의 경우 유족들에게 2,500만 원을 지급하라는 내용의 강제조정 결정이 내려져서 확정되었고요. 관리회사의 경우에는 본인들이 예측할 수 없는 사고였다. 주의의무 위반이 아니고 개인적인 지병으로 자살한 것이다라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관리회사의 보호 의무 위반에 따른 책임을 인정해서 유족에게 총 2,5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고 확정되었습니다. 물론 위자료가 너무 적은 것 아니냐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가해 입주민뿐만 아니라 사용자에게도 책임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의미는 있겠습니다. 지금까지 법원은 자살 사고에 대해서 사용자의 책임을 거의 인정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원화: 네. 사건 직후 경비원에 대한 입주민들의 갑질, 폭언, 폭행이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고 예방책들도 여럿 나왔던 걸로 기억하거든요. 어떤 것들이 있었죠?

◇이동연: 사건 이후 여러 예방책들이 나왔지만 아무래도 강제력이 부족해서 실효성도 크지 않았습니다. 2021년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을 개정하면서 경비원의 업무 범위를 구체화해서 업무 이외에 부당한 지시가 무엇인지 명시했고요. 2023년에는 감정노동자 보호법이라고 불리는 산업안전보건법 제41조가 경비원에게도 적용되도록 했습니다. 폭언 같은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 사용자에게 필요한 조치를 요구할 수 있고 사용자는 이를 이유로 부당하게 해고할 수 없도록 한 것이죠. 하지만 아직도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사용자가 위반했을 때 실질적인 제재 수단, 그러니까 과태료나 형사 처벌 조항이 없다는 것이죠. 물론 현실적인 문제도 있는 게요. 경비원들은 보통 3개월 단위로 계약하기 때문에 고용이 불안한 상황에서는 권리를 제대로 행사할 수 없던 것입니다.

◆이원화: 그래서인지 사건이 발생한 지 11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습니다만 현장에서 일하는 경비원들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고 하거든요. 사건도 제법 많이 있었죠.

◇이동연: 네, 안타깝게도 경비원 갑질 사건은 계속 반복되고 있습니다. 폭언, 폭행부터 상해, 그로 인한 자살 사고 등 심각한 사건은 끊이질 않고 있고요. 전기료 아까우니 선풍기도 쓰지 말라는 경우, 90도 인사를 시키는 경우, 날짜 지난 음식을 주고 먹으라고 하는 경우, 고소한다고 협박하는 경우 등 일상적인 갑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근로복지공단 통계를 보면요. 2024년 1년 동안 경비원이 폭언과 폭행, 업무상 사고 등으로 산업재해를 인정받은 사례가 4,984건으로 집계되었고, 2025년에는 5천 건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됩니다. 고용 불안 때문에 신고를 꺼리는 경향을 감안한다면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산됩니다.

◆이원화: 사람의 인격을 짓밟는 폭력 갑질 이젠 좀 그만 봤으면 좋겠는데, 만일 이런 유사한 사건을 겪게 된다면 피해자는 어떤 걸 증거로 남겨야 하고 어떻게 대응하면 좋을지 끝으로 말씀 한번 부탁드릴게요.

◇이동연: 당연히 그런 일은 당하시지 않는 게 가장 좋겠지만요. 실제로 피해가 발생했을 때 당황하시지 않도록 몇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가장 먼저 현장을 비추는 CCTV 녹음 파일 이런 객관적인 자료를 확보하시는 것이 필요하겠습니다. 폭행이 있었다면 반드시 병원 치료를 받으시고 맞은 부위를 사진으로 촬영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폭언을 들었다면 녹음 파일이 없다면 정신과를 방문하셔서 입주민으로부터 폭언을 들어 힘들고 불안하다 이런 내용이 진단서에 기재되면 좋겠죠. 문자나 통화 녹음을 통해서 관리업체나 입주자, 대표회의, 경찰 등에 공식적으로 피해 사실을 신고한 내역을 남기시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이원화: 네, 사건 X파일. 오늘 저희가 준비한 내용은 여기까지입니다. 여러분은 모두 변호 받아 마땅한 사람들입니다. 사건 X파일 여러분 고맙습니다.


YTN 김양원 (newsfm0945@ytnradi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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