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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 : FM 94.5 (06:40~06:55, 12:40~12:55, 19:40~19:55)
■ 방송일 : 2025년 9월 12일 (금)
■ 진행 : 이원화 변호사
■ 대담 : 김동현 변호사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를 바랍니다.
◆ 이원화 변호사(이하 이원화) : 정 씨는 컴퓨터에 익숙하지 않은 그저 평범한 중년 남성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날의 사건 이후 정 씨는 달라졌죠. 아니 달라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이야 많은 분들이 컴퓨터 사용이 익숙하다지만 정 씨가 떠듬떠듬 배워가던 그때는 1998년이었습니다. 그러니 컴퓨터를 둘러싼 환경이 지금과 같진 않았던 것이죠. 그렇게 열심히 배우며 이제야 조금 익숙해졌다는 정 씨. 하지만 산 너머 산이었습니다. 이번엔 이전까지만 해도 들을 일도 쓸 일도 없던 낯설고 어려운 법률 용어들이 그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하지만 정 씨는 포기하지 않았죠. 왜 그랬을까요? 그 집념의 시작은 그날 밤 걸려온 한 통의 전화 때문이었습니다. 대구에서 채소 가게를 운영하던 정 씨에게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예쁜 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학교 축제에 간 줄 알았던 딸이 병원에 있다는 경찰에 전화를 받게 됐죠. 곧장 하던 일을 멈추고 병원으로 달려갔지만 딸은 이미 싸늘한 주검이 되어 있었습니다. 경찰은 그날의 사건을 단순 교통사고로 결론지었지만 정 씨 생각은 달랐습니다. 정 씨는 자신의 딸이 교통사고가 아닌 살인 사건의 피해자라고 생각했죠. 그리고 그 믿음을 입증하기 위해 컴퓨터와 법률 용어를 익혔던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그날의 진실은 뭐였을까요? 오늘 사건X파일에서 사건의 전말 추적해 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사건X파일 이원화입니다. 오늘도 로엘 법무법인 김동현 변호사와 함께합니다. 변호사님 어서 오세요.
◇ 김동현 변호사(이하 김동현) : 안녕하세요. 로엘 법무법인 김동현 변호사입니다.
◆ 이원화 : 요즘 같으면 사건이 이렇게 처리된다는 걸 상상도 할 수 없는 그런 사건 아니었나 싶거든요. 어떤 일이 있었던 건지 차근히 짚어보죠.
◇ 김동현 : 1998년 대구에서 채소 가게를 운영하며 네 자녀를 뒷바라지하던 정현조 씨에게는 자랑스러운 딸 정은희 양이 있었습니다. 은희 양은 계명대학교 간호학과 1학년에 재학 중인 전교 1,2등을 놓치지 않았던 딸이었던 거죠. 그러던 1998년 10월 17일 새벽 정 씨는 딸이 병원에 있다는 경찰 전화를 받게 됩니다. 하던 일을 멈추고 아내와 함께 병원으로 달려갔지만 딸은 이미 싸늘한 주검이 되어 있었습니다.
◆ 이원화 :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 김동현 : 당시 은희 양은 그날 새벽 5시 10분경 구마고속도로 하행선 7.7Km 지점에서 23톤 트럭에 치여 숨진 채 발견되었습니다. 덤프트럭 운전기사는 은희 양이 갑자기 차로 뛰어들었다고 진술했으며, 경찰은 이를 단순 교통사고로 결론 지었습니다.
◆ 이원화 : 그런데 단순 교통사고라고 보기엔 석연치 않은 점들이 있다. 유족 측에서 문제 제기를 했다면서요.
◇ 김동현 : 정 씨는 경찰의 결론에 강하게 항의했습니다. 석연치 않은 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차가 급정거했다면 반드시 남았어야 할 스키드마크가 현장에 없었습니다. 또한 23톤 덤프트럭에 치여 사망했는데도 내부 장기 파열이 없었습니다. 사고가 난 곳은 은희 양의 집과 정반대이며 학교에서도 약 7Km 떨어진 곳으로 주변에 공장들뿐인 외진 곳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은희 양이 새벽 시간에 그곳에 있었던 이유 자체가 가족들에게는 의문이었습니다. 사고 전날인 10월 16일 은희 양은 학교 축제에 참석해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가 밤 10시 40분쯤 남자친구 박 모 씨와 학교를 떠난 것이 마지막 행적이었습니다. 이후 다음 날 새벽 5시 10분 사고 발생까지 6시간 30분 가량의 행적이 불분명했습니다. 가족들은 이 기간 동안 딸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무엇보다 은희 양의 시신에는 속옷이 없었고, 이후 사고 현장에서 약 30미터 떨어진 풀밭에서 고인의 속옷이 발견되었습니다.
◆ 이원화 : 속옷이요? 근데 만약 사망한 여대생이 발견 당시 속옷이 없었다 라고 하면 단순 교통사고일 수도 있지만 뭐 다른 가능성, 그러니까 성폭행을 당했다든지 다른 범죄의 가능성도 열어놨어야 하는 거 아닌가 싶거든요. 당시에 어땠습니까?
◇ 김동현 : 가족들은 은희 양이 성폭행을 당했거나 성폭행 후 살해당한 뒤 교통사고로 위장 조작된 것이라고 강간 살인 사건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특히 시신에 속옷이 없었고 현장에서 속옷이 발견된 점은 성범죄 가능성을 시사했죠. 하지만 경찰은 수사 초기부터 다른 가능성을 배제했으며 가족들이 찾아다니는 속옷이 그 딸일 것이라고 주장하자 고속도로에 가면 버려진 팬티가 많다. 젊은 여자가 입는 속옷이 아니다, 아줌마 팬티인 것 같다는 황당한 주장을 하며 감정을 미뤘습니다. 그러나 은희 양의 쌍둥이 여동생은 언니와 똑같은 팬티를 선물받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분명히 따를 것이 맞다고 증언했습니다. 경찰은 사건 발생 5개월 만에야 국과수에 속옷 감정을 의뢰했습니다. 그 결과 은희 양의 속옷에서 정액 양성 반응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경찰은 시료 오염 가능성을 들며 속옷이 은희 양의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주장을 했습니다.
◆ 이원화 : 난 경찰의 주장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닙니다. 그런데 그러니까 더욱더 유전자 검사를 해 봤으면 되는 거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드는 거거든요. 검사를 하면 끝날 일인 거잖아요.
◇ 김동현 : 그래서 정 씨는 딸의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컴퓨터를 배워 인터넷에 글을 올리고 청와대 등 정부 기관에 60여 차례 진정 탄원서를 제출하는 등 끈질긴 노력을 이어갔습니다. 결국 경찰은 은희 양이 숨진 지 1년 8개월 만인 지난 2000년 6월에야 국과수의 속옷에 대한 유전자 검사를 의뢰했고, 그 결과 속옷이 은희 양의 것이 맞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은희 양 주변 인물들의 DNA를 채, 이 과정에서 은희 양 주변 인물들의 DNA를 채취해 속옷에서 나온 DNA와 대조했지만 일치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가족들은 경찰이 초동 수사에서 성범죄 가능성을 열어두고 다른 증거물들을 확보했다면 사건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 이원화 : 당시 아버님께서 재수사를 요청하면서 청와대나 정부 기관에 진정서, 탄원서만 60차례 넘게 제출했다 하더라고요. 그런데 변호사님 잘 아시겠지만 법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일반인들이 재수사니 고소장이니 진정서, 탄원서 이런 거 작성하는 거 이거 만만치 않은 일이잖아요.
◇ 김동현 : 네 법률에 익숙하지 않은 일반인이 고소장, 진정서, 탄원서 등을 직접 작성하고 제출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특히 정 씨는 1998년 당시 컴퓨터 사용에도 익숙지 않은 평범한 중년 남성이었습니다. 그러나 딸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기 위해 컴퓨터를 배우고 법률 용어를 익히며 수백여 장의 고소 고발장을 직접 작성하는 등 상상 이상의 노력과 집념을 보여주었습니다. 하지만 매번 혐의 없음, 공람 종결, 각하 기각 등의 답변만 돌아왔죠.
◆ 이원화 : 아무튼 그래서 결국 그대로 상황이 끝나버린 건가요?
◇ 김동현 : 아니요. 그렇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끈질긴 싸움은 계속 이어졌고, 사건 발생 15년째 되던 해인 2013년 드디어 전환점을 맞게 됩니다. 검찰이 은희 양의 속옷에서 발견된 DNA의 주인을 찾았다고 발표한 것이죠.
◆ 이원화 : DNA가 일치하는 사람 누구였습니까?
◇ 김동현 : DNA의 주인은 스리랑카인 K 씨였습니다. K 씨는 미성년자 성매매 혐의로 입건되어 채취된 DNA가 은희 양의 속옷에 묻어 있던 정액의 DNA와 일치했던 것입니다. 검찰은 K 씨와 또 다른 스리랑카인 2명이 은희 양을 집단 성폭행한 뒤 도망치던 은희 양이 고속도로로 들어갔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사망한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 이원화 : 그런데 본인은 내가 그런 거 아니다. 극구 부인했던 모양이던데요.
◇ 김동현 : 네 K 씨는 재판에 넘겨졌지만 본인은 범행을 극구 부인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1심과 2심에서 잇따라 무죄가 선고되고 2017년 7월 대법원에서도 무죄가 확정되었습니다. 이는 증거 부족 등의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특히 검찰이 내세운 스리랑카인 증인의 진술이 15년 전의 일이라 기억에만 의존하는 등 신빙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이었습니다. 스리랑카 법정에서도 기소되었으나 DNA가 피해자 몸이 아닌 속옷에서 발견된 점, 강압적인 성행위, 추가 증거 부족 등의 이유로 역시 무죄가 선고되었습니다.
◆ 이원화 : 직접 살인을 저질렀다 볼 만한 증거가 없으니 살인죄 적용도 힘들었을 거고, 특수강간으로도 힘들었던 건가요?
◇ 김동현 : 네 맞습니다. 직접적인 살인의 증거가 부족했기 때문에 살인죄를 적용하기 어려웠습니다. 강간죄는 당시 법률상 공소시효가 5년, 특수강간은 10년으로 이미 만료된 상태였습니다. 이에 검찰은 공소시효가 15년인 특수강도 강간 혐의를 적용하여 K 씨를 기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K 씨 등이 은희 양의 현금과 학생증을 빼앗았다는 진술에 근거한 것이었죠. 하지만 법원에서는 강도 혐의를 입증할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습니다. 15년이나 지난 일이라 강도 범행에 대한 증거가 불명확했고, 목격자의 진술도 신빙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결국 특수강도 강간 혐의에 대해서는 증거 부족으로 무죄가 선고되었고, 특수강도, 특수강간, 강도 강간 혐의는 이미 공소시효가 경과되어 면소 판결을 받았습니다. 이후 K 씨는 스리랑카로 강제 추방되었고, 한국 검찰의 노력으로 스리랑카 법정에서도 재판받았으나 현지 법원에서도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가 선고되었습니다.
◆ 이원화 : 그러면 범인은 잡았는데 처벌은 할 수 없는 그런 상황이 돼버린 거네요.
◇ 김동현 : 네 결과적으로 범인의 DNA는 확인되었지만 법적인 처벌은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이 된 것입니다. 하지만 피해자 은희 양의 아버지 정 씨는 스리랑카인 K 씨가 진범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딸을 죽음에 이르게 한 범인은 따로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 제시된 K 씨의 범행 시나리오는 은희 양의 6시간 행적을 완전히 설명하지 못하고, 검찰은 K 씨 등이 은희 양을 자전거에 태워 굴다리까지 이동했다고 주장하는데, 7Km 거리를 술 취한 은희 양을 태우고 가는 것은 상식적으로 어렵고, 만약 죽은 사람이 태웠다면 누군가 보았을 것이라는 의문이 있습니다. 그리고 3명이 집단 성폭행을 했다고 하는데 정액은 왜 하나만 나왔는지에 대한 의문도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습니다. 또한 정 씨는 은희 양이 교통사고 이전에 이미 사망했고, 그 사망을 은폐하기 위해 교통사고로 위장 조작했을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습니다.
◆ 이원화 : 만약에 그게 사실이라고 하면, 그리고 용의자가 잡힌다고 하면 법정에 세울 수 있는 겁니까? 공소시효 문제라든지 증거 부족은 여전한 상황 아닌가요?
◇ 김동현 : 만약 새로운 용의자가 잡힌다고 해도 사건 발생 27년이 지난 지금은 공소시효 문제로 여전히 큰 걸림돌이 될 수 있습니다. 비록 태완이법으로 살인죄의 공소시효가 폐지되었지만 이 사건은 특수강도 강간 혐의가 적용되었고 정 양이 차에 치여 숨졌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또한 오래된 사건인 만큼 증거 확보의 어려움과 증인의 기억이 불확실하다는 문제점도 여전히 존재합니다. 진실이 밝혀지더라도 법적 처벌까지 이어지는 것은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 씨 아버님은 딸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고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남은 인생을 걸고 싸움을 이어나가고 계십니다. 딸의 6시간 동안 행적과 진실이 밝혀져야만 한이 풀릴 것이라는 아버지의 절규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 이원화 : 네 사건X파일 오늘 저희가 준비한 내용은 여기까지입니다. 여러분은 모두 변호 받아 마땅한 사람들입니다. 사건X파일 여러분 고맙습니다.
YTN 김양원 (newsfm0945@ytnradio.kr)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
■ 방송일 : 2025년 9월 12일 (금)
■ 진행 : 이원화 변호사
■ 대담 : 김동현 변호사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를 바랍니다.
◆ 이원화 변호사(이하 이원화) : 정 씨는 컴퓨터에 익숙하지 않은 그저 평범한 중년 남성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날의 사건 이후 정 씨는 달라졌죠. 아니 달라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이야 많은 분들이 컴퓨터 사용이 익숙하다지만 정 씨가 떠듬떠듬 배워가던 그때는 1998년이었습니다. 그러니 컴퓨터를 둘러싼 환경이 지금과 같진 않았던 것이죠. 그렇게 열심히 배우며 이제야 조금 익숙해졌다는 정 씨. 하지만 산 너머 산이었습니다. 이번엔 이전까지만 해도 들을 일도 쓸 일도 없던 낯설고 어려운 법률 용어들이 그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하지만 정 씨는 포기하지 않았죠. 왜 그랬을까요? 그 집념의 시작은 그날 밤 걸려온 한 통의 전화 때문이었습니다. 대구에서 채소 가게를 운영하던 정 씨에게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예쁜 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학교 축제에 간 줄 알았던 딸이 병원에 있다는 경찰에 전화를 받게 됐죠. 곧장 하던 일을 멈추고 병원으로 달려갔지만 딸은 이미 싸늘한 주검이 되어 있었습니다. 경찰은 그날의 사건을 단순 교통사고로 결론지었지만 정 씨 생각은 달랐습니다. 정 씨는 자신의 딸이 교통사고가 아닌 살인 사건의 피해자라고 생각했죠. 그리고 그 믿음을 입증하기 위해 컴퓨터와 법률 용어를 익혔던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그날의 진실은 뭐였을까요? 오늘 사건X파일에서 사건의 전말 추적해 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사건X파일 이원화입니다. 오늘도 로엘 법무법인 김동현 변호사와 함께합니다. 변호사님 어서 오세요.
◇ 김동현 변호사(이하 김동현) : 안녕하세요. 로엘 법무법인 김동현 변호사입니다.
◆ 이원화 : 요즘 같으면 사건이 이렇게 처리된다는 걸 상상도 할 수 없는 그런 사건 아니었나 싶거든요. 어떤 일이 있었던 건지 차근히 짚어보죠.
◇ 김동현 : 1998년 대구에서 채소 가게를 운영하며 네 자녀를 뒷바라지하던 정현조 씨에게는 자랑스러운 딸 정은희 양이 있었습니다. 은희 양은 계명대학교 간호학과 1학년에 재학 중인 전교 1,2등을 놓치지 않았던 딸이었던 거죠. 그러던 1998년 10월 17일 새벽 정 씨는 딸이 병원에 있다는 경찰 전화를 받게 됩니다. 하던 일을 멈추고 아내와 함께 병원으로 달려갔지만 딸은 이미 싸늘한 주검이 되어 있었습니다.
◆ 이원화 :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 김동현 : 당시 은희 양은 그날 새벽 5시 10분경 구마고속도로 하행선 7.7Km 지점에서 23톤 트럭에 치여 숨진 채 발견되었습니다. 덤프트럭 운전기사는 은희 양이 갑자기 차로 뛰어들었다고 진술했으며, 경찰은 이를 단순 교통사고로 결론 지었습니다.
◆ 이원화 : 그런데 단순 교통사고라고 보기엔 석연치 않은 점들이 있다. 유족 측에서 문제 제기를 했다면서요.
◇ 김동현 : 정 씨는 경찰의 결론에 강하게 항의했습니다. 석연치 않은 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차가 급정거했다면 반드시 남았어야 할 스키드마크가 현장에 없었습니다. 또한 23톤 덤프트럭에 치여 사망했는데도 내부 장기 파열이 없었습니다. 사고가 난 곳은 은희 양의 집과 정반대이며 학교에서도 약 7Km 떨어진 곳으로 주변에 공장들뿐인 외진 곳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은희 양이 새벽 시간에 그곳에 있었던 이유 자체가 가족들에게는 의문이었습니다. 사고 전날인 10월 16일 은희 양은 학교 축제에 참석해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가 밤 10시 40분쯤 남자친구 박 모 씨와 학교를 떠난 것이 마지막 행적이었습니다. 이후 다음 날 새벽 5시 10분 사고 발생까지 6시간 30분 가량의 행적이 불분명했습니다. 가족들은 이 기간 동안 딸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무엇보다 은희 양의 시신에는 속옷이 없었고, 이후 사고 현장에서 약 30미터 떨어진 풀밭에서 고인의 속옷이 발견되었습니다.
◆ 이원화 : 속옷이요? 근데 만약 사망한 여대생이 발견 당시 속옷이 없었다 라고 하면 단순 교통사고일 수도 있지만 뭐 다른 가능성, 그러니까 성폭행을 당했다든지 다른 범죄의 가능성도 열어놨어야 하는 거 아닌가 싶거든요. 당시에 어땠습니까?
◇ 김동현 : 가족들은 은희 양이 성폭행을 당했거나 성폭행 후 살해당한 뒤 교통사고로 위장 조작된 것이라고 강간 살인 사건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특히 시신에 속옷이 없었고 현장에서 속옷이 발견된 점은 성범죄 가능성을 시사했죠. 하지만 경찰은 수사 초기부터 다른 가능성을 배제했으며 가족들이 찾아다니는 속옷이 그 딸일 것이라고 주장하자 고속도로에 가면 버려진 팬티가 많다. 젊은 여자가 입는 속옷이 아니다, 아줌마 팬티인 것 같다는 황당한 주장을 하며 감정을 미뤘습니다. 그러나 은희 양의 쌍둥이 여동생은 언니와 똑같은 팬티를 선물받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분명히 따를 것이 맞다고 증언했습니다. 경찰은 사건 발생 5개월 만에야 국과수에 속옷 감정을 의뢰했습니다. 그 결과 은희 양의 속옷에서 정액 양성 반응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경찰은 시료 오염 가능성을 들며 속옷이 은희 양의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주장을 했습니다.
◆ 이원화 : 난 경찰의 주장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닙니다. 그런데 그러니까 더욱더 유전자 검사를 해 봤으면 되는 거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드는 거거든요. 검사를 하면 끝날 일인 거잖아요.
◇ 김동현 : 그래서 정 씨는 딸의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컴퓨터를 배워 인터넷에 글을 올리고 청와대 등 정부 기관에 60여 차례 진정 탄원서를 제출하는 등 끈질긴 노력을 이어갔습니다. 결국 경찰은 은희 양이 숨진 지 1년 8개월 만인 지난 2000년 6월에야 국과수의 속옷에 대한 유전자 검사를 의뢰했고, 그 결과 속옷이 은희 양의 것이 맞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은희 양 주변 인물들의 DNA를 채, 이 과정에서 은희 양 주변 인물들의 DNA를 채취해 속옷에서 나온 DNA와 대조했지만 일치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가족들은 경찰이 초동 수사에서 성범죄 가능성을 열어두고 다른 증거물들을 확보했다면 사건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 이원화 : 당시 아버님께서 재수사를 요청하면서 청와대나 정부 기관에 진정서, 탄원서만 60차례 넘게 제출했다 하더라고요. 그런데 변호사님 잘 아시겠지만 법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일반인들이 재수사니 고소장이니 진정서, 탄원서 이런 거 작성하는 거 이거 만만치 않은 일이잖아요.
◇ 김동현 : 네 법률에 익숙하지 않은 일반인이 고소장, 진정서, 탄원서 등을 직접 작성하고 제출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특히 정 씨는 1998년 당시 컴퓨터 사용에도 익숙지 않은 평범한 중년 남성이었습니다. 그러나 딸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기 위해 컴퓨터를 배우고 법률 용어를 익히며 수백여 장의 고소 고발장을 직접 작성하는 등 상상 이상의 노력과 집념을 보여주었습니다. 하지만 매번 혐의 없음, 공람 종결, 각하 기각 등의 답변만 돌아왔죠.
◆ 이원화 : 아무튼 그래서 결국 그대로 상황이 끝나버린 건가요?
◇ 김동현 : 아니요. 그렇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끈질긴 싸움은 계속 이어졌고, 사건 발생 15년째 되던 해인 2013년 드디어 전환점을 맞게 됩니다. 검찰이 은희 양의 속옷에서 발견된 DNA의 주인을 찾았다고 발표한 것이죠.
◆ 이원화 : DNA가 일치하는 사람 누구였습니까?
◇ 김동현 : DNA의 주인은 스리랑카인 K 씨였습니다. K 씨는 미성년자 성매매 혐의로 입건되어 채취된 DNA가 은희 양의 속옷에 묻어 있던 정액의 DNA와 일치했던 것입니다. 검찰은 K 씨와 또 다른 스리랑카인 2명이 은희 양을 집단 성폭행한 뒤 도망치던 은희 양이 고속도로로 들어갔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사망한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 이원화 : 그런데 본인은 내가 그런 거 아니다. 극구 부인했던 모양이던데요.
◇ 김동현 : 네 K 씨는 재판에 넘겨졌지만 본인은 범행을 극구 부인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1심과 2심에서 잇따라 무죄가 선고되고 2017년 7월 대법원에서도 무죄가 확정되었습니다. 이는 증거 부족 등의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특히 검찰이 내세운 스리랑카인 증인의 진술이 15년 전의 일이라 기억에만 의존하는 등 신빙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이었습니다. 스리랑카 법정에서도 기소되었으나 DNA가 피해자 몸이 아닌 속옷에서 발견된 점, 강압적인 성행위, 추가 증거 부족 등의 이유로 역시 무죄가 선고되었습니다.
◆ 이원화 : 직접 살인을 저질렀다 볼 만한 증거가 없으니 살인죄 적용도 힘들었을 거고, 특수강간으로도 힘들었던 건가요?
◇ 김동현 : 네 맞습니다. 직접적인 살인의 증거가 부족했기 때문에 살인죄를 적용하기 어려웠습니다. 강간죄는 당시 법률상 공소시효가 5년, 특수강간은 10년으로 이미 만료된 상태였습니다. 이에 검찰은 공소시효가 15년인 특수강도 강간 혐의를 적용하여 K 씨를 기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K 씨 등이 은희 양의 현금과 학생증을 빼앗았다는 진술에 근거한 것이었죠. 하지만 법원에서는 강도 혐의를 입증할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습니다. 15년이나 지난 일이라 강도 범행에 대한 증거가 불명확했고, 목격자의 진술도 신빙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결국 특수강도 강간 혐의에 대해서는 증거 부족으로 무죄가 선고되었고, 특수강도, 특수강간, 강도 강간 혐의는 이미 공소시효가 경과되어 면소 판결을 받았습니다. 이후 K 씨는 스리랑카로 강제 추방되었고, 한국 검찰의 노력으로 스리랑카 법정에서도 재판받았으나 현지 법원에서도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가 선고되었습니다.
◆ 이원화 : 그러면 범인은 잡았는데 처벌은 할 수 없는 그런 상황이 돼버린 거네요.
◇ 김동현 : 네 결과적으로 범인의 DNA는 확인되었지만 법적인 처벌은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이 된 것입니다. 하지만 피해자 은희 양의 아버지 정 씨는 스리랑카인 K 씨가 진범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딸을 죽음에 이르게 한 범인은 따로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 제시된 K 씨의 범행 시나리오는 은희 양의 6시간 행적을 완전히 설명하지 못하고, 검찰은 K 씨 등이 은희 양을 자전거에 태워 굴다리까지 이동했다고 주장하는데, 7Km 거리를 술 취한 은희 양을 태우고 가는 것은 상식적으로 어렵고, 만약 죽은 사람이 태웠다면 누군가 보았을 것이라는 의문이 있습니다. 그리고 3명이 집단 성폭행을 했다고 하는데 정액은 왜 하나만 나왔는지에 대한 의문도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습니다. 또한 정 씨는 은희 양이 교통사고 이전에 이미 사망했고, 그 사망을 은폐하기 위해 교통사고로 위장 조작했을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습니다.
◆ 이원화 : 만약에 그게 사실이라고 하면, 그리고 용의자가 잡힌다고 하면 법정에 세울 수 있는 겁니까? 공소시효 문제라든지 증거 부족은 여전한 상황 아닌가요?
◇ 김동현 : 만약 새로운 용의자가 잡힌다고 해도 사건 발생 27년이 지난 지금은 공소시효 문제로 여전히 큰 걸림돌이 될 수 있습니다. 비록 태완이법으로 살인죄의 공소시효가 폐지되었지만 이 사건은 특수강도 강간 혐의가 적용되었고 정 양이 차에 치여 숨졌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또한 오래된 사건인 만큼 증거 확보의 어려움과 증인의 기억이 불확실하다는 문제점도 여전히 존재합니다. 진실이 밝혀지더라도 법적 처벌까지 이어지는 것은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 씨 아버님은 딸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고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남은 인생을 걸고 싸움을 이어나가고 계십니다. 딸의 6시간 동안 행적과 진실이 밝혀져야만 한이 풀릴 것이라는 아버지의 절규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 이원화 : 네 사건X파일 오늘 저희가 준비한 내용은 여기까지입니다. 여러분은 모두 변호 받아 마땅한 사람들입니다. 사건X파일 여러분 고맙습니다.
YTN 김양원 (newsfm0945@ytnradi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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