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만요] 세이브더칠드런 오준, "아이들이 아무 것도 안 하고 놀 권리 지켜줘야"

[잠시만요] 세이브더칠드런 오준, "아이들이 아무 것도 안 하고 놀 권리 지켜줘야"

2025.07.09. 오후 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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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만요]

■ 방송 : YTN 라디오 FM 94.5 (20:20~21:00)
■ 날짜 : 2025년 7월 6일 (일요일)
■ 진행 : 김영민 아나운서
■ 대담 : 세이브더칠드런 이사장 오준 (前 UN대사)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내용 인용 시 YTN라디오 <이성규의 행복한 쉼표, 잠시만요> 인터뷰 내용임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 김영민 아나운서(이하 김영민) : "행복한 어린이만이 행복한 어른이 될 수 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세상에는 행복해지고 싶어도 마음껏 웃지 못하는 아이들이 아직도 너무나 많은데요. 오늘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에서는 아이들이 웃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애쓰는 분 모셨습니다. 국제아동권리기관 세이브 더 칠드런 코리아의 이사장이자, 전 유엔 대사이자,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외교관이셨던 오준 이사장님 만나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사장님, 어서 오십시오.

◇ 세이브더칠드런 이사장 오준(이하 오준) : 네. 안녕하세요.

◆ 김영민 : 반갑습니다. 간단하게 청취자분들께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 오준 : 세이브 더 칠드런 이사장 오준입니다. 제가 과거에는 외교관이었는데. 그때는 UN 대사, 싱가포르 대사 이런 활동도 했습니다.

◆ 김영민 : 네. 사실 워낙.. 뭐랄까요? 이력이 화려하셔서. 오늘 인터뷰하는 동안 너무 많은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이 방송에 임하시는 소감, 간단하게 한 말씀 부탁드릴까요?

◇ 오준 : 아주 좋은 방송에 저를 초청해 주셔서 너무 감사하고요. 그런데 이 코너 이름이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해서. 저는 이 콘셉트가 이게 코믹인가 이렇게 생각을 했는데. 진지한 프로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 김영민 : 꽤나 진지합니다. 가끔 유머를 던져주셔도 제가 재미있게 받도록 할 테니까요. 너무 이 콘셉트에 구애받지 마시고 편하게 말씀 나눠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사실 세이브더칠드럼 모르시는 분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워낙에 유명한 단체이지만. 그래도 이사장님의 말을 빌려서 어떤 단체인지 알게 되면 더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떤 곳인가요?

◇ 오준 : '세이브 더 칠드런(Save the Children)'라는 이름이 뜻하는 것처럼 "아이들을 구하라" 이런 이름이잖아요? 그래서 그 이름처럼 세계에서 최초로 시작된 아동 권리 국제기관입니다. 그래서 1919년에 영국의 에글렌타인 젭(Eglantyne Jebb) 여사라는 분이 만들었고요. 그때가 1차 대전이 끝난 직후라서. 1차 대전에서 이제 패전국인 독일이나 오스트리아의 아이들이 많은 고통을 받는 것을 보고.. 아이들은 우리 인류의 미래이니까. 국적, 종교, 문화 등 이런 것과 무관하게 무조건 아이들은 보호하자는 그런 취지에서 만들었고요. 그동안에 세이브 더 칠드런이 만들어진지 106년이 되었는데요. 여러 가지 아동 권리에 관한 활동에서는 가장 역사가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합니다.

◆ 김영민 : 네. 우리나라에 세이브 더 칠드런이 들어온 지는 얼마나 되었을까요?

◇ 오준 : 우리나라도 역시 아까 제가 처음 말씀드린 것처럼 이제 전쟁이 끝난 후에 그 아이들이 당한 고통과 참상을 보고 만든 기관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에도 역시 한국 전쟁 중에 1953년에 국제 세이브 더 칠드런이 들어왔고. 한국 세이브 더 칠드런이 이제 다른 나라를 도와주기 시작한 건 1990년대서부터라고 봐야겠습니다.

◆ 김영민 : 사실 그 세이브 더 칠드런을 말씀하신 것처럼, 정말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고 현존하는 NGO 중에서 가장 오래된 곳이기도 한데. 그러다 보니 이제는 전 세계 여러 나라의 세이브 더 칠드런이 있을 것 같은데요. 얼마나 많은 국가에 있습니까?

◇ 오준 : 전 세계 29개국에 세이브 더 칠드런이 있어서요. 말하자면 모금도 하고, 이제 세이브 더 칠드런 회원국이죠. 회원국이 29개가 있고요. 그다음에 사업을 하는. 그러니까 도와주는 사업하는 국가는 한 114개국. 그러니까 전 세계 대부분의 개발 도상국에서 사업을 하고 있다고 봐야 되겠습니다.

◆ 김영민 : 네. 그런데 이 많은 국가들 중에 "도움을 받던 나라에서 도움을 주는 나라가 된 건 우리나라밖에 없다" 이런 얘기를 제가 들었거든요. 맞나요?

◇ 오준 : 네. 맞습니다. 사실은 세이브 더 칠드런만이 아니고요. 우리나라가 이제 1990년대 OECD 선진국 클럽이라고 하는 OECD에 가입하고, 그 전까지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이제 원조를 주는 나라로 변신했잖아요? 사실 국제사회에서 그런 예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하기 때문에. 역시 NGO 중에서도 이렇게 도움을 받다가 도움을 주는 그런 전환을 한 경우는 거의 유일하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 김영민 : 네 그럼 지금 세이브 더 칠드런에서 한국의 위상이 어느 정도일까요?궁금한데요.

◇ 오준 : 29개국의 세이브 더 칠드런 중에서 한국의 규모로 봤을 때. 예산이나 규모로 봤을 때는 한 8위 정도 됩니다.

◆ 김영민 : 8위요?

◇ 오준 : 여덟 번째니까. 상당히 높은 거죠.

◆ 김영민 : 그렇군요. 지금 이사장님께서도 세이브 더 칠드런 국제연맹의 이사로 선임됐다라는 얘기를 들었는데. 구체적으로 그럼 어떤 역할을 하시게 되는 건가요? 굉장히 바쁘실 것 같은데요.

◇ 오준 : 국제 연맹은 이제 세이브 더 칠드런이 원래 영국에서 생겼지만, 지금 29개국. 그러니까 대부분의 선진국에 있기 때문에 그런 세이브 더 칠드런의 글로벌한 사업. 전 세계 사업 이런 것들을 국제이사회가 논의하고, 결정도 하고, 그렇게 하는데요. 재작년의 경우 전 세계 세이브 더 칠드런의 사업을 다 이제 합쳤을 때, 한 30억 달러. 미국 달러로 30억 달러 정도 규모이니까요. 거의 우리나라의 해외 ODA 공적개발 원조 규모와 비슷하다 이렇게 봐야 되겠죠.

◆ 김영민 : 그렇군요. 이렇게 많은 일을 하고, 전 세계 곳곳에서 세이브 더 칠드런이 아동의 권리를 위해서 힘쓰고 있는데요. 그런데 사실 아동의 권리라는 개념이 딱 들었을 때, 우리가 아는 것 같으면서도 정확하게 설명하기는 좀 어려운 개념이거든요. 쉽게 풀었을 때, 아동의 권리는 어떤 건가요?

◇ 오준 : 사실 이제 아동도 다른 예를 들어서 여성, 장애인, 난민 등 이런 다른 사회적 약자나 마찬가지로 이제 아동도 사회적 약자로 봐야 하거든요. 사람은 누구나 아동이었지만. 인생의 한 시기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른이 돼서 이제 아동을 대할 때는 자기가 아동이었다는 거는 이제 잊어버리고. 어떤 때는 아동 학대도 있고, 그다음에 또 아동이 어른들에게 의존하잖아요?

◆ 김영민 : 그렇죠.

◇ 오준 : 그러다 보니까.. 아동을 어떤 권리를 가진 주체로 보기보다는 "아, 쟤네들은 항상 어른에게 의존하고, 어른이 도와줘야만 살 수 있으니까. 어른 말을 잘 듣고 어른들이 성장하라는 대로만 성장하면 된다" 이런 그런 개념을 갖기 쉽잖아요? 그런데 그런 것들이 이제 20세기에 들어와서는 모든 사회적 약자를 권리의 주체로 봐야 한다. 아동뿐 아니고, 여성이나 장애인도 마찬가지인데요. 다른 사회 구성원보다 힘이 없고. 또는 다른 사회 구성원에 의존하더라도 그들이 권리를 가진 동등한 인권을 가진 주체로서 보아야 한다 하는 개념인데요. 그러니까 아동 권리의 개념이 1919년 그 에글렌타인 젭(Eglantyne Jebb) 여사에 의해서 처음 나왔고. 그 당시에는 국제연맹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국제연맹이 1923년에 세계 아동 권리 선언을 했고. 그것이 나중에 발전해서 그 UN 유엔이 만들어진 후에는 1989년에 아동권리 협약이라는 형태로 발전한 거죠.

◆ 김영민 : 사람은 누구나, 어떤 위치에 있든 권리를 가지고. 그리고 특히 이 아동의 권리라는 것이 지켜지는 것이 어려운 상황이 많기 때문에 세이브 더 칠드런은 언제나 아동의 권리를 위해서 일을 하고 있다라는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이사장님께서도 이 세이브 더 칠드런을 이끌고 계신 게 벌써 7년이 다 되어간다라고 들었습니다. 7년이라는 시간이면, 사실 정말 많은 일을 겪으셨을 것 같거든요. 가장 보람찼던 순간이나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요?

◇ 오준 : 국제적인 활동에서는 저는 이제 제가 2년 전에 방글라데시의 '콕스 바자'라는 곳에 있는 로힝야 난민촌에. 거의 세계에서 제일 큰 난민 캠프인데요. 100만 명이나 되는 난민이 있으니까요. 그곳에 가서, 거기서 태어나서 바깥 세계를 한 번도 보지 못한 그런 아동들을 만나고. 그들이 생활하는 것. 그들이 생각하는 것들을 봤을 때, 저도 많이 배웠고. 또 저에게도 많은 교훈이 됐습니다. 국내적으로는 우리나라는 선진국이니까 그런 식의 아동이 생존하기가 어려운 그런 문제는 좀 지났다고 봐야 되는데요. 그러나 여러 가지 다른 선진국형 아동 문제들이 있거든요? 아동 학대도 있고. 그래서 저희 세이브 더 칠드런은 오랫동안 체벌 금지. 그러니까 저희가 "사랑의 매는 없습니다" 하는 그 구호로 체벌 금지 캠페인을 했는데. 이것이 5년 전에 그 민법 개정으로 이어져서 이제 모든 형태의 체벌이 금지됐거든요?

◇ 오준 : 그래서 그런 거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일이었고요. 최근에는 세이브 더 칠드런이 그 '아동 사망 검토 제도'라는 거를 열심히 캠페인하고 있습니다.

◆ 김영민 : 어떤 거죠?

◇ 오준 : 그거는 무슨 말인가 하면요. 아동이라는 건 국제적으로 18세 이하의 모든 인간이거든요. 그래서 아동이 사망했을 때는 그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라는 전문가의 검토가 필요하다. 선진국들은 그렇게 하고 있고요. 우리나라의 경우 한 해에 한 1,700명 정도의 아동 사망이 있는데요.

◆ 김영민 : 생각보다 많네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 오준 : 그래서 어떤 때는 그게 이제 사고에 의한 사망이니까, "상황이 분명하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거든요? 아동 청소년들의 자살도 있고요. 여러 가지 원인에 또 아동 학대도 있고요. 그래서 그런 아동 사망은 그 한 건, 한 건을 전부 우리가 진지하게 검토해야 된다는 그런 제도입니다. 그래서 그런 걸 우리가 법제화해야 된다는 캠페인을 하고 있습니다.

◆ 김영민 : 이렇게 아동의 권리를 위해서 다양한 캠페인을 진행하시고. 그런 것이 실제 세상을 바꾸는 것을 목격하셨을 때 굉장히 뿌듯함을 많이 느끼셨을 것 같아요. 저도 그 감정을 함께 느끼게 되는데요. 사실 우리나라는 이제 어느 정도 선진국의 궤도에 올랐다라고 볼 수가 있잖아요? 겉으로는 굉장히 풍요롭고, 평화롭고, 민주적으로 보이나. 일부 아동 빈곤, 학대. 아니면 요즘 굉장히 이슈로 떠오르는 돌봄 공백에 대한 문제도 존재합니다. 우리 대한민국 사회가 아동, 어린이를 위해서 시급하게 가장 해결해야 되는 과제가 한 가지가 있다면. 뭐가 있을까요?

◇ 오준 : 방금 우리 김영민 아나운서님이 말씀하신 아동 학대 문제는 사실 중요한 문제인데요. 그런데 이제 우리가 지난 한 10년 사이에는 아동 학대에 대한 인식이 높아져서.. 과거에는 신고가 되지 않던 것들도 이제 신고가 되고.

◆ 김영민 : 맞습니다.

◇ 오준 : 또 사람들도 "아동 학대가 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하는 거, 인식이 많아진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그 분야는 좀 진전이 있다고 생각하고요. 오히려 진전이 없는 분야는 아동의 행복도 조사 이런 거를 보면.. 우리나라가 항상 전 세계에서 하위권에 있거든요? 그런데 우리가 잘 사는 선진국인데도 왜 아동의 행복도가 하위권일까? 이제 이렇게 생각해 보면.. 가장 큰 이유가 한마디로 얘기한다면.. 아이들이 지나친 교육 경쟁 속에서 놀거나 쉴 수 있는 시간이 없다. 이게 가장 큰 문제이거든요. 그래서 아동권리 협약에는 이제 '놀 권리'라는 말이 있습니다. 영어로 Right To Play인데요. 이 이야기를 하면 어떤 분들은, "아. 애들이 놀지를 않으니까. 좀 쉬고 놀게 하라고 그렇게 얘기하시는 거죠? 그런 권리도 있어요?"그러는데. 그런 권리 진짜 있습니다.

◆ 김영민 : 그렇군요. 저도 처음 알았어요.

◇ 오준 : UN 아동권리협약 31조이고요. Right To Play라는 게 있는데. 그러니까 아이들을 놀게 하는 거는 어른들이.. "자. 이제부터 노는 시간이야. 너, 내가 하는 대로 따라해." 하는 거는 노는 게 아니고요. 아동권리 협약이 말하는 놀 권리는 "가만 놔둬라. 아이들이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게." 입니다. 그런 시간이 충분히 확보돼야 되는데. 우리나라는 아마 그런 놀 권리에 있어서는 가장 부족한 나라 중에 포함된다고 생각합니다.

◆ 김영민 : 사실 부모님들은 사랑과 애정을 담아서 아이들을 교육시키는 것이겠으나.. 그게 일부 아이들의 '놀 권리'를 침해하는 결과로 나타날 수 있다라는 사실을 지적해 주셨습니다.

◇ 오준 : 부모님들의 입장에서는 "우리 사회가 그렇게 경쟁이 치열한 사회이니까. 너를 앞으로.. 네가 성장해서 이 사회에서 잘 살아가려면 이렇게 할 수밖에 없다" 하는 이제 그런 어떤 사명감 같은 게 있으시겠죠? 그러니까 사실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이기도 한데. 우리 사회 자체가 변해야 되는 거죠. 그렇게 지나치게 경쟁적이고. 학교에서는 공부를 잘하는 것만이 최상의 미덕이고. 그렇게 해서 좋은 대학 가야 되고. 좋은 직업을 가져야 되고. 이런 치열한 경쟁적인 구도를 어떻게 우리가 변화시켜서.. 물론 경쟁은 있어야 되지만.. 경쟁에서 좀 뒤떨어지거나 패하더라도, 행복한 삶을 사는 길이 막히는 건 아니다. 그런 사회를 우리가 만들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아동만의 문제는 아니고, 이제 사회 전체의 문제와 연관된 거라고 생각합니다.

◆ 김영민 : 맞습니다. "아이 하나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 이 얘기가 갑자기 생각이 나는데. 한 아이가 행복하게 지내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가 전체적으로 바뀔 필요가 좀 있어 보이기도 합니다. YTN 라디오 행복한 쉼표 잠시만요. 지금 세이브 더 칠드런의 오준 이사장님. 전 UN 대사인 오준 이사장님과 함께 이야기 나누고 있습니다. 저희가 잠시 중간에 끊어가면서 저희가 초대한 게스트분의 추천곡을 듣는 시간을 가지는데요. 이번 추천곡은 혹시 어떤 걸로 준비를 해오셨을까요?

◇ 오준 : 저는 John Lennon의 . 뭐.. 많은 분들이 아는 노래죠.

◆ 김영민 : 너무 명곡이죠.

◇ 오준 : 그 곡을 한번 다시 들어보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 김영민 : 선곡의 이유가 있다면요?

◇ 오준 : 저는 외교관 생활의 한 절반 이상을 미국 뉴욕에서 했거든요? 왜냐하면 이제 UN이 거기 있기 때문에. 그런데 45년 전에 비틀즈의 멤버였던 John Lennon이 뉴욕에서 암살 당했잖아요? 그때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해서 어떤 조각가가 조각을 만들었는데. 그게 영어로는 Twisted Gun. 그러니까 "비틀어진 총"이라는 이름인데요. 총대를, 총구를 이렇게 꼬아놓은 거예요. 아마 보신 분도 많을 것 같은데. 그래서 그걸 뉴욕의 센트럴 파크에 전시했다가.. "이런 좋은 조각은 앞으로 계속 봐야 한다"해서 유엔의 정원에 갖다 놨거든요? 지금도 있습니다. UN을 관광하시는 분들은 거의 보실 것 같은데요. 그래서 저는 그 조각을 볼 때마다 이 John Lennon이 불렀던 이라는 노래가 생각납니다.

◆ 김영민 : Twisted Gun을 상상하면서 함께 노래 감상해 보시죠. John Lennon이 불렀던 듣고 올게요. John Lennon의 함께 하셨습니다. 행복한 쉼표 잠시만요.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국제 아동권리기관 세이브 더 칠드런 코리아의 이사장이자, 전 UN 대사 또 외교관으로 활동하셨던 오준 이사장님 만나 뵙고 있습니다. 앞서서 세이브 더 칠드런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봤는데요. 이제 Part 2로 넘어와서 이사장님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합니다. 굉장히 많은 활동을 해오셨는데. 딱 한 문장으로 정리했을 때. "나는 어떤 사람이다"라고 어떻게 표현하실 수 있을 것 같으세요?

◇ 오준 : 사실 뭐 저에 대해서 얘기할 거리가 많은 사람은 제가 아닌데요. MBTI라고 있잖아요? 그래서 제가 MBTI 검사를 한 번 딱 해봤는데요. 거기에서 나온 결과가, 제가 생각하는 "제가 이런 사람이 되어야 되겠다" 하는 것과 너무 일치하는 거예요. 그래서 "MBTI 이게 엉터리가 아니구나!" 이렇게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는데. 제가 ENTP가 나왔거든요. 그런데 이거는 "보통 권위를 싫어하고, 토론과 도전을 좋아한다" 이렇게 나오는데요.

◆ 김영민 : 맞습니다.

◇ 오준 : 제가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거든요? 저는 모든 인류의 문명이 인간이 동물과 다르게 발달하게 된 것이 "왜?"라는 질문. 모든 것을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왜 그런데?", "왜 이렇게 해야 되는데?", "왜 과거에 하던 걸 그대로 똑같이 해야 되는데?" 이런 질문을 했기 때문에 우리가 발전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그렇게 살려고 노력합니다.

◆ 김영민 : 네. 포털 프로필에도 MBTI를 적어두셨더라고요? 제가 그걸 보고 "어? 같은 사람이다"라는 생각을 했는데. 저도 MBTI가 ENTP거든요.

◇ 오준 : 이거 사실 좀 흔하지 않은 MBTI잖아요?

◆ 김영민 : 맞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동족끼리 만나기가 쉽지 않은데. 저도 굉장히 반갑습니다.

◇ 오준 : 너무 반갑습니다.

◆ 김영민 : ENTP로 앞으로도 계속 살아가실 이사장님. 외교관으로는 무려 38년을 근무하셨다고 들었는데요. 어떻게 외교관이 될 결심을 하셨어요?

◇ 오준 : 사실은 저희 돌아가신 선친도 외교관이셨고요.

◆ 김영민 : 그렇군요.

◇ 오준 : 그런 영향도 좀 받은 것 같고요. 그리고 저는 사실은 대학교 때까지는 언론인이 되려고. 기자가 되려고 생각했는데. 제가 외국어를 이것저것 하니까. 그때는 외무고시라는 게 있었거든요? "외무고시를 치면 쉽게 합격할 거다" 하는 친구들의 꼬임에 빠져서.. 시험을 쳤더니, 한 번에 합격했어요. 그래서 외교관이 되었습니다.

◆ 김영민 : 그러면 언론인이 되지 않고, 외교관이 되신 것을 잘했다라고 생각하시는지?

◇ 오준 : 처음에 한 10년 정도는 후회했는데요. 왜냐하면 공무원은. 뭐.. 외교관이든, 무슨 분야든 공무원은 초기에는 창의적인 일을 하지 못하잖아요? 그래서 "엇.. 이게 내가 살고 싶은 삶이었나?" 이렇게 생각했는데. 나중에는 이제 계급이 올라가고. 국장도 되고, 대사도 되고 하면서부터는 조금 더 융통성이 많아져서.. "그래도 저에게 잘 맞는 일을 했구나" 이렇게 생각합니다.

◆ 김영민 : 네. 만일 언론인이 되셨다면.. 제 높은 선배님이 되셨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또 이렇게 외교관으로 근무를 하시고 나서 방송을 통해서 만나게 되니 반갑습니다. 원래 그렇게 언어를 잘 하셨어요?

◇ 오준 : 저는 대학교는 불문과를 나와서 불어를 했고요. 고등학교 때는 또 독일어를 제2외국어로 전공했거든요? 그래서 영어, 불어, 독일어를 다 조금씩 하다 보니까. 이제 옛날에는 그렇게 하면 외무고시를 치는 데 굉장히 유리했습니다.

◆ 김영민 : 독일어, 불어, 영어, 한국어 그러면.. 4개국어를 나름 편안하게 구사를 하시는 거잖아요? 가장 편안한 언어는..

◇ 오준 : 편안하지는 않고요. 한국어와 영어는 비교적 편안하고, 나머지는 원래는 조금 했었는데. 안 사용하니까 점점 불편해지고 있습니다.

◆ 김영민 : 맞습니다. 사실 언어라는 것이 진짜 굉장히 실무적이고, 사용을 많이 해야지만 그 기능이 유지가 되는 것 같아요. 저도 많이 느끼고는 있는데. 언어에서도 이렇게 특출한 재능을 갖고 있으신 이사장님께서 또 음악에도 일가견이 있으시다. 그리고 아주 멋있게도 드럼을 연주하신다는 얘기를 제가 방송 전에 들었습니다. 자랑 좀 해주시죠!

◇ 오준 : 저는 드럼 연주를 음악이라고 생각하는데. 어떤 분들은 "드럼이 그게 음악인가? 막 신나서 하는 거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도 있는 것 같은데요. 제가 대학교 때 밴드에서 드럼을 연주하게 됐는데. 그것도 우연히 그랬는데. 나중에 외교관이 된 후에도 UN 대사 시절에는 UN 대사 밴드가 있었고. 외교부에서는 또 음악 동호회가 있어서, 거기서도 연주를 하고. 취미이지만 어쨌든 꾸준히 하는 취미가 됐었죠.

◆ 김영민 : 언제부터 드럼을 하셨어요?

◇ 오준 : 대학교 때니까요. 대학교 1학년 때부터 밴드에서 대학생 밴드가 많잖아요? 옛날에도 많이 있었거든요. 그리고 저희가 대학교 다니던 시절은 이제 Rock 음악. Hard Rock의 시절이거든요? 그래서 그걸 우리가 Woodstock Generation이라고 그러는데. 미국에서 Woodstock이라는 곳에 모여서 많은 사람들이 록 페스티벌을 한 후에 그 비슷한 음악을 하는 사람들을 이제 Woodstock Generation이라고 하는데. 저희 세대가 그런 세대겠죠.

◆ 김영민 : 사실 이 취미에 대한 얘기는 짧게 좀 해달라고 이사장님께서 얘기를 하셨지만. 제가 그냥 궁금해서요. 대학교 때 그 밴드 팀의 드러머로 활약을 하시면서 대회도 나가셨다, 이런 얘기 아까 제가 들었거든요? 구체적으로 얘기해 주신다면요?

◇ 오준 : 아, 그게. 이제 대학 가요제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MBC 대학가요제. 그때는 이 밴드를 보컬이라고 불렀어요. 왜 보컬이라고 했는지 저는 모르겠는데. 보컬은 원래 성악이잖아요? 그런데 전국 대학 보컬 경연대회에 나갔는데.. 당연히 입상은 못 했고, "출전을 했다"라는 것에 의미를 찾았죠.

◆ 김영민 : 아, 정말 대학교 때부터. 저는 그 ENTP들의 성향을 잘 알잖아요? 이렇게 새로운 것을 하고 도전하는 이 모습이 너무 멋있으시다는 생각이 듭니다. 외교관 시절 이야기를 좀 해볼까요? 외교관 시절에는 다양한 현장에서 활동을 하셨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나 현장 있으세요?

◇ 오준 : 아마도 제가 외교관. 특히, UN 대사였던 거를 아시는 분들은 제가 2014년에 UN 안보리 대사로서 최초의 북한 인권 논의에서 북한에 대해서 연설을 하고. "우리 남한 사람들에게 북한 사람들은 아무나가 아니다" 이렇게 영어로 이야기한 것을 많이 기억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때 저는 사실은 우리 국내에 있는 분들이 듣도록 그 얘기를 한 건 아니고. 거기 현장에 나와 있는 다른 나라 외교관에게 하는 이야기였는데. 국내에도.. 특히, 젊은 세대들은 아마도 우리와 북한이 원래 같은 핏줄이고 남이 아니다 라는 것을 평소에는 생각을 못했다가, 새삼스럽게 아마 생각을 하시는 분들이 많지 않았나.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 김영민 : 어느덧 인터뷰를 마무리할 시간이 됐는데요. 이사장님. 마지막으로 청취자분들께 전하고 싶은 말 한마디 있으실까요?

◇ 오준 : 저는 이제 지금은 과거에는 외교관이었지만. 지금은 그런 아동 단체를 포함한 여러 NGO들과 일을 하고 있는데요. 결국 우리 사회에서 누구나 우리가 발전할수록 누구나 좀 더 열린 마음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우리가 다 함께 살아가는 사회다. 경쟁이 치열한 사회 속에서 승자뿐 아니라 패자들도 인간의 존엄성을 누릴 수 있는 그런 사회를 만들어 가야 된다는 생각에 공감하시는 분이 많으면 좋겠습니다.

◆ 김영민 : 네. 오늘 방송을 통해서 열린 마음과 배려, 관심 몇 가지 키워드 가져가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세이브 더 칠드런의 오준 이사장님과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오늘 좋은 말씀 너무 감사합니다.

◇ 오준 : 감사합니다.

◆ 김영민 :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는 YTN 라디오 홈페이지와 유튜브를 통해서 다시 들으실 수 있습니다.

YTN 이은지 (yinzhi@ytnradi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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