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 형무소 찾은 유공자 유족..."윤택하지 못한 삶"

3·1절 형무소 찾은 유공자 유족..."윤택하지 못한 삶"

2024.03.01. 오전 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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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난 지도 벌써 105년이 지났습니다.

그때의 독립운동가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을 수 있는데요,

정작 독립운동가의 후손 중에는 보상금도 받지 못하고 생계에 쪼들리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윤태인 기자가 후손을 만나봤습니다.

[기자]
1919년 일제 치하 때 들불처럼 전국으로 퍼져나갔던 3·1 만세 운동.

그 불길은 당시 경기도 수원군 송산면에 살았던 오광득 씨 마음도 뒤흔들었습니다.

동지들과 만세운동에 나선 오광득 씨는 서대문형무소에 끌려가 6년 동안 옥살이하는 고초를 겪었습니다.

100여 년이 지난 지금, 삼일절을 맞아 손자 오건석 씨가 취재진과 함께 할아버지의 흔적을 찾았습니다.

할아버지가 갇혔던 옥사를 둘러보며 오 씨는 참담함을 감추지 못합니다.

[오건석 / 故 오광득 독립운동가 손자 : 우리 할아버지가 그러시더라고요. 우리나라가 힘이 없어서 내가 옥살이를 했다…. 할아버지는 참 옳게 살고 곧은 분이시다….]

할아버지의 공적을 기리고 나라에 인정받기 위해 손자가 몇 년 동안 애를 쓴 덕분에 오광득 씨는 20년 전 건국훈장 4등급에 빛나는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았습니다.

[오건석 / 故 오광득 독립운동가 손자 : 엄청 좋았죠. 우리 할아버지가 가신 지는 오래되셨어도 이렇게 대통령이 직접 이걸 줬다. 굉장히 기뻤어요.]

하지만 할아버지의 옥살이로 인해 유일한 아들이었던 아버지가 12살 때부터 생업에 뛰어드는 등 독립운동가 자손의 삶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할아버지의 공적을 인정받으려 뛰어다녔던 손자도 윤택하지 못한 삶을 사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유공자 후손으로 인정돼 받는 지원금은 생활지원금 40만 원 남짓에 불과합니다.

[오건석 / 故 오광득 독립운동가 손자 : 번창하지 않고 사업에 실패하고 한 사람이 더 많더라고요. 정부가 더 잘 경제적으로 윤택해지면 좀 제대로 된 보훈급여가 나왔으면 좋겠다….]

금액이 훨씬 큰 정부 보상금도 있지만, 선순위 보훈대상자 가운데 단 한 사람에게만 지급됩니다.

그러다 보니 후손들 사이에 다툼으로 번지는 일도 부지기수입니다.

지원 기준도 까다롭고 규모도 넉넉하지 않은 현실이 아쉽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이상욱 / 독립유공자유족회 이사 : 옛날에 이 독립운동한 분들을 모시고 살았거나 그와 아주 가까운 친척 이분들은 선순위에 들어가면 그나마 다행인데 선순위에 들어가지 못하면 연금을 받을 수가 없어요. 여기서 굉장히 모순이 되고….]

삼일절 105주년을 맞은 지금, 대한민국을 있게 해준 독립투사들과 후손들을 제대로 존중하고 예우하고 있는지 다시 한 번 돌아볼 때입니다.

YTN 윤태인입니다.


촬영기자 : 신홍



YTN 윤태인 (ytaein@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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