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N팩트] 항거 곤란 아니어도 강제추행...대법, 40여년 만에 새 기준 제시

[취재N팩트] 항거 곤란 아니어도 강제추행...대법, 40여년 만에 새 기준 제시

2023.09.22. 오후 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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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전원합의체, 강제추행 기준 새로 제시
A 씨, 10대 사촌동생 강체추행 혐의 2심서 ’무죄’
2심 "피해자 저항 곤란할 정도였다고 단정 못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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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어제(21일) 성범죄 피해자가 폭력이나 협박으로 항거 곤란 상태가 아니더라도 강제추행으로 인정할 수 있다며 처벌 기준을 넓히는 판결을 내놓았습니다.

대법원은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강조한 판결이라고 강조하면서도 다만 '비동의 추행죄'를 인정한 건 아니라고 밝혔는데요.

어떤 내용인지 자세한 판결 취지, 취재기자와 함께 자세히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최민기 기자!

[기자]
네, 대법원입니다.

[앵커]
어제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강제추행죄의 기준을 넓혔죠?

사건과 판결 내용부터 요약해주시죠.

[기자]
네 어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강제추행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 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유죄 취지로 깨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보냈습니다.

먼저 사건부터 간단히 짚겠습니다.

앞서 2014년 8월 15일, 성인 남성 A 씨는 당시 15살이었던 사촌 동생에게 자신의 신체를 강제로 만지게 하고 거부하는 피해자를 쓰러뜨려 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대법 선고에 앞서 2심에서는 A 씨의 물리력 행사 정도가 피해자의 저항을 곤란하게 할 정도였다고 볼 수 없어 강제추행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봤습니다.

폭행이나 협박이 선행되는 강제추행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범죄 요건이 구성돼야 하는데,

그동안은 대법원 기존 판례에 따라 좁은 의미로 한정해 피해자의 저항이 곤란할 정도여야 한다는 점이 증명돼야 했습니다.

그런데 어제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강제추행 범죄에서 피해자를 항거 곤란 상태로 만들 만큼 폭행하거나 협박하지 않더라도,

의사에 반하는 유형력을 행사하거나 공포심을 일으킬 해악 고지 정도면 충분하다는 새로운 기준을 내놓은 겁니다.

이와 같은 판단은 12명 다수 의견이었습니다.

여기서 유형력이라면 피해자가 원치 않는데 강제로 신체를 잡아끄는 정도도 포함될 수 있습니다.

피해자의 항거 곤란을 요구한 기존 판례가 1983년에 나왔는데, 이번 판결로 40여 년 만에 폐기된 겁니다.

[앵커]
대법원의 판결, 어떤 의미가 있는 겁니까.

[기자]
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피해자의 항거 곤란을 요구하는 종래의 판례 법리는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부합하지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강제추행의 보호법익은 피해자의 '정조'가 아닌 헌법에 명시한 '성적 자기결정권'이라는 겁니다.

따라서 이번 판결은 강제추행죄 판단 기준을 '피해자가 어떻게 저항했는지'가 아니라 '가해자가 어떤 행동을 했는지'로 바꾸었다는 데 그 의의가 있습니다.

앞선 기존 판례에 따라서는 가해자의 추행에 피해자가 얼마나 저항했는지를 판단했던 만큼,

피해자가 쉽게 저항하기 어려운 관계이거나 상황일 경우 성폭력 사건에 처벌 공백이 생긴다는 지적도 잇따랐는데요.

이로써 법정에서 피해자가 얼마나 저항했는지를 명백히 따지지 않더라도 가해자의 강제추행을 처벌할 수 있게 범위도 더 넓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앵커]
판결에 대해선 대법관들 의견도 많았다고 하는데 어떤 내용이 거론됐습니까.

[기자]
대법관들 사이에선 강제추행 범죄의 처벌 기준이 완화되면서 과도하게 처벌받는 사례가 나올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습니다.

이동원 대법관은 별개 의견을 남겨 폭행 또는 협박의 정도를 완화할 경우 책임주의 원칙에 반하는 과중한 처벌이 가해질 우려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다수 의견과 같이 무리한 법률해석보다는 '비동의 추행죄' 도입에 관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국회 입법절차를 통해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겁니다.

비동의 추행죄는 상대방의 명시적 동의를 받지 않고 신체 접촉 등을 통해 성적 불쾌감을 야기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것으로 협박과 폭행 등을 수반하는 '강제추행'과는 다른 개념인데요.

이와 관련해 어제 대법원 전원합의체도 이번 판결은 강제추행죄의 '폭행 또는 협박'을 법문 그대로 해석하자는 취지이지,

법 해석만으로 '비동의 추행죄'를 인정하자는 취지는 아니라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다수 의견에 섰던 대법관들 의견도 다소 엇갈렸습니다.

안철상·노태악·천대엽·오석준·서경환 대법관은 다수 의견에 동의한다면서도,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추행 행위인지 면밀히 따지지 않으면 비동의 추행죄와 구별을 모호하게 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반면 민유숙·김선수·오경미 대법관은 다수 의견은 현재 재판 현실과 종래의 판례 법리 사이의 불일치를 해소하려는 것이라며 처벌 범위를 부당하게 넓히려는 것이 아니라고 이를 반박했습니다.

12명 다수 의견이지만 살펴보면 조금씩 엇갈린 견해를 보인 겁니다.

[앵커]
여성계에서도 환영의 입장을 나타내고 있군요.

[기자]
네 그렇습니다.

우선 환영 입장을 나타냈습니다.

여성계는 성인지 감수성 측면에서 진일보한 판결이라며 환영의 뜻을 보였습니다.

특히 피해자의 저항을 요구하다 보니 여성에게 왜 그때 저항하지 않고, 당하고만 있었느냐 같은 2차 가해를 하는 경우도 많았는데요.

여성변호사회 관계자도 가해자 행위에 초점을 맞추는 만큼 이 같은 2차 피해와 함께,

하급심에서 같은 사안을 두고 판사에 따라 달리 판단하는 혼란도 줄어들 것이라는 기대를 나타냈습니다.

또, 최근 물리적 폭력에 국한한 성폭행보다 위계나 심리 지배와 같은 상황에서 벌어진 성폭력 사건이 많은 만큼,

피해자의 저항만으론 상황적 맥락을 고려할 수 없다는 현실이 반영됐다는 지적도 덧붙였습니다.

지금까지 대법원에서 YTN 최민기입니다.


YTN 최민기 (choimk@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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