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곪는다는 '집배원 겸배'...철폐 두고 갈등 이유는?

사람 곪는다는 '집배원 겸배'...철폐 두고 갈등 이유는?

2022.06.03. 오후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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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우체국 집배원들은 동료가 휴가로 자리를 비우면 나머지 팀원들이 업무를 메꾸는 이른바 '겸배'라는 관행이 있습니다.

하지만 집배원들은 겸배가 업무 과중의 원인이라며 철폐를 주장하고 있는데요.

우정사업본부 측과 이견이 좁혀지지 않으면서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고 합니다.

자세한 내용, 취재기자와 더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임성재 기자!

[앵커]
'겸배' 지역을 배달 중인 집배원을 동행 취재했죠?

어떤 모습이었나요?

[기자]
네, 서울 중랑우체국에서 근무하는 31년 차 집배원 송성근 씨의 일과를 동행 취재했습니다.

동료 한 명이 정년을 앞두고 그동안 쓰지 못한 휴가를 한 달 넘게 몰아 쓰면서 이 업무까지 떠안은 상황이었는데요.

이 때문에 1시간 정도 일찍 출근했고 끼니를 때우기도 어려워 틈날 때 잠깐 슈퍼마켓을 들르는 정도였습니다.

저희와 동행 당시도 점심시간 무렵이었는데 쉬지 않고 이 집, 저 집 배달하느라 쉴 틈이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기존 업무에 동료의 지역까지 배달하면서 더 서둘러야 하는데 취재진 때문에 속도가 늦어질까 미안해질 지경이었습니다.

이 집배원의 얘기 직접 들어보시겠습니다.

[송성근 / 서울중랑우체국 집배원 : 사실 못 먹고 일하죠, 사람이 쫓기다 보니까 배달 끝날 때까지는 슈퍼에서 음료 한 잔 마실 수 있을까. 사람이 곪아 터지기 전에는 사람을 안 주더라고요.]

[앵커]
예전 품앗이 문화가 떠올려지기도 하는데 구체적으로 '겸배' 관행이 어떤 겁니까?

[기자]
쉽게 말해, '겸배'는 팀원들이 '대신 겸해서 배달해준다'를 줄인 은어입니다.

공식 명칭은 '집배 업무의 대행'인데요.

우편업무규정에도 집배원이 업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 그 지역 사정에 익숙한 다른 집배원이 이를 배달해야 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앞선 송 씨의 사례 같은 경우 한 팀이 대략 8명인데 1명이 휴가를 내면서 7명이 업무를 나눠서 했는데요.

산술적으로 휴가 간 집배원이 하루 8시간 일한다고 하면 나머지 팀원들이 적어도 1시간 넘게 추가 근무를 해야 하니 정상 퇴근을 위해서는 점심을 건너뛰어야 하는 상황이었던 걸로 보입니다.

[앵커]
우체국 소속 노조에서는 '겸배 철폐'를 주장하고 있다고요?

[기자]
네, 우체국 소속 노조들은 지난해 본부 측과 함께 외부기관에 조사를 의뢰한 결과 '겸배'로 인해서 집배원들의 평균 업무 소요 시간이 '1시간 47분' 늘어난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습니다.

문제는 일하는 시간이 늘어나는 데서 끝나지 않고 연차를 사용하는 데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입니다.

평균적으로 연차 21일 중 3분의 1도 채 사용하지 못한다고 하는데요.

휴가를 가면 동료에게 피해가 가니 눈치가 보여서 안 가게 된다는 겁니다.

또 자신의 구역이 아닌 낯선 지역을 배달하다 보니 안전사고가 발생할 위험이 크고, 매년 심혈관질환으로 숨지는 등 과로사로 추정할 수 있는 집배원 사망 사례가 끊이지 않는 이유라고 주장합니다.

직접 들어보시겠습니다.

[오현암 / 민주우체국본부 경인지역본부장 : 업무량 과중에 낯선 배달 구역으로 인한 사고의 위험성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집배원 겸배로 인한 폐해는 현장에서 셀 수 없이 많다. 아파도 쉴 수 없고….]

[앵커]
그럼 우정사업본부 측에선 '겸배'로 인한 업무 과중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있나요?

[기자]
우정사업본부는 3년 사이 집배원을 3천 명 넘게 늘리는 등 충분한 노력을 기울였다고 강조하는데요.

'겸배'로 인한 부담도 크지 않다고 설명합니다.

우정사업본부가 파악한 한 달 평균 집배원들의 초과 근무 시간은 10.9시간에 불과하다고도 주장했습니다.

한 주로 따지면 일주일에 2시간에서 2.5시간 초과 근무로 주당 42시간 정도 일한다는 설명입니다.

물론, 지난 2018년만 해도 추가 근무 자체만 한 달에 42시간이었고 당시에는 과로한 업무였다는 걸 인정하는데요.

현재는 인력 충원 등의 노력으로 '겸배'를 폐지할 정도로 과도한 업무에 노출돼 있지 않다는 주장입니다.

[앵커]
양측 입장이 너무 상반돼서 갈등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이는데요?

[기자]
네, 노조 측은 우정사업본부가 제시한 통계가 실제 초과근무수당으로 지급된 것만 계산했기 때문에 왜곡됐다고 주장합니다.

송 씨 사례 등처럼 계산되지 않는 것까지 따지면 추가 근로 시간은 더 많다는 겁니다.

또, 3년 사이 3천 명 넘게 충원했어도 인력 예비율은 6.75%에 그쳐 국제 기준인 9%에 못 미친다고도 주장하는데요.

우체국 본부 노조는 다음 달 '겸배 철폐'를 위한 대규모 결의대회도 열 계획이어서 갈등이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까지 사회1부에서 전해드렸습니다.



YTN 임성재 (lsj621@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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