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최초 쌍꺼풀 수술한 사람, 이력이 어마어마

한국인 최초 쌍꺼풀 수술한 사람, 이력이 어마어마

2022.03.23. 오후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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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라디오(FM 94.5) [YTN 뉴스FM 슬기로운 라디오생활]

□ 방송일시 : 2022년 3월 23일 (수요일)
□ 진행 : 이현웅 아나운서
□ 출연 : 박성우 특허청 운송기계심사과 서기관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이현웅 아나운서(이하 이현웅): 슬기로운 생활을 위한 “생활백서” 매주 수요일은 대한민국 특허청과 함께하는 '독특허지~기특허지~' 시간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사용하는 컴퓨터 키보드와 스마트폰의 한글 자판. 누가 처음 만들었을까, 생각해보신 적 있으신가요? 오늘은 한글 기계화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분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합니다. 특허청 운송기계심사과 박성우 서기관 함께 합니다. 안녕하세요.

◆ 박성우 특허청 운송기계심사과 서기관(이하 박성우): 안녕하세요.

◇ 이현웅: 한글 기계화의 아버지, 그분이 대체 누굽니까?

◆ 박성우: 바로 한국인 최초의 안과의사로서 최초로 쌍꺼풀 수술을 하시고 최초로 콘택트렌즈를 도입하시고, 한글 타자기를 최초로 발명하신 공병우 박사입니다. 1906년에 평안북도에서 출생해서 1995년에 돌아가셨는데요. 지난 3월 7일이 바로 공병우 박사님이 사망한 지 27주기가 되는 날이어서 오늘은 공병우 박사님과 한글 타자기에 대해서 얘길 해보려 합니다.

◇ 이현웅: 한글 타자기와 안과의사, 언뜻 들으면 연관이 없어 보이는
조합인데요. 어쩌다가 한글과 인연을 맺으신 건가요?

◆ 박성우: 공병우 박사님은 1936년 일본 나고야 제국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고, 1938년 서울 종로구에 공안과를 개원했는데요. 이때만 해도 한글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개업 직후에, 한글학자 이극로 선생이 공 안과에 치료를 받으러 왔는데요. 이런 말씀을 하시더랍니다. '세계에서도 보기 드물게 과학적이고 우수한 한글을 일본인들이 못 쓰게 탄압하고 있다. 그런데 조선의 백성들마저도 제 나라 글에 관심이 없고 무시하기까지 한다.' 이 말을 듣고 놀란 공 박사께서는 바로 한글 시력 검사표부터 만들었는데요. 흔히들 안과에 가면 한글 자음이 크기별로 써 있는 시력 검사표를 많이들 보셨을 텐데요. 그걸 처음 만드신 분이 바로 공병우 박사입니다.

◇ 이현웅: 안과의사와 한글 시력 검사표, 여기까지는 이해가 되는데.
한글 타자기는 어떻게 만들게 된 겁니까?

◆ 박성우: 해방 후에 공 박사는 의학 교육을 위해서, 일본어로 된 안과 교재를 한글로 옮기는 작업을 했는데요. 직접 번역한 글을 조수 두 명이 정리했는데, 일일이 손으로 적다 보니 알아보기도 힘들고, 무엇보다도 속도가 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타자기가 있으면 빠르게 일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해서, 한글 타자기를 연구하게 됩니다.

◇ 이현웅: 그러면 공병우 박사가 한글 타자기를 처음 만든 건가요?

◆ 박성우: 그건 아닙니다. 당시 한글 타자기는 5벌식과 4벌식 타자기가 있었는데요. 5벌식 타자기는 자판수가 84개, 4벌식 타자기는 글쇠가 44개나 돼서 속도가 느렸습니다. 더 문제가 된 것은 타자를 가로로 찍고 종이를 세로로 돌려서 읽는 세로쓰기 방식이었는데요. 그때는 이미 한글학자들을 중심으로 가로쓰기가 독서에 유리하다는 논의가 활발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공 박사도 가로로 찍고 가로로 읽을 수 있는 한글 타자기를 만들고자 했는데요. 아시다시피 한글은 영어 알파벳처럼 글자를 가로로 쭉 늘어놓으면 되는 것이 아니고, 한 글자 안에 초성, 중성, 종성이 있지 않습니까. 이것을 자판에 어떻게 구현할지 고민을 많이 하셨다고 합니다. 그 결과 1949년 최초로 자판을 초성, 중성, 종성으로 구분한 세벌식 한글 타자기를 개발하게 됩니다.

◇ 이현웅: 세벌식 자판, 좀 생소한데, 정확히 어떤 건가요?

◆ 박성우: 우리가 현재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자판은 자음과 모음 두 가지로 구분돼 있어서 두벌식이라고 하는데요. 왼손으로 자음, 오른손으로 모음을 찍고, 왼손으로 자음을 한 번 더 눌러서 받침을 완성하는 형태입니다. 하지만 세벌식은 자판을 아예 초성, 중성, 종성 세 가지로 나눠놨고요. 자판 오른쪽에 자음, 중간에 모음, 왼쪽에 받침이 되는 자음을 배치했습니다. 그래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물 흐르듯이 칠 수 있고, 무엇보다도 ‘Shift’ 키를 거의 누르지 않고 연속해서 이어서 칠 수 있다는 점에서 오타도 적고, 타이핑 속도도 빨랐고요. 영문 타자기처럼 가로쓰기가 가능했는데요. 이것이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기술이 필요했는데, 바로 쌍초점이란 방식이었습니다. 쌍초점이란 영어 타자기처럼 '바 가이드'에 찍히는 구멍이 한 개가 아니라, 두 개의 구멍으로 세벌 한글을 자동으로 찍히게 한 발명인데요. 초성, 중성, 종성이 각자의 위치에 정확히 찍혀야 글자가 완성되는 한글의 특성을 반영한 겁니다. 이런 세벌식 쌍초점 타자기의 발명으로, 공 박사는 한국과 미국에서 특허를 받게 됩니다.

◇ 이현웅: 한국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특허를 받았군요. 현재 남아 있는 특허도 있나요?

◆ 박성우: 현재 키프리스에서 '공병우 타자기'를 검색하면, 출원인에 공병우란 이름이 들어간 타자기와 관련된 장치들이 34가지나 나오는데요. 현재는 권리존속기간이 만료되어 소멸되었지만, 1948년부터 수십 년간 꾸준히 새로운 기술을 개발해서 특허를 출원하고, 등록을 받았던 흔적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 청취자 분들에게 공병우 박사님의 발명을 통해 특허관점에서 두 가지 중요한 점을 말씀드리고 싶은데요. 첫째, 공병우 박사님의 미국 특허는 한국인 최초로 해외에서 받은 1호 특허. 둘째, 공병우 박사님처럼 한국에서 특허를 받은 것은 미국에 다시 출원하여 특허를 받아야 하는 속지주의(屬地主義) 원칙이 적용된다는 것입니다. 이점 우리 청취자 여러분 꼭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 이현웅: 대단하네요. 그런데 이렇게 우수한 세벌식 타자기가 왜 지금은 사용되지 않는 건가요?

◆ 박성우: 세벌식 타자기의 경우, 받침이 있는 글자는 세로 길이가 길고, 받침이 없는 글자는 세로 길이가 짧아서 글자 모양이 고르지 못했고, 이 때문에 멀리서 보면 초성, 중성이 빨랫줄처럼 되어서 종성이 빨랫줄에 매달린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빨랫줄’ 글꼴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는데요. 이는 글자의 조형미보다 기능과 속도를 중시했던 공병우 박사의 신념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1969년에 정부에서는 가령 ‘이’가 ‘일’자로 위조 가능하다고 판단해서, 훨씬 느리고 복잡하지만 비교적 반듯하게 글자를 칠 수 있는 4벌식 타자기를 표준 자판으로 공표했고요. 1982년 최종적으로 두벌식 타자기가 표준 타자기로 채택되면서 세벌식 타자기는 사람들에게서 잊히게 됩니다.

◇ 이현웅: 안타깝네요. 한글 기계화 운동은 거기서 끝이 난 건가요?

◆ 박성우: 아닙니다. 공병우 박사는 1988년 한글문화원을 설립하고, 젊은 연구원들과 함께 컴퓨터용 한글 폰트를 개발하기 시작했는데요. 여기서 아래아한글 프로그램이 탄생했고, 이찬진 씨 등의 프로그래머들을 지원해서 (주)한글과컴퓨터 창립을 도왔습니다. 뿐만 아니라 전국을 돌며 개안수술을 무료로 해주기도 했고요. 맹인재활센터를 설립하고, 점자 타자기와 시각장애인용 워드프로세서도 개발했습니다. 1995년 88세로 돌아가실 때도 각막을 비롯한 모든 장기와 시신을 기증했고요. 장례식도 치르지 말고 유산은 시각장애인 복지를 위해 써달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훈장도 많이 받으셨고요. 특허청은 1999년 공병우 박사를 세종대왕, 장영실, 이순신, 정약용, 지석영, 우장춘과 함께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가 7인에 선정했습니다.

◇ 이현웅: 이렇게 위대한 분을 지금까지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이 부끄럽네요. 오늘도 직장에서, 학교에서 열심히 한글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분들, 잠시 손을 멈추고 이 자판과 한글 프로그램을 만든 분들게 감사하는 시간 가져보면 좋겠습니다. 독특허지 기특허지, 오늘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YTN 이은지 (yinzhi@ytnradi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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