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을 '위해서'가 아닌 '함께' 사는 세상(이종만 나눔공동체 대표)

장애인을 '위해서'가 아닌 '함께' 사는 세상(이종만 나눔공동체 대표)

2021.12.14. 오후 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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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 : YTN 라디오 FM 94.5 (13:00~14:00)
■ 진행 : 김혜민 PD
■ 방송일 : 2021년 12월 14일 (화요일)
■ 대담 : 이종만 나눔공동체 대표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김혜민의 이슈&피플] 장애인을 '위해서'가 아닌 '함께' 사는 세상(이종만 나눔공동체 대표)


◇ 김혜민 PD(이하 김혜민)> 아직은 작은 기업이라서 모르고 지나칠 수 있지만, 결코 놓쳐서는 안 되는 기업의 숨은 가치를 알려 드리는 시간! ‘가치를 판매하는’ 소중한 기업을 소개하는 <가판대> 시간입니다. 새싹은 아무 데나 고개를 내밀지 않는다고 해요. 햇살이 비춘 자리, 이슬이 앉은 자리, 가장 따뜻하고 고운 자리만 골라 고운 초록빛깔을 띄어 새싹은 자라납니다. 우리들도 이 새싹처럼만 자라나면 얼마나 좋을까요. 오늘 가판대에는 이 새싹에게 따뜻한 햇살과 맑은 이슬이 되어주는 기업과 함께 할게요. 유은복지재단 나눔 공동체 이종만 대표님, 화상으로 만나봅니다. 대표님, 안녕하세요.

◆ 이종만 나눔공동체 대표(이하 이종만)> 안녕하세요.

◇ 김혜민> 반갑습니다.

◆ 이종만> 네, 반갑습니다.

◇ 김혜민> 안동에 계신 거죠. 대표님.

◆ 이종만> 네, 그렇습니다. 경북 안동입니다.

◇ 김혜민> 이렇게 줌(ZOOM)으로 만나게 돼서 좋은데요. 나눔 공동체, 뭘 나누시는 공동체예요.

◆ 이종만> 저희 나눔 공동체는 장애인, 비장애인들이 함께 어우러져서 서로의 부족한 부분들을 채워주고, 따뜻한 가슴들을 나눌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 특히 먹거리를 나누는 일을 하는 곳이라고 생각해서 나눔 공동체다, 그렇게 이름 지어졌습니다.

◇ 김혜민>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이 사회의 먹거리를 제공하는 일을 하는 공동체라고 하셨어요. 이름은 나눔 공동체이지만 사회적 기업인 거죠. 그러면 어떤 사업을 하고 계세요.

◆ 이종만> 원래는 저희들이 의류를 제조하는 일을 해왔어요. 그러다가 의료 제조 사업이 아무래도 대외 경쟁력이 없고 여러 가지가 많아서, 최근에는 친환경 농산물, 새싹 어린이 채소, 이런 친환경 먹거리를 재배하고 있습니다.

◇ 김혜민> 봉제업을 처음에 하셨던 건데, 저도 언론에서 대표님 인터뷰를 보니까 IMF 때 굉장히 힘드셨다는 내용을 봤습니다.

◆ 이종만> 힘들었습니다. 많이 힘들었습니다. 정말.

◇ 김혜민> 그때 막 후회도 하시고 원망도 하시고 하셨다고요.

◆ 이종만> 그렇습니다. 1997년 IMF 경제 위기가 왔을 때 우리의 잘못이라고 보기에는 국가적인 위기였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저희들도 예외 없이 어려움을 많이 당했는데, 그 당시에 저희들이 간신히 하루 약 한 2700장 옷을 만들어야 한 달 빚이 없이 살아가는 그런 때였는데, 일거리가 하루 300장으로 줄어버렸으니까 앞이 캄캄했었습니다. 그 무렵에 우리나라의 봉제 산업은 거의 다 무너졌대도 과언이 아니었죠. 저도 예외 없이 도망가려고 했었습니다. 야반도주하려고 했었죠.

◇ 김혜민> 근데 그때 한 동료가 신이 우리 대표님에게 질 만큼의 공동체의 짐만 주어지지 않겠냐, 그 말에 힘을 얻으셨다고요.

◆ 이종만> 그렇습니다.

◇ 김혜민> 그래서 그 말 한마디에 그래, 좀 더 해보자. 이런 결심을 하셨나 봐요.

◆ 이종만> 그렇습니다. 정말로 그 당시에는 제가 걸어가는데 자동차에 와서 좀 치어 줬으면 좋겠다.

◇ 김혜민> 그럼요, 그럼요. 맞아요. 지금 20년이 지났는데도 그때의 상황, 심정 생각하시면 지금도 막 불안하고 울컥하고 그러실 것 같아요.

◆ 이종만> 아, 그렇습니다. 그때 생각하면 정말 참 기적 같은 일을 저희들이 당했는데. 어떻든 간에 기적같이 해보게 되어서 지금은 아주 안정적으로 잘 운영을 하고 있습니다.

◇ 김혜민> 그러면 그렇게 봉제업을 하다가 이제 봉제업이 어려워지셨고, 그러면 어떤 계기로 새싹 사업을 하게 되신 거예요.

◆ 이종만> 더 이상 봉제 의류 사업으로서는 지탱해 나갈 수 없는 그런 위기가 다시 또 왔죠. 물론 IMF 사태를 잘 극복을 했고 그랬는데 다시 또 그런 위기가 와서 이건 아니다. 의류 사업은 정말로 경쟁력이 없는 사업이다. 왜냐하면 제3세계에 저임금 국가와 경쟁이 도저히 되지 않았어요. 또다시 어려움을 겪게 되어서 할 수 없이 자구책으로 문을 닫고, 백방으로 우리 장애인 가족들 어떻게 하면 먹고 살까. 이렇게 백방으로 쫓아다녔습니다. 그 얘기 지금 다 하기는 어렵고, 그러던 과정에서 일본의 지인을 통해서 이 새싹을 발견했습니다. 그 당시 2005년, 2004년도 당시에는 우리나라 새싹이 거의 없었어요. 저희들이 우리나라 새싹 재배로서는 선두 주자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 일본의 지인을 통해서 새싹을 발견하고, 옳거니. 앞으로 우리나라도 반드시 이런 친환경 먹거리. 우리 건강에 도움 되는 먹거리를 선호할 때가 반드시 올 것이다. 그런 어떤 기대감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일본을 통해서 새싹을 발견하고 우리 공동체 스텝들이 중심이 돼서 안동에 있는 대학교의 도서관이며, 인터넷이며. 왜냐하면 그 당시에 우리보다 먼저 새싹을 재배한 그런 선행 기업들이 없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저희들이 그냥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발 벗고 불철주야 연구하고 재배 실험하고 그렇게 했었어요. 그렇게 해서 새싹을 재배하게 된 것입니다.

◇ 김혜민> 처음에는 장애인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사실 현실이 사랑하는 마음으로만 되는 건 아니기 때문에. 사업가로서 미래를 보는 안목까지 우리 대표님이 갖추셨던 것 같아요. 이제 친환경 먹거리가 뜬다. 그래서 한번 해보자. 이래서 새싹 사업을 시작하신 겁니다. 어떤 거 키우세요. 제가 아는 새싹은 무순, 이 정도인데.

◆ 이종만> 그렇죠. 저희가 한 22종 내외의 그런 새싹을 재배하는데 브로콜리. 특히 이 브로콜리는요, 제 얘기가 아닙니다. 미국 존스 홉킨스 대학의 폴 탈라레이 농식물학 박사 연구에 의하면 다 자란 성체 브로콜리보다 그 어린 새싹에, 설포라판이라는 항암 성분이 무려 20배 이상 더 많이 들어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어요. 이러한 브로콜리부터 유체, 다채, 콜라비, 청경채, 쑥갓. 심지어는 적양배추, 청경채. 이런 22종의 새싹들을 재배하고, 또 친환경 국산 콩나물을 재배하고. 그리고 이 세상만 재배하는 게 아니고 베이비리프라고 어린잎 채소, 그러니까 시골에 할머니, 어머니들이 봄이 되면 텃밭에 씨앗을 뿌려서 나는 떡잎, 그런 어린잎 채소까지 재배를 하고 있습니다.

◇ 김혜민> 이걸 지금 몇 명의 사람들과 함께 하시는 거예요.

◆ 이종만> 지금 현재 모두 49분의 가족들이 같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 김혜민> 이 중에 장애인분들이 몇 분이나 되세요.

◆ 이종만> 그 가운데 34분이 장애인인데 청각 언어 장애인, 소리를 잃어버린 청각언어 장애인이 10분. 그리고 미안하지만 자기 이름도 나이도 기억을 잘 못하는 지적장애인 여덟 분. 다리가 불편한 지체장애인 두 분. 또 자폐장애인이 두 분. 뇌병변 장애인 두 분. 그렇게 해서 서른네 분의 장애인과 우리 비장애인. 그리고 최고령자, 일흔 여섯 되신 할머니까지 최고령자 세 분과 함께 모두 마흔 아홉 분이 같이 땀 흘리고 일하고 있습니다.

◇ 김혜민> 이 마흔아홉 분이 마음을 하나로 합쳐서 이 생명이 생명을 키우고 있는 건데, 좀 특별한 방법으로 새싹을 재배하시는 것 같아요. 자랑 좀 해주세요.

◆ 이종만> 저희는 우리나라, 이 먹거리 부분에 대해서 인정을 하는 여러 가지 인증 제도가 있는데 그 가운데 우수 농산물 관리 시스템. GAP 인증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햇썹(HACCP) 시설 기준으로 저희들이 재배를 하고 있고, 더 나가서 저희들은 말 그대로 우리가 핸드메이드가 다 비싸잖아요. 우리 공동체 장애인 가족들은 한 사람도 전염성 질환을 갖고 있는 가족들은 없어요. 예를 들어서 무슨 감염이다. 심지어는 무슨 폐결핵이다. 이런 가족들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우리 소비자들의 건강에 관련된 먹거리를 재배하는 것만큼 우리 공동체 가족들은 몸이 불편할 뿐이지, 다 건강한 장애인입니다. 그래서 이런 장애인들과 우리 비장애인들이 함께 여기서 우리가 재배하는데, 이 새싹은 상당히 재배하기가 까다롭고 민감합니다. 물 온도라든지, 그다음에 습도라든지. 산소, 공기를 불어넣어주는 거라든지, 위생적인 측면에서 아주 까탈스럽습니다. 그래서 이 새싹은 저희들이 시스템적으로 아예 항온, 항습, 항균. 이런 시설을 만들어서 거기에서 재배하는데, 우리 거를 과거에 유통한 업자들이 이게 돈이 될 것 같으니까 쉽게 자기들이 국산 시설을 만들어 가지고 기계로 키우는데, 기계로 키우는 것만이 능사가 아닙니다. 그게 한계가 있어요. 저희들은 미국에서 도입한 새싹 발화 기계를 우리가 15대를 보유하고 있는데 그 기계만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습니다. 그 기계만 의존하면은 새싹의 신선도가 떨어져요. 그래서 저희들이 아침에 우리 가족들이 출근하면은 밤사이에 파릇파릇하게 자란 그 새싹을 다 소독된 장갑으로, 친환경 소독제로 소독된 장갑을 끼고 핸드메이드로 손으로, 합니다. 이게 저희들은 장애인들이 일자리를 유지하기 위해서, 고용을 유지하기 위해서, 취약계층의 그런 일자리 문제로 이런 일을 하고 있다 보니까 한 사람이라도 더 일손을 필요로 하고 또 일손을 써야 됩니다. 그러다 보니까 저희들은 다 핸드메이드로 아침에 가족들이 그렇게 재배합니다. 우리가 특히 이 재배하는데 세 가지 모토로 재배하고 있어요. 하나님께 드리는 마음으로, 내가 먹는 걸 재배하자. 기도하는 마음으로 재배하자. 이렇게 해서 하고 있습니다.

◇ 김혜민> 사랑받는 새싹들이네요. 들어보니까. 사실은 지금 우리 대표님께서 이렇게 말씀을 간단하게 해 주시지만 30년의 삶이셨더라고요. 30년을 넘게 우리 대표님과 대표님 부인 되시는 분이 장애인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셨고, 그런데 그냥 보호하는 단체가 아니라 기업을 만든 이유가 있으셨어요. 이렇게 언론에서 말씀을 하셨는데, 장애를 굴레 삼아 비굴하게 살 것이 아니라 땀 흘려 떳떳하게 세금 많이 내며 생산적 사회인으로 살아야 한다. 장애인들이. 이런 소신으로 근로 작업장을 고집하셨다고요.

◆ 이종만>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저희들이 사회적 기업이면서도 직업 재활시설인 사회복지법인인데, 이런 보호와 어떤 일방적인 수혜 대상으로 장애인들을 바라보는 시각은 지양되어야 된다. 이제 우리 사회에 떳떳하게 통합해서 함께 우리 사회의 시민으로, 국민으로 우리 스스로 남은 건강 가지고 땀흘려 일하고 그 일하는 데 대한 보람을 받아 누리면서 세금을 내야 대한민국 국민이다. 앞서 물론 우리가 무슨 대단한 많은 세금을 내지는 않더라도, 우리가 세금을 내면서 살아야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냐. 그런 정신으로 우리가 운영을 하고 있고 우리 가족들도 거기에 대해서 상당한 만족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 김혜민> 자부심이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거기서 나오는 새싹은 사랑도 많이 받고 자부심도 아주 많은 그런 새싹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대표님하고 아내분이 30년 전에 이 장애인 돌봄 일을 시작하시면서 우리는 아이는 갖지 말자. 이렇게 약속을 하셨다고 하더라고요. 그 마음을 좀 나눠주실 수 있으세요.

◆ 이종만> 그래요. 한편으로 부끄러운 얘기일 수도 있는데, 어떻든 저는 우리 사회 문제를 이렇게 생각합니다. 문제 제기는 내가 하지 않아도 문제 제기하는 사람은 너무나도 많아요. 문제는 문제 제기하는 게 문제가 아니고, 그 문제를 줄이기 위해서 과연 나는 뭘 할 것이냐. 그 문제를 줄이기 위해서 자기의 삶을 들이려는 사람이 적다는 게 더 큰 문제다, 전 그렇게 봅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아내와 함께. 또 아내가 일찍이 그런 장애인 학교 특수학교에 오래 근무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장애인들이 어릴 때부터 겪고 있는 장애라는 굴레 때문에 당하는 어려움과 그 아픔들을 누구보다도 가까이서 지켜봐 왔고, 우리가 몸으로 느끼며 살아왔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경상북도 북부 지역에는 특히 무슨 이렇다 할 생산시설이나 산업시설이 없어요. 그러다 보니까 비장애인들이 일자리를 구하기가 어려운 것이 이 지역이고 그러면 장애인들이 일자리 구하기가 더 어렵죠. 이런 입장에서 정말로 장애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그런 고민을 한 나머지 내가 내 자식을 두게 되면 과연 내가 그들과 더불어 살아가는데 내 자식을 내가 먼저 생각하는 것이 이게 인지상정이고, 아빠에 대한 마땅한 책임이 아니겠어요. 그렇다면 장애인 곁에서 살아가는 것이 오히려 한편 걸림돌이 될 수도 있겠다. 그래서 아내도 흔쾌히 제 뜻에 동의해 주고, 같이 한 번 하나님 앞에서 이 땅에서 의미 있게, 가치 있게 살아가 주는 것이 바람직하겠다. 그래서 자녀를 두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 김혜민> 네, 혹시 이 방송 지금 이렇게 주파수 돌리다 들으시는 분들은 CBS가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 YTN 라디오가 맞고요. 우리 대표님이 지금 이제 목회자이시기 때문에 말씀하시면서 개인의 얘기를 하면서 개인의 신앙에 대한 고백을 했다는 것, 여러분들 좀 이해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말씀 중에 굉장히 저도 와 닿았던 게 문제 제기를 하는 사람은 많은데 문제 해결을 위해 뛰는 사람은 없다. 내가 좀 내 삶을 들여서 그렇게 해보자, 라는 그 대표님의 고백이 참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이분이 얼마나 대단한 분이냐면 호암상 수상도 하셨고 많은 곳에서 또 칭찬도 받으셨지만. 사실 그런데 대표님 쉬운 일은 아니죠. 가장 포기하고 싶다. 이런 때도 있으셨어요.

◆ 이종만> 그렇습니다. 가장 힘들었을 때가 조금 전에 말씀드린 대로 IMF 때, 이때 어려웠고. 두 번째는 이 새싹을 재배하지 못해서 애를 썼을 때 힘들었는데, 그 무렵에 저희에게 다가온 어떤 사람이 또 사기를 쳤어요. 그래서 사기를 당한 금액이 억대가 넘었습니다. 그것 때문에도 어려움을 당했고, 또 더 나아가서 어떤 사람이 그래요. 이 새싹을 자기들이 이제 알아보고서는 이걸 좀 유통을 해보겠다, 했는데 이 사람이 또 부도를 내는 바람에. 그 돈을 못 받아서 소송을 해야 하는 그런 어려움도 있었고. 이런 저런 사회적 기업으로 지금까지 진행을 해 왔습니다마는 그간의 우여곡절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 김혜민> 그럼요. 그런데 그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건 그만큼 열매들이 많았기 때문 아니겠어요. 이 공동체에서 자립하는 장애인들, 회복되는 장애인들 보면서 정말 보람이 있으셨을 것 같은데 몇 분 소개해 주실 분이 좀 있으실까요.

◆ 이종만> 있죠. 저희가 지금 있는 곳이 경북 안동인데, 군산의 한 장애인 보호시설에서 연락이 왔어요. 어떻게 우리 소식을 듣고선 그곳에 보호시설에 장애인들이 일자리가 없고, 나이는 먹어가고. 그래서 안타까워하면서 우리 공동체 좀 취업을 시킬 수 없겠느냐, 해서 아유. 오라고. 그래서 그곳에서 형제가 같이 왔어요. 언니 동생, 형제가 같이 왔어요. 자매가 같이 왔는데 그 두 자매가 이곳에서 잘 정착을 하면서 지내다가 지체장애인 남편을 만나서 같이 우리 공동체 안에서 제가 주례를 하고, 달덩이 같은 아들 둘을 낳았습니다. 그래서 저보고 할아버지, 할아버지라고 부르는데 사실 그러잖아요. 부모들이 자기 자녀보다도 그 손주들을 더 반가워한다고, 더 좋아한다고. 제가 그 손주들 볼 때마다 얼마나 마음이 푸근하고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졸지에 할아버지가 돼가지고, 그런 경우라든지. 그 외에도 여러 쌍이 제가 주연을 해서 우리 장애인과 또 비장애인들이 같이 결혼한 경우도 있고. 그래서 저희들이 땀 흘려 일해서 대단한 큰 아파트는 아니지만, 작은 평수의 아파트를 마련해서 오순도순 가정을 꾸려서 생활하는 그 모습. 그리고 주말이 되면 아빠, 엄마 맛있는 저녁 해놨으니까 식사하고 가시라고 이런 연락을 받을 때 참 보람을 느낍니다. 또 하나 자랑스러운 것은 제가 단언하건데 우리나라의 어떤 장애인 시설 단체 기관에 있는 장애인보다도 해외여행을 제일 많이 했을 겁니다. 심지어는 모스크바 레닌그라드까지 여행을 했었습니다. 지금도 여행을 해야 되는데 이 몹쓸 코로나 때문에 여행을 못하고 있습니다마는, 동남아시아는 아직 쉬운 곳이고 유럽까지 저희들이 여행을 다녔고. 아니, 장애인들이 무슨 일만 하는 법이 없잖아요. 그들의 통장에 다 엄청난 돈들이 모아지고 있지만, 돈을 써야 또 우리 지역 경제도 돌아가잖아요.

◇ 김혜민> 그리고 즐겨야 되고요. 즐길 충분한 존재들이고요.

◆ 이종만> 그렇죠. 저는 우리 장애인들이 장애라는 굴레 때문에 우리 사회에서 동정과 수혜의 대상으로 살아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우리도 떳떳한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살아가야 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공동체, 지금까지 한 40년 가까이 장애인 곁에서 살아왔지만 참 보람을 느낍니다.

◇ 김혜민> 대표님 내외분이 육신의 자녀는 없으시지만 정말 영혼의 자녀들, 또 손주까지 그렇게 인생의 열매를 맺으신 걸 보니 저도 그 삶이 참 귀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대표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더라고요. 장애인은 보호받아야 할 어린이도 아니고, 치료받아야 할 환자도 아니며 숭배 받아야 할 신도 아닙니다. 그저 우리처럼 한 인간일 뿐이죠. 독일의 유명한 소망의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 땅의 장애인은 단 한 명도 없다. 있다면 인간이 존재할 뿐이다, 라고요. 앞으로 이들을 신이 지은, 하나님이 지은 존엄한 자녀이자 독립된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하셨네요. 이 말을 정말 많은 분들이 봤으면 좋겠습니다.

◆ 이종만>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흔히 쉽게 너무 생각하기를, 지나치게 생각하기를, 장애인을 환자로 취급하는데 환자는 어디 가야 돼요. 환자는 병원에 가야 되잖아요. 장애인이라고 무조건 환자가 아니에요. 장애인을 환자로 여긴 것도 잘못됐지만, 또한 장애인을 지나치게 과잉보호하려고 하는 어린이로 취급하는 것도 문제가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장애인은 우리와 똑같은 인간입니다. 우리 사회가 저들을 편견의 시각으로, 잘못된 자세로 대하다 보니까 장애인이 된 것이지,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 김혜민> 알겠습니다. 오늘 정말 우리 대표님을 통해서 많이 배웠습니다. 연말에 너무 따뜻한 인터뷰 감사하고요. 지금 문자로 정말 훌륭한 일 하시네요. 4156 님, 대표님 대단하십니다. 이런 기업은 나라에서도 보호해 줘야 됩니다. 하셨는데 우리가 함께 지금 대표님이 말씀하셨던 정말 장애인을 향한 올바른 시선, 그리고 올바른 태도를 배우면 그게 바로 이 기업을 응원해 주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표님, 오늘 인터뷰 고맙습니다.

◆ 이종만> 네. 건강하십시오. 감사합니다.

◇ 김혜민> 네, 지금까지 이종만 나눔 공동체 대표였습니다.


YTN 김혜민 (visionmin@ytnradi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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