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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만요] 시리아 난민도 아프간 난민도 사람은 사람으로만 봐 줬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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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만요] 시리아 난민도 아프간 난민도 사람은 사람으로만 봐 줬으면...

2021년 09월 27일 15시 50분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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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만요] 시리아 난민도 아프간 난민도 사람은 사람으로만 봐 줬으면...
■ 방송 : YTN 라디오 FM 94.5 (20:20~21:00)
■ 날짜 : 2021년 9월 26일 (일요일)
■ 진행 : 이성규 교수
■ 대담 : 압둘 와합 헬프 시리아 사무국장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잠시만요] 시리아 난민도 아프간 난민도 사람은 사람으로만 봐 줬으면...



◇ 이성규 교수(이하 이성규)> 고국을 잃어버린 사람들, 난민. 여러분은 난민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계신가요? 오늘의 주인공 시리아 출신으로 시리아 난민을 돕는 단체 헬프 시리아의 의 사무국장으로 활동하고 계신 압둘 와합씨 모시고 이야기 나눠볼게요. 안녕하세요.

◆ 압둘 와합 헬프 시리아 사무국장(이하 압둘 와합)>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 이성규> 반갑습니다. 우리 청취자 여러분들께 직접 자기소개 한번 하시면서 인사 나눠주시죠.

◆ 압둘 와합> 예 안녕하십니까. 저 압둘 와합이라고 합니다. 풀네임은 압둘 와합 알무함마드 아가입니다. 이름이 너무 길어서 압둘 와합만 불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이성규> 예 지금 한국에서 생활하신 지 한 10년이 넘었죠?

◆ 압둘 와합> 네 넘었습니다. 거의 12년, 만 12년 됐습니다.

◇ 이성규> 예. 그러면 이제 언제 오신 거죠. 그게 12년 됐으면?

◆ 압둘 와합> 2009년 말에 왔습니다.

◇ 이성규> 네, 그러니까 시리아에서 이쪽으로 유학을 온 건가요?

◆ 압둘 와합> 유학하러 왔습니다.

◇ 이성규> 네. 근데 시리아에서도 명문대 나오셨더라고요. 다마스쿠스 대학이 되게 명문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 압둘 와합> 예 맞습니다.

◇ 이성규> 또 법학을 하셨죠?

◆ 압둘 와합> 예 거기 다마스쿠스 대학교에서 법학을 공부하다가 졸업하고 거기 변호사 활동을 잠깐 하다가 한국에 오게 됐습니다.

◇ 이성규> 변호사도 그쪽에서 하셨군요. 그쪽은 변호사 자격이 어떻게 나와요? 시험을 보나요, 아니면. 로스쿨 나오면?

◆ 압둘 와합> 법학 거기에는 로스쿨이 따로 없고 법학과 하나만 있는데, 여기 법학과 졸업하면 시험이 따로 있어요, 한국처럼. 그런데 한국처럼 민감하지 않아서 그래서 시험 보고 통과해서 변호사 활동 거기 2년 동안 수습 기간이 있어요. 그 수습 기간 트레이닝 기간이 끝나면 이제 변호사 자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 이성규> 그 시리아에서 유학 온 1호 유학생이었어요. 그렇죠?

◆ 압둘 와합> 네 맞습니다. 그때 얼마나 시리아인이 있는지 몰랐지만, 한국에 도착한 후에는 찾아보니까 다른 시리아인이 없더라고 해서 그래서 출입국 관리소에서 나한테 알려주는 거예요. 다른 시리아인이 없기 때문에 우리가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도 몰라서 너는 1호 시리아인이 확실하다, 라고 해서 그것을 알게 됐습니다.

◇ 이성규> 근데 2011년도에 중동하고 북아프리카에서 아랍의 봄이라고 불리는 대대적인 민주화 바람이 불었지 않습니까?

◆ 압둘 와합> 네 맞습니다.

◇ 이성규> 네. 그리고 시리아에서 독재 정권에 반대하는 시위도 상당히 거세게 일어났고. 그 때 한국에서 그 소식을 접하셨을 텐데 걱정도 많이 하셨겠어요, 그때.

◆ 압둘 와합> 예, 그때 사실 그때 복합적인 마음이 있었습니다. 원래 행복도 하고 걱정하고 또 무서웠습니다. 시리아에서는 드디어 봄이 온다. 드디어 우리나라 민주 나라 만들 수 있다, 드디어 우리 자유로운 나라 만들 수 일단은 이렇게 꿈을 꾸니까 그래서 이런 혁명이 일어났으니까 정말 반가운 소식인데 근데 50년 동안 이렇게 힘으로 정권을 잡고 있는 독재자가 과연 쉽게 물러나갈까 그런 고민이 있었고 걱정이 있었는데 당연히 그 사람은 잔인하게 범죄를 저지르고, 사람들은 죽일 거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더 걱정했고 무서웠습니다.

◇ 이성규> 요즘은 어때요, 시리아 상황이?

◆ 압둘 와합> 요즘은 말로는 어떤 표현을 써도 시리아의 참혹한 현실은 설명할 수 없습니다. 민주화 운동이 시작은 했는데 그 민주화와 순수한 민주화 운동이 정쟁 방식으로는 이렇게 흘러갔는데요. 초기에는 시리아 사람들끼리만 정부군을 지지하는 사람, 반대하는 사람만 시위도 하고 반대하고도 하는데 몇 개월만 지나도 강대국들 다 개입하고 외국 세력이 다 시리아에서 개입했기 때문에 시리아가 엄청나게 복잡하게 되고 어려워졌습니다. 그래서 10년 동안 계속 전투하고 폭격하고 폭탄을 던지고도 하는데 그래서 강대국 힘으로는 알 아사드가 시리아 정권이 아직까지는 버티고 있어서 그래서 그 어려운 전쟁 때문에 시베리아 군민들 절반 이상 다 난민이 되고, 시리아 집을 떠나서 지금은 전 세계에 흩어지고 있습니다.

◇ 이성규> 아이고, 참 이 멀리 한국에서 시리아를 돕고 싶은 마음으로 헬프 시리아라는 인권 구호단체를 창립하셨죠?

◆ 압둘 와합> 네 맞습니다.

◇ 이성규> 어떻게 창립하게 됐습니까?

◆ 압둘 와합> 2013년에 헬프 시리아 창립했는데 그 전에는 2011년부터 2013년까지는 나 혼자는 이렇게 내개인 정치적인 발언만 하고 정치적인 색깔만 이렇게 밝히고 운동해왔는데. 근데 하루하루 난민들이 많이 발생하고 하루에는 몇 천 명도 생기는데, 이런 행동만 해도 시리아 사람들한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뭘 실질적으로는 텐트에서 살고 있는 난민들에 있는 분들을 위해서는 작은 일이라도 해보자고 해서 그래서 관심이 있는 시리아 관심이 있는 한국 분들, 시리아를 알고 있는 한국 분들이랑 같이 돕자고 하는 분들이랑 손을 잡고 이렇게 동아리 모임이나 시민 모임을 만들어서는 같이 적극적으로 활동해보자고 해서 그래서 헬프 시리아라는 모임을 만들었는데. 그래서 활동해보면서도 따뜻한 사람들도 계속 그냥 참여해서, 참여해서, 참여하고 그래서 단체로 이렇게 이어지게 됐는데요. 그래서 우리가 2013년부터 지금까지 해왔던 활동들은 대부분 시리아 나라 자체를 알리고 시리아 난민들 어떻게 살고 있는지, 왜 이렇게 됐는지 필요한 무엇이 있는지 알리면서 인권 쪽으로 연대도 하고, 도와주고 한국에서도 후원금도 마련하고. 시리아 안으로 후원금을 계속 주변국들을 통해서 시리아 안으로는 계속 후원금을 전달해 왔는데. 2년 전에 시리아 안에서 주둔 학교를 하나 짓고 운영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만들었던 주둔 학교에서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습니다.

◇ 이성규> 활동 많이 하셨는데 이런 활동을 쭉 하시니까 시리아 정부에서도 막 약간 압력이, 압박이 상당히 강하게 들어왔다면서요?

◆ 압둘 와합> 예, 많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아까 말씀했듯이 뭔가 한국에 공부하고 있는 시리아 사람이 저밖에 없으니까 시리아 정부군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고, 알 수밖에 없는데 시리아 혁명이 일어난 후에는 바로 제가 시리아 정부 반대한다, 이렇게 SNS나 대외활동을 하기 시작을 했는데, 그래서 당연히 시리아 정부군이 그것을 싫어하고, 나를 설득하고. 나를 알 아사다도 시리아 정권을 지지하게 하기 위해서 나를 압박을 했는데 시리아에서 내 가족을 계속 압박을 하고, 그리고 삼촌 2명이 감옥에 몇 개월 동안 가 있었고, 고문 많이 당했고. 그리고 이후에는 제가 가지고 있는 모든 시리아 서류는 다 만료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후에는 아예 갱신해주지도 않고 그래서 서류 아예 발급해주지 않아서 그래서 나는 서류가 없기 때문에 많이 곤란했습니다. 그래서 결국으로는 제가 한국 국적 취득하게 됐고 지금은 한국 사람입니다. 그래서 안정적으로는 살고 있습니다.

◇ 이성규> 시리아 출신 한국인.

◆ 압둘 와합> 한국인입니다.

◇ 이성규> 그렇게 어쨌든 뭐 국적을 취득하시고 압둘 와합 씨가 이제 개인 sns에서 시리아 난민이 아프간 난민에게 보내는 메시지라는 그런 글을 남기셨죠. 많은 분들이 공감도 하고 또 공유도 해 주셨는데 그 메시지 한번 좀 소개해 주시겠어요.

◆ 압둘 와합> 예 맞습니다. 제가 시인 아니고 글 쓰는 사람은 아니지만 근데 시리아 난민 캠프 다녀가면서 오늘 들었던 이야기니까 시리아 분들한테 시리아 분들이 나한테는 이렇게 계속 그냥 말했던 내용들도 듣고 생각해보고 그래서 아프간 사태가 터졌을 때 얼마 전에 그래서 sns 보고 그래서 언론에서 보면서 되게 많이 걱정했고 많이 무서웠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많이 짠했습니다. 그 대부분 언론에서 나온 이야기들은 그냥 탈레반 어떻게 할 거냐. 정치적으로만 할 거냐, 여성 인권이 어디에 있냐, 아이들 인권은 어떻게 할 거냐 그 이야기들만 집착하게 됐는데. 근데 대다수 아프간 사람들 어떻게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많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우리가 10년 동안 그 경험 해왔으니까 이제는 뭔가 난민 생활 어떤지는 또 느끼게 됐고 피부로도 느끼게 됐고 하루하루 난민 생활하면서 고생했는데 그래서 제가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밤에 공부는 잘 안 되고 머리를 조금 식히기 위해서 결지에게 이렇게 쓰게 됐는데 물론 제가는 텐트에서는 살아본 적이 없으니까 이게 제 경험은 아니지만 그 옛날에는 70년 동안 이렇게 아프간 난민 생활해왔던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있잖아요. 그래서 팔레스타인 난민들도 초기에는 시리아 난민한테도 비슷한 형식으로는 이런 당시 일이 있습니다. 그래서 프레임만을 가지고 내용을 제가 지었습니다. 제가 느꼈던 얘기인데 나도 솔직히 별것도 아닌데 해서 쓰고 친구한테만 보여줬더니 친구가 이거는 따로 sns에 올려라, 참 민망하네요. 그래서 올렸지만 다행히 따뜻한 사람들 많이 공유하고 공감해서 그래도 감사했습니다. 그렇게 공감해 주셨던 분들은 아마도 난민 위해서는 계속 따뜻한 마음 끝까지 가지셨으면 좋겠습니다.

◇ 이성규> 네 시리아 출신 압둘 와합씨와 함께 하고 있는데요. 앞둘 와합씨 이쯤에서 우리가 노래 하나를 추천을 받거든요. 어떤 곡을 추천하시겠습니까?

◆ 압둘 와합>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이라는 노래 제가 추천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옛날에 나한테 추천해 주신 사람들이 있어요, 이 노래를. 우리 가족은 난민으로 터키로 탈출하고 난민 생활 할 때는 저기 초기에는 집 찾아보고, 가족이 정착하도록 하기 위해서 했는데 그래서 지친 마음으로 하늘을 보는 모습을 보고 한국 친구들 몇 명이 생각해서 나한테 추천했던 노래였고. 그리고 얼마 전에 나 하고 가족하고 시리아 이야기를 이렇게 담은 책을 출간 했는데 그래서 그 책 읽었던 독자들도 이 책 읽으면서도 자기 sns나 자기 블로그에서는 또 올리고. 나 압둘 와합한테 이 노래를 꼭 추천하고 싶어해서 그래서 덕분에 많이 들었던 노래입니다.

◇ 이성규> ‘그대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 이 노래가 이제 영화 ‘파바로티’ ost인데요. 한석규, 이재훈이 불렀습니다. ‘그대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듣고 오겠습니다. 한석규, 이제훈이 부른 ‘그대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 듣고 오셨습니다. <이성규의 행복한 쉼표. 잠시만요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인권 구호단체 헬프 시리아의 사무국장이신 압둘 와합 씨입니다. 최근에 아프가니스탄에서 기여자 신분으로 해서 한국에 오신 분들 그분들 만나보셨어요?

◆ 압둘 와합> 들었는데요. 그분들은 아직 못 만났습니다.

◇ 이성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압둘 와합> 일단 그분들이 한국에 도착해서는 정말 기쁘고 행복합니다. 그분들이 행복하게 생활할 수 있는데 한편으로는 그분들의 특권에 이미 몇 년 전에 와 있던 아프간 난민들에 대해서도 좀 한국 정부가 또 챙겼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도 있고. 더 나가면 또 아프가니스탄에서는 탈출하지 못했던 사람들 힘이 없고는 나가지 못했던 사람들에 대해서는 좀 많은 한국 사람들이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생각은 합니다.

◇ 이성규> 이번 일도 있지만 지난 2018년에 예멘 난민들 입국이 있었잖아요. 그때랑 비교해 보면 국내 분위기가 어떻게 좀 변한 것 같습니까?

◆ 압둘 와합> 네. 제가 느꼈던 것은 긍정적으로 말하자면 조금 상황이 좀 좋아졌다고 생각을 합니다. 좋아졌다는 말이라면 반대하는 사람들이 조금 줄었고 찬성하는 사람 더 많아졌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예멘 난민들이 2년 전에 왔을 때는 사회에서 엄청나게 이렇게 좀 혼란스러웠고, 사연이 많이 안타까웠는데요. 그래서 나 같은 시리아 사람에도 이미 한국에서는 7년, 8년, 10년 살았던 외국인들도 그 난민이라고 오해받아서 어떤 사람들을 차별하고 뭔가 공격한 적이 또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아프간 사태는 이 정도까지는 사회가 복잡하지도 않았고, 큰 이슈도 되지 않아서 그래서 이제는 뭔가 사회가 많이 오픈 됐고 많이 개선됐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 이성규> 현재 이제 한국 내에 난민 인정자와 또 인도적 체류자가 있지 않습니까. 이게 숫자가 어떻게 되죠?

◆ 압둘 와합> 사실 인도적 체류자들은 전반적으로 얼마나 했는지도 모르긴 하지만 시리아 난민만 말씀드리자면 한국에 와 있는 시리아 사람들이 1500명이 있습니다. 그래서 1500명 중에서 1300명이 난민 신청했습니다. 1300명 신청자들 중에서 난민 인정자는 5명 있고, 인정받지 못했던 사람들은 거의 1250명 정도 있는데요. 그래서 그분들한테는 한국 정부가 인도적 차원으로 인도적 체류자 자격을 주고 한국에서 머물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쉽게 말씀드리자면 그 사람들이 난민 아니고 난민 인정자 아니고 그 사람 당장 한국을 떠나야 할 사람입니다. 근데 시리아 함부로는 시리아로 보낼 수 없기 때문에 임시로 한국에서는 시리아 상황이 좋아질 때까지는 한국에서도 머물 수 있는 사람이라고 이렇게 되었으니까 그래서 그분들은 일상생활 하면서 겪고 있는 어려움이 많습니다. 왜냐면 난민 인정하고 난민 인정하지 않았던 차이가 엄청나게 큽니다. 난민 인정자들은 일단 서류 발급도 할 수도 있고 한국 정부에서 인정받았던 사람이기 때문에 출신 신고나 결혼 신고나 같은 개인 서류를 발급할 수도 있고 의료보험 같은 것들도 건강보험도 가입을 쉽게 할 수도 있고. 취업도 제한 없고 할 수도 있는데, 근데 인정하지 않았던 사람들 인도적 차원으로는 살고 있는 사람들은 전혀 그런 권리들이 아예 없기 때문에 하루하루 살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법 때문에 고생하고 있습니다.

◇ 이성규> 네 또 추석이 지났는데 추석 때는 어떻게들 지내셨어요? 그분들 다.

◆ 압둘 와합> 대부분 제가 알기로는 아는 난민들은 대부분 거기에 좀 뭔가 소외감? 소외감을 이렇게 가지면서 외롭고. 외로우면서 지금 추석을 보냈는데, 물론 어떤 분들은 쉴 수 있는 날이라서 행복해서, 푹 잘 수 있지만 그런데 한국 가족들을 다 따뜻하게 명절도 보내고 가족이랑 같이 만날 수도 있고 하는데 근데 난민들은 대부분 가족을 데려올 수가 없으니까 혼자 외국에서 살고 있는데 가족은 시리아에 있고 본인이 혼자 한국에 있어서, 한국 가족들 모이는 모습 보면 본인이 당연히 가족들도 괴롭고 보고 싶고 그럴수록 향수병으로 또 고생하면서 아마 추석을 보냈습니다.

◇ 이성규> 이 코로나19 때문에 이쪽에서 많은 분들이 모일 수도 없고 하니까 더 어려움이 있었겠네요.

◆ 압둘 와합> 네. 사실 코로나 때문에는 물론 한국 국민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다 고생은 하고 있지만 난민들은 더 많이 고생했습니다. 특히 초기에는 예를 들어서는 마스크를 부족했을 때는 외국인들이 특히 난민들이 모든 외국인들이 마스크는 구입할 수 없다. 옛날에 한국 사람들한테만 나눠줬는데요. 그래서 그때는 나도 외국인이었어서 나는 마스크는 사고 싶은데 없고 약국에서 나한테 마스크도 안 줍니다. 그럼 난 어떻게 어쩌라고, 학교도 가야하고 나가기 위해 외출해야 하는데 마스크 없기 때문에 진짜 많이 고생했습니다. 그런 일들이 많았고. 당연히 지금 마스크는 풍부하게 있기 때문에 누구나 구입할 수 있고 그 문제 해결 됐는데 근데 실업자들도 많이 생기고 그래서 경제적으로는 뭔가 한국 사회 간에 많이 힘들어 하니까 제일 먼저 잘린 사람들이 바로 난민이고, 바로 임금이 거의 절반으로 낮춰지던 때에 있어서 대부분 난민을 대상으로 했습니다.

◇ 이성규> 그 난민을 이제 받아들이는 문제에 대해서 분위기가 사실은 찬성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좀 부정적으로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지 않습니까? 어떻게 생각하세요?

◆ 압둘 와합> 일단 난 운이 좋아서 그런지 운이 안 좋아서 그런지 모르긴 하지만 난민 찬성하는 사람들도 자주 만나지만 반대하는 사람들도 많이 만납니다, 활동하면서. 그래서 난민 반대하는 사람들의 말을 들으면 뭔가는 공감해요 그 반대하는 마음에 공감해요. 이해해요. 근데 조금만 생각하고 분석하면 그 반대하는 사람들을 가지고 있는 이유들은 대부분 가짜 뉴스를 통해서 나온 의견들 입니다. 한국에서는 가짜 뉴스를 엄청나게 많이 풀고 있는 상태인데요. 따라서 일반 시민들은 그 가짜 뉴스를 보면 당연히 흥분하고 반대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 같은 사람도 만약에 가짜뉴스만 읽으면 한국에 있는 모든 외국인들을 바로 추방시키고 싶어요. 근데 찾아보면 이건 다 말이 안 되는 말이에요. 예를 들어서 난민들이 한국 정부에서는 지원금은 계속 매달 100만 원 이상 받는다. 그럼 일자리가 없는 한국 사람들은 그것만 보면 얼마나 억울하겠어요. 그거 다 거짓말이고. 범죄율 가지고도 이야기해요. 난민들 사이에서 범죄율이 한국 사람들보다는 몇 배 더 많다. 근데 찾아보면 이거 다 거짓말이죠. 그리고 딱 가짜인데요. 그래서 그냥 가짜 뉴스만 보면 반대할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성화는 이해하지만 조금 가짜 뉴스만 잊지 말고 다양한 소식을 찾아보고 판단하기 전에 조금 멈춰서 양쪽 이야기 듣고 다음에는 본인이 판단으로는 자기 마음 흘러가는 반대하든, 찬성하든 그때 하면 제가 섭섭하지 않습니다. 객관적으로 봐야 합니다.

◇ 이성규> 그 이슬람 문화권이라 해서 그 본인이 압둘 와합씨 자신이 좀 차별받은 적도 있나요?

◆ 압둘 와합> 예 많았습니다. 안타깝게 해도 한국에 처음 왔을 때는 저희가 장학금 없었고. 그래서 장학금 찾으러 다니면서는 여기저기 다니면서 예를 들어서 어떤 교수님이 나랑 무슬림이 있기 때문에 나랑 아예 공부 하고 싶지 않다고 그냥 직설적으로는, 직접적으로는 말씀을 하셨고. 그래서 그 대학교에는 못 가게 되었고 다른 대학교에서 공부하게 됐는데. 그리고 생활하면서는 이슬람 때문에 무슬림이기 때문에 계속 공격받았습니다. 지하철 타고 가거나. 어떤 분들은 나를 언론에서 나를 보거나 아니면 얼굴을 아는 사람들은 찾아와서 너 IS 아니야? 너 알카에다 아니야? 너 테러 대원 아니야? 너 나쁜 무슬림이야. 그래 빨리 나가라. 그리고 너는 와이프 몇 명이 있냐고. 나는 결혼도 하지도 않는데 나의 와이프는 개인 생활인데. 이건 한 명이든 열 명이든 결혼해도 이건 내 개인 인생인데. 그래도 거기까지도 간섭하고, 그리고 연락이나 메세지나 이메일이나 많이 받았습니다. ‘빨리 우리나라 나가라, 너 같은 무슬림이 있으면 우리나라가 위험해집니다.’ 이런 식으로 말씀하시는 분들 많고. 식당 하거나 가끔씩 불쾌한 이렇게 표정도 있고 아니면 약간 좀 그냥 오늘 장사 끝났다 하는 데 있었습니다. 한, 두 번 있었습니다.

◇ 이성규> 이런 편견, 차별이 이제 없어져야죠.

◆ 압둘 와합> 당연히 없어야 합니다. 사실 차별은 그냥 코로나보다 더 무서운 병으로 생각은 합니다. 코로나는 마스크로 지금처럼 잘 지키면서는 코로나는 피할 수 있지만 차별은 마음 치료도 필요합니다. 그 차별은 사실 난민만 없으면 차별이 없어지는 건 아니죠. 그냥 내 사이만 달라질 뿐이죠. 지금은 난민이 있기 때문에 모든 차별이 난민으로 외국인한테 가는데 만약 한국에서는 난민이 없고 외국인이 없다. 한국 사람들만 살았으면 그 차별을 계속 한국 사람들끼리 해서 계속 대상으로도 달라질 뿐이죠. 그래서 당연히 차별 없어야 합니다. 그래서 말로만 하면 이것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한국 정부가 나서서 차별 금지법 바로 실시해서 입법해서 통과시켜야지 그래서 누구나 함부로는 다른 사람을 무고한 사람을 이렇게 차별 못하게 해야 합니다.

◇ 이성규> 앞으로 계획이 있으세요?

◆ 압둘 와합> 올해는 헬스 시리아 계획에는 시리아 안에서는 교육 분야에서는 계속 활동할 생각 있고, 지금 모금 활동하고 있는데 시리아 안에서는 두 번째 학교를 여러 개를 세우려고 하고. 내 개인적으로의 먼 계획이라면 시리아 상황이 좋아지면 제가 한국에서 공부했던 해왔던 모든 지식, 민주주의, 문화, 자유를 다 시리아에서 연결해서 실시하고 그래서 시리아와 한국의 다리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문화와 교류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 이성규> 예. 마지막으로 우리 청취자 여러분께 꼭 하시고 싶은 말씀 하시죠.

◆ 압둘 와합> 한 마디 말씀드리고 싶은데 사람은 사람으로만 봤으면 좋겠습니다. 그냥 내 앞에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학생인지, 남성인지, 여성인지, 장애인인지 아닌지. 어떤 사람인지, 난민인지 아닌지. 외국인이냐, 한국인이냐 그거는 전혀 보지 않고. 내 앞에 있는 사람은 사람으로만 봤으면 좋겠고. 그리고 외국인들은, 특히 난민들은 우리 동네에 왔던 손님이다,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고. 손님한테는 따뜻한 대접을 해주면 좋긴 하지만 대접을 못하더라도 차별을 안 했으면 좋겠습니다.

◇ 이성규> 네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헬프 시리아 사무국장이신 압둘 와합 씨 모시고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 압둘 와합> 감사합니다.

◇ 이성규> 예, <이런 사람도 없습니다>는 YTN 라디오 홈페이지와 유튜브를 통해서 다시 들으실 수 있습니다.  


YTN 박준범 (pyh@ytnradi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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