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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 : YTN 라디오 FM 94.5 (15:10~16:00)
■ 날짜 : 2021년 4월 11일 (일요일)
■ 진행 : 이성규 교수
■ 대담 : 박상민 가수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잠시만요] 가수 박상민, 청각장애인 때문에 폭풍 눈물 흘린 사연
◇ 이성규 교수(이하 이성규)> 이름 석 자만으로도 많은 이들에게 믿음을 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눔의 행복을 아는 노래 잘하는 가수 하면 이분이 제일 먼저 생각나는데요. 오늘의 주인공, 부드러운 카리스마 가수 ‘박상민’씨 입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 박상민 가수(이하 박상민)>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 이성규> 이미 너무 유명한 분이라서 많은 분들이 아시겠지만 한 말씀 또 해주시죠.
◆ 박상민> 너무 반갑고요. 오늘도 행복한 시간 보내다가 가도록 하겠습니다.
◇ 이성규> 행복을 아는 카리스마. 이제 벌써 가수 하신 지가 29년 차 되신다고요?
◆ 박상민> 네, 내년이면 30년.
◇ 이성규> 그런데 목소리가 전혀 변하질 않는 것 같아요. 한결같고 처음 박상민씨를 뵐 때 하고 똑같은데 목 관리를 어떻게 하세요?
◆ 박상민> 일단 여러분들이 저에 대한 선입견이 좀 있으세요. 술, 담배 잘하게 생겼다. 외모만 보고. 그런데 제가 술하고 담배를 전혀 (하지 않아요). 담배는 배우지 않았고요. 술은 체질이 좀 안 받아요. 그게 좀 영향이 있는 것 같고 솔직히 연습을 좀 많이 합니다. 음악을 많이 듣고요. 그리고 어릴 때 목을 단련을 많이 시켜놔서 그게 좀 도움이 많이 되고 있어요.
◇ 이성규> 어릴 때 단련이라는 어떤 거예요?
◆ 박상민> 클럽에서 꽤 많은 시간을 하루에 60곡 넘게 그거를 오랜 기간 하다 보니까 굳은살이라고 하죠. 그게 좀.
◇ 이성규> 목 근육. 발성 근육이 생기셨군요.
◆ 박상민> 예를 들어서 오늘 저녁에 콘서트를 해서 1, 2회에서 한 60곡을 불러서 목이 아프잖아요? 그러면 그 다음날 복구가 굉장히 빨라요.
◇ 이성규> 그러시군요. 그러면 요즘은 좀 어떻게 지내세요? 코로나 19 이게 참 많은 공연 풍속도 바꾸고 그랬는데 이제 뮤지션분들은 이 부분들을 어떻게 극복하고 있는지 그게 참 궁금하기도 합니다.
◆ 박상민> 다 어려운데 가수나 특히 연예인들 어디서 어렵다고 얘기하면 오히려 뭐라고 하시니까 다 같이 어려운 거니까요. 그런데 한 가지 진짜 속상한 건 매일 하던 노래를 15개월 가까이 거의 못 하니까 그게 막 힘들어요. 그리고 노래할 기회가 방송이나 이런 데에 있으면 가사를 살펴본다든지 전에는 그냥 자연스럽게 나오는데 하도 안 부르다 보니까 가사가 생각 안 날까 봐요.
◇ 이성규> 그러시구나.
◆ 박상민> 사실적인 얘기입니다. 이게.
◇ 이성규> 부르는 기회가 이제 줄어서 생기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래도 곡 작업은 계속하고 계시죠?
◆ 박상민> 그럼요. 저는 3개월에 한 곡씩 꼭 노래를 신곡을 내고 있고요. 지금 드라마 주제곡 지금 한창 나오고 있고 지금 또 제 장르는 아니지만 감히 침범할 생각은 없어요. 이제 약간 트롯풍의 진짜 괜찮은 노래를 어떤 작곡가분이 저한테 딜이 와서 한번 서비스 차원으로 조만간에 나옵니다.
◇ 이성규> 이제 곧 나오는군요.
◆ 박상민> 노래 잘 나왔더라고요.
◇ 이성규> 그래요?
◆ 박상민> 네.
◇ 이성규> 그 노래 제목도 좀.
◆ 박상민> ‘사랑이 또, 또’
◇ 이성규> ‘사랑이 또, 또’?
◆ 박상민> 사랑이 또, 또 나를 울리는 이런 식의.
◇ 이성규> 한번 들어봐야 되겠습니다.
◆ 박상민> 네.
◇ 이성규> 그럼 이제 다른 일도 좀 하시나요?
◆ 박상민> 노래는 안 하다뿐이지 그래도 일은 계속 있는 게 뭐냐면 금전적으로 그런 일이 아니고 부탁이 좀 많아요. 그런데 그걸 해주는게 저한테 굉장히 기쁨이기 때문에요. 주말에는 거의 축가 부탁을 많이 받고 축가를 거의 진짜 매주 해주러 전국 다 다니고 있습니다. 당연히 의리로.
◇ 이성규> 의리로?
◆ 박상민> 예.
◇ 이성규> 그 시간도 참 행복한 시간일 것 같아요.
◆ 박상민> 예, 저는 희한하게 촌놈인데 저로 인해서 상대편이 기뻐하면 그게 그렇게 저는 행복하더라고요.
◇ 이성규> 네, 촌이면 어디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 박상민> 평택입니다. 평택.
◇ 이성규> 평택. 도시죠.
◆ 박상민> 그런데 서울 빼고는 다 촌놈이라고 하잖아요. 우리가.
◇ 이성규> 이제 본격적으로 가수 ‘박상민’에 관한 얘기를 좀 해볼 텐데요. 가수가 어릴 때부터 꿈꿔 왔던 직업인가요? 어떻게 시작하셨어요?
◆ 박상민> 저는 아주 어릴 땐 기억 안 나는데, 어제도 남진 형님을 뵙는데 제가 6살 때 남진 형님의 님과 함께를 불러서 1등 해서 쌀 한 가마니를 탔답니다. 사진은 있더라고요. 그렇게 어릴 때부터 엄마, 아버지 계모임, 동네 분들 (있는 곳) 그런 데에 꼭 같이 다니면서 노래하고 그니까 어릴 때부터 부모님도 제가 노래하는 걸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저도 꿈이라기보다는 다른 걸 할 줄 아는 게 없었어요. 노래만.
◇ 이성규> 예, 그런데 1993년에 데뷔한 거로 나오더라고요. 기록에. 그때 어떤 방식으로 데뷔를 하셨어요?
◆ 박상민> 그 전에 호랑나비라는 언더그라운드 다운 타운가에서 굉장히 유명했던 그룹이 있어요. 클럽에서. 그 그룹에서 리드 보컬를 하고 있었는데 가요 관계자, 제작사께서 저는 몇 달 동안 계속 와서 봤대요. 클럽에서. 그래서 어느 날 계약하자고 해서 딱 92년도에 계약을 하고 계약금으로 우리나라에서 그 당시 괜찮은 중형차를 딱 그걸로 차를 사주더라고요.
◇ 이성규> 계약금으로?
◆ 박상민> 차도 안 타고 다녔어요. 너무 아까워가지고.
◇ 이성규> 93년이면 그때 중형차면 뭘까요?
◆ 박상민> 소들만 타는 타였어요.
◇ 이성규> 네, 소들만 타는 차. 그러시군요. 어쨌든 그때도 지금 같은 선글라스나 수염 이 부분이 하나의 마크였어요? 박상민 하면.
◆ 박상민> 1집 때는 그렇게 했었어요. 선글라스하고 수염 있고 그랬는데 방송에서 자주 한 얘기인데 2집 때 ‘멀어져 간 사람아’할 때 교수님처럼 안경을 눈이 보이는 안경 그리고 수염을 다 깎고 그때 제작자의 실수로 판단 미스로 그렇게 나간 거예요. ‘멀어져 간 사람아’ 한참 막 엄청 올라왔을 때 거든요. 그런데 수염 없지 눈 보이는 안경 쓰고 딱 나가니까 앨범 판매가 하루에 만장, 2만 장씩 나갔었는데 앨범판매가 뚝 떨어지더라고요.
◇ 이성규> 멀어져갔네요.
◆ 박상민> 수염 하나 깎았고. 그래서 다시 싹 돌아와서 며칠 동안 수염 기르고 다시 그때부터는 한 번도 안경 안 벗고.
◇ 이성규> 그게 에너지네요. 에너지.
◆ 박상민> 맞습니다.
◇ 이성규> 그리고 심지어 주민등록증 사진도 선글라스 끼고 찍었어요?
◆ 박상민> 예, 아주 오래전 얘기인데 인터넷 쳐보면 아직도 나와요. 지금은 그게 큰일나죠. 법적으로도 그렇고. 동사무소를 갔는데 그때 직원분이 박상민씨 선글라스를 벗으면 오히려 몰라보니까 그래서 쓰라고 해가지고 완전 눈이 안 보이는 건 아니고 색깔이 들어가있는 안경을 쓰고 찍었어요. 그게 인터넷 쳐보면 아직도 좀 짤로 많이 돌아다니고 있더라고요.
◇ 이성규> 예, 지금은 바꾸셨어요?
◆ 박상민> 그럼요.
◇ 이성규> 예, 지금까지 이제 92년이라고 말씀을 드렸는데 한 30년 가까이 쭉 음악 관련돼서 살아오시는데 이 직업이 어느 직업이든 다 그렇든지 스트레스 또 슬럼프 이런 것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떠셨어요?
◆ 박상민> 저는 슬럼프는 거의 감사드리게도 없었던 것 같고요. 중간, 중간에 저를 사칭했던 친구가 한 명 있어가지고 그것 때문에 좀 속상해서 그랬던 적이 있고.
◇ 이성규> 사칭?
◆ 박상민> 예, 가짜 박상민 해가지고 굉장히 시끄러운 사건이었죠. 박상민으로 그냥 립싱크하고서 아예 활동을 한 거예요. 그냥. 제가 받은 페이의 100분의 1. 그니까 저는 자존심이 너무 상했던 거죠. 환갑잔치 이런 데도 간 거예요. 저로 (사칭해서).
◇ 이성규> 선글라스 끼고 수염 기르고?
◆ 박상민> 예, 립싱크하고 싸인 똑같이. 한번 생각해보시면 됩니다. 누가 교수님을 비슷하게 싹 꾸미고 교수님 행세를 한 거예요.
◇ 이성규> 강의료도 싸게 해가지고 다니고. 그럼 이성규 가치가 팍팍 떨어지는데요. 그걸 어떻게 찾으셨어요? 신고를 받으셨나요?
◆ 박상민> 제 친조카한테 ‘삼촌 이런 데도 출현해?’ 그래서 사진을 보내왔는데 독산동에 어떤 건물에 전체 다 제 얼굴처럼 이름도 없고 전격 출현. 그런데 저인 줄 알았죠. 그런데 처음에는‘나도 이미 대신 가수가 있구나’ 되게 좋아했었어요. 솔직히. 그런데 알고 봤더니 너무 심해서 제가 몇 번 만났어요. 그 이름은 됐겠냐. 저 볼 때는 잘못했다고 그러고 계속해요. 그래서 법에 호소를 해서 결국은 제가 그냥 용서했습니다.
◇ 이성규> 참 그런 일도 있으셨군요. 그런데 오랫동안 계속해서 음악활동을 해오셨는데 아까 수염과 선글라스가 에너지라고 생각을 했는데 그런 것들을 쭉 유지할 수 있는 멘탈, 그거는 어떤 거예요?
◆ 박상민> 아무래도 저는 아까도 초반에 말씀드렸는데 할 줄 아는게 노래밖에 없어요. 음악이랑. 그리고 속상한 일이 있거나 어떤 일이 있어도 이 음악을 하면 제가 싹 잊어버리더라고요. 그리고 이거를 못 끊는게 저로 인해서 사람들이 울고 웃고 하는게 저는 너무 짜릿합니다.
◇ 이성규> 네, 이제 발표하신 노래가 참 많은데‘멀어져 간 사람아’아까 말씀하셨던 그다음에 ’해바라기‘ 이런 애절한 곡도 있고요. ’청바지 아가씨‘, ’무기여 잘있거라‘ 이런 부분들은 좀 밝고 경쾌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제 음악인으로서 나는 노래를 통해서 세상에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다, 라는 그게 있습니까?
◆ 박상민> 아무래도 이제 제 실화라고 해야 되나요? 제가 살아왔던 걸 작사가한테 그대로 전달해서 나오는 경우도 있고 영화를 볼 때도 저는 그 주인공이 저라고 생각하고 보거든요. 그래서 모든 노래에 웬만하면 사실적으로 좀 그런 걸 원하는 편입니다.
◇ 이성규> 네, 사실을. 나를 투영해서?
◆ 박상민> 네, 거의. 그래서 특히 슬픈 노래 같은 거 할 때는 열렬히 슬픈 생각을 하면서 노래를 해요. 예전에 있던 일도 있고. 교수님이 또 웃으실지도 모르겠지만 키우던 강아지가 하늘나라 갔을 때 너무 슬픈 그런 감정을 생각하면서 부를 때도 있고요. 지금 그런 친구들을 못 잊죠.
◇ 이성규> 결국은 나를 노래 부르네요. 나를 부르시는구나.
◆ 박상민> 네.
◇ 이성규> 그런데 이제 그렇게 많은 노래 중에서도 그래도 자꾸 정이 가는 노래가 좀 있습니까? 나는 내 노래 중에서는 이 노래가 참, 이 노래를 부를 때 제일 행복하다. 이 노래에 정이 간다.
◆ 박상민> 굳이 한 곡을 좀 고르자면 두 곡 정도 있을 수 있는데 박상민을 만들어준 ’멀어져 간 사람아‘가 있을 테고요. 또 비원(悲願)이라는 노래가 있어요. 이 노래는 남자의 마음을 그대로 표현한 가사기 때문에 ’나는 아무렇지 않아‘, 헤어졌는데 나는 슬퍼 그런 게 아니라 너만 행복 해준다면 너를 너무 사랑했어.
◇ 이성규> 지금 한번 듣고 싶은데 방송이 짧아서 못 듣네요. 그런데 이쯤 되면 출연하시는 분들이 노래 하나를 이제 골라주세요. 물론 이제 박상민씨의 노래를 좀 골라주세요.
◆ 박상민> 그럴까요? 코로나 때문에 15개월 동안 여러분들 어디 마음 편히 여행도 못 가시고 놀러도 못 가셨기 때문에 이 노래 듣고 이제 코로나 끝나면 마음대로 여행 가시라고 ’지중해‘라는 노래를 듣고 싶어요.
◇ 이성규> ’지중해‘. 한번 지중해로 떠났다가 오겠습니다. 박상민의 ’지중해‘입니다. 네, ’지중해‘를 듣고 오셨습니다. 이성규의 행복한 쉼표, 잠시만요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믿고 듣는 목소리, 가수 ’박상민‘씨입니다. 이제 기부 천사 박상민 이야기를 좀 해보고 싶어요. 사실 처음부터 이 말씀 드리고 싶었는데 박상민 그러면 수식어가 기부 천사더라고요? 기록에 봤더니. 돈도 여기저기 기부를 많이 하신 것 같고 여기저기 가서 아까 축가 말씀도 하시고 그랬는데 이런 나눔과 행복, 이 부분이 인생관 속에 좀 깊이 들어가 있는 것 같습니다.
◆ 박상민> 예, 부모님한테 물려받은 약간 마음이 여리고 꼴을 못 보는 그런 걸 좀 물려받은 것 같아요.
◇ 이성규> 꼴을. 이제 어려운 사람 꼴을 못 본다?
◆ 박상민> 그런 것보다 막 부당하고 그런 거 있잖아요? 그럴 땐 또 다혈질이에요. 그러다 보니까 이제 충분히 사람들은 도와줄 수 있고 그럴 수 있는데 왜 가만히 있을까, 주위에서. 그런 걸 막 못 참겠어요. 그러다 보니까 이제 자연스럽게 그렇게 하게 됐고요.
◇ 이성규> 그러시군요. 본격적으로 한번 하시다 보면 이게 기부도 습관이 되거든요? 그리고 돈 많이 벌어서 한다 그러면 많이 벌어도 못 하는 분이 많고요. 없을 때부터 해야 된다고 그러던데요. 지금 처음 언제부터 이렇게 시작하셨어요? 기부한 지.
◆ 박상민> 마음이 약한 건 가수 데뷔 전부터 마음이 약하고 여리고 그랬지만 가수 때부터 시작하자면 데뷔하고 나서 ’멀어져 간 사람아‘가 바로 이제 사랑을 받아서 제가 고향에서 3일 동안 콘서트를 한 적이 있어요. 그때 보면 기억나는 게 아직도 공연장에 플랜카드로 ’장하다 평택의 아들‘, 저는 그거 티비에서만 봤거든요. 그런데 3일 동안 수익금 전액을 독거노인하고, 결식아동 그 쪽에 다 (기부했죠)
◇ 이성규> 평택 쪽으로요?
◆ 박상민> 네, 평택 쪽으로.
◇ 이성규> 예, 그 분들 진짜 행복한 순간을 맞으셨네요. 장한 평택의 아들 때문에.
◆ 박상민> 그래가지고 그때부터 제가 속으로 지금도 그렇습니다. ’박상민 출세했네‘ 그런 생각합니다. 지금도.
◇ 이성규> 지금 여러 가지 기부활동을 하셨더라고요. 가수로서 재능기부도 하시고 공연 수익금으로 기부한 훨체어도 보니까 수백 개가 넘고.
◆ 박상민> 사실 훨씬 넘죠. 황기순가 먼저 시작을 한 건데요. 19년 동안 황기순씨가 했고 저는 이제 16년 동안 같이 이렇게 하고 있는데 황기순씨 대단합니다. 진짜. 여기 한 번 불러주셔야 돼요.
◇ 이성규> 그럴까요? 다음에 담당피디를 향해서 다시 한번 얘기하겠습니다. 담당피디가 오케이 사인을 보냈습니다.
◆ 박상민> 황기순씨가 예전에 실수 해가지고 그걸 눈에 보이게 좀 만회하려고 눈에 보이게 했는데 그냥 이쪽에 완전히 빠지신 거예요.
◇ 이성규> 좋네요.
◆ 박상민> 예, 그것도 길거리에서 매년 8월 제일 더울 때 길거리에서 노래하고 모금을 합니다.
◇ 이성규> 또 사랑의 열매 이런 쪽에도 많이 하시고 그러셨죠.
◆ 박상민> 거기 또 홍보대사기도 하고요.
◇ 이성규> 지금까지 나눔 활동하시면 그래도 참 뿌듯했던 것 제일, 가장 가슴에 남는 뿌듯함. 그건 어떤 계기였어요?
◆ 박상민> 귀가 안 들리는 아이들. 그 아이들한테 수술비 지원하고 그렇게 해서 그 친구들이 잘 못 들으니까 말도 어눌했잖아요? 그런데 보청기가 너무 요즘 잘 나와서 그걸 딱 수술하고나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할 때. 그거는 진짜 영화예요. 영화.
◇ 이성규> 그니까 인생을 확 바꿔 놓으신 거네요.
◆ 박상민> 그냥 눈물이 쫙 쏟아집니다.
◇ 이성규> 그런데 이제 어려운 사람들을 안 돕는 꼴을 못 본다, 그런 말씀도 하시고 그러다 보면 여기저기서 막 부탁이 들어올 텐데 그거 들어 들이다 보면 진짜 본업에 손상이 오는 경우는 없어요?
◆ 박상민> 솔직히 말씀드릴까요? 진짜 제가 보니까 다른 연예인들 보니까 예를 들어서 교수님하고 돼가지고 내일 무슨 일을 해서 제가 가기로 했어요. 그런데 오늘 저녁에 돈 버는 행사가 잡혔다고 내일 가는 교수님 행사를 안 가는 연예인들이 거의 그렇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그 자체를 이해를 못하겠어요. 혼났어요. 후배들 저한테 몇 명. 저는 굳이 생색을 내자면 행사가 먼저 잡히고 누가 부탁한 거하면 저는 행사를 취소합니다. 돈 버는 거를. 회사에서는 피곤해하죠.
◇ 이성규> 그렇죠. ’팍스뮤직‘에서요?
◆ 박상민> 예, 그런데 저는 그렇게 합니다. 진짜.
◇ 이성규> 참 화끈한 박상민. 진짜 정말 멋있습니다. 그런데 사실이요. 그게 좋은 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요즘 공익 광고보면 어려운 사람들 막 어렵게 그려 가지고 내보내는 그런 장면들이 좋은 건지, 안 좋은 건지 모르겠는데 거기에 참여하는 분도 그런 걸 보고도 참여 안 하는 분들도 있고 그렇잖아요? 기부 대열에 어떻게 하면 좀 참여를 많은 분들을 시킬 수 있을까요?
◆ 박상민> 어렵게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저는 아까 말씀했듯이 고향에서 그렇게 시작했지만 저는 지금도 천원, 2천원 짜리 ARS 나오면 해요. 그거부터 시작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진짜 어려운 게 아니거든요. 그 ARS 2천원, 천원 그거 한 번만 한번 해보세요. 그러면 여러분들 전신으로 피가 막 따뜻한 게 막 돌 겁니다. 희한하다니까요.
◇ 이성규> 에돌핀?
◆ 박상민> 예.
◇ 이성규> 오늘이 4월 11일인데요. 나흘 뒤에 콘서트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 박상민> 예, 이제 교수님 고향 가까운 데서.
◇ 이성규> 충청도?
◆ 박상민> 예, 공주에서 4월 15일 날 거기서 있고요. 4월 원래 24일 날 대구 콘서트 있었는데 한 달 밀렸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5월로 밀렸고요. 15일 공주는 정상적으로 거리두기 해서 하기로 했습니다.
◇ 이성규> 공주분들 대단히 좋아하시겠네요.
◆ 박상민> 아마 많이 좋아하실 겁니다.
◇ 이성규> 요즘 참 귀한 기회를 얻었네요. 그분들은. 그런데 앞으로도 이제 가수 ’박상민‘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으세요?
◆ 박상민> 저는 1인 자 스타일이 아니에요.
◇ 이성규> 1인 자 스타일은 아니다? 기부는 거의 1인 자이신데요? 기부하시면.
◆ 박상민> 아니요. 그거 말고 가수로 하면 ’박상민 그래‘ 이 정도만 해도 저는 대만족입니다. 예를 들어 가수들이 많이 나오는 경영 프로 이런 데도 보면 항상 저를 끼워주시는 게 저는 항상 감사드리죠. ’박상민 노래 잘하지‘ 이 정도면 충분히 만족하고요. 앞으로도 ’이제 그만해‘ 이런 소리 나올 때까지는 열심히 할 겁니다.
◇ 이성규> 예, 올해 다른 또 계획 있으신가요?
◆ 박상민> 코로나가 이제 빨리 제발 끝났으면 하는 게 제 소원이고요. 노래 좀 많이 했으면 좋겠고 신곡 계속 내고 있으니까 이제 며칠 있으면 아까 말씀드린 노래 이제 나옵니다. 열심히 해야죠.
◇ 이성규> 참 청취자 여러분들도 상당히 에너지를 받고 계신 것 같은데 마지막으로 우리 박상민씨가 청취자 여러분들한테 하시고 싶은 말씀 있으면 해주시죠.
◆ 박상민> 여러분들 다 힘들게 진짜 고생하셨고 잘 견디셨습니다. 조금만 더 견디시면 좋은 일이 올 거라고 분명히 저는 믿습니다. 행복하시고 건강 꼭 챙기세요.
◇ 이성규> 네,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오늘은 가수 ’박상민‘씨와 이야기 나눠봤는데요. 좋은 말씀 대단히 감사합니다.
◆ 박상민> 예, 감사합니다.
◇ 이성규>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는 ytn라디오 홈페이지와 유튜브를 통해서 다시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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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짜 : 2021년 4월 11일 (일요일)
■ 진행 : 이성규 교수
■ 대담 : 박상민 가수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잠시만요] 가수 박상민, 청각장애인 때문에 폭풍 눈물 흘린 사연
◇ 이성규 교수(이하 이성규)> 이름 석 자만으로도 많은 이들에게 믿음을 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눔의 행복을 아는 노래 잘하는 가수 하면 이분이 제일 먼저 생각나는데요. 오늘의 주인공, 부드러운 카리스마 가수 ‘박상민’씨 입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 박상민 가수(이하 박상민)>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 이성규> 이미 너무 유명한 분이라서 많은 분들이 아시겠지만 한 말씀 또 해주시죠.
◆ 박상민> 너무 반갑고요. 오늘도 행복한 시간 보내다가 가도록 하겠습니다.
◇ 이성규> 행복을 아는 카리스마. 이제 벌써 가수 하신 지가 29년 차 되신다고요?
◆ 박상민> 네, 내년이면 30년.
◇ 이성규> 그런데 목소리가 전혀 변하질 않는 것 같아요. 한결같고 처음 박상민씨를 뵐 때 하고 똑같은데 목 관리를 어떻게 하세요?
◆ 박상민> 일단 여러분들이 저에 대한 선입견이 좀 있으세요. 술, 담배 잘하게 생겼다. 외모만 보고. 그런데 제가 술하고 담배를 전혀 (하지 않아요). 담배는 배우지 않았고요. 술은 체질이 좀 안 받아요. 그게 좀 영향이 있는 것 같고 솔직히 연습을 좀 많이 합니다. 음악을 많이 듣고요. 그리고 어릴 때 목을 단련을 많이 시켜놔서 그게 좀 도움이 많이 되고 있어요.
◇ 이성규> 어릴 때 단련이라는 어떤 거예요?
◆ 박상민> 클럽에서 꽤 많은 시간을 하루에 60곡 넘게 그거를 오랜 기간 하다 보니까 굳은살이라고 하죠. 그게 좀.
◇ 이성규> 목 근육. 발성 근육이 생기셨군요.
◆ 박상민> 예를 들어서 오늘 저녁에 콘서트를 해서 1, 2회에서 한 60곡을 불러서 목이 아프잖아요? 그러면 그 다음날 복구가 굉장히 빨라요.
◇ 이성규> 그러시군요. 그러면 요즘은 좀 어떻게 지내세요? 코로나 19 이게 참 많은 공연 풍속도 바꾸고 그랬는데 이제 뮤지션분들은 이 부분들을 어떻게 극복하고 있는지 그게 참 궁금하기도 합니다.
◆ 박상민> 다 어려운데 가수나 특히 연예인들 어디서 어렵다고 얘기하면 오히려 뭐라고 하시니까 다 같이 어려운 거니까요. 그런데 한 가지 진짜 속상한 건 매일 하던 노래를 15개월 가까이 거의 못 하니까 그게 막 힘들어요. 그리고 노래할 기회가 방송이나 이런 데에 있으면 가사를 살펴본다든지 전에는 그냥 자연스럽게 나오는데 하도 안 부르다 보니까 가사가 생각 안 날까 봐요.
◇ 이성규> 그러시구나.
◆ 박상민> 사실적인 얘기입니다. 이게.
◇ 이성규> 부르는 기회가 이제 줄어서 생기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래도 곡 작업은 계속하고 계시죠?
◆ 박상민> 그럼요. 저는 3개월에 한 곡씩 꼭 노래를 신곡을 내고 있고요. 지금 드라마 주제곡 지금 한창 나오고 있고 지금 또 제 장르는 아니지만 감히 침범할 생각은 없어요. 이제 약간 트롯풍의 진짜 괜찮은 노래를 어떤 작곡가분이 저한테 딜이 와서 한번 서비스 차원으로 조만간에 나옵니다.
◇ 이성규> 이제 곧 나오는군요.
◆ 박상민> 노래 잘 나왔더라고요.
◇ 이성규> 그래요?
◆ 박상민> 네.
◇ 이성규> 그 노래 제목도 좀.
◆ 박상민> ‘사랑이 또, 또’
◇ 이성규> ‘사랑이 또, 또’?
◆ 박상민> 사랑이 또, 또 나를 울리는 이런 식의.
◇ 이성규> 한번 들어봐야 되겠습니다.
◆ 박상민> 네.
◇ 이성규> 그럼 이제 다른 일도 좀 하시나요?
◆ 박상민> 노래는 안 하다뿐이지 그래도 일은 계속 있는 게 뭐냐면 금전적으로 그런 일이 아니고 부탁이 좀 많아요. 그런데 그걸 해주는게 저한테 굉장히 기쁨이기 때문에요. 주말에는 거의 축가 부탁을 많이 받고 축가를 거의 진짜 매주 해주러 전국 다 다니고 있습니다. 당연히 의리로.
◇ 이성규> 의리로?
◆ 박상민> 예.
◇ 이성규> 그 시간도 참 행복한 시간일 것 같아요.
◆ 박상민> 예, 저는 희한하게 촌놈인데 저로 인해서 상대편이 기뻐하면 그게 그렇게 저는 행복하더라고요.
◇ 이성규> 네, 촌이면 어디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 박상민> 평택입니다. 평택.
◇ 이성규> 평택. 도시죠.
◆ 박상민> 그런데 서울 빼고는 다 촌놈이라고 하잖아요. 우리가.
◇ 이성규> 이제 본격적으로 가수 ‘박상민’에 관한 얘기를 좀 해볼 텐데요. 가수가 어릴 때부터 꿈꿔 왔던 직업인가요? 어떻게 시작하셨어요?
◆ 박상민> 저는 아주 어릴 땐 기억 안 나는데, 어제도 남진 형님을 뵙는데 제가 6살 때 남진 형님의 님과 함께를 불러서 1등 해서 쌀 한 가마니를 탔답니다. 사진은 있더라고요. 그렇게 어릴 때부터 엄마, 아버지 계모임, 동네 분들 (있는 곳) 그런 데에 꼭 같이 다니면서 노래하고 그니까 어릴 때부터 부모님도 제가 노래하는 걸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저도 꿈이라기보다는 다른 걸 할 줄 아는 게 없었어요. 노래만.
◇ 이성규> 예, 그런데 1993년에 데뷔한 거로 나오더라고요. 기록에. 그때 어떤 방식으로 데뷔를 하셨어요?
◆ 박상민> 그 전에 호랑나비라는 언더그라운드 다운 타운가에서 굉장히 유명했던 그룹이 있어요. 클럽에서. 그 그룹에서 리드 보컬를 하고 있었는데 가요 관계자, 제작사께서 저는 몇 달 동안 계속 와서 봤대요. 클럽에서. 그래서 어느 날 계약하자고 해서 딱 92년도에 계약을 하고 계약금으로 우리나라에서 그 당시 괜찮은 중형차를 딱 그걸로 차를 사주더라고요.
◇ 이성규> 계약금으로?
◆ 박상민> 차도 안 타고 다녔어요. 너무 아까워가지고.
◇ 이성규> 93년이면 그때 중형차면 뭘까요?
◆ 박상민> 소들만 타는 타였어요.
◇ 이성규> 네, 소들만 타는 차. 그러시군요. 어쨌든 그때도 지금 같은 선글라스나 수염 이 부분이 하나의 마크였어요? 박상민 하면.
◆ 박상민> 1집 때는 그렇게 했었어요. 선글라스하고 수염 있고 그랬는데 방송에서 자주 한 얘기인데 2집 때 ‘멀어져 간 사람아’할 때 교수님처럼 안경을 눈이 보이는 안경 그리고 수염을 다 깎고 그때 제작자의 실수로 판단 미스로 그렇게 나간 거예요. ‘멀어져 간 사람아’ 한참 막 엄청 올라왔을 때 거든요. 그런데 수염 없지 눈 보이는 안경 쓰고 딱 나가니까 앨범 판매가 하루에 만장, 2만 장씩 나갔었는데 앨범판매가 뚝 떨어지더라고요.
◇ 이성규> 멀어져갔네요.
◆ 박상민> 수염 하나 깎았고. 그래서 다시 싹 돌아와서 며칠 동안 수염 기르고 다시 그때부터는 한 번도 안경 안 벗고.
◇ 이성규> 그게 에너지네요. 에너지.
◆ 박상민> 맞습니다.
◇ 이성규> 그리고 심지어 주민등록증 사진도 선글라스 끼고 찍었어요?
◆ 박상민> 예, 아주 오래전 얘기인데 인터넷 쳐보면 아직도 나와요. 지금은 그게 큰일나죠. 법적으로도 그렇고. 동사무소를 갔는데 그때 직원분이 박상민씨 선글라스를 벗으면 오히려 몰라보니까 그래서 쓰라고 해가지고 완전 눈이 안 보이는 건 아니고 색깔이 들어가있는 안경을 쓰고 찍었어요. 그게 인터넷 쳐보면 아직도 좀 짤로 많이 돌아다니고 있더라고요.
◇ 이성규> 예, 지금은 바꾸셨어요?
◆ 박상민> 그럼요.
◇ 이성규> 예, 지금까지 이제 92년이라고 말씀을 드렸는데 한 30년 가까이 쭉 음악 관련돼서 살아오시는데 이 직업이 어느 직업이든 다 그렇든지 스트레스 또 슬럼프 이런 것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떠셨어요?
◆ 박상민> 저는 슬럼프는 거의 감사드리게도 없었던 것 같고요. 중간, 중간에 저를 사칭했던 친구가 한 명 있어가지고 그것 때문에 좀 속상해서 그랬던 적이 있고.
◇ 이성규> 사칭?
◆ 박상민> 예, 가짜 박상민 해가지고 굉장히 시끄러운 사건이었죠. 박상민으로 그냥 립싱크하고서 아예 활동을 한 거예요. 그냥. 제가 받은 페이의 100분의 1. 그니까 저는 자존심이 너무 상했던 거죠. 환갑잔치 이런 데도 간 거예요. 저로 (사칭해서).
◇ 이성규> 선글라스 끼고 수염 기르고?
◆ 박상민> 예, 립싱크하고 싸인 똑같이. 한번 생각해보시면 됩니다. 누가 교수님을 비슷하게 싹 꾸미고 교수님 행세를 한 거예요.
◇ 이성규> 강의료도 싸게 해가지고 다니고. 그럼 이성규 가치가 팍팍 떨어지는데요. 그걸 어떻게 찾으셨어요? 신고를 받으셨나요?
◆ 박상민> 제 친조카한테 ‘삼촌 이런 데도 출현해?’ 그래서 사진을 보내왔는데 독산동에 어떤 건물에 전체 다 제 얼굴처럼 이름도 없고 전격 출현. 그런데 저인 줄 알았죠. 그런데 처음에는‘나도 이미 대신 가수가 있구나’ 되게 좋아했었어요. 솔직히. 그런데 알고 봤더니 너무 심해서 제가 몇 번 만났어요. 그 이름은 됐겠냐. 저 볼 때는 잘못했다고 그러고 계속해요. 그래서 법에 호소를 해서 결국은 제가 그냥 용서했습니다.
◇ 이성규> 참 그런 일도 있으셨군요. 그런데 오랫동안 계속해서 음악활동을 해오셨는데 아까 수염과 선글라스가 에너지라고 생각을 했는데 그런 것들을 쭉 유지할 수 있는 멘탈, 그거는 어떤 거예요?
◆ 박상민> 아무래도 저는 아까도 초반에 말씀드렸는데 할 줄 아는게 노래밖에 없어요. 음악이랑. 그리고 속상한 일이 있거나 어떤 일이 있어도 이 음악을 하면 제가 싹 잊어버리더라고요. 그리고 이거를 못 끊는게 저로 인해서 사람들이 울고 웃고 하는게 저는 너무 짜릿합니다.
◇ 이성규> 네, 이제 발표하신 노래가 참 많은데‘멀어져 간 사람아’아까 말씀하셨던 그다음에 ’해바라기‘ 이런 애절한 곡도 있고요. ’청바지 아가씨‘, ’무기여 잘있거라‘ 이런 부분들은 좀 밝고 경쾌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제 음악인으로서 나는 노래를 통해서 세상에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다, 라는 그게 있습니까?
◆ 박상민> 아무래도 이제 제 실화라고 해야 되나요? 제가 살아왔던 걸 작사가한테 그대로 전달해서 나오는 경우도 있고 영화를 볼 때도 저는 그 주인공이 저라고 생각하고 보거든요. 그래서 모든 노래에 웬만하면 사실적으로 좀 그런 걸 원하는 편입니다.
◇ 이성규> 네, 사실을. 나를 투영해서?
◆ 박상민> 네, 거의. 그래서 특히 슬픈 노래 같은 거 할 때는 열렬히 슬픈 생각을 하면서 노래를 해요. 예전에 있던 일도 있고. 교수님이 또 웃으실지도 모르겠지만 키우던 강아지가 하늘나라 갔을 때 너무 슬픈 그런 감정을 생각하면서 부를 때도 있고요. 지금 그런 친구들을 못 잊죠.
◇ 이성규> 결국은 나를 노래 부르네요. 나를 부르시는구나.
◆ 박상민> 네.
◇ 이성규> 그런데 이제 그렇게 많은 노래 중에서도 그래도 자꾸 정이 가는 노래가 좀 있습니까? 나는 내 노래 중에서는 이 노래가 참, 이 노래를 부를 때 제일 행복하다. 이 노래에 정이 간다.
◆ 박상민> 굳이 한 곡을 좀 고르자면 두 곡 정도 있을 수 있는데 박상민을 만들어준 ’멀어져 간 사람아‘가 있을 테고요. 또 비원(悲願)이라는 노래가 있어요. 이 노래는 남자의 마음을 그대로 표현한 가사기 때문에 ’나는 아무렇지 않아‘, 헤어졌는데 나는 슬퍼 그런 게 아니라 너만 행복 해준다면 너를 너무 사랑했어.
◇ 이성규> 지금 한번 듣고 싶은데 방송이 짧아서 못 듣네요. 그런데 이쯤 되면 출연하시는 분들이 노래 하나를 이제 골라주세요. 물론 이제 박상민씨의 노래를 좀 골라주세요.
◆ 박상민> 그럴까요? 코로나 때문에 15개월 동안 여러분들 어디 마음 편히 여행도 못 가시고 놀러도 못 가셨기 때문에 이 노래 듣고 이제 코로나 끝나면 마음대로 여행 가시라고 ’지중해‘라는 노래를 듣고 싶어요.
◇ 이성규> ’지중해‘. 한번 지중해로 떠났다가 오겠습니다. 박상민의 ’지중해‘입니다. 네, ’지중해‘를 듣고 오셨습니다. 이성규의 행복한 쉼표, 잠시만요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믿고 듣는 목소리, 가수 ’박상민‘씨입니다. 이제 기부 천사 박상민 이야기를 좀 해보고 싶어요. 사실 처음부터 이 말씀 드리고 싶었는데 박상민 그러면 수식어가 기부 천사더라고요? 기록에 봤더니. 돈도 여기저기 기부를 많이 하신 것 같고 여기저기 가서 아까 축가 말씀도 하시고 그랬는데 이런 나눔과 행복, 이 부분이 인생관 속에 좀 깊이 들어가 있는 것 같습니다.
◆ 박상민> 예, 부모님한테 물려받은 약간 마음이 여리고 꼴을 못 보는 그런 걸 좀 물려받은 것 같아요.
◇ 이성규> 꼴을. 이제 어려운 사람 꼴을 못 본다?
◆ 박상민> 그런 것보다 막 부당하고 그런 거 있잖아요? 그럴 땐 또 다혈질이에요. 그러다 보니까 이제 충분히 사람들은 도와줄 수 있고 그럴 수 있는데 왜 가만히 있을까, 주위에서. 그런 걸 막 못 참겠어요. 그러다 보니까 이제 자연스럽게 그렇게 하게 됐고요.
◇ 이성규> 그러시군요. 본격적으로 한번 하시다 보면 이게 기부도 습관이 되거든요? 그리고 돈 많이 벌어서 한다 그러면 많이 벌어도 못 하는 분이 많고요. 없을 때부터 해야 된다고 그러던데요. 지금 처음 언제부터 이렇게 시작하셨어요? 기부한 지.
◆ 박상민> 마음이 약한 건 가수 데뷔 전부터 마음이 약하고 여리고 그랬지만 가수 때부터 시작하자면 데뷔하고 나서 ’멀어져 간 사람아‘가 바로 이제 사랑을 받아서 제가 고향에서 3일 동안 콘서트를 한 적이 있어요. 그때 보면 기억나는 게 아직도 공연장에 플랜카드로 ’장하다 평택의 아들‘, 저는 그거 티비에서만 봤거든요. 그런데 3일 동안 수익금 전액을 독거노인하고, 결식아동 그 쪽에 다 (기부했죠)
◇ 이성규> 평택 쪽으로요?
◆ 박상민> 네, 평택 쪽으로.
◇ 이성규> 예, 그 분들 진짜 행복한 순간을 맞으셨네요. 장한 평택의 아들 때문에.
◆ 박상민> 그래가지고 그때부터 제가 속으로 지금도 그렇습니다. ’박상민 출세했네‘ 그런 생각합니다. 지금도.
◇ 이성규> 지금 여러 가지 기부활동을 하셨더라고요. 가수로서 재능기부도 하시고 공연 수익금으로 기부한 훨체어도 보니까 수백 개가 넘고.
◆ 박상민> 사실 훨씬 넘죠. 황기순가 먼저 시작을 한 건데요. 19년 동안 황기순씨가 했고 저는 이제 16년 동안 같이 이렇게 하고 있는데 황기순씨 대단합니다. 진짜. 여기 한 번 불러주셔야 돼요.
◇ 이성규> 그럴까요? 다음에 담당피디를 향해서 다시 한번 얘기하겠습니다. 담당피디가 오케이 사인을 보냈습니다.
◆ 박상민> 황기순씨가 예전에 실수 해가지고 그걸 눈에 보이게 좀 만회하려고 눈에 보이게 했는데 그냥 이쪽에 완전히 빠지신 거예요.
◇ 이성규> 좋네요.
◆ 박상민> 예, 그것도 길거리에서 매년 8월 제일 더울 때 길거리에서 노래하고 모금을 합니다.
◇ 이성규> 또 사랑의 열매 이런 쪽에도 많이 하시고 그러셨죠.
◆ 박상민> 거기 또 홍보대사기도 하고요.
◇ 이성규> 지금까지 나눔 활동하시면 그래도 참 뿌듯했던 것 제일, 가장 가슴에 남는 뿌듯함. 그건 어떤 계기였어요?
◆ 박상민> 귀가 안 들리는 아이들. 그 아이들한테 수술비 지원하고 그렇게 해서 그 친구들이 잘 못 들으니까 말도 어눌했잖아요? 그런데 보청기가 너무 요즘 잘 나와서 그걸 딱 수술하고나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할 때. 그거는 진짜 영화예요. 영화.
◇ 이성규> 그니까 인생을 확 바꿔 놓으신 거네요.
◆ 박상민> 그냥 눈물이 쫙 쏟아집니다.
◇ 이성규> 그런데 이제 어려운 사람들을 안 돕는 꼴을 못 본다, 그런 말씀도 하시고 그러다 보면 여기저기서 막 부탁이 들어올 텐데 그거 들어 들이다 보면 진짜 본업에 손상이 오는 경우는 없어요?
◆ 박상민> 솔직히 말씀드릴까요? 진짜 제가 보니까 다른 연예인들 보니까 예를 들어서 교수님하고 돼가지고 내일 무슨 일을 해서 제가 가기로 했어요. 그런데 오늘 저녁에 돈 버는 행사가 잡혔다고 내일 가는 교수님 행사를 안 가는 연예인들이 거의 그렇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그 자체를 이해를 못하겠어요. 혼났어요. 후배들 저한테 몇 명. 저는 굳이 생색을 내자면 행사가 먼저 잡히고 누가 부탁한 거하면 저는 행사를 취소합니다. 돈 버는 거를. 회사에서는 피곤해하죠.
◇ 이성규> 그렇죠. ’팍스뮤직‘에서요?
◆ 박상민> 예, 그런데 저는 그렇게 합니다. 진짜.
◇ 이성규> 참 화끈한 박상민. 진짜 정말 멋있습니다. 그런데 사실이요. 그게 좋은 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요즘 공익 광고보면 어려운 사람들 막 어렵게 그려 가지고 내보내는 그런 장면들이 좋은 건지, 안 좋은 건지 모르겠는데 거기에 참여하는 분도 그런 걸 보고도 참여 안 하는 분들도 있고 그렇잖아요? 기부 대열에 어떻게 하면 좀 참여를 많은 분들을 시킬 수 있을까요?
◆ 박상민> 어렵게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저는 아까 말씀했듯이 고향에서 그렇게 시작했지만 저는 지금도 천원, 2천원 짜리 ARS 나오면 해요. 그거부터 시작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진짜 어려운 게 아니거든요. 그 ARS 2천원, 천원 그거 한 번만 한번 해보세요. 그러면 여러분들 전신으로 피가 막 따뜻한 게 막 돌 겁니다. 희한하다니까요.
◇ 이성규> 에돌핀?
◆ 박상민> 예.
◇ 이성규> 오늘이 4월 11일인데요. 나흘 뒤에 콘서트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 박상민> 예, 이제 교수님 고향 가까운 데서.
◇ 이성규> 충청도?
◆ 박상민> 예, 공주에서 4월 15일 날 거기서 있고요. 4월 원래 24일 날 대구 콘서트 있었는데 한 달 밀렸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5월로 밀렸고요. 15일 공주는 정상적으로 거리두기 해서 하기로 했습니다.
◇ 이성규> 공주분들 대단히 좋아하시겠네요.
◆ 박상민> 아마 많이 좋아하실 겁니다.
◇ 이성규> 요즘 참 귀한 기회를 얻었네요. 그분들은. 그런데 앞으로도 이제 가수 ’박상민‘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으세요?
◆ 박상민> 저는 1인 자 스타일이 아니에요.
◇ 이성규> 1인 자 스타일은 아니다? 기부는 거의 1인 자이신데요? 기부하시면.
◆ 박상민> 아니요. 그거 말고 가수로 하면 ’박상민 그래‘ 이 정도만 해도 저는 대만족입니다. 예를 들어 가수들이 많이 나오는 경영 프로 이런 데도 보면 항상 저를 끼워주시는 게 저는 항상 감사드리죠. ’박상민 노래 잘하지‘ 이 정도면 충분히 만족하고요. 앞으로도 ’이제 그만해‘ 이런 소리 나올 때까지는 열심히 할 겁니다.
◇ 이성규> 예, 올해 다른 또 계획 있으신가요?
◆ 박상민> 코로나가 이제 빨리 제발 끝났으면 하는 게 제 소원이고요. 노래 좀 많이 했으면 좋겠고 신곡 계속 내고 있으니까 이제 며칠 있으면 아까 말씀드린 노래 이제 나옵니다. 열심히 해야죠.
◇ 이성규> 참 청취자 여러분들도 상당히 에너지를 받고 계신 것 같은데 마지막으로 우리 박상민씨가 청취자 여러분들한테 하시고 싶은 말씀 있으면 해주시죠.
◆ 박상민> 여러분들 다 힘들게 진짜 고생하셨고 잘 견디셨습니다. 조금만 더 견디시면 좋은 일이 올 거라고 분명히 저는 믿습니다. 행복하시고 건강 꼭 챙기세요.
◇ 이성규> 네,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오늘은 가수 ’박상민‘씨와 이야기 나눠봤는데요. 좋은 말씀 대단히 감사합니다.
◆ 박상민> 예, 감사합니다.
◇ 이성규>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는 ytn라디오 홈페이지와 유튜브를 통해서 다시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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