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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라디오(FM 94.5) [YTN 뉴스FM 슬기로운 라디오생활]
□ 방송일시 : 2021년 3월 8일 (월요일)
□ 진행 : 최형진 아나운서
□ 출연 : 신지영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최형진 아나운서(이하 최형진): "몇 살이세요?", 또는 "몇 학번이세요?" 우리나라에서 두 명이상의 사람이 만나면 흔히 들을 수 있는 대환데요. 이 대화와 함께 자주 사용되는 질문이 또 하나 있습니다. "그럼 말 편하게 해도 될까요?". 존댓말을 계속하느냐, 반말을 하느냐 정하는 건데요. 이렇게 나눠지는 반말, 존댓말로 차별이 발생한다고 합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우리는 어떻게 움직여야 할 지 생각 나눠보고요. 또 하나, 최근 은행이나 기업, 공기업까지 약자로 불리는 경우가 많은데요. 이 때문에 생기는 문제가 있다고 합니다. 어떤 문제인지 같이 알아보겠습니다. 그럼 함께 이야기 나눌 분 모셔보죠.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신지영 교수 나오셨습니다. 안녕하세요?
◆ 신지영 교수(이하 신지영): 안녕하세요.
◇ 최형진: 요즘에는 회사 이름 전체를 쓰기보단 영어로 짧게 이름을 짓는 경우가
상당히 많아졌어요. 이게 세계 시장을 겨냥한 움직임 아닌가요?
◆ 신지영: 네, 기업의 경우 사적인 기업은 이윤을 추구 및 시장을 넓히기 위해 그럴 수 있겠죠. 이번에 문제가 됐던 대표적인 영문 약자로 회자되고 있는 공기업이 있죠. LH는 사실 공공기업이잖아요. 공공기업은 공공의 복리를 위해 존재하고, 우리의 세금으로 대한민국을 위해 존재하는 기업입니다. 그런데 LH라고 하면, 알아듣기가 굉장히 어렵거든요.
◇ 최형진: 랜드 하우징(Land Housing)인가 그렇죠?
◆ 신지영: 랜드 앤 하우징(Land and Housing)인데요. 사실 왜 우리가 그걸 알아야 하죠? 이 기업의 진짜 이름은 한국토지주택공사입니다. 이걸 LH라고 해서 기업의 명칭을 다르게 표현했는데요. 보도에서 LH 기업, LH 직원이라고 표현하는 것보다 한국토지주택공사의 직원들이라고 계속해서 이야기 해줘야 사태의 심각성이 더 드러납니다. LH 기업의 직원들이 이렇게 했다고 하면, 이게 왜 문제가 될까 생각할 수도 있거든요. 그런데 한국토지주택공사, 중요한 건 토지와 주택을 관장하는 공사 즉, 우리의 세금으로 만든 기업이라는 것을 강조해야 사태의 심각성이 더 드러나거든요. 옛날에는 토지공사와 주택공사가 나눠져 있었어요. 그게 합쳐지면서 토지주택공사가 되었거든요. 토지공사는 토공, 주택공사는 주공이라고 줄여서 말했었죠. 그런데 토지주택이 합해지면서는 그냥 LH가 되는 이상한 것들이 있습니다. 사실 이런 게 한 두 가지가 아니에요. 오늘 뒤에서 존댓말, 반말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지만, 지금 현재 이런 시사적인 문제들에 대해서도 우리 어른이들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서 잠깐 이야기 나눠보려고 해요. 제가 한 가지 말씀을 드릴게요. 캠코가 뭘까요?
◇ 최형진: 그렇게 들으니 잘 모르겠네요.
◆ 신지영: 자산관리를 해주는 공사거든요. 코리아 어셋 매니지먼트 코포레이션(Korea Asset Management Corporation)이라는 줄임말인데요. 우리가 캠코라고 하면 모르지만, 한국자산관리공사라고 하면 금방 알 수 있잖아요. 한국농어촌공사는 로고처럼 되어 있을 땐 KR이라고 되어 있어요. 그럼 도대체 한국농어촌공사를 알 수 있을까요?
◇ 최형진: 그러게요. 로고만 보면 모르겠는데요.
◆ 신지영: 그렇죠. 그리고 내부에서는 KR이라고 하면 우리가 내는 세금으로 만든 곳에서 무엇을 하는지 모르는 건 안 되는 거겠죠. 이것도 언어를 만든 사람들이 권력자라고 스스로 행세하는 건 아닐까에 대해서 잘 생각하며 감시해야 합니다.
◇ 최형진: 듣고 보니, 왜 이렇게 만드는 거예요?
◆ 신지영: 사실 그렇죠. 목적이 있나요? 약간 우스개 소리를 하면, LH 한국토지주택공사를 보고, LH를 보고 ‘내’라고 생각한 거예요. 그렇게 보이잖아요. 그러니 구성원들이 자신들의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 아니었을까라고 비꼬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더라고요.
◇ 최형진: 최근에 홍남기 부총리도 사과를 했는데요. 의혹은 철저하게 밝혀져야겠습니다.
◆ 신지영: 그러니 의혹을 만들기 전에 기업이 추구하는 바가 뭔가, 누굴 위해 봉사하는 단체인가 하는 것들이 이름에서 잘 드러나야 하지 않을까, 시민들은 잘 감시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을 해봤습니다.
◇ 최형진: 정보를 전달하는 입장에서 좀 더 신경써야 하는 부분 같습니다. 저희도 이 부분 더 고민하겠고요. 다음 주제 얘기 나눠보죠. 지난 시간에 나이를 세는 방법에 대해 얘기 나눴어요. 그러면서 반말이나 존댓말 중 하나만 써야하면 어떤 걸 사용할지 의견을 들었습니다. 청취자 의견들이 들어오고 있는데요. 한분은 이렇게 보내주셨네요. 존댓말은 계속 써야합니다. 제가 51세인데 외모가 동안이라며 나이도 묻지 않고 처음부터 반말합니다. 또 다른 분은 이렇게 보내주셨습니다. 저는 반말 통일 찬성합니다. 나이뿐 아니라 존댓말의 여부가 갑을관계를 더 공고히 하는 것 같아요. 아예 모든 사람들이 반말로 통일한다면, 계급은 자연스럽게 없어지고 평등한 사회가 될 것 같습니다, 라고 소중한 의견을 주셨습니다. 반말과 존댓말 중 하나를 써야하는 것이 그런데 이게 차별을 만든다고요?
◆ 신지영: 일단 반말과 존댓말로 나누어서, 누구는 반말을 듣고 누구는 존댓말을 듣고, 누구는 누구에게 반말을 해야 하고, 누구는 누구에게 존댓말을 해야 하는 것들이 차별일까 아닐까 생각을 하지도 못할 정도로요. 사실 우리에게는 연령을 통해서 존재하는 차별이 너무나 공고하게 존재하고 있어요. 이게 차별인지 아닌지 모를 만큼요. 언어라는 건 매일 사용하며 우리에게 각인되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생각을 할 수 없는 것들을 만들죠. 그런데 생각해보면, 옛날에 우리가 갑오경장이 있던 때가 1894년이거든요. 갑오개혁이라고도 하는데요. 갑오개혁을 통해 없어진 여러 가지 중 하나가 신분제도입니다. 신분제도는 태어나면서부터 부모의 신분에 따라 자신의 신분이 결정되죠. 자신의 노력에 따르지 않고 그냥 주어지는 거죠. 이것이 부적절하다고 생각해서, 신분제도에 대한 많은 문제제기를 해왔고 없어졌죠. 신분제도가 있을 때, 누가 누구에게 반말을 했을까요?
◇ 최형진: 양반이 아래에 했겠죠.
◆ 신지영: 그러니까 그 때는 연령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어요. 가장 중요한 것이 신분이었어요. 상민과 양반이 있다면, 상민은 나이와 상관없이 양반에게 무조건 존댓말을 했어야 했어요. 양반은 상민에게 반말을 하는 거죠. 상민은 양반에게 존댓말을 하면서 반말을 듣는 거죠.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이 정당한 것 같아요? 부당한 것 같아요?
◇ 최형진: 부당한 것 같습니다.
◆ 신지영: 불과 130년 전이거든요. 130년 전에는 너무나 당연했던 것이죠. 그러니 신분제도가 사라지고 나서도 상민은 양반에서 존댓말을 쓰고, 양반은 상민에게 반말을 써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예를 들면 상민이 나이가 많다고 해서 어린 양반에게 존댓말을 안 하고 반말을 했다고 하면 난리가 나는 것이죠. 이런 때가 있었어요. 사실 130년 이전이 아니고, 여러분이 잘 알고 있는 일제강점기부터 현대까지 이어지는 책 ‘토지’를 보면요. 서희가 아가씨로 나오잖아요. 주변에 하인들로 불리는 사람들이 있죠. 그 당시엔 분명 신분제도가 없었거든요. 그런데 존댓말을 쓰죠. 서희는 반말을 하고요. 이런 것들이 꽤 오래 갔어요.1930년대 신문기사를 보면, 양반에게 반말을 했다고 곤봉을 가지고 여러 사람이 집을 허물어뜨리는 일도 있었고요.
◇ 최형진: 신분제가 없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꽤 오랫동안 이어진 거군요.
◆ 신지영: 그렇죠. 이런 일들이 계속 벌어졌거든요. 지금으로부터 100년, 200년 후에 나이 때문에 누구는 누구에게 존댓말을 쓰고, 누구는 누구에게 반말을 썼다고 하면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러니 지난 시간에 한국에는 세는 나이부터 시작해서 3가지 나이를 가지고 있고, 이것이 언어적인 문제라는 이야기를 했죠. 언어 때문에 우리는 나이에 굉장히 민감하다는 말을 했죠. 더불어서 신분제도는 없어졌지만, 존댓말 반말이 사람들의 서열을 나눈다, 서열의식에 우리가 익숙하다는 것을 아프게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합니다.
◇ 최형진: 윗사람에게 예의를 갖추기 위해서 어른께는 당연히 존댓말을 하는 거라고 어릴 때부터 배웠잖아요? 그래서인지 상상이 잘 안 돼요.
◆ 신지영: 어른에게 꼭 존댓말을 써야 한다는 건 신분제도 때는 없었잖아요. 그러니 이건 그냥 익숙한 거죠. 언어니까 매일 각인되다보니 어른에게 꼭 존댓말을 써야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런 법칙은 없습니다. 어른에게 존댓말을 쓰는 건 좋은 일이지만, 그러다 보니 어른들이 아이들을 볼 때 그냥 반말을 하며 하대하는 것이 아닐까요. ‘저 어린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요. 그러다 보니 ‘너 몇 살이야’라는 말을 주변에서 듣잖아요. 심지어 토론을 하다가도, 국회에서도 ‘당신 몇 살이야’라는 말을 하잖아요. 사실 토론의 주제와는 전혀 상관 없는데, 국회에서 왜 그런 말이 나와야 하는 걸까요? 이렇게 생각하면 우리가 나이에 의한 서열에 너무 익숙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는 거죠. 오늘 퀴즈의 답이 되는 분에 대해서 얘기해볼까요? 100년, 1921년이에요. 계명구락부라는 곳에서 계명이라는 잡지를 냅니다. 계명 잡지의 박승빈이라는 학자가 제안을 합니다. 논문처럼 정리해서, 아이들 상호 간에 존댓말을 쓰게 하자, 아이들에게 존댓말을 쓰자고 제안을 합니다. 그래서 모든 세상이 존댓말이 되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고요. 한국어에는 신분, 남녀 등의 서열이 너무 많은데, 연령의 서열도 심각하기 때문에 당시에는 보통학교인 초등학교부터 서로 존댓말을 쓰고, 아이들에게 어른이 존댓말을 쓰게 해서 아이들이 컸을 때는 모두가 존댓말로 통일되는 사회를 만들어보자는 언어개혁 운동을 하게 됩니다.
◇ 최형진: 꽤 옛날인데, 그때부터 그런 주장을 펼치셨군요.
◆ 신지영: 100년 전부터 있었고요. 이 사상은 어린이 운동하고도 연결이 됩니다. 방정환, 김기전 선생님 등 동학, 천도교 쪽으로 이전되어 공감을 받으며 어린이에게 존댓말을 쓰자는 운동을 하게 됩니다. 100년 전, 던진 질문에 대해 얘기 해볼게요. 박승빈 선생님은 이런 질문을 가졌던 거죠. 말로 우리가 과연 평등을 이뤄낼 수 있을까 하고요. 당시 평등이라는 개념이 별로 없었잖아요. 이제 막 신분 제도가 없어져서 평등이라는 개념이 생기게 됐어요. 동학운동이 평등 사상에 기반한 우리 자생적인 사상으로써, 평등을 계속 외쳤죠.그래서 신분제도까지 없어지고, 동학에서도 계속해서 어린아이들 문제, 나이에 의한 서열, 차별에 주목하면서 세상이 더 평등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요. 박승빈 선생님도 같은 생각을 한 거죠. 우리는 과연 평등한가, 왜 평등하지 못 한가 했더니 언어에 불평등한 요소가 너무 많아서, 언어의 평등을 통해 세상의 평등을 이뤄내야겠다고 생각한 거죠. 그래서 아이들에게, 아이들 상호 간에도 존댓말을 써서 존댓말 반말이 없어지고, 모두가 존댓말로 통일되는 세상을 만들어보자고 생각했다는 겁니다.
◇ 최형진: 청취자들의 반응을 볼까요. 한 청취자님께서는 ‘모두가 존댓말을 사용했으면 좋겠습니다. 모두가 모두를 존중하는 거니까요’ 라고 전해주셨고요. 또, ‘어린이에게도 존댓말을 하고 전부 존댓말을 사용합시다. 존댓말 쓰면 격한 싸움도 줄어듭니다’ 라고 의견 주셨습니다. 다른 청취자님은 ‘외국 나가서 영어 쓰니까 할머니, 할아버지들께서도 이름 부르시고 친근하고 좋던데, 세대 차 나이 차 이야기하기 전에 언어부터 반말로 통일하면 좋겠다’고 하셨고요. 또 ‘지금 와서 존댓말 반말 어느 하나로 통일하자고 하면 혼란스러울 것 같은데, 연착륙할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될 시간도 필요할 것 같다’는 현실적인 말씀을 전해주시기도 했습니다.
◆ 신지영: 존댓말이 좋을지 반말이 좋을지 많은 사람에게 물어봅니다. 존댓말 반말에 대한 의식이 별로 없을 정도로 너무나 익숙하기 때문에요. 재미있는 건 나이가 어린 쪽은 반말로, 나이가 있는 쪽은 존댓말로 통일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합니다. 장단점이 있는데요. 저는 조금 더 평등해지고 말하기가 편해지기 위해선 반말로 통일하는 것이 어떨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어른들이 듣기 싫으시겠죠. 저는 저에게 반말을 해도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우리가 어떤 사람에게 반말을 하는지 들어보면, 가깝고 친한 사람들이거든요. 속내를 다 이야기 하잖아요. 반말은 그런 기능이 있죠.
◇ 최형진: 짧게 하실 말씀 있으십니까?
◆ 신지영: 일단 중요한 건 우리가 이런 생각을 해보는 거죠. 반말, 존댓말로 통일되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혹시 존댓말 반말 때문에 누군가에게 차별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닐까? 내가 반말을 하기 때문에 상대방이 내 아랫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사람은 위아래가 없다고 배워놓고 위아래를 생각하는 건 아닐지 생각해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 최형진: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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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일시 : 2021년 3월 8일 (월요일)
□ 진행 : 최형진 아나운서
□ 출연 : 신지영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최형진 아나운서(이하 최형진): "몇 살이세요?", 또는 "몇 학번이세요?" 우리나라에서 두 명이상의 사람이 만나면 흔히 들을 수 있는 대환데요. 이 대화와 함께 자주 사용되는 질문이 또 하나 있습니다. "그럼 말 편하게 해도 될까요?". 존댓말을 계속하느냐, 반말을 하느냐 정하는 건데요. 이렇게 나눠지는 반말, 존댓말로 차별이 발생한다고 합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우리는 어떻게 움직여야 할 지 생각 나눠보고요. 또 하나, 최근 은행이나 기업, 공기업까지 약자로 불리는 경우가 많은데요. 이 때문에 생기는 문제가 있다고 합니다. 어떤 문제인지 같이 알아보겠습니다. 그럼 함께 이야기 나눌 분 모셔보죠.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신지영 교수 나오셨습니다. 안녕하세요?
◆ 신지영 교수(이하 신지영): 안녕하세요.
◇ 최형진: 요즘에는 회사 이름 전체를 쓰기보단 영어로 짧게 이름을 짓는 경우가
상당히 많아졌어요. 이게 세계 시장을 겨냥한 움직임 아닌가요?
◆ 신지영: 네, 기업의 경우 사적인 기업은 이윤을 추구 및 시장을 넓히기 위해 그럴 수 있겠죠. 이번에 문제가 됐던 대표적인 영문 약자로 회자되고 있는 공기업이 있죠. LH는 사실 공공기업이잖아요. 공공기업은 공공의 복리를 위해 존재하고, 우리의 세금으로 대한민국을 위해 존재하는 기업입니다. 그런데 LH라고 하면, 알아듣기가 굉장히 어렵거든요.
◇ 최형진: 랜드 하우징(Land Housing)인가 그렇죠?
◆ 신지영: 랜드 앤 하우징(Land and Housing)인데요. 사실 왜 우리가 그걸 알아야 하죠? 이 기업의 진짜 이름은 한국토지주택공사입니다. 이걸 LH라고 해서 기업의 명칭을 다르게 표현했는데요. 보도에서 LH 기업, LH 직원이라고 표현하는 것보다 한국토지주택공사의 직원들이라고 계속해서 이야기 해줘야 사태의 심각성이 더 드러납니다. LH 기업의 직원들이 이렇게 했다고 하면, 이게 왜 문제가 될까 생각할 수도 있거든요. 그런데 한국토지주택공사, 중요한 건 토지와 주택을 관장하는 공사 즉, 우리의 세금으로 만든 기업이라는 것을 강조해야 사태의 심각성이 더 드러나거든요. 옛날에는 토지공사와 주택공사가 나눠져 있었어요. 그게 합쳐지면서 토지주택공사가 되었거든요. 토지공사는 토공, 주택공사는 주공이라고 줄여서 말했었죠. 그런데 토지주택이 합해지면서는 그냥 LH가 되는 이상한 것들이 있습니다. 사실 이런 게 한 두 가지가 아니에요. 오늘 뒤에서 존댓말, 반말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지만, 지금 현재 이런 시사적인 문제들에 대해서도 우리 어른이들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서 잠깐 이야기 나눠보려고 해요. 제가 한 가지 말씀을 드릴게요. 캠코가 뭘까요?
◇ 최형진: 그렇게 들으니 잘 모르겠네요.
◆ 신지영: 자산관리를 해주는 공사거든요. 코리아 어셋 매니지먼트 코포레이션(Korea Asset Management Corporation)이라는 줄임말인데요. 우리가 캠코라고 하면 모르지만, 한국자산관리공사라고 하면 금방 알 수 있잖아요. 한국농어촌공사는 로고처럼 되어 있을 땐 KR이라고 되어 있어요. 그럼 도대체 한국농어촌공사를 알 수 있을까요?
◇ 최형진: 그러게요. 로고만 보면 모르겠는데요.
◆ 신지영: 그렇죠. 그리고 내부에서는 KR이라고 하면 우리가 내는 세금으로 만든 곳에서 무엇을 하는지 모르는 건 안 되는 거겠죠. 이것도 언어를 만든 사람들이 권력자라고 스스로 행세하는 건 아닐까에 대해서 잘 생각하며 감시해야 합니다.
◇ 최형진: 듣고 보니, 왜 이렇게 만드는 거예요?
◆ 신지영: 사실 그렇죠. 목적이 있나요? 약간 우스개 소리를 하면, LH 한국토지주택공사를 보고, LH를 보고 ‘내’라고 생각한 거예요. 그렇게 보이잖아요. 그러니 구성원들이 자신들의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 아니었을까라고 비꼬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더라고요.
◇ 최형진: 최근에 홍남기 부총리도 사과를 했는데요. 의혹은 철저하게 밝혀져야겠습니다.
◆ 신지영: 그러니 의혹을 만들기 전에 기업이 추구하는 바가 뭔가, 누굴 위해 봉사하는 단체인가 하는 것들이 이름에서 잘 드러나야 하지 않을까, 시민들은 잘 감시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을 해봤습니다.
◇ 최형진: 정보를 전달하는 입장에서 좀 더 신경써야 하는 부분 같습니다. 저희도 이 부분 더 고민하겠고요. 다음 주제 얘기 나눠보죠. 지난 시간에 나이를 세는 방법에 대해 얘기 나눴어요. 그러면서 반말이나 존댓말 중 하나만 써야하면 어떤 걸 사용할지 의견을 들었습니다. 청취자 의견들이 들어오고 있는데요. 한분은 이렇게 보내주셨네요. 존댓말은 계속 써야합니다. 제가 51세인데 외모가 동안이라며 나이도 묻지 않고 처음부터 반말합니다. 또 다른 분은 이렇게 보내주셨습니다. 저는 반말 통일 찬성합니다. 나이뿐 아니라 존댓말의 여부가 갑을관계를 더 공고히 하는 것 같아요. 아예 모든 사람들이 반말로 통일한다면, 계급은 자연스럽게 없어지고 평등한 사회가 될 것 같습니다, 라고 소중한 의견을 주셨습니다. 반말과 존댓말 중 하나를 써야하는 것이 그런데 이게 차별을 만든다고요?
◆ 신지영: 일단 반말과 존댓말로 나누어서, 누구는 반말을 듣고 누구는 존댓말을 듣고, 누구는 누구에게 반말을 해야 하고, 누구는 누구에게 존댓말을 해야 하는 것들이 차별일까 아닐까 생각을 하지도 못할 정도로요. 사실 우리에게는 연령을 통해서 존재하는 차별이 너무나 공고하게 존재하고 있어요. 이게 차별인지 아닌지 모를 만큼요. 언어라는 건 매일 사용하며 우리에게 각인되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생각을 할 수 없는 것들을 만들죠. 그런데 생각해보면, 옛날에 우리가 갑오경장이 있던 때가 1894년이거든요. 갑오개혁이라고도 하는데요. 갑오개혁을 통해 없어진 여러 가지 중 하나가 신분제도입니다. 신분제도는 태어나면서부터 부모의 신분에 따라 자신의 신분이 결정되죠. 자신의 노력에 따르지 않고 그냥 주어지는 거죠. 이것이 부적절하다고 생각해서, 신분제도에 대한 많은 문제제기를 해왔고 없어졌죠. 신분제도가 있을 때, 누가 누구에게 반말을 했을까요?
◇ 최형진: 양반이 아래에 했겠죠.
◆ 신지영: 그러니까 그 때는 연령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어요. 가장 중요한 것이 신분이었어요. 상민과 양반이 있다면, 상민은 나이와 상관없이 양반에게 무조건 존댓말을 했어야 했어요. 양반은 상민에게 반말을 하는 거죠. 상민은 양반에게 존댓말을 하면서 반말을 듣는 거죠.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이 정당한 것 같아요? 부당한 것 같아요?
◇ 최형진: 부당한 것 같습니다.
◆ 신지영: 불과 130년 전이거든요. 130년 전에는 너무나 당연했던 것이죠. 그러니 신분제도가 사라지고 나서도 상민은 양반에서 존댓말을 쓰고, 양반은 상민에게 반말을 써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예를 들면 상민이 나이가 많다고 해서 어린 양반에게 존댓말을 안 하고 반말을 했다고 하면 난리가 나는 것이죠. 이런 때가 있었어요. 사실 130년 이전이 아니고, 여러분이 잘 알고 있는 일제강점기부터 현대까지 이어지는 책 ‘토지’를 보면요. 서희가 아가씨로 나오잖아요. 주변에 하인들로 불리는 사람들이 있죠. 그 당시엔 분명 신분제도가 없었거든요. 그런데 존댓말을 쓰죠. 서희는 반말을 하고요. 이런 것들이 꽤 오래 갔어요.1930년대 신문기사를 보면, 양반에게 반말을 했다고 곤봉을 가지고 여러 사람이 집을 허물어뜨리는 일도 있었고요.
◇ 최형진: 신분제가 없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꽤 오랫동안 이어진 거군요.
◆ 신지영: 그렇죠. 이런 일들이 계속 벌어졌거든요. 지금으로부터 100년, 200년 후에 나이 때문에 누구는 누구에게 존댓말을 쓰고, 누구는 누구에게 반말을 썼다고 하면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러니 지난 시간에 한국에는 세는 나이부터 시작해서 3가지 나이를 가지고 있고, 이것이 언어적인 문제라는 이야기를 했죠. 언어 때문에 우리는 나이에 굉장히 민감하다는 말을 했죠. 더불어서 신분제도는 없어졌지만, 존댓말 반말이 사람들의 서열을 나눈다, 서열의식에 우리가 익숙하다는 것을 아프게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합니다.
◇ 최형진: 윗사람에게 예의를 갖추기 위해서 어른께는 당연히 존댓말을 하는 거라고 어릴 때부터 배웠잖아요? 그래서인지 상상이 잘 안 돼요.
◆ 신지영: 어른에게 꼭 존댓말을 써야 한다는 건 신분제도 때는 없었잖아요. 그러니 이건 그냥 익숙한 거죠. 언어니까 매일 각인되다보니 어른에게 꼭 존댓말을 써야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런 법칙은 없습니다. 어른에게 존댓말을 쓰는 건 좋은 일이지만, 그러다 보니 어른들이 아이들을 볼 때 그냥 반말을 하며 하대하는 것이 아닐까요. ‘저 어린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요. 그러다 보니 ‘너 몇 살이야’라는 말을 주변에서 듣잖아요. 심지어 토론을 하다가도, 국회에서도 ‘당신 몇 살이야’라는 말을 하잖아요. 사실 토론의 주제와는 전혀 상관 없는데, 국회에서 왜 그런 말이 나와야 하는 걸까요? 이렇게 생각하면 우리가 나이에 의한 서열에 너무 익숙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는 거죠. 오늘 퀴즈의 답이 되는 분에 대해서 얘기해볼까요? 100년, 1921년이에요. 계명구락부라는 곳에서 계명이라는 잡지를 냅니다. 계명 잡지의 박승빈이라는 학자가 제안을 합니다. 논문처럼 정리해서, 아이들 상호 간에 존댓말을 쓰게 하자, 아이들에게 존댓말을 쓰자고 제안을 합니다. 그래서 모든 세상이 존댓말이 되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고요. 한국어에는 신분, 남녀 등의 서열이 너무 많은데, 연령의 서열도 심각하기 때문에 당시에는 보통학교인 초등학교부터 서로 존댓말을 쓰고, 아이들에게 어른이 존댓말을 쓰게 해서 아이들이 컸을 때는 모두가 존댓말로 통일되는 사회를 만들어보자는 언어개혁 운동을 하게 됩니다.
◇ 최형진: 꽤 옛날인데, 그때부터 그런 주장을 펼치셨군요.
◆ 신지영: 100년 전부터 있었고요. 이 사상은 어린이 운동하고도 연결이 됩니다. 방정환, 김기전 선생님 등 동학, 천도교 쪽으로 이전되어 공감을 받으며 어린이에게 존댓말을 쓰자는 운동을 하게 됩니다. 100년 전, 던진 질문에 대해 얘기 해볼게요. 박승빈 선생님은 이런 질문을 가졌던 거죠. 말로 우리가 과연 평등을 이뤄낼 수 있을까 하고요. 당시 평등이라는 개념이 별로 없었잖아요. 이제 막 신분 제도가 없어져서 평등이라는 개념이 생기게 됐어요. 동학운동이 평등 사상에 기반한 우리 자생적인 사상으로써, 평등을 계속 외쳤죠.그래서 신분제도까지 없어지고, 동학에서도 계속해서 어린아이들 문제, 나이에 의한 서열, 차별에 주목하면서 세상이 더 평등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요. 박승빈 선생님도 같은 생각을 한 거죠. 우리는 과연 평등한가, 왜 평등하지 못 한가 했더니 언어에 불평등한 요소가 너무 많아서, 언어의 평등을 통해 세상의 평등을 이뤄내야겠다고 생각한 거죠. 그래서 아이들에게, 아이들 상호 간에도 존댓말을 써서 존댓말 반말이 없어지고, 모두가 존댓말로 통일되는 세상을 만들어보자고 생각했다는 겁니다.
◇ 최형진: 청취자들의 반응을 볼까요. 한 청취자님께서는 ‘모두가 존댓말을 사용했으면 좋겠습니다. 모두가 모두를 존중하는 거니까요’ 라고 전해주셨고요. 또, ‘어린이에게도 존댓말을 하고 전부 존댓말을 사용합시다. 존댓말 쓰면 격한 싸움도 줄어듭니다’ 라고 의견 주셨습니다. 다른 청취자님은 ‘외국 나가서 영어 쓰니까 할머니, 할아버지들께서도 이름 부르시고 친근하고 좋던데, 세대 차 나이 차 이야기하기 전에 언어부터 반말로 통일하면 좋겠다’고 하셨고요. 또 ‘지금 와서 존댓말 반말 어느 하나로 통일하자고 하면 혼란스러울 것 같은데, 연착륙할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될 시간도 필요할 것 같다’는 현실적인 말씀을 전해주시기도 했습니다.
◆ 신지영: 존댓말이 좋을지 반말이 좋을지 많은 사람에게 물어봅니다. 존댓말 반말에 대한 의식이 별로 없을 정도로 너무나 익숙하기 때문에요. 재미있는 건 나이가 어린 쪽은 반말로, 나이가 있는 쪽은 존댓말로 통일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합니다. 장단점이 있는데요. 저는 조금 더 평등해지고 말하기가 편해지기 위해선 반말로 통일하는 것이 어떨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어른들이 듣기 싫으시겠죠. 저는 저에게 반말을 해도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우리가 어떤 사람에게 반말을 하는지 들어보면, 가깝고 친한 사람들이거든요. 속내를 다 이야기 하잖아요. 반말은 그런 기능이 있죠.
◇ 최형진: 짧게 하실 말씀 있으십니까?
◆ 신지영: 일단 중요한 건 우리가 이런 생각을 해보는 거죠. 반말, 존댓말로 통일되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혹시 존댓말 반말 때문에 누군가에게 차별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닐까? 내가 반말을 하기 때문에 상대방이 내 아랫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사람은 위아래가 없다고 배워놓고 위아래를 생각하는 건 아닐지 생각해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 최형진: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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