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호흡기 없이 편하게 날아가"...13년 투병 끝에 남겨진 과제

"여보, 호흡기 없이 편하게 날아가"...13년 투병 끝에 남겨진 과제

2020.08.16. 오전 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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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가습기 살균제 사태로 천오백여 명이 세상을 등졌습니다.

사태의 심각성을 발 벗고 알렸던 피해자 박영숙 씨도 13년에 가까운 투병 끝에 며칠 전 하늘로 떠났습니다.

여전히 멀고 먼 진상규명의 길, 남겨진 사람들에게 그녀의 죽음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박기완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기자]
고 박영숙 씨의 남편 김태종 씨는 13년 전 그날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찢어집니다.

평소 천식을 앓던 아내를 위해 사다 준 가습기 살균제가 아내를 더 고통스럽게 만들었다는 죄책감 때문입니다.

[김태종 / 고 박영숙 씨 남편 : 왜 저러지? 처음에는 이해가 안 됐어요. 가습기 살균제라는 걸 알고 나서는 진짜 미안해지는 거예요. 내가 사다 준 건데, 그 사람이 산 것도 아니고….]

이마트 가습기 살균제 한 통을 쓴 고 박영숙 씨는 지난 2008년 갑작스러운 호흡곤란으로 병원을 찾았고, 그렇게 기나긴 투병 생활이 시작됐습니다.

죽을 고비를 넘긴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김태종 / 고 박영숙 씨 남편 : 집에서 계속 생활하다가 병원 가야겠다 하면 병원 가서 입원하고, 계속 13년간 그렇게 해온 거죠. 21번째 입원을 한 거예요. 그런데 못 나온 거죠.]

그러는 사이, 박 씨와 같은 피해자들이 모여 진상규명을 위한 움직임이 시작됐습니다.

고 박영숙 씨는 하루를 버텨내기도 버거운, 병든 몸을 이끌고 남편과 함께 앞장서 억울함을 호소했습니다.

[김태종 / 고 박영숙 씨 남편 : 이렇게 위험한 사람을 데리고 나온 취지는 이 억울한 사정을 알리기 위해서 나왔습니다.]

그런 노력 하나하나가 모여 가습기 살균제 사태 관련 특별법에 조사위원회까지 구성되고 진상규명을 약속받기도 했습니다.

[추미애 /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 (지난 2016년) : 앞장 서서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정작 가해자로 지목된 기업들은 사과 한마디 없다는 겁니다.

[김태종 / 고 박영숙 씨 남편 : (기업들이) 열심히 하겠다고 했는데 달라진 것 없거든요. 달라진 것 없어요.]

병세는 나빠져만 갔고 결국, 지난 10일 박영숙 씨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남겨진 남편은 슬픔을 삼키고 하늘을 쳐다봤습니다.

흔들리지 않고 포기하지 않겠다며 눈물을 거뒀습니다.

가습기 살균제로 고통을 겪고 있을 사람들을 위해 다시 뛰겠다 다짐하며, 그렇게 아내를 마음속에 영원히 담았습니다.

[김태종 / 고 박영숙 씨 남편 : 사람들이 죽은 사람만 지금 1,550명이 넘는데 또, 이렇게 우리 같이 억울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겠어요. 이제 호스도 없고, 몸에 제약이 없으니까 훨훨 날아다니라고….]

YTN 박기완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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