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양이 중성화 수술, 5년간 63억원..."혈세 막으려면 주먹구구 벗어나야"

길고양이 중성화 수술, 5년간 63억원..."혈세 막으려면 주먹구구 벗어나야"

2019.09.22. 오전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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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양이 중성화 수술, 5년간 63억원..."혈세 막으려면 주먹구구 벗어나야"
△ 길고양이 중성화 수술을 위해 포획 작업을 벌이는 현장 ⓒ한국고양이수의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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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같아도 현재로서는 뾰족한 방법이 없어요" 길고양이 중성화 수술을 담당하는 한 구청 관계자는 연일 쏟아지는 민원에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라고 토로했다. 구청마다 차이가 있었지만 한 해 접수되는 길고양이 관련 민원은 최소 100건에서 최대 700건 사이를 오갔다.

문제를 확인하기 위해 서울시 25개 자치구를 상대로 지난 5년간 길고양이 중성화 수술과 관련된 수치들을 전수 조사했다.

2015~2018년 사이 서울시 25개 자치구에서 길고양이 중성화 수술에 투입된 예산은 47억 8천만 원가량. 올해 할당된 예산인 약 15억 7천만 원을 더하면 5년 새 최소 63억 원이 투입되는 셈이다.

이 기간 서울시에서 중성화 수술을 받은 길고양이는 총 3만 5186마리. 올해 상반기 동안 중성화 수술을 받은 6천 336마리를 더하면 4만 마리가 훌쩍 넘는다. 중성화 수술을 받은 길고양이는 지난해 최초로 1만 마리를 넘어섰다. 매년 조금씩 증가하는 추세기 때문에 예산 규모 역시 함께 늘어나고 있다.

서울시 동물보호과는 서울시 내 길고양이가 25만 마리(2014년)에서 13만 9천 마리(2017년)로 감소했다고 말했지만, 정확한 개체 수 파악은 쉽지 않다. A 구청 관계자는 "지역 내 대략적인 길고양이 개체 수 조차 파악되지 않은 것이 현실"이라며 "정확한 데이터가 없어 길고양이 소음 등 민원이 들어올 때마다 최선을 다해 수술을 진행할 뿐"이라고 밝혔다.

길고양이 중성화 수술, 5년간 63억원..."혈세 막으려면 주먹구구 벗어나야"

문제는 한정된 예산으로 진행되는 중성화 수술만으로는 길고양이의 번식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것.. 고양이는 1년 최대 4차례까지 새끼를 낳지만, 현재 각 구청은 민원이 접수될 때만 길고양이 중성화 수술을 실시한다.

오는 10월이면 예산이 바닥을 보여 4/4분기에는 길고양이 중성화 수술 사업이 어렵다는 B 구청은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느낌이 들 수도 있지만, 이것마저 안 할 수는 없다"며 현재로서는 예산 소진 후 민원이 접수돼도 뾰족한 해결책이 없는 상황이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C 구청 관계자도 "작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올해는 이미 예산을 거의 소진한 상태"라고 밝혔다. D 구청과 E 구청 관계자 역시 "길고양이 중성화 수술을 요구하는 주민들의 요구는 매년 점차 늘어나고 있다"며 예산이 증액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불만은 구청이 아닌 캣맘들 사이에서도 터져 나온다. 자발적으로 고양이를 돌보는 캣맘들은 현재의 길고양이 중성화 수술 사업이 동물 복지는 외면한 채 실적 위주로 이루어진다고 지적한다. 생식 능력이 부족한 어린 길고양이를 수술시키거나 사후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죽어가는 개체들이 많다는 것.

1년에 약 10억 원 가량의 예산이 투입되는 사업이지만, 현장에서는 이처럼 다양한 불만을 토대로 한 아우성이 터져 나오고 있다. 그러나 무턱대고 예산만 늘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실제 서울시 동물보호과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각 구청의 요청이 있다면 예산이 조금 늘어날 여지는 있지만, 시 차원에서 임의로 예산을 증액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길고양이 중성화 수술, 5년간 63억원..."혈세 막으려면 주먹구구 벗어나야"

해결책은 무엇일까?

지난 2007년 서울시에 길고양이 중성화 수술 사업을 제안한 뒤 관련 사업에 참여해온 한국고양이수의사회 김재영 회장은 정확한 통계도 없이 민원이 들어오는 경우에만 중성화 수술을 시행하는 현재의 정책은 '주먹구구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김 회장은 "소음 등의 민원이 접수된 때에만 길고양이 중성화 수술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군집에 있는 길고양이를 일괄적으로 수술해야 한다"며 군집 중성화 수술을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예를 들어 배정된 예산의 절반은 민원 여부와 무관하게 특정 지역의 군집 전체를 중성화하는데 사용하고, 나머지 절반은 접수된 민원에 따라 사용하는 방식이다. 영역 동물인 고양이의 습성상 지역 내 70~75%를 중성화 수술이 시키면 3~5년 내 개체 수가 안정화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둔 방식인 셈이다.

또한 군집 중성화 수술과 함께 지속적인 관리도 중요한 포인트로 지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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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혈세가 낭비되지 않으려면 누군가는 검증해야죠" 김 회장은 길고양이의 개체 수와 서식지 등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도록 정부 유관기관이 '캣맘'의 도움을 받는 방법도 고려할 것을 제안했다. 자발적으로 활동하는 캣맘들과의 공조를 통해 더 나은 동물 복지 환경 조성이 가능하다는 것.

김 회장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전문가는 물론이고 민관이 협력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제 길고양이 문제는 지자체나 특정 단체 혹은 개인의 힘으로는 해결하는 어려운 사회 문제가 됐다.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지속적인 관심과 적극적인 대응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길고양이와의 공존은 가시밭길이 될 것이다.

YTN PLUS 김성현 기자 (jamkim@ytnpl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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