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나절] 대학병원, 여전히 3분 진료? 대기실서 현장 지켜보니…

[반나절] 대학병원, 여전히 3분 진료? 대기실서 현장 지켜보니…

2019.09.21. 오전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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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나절] 대학병원, 여전히 3분 진료? 대기실서 현장 지켜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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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 PLUS가 기획한 '반나절' 시리즈는 우리 삶을 둘러싼 공간에서 반나절을 머물며 사람들의 행동을 관찰하는 기획 기사입니다. 반나절 시리즈 8회는 서울 시내 모 대학병원에서 4시간을 보내며 진료 현장을 살펴봤습니다.

"이러다 내가 쓰러지면 너희들이 책임질 거야? 애초에 퇴원을 시키지 말았어야지. 수술했는데 진료를 1시간 기다리는 게 말이 돼? 진짜 몽둥이 가지고 확 들이받아야겠나?" 지난 9일 오전 기자가 찾은 모 대학병원 진료실 앞 대기실에서 작은 소란이 일어났다.

일순간 사람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모였고 이내 침묵이 흘렀다. 50대 남성은 그렇게 소리를 지른 후 눈을 감은 채 의자 2개를 차지하고 누워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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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병원에서는 '1시간을 대기하고 3분 진료를 본다'라는 말이 있다. 상급종합병원(3차 병원)의 짧은 진료 시간을 비꼬는 것이다. 실제 지난 2014년 국민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 연구팀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형병원의 평균 외래 진료 시간은 환자 1명당 평균 4.2분이었다.

환자들의 진료 시간은 여전히 컵라면 조리 시간만큼이나 짧은 것일까? 반나절 동안 신경과(24명), 외과(13명), 정형외과(12명)를 찾은 환자 49명의 진료 시간을 지켜봤다.

■ 6.26분

9일 오전부터 반나절 동안 관찰한 환자 49명의 평균 진료 시간은 6.26분이었다. 다만 평균의 함정이 있었다. 5분 진료를 받은 환자의 수와 10분 이상 진료를 받은 환자의 수가 각 8명으로 동일했다. '3분 진료'는 9명으로 가장 많았으며 한 명뿐이었지만 진료가 2분밖에 이루어지지 않은 환자도 있었다.

가장 오랫동안 진료가 이루어진 환자는 신경과를 찾은 환자로 진료시간은 총 16분이었다. 외과와 정형외과에서도 각 15분, 14분으로 평균보다 긴 시간 진료를 받은 환자가 있었다.

환자들은 자신의 진료 시간에 만족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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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제는 대기 시간

이날 병원에서 만난 대부분의 환자는 진료 시간 보다도 '대기 시간'을 지적했다.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를 휠체어에 모시고 온 한 중년 남성은 "한 번 오면 너무 오래 기다려야 하니까 차라리 동네 병원에 갈 걸 그랬다"며 진료 전 긴 대기시간에 난색을 표했다.

다른 60대 여성 환자 역시 "진료는 20분 정도 본 것 같은데 대기 시간이 2시간이 넘었다"며 대기 시간이 짧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 모녀 역시 "10시 진료인데 9시부터 와서 대기하고 있지만 언제나 진료를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긴 대기 시간을 기다리며 벤치에 누워 잠을 청하거나, 아예 진료를 포기하고 돌아가는 등 병원 곳곳에서도 대기 시간으로 인해 불편을 호소하는 환자를 쉽게 접할 수 있었다. 진료 진행 상황을 표시하는 전광판에 나타난 환자별 예상 대기시간 역시 맞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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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 시간에 대한 불만도 여전했다. 한 40대 여성 환자는 "1시간을 기다렸는데 5분 정도 진료를 봤다. 10분은 돼야 궁금한 점을 충분히 물어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결국 진료 시간과 대기 시간은 동전의 양면 같은 것이었다. 나의 대기 시간이 짧아지려면 누군가의 진료도 '컵라면 진료'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근원적인 해결책은 없는 것일까?

■ 엉킨 실타래를 푸는 법

"진료 과목, 환자, 의사에 따라 천차만별이라 뭐라고 정의할 수가 없어요" 이 병원 A 의사는 진료 시간이 짧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비판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시술과 수술이 많이 이루어지는 과의 경우 평균적으로 진료 시간이 적을 수 있으며, 환자나 병의 특성에 따라서도 당연히 차이가 발생한다는 것.

그는 "준비가 미흡해서 진료가 빨리 끝난다고 생각하는 것은 위험한 생각"이라며 "전날 미리 차트를 보며 환자 진료를 대비하기 때문에 원활한 진료가 가능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진료가 필요한데도 일부러 짧게 보는 일은 있을 수 없다"라며 외래 환자 진료를 보다 오후 7~8시에 끝나는 경우도 많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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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의사는 환자들이 상급종합병원으로만 몰리는 현실에서는 대기 시간 대비 짧은 진료 시간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보건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우리나라 1인당 외래횟수는 연간 16.6회로 OECD 평균 7.1회의 2배가 넘는다.

이런 가운데 최근 10년간 대학병원 등 상급종합병원 이용량은 66%나 증가했다. 중증 입원환자를 진료해야 하는 상급종합병원에 경증 및 일반 환자들이 몰리는 것이다. 실제로 상급종합병원의 입원환자 중 평균 56.8%가 경증 및 일반 환자로 조사되기도 했다.

취재 중 만난 B 의사 역시 "모두가 우리나라 최고의 의료진에게 진료를 받고 싶다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경증 환자들이 상급종합병원으로 몰릴 경우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 본인에게 돌아가는 구조"라고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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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보건복지부는 이처럼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료전달체계를 개편해 대형병원 환자 쏠림 현상을 완화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내년부터 시행되는 새로운 체계에 따르면 경증 질환 100개를 상급종합병원에서 진료할 경우, 진찰 건별 8,790원씩 지급되던 의료질 평가 지원금 지급이 중단된다. 환자 본인이 내는 본인 부담금 역시 현재의 60%에서 단계적으로 올라갈 예정이다.

쉽게 말해, 앞으로 대형병원은 고혈압이나 백내장, 당뇨병 등 경증에 해당하는 환자를 진료하면 원래 받던 국가 지원금을 받지 못하게 된다. 환자도 감기나 위궤양 같은 병으로 대형병원을 찾으면 병원비를 더 많이 내야 한다. 또한 대형병원에서는 중증환자만 보험금 받을 수 있도록 실손의료보험의 보장 범위도 축소된다.

또한 상급종합병원 지정기준을 강화해 중증환자의 입원 비율은 현행 21%에서 30%로 늘리고, 경증환자 입원 비율은 16%에서 14%로 외래환자는 17%에서 11% 이내로 낮추기도 했다. 이외에도 상급종합병원에 가기 위해 환자가 진료의뢰서를 병·의원에 직접 신청했던 현행 제도를 의사가 판단해 예약까지 해주도록 했다.

상급종합병원이라는 이름도 '중증종합병원'으로 변경해 중증환자 위주 병원이라는 인식을 유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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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분 진료를 막기 위한 노력은 이뿐만이 아니다. 서울대병원의 경우 지난 2017년 9월부터 중증질환이나 희귀난치질환이 의심되는 초진 환자를 대상으로 '15분 심층진료' 사업을 시작했다. 서울대병원은 심층진료가 환자 만족도는 높이고 진료비는 낮추는 효과가 있다고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물론 단기간의 해결은 쉽지 않을 것이다.

KTX, SRT 등으로 한나절 생활권이 되자, 지방에 거주하는 환자들의 서울 '빅 5 병원' 쏠림 현상이 가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현행 의료법상 대형병원에 찾아오는 환자에 대해 진료 거부를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지역 병·의원에 대한 불신에서 기인한 대형 병원 선호 경향이 쉽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감기처럼 가벼운 질환으로 큰 병원을 찾는 불필요한 '의료 쇼핑'을 막겠다는 정부의 의지에도 개정되는 의료전달체계의 실효성에 대해 의문의 목소리도 나오는 이유다.

그러나 엉킨 실타래를 빠르게 풀기보다 바르게 풀기 위해 정부, 의료계, 시민들이 머리를 맞대고 마음을 모을 때 모두를 위해 더 나은 의료 환경이 만들어질 것이다. 그때는 3분 진료에서 가장 많이 들을 수 있는 "대기해주세요" "시간 좀 걸릴 것 같아요"라는 말도 조금이나마 줄어들 수 있지 않을까?

YTN PLUS 김성현 기자 (jamkim@ytnpl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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