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도 버린 위안부 피해자..."진정한 해방 없었다"

조국도 버린 위안부 피해자..."진정한 해방 없었다"

2019.08.16. 오전 0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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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어린 소녀들이 위안소로 끌려가 끔찍한 고통을 겪었다.'

우리가 일본군 성폭력 피해자, '위안부'와 관련해 알고 있는 역사는 대부분 여기까지입니다.

하지만 해방 이후에도 피해자들은 조국의 무관심 속에 이국땅에 버려지거나 억울한 오명을 쓰고 쫓겨나는 등 끊임없는 고초를 겪어야 했습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아픈 역사를 이경국 기자가 되짚어 봤습니다.

[기자]
위안부 피해자인 이옥선 할머니는 15살 때 동네에서 괴한들에게 납치됐습니다.

한참을 달려 도착한 곳은 중국 연길의 위안소, 3년간 끔찍한 전쟁범죄가 이어졌습니다.

[이옥선 할머니 / 일본군 성폭력 피해자 : 맨날 총질하고 칼질하고 매질하고. 나이 어린 게 어떻게 견딜 수가 있겠어요. 높은 산에 올라가서 굴러떨어져 죽고, 목을 매 죽고, 물에 빠져 죽고, 이렇게 많이 죽었죠.]

패망 직후 일본군은 할머니를 비롯해 위안부 피해자들을 깊은 산 속에 버리고 떠났습니다.

말도 못할 고생 끝에 조국에 돌아온 건 지난 2000년이었습니다.

[이옥선 할머니 / 일본군 성폭력 피해자 : 개천을 거꾸로 엎드려 기어서 손으로 길을 만들면서 내려왔어요. 밥을 빌어먹으러 다니다가 남자를 하나 만나서 살았어요.]

많게는 30만 명으로 추산되는 피해자들은 이역만리 타국에 그대로 버려졌습니다.

조국은 해방됐지만, 국가의 기능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장석흥 교수 / 국민대 한국역사학과 : 해방됐지만, 우리에겐 나라가 없었습니다. 과거 문제를 책임지고 해외에 있는 동포를 송환해야겠다는 구심점이 없었던 거죠.]

자책감에 귀향을 포기하고 목숨을 끊거나 '기녀'나 '무녀' 취급을 당하며 극심한 차별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김대월 / 나눔의집 학예연구사 : 풍기문란죄로 강제로 고국으로 송환시키는 사업을 진행하기도 했죠. 중국인이랑 결혼하면 거류증이 나와서 (추방을 피하려) 결혼하게 되고….]

홀로 천 리 길을 걸어 고국 땅을 밟았다 하더라도 따가운 시선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녔습니다.

[이옥선 할머니 / 일본군 성폭력 피해자 : 우리 아버지 친구들이 막 네 딸은 살아왔는데, 우리 딸은 다 죽었다고 안 온다면서…. 집에 못 있겠더라고요. 그래서 걸어 걸어서 충청북도 속리산을 찾아갔어요.]

해방 이후 얼마나 많은 피해자들이 버려졌는지, 또 고국으로 돌아왔는지 정확한 집계는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저 정부에 등록된 생존 할머니 스무 분만이 일본의 만행과 통한의 삶을 증언할 뿐입니다.

광복 74주년, 어쩌면 이들에게 진정한 해방은 오지 않았는지도 모릅니다.

[이옥선 할머니 / 일본군 성폭력 피해자 : 일본서 할머니들 다 죽기를 기다리거든. 이젠 다 죽었잖아요. 다 죽고 몇 안 남았는데, (이제라도 사과)하면 얼마나 좋아요.]

YTN 이경국[leekk0428@ytn.co.kr]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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