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TMI] 애국가는 언제부터 시작됐을까?...때마다 등장하는 친일 안익태 논란

[뉴스TMI] 애국가는 언제부터 시작됐을까?...때마다 등장하는 친일 안익태 논란

2019.08.09. 오후 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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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 행적이 논란이 된 작곡가 안익태가 만든 애국가를 국가로 부르지 말자는 주장이 어제는 국회에서 제기돼 또 다시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오늘 뉴스 TMI에서는 애국가, 과연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 역사를 한번 짚어보겠습니다.

박석원 앵커, 처음 애국가가 불린 건 언제부터죠?

애국가의 자취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조선 말 갑오개혁 직후부터 찾아볼 수 있습니다.

1896년 당시 독립문 정초식에서 배재학당 학생들이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 랭 사인'의 멜로디에 맞춰 부른 곡이 최초의 애국가로 여겨지는데요.

곡의 후렴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죠션 사람 죠션으로 길이 보죤하세" 가사가 지금의 애국가 맥을 잇고 있죠

"충성심을 돋구고 애국심을 진작함에 있어 국가보다 좋은 것이 없으니 마땅히 국가를 만들어야 하겠다.

당시에는 공식적으로 나라에서 정한 국가는 없었습니다. 때문에 고종은 국가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고, 1902년 '국가'를 정하라 명하게 되죠.

그렇게 독일인 음악가 에케르트를 초빙해 완성한 '대한제국 애국가'가 1902년 8월 15일 최초의 흠정국가, 임금이 정한 국가로 공포됩니다.

하지만 한문 투의 어려운 가사와 낯선 곡조 등 부르기 어려운 노래로 확산이 어려웠죠.

게다가 일제의 강요 속에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는 탄생 7년 만에 금지곡이 되었습니다.

그 이후 1919년 3·1운동 당시 군중들은 국기를 흔들며 다시 올드 랭 사인의 곡조에 맞춘 애국가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이 곡은 상해 임시정부의 국가로 계승되죠.

하지만 '애국가'가 다른 나라의 민요, 그것도 이별곡의 곡조로 불린다는 것에 새로운 애국가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고, 안익태가 작곡한 새로운 곡조에 이전부터 불리던 애국가의 가사를 붙여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함께 공식 연주되어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애국가를 둘러싼 논란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현재 애국가의 작곡가, 안익태가 친일 인명사전에 등재된 데다 불가리아의 국민가요 '도브리치'와 비슷해 표절 시비까지 휘말린 건데요.

이 때문에 안익태의 애국가를 계속 불러야 하는지 국회 공청회까지 열렸지만, 이미 오랫동안 불러온 애국가와 작곡가의 행적은 별개라는 의견도 만만치 않은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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