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 웹툰 '며느라기' 아래 모인 분노한 여성들

추석 연휴, 웹툰 '며느라기' 아래 모인 분노한 여성들

2017.10.07. 오후 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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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부터 소소하게 화제가 됐던 '며느라기'라는 웹툰이 있다. '며느라기'는 포털 사이트나 웹툰 페이지에 정식으로 연재되지 않고 SNS로만 공개되는 작품이지만, 많은 여성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입소문만으로 성공을 거두고 있다.

작가가 밝힌 '며느라기'의 뜻은 '사춘기, 갱년기처럼 며느리가 되면 겪게 되는 시기'를 뜻한다. 작가는 시댁 식구한테 예쁨 받고 싶고 칭찬받고 싶은 그런 시기로, 보통 1, 2년이면 끝나는데 사람에 따라 10년 넘게 걸리기도, 끝나지 않기도 한다고 설명한다.

작가는 3주 전부터 휴재에 들어갔다가 추석 연휴에 맞춰 쌓아놨던 '민사린의 명절 나기' 연재분을 대방출했다. 포털에 매여있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신선한 연재 방식은 큰 성공을 거뒀고, 덕분에 며느라기 웹툰 댓글 창은 명절 동안 분노한 여성들이 모여 분노를 분출하는 '대성토의 장'이 됐다.

대부분 '어제 봤던 풍경이다', '그래도 말이라도 예쁘게하니 저 정도면 양호한 시댁이다'라는 간증과 원망의 글이었다.



'며느라기'의 주인공 민사린은 능력 있는 커리어 우먼이다. 그는 대학 동기인 남자친구 무구영과 결혼한 뒤 시부모님과 딸처럼 지내면서 예쁨받고 싶어 하는 며느라기 시기를 겪고 있는 평범한 기혼 여성이다.

그녀는 시어머님의 첫 생신상을 차려 드리거나, 시댁 제사 음식을 차리러 시댁에 가는 일 쯤은 기꺼이 할 준비가 돼 있다. 젊은 여성들도 이를 '며느리라면 해야 할 도리'라고 생각하고, 새로 생긴 가족들과 잘 지내며 예쁨받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어느새 '시댁'이라는 신세계 안에서 너무나 미미한 존재가 돼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한다. 시어머니는 첫째 며느리와는 달리 사근사근하고 '며느리 할 도리'를 다하는 둘째 며느리 사린을 흡족해하면서 동시에 자연스럽게 과도한(그러나 본인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기대와 요구를 한다. 며느리가 아무리 돈을 잘 벌고 똑똑해도, 시댁에서 중요한 건 그런 가치가 아니다.

남편 무구영 역시 어머니의 불합리한 행동을 묵인하고, 자신이 보고 배운 대로 조상 제사에도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그는 '함께 제사 일을 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아 화가 난 사린과 다투며 "너랑 결혼하고 집안 분위기가 얼마나 좋아졌는지 모른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어 그가 하는 말은 부모님과 아내 사이에서 갈등하는 많은 한국 남성들의 깊은 마음속 심경을 대변한다.


"정말 미안한데, 그런데 그냥...부모님 만나는 날만 그냥...그렇게 있어주면 안 될까?"



끔찍한 일이다. 시어머니는 과거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분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쳐도, 남편까지 이러면 당해낼 도리가 없다. 사린의 연애시절에도 분명 힌트는 있었다. 연애시절 구영은 "나중에 우리 엄마랑 너랑 백화점에서 쇼핑도 하고 둘이 내 흉도 보면서 찜질방도 가고 그러면 되게 좋을 것 같다"는 희망 사항을 밝혔었다.

구영은 본인이 '무뚝뚝하기 때문에' 하지 못하는 행동들을 자신의 부인이 대신 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호탕한 사린은 그런 구영과 싸우는 대신, "너도 알면서도 못 하는 일을 왜 남이 해주길 바라냐"며 "엄마에게 잘 하고 싶으면 결혼할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오늘부터 직접 잘 해드리라"고 일침을 놓는다.

독자는 이 부분에서 탄식한다. 이렇게 사리 분별을 잘 하고, 똑똑하며, 남자친구의 무리한 요구를 단칼에 거절할 줄 알았던 사린이가 결혼을 하면서 이젠 남들 앞에서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수 없는 사람이 돼 버렸기 때문이다.

시어머니는 "요즘은 혼자 벌어서는 안 되는 세상이니 맞벌이가 당연하다"고 하면서도 해외로 출장을 가야하는 며느리에게는 "결혼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회사에 얘기해서 안 가면 안되느냐"고 말하는 이중성을 보인다. 정작 자신의 아들이 출장을 떠날 때는 곰국을 해 주겠다고 말하는 것과 매우 대비된다.

즉, 민사린의 시댁에서 여성은 누군가의 엄마이자 부인으로, 주체가 될 수 없는 부차적인 인간일 뿐이다. 명절 당일 부엌, 생전 처음보는 친척과 인사하며 사린이는 '구영이 부인'으로 소개된다. 그녀가 소개받은 사람은 '다영이 엄마'이다. 그들은 말 없이 전을 부칠 뿐이다.



웹툰 '며느라기'는 전개가 빠르지도 않고, 엄청난 반전이 숨어 있지도 않으며 에피소드간 연계도 별로 없고 연재 속도도 느리다. 그럼에도 이 웹툰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오로지 여성들의 깊은 곳에 숨어있던 의구심과 불만을 짚어 주고, 그들에게 공감을 불러 일으켰기 때문이다.


현재 독자들의 관심사는 '각성한 사린이가 구영이와 이혼할 것이냐'는 것인데, 이 웹툰이 지나치게 현실적이니 만큼 이혼까지는 가지 않으리라 보인다. 이 정도 에피소드로 이혼이 성사된다면, 대한민국에는 이혼하지 않는 부부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남존여비의 악습을 주도적으로 끌어가는 듯이 보이는 시어머니 역시 가부장제의 피해자라는 점이다. 집안 일을 방조하는 시아버지, 그리고 아들 사이에서 시어머니는 모든 대소사를 도맡아 하며 본인과는 상관 없는 '무씨 집안' 조상의 제사를 수십 년째 진두지휘하고 있다.

이런 어머니에게 시아버지는 "고생은 무슨, 매년 하는 일인데"라고 평가절하의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던지고, 당장 제사를 지내느라 지친 사린은 일차적으로 만삭이라 제사에 오지 않은 형님을 원망하게 된다. 이렇게 열심히 일하고 고통받는 여성들끼리 감정이 상하는 일만 반복된다.

짐작건데, 시어머니는 자신을 '나 정도면 괜찮은 시어머니'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본인이 젊은 시절 겪었던 고된 시집살이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좋은 대우를 해주고 있을테니 말이다.

그래서 더욱 시어머니는 변할 수 없고, 제사를 없앨 수도 없다. 본인이 수십 년간 해온 모든 일을 '무의미한 일'로 돌려버린다면, 자신이 무가치한 일을 해왔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누가 자신의 수십 년 세월을 수포로 돌리는 일을 나서서 할 수 있을까?

누군가는 '요즘에도 저런 시댁이 있느냐'고 묻는다. 하지만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한국적이지 않은, 축복받은 집안에서 살아왔거나 가부장제의 혜택을 받고 살아와 여기서 야기되는 불합리를 굳이 알 필요가 없었던 사람들일 것이다.

언제나 사람들의 인식이 변하는 속도는 세상이 변하는 속도에 따르지 못한다. 요즘 젊은 세대도 아직 과도기를 겪고 있는데 하물며 장년층과 노인은 어떠할까. 이 세대가 지나면, 지금 '불편함'을 느끼는 우리 세대는 우리의 며느리에게 이 굴레를 물려주지 않을 수 있을까?

YTN PLUS 정윤주 기자
(younju@ytnplus.co.kr)

웹툰: 며느라기 인스타그램 @min4r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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