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이 본 '82년생 김지영'의 이야기

남자들이 본 '82년생 김지영'의 이야기

2017.03.27. 오후 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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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불어민주당 금태섭 의원이 자신의 SNS에 올린 책과 편지 사진)

"그리고 내가 결혼을 할지 안 할지, 애를 낳을지 안 낳을지도 모르는데, 아니 그 전에 죽을지도 모르는데. 왜 일어날지 안 일어날지 모르는 미래의 일에 대비하느라 지금 하고 싶은 걸 못하고 살아야 돼?" - '82년생 김지영' 중에서

작가 조남주의 장편 소설 <82년생 김지영>은 지난해 10월에 나온 책이다. 소설 속 주인공 김지영 씨는 평범한 가정에서 자라 평범하게 학업을 마친 후 직장을 다녔다. 곧 한 남자를 만나 결혼한 후 아이를 낳아 기르던 김지영 씨는 어느 날 병을 얻는다. 때에 따라 대학 선배가 되거나 친정엄마가 되고, 혹은 어렴풋이 아는 다른 여성이 되곤 한다.




(▲ 지난해 11월 해당 소설에 대해 소개하는 tbs 영상)

다른 군더더기 없이 김지영이란 사람의 삶을 추적하다 보면 그녀가 이해할 수 없던, 하지만 따라야 했던 여러 이중잣대를 발견한다. 출간한 지 다섯 달이 지난 책이지만 2만 8,000부 이상을 찍어내며 여전히 손을 타고 있다. 어떤 이야기가 책을 넘어 하나의 현상이 되는 중이다.

특히 꽤 많은 남성 독자들이 이 이야기를 읽고, 권하고 있다. 실제로 정의당 노회찬 의원은 자신의 SNS에 직접 이 책을 언급했고, 더불어민주당 금태섭 의원은 아예 모든 의원에게 해당 책을 보낼 정도였다. 어쩌면 끝내 다 헤아릴 수 없을 한국 여자에 대한 책이 왜 한국 남성들에게 읽힐까. 소설을 읽은 남자들을 만나 그 이유를 들어봤다.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읽게 된 계기가 무엇입니까?

"작년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연구실에서 페미니즘 이슈를 다루는 책 읽기 모임을 했다. 그 모임에서 읽을 책을 고르던 중 지인들에게 추천받았다." - 김 준(29, 대학원생)

"순전히 우연이었고, 제목을 보고 집어 들었다. 81년생도, 83년생도 아닌 82년생 김지영이었어야 할까, 궁금했다." - 곽도원(28, 학생)

"페이스북에 올라온 포스팅을 접했다. 애인이 관심 있게 보는 책이기도 했고, '맘충'이라는 단어를 혐오하는데 그에 대한 부분이 나와 읽어보게 됐다." - 정철수(가명, 29, 무직)




(▲ 한국의 성평등에 대해 얘기하는 방송인 다니엘 린데만의 세바시 강연)

"그 커피 1,500원이었어. 그 사람들도 같은 커피 마셨으니까 얼만지 알았을 거야. 오빠, 나 1,500원짜리 커피 한잔 마실 자격도 없어? 아니, 1,500원 아니라 1,500만 원이라도 그래. 내 남편이 번 돈으로 내가 뭘 사든 그건 우리 가족 일이잖아. 내가 오빠 돈을 훔친 것도 아니잖아. 죽을 만큼 아프면서 아이를 낳았고, 내 생활도, 일도, 꿈도, 내 인생, 나 자신을 전부 포기하고 아이를 키웠어. 그랬더니 벌레가 됐어. 난 이제 어떻게 해야 돼?" - 본문 중에서


책에서 가장 익숙했던 부분과 낯설었던 부분이 무엇입니까?

"특히 김지영 씨의 엄마 오미숙 씨가 가정을 살리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하고 사실상 가장 노릇을 했는데도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제대로 공을 인정받지 못하는 모습이 가장 익숙했고, 그래서 더욱 고까웠다." - 김 준

"회사에서 남성, 여성직원에 대한 차별이 나오는 부분. 여자라는 이유로 미리 배제당하는 상황은 회사에서 자주 일어나는 일이라 익숙했다. 다만 이 사회에서 지금까지 남성으로 살면서 '82년생 김지영' 씨가 당했던 일을 당해본 적은 없으므로 여성으로 사는 자체가 낯설게 느껴졌다." - 정철수


자신이 김지영 씨였다면 가장 참기 힘들었을 부분은 무엇입니까?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삶이라 함부로 넘겨짚는 게 아닐까 조심스럽지만, 취직할 때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게 제일 짜증 날 것 같다. '내가 쟤보다 뭐가 부족하다고?'라는 생각이 들 것 같다." - 김 준

"'사람들이 나 보고 맘충이래' 하는 부분. 그나마 남아있는 삶의 의미마저 아무렇지 않게 파괴해버리는 대단히 폭력적인 한 마디라고 느꼈다." - 정철수

"꿈을 포기하고 가정주부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는 상황 자체가 견디기 힘들 것 같다. 그런 와중에 맘충 소리나 듣게 된다니 상상만으로도 고통스럽다." - 김승율(27, 무직)




(▲ 여전히 여성에 대한 차별이 곳곳에 존재한다고 비판하는 YTN 한컷뉴스)

자신이 김지영 씨였다면 다르게 행동했을 부분은?

"진짜 결혼하기 싫어서 비혼으로 남았을 것 같다. 내게는 지금 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 김 준

"아이를 낳지 않을 것 같다. 목표를 뭉개고 오롯이 가족을 위해 사는 삶이 가져올 무력감과 좌절을 견딜 자신이 없다." - 김승율

"여자들이 보기엔 참 속 편한 발상이지만 아이를 낳지 않는 결정을 고수할 것이다." - 정철수


"그래도 지영아, 잃는 것만 생각하지 말고 얻게 되는 걸 생각해 봐. 부모가 된다는 게 얼마나 의미 있고 감동적인 일이야. 그리고 정말 애 맡길 데가 없어서, 최악의 경우에, 네가 회사 그만두게 되더라도 너무 걱정하지 마. 내가 책임질게. 너보고 돈 벌어 오라고 안 해."
"그래서 오빠가 잃는 건 뭔데?"
"응?"
"잃는 것만 생각하지 말라며. 나는 지금의 젊음도, 건강도, 직장, 동료, 친구 같은 사회적 네트워크도, 계획도, 미래도 다 잃을지 몰라. 그래서 자꾸 잃는 걸 생각하게 돼. 근데 오빠는 뭘 잃게 돼?" - '82생 김지영' 본문 중에서




(▲ 한국 남성과 페미니즘의 관계에 대해 설명하는 사회학자 오찬호/ 닷페이스)

질문 외에도 책에 대한 감상이 다양할 것 같다

"젊은이들에게 일상적으로 무례한 중년 여성에 대한 편견이 있었는데 이 작품을 읽고 생각이 다소 바뀌었다. '여성'으로서 삶을 산 이들에 대한 어떤 존중이랄까." - 권순민(24, 대학생)

"당대가 요구하는 질문을 담은 책이라 생각한다. 우리에겐 좀 더 치열하고 정교한 분노가 필요하다. 문제에 대한 집중력을 잃지 않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 곽도원

"남성이 읽기는 쉽고, 여성에게는 읽기 힘든 책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많은 분이 읽었으면 한다. 평범한 82년생 김지영 씨의 인생은 주위 어디에나 존재한다. 서로에 대한 공감을 위해서 한 번씩 읽어봤으면 좋겠다." - 정철수

딸이 태어난 후 김지영 씨는 또래의 일하는 여성들과 마주칠 때면 아이가 있을까, 몇 살일까, 누구에게 맡겼을까 궁금해졌다. 경기 불황, 높은 물가, 열악한 노동 현장.... 삶의 어떤 고난도 남녀를 가리지 않는다는 당연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많았다. - 본문 중에서




(▲ 페미니스트로 살아온 삶을 회고하는 록산 게이의 테드 강연 영상)

YTN PLUS 김지윤 모바일PD
(kimjy827@ytnplus.co.kr)
[사진출처 = Fac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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