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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3·1 운동 뒤 우리 독립군과의 전투에서 잇달아 패배한 일제가 그 앙갚음으로 간도 지역의 조선인 수만 명을 대량 학살했는데요.
일제는 이런 학살 현장의 모습을 담은 사진첩을 만들어 군인들에게 배포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일제의 만행을 생생히 보여주는 사진들이 추가로 공개됐습니다.
한동오 기자입니다.
[기자]
총상을 입고 흙더미 속에 아무렇게나 쓰러져 있는 양민들.
학살을 저지른 일본군들의 표정에서는 어떤 죄책감도 보이지 않습니다.
양손이 결박된 채 참수당하고, 완전 무장 상태에서 일제의 총탄에 스러져간 독립군의 모습도 보입니다.
10여 구의 주검을 촬영한 사진에는 적들의 사체라는 설명을 붙여놓기도 했습니다.
일장기를 앞세우고 군영지로 들어가는 일본군.
양민 학살도 서슴지 않았던 부끄러운 군대의 모습입니다.
1919년 3·1 운동을 계기로 한국과 만주에서는 독립군의 기세가 드높았습니다.
청산리대첩과 봉오산 전투에서 잇달아 대패한 일본은 1년 뒤 우리 민간인 수만 명을 학살하는 경신참변, 이른바 간도대학살을 저지릅니다.
당시 참상을 적나라하게 담은 이 사진들은 일제시대 북간도에서 활동한 민족 지도자 규암 김약연 선생 기념사업회가 공개한 것들입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도 없다, 우리가 이 사진들을 똑똑히 보고 기억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YTN 한동오[hdo86@ytn.co.kr]입니다.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
3·1 운동 뒤 우리 독립군과의 전투에서 잇달아 패배한 일제가 그 앙갚음으로 간도 지역의 조선인 수만 명을 대량 학살했는데요.
일제는 이런 학살 현장의 모습을 담은 사진첩을 만들어 군인들에게 배포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일제의 만행을 생생히 보여주는 사진들이 추가로 공개됐습니다.
한동오 기자입니다.
[기자]
총상을 입고 흙더미 속에 아무렇게나 쓰러져 있는 양민들.
학살을 저지른 일본군들의 표정에서는 어떤 죄책감도 보이지 않습니다.
양손이 결박된 채 참수당하고, 완전 무장 상태에서 일제의 총탄에 스러져간 독립군의 모습도 보입니다.
10여 구의 주검을 촬영한 사진에는 적들의 사체라는 설명을 붙여놓기도 했습니다.
일장기를 앞세우고 군영지로 들어가는 일본군.
양민 학살도 서슴지 않았던 부끄러운 군대의 모습입니다.
1919년 3·1 운동을 계기로 한국과 만주에서는 독립군의 기세가 드높았습니다.
청산리대첩과 봉오산 전투에서 잇달아 대패한 일본은 1년 뒤 우리 민간인 수만 명을 학살하는 경신참변, 이른바 간도대학살을 저지릅니다.
당시 참상을 적나라하게 담은 이 사진들은 일제시대 북간도에서 활동한 민족 지도자 규암 김약연 선생 기념사업회가 공개한 것들입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도 없다, 우리가 이 사진들을 똑똑히 보고 기억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YTN 한동오[hdo86@ytn.co.kr]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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