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사고, 한 줄 서기 때문 아니다!

고장·사고, 한 줄 서기 때문 아니다!

2015.07.11. 오전 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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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지하철 에스컬레이터 두 줄 서기 캠페인, 햇수로 벌써 9년째인데요.

처음 두 줄 서기 캠페인이 도입됐던 이유는 기기 고장과 안전사고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과연 근거가 있는 이야기일까요?

전 세계 거의 모든 나라에선 우리나라와 달리 사실상 한 줄 서기를 하고 있습니다.

한동오 기자가 집중 취재했습니다.

[기자]
두 줄 서기 캠페인이 시작된 계기 중 하나, 바로 기기 고장이었습니다.

한 줄로 걸으면 에스컬레이터 왼쪽에 하중이 쏠려 고장을 유발한다는 겁니다.

에스컬레이터에서 걷거나 뛰면 자신의 몸무게보다 더 큰 하중을 주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이 계단과 연결된 내부 체인이 장기적으로 더 빨리 손상됩니다.

서울메트로는 두 줄 서기 캠페인을 시작한 2007년부터 에스컬레이터 고장 건수가 크게 줄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습니다.

하지만 고장이 한 줄 서기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요?

대형 인명 피해를 불러온 에스컬레이터 사고!

한 줄 서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2년 전 야탑역 에스컬레이터 역주행 사고는 짝퉁 부품 때문에, 5년 전 부산 연산역 에스컬레이터 사고는 안전장치 결함 때문이었습니다.

에스컬레이터는 국민안전처 고시에 따라 스텝이라고 불리는 계단 한 칸에 300kg, 그러니까 성인 남성 4, 5명을 지탱할 수 있도록 설계됩니다.

실제로는 더 많은 하중을 견딜 수 있도록 만들어지기 때문에 300kg 이상의 충격도 버텨낼 수 있습니다.

한 줄 서기가 에스컬레이터 수명을 단축할 순 있지만 그렇다고 사고 원인이라고 단정 짓는 건 무리라는 겁니다.

취재진이 국토교통부에 정보공개를 청구했습니다.

대다수 지하철 운영사들은 2007년 이전의 고장, 사고 건수에 대해 통계 자료를 갖고 있지도 않았습니다.

두 줄 서기 캠페인 이전과 이후를 체계적으로 분석할 자료도 빈약한 겁니다.

논란이 일자 두 줄 서기 캠페인을 가장 먼저 주장했던 한국승강기안전관리원도 방침을 바꿨습니다.

[김승룡, 한국승강기안전관리원 대외협력실 팀장]
"한 줄 서기가 워낙 정착돼 있다 보니까 저희가 두 줄 서기로 방향을 바꿔서 하다가 지금은 한 줄 서기, 두 줄 서기가 아니라 이용하는 시민분들에게 어떻게 하는 게 에스컬레이터를 가장 안전하게 이용하는 방법인지 (알리고 있습니다)."

두 줄 서기 캠페인을 해야 하는 지하철 역장들 역시 아직도 두 줄 서기가 정착되고 있지 않다고 토로합니다.

[A 지하철 역장]
"이거는 이상하게 안 바뀌더라고요. (본사에서 두 줄 서기) 지시를 하는데 안 들을 수가 없잖아요."

[B 지하철 역장]
"누군가 두 줄 서기 하고 있으면 그게 (두 줄 서기가) 돼요. 하지만 비어있으면 가는 거지. 어느 역사나 비슷해요."

사람들이 한 줄 서기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하나, 빨리 가는 겁니다.

서울 당산역입니다.

에스컬레이터 구간 길이가 긴 곳과 짧은 곳이 함께 있는 곳인데요.

한 줄로 걸어갈 때와 두 줄로 서서 갈 때 얼마나 시간 차이가 나는지 제가 직접 확인해보겠습니다.

에스컬레이터가 긴 곳에서는 걸어가면 52초, 서면 1분 46초가 걸렸습니다.

반면, 에스컬레이터가 짧은 곳에서는 걸어가면 10초, 서면 26초가 걸렸습니다.

한 줄 서기가 두 줄보다 절반 정도 시간을 단축한 겁니다.

1분 1초가 급한 출퇴근 시민들에게는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이점입니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는 어떨까요?

취재진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지하철인 150여 년 역사의 영국 런던역을 가봤습니다.

계단 오른쪽에는 서 있고 바로 옆 왼쪽은 걸어갑니다.

우리나라처럼 한 줄서기입니다.

[제시, 런던 시민]
"많은 사람이 아침에는 바쁘기 때문에 (한 줄 서기) 규칙을 지켜야만 해요. 기억해야 하죠."

[아쉴리 바네스타, 런던 시민]
"(한 줄 서기는) 정말 좋은 제도입니다. 왜냐면 양쪽 상황에 다 적합하기 때문이죠. 좀 여유를 가지고 싶은 사람에게도 알맞고, 바쁜 사람들에게도 알맞으니까요."

이웃 나라 일본은 어떨까요?

일본도 우리나라처럼 걷지 말고 손잡이를 잡으라는 캠페인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걷는 사람을 위해 한 줄을 비워놓고 있습니다.

질서의식이 강한 일본 시민 역시 한국처럼 두 줄 서기가 정착되지 않고 있는 겁니다.

[도쿄 시민]
"오른쪽에 사람이 서 있으면 좀 비켜줬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도쿄 시민]
"둘이 같이 옆으로 나란히 서서 타지 않습니다. 혹시 사람이 없다면 몰라도 대체로 한 줄로 탑니다."

러시아와 체코 등의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와 일본을 제외하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두 줄 서기를 해야 한다고 대대적으로 캠페인을 주창하는 나라는 없었습니다.

우리 정부의 대책은 무엇일까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대중교통 정책을 책임지는 곳, 국토교통부입니다.

10년 넘게 지하철 운영사에 모든 걸 맡겨 놓고 여전히 수수방관합니다.

[국토교통부 관계자]
"지하철 에스컬레이터 줄 서기 이런 건 저희가 주관해서 한 적은 없습니다. 글쎄요. 검토한 적이 없습니다."

7백만 명이 넘게 이용하는 시민의 발 지하철!

현실과 동떨어진 캠페인을 10년 가까이 붙잡고 있는 지하철 운영사와 두 손 두 발을 다 놓고 있는 정부 때문에 시민들은 오늘도 두 줄로 설지, 한 줄로 설지 혼란 속에 하루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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