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복판서 리퍼트 주한미국대사 피습

서울 한복판서 리퍼트 주한미국대사 피습

2015.03.05. 오후 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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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한·미 연합훈련 기간에 서울 한복판에 주한미국대사가 흉기로 피습을 당했습니다. 파장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취재기자 와 함께 자세한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한동오 기자 나와 있습니다. 한 기자,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행사였죠. 어떤 행사였죠?

[기자]
평화와 통일과 관련해서 아침 8시부터 대사가 강연을 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한국과 미국이 어떻게 평화롭게 나아가야 할지 그것에 대해서 30분 동안 강연이 이어질 예정이었는데 강연이 시작되기 거의 15분 전쯤에 피습사건이 일어난 겁니다.

[앵커]
어떻게 김기종이 들어갈 수 있었을까, 이 부분도 많은 궁금증을 남기고 있는데, 초청장을 받지 못한 것이죠?

[기자]
그렇습니다. 당초 주최했던 민화협측은 일부 회원들한테 줬습니다. 그런데 김기종 씨는 초청장을 받지 않았고 그래서 이걸 수상하게 여긴 정보과 형사가 초청장도 없는데 어떻게 오게 됐느냐라고 물어봤을 때 그렇다면 물어본 당신은 누구냐, 김기종 씨가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경찰들이 저 사람이 수상하다라고 얘기를 하고 있는 찰나에 김기종 씨가 안에 들어가서 대사관한테 피습을 한 것으로 확인이 됐습니다.

[앵커]
안으로 들어간 지 얼마 안 돼서 일어난 사건이군요?

[기자]
그렇습니다.

[앵커]
사건 경위를 보면 민화협이 조금전에 기자회견을 했는데 사과문을 발표했고 민화협 창립 초기에 회원으로 가입했다고 합니다, 김기종 씨가. 그래서 초대장은 발송이 됐는데 참석의사를 밝히지 않은 채 현장에 들어간 것입니다. 그러니까 뭔가 앞뒤가 안 맞지 않습니까?

그래서 들어갔는데 명찰을 달고. 자기가 만든 명찰을 달고 들어간 것입니까? 어떻게 된 것입니까?

[기자]
자기가 수기로 쓴, 초청장을 수기로 쓴 종이를 들고 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행사 자체에서는 초청장 있는 사람만 꼭 들어가는 상태가 아니라 있는 사람도 들어갈 수 있고 다른 사람도 들어갈 수 있고 참석자들의 말에 따르면 초청장 유무에 관계없이 모두가 들어갈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초청장이 큰 의미가 없었던 것이죠.

[앵커]
그러니까 경찰이 경호에 문제가 있는 거 아니냐, 이런 말이 나오고 있는데 보통 이런 행사가 있으면 헤드테이블에 주요 인사들이 앉지 않습니까?

마크리퍼트 대사도 그 테이블에 앉았고 김기종 씨는 6번 테이블에 앉아있었어요. 그러니까 뒷줄에, 자기가 수기로 쓴 명찰을 달고 들어온 사람이 바로 뒷줄에 앉아있었단 말이죠. 그런데 그 상황에서 경찰은 제대로 경호를 했는지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오고 있죠?

[기자]
맞습니다. 사실 경찰이 꼭 경호를 해야 되는 사람은 우리나라에서 수십 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경찰이 꼭 경호를 해야 도겠요인경호대상은 미 대사같은 경우는 아니었습니다.

외국인은 아니었었고 그렇다 보니까 대사관측에서 경호를 요청해 달라, 이런 요청이 없었으면 사실 경찰이 갈 필요는 없었던 거죠. 하지만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돌발상황에 대비해서 경찰은 20여 명의 경력을 동원해서 안팎을 보고 있었고 하지만 상시적으로 근접하는 경호는 없었기 때문에 이번 피습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앵커]
들어가는 사람에 대한 관리도 허술했던 것 같고요. 또 한 가지 황당한 것은 흉기를 그대로 갖고 들어갈 수 있었다는 것도 참 관리가 부실하게 이루어졌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기자]
맞습니다, 저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기에 길이 30cm가 도는 이 정도 길이가 될 텐데 그렇게 되면 겉으로 봤을 때 아무리 옷에 넣는다고 해도 티가 났을 것입니다. 그런데 저희가 일반적으로 생각했을 때 금속탐지기라든지 이런 것들이 있을 걸로 생각이 됐지만 역시 그런 것들은 없었고 강연을 주최한 민화협측도 그런 준비에 대해서는 소홀했다라고 인정을 했습니다.

[앵커]
김기종 씨가 범행을 저지른 직후에 검거가 됐는데 경찰서로 가면서도 크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했습니다. 뭐라고 했죠?

[기자]
맞습니다. 자신은 30년 동안 전쟁을 반대를 해왔다. 그리고 현재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한국과 미국의 훈련에 대해서 반대한다. 이런 것들 때문에 결국 북핵이라든지 이런 거라든지 결국에 다 걸림돌이 되고 있다라고 주장을 하면서 또 발목을 삐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종로경찰서로 들어가기 전에 경찰서 아스팔트 앞마당 들이누워서 발목이 삐었으니까 구급차를 불러달라, 전쟁을 반대한다, 이렇게 소동을 피운 다음에 경찰서 안으로 들어가게 됐습니다.

[앵커]
다행히 수술은 잘 이루어졌다고 하고요. 조금전에 병원측의 설명도 들어봤는데 다시 한 번 부상 정도를 정리해 볼까요?

[기자]
25cm 에 달하는 흉기로 그 대사의 오른쪽 얼굴에 10cm가 넘는 상처가 났고 그리고 왼손에 2cm가 넘는 관통상을 입었습니다.

[앵커]
칼에 의한 자상이고 길이가 11cm, 깊이가 3cm. 그러니까 상당히 큰 상처라고 할 수 있는 거죠.

[기자]
그렇습니다. 깊이가 3cm라고 하면 이 정도가 될 텐데 칼로 얼굴에 있는 3cm 안으로 들어갔다고 생각하면 되게 아찔하게 느껴질 텐데요. 아까 병원에서 한 브리핑을 보셔서 아시겠지만 다행히도 치명적인 신경이나 이런 건건들지는 않아서 얼굴 같은 경우에는 크게 다친 적이 없었고 다만 왼손 같은 경우에는 신경 2개가 손상이 됐을 우려가 있기 때문에 한 3~4일 정도는 차도를 지켜 봐야 한다고 합니다.

[앵커]
김기종이 지금 보면 범행을 저질렀는데. 흉기를 가지고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통일운동한다고 그랬고 그런데 김기종이 과거에 북한을 여러 차례 방문한 사실도 확인됐죠?

[기자]
맞습니다. 과거 김기종은 5차례에 걸쳐서 북한을 방문했던 것으로 확인이 됐습니다. 현재 북한에서 어떤 행동을 했는지 확인되지 않았는데 김기종이 기존에 주장해 왔던 것은 독도라든지 이런 것들에 대해서 전쟁을 반대한다, 반미운동을 해 왔기 때문에 관련된 활동을 하지 않았을까라고 추정을 하고 있습니다.

[앵커]
본인은 어떤 우장하고 있습니까? 단독 범행이다라고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죠?

[기자]
맞습니다, 범행을 준비하기까지는 10일 정도의 기간이 있었는데 이게 다른 사람이랑 얘기를 하게 되면 당연히 퍼져나갈 게 우려가 됐기 때문에 자기 혼자서 범행을 계획했고 모의했고 실행했다라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앵커]
김기종이 우리마당이라는 시민단체 대표로 알려져 있는데 이 단체가 어떤 단체인지도 궁금한데요.

[기자]
정확하게 알려지지는 않았는데 우리마당이라는 곳은 김기종이 직접 만든 것으로 현재까지는 확인이 돼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반미운동이라든지 통일운동 그리고 독도를 알리는 활동같은 걸 했다고 자신의 책과 블로그 같은 곳에다가 써놓고 있습니다.

[앵커]
그런데 그렇다면 독도지킴이 역할을 했다는 것인데, 과거에 주한대사를 상대로 한 범죄가 처음이 아니었고 주한일본대사를 상대로도 범행을 저지른 사실이 확인이 됐죠?

[기자]
5년 전입니다. 2010년에도 주일대사가 있었는데 시멘트, 이 정도 되는 시멘트돌을 던졌습니다. 다행히 맞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대사에 대한 위협행위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 받았었습니다. 한마디로 5년 전에는 시멘트를 던지고 5년 후에 흉기로 피습한 상습범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앵커]
오늘도 우발적인 건 아니라고 보는 시각이 우세한 것 같습니다. 행사의 장소나 시각이나 수법이나 이런 걸 봤을 때 좀 며칠간 상당히 계획적으로 저지른게게 아닌가 하는 시각이 많은데 어떻게 봐야 할까요?

[기자]
맞습니다. 김기종도 그렇게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범행을 저지르기 전에 열흘가량의 시간이 걸렸고 자신은 예전부터 이걸 치밀하게 준비를 해 왔다 자신이 경찰서와 병원을 왔다갔다 하면서 취재진에게 외치기도 했습니다.

[앵커]
김기종이 어떤 사람인지 많은 사람들이 의구심을 품고 있습니다. 시민단체에서 활동을 해 왔다고 주장을 하고 있고 과거에도 북한도 방문하고... 그런데 그렇다면 최근에 왜 갑자기 범행을 저지를 계획을 세웠는지도 궁금한데 생활이 어려웠다.

일부 언론에서 생활이 매우 어려웠다는 얘기도 있고 전과도 처음에 6범 정도 된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확인이 된 겁니까?

[기자]
6범이라는 건 확인됐고...

[앵커]
전과 6범이 맞습니까?

[기자]
확인이 됐습니다. 기초생활수급자다라는 얘기도 있는데 거기까지 저희가 취재진이 확인하지 못했지만 김기종 씨의 집을 갔을 때 취재진이 갔을 때 되게 작은 월세방에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부유하거나 그런 건 아닌 것으로 현재까지는 알려지고 있습니다.

[앵커]
지금 아무리 며칠 간 계획했다고 해도 그래도 지금 속속 경호 문제가 드러나고 있지 않습니까? 이 부분과 관련해서는 개선책이나 이런 부분도 얘기가 많이 나오고 있습니까?

[기자]
맞습니다. 경찰은 오늘 오전 10시에 그러니까 이 사건이 있은 직후 3시간 정도 흐른 다음에 요인경호라고 합니다. 국가안전에 침해한 피습이나 이런 걸 당할 경우 침해한 그런 위협을 가할 수 있는, 보호를 꼭 해야 되는 그런 사람에 대해서 원래 대사가 없었는데 이제 미대사와 부인에 대해서 이제 경찰관 3명과 4명을 각각 투입해서 상시적으로 경호를 한다고 밝혔습니다.

[앵커]
리퍼트 대사는 피습을 당한 직후에 강북삼성병원으로 갔다가 세브란스병원으로 옮겼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처음에 어떤 조치가 이루어졌는지도 궁금한데, 처음 부터 설명을 해 주실까요?

[기자]
정부세종청사에서 일단 사건이 7시 40분쯤에 벌어졌습니다. 근처에 있는 큰 병원은 강북삼성병원이 있습니다. 그래서 대사는 바로 피습을 당한 직후에 순찰차를 타고 강북삼성병원으로 가서 응급조치를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상처가 워낙 깊고 크다 보니까 큰수술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삼성병원에서 응급조치를 받고 바로 앰뷸런스를 타고 연대 세브란스병원으로 갔습니다.

세브란스 병원은 박근혜 대통령이 9년 전에 커터칼로 피습을 당했을 때도 성형과 치료를 맡았던 병원이라서 상대적으로 다른 병원보다는 우수한 인력과 이런 치료를 받을 수 있겠다라는 판단이 섰던 것 같은데요. 거기에서 2시간이 넘는 수술 끝에 80바늘 넘게 꿰매서 치료를 받았습니다.

[앵커]
끝으로 간략하게 김기종에 관한 수사, 앞으로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기자]
흉기가 20cm가 넘었습니다. 이건 상해가 아니라 살인미수혐의가 적용될 것으로 보이고 그리고 체포가 된 지 48시간에 안에 구속영장을 신청해야 되기 때문에 이르면 오늘 안으로 구속영장을 신청해서 범행동기가 어떻게 됐는지 그리고 어떻게 이런 걸 모의하게 됐는지 집중적으로 추궁할 예정입니다.

[앵커]
리퍼트 대사 빨리 쾌유하기를 많은 분들이 바라고 있습니다. 수사도 이루어져서 이번 사건에 배후가 있는지 단독범행인지 여부도 명명백백하게 밝혀졌으면 합니다. 지금까지 사회부 한동오 기자였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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