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고랜드→ 태영건설→ 회사채 153조 원…'부실 도미노'의 끝은? [와이즈픽]

레고랜드→ 태영건설→ 회사채 153조 원…'부실 도미노'의 끝은? [와이즈픽]

2024.01.06. 오전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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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고랜드 사태로 알게 된 채권시장 위기

5% 수준이던 기업어음(CP) 금리가 단번에 두 배 이상 뛰었습니다. 레고랜드 사태가 발생하고 단 20일 정도 지나 우리 금융 시장이 이렇게 달라졌습니다. CP는 기업이 자금 조달을 위해 1년 이내 만기로 발행하는 기업어음을 말합니다. 무담보 단기 채권입니다. 기업은 통상적으로 은행을 통해 회사채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합니다. 이게 여의찮으면 손대는 게 바로 기업어음입니다. 이 금리가 치솟는다는 건 자금의 씨가 마르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화들짝 놀란 정부가 채권안정펀드를 다시 가동하기로 한 이유입니다.

레고랜드 사태는 가뜩이나 불안했던 우리 금융 시장에서 터진 하나의 '사건'이었습니다. 레고랜드 공사 자금 조달을 위해 발행한 채권 만기일 하루 전인 재작년 9월 28일. 김진태 강원지사가 강원중도개발공사(GJC)의 기업회생 절차를 밟기로 했다고 선언해 버렸습니다. 자본 시장은 충격을 받았고 금융당국에는 비상이 걸렸습니다. 지방정부도 못 믿을 판이니 금융시장은 경색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레고랜드 사태 여파는 강원도를 넘어 민간 기업, 그리고 채권 시장 전체로 번졌습니다. 금리 인상이 급속도로 진행되고 원자잿값 인상까지 맞물리면서 대형건설 부도설까지 나돌기 시작했습니다.

지난해 시공 능력 평가 기준 8위인 롯데건설과 태영건설 등 10위권 건설사 2~3곳, 그리고 지방 건설사들이 거론됐습니다. 이른바 '여의도 선수들'발로 부도설이 확산했습니다. 여파는 현재 진행형입니다. 롯데건설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비율이 높아 여전히 위기론에 휩싸여 있고 자금력이 부족한 지방 건설사들은 실제 부도를 맞아야 했습니다. 이런 와중에 대형사인 태영건설이 먼저 손을 들었습니다. 일단 시작은 워크아웃(기업 재무구조 개선 작업) 돌입 선언이었습니다.

예상보다 '석 달' 빨리 손 들고 나온 태영건설

PF 보증 채무 9조 1,816억 원. 직접 차입금 1조 3,007억 원. 채권자 400여 곳.

12월 28일 워크아웃을 선언한 태영건설의 현주소. 태영건설의 유동성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지난해 계속해서 문제가 제기됐지만 그냥 덮고 가는 분위기였습니다. 이러다 서울 성수동 오피스 개발 사업 관련 480억 원 규모의 PF 채무 만기가 도래했습니다. 태영건설이 '백기'를 든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는 빙산의 일각일 뿐입니다. PF 대출 만기가 줄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태영건설이 안고 있는 대출 만기는 3,956억 원. 올해까지 관리해야 할 PF 관련 우발 채무도 무려 3조 6,027억 원에 이릅니다. 지난해 9월 말 기준 현금성 자산이 4천억 원대인 점을 감안하면 PF 우발채무 부담은 심각하게 위험한 수준입니다.

우발채무는 기업으로선 예기치 못하게 떠안는 빚을 말합니다. 부동산 개발에 참여한 시공사가 PF 대출 보증을 선 뒤 사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을 때 직접 떠안게 되는 빚입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원자잿값 상승, 금리 상승 등 온갖 악재로 인해 공사를 제대로 진행하지 못하니 건설사 빚은 쌓일 수밖에 없습니다. 태영건설의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부채비율은 478.7%. 시공 능력 평가 35위 내 건설사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입니다.

그렇다면 태영건설에서 끝일까? 시작에 불과하다는 징후가 보입니다. 한국신용평가가 평가하는 건설사 20여 곳 가운데 장기 신용등급 전망이 '부정적'인 곳은 GS건설(A+)과 롯데건설(A+), HDC현대산업개발(A), 신세계건설(A) 등 4곳입니다. 이 가운데 롯데건설과 신세계 건설은 과중한 PF 우발채무를 이유로 들었습니다.

한신평은 "금융시장에서 PF 관련 업종에 대한 기피 현상이 심화함에 따라 건설사들은 당분간 신규 자금조달은 물론 기존 차입금 또는 PF 유동화증권 등의 차환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을 것"으로 진단했습니다. 제2, 제3의 태영건설이 충분히 나올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올해 만기 회사채 153조…사상 최대 왜?

채권 시장이 떨고 있습니다. 153조 원. 올해 만기가 도래하는 전체 회사채 물량입니다. 역대 최대 규모에 이릅니다. 연합인포맥스에 따르면 153조 원 가운데 일반 회사채는 69조 8,596억 원. 2021년부터 3조 원대로 증가하다가 올해는 무려 10조 원 이상 급증했습니다. 나머지 82조 9,534억 원은 카드채와 캐피탈채를 합한 물량입니다.

올해 만기 회사채 물량이 폭증한 이유는 뭘까? 재작년부터 시작된 미국발 금리 인상으로 발행사들이 조달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만기가 짧은 1~2년짜리 채권 발행을 마구잡이식으로 늘렸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태영건설 사태로 자금 시장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점입니다. 당초 태영건설 워크아웃 신청은 총선 이후에 이뤄질 것으로 전망됐습니다. 예상보다 석 달 정도 빨라졌습니다. '쉬쉬'만 하기엔 시장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얘기입니다. 금융당국이 '자기 책임'까지 강조합니다. 버틸 수 없으면 미리 알아서 손 들라는 얘기입니다. '총선 전까지 부동산 PF 부실이 터지지 않고 관리될 것'이라는 시장의 믿음이 깨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돈이 들어와야 해결되는데 이렇게 되면 투자 심리는 더욱 위축됩니다.

우리 금융시장은 재작년 9월 전까지만 해도 잔잔한 연못처럼 보였습니다. 수면만 보면 그랬습니다. 물밑에선 마구 꿈틀꿈틀하고 있었지만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이때 레고랜드라는 작지 않은 돌이 하나 던져졌습니다. 이때 크게 한번 출렁거렸습니다.

정부가 팔 걷어붙이고 나서니 조금은 잠잠해지는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것도 잠시. 태영건설이 물 밖으로 걸어 나왔습니다. 예상보다 빨랐습니다. 지금은 또 어떤 건설사가 뒤따라 나올지 지켜보는 상황입니다. 앞으로는 굳이 누가 돌을 던지지 않아도 됩니다. 이미 물밑에 뭔가 있다는 걸 다 알게 됐습니다. 물밑에 가만히 있어도 조만간 하나둘 모습을 드러낼 것입니다. 연못 물이 급속도로 마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YTN 이대건 (dglee@ytn.co.kr)
YTN 배인수 (insu@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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