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경제] '아픔이 길이 되려면' 김승섭, '을'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무엇일까

[생생경제] '아픔이 길이 되려면' 김승섭, '을'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무엇일까

2019.01.25. 오후 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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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경제] '아픔이 길이 되려면' 김승섭, '을'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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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 : YTN 라디오 FM 94.5 (15:10~16:00)
■ 진행 : 김혜민 PD
■ 대담 : 김승섭 고려대 보건과학대학 교수


[생생경제] '아픔이 길이 되려면' 김승섭, '을'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무엇일까




◇ 김혜민 PD(이하 김혜민)> 1월 마지막 주 금요일, 특별한 시간을 준비했습니다. 제가 생생경제를 진행하면서 교과서처럼 여기는 책이 있습니다. 바로 고려대 보건과학대학 김승섭 교수가 쓴 <아픔이 길이 되려면>인데요. 왜 보건대학 교수가 쓴 책을 경제 프로그램의 교과서로 삼는지 궁금하시죠. 오늘 인터뷰를 들으시면 아실 수 있을 겁니다. 정말 모시고 싶었던 분, 모십니다. 김승섭 교수님, 어서 오세요.

◆ 김승섭 고려대 보건과학대학 교수(이하 김승섭)> 반갑습니다.

◇ 김혜민> 교수님은 왜 제가 교수님의 책을 교과서로 여긴다고 생각하세요?

◆ 김승섭> 곰곰이 생각을 해봤는데요. 아마도 피디님과 제가 세상을 바라보는 자리가 비슷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왜냐하면, 저는 보건학을 하는 사람이고, 보건학을 할 때 하는 고민은 그것이거든요. 한국 사회에서 가용한 자원들을 활용하지 못해서 피할 수 있었던 죽음을 맞는 사람들, 피할 수 있는 질병을 겪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대체로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인 것이고, 그럴 때 제 고민은 이 사람들이 어떻게 더 건강해질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다 보니까 가장 먼저 눈이 가닿는 사람들은 그 자원들을 누리고 있지 못한 경제적 소외 계층. 혹은 낙인으로 고생하는, 차별받는 사람들인 것 같고요. 피디님이 진행하시는 프로그램에서도 항상 사회를 바라봄에 있어서 약자의 눈으로 바라보시려고 노력하시는 것을 알고 있는데, 그런 면에서 합이 맞았던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 김혜민> 세상을 바라보는 자리가 비슷한 것 같다고 말씀해주셨는데, 교수님은 사회역학이라는 학문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세요. 일단 사회역학이라는 게 어떤 학문입니까?

◆ 김승섭> 되게 낯선 단어인데요. 한국에서 역학 하면, 보통 물리 역학을 먼저 떠올리고, 또 어떤 분들은 점을 치는 주역의 역학을 떠올리기도 하는데, 요즘 들어서 역학 조사라고 말을 할 때 어떤 질병이 발생했을 때 질병의 원인이 무엇인지 찾는 조사를 하는데요. 우리가 보통 질병의 원인으로 생각하는 것들이 흡연, 균, 박테리아, 이런 생각들을 많이 하는데요.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의 몸을 해치고, 병들게 하는 데 있어서는 그런 것들만이 아니라 정리해고라든가, 고용불안이라든가, 차별이라든가, 국가의 무책임한 제도라든가, 이런 것들 역시 우리의 몸을 해치고 있거든요. 사회역학은 인간의 몸을 해치고 있는 사회·제도적인 원인들에 대해서 탐구하고, 이런 것들을 바꿔서 어떻게 더 사람들이 건강할 수 있을까를 찾는 것들을 통계적인 기법으로 분석해서 찾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김혜민> 그러니까 누군가 병에 걸리면, 그 병에 걸리게 한 직접적인 질병 원인, 코드가 있겠지만, 그것의 원인을 경제적, 사회적 이슈를 찾아보는 게 사회역학이다, 이렇게 볼 수 있을까요?

◆ 김승섭> 보통 그 표현을 두고서 ‘원인의 원인을 찾는다’라는 표현을 쓰거든요. 물론 폐암의 원인 중에 가장 흔히 이야기되는 것은 흡연일 것이고요. 그런데 동시에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동등한 수준으로 흡연하지 않거든요. 어떤 사람들은 어떤 계층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더 많이 흡연하고 있고, 그런 계층에 있는 사람들을 더 흡연으로 몰고 가고 있는 사회적 인자라고 하는 것들이 있는데, 흡연 앞에 존재하는 구조적인 환경, 조건들에 대한 언급 없이 흡연하는 당사자들을 자꾸 비난하게 되고, 이런 지점이 놓치는 것들이 있기 때문에 원인의 원인이라고 하는 것들? 그런 것들에 대해서 조금 더 함께 고민해보자, 이런 질문들을 던지려고 하는 거죠.

◇ 김혜민> 쉽게 제가 떠오른 게 비만 같은 경우에 경제적으로 어려운 분들이 오히려 비만이 더 많다는 얘기를 하잖아요? 이것도 충분히 사회 역학적으로 원인을 밝힐 수 있는 주제겠네요?

◆ 김승섭> 사회 역학적 학문이라고 하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기보다는 이 학문이 우리에게 어떤 질문을 던져 주는가인 것 같아요. 흡연, 비만, 음주 모두, 물론 개인의 책임도 있겠죠.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왜 어떤 개인이 흡연을 더 많이 하게 되고, 더 많이 폭음을 하게 되고, 혹은 비만이 될 수 있는 생활습관을 가지고 있는가. 그 앞에 있는 조건들을 따져 묻는 중요한 이유들은 우리가 그런 것들을 묻지 않게 되면, 사회적 약자이고, 자원을 가지고 있지 않은 개인들을 탓하게 되거든요. 왜 그렇게 하니? 그러지 말아야지, 의지가 부족해. 물론 의지라고 하는 문제가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의지를 점점 줄어들게 만드는 사회적 조건에 대한 고민들이 없으면, 우리가 그분들의 문제를 제대로 인지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닐 것 같다. 그러한 생각을 하는 거죠.

◇ 김혜민> 말씀 중에 어떤 질문을 던져주는가가 중요하다고 하셨어요. 저도 교수님의 책을 보면서 많은 질문을 받았고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생생경제를 진행하면서 찾아보려고 굉장히 애쓰고 있습니다. 제가 이런 질문을 드리고 싶어요. 교수님은 하버드에서도 공부하셨고, 외국 사례들을 많이 보셨을 텐데, 특별히 한국에서 경제적 약자로 사는 것이 더 힘듭니까?

◆ 김승섭> 저는 전 세계적으로 뭔가를 비교한다고 하는 것은 어려운 것 같아요. 한국 사회가 물론 부족한 면도 있지만, 한국 사회가 지난 수십 년간 민주주의와 경제 발전 측면에서 거둬낸 성과라는 것도 분명히 있는 거니까요. 그래서 한마디로 한국이 더 살기 힘들다, 아니다, 말하고 싶지는 않은데, 동시에 그런 고민은 드는 거죠. 우리가 경제적으로 부유한 사람들이 더 좋은 차를 타고, 또 좋은 집에 사는 것에 대해서까지 부당하다고 말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그런데 한국의 데이터들을 분석해보면, 소득 수준이 하위 20%인 사람들은 상위 20%인 사람들에 비해서 평균 기대수명이 5년 이상 짧거든요. 그 말은 우리가 희로애락을 느낄 수 있는, 도전하고, 기쁨을 느낄 수 있고, 또는 실패하고, 좌절할 수 있는 모든 삶의 경험치에 해당하는 5년에 가까운 시간들이 경제적으로 빈곤하다는 이유만으로 사라져버리는 것이거든요. 한국 사회는 현재 그렇고요. 그럴 때 질문을 던지고 싶은 거죠. 우리는 이런 것들을 합당하다고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인가, 그것이 맞는가, 이런 질문들을 던져보는 것 같아요.

◇ 김혜민> 저는 가다 보면, 폐지 주우시는 할머니나 어르신들이 리어카를 끌 때 항상 제가 그분들을 위해 속으로 기도하는 게 있어요. 저분의 삶이 가난하고, 어렵지만, 비루하거나 남루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라는 기도를 하거든요. 그 말은 뭐냐면, 가난할 수 있죠. 부와 빈의 문제는 전 세계 어느 곳이나 있는 거지만, 가난하다는 이유로 교수님이 말씀하신 사람이 누릴 수 있는 희로애락을 다 누리지 못한다는 것. 그건 정말 불공평한 것 같고, 사회에서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써야 하는 것 같아요.

◆ 김승섭> 더욱더 주의 깊게 볼 것은 한국 사회 지난 수십 년간의 변화를 바라보면, 소득 양극화. 가난한 사람과 부자인 사람들은, 물론 전 세계 어디에나 있죠. 그리고 전 세계 거의 모든 나라에서 부자인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들에 비해 평균 수명이 조금 더 긴 것은 사실이고요. 그런데 한국 사회가 경제적 부유층과 빈곤한 사람들 사이의 차이가 점점 커지고, 불평등이 심각해지면서 그들의 삶의 조건 역시 점점 양극화되고 있는 것들. 거기에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가난하다는 것 자체가 낙인이 되고, 차별의 이유가 되는 상황들. 그런 것들이 최근 들어 점점 심각해지고 있는 것 같아서 우려스러운 면이 있습니다.

◇ 김혜민> 그렇습니다. 그래서 교수님께서 참 많은 약자들을 만나러 다니셨어요. 연구도 하셨고요. 어떤 분들을 만나서 연구하셨어요?

◆ 김승섭> 2018년만 기준으로 해보면,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분들과 그 아내분들. 우리가 해고 노동자분들에 대한 이야기는 그래도 들었는데, 그 배우자분들이 어떤 시간을 겪었는지 정말 몰랐거든요. 혹은 백화점, 면세점의 화장품 판매직 노동자들. 아주 아름다운, 세련된 명품 화장품을 팔고 있는 사람들이 실제로 그 아름다움과 세련됨의 대가를 자신의 몸으로 치루고 있었는데, 그분들에 대한 이야기. 혹은 가장 최근에 발표한 것은 손배가압류 피해노동자들이었거든요. 100억, 200억씩 회사가 청구한 손배가압류 금액으로 인해서 고통받고 있는 노동자들. 그분들 만나고, 제가 연구하는 방법론인 역학적 방법론으로 조사를 수행하고, 결과를 발표하는 일들을 2018년에는 했던 것 같아요.

◇ 김혜민> 저도 쌍용 해고 노동자들 복직 뉴스 나왔을 때 교수님의 책을 인용했던 게 생각이 나요. 사망한 분들을 대상으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사망 원인을 쓰셨잖아요. 심근경색, 뇌졸중, 자살. 많이 있었는데요. 해직자, 그러니까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각자 다르겠지만, 일단 실업이 빈곤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이 되지 않습니까? 해직자에 대한 관심이 많으셨고, 다양한 연구도 하셔서 해고노동자들 건강 실태 조사를 하셨는데, 우리가 그것을 다 말할 수는 없고요.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딱 한 가지 메시지를 주신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 김승섭> 저는 어떤 연구나 혹은 어떤 좋은 결론이나 마땅한 답을 찾으려고 하기보다는 우리가 이 연구를 하면서 앞으로 간직해야 할 질문이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하거든요. 제가 생각하는 질문은 두 가지인 것 같아요. 한국 사회는 이런 해고를 계속 받아들여도 되는가. 정리해고라고 하는 것은 원래는 법 조항에 없었던 항목이었고, IMF 경제 위기를 거치면서 노동자는 잘못한 게 없는데, 경영상의 위기로 해고가 되는 것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매우 엄격한 조건들이 있어요. 왜냐하면, 노동자는 귀책 사유가 없는데, 자신은 직장을 잃게 되니까. 그런데 쌍용자동차 정리해고는 대법원에서 판결이 바뀌기는 했지만, 고등법원에서 해고 무효 판결이 날 만큼 실제로 그 과정에 있어서 논쟁의 여지가 많았습니다. 그런 것을 감안할 때 이런 식의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들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충분한 고려 없이 진행되는 해고를 받아들여도 되는가, 하는 게 하나고요. 또 하나는 한국 사회는 계속 지금처럼 해고자를 바라봐도 되는가. 왜 그러냐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러 가지 이유로 계속 해고 노동자들은 발생할 수 있잖아요. 그럴 때마다 한국 해고 노동자들은 벼랑 끝에 서 있는 느낌을 받게 돼요. 사회안전망도 부족하고, 게다가 해고라는 단어가 한국 사회에서는 줄곧 무능함, 이런 단어와 닿아있기도 하고요. 그러다 보니까 해고된 노동자들이 아무도 손잡아주는 사람 없이 절벽 끝에 서 있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이고, 쌍용 자동차 사례의 경우는 그런 경험들이 때로는 심근경색으로, 또 스스로 삶을 끊는 형태로 나타났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 두 가지 질문을 기억했으면 하는 거예요. 왜냐하면, 한국 사회가 점점 흔히 말하는 양질의 좋은 일자리가 늘어나기 어렵거든요. 점점 그럴 것이라고요. 그러면 쌍용 자동차의 사례는 사람들은 남의 일처럼 생각하지만, 어찌 보면 그들의 몸의 상처가 우리에게 보여준 우리의 오래된 미래? 우리 모두가 언젠가 겪을 수 있는 일이기도 하거든요.

◇ 김혜민> 제가 지금 그 얘기를 드리고 싶었어요. 교수님 말씀을 들으면서 그 질문 두 가지. 받아들여도 되는가, 바라봐도 되는가. 이 얘기를 듣는데, 사실 해고자의 얘기가 제 얘기라고 생각 안 했는데, 이렇게 되니까 주체가 저인 거예요. 내가 이것을 받아들여도 되나? 내가 모르는 타인의 해고지만, 그 해고를 사회구성원으로서 그냥 받아들여도 되는가. 이건 무책임한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거든요.

◆ 김승섭>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건요. 세월호의 경우도 생존 학생 연구를 했었는데, 민간 잠수사분들이 바다에 뛰어들어서 사람을 구하려고 했던 것을 가지고 국가가 처벌하려고 했을 때가 있었거든요. 그런 것은 굉장히 무서운 교육이거든요. 재난이 터졌을 때 타인을 구하려고 하면, 당신이 위험할 수 있다. 이 얘기를 지금 하는 이유는 쌍용 자동차 정리해고에서 이제는 여러 차례 드러났던 국가의 폭력적인, 청와대의 지시에 따른 정리해고 과정이라고 하는 게 한국 사회의 중요한 학습을 시켰다는 생각이 들어요. 정리해고에 저항하면, 이렇게 힘들어질 수 있고, 괴로워질 수 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은 그 이후에 KT에서 나타났던 명예퇴직의 형태로 진행된 해고라든가, 그 밖에 여러 대규모 정리해고 사태에서 노동자들이 실제로는 거의 저항하지 못하고 정리해고를 고스란히 수용하게 만들었던 일종의 사회적 트라우마.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고, 그런 의미에서 당장은 남의 사건으로 보이지만, 사건 하나하나가 한국 사회의 어떤 흔적을 남기고,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고 있는 것이거든요.

◇ 김혜민> 그렇습니다. 흔적이 남죠. 몇몇 가정이 무너지고,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게 아니라 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서 언젠가는 제 삶에도 영향을 미치고, 내 후대에도 영향을 미치고요. 그게 결국은 우리 공동체에 영향을 미친다고 저도 생각을 합니다. 제가 김승섭 교수님을 굉장히 어렵게 모셨다고 했는데, 제가 모실 때 아마 이 말이 교수님의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을까 싶어요. 이 생생경제 프로그램이 상생하는 경제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경제적 약자들을 많이 다루는데, 저 때로는 ‘빨갱이’ 아니냐고 오해받고, 반기업적 정서를 가지고 있다고 오해받는데, 저 좀 응원해주세요, 라고 얘기를 드렸었어요. 제가 그 질문을 드리고 싶어요. 교수님과 저와의 인터뷰를 들으면서 불편해하시는 분들도 계세요.

◆ 김승섭> 당연히 있죠. 이해가 가요.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스무 살 때부터 항상 고민했었어요. 민주노총, 혹은 노동계. 이렇게 얘기하면, 인터넷에 검색해도 줄곧 억지, ‘땡깡,’ 이런 단어들이 같이 나오는 경우가 많은 거예요. 그런데 또 한편으로 경총이라든가, 기업의 이름에는 그런 말들이 같이 붙지 않아요. 이것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었냐면, 왜 기업을 운영하는, 특히나 재벌의 경우는 우아하고 세련된 언어로 간편하게 말을 할 수 있는데, 노동자들은 많은 경우 생존의 문제이고, 가장 기본적인 삶의 조건에 대한 얘기인데도 억지처럼 들리는 논리가 될까, 라는 고민을 오랫동안 했거든요. 그리고 그게 공부했던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한데, 우리가 지식이라고 하는 것들을 결과만 받아들이지만, 어떤 지식이든 그 지식이 생산되려고 하면, 노력과 돈과 시간이 들어가거든요. 그래서 그런 자원들을 많이 투자할 여력이 있는 사람들은 많은 지식을 자기 등 뒤에 가질 수 있고, 그 이유로 세련되고, 깔끔한 논리로 얘기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런 자원이 없는 사람들은 자기 등 뒤에 있는 언어의 힘들, 그런 것들이 약하다 보니 당장 먹고살기 위한 요구들을 얘기하는 것만으로도 무언가 어찌 보면, 비합리적인 말처럼 들리기도 하는 언어의 불균형, 지식 생산의 불균형이라고 하는 것들이 있고요. 그 속에 우리도 살고 있거든요. 그런 맥락에서 고민을 해봤으면 좋겠어요. 어떤 사람들은 아픈 데 아프다는 가장 기본적인 소리조차 밖으로 못 내고 있거든요. 이 아픈 얘기들은 들을 때 즐겁지가 않아요. 그리고 여러 번 들으면 당연히 지겨워요. 사람들은 피로하고요. 그런데 실제로 누군가가 너무나 아픈 상태로 이 사회 속에서 버티고 있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물론 저 같은 공부하는 사람이나 피디님 같은 분들이 그분들의 목소리를 대신할 수는 없어요.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그분들의 고통에 대해서 타자인 것이고, 우리가 이해하는 것은 한계가 있을 테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언어로 그 고통에 대해 누군가 자꾸 말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언급되지 않는 고통들은 약자들의 몸속에 고통의 형태로 남아서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것 같아요. 지루하고, 때로는 지겨울 수도 있고요. 그렇지만, 힘을 내서 계속 말씀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김혜민> 교수님 책에 “아름다운 사회는 나와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는 타인의 고통에 대해 예민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 그래서 열심히 정직하게 살아온 사람들이 자신의 자존을 지킬 수 없을 때 그 좌절에 함께 분노하고, 행동할 수 있는 사회라고 생각해요.” 저는 이 문구가 참 좋았습니다.

◆ 김승섭> 올해 했던 연구 중에 화장품 판매직 연구가 있거든요. 그런데 이분들이 정말 세련되게 옷을 입고, 명품 화장품들을 파는 분들인데, 알고 보니까 이분들이 화장실을 못 가는 거예요. 직원용 화장실은 너무 멀고, 개수도 적고, 고객용 화장실은 직장에서 이용을 못 하게 하고 있고, 잘못된 일이죠. 이러면서 이분들이 화장실을 가지 못하고 참기 위해서 물을 안 먹는 것은 물론이고, 계속 참다 보니까 방광염에 걸리게 되고, 화장실이 멀다 보니까 여성 노동자들이 많은데 생리대를 갈지 못하게 되고, 그로 인해 피부질환을 겪는 경우도 많고. 가만히 생각해보면, 밖에서 바라보는 번지르르하고 세련된 이면에서 화장실을 가지 못해서 고통스러워하는 노동자들의 시간들이 있는 거잖아요. 저는 이런 일들을 같이 보고, 분노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것은 마땅한 일이 아닌 것 같아요. 그리고 이런 일을 듣고, 같이 분노하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 아닐까, 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 노동하는 노동자들이 화장실 못 가는 것들은 산업혁명 시대에 있었던 얘기이거든요. 일의 효율을 높이고자 화장실 가는 것도 차단했던. 그게 2018년, 2019년 한국에서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인 것 같아요.

◇ 김혜민> 맞습니다. 분노해야 하고, 나름대로 분노의 표현은 각자 자기가 맡은 자리에서 교수님은 연구로, 저는 방송으로, 또 각자 청취자분들은 자리에서 분명히 동참하실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겁니다. 오늘 시간이 너무 아쉽네요. <아픔이 길이 되려면>, 또 <우리 몸이 세계라면> 책의 저자 김승섭 교수와 함께 인터뷰 나눴는데요. 또 어떤 약자들의 아픔에 귀를 기울이시고, 연구하고 싶으세요?

◆ 김승섭> 얼마 전에 발달장애를 가진 아동들의 부모님들이 무릎을 꿇었던 장면이 머리에서 지워지지가 않아서요. 그분들, 발달장애 아동들과 가족들이 살아가는 세상에 대해서 힘이 될 수 있는 길을 찾고 싶어요.

◇ 김혜민> 기대됩니다. 발달장애인들의 어떤 아픔에 귀를 기울이고, 이야기해주실지 기대가 됩니다. 사실 어제 손배가압류 당한 노동자들에 대한 조사. 30년 만에 처음이라고 하더라고요. 그 조사 발표를 하셨는데, 이 조사를 통해서 우리 사회 어떤 질문을 던져주고 싶으셨어요? 마지막으로 여쭐게요.

◆ 김승섭> 저는 그동안 여러 사회적 약자에 대해서 연구했었는데, 손배가압류 연구를 해보면, 너무나 큰 일이었던 거예요. 일반 노동자 입장에서 200억, 300억의 손배가압류가 온다고 하는 것은 감도 오지 않는 얘기거든요. 그런데 동시에 왜 이렇게 사회적으로 우리가 몰랐지 싶더라고요. 알고 보니까 이 사람들이 자신들의 회사 이름을 밝히고, 외부에 손배가압류에 대한 불만을 얘기하게 되는 순간부터 곧바로 집행이 들어오거나 탄압이 들어오게 되는 문제가 있더라고요.

◇ 김혜민> 구조적인 문제가 있었군요?

◆ 김승섭> 왜냐하면, 손배가압류를 집행한다고 하는 것들은 되게 무서운 얘기거든요. 노동자들 입장에서 거대한 금액이니까요. 소송 중이기도 하고요. 그런 상황에서 손배가압류의 문제는 단순히 거대한 금액이 노동자에게 청구된 것만이 아니라 현장의 노동 3권이라고 하는 것들이 작동하지 못하게 만드는, 한 노동자의 표현을 빌리면, 기업에게 주어진 너무 큰 칼이라고 하시는데요. 그렇게 자신의 고통을 말하지 못하게 만들었던 지점들. 누군가는 잘못된 제도로 인해 아프다는 말조차 세상에 하지 못하다는 지점들이 제일 인상적이었습니다.

◇ 김혜민> YTN 라디오 생생경제 1월의 끝입니다. 봄을 기다려도 되는 그런 날에 모셨습니다. 김승섭 교수와 함께한 인터뷰, 다시 한번 어떻게 경제 프로그램을 진행해야 하는지 다짐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교수님, 고맙습니다.

◆ 김승섭>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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