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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 후보가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을 하루 앞두고 광주를 찾았습니다.
아침 5·18 민주 묘지를 참배한 뒤 광주에서 현장 선거대책위원회 회의에 참석했는데요, 윤석열 전 대통령 탈당 관련 입장이 나올지 주목됩니다.
회의 현장으로 가보겠습니다.
[김문수 / 국민의힘 대선 후보]
오늘 5월 17일입니다.
해마다 5월이 되면 제가 가슴이 매우 아픕니다.
저는 1980년, 지금으로부터 45년전 2월에도 감옥에 갔다가 한 두 달 있다가 나왔고 나오자마자 또 제가 그때 노조를 하고 있었는데 노조에서 해고된 사람들, 제가 감옥 갈 때 우리 노조 간부들이 전부 해고가 돼서 한 50명이 해고돼서 그분들과 복직 투쟁을 해서 또 복직이 됐습니다.
그리고 복직된 다음에 바로 5.17이 됐죠. 5.17 비상계엄이 전국에 확대되면서 저도 또 같이 노조위원장직에서 다시 잘리고 그다음에 해고가 되고 이래서 삼청교육 대상이 돼서 그런 어려운 처지에 있었는데 5.18이 터졌습니다.
그때는 보도가 안 됐기 때문에 언론에 거의 보도가 안 됐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됐는지 많은 유언비어가 유포가 되고 또 그 과정에서 내가 다니던 공장의 노조 노조원들도 한 1000여 명 있었는데 그중 광주전남 출신들이 자기 가족들의 연락을 받고 굉장히 난리가 났다. 그런데 무슨 일이 있는지 이런 것들은 보도가 안 되기 때문에 사실 잘 모르고 굉장한 희생자가 있다. 또 계엄군이 너무 잔인한 만행을 저질렀다. 그래서 수천 명이 죽고 참혹하게 당한 것으로 생각했는데 사실보다 훨씬 더 10배 이상 증폭된 그런 유언비어가 많았고 우리는 보도가 없었기 때문에 그걸 믿었습니다, 그냥. 그래서 매우 격앙된 상태에서 1980년 보내는 중에 저는 삼청교육 대상이 돼서 삼청교육으로 잡아넣었는데 피신해서 저는 괜찮았고 제 바로 해고된 뒤에 직무대행을 하던 노조 부위원장이 삼청교육을 갔습니다.
그리고 노조 간부들은 전부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에 잡혀가서 해고되고, 그분들은 나중에 다 민주화 보상기금을 보상을 받았습니다.
이 5월이라면 저는 특히 너무나 가슴 아픈 기억. 그리고 우리는 매일 어디 앉아서든지 간에 치를 떨며 이런 학살에 대해서 또 학정에 대해서 늘 분노하고 울고 그렇게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랬던 제가 직선제 개헌 투쟁 과정에서 제가 서울구치소 안양교도소를 거쳐서 목포교도소에 있다가 87년 개헌 이후에 대통령 선거로 노태우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에 광주교도소에 와서 제가 또 1년 있었습니다.
광주교도소 수감 생활을 1년 하고 그곳에서 제가 교도소에서 노역으로 국화를 키우는 일을 했습니다.
제가 들어갔던 광주교도소 독방이 바로 박관현 전남대학교 총학생회장 그곳에서 수감 중에 단식을 하다가 장기 단식으로 사망한 그 방이었습니다.
교도관들이 아주 이 방에서 죽지 않으려면 제대로 하라고 하는 안내를 받고 거기서 생활을 하다가 제가 나중에 올림픽이 끝난 다음에 10월 3일 개천절 특사로 풀려났습니다.
광주교도소, 지금은 옮겼습니다마는 광주, 저한테는 너무나 아픈 추억입니다.
저는 계엄으로 인해서 삼청교육을 피하기 위해서 피신 중에 제 아내의 자치방 다락에 숨어서 계엄이 해제될 때까지 피해서 잡혀가지는 않았습니다.
그 뒤로 저는 아내와 결혼을 해서 지금 잘 살고 있습니다.
제 아내는 전라남도 순천 사람입니다.
지금도 순천에 제 처남이나 많이 살고 있습니다마는 제가 처가가 순천이기 때문에 여러 번 제가 처가에 올 때마다 늘 느끼는 것이 우리 처가 쪽에는 물론 상당히 가깝게 늘 대해 주지만 광주 전남에서 매우 저를 알면서도 아무도 인사도 잘 안 하는, 악수도 잘 안하는 이런 정말 냉랭한 분위기를 잘 알고 있습니다.
광주의 민심, 전라남도의 민심이 무엇인지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45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그 현실을, 그 역사를 잘 모르는 젊은이들도 여러 가지 과정을 거쳐서 저에 대해서, 참배하러 온 사람에게도 여러 가지 험한 말을 쏟아붓는 걸 보면서 아, 참 역사는 간단한 것이 아니다. 사람을 공연히 미워하게 할 수도 있고 또 공연히 좋아하게 할 수도 있는 그런 것이 억사다라는 걸 제가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저는 정말 5.17, 5.18 이 80년 5월의 저도 상당한 희생자 중 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것을 희생으로 생각하지 않고 대한민국의 자유와 인권,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기 위한 바로 그 밑거름이 되는 저의 아픔이었고 우리 시대의 아픔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일생은 결코 우리를 서로 미워하게 하거나 우리를 서로 추악하게 하는 희생이 아니라 이 아픔은 우리를 서로 사랑하게 하고 우리를 더욱 위대하게 하고 우리 조국 대한민국을 민주주의가 만발한 그런 사회로 만들기 위한 숭고한 희생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과제가 남아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서로 미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 영령들의 희생을 생각하면 정치를 똑바로 해야 합니다.
정치가 부패하고 거짓말시키고 도둑질하고 독재를 하는 그런 정치는 절대 안 된다는 명령이 바로 광주 5.18의 명령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5.18 정신 아래 그 어떤 부패도, 그 어떤 독재도 있을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 앞에 보여지는 독재는 세계 역사상 유래없는 독재입니다.
우리는 계엄은 겪어봤지만 이런 독재는 처음입니다.
자기를 재판한 대법관을 탄핵하겠다고 하고 자기를 재판한 대법원장을 청문회하겠다고, 대법원 대법관 수를 100명으로 늘리겠다고 하고 자기가 유죄를 받고 재판 파기환송된 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죄 자체를 형법에서 빼겠다고, 선거법에서 빼겠다고. 이런 독재가 세계에 어디 있습니까?
자기를 수사한 검사를 탄핵하겠다고. 탄핵했습니다.
검찰총장까지 탄핵했습니다.
자기를 감사한 감사원장을 탄핵했습니다.
대통령이 탄핵된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이게 민주주의입니까?
이게 오월 정신입니까?
저는 정말 묻고 싶습니다.
이 나라 대한민국의 5월의 희생이 이런 민주당, 이런 민주주의를 말하는 것은 아니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5월의 피해자 중 한 사람으로서 5월을 뜨겁게 아파했던 한 사람으로서 저는 묻고 싶습니다.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 대한민국의 위대한 그 민주주의 함성이 무엇을 지금 옹호하고 무엇을 비판하느냐. 저는 묻습니다.
저는 이번 선거는 단순하게 어떤 정당 간의 대결이 아니라 이 나라 민주주의가 한 단계 발전하느냐, 아니면 세계 역사상 유래 없는 해괴망측한 독재로 전락하느냐. 이런 입법 독재를 넘어서서 행정부의 독재, 또 대권을 가진다면 대법원장부터 어느 법관이 마음놓고 양심적인 재판을 할 수 있겠습니까?
누가 과연 범죄자를 수사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이 나라 민주주의를 지키고 자유와 인권을 지켜야 될 숭고한 사명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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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김문수 대선 후보가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을 하루 앞두고 광주를 찾았습니다.
아침 5·18 민주 묘지를 참배한 뒤 광주에서 현장 선거대책위원회 회의에 참석했는데요, 윤석열 전 대통령 탈당 관련 입장이 나올지 주목됩니다.
회의 현장으로 가보겠습니다.
[김문수 / 국민의힘 대선 후보]
오늘 5월 17일입니다.
해마다 5월이 되면 제가 가슴이 매우 아픕니다.
저는 1980년, 지금으로부터 45년전 2월에도 감옥에 갔다가 한 두 달 있다가 나왔고 나오자마자 또 제가 그때 노조를 하고 있었는데 노조에서 해고된 사람들, 제가 감옥 갈 때 우리 노조 간부들이 전부 해고가 돼서 한 50명이 해고돼서 그분들과 복직 투쟁을 해서 또 복직이 됐습니다.
그리고 복직된 다음에 바로 5.17이 됐죠. 5.17 비상계엄이 전국에 확대되면서 저도 또 같이 노조위원장직에서 다시 잘리고 그다음에 해고가 되고 이래서 삼청교육 대상이 돼서 그런 어려운 처지에 있었는데 5.18이 터졌습니다.
그때는 보도가 안 됐기 때문에 언론에 거의 보도가 안 됐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됐는지 많은 유언비어가 유포가 되고 또 그 과정에서 내가 다니던 공장의 노조 노조원들도 한 1000여 명 있었는데 그중 광주전남 출신들이 자기 가족들의 연락을 받고 굉장히 난리가 났다. 그런데 무슨 일이 있는지 이런 것들은 보도가 안 되기 때문에 사실 잘 모르고 굉장한 희생자가 있다. 또 계엄군이 너무 잔인한 만행을 저질렀다. 그래서 수천 명이 죽고 참혹하게 당한 것으로 생각했는데 사실보다 훨씬 더 10배 이상 증폭된 그런 유언비어가 많았고 우리는 보도가 없었기 때문에 그걸 믿었습니다, 그냥. 그래서 매우 격앙된 상태에서 1980년 보내는 중에 저는 삼청교육 대상이 돼서 삼청교육으로 잡아넣었는데 피신해서 저는 괜찮았고 제 바로 해고된 뒤에 직무대행을 하던 노조 부위원장이 삼청교육을 갔습니다.
그리고 노조 간부들은 전부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에 잡혀가서 해고되고, 그분들은 나중에 다 민주화 보상기금을 보상을 받았습니다.
이 5월이라면 저는 특히 너무나 가슴 아픈 기억. 그리고 우리는 매일 어디 앉아서든지 간에 치를 떨며 이런 학살에 대해서 또 학정에 대해서 늘 분노하고 울고 그렇게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랬던 제가 직선제 개헌 투쟁 과정에서 제가 서울구치소 안양교도소를 거쳐서 목포교도소에 있다가 87년 개헌 이후에 대통령 선거로 노태우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에 광주교도소에 와서 제가 또 1년 있었습니다.
광주교도소 수감 생활을 1년 하고 그곳에서 제가 교도소에서 노역으로 국화를 키우는 일을 했습니다.
제가 들어갔던 광주교도소 독방이 바로 박관현 전남대학교 총학생회장 그곳에서 수감 중에 단식을 하다가 장기 단식으로 사망한 그 방이었습니다.
교도관들이 아주 이 방에서 죽지 않으려면 제대로 하라고 하는 안내를 받고 거기서 생활을 하다가 제가 나중에 올림픽이 끝난 다음에 10월 3일 개천절 특사로 풀려났습니다.
광주교도소, 지금은 옮겼습니다마는 광주, 저한테는 너무나 아픈 추억입니다.
저는 계엄으로 인해서 삼청교육을 피하기 위해서 피신 중에 제 아내의 자치방 다락에 숨어서 계엄이 해제될 때까지 피해서 잡혀가지는 않았습니다.
그 뒤로 저는 아내와 결혼을 해서 지금 잘 살고 있습니다.
제 아내는 전라남도 순천 사람입니다.
지금도 순천에 제 처남이나 많이 살고 있습니다마는 제가 처가가 순천이기 때문에 여러 번 제가 처가에 올 때마다 늘 느끼는 것이 우리 처가 쪽에는 물론 상당히 가깝게 늘 대해 주지만 광주 전남에서 매우 저를 알면서도 아무도 인사도 잘 안 하는, 악수도 잘 안하는 이런 정말 냉랭한 분위기를 잘 알고 있습니다.
광주의 민심, 전라남도의 민심이 무엇인지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45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그 현실을, 그 역사를 잘 모르는 젊은이들도 여러 가지 과정을 거쳐서 저에 대해서, 참배하러 온 사람에게도 여러 가지 험한 말을 쏟아붓는 걸 보면서 아, 참 역사는 간단한 것이 아니다. 사람을 공연히 미워하게 할 수도 있고 또 공연히 좋아하게 할 수도 있는 그런 것이 억사다라는 걸 제가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저는 정말 5.17, 5.18 이 80년 5월의 저도 상당한 희생자 중 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것을 희생으로 생각하지 않고 대한민국의 자유와 인권,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기 위한 바로 그 밑거름이 되는 저의 아픔이었고 우리 시대의 아픔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일생은 결코 우리를 서로 미워하게 하거나 우리를 서로 추악하게 하는 희생이 아니라 이 아픔은 우리를 서로 사랑하게 하고 우리를 더욱 위대하게 하고 우리 조국 대한민국을 민주주의가 만발한 그런 사회로 만들기 위한 숭고한 희생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과제가 남아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서로 미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 영령들의 희생을 생각하면 정치를 똑바로 해야 합니다.
정치가 부패하고 거짓말시키고 도둑질하고 독재를 하는 그런 정치는 절대 안 된다는 명령이 바로 광주 5.18의 명령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5.18 정신 아래 그 어떤 부패도, 그 어떤 독재도 있을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 앞에 보여지는 독재는 세계 역사상 유래없는 독재입니다.
우리는 계엄은 겪어봤지만 이런 독재는 처음입니다.
자기를 재판한 대법관을 탄핵하겠다고 하고 자기를 재판한 대법원장을 청문회하겠다고, 대법원 대법관 수를 100명으로 늘리겠다고 하고 자기가 유죄를 받고 재판 파기환송된 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죄 자체를 형법에서 빼겠다고, 선거법에서 빼겠다고. 이런 독재가 세계에 어디 있습니까?
자기를 수사한 검사를 탄핵하겠다고. 탄핵했습니다.
검찰총장까지 탄핵했습니다.
자기를 감사한 감사원장을 탄핵했습니다.
대통령이 탄핵된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이게 민주주의입니까?
이게 오월 정신입니까?
저는 정말 묻고 싶습니다.
이 나라 대한민국의 5월의 희생이 이런 민주당, 이런 민주주의를 말하는 것은 아니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5월의 피해자 중 한 사람으로서 5월을 뜨겁게 아파했던 한 사람으로서 저는 묻고 싶습니다.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 대한민국의 위대한 그 민주주의 함성이 무엇을 지금 옹호하고 무엇을 비판하느냐. 저는 묻습니다.
저는 이번 선거는 단순하게 어떤 정당 간의 대결이 아니라 이 나라 민주주의가 한 단계 발전하느냐, 아니면 세계 역사상 유래 없는 해괴망측한 독재로 전락하느냐. 이런 입법 독재를 넘어서서 행정부의 독재, 또 대권을 가진다면 대법원장부터 어느 법관이 마음놓고 양심적인 재판을 할 수 있겠습니까?
누가 과연 범죄자를 수사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이 나라 민주주의를 지키고 자유와 인권을 지켜야 될 숭고한 사명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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