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 자택에서 투신 사망...유서 내용은?

노회찬 자택에서 투신 사망...유서 내용은?

2018.07.23. 오전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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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은호 YTN 해설위원 / 김병민 경희대 객원교수

[앵커]
오늘 오전 9시 40분 불법 자금 수수 의혹을 받고 있던 노회찬 의원이 자신의 아파트에서 투신 사망해서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자세한 이야기 김병민 경희대 객원교수 그리고 추은호 YTN 해설위원과 나눠보겠습니다. 두 분 어서 오십시오.

[인터뷰]
안녕하세요.

[앵커]
노회찬 정의당 의원이 자택에서 투신했다, 오늘 9시 40분쯤 전해진 비보인데요. 미국 출장에서 돌아오자마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기자]
그렇습니다. 노회찬 의원이 특검 수사 과정에서 드루킹의 측근인 도 모 변호사한테 5000만 원 정도의 정치자금을 받았다, 불법자금을 받았다라는 혐의로 수사가 진행 중이지 않습니까?
그것을 알고 지금 미국 출장 중이었습니다. 미국 출장 중에서도 굉장히 무거운 마음이 굉장히 깊었을 텐데 돌아오자마자 유서를 남기고 이렇게 투신해 숨졌습니다.

유서 내용을 보면 돈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돈을 받은 건 인정을 했지만 청탁은 없었다. 그리고 가족에게 미안하다 이런 내용이 담겨 있는 것으로 지금 알려지고 있습니다. 유서 전문이 공개되거나 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지금 전체적인 맥락은 파악하기 어렵습니다만 지금 불법 정치자금을 받았다라는 것은 크게 두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2016년 3월이거든요. 2016년 3월이라면 20대 총선 실시되기 직전이었죠. 한 달 전이었는데 그때 도 모 변호사로부터 파주 느릅나무출판사를 방문했을 때 2000만 원을 받았다. 그리고 부인의 운전기사를 통해서 3000만 원을 받았다라는 부분입니다. 청탁이 없었다고 해도 이 부분은 정치자금법 위반이 맞습니다. 우리나라 정치자금법이 굉장히 엄격한데요.

그 당시에 아마 총선 국회의원 예비후보 단계였을 겁니다. 의원은 아니었을 것이고 예비후보 경우에는 1억 5000만 원까지 후원회를 통해서 모금을 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후원을 통한 모금이 아니었기 때문에 정치자금법 위반의 소지가 있는 것으로 보여지고요.

그럴 경우에는 우리나라 정치자금법이 굉장히 형량이 엄격합니다.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다는 그런 기준이 있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 대한 부담감들 평생 진보정치인으로 살아왔는데 자신이 돈을 받았다라는 것 자체에 대한 그런 자괴감들 이런 것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직접적인 동기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앵커]
지금 말씀하신 대로 드루킹의 불법정치자금 수수 의혹과 관련한 수사가 진행 중이었고요. 특검이 확보한 진술이 지금 말씀을 하신 대로 2000만 원은 직접 받았고 3000만 원은 부인 운전기사를 통해서 전달됐다 이런 진술을 확보한 상황이었고요. 이 진술이 상당히 구체적이다 보니까 이런 부분에 대한 압박이 심하지 않았을까.

[인터뷰]
네.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하셨지만 이 3000만 원이라고 하는 돈이 또 아내 운전기사를 통해서 전달되었기 때문에 추후에 있는 수사 과정 속에서 노회찬 가족까지 수사 선상에 오를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뭔가 그런 부분들이 더 심리적인 압박을 가했던 것이 아니었나라는 대목들이 있는 것 같고요. 진술이 굉장히 구체적이고 일관되게 있었던 것 같습니다.

특히나 도 변호사 같은 경우는 노회찬 의원과 경기고등학교에 동기동창인 것으로 알려져 있거든요. 노회찬 의원이 도 변호사와의 친분관계를 인정을 했습니다. 하지만 꽤 오래 전에 알던 사이였고 한동안 연락이 끊겨 있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 만나게 된 것은 몇 번 되지 않는다라고 강하게 혐의를 부인한 바가 있었거든요.

그럼에도 오늘 유서를 통해 지금 전해지고 있는 이야기에 따르면 일부 받은 부분들은 시인하고 있는 것 같은데 대가성은 없었다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과거에 오래된 지인으로부터 일반적인 좀 응원의 메시지가 아니었나라는 생각이 드는데 드루킹 일당들, 경제적 공진화 모임의 일원의 그동안 언론 인터뷰를 보니까 왜 노회찬 의원에게 이러한 자금을 전달하려고 했는가 하니까 그 당시에 2016년도 당시 박근혜 정권 시절이었고 정권이 바뀌게 됐을 경우 정의당의 노회찬 의원이 사실상 보건복지부 장관이나 국민연금에서 이사장 같은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을까 하는 과정 속에서 그때 그들이 얘기하고 있는 경제적 민주화에 대한 역할을 하지 않겠냐라고 그들끼리는 추정했던 것 같지만 노회찬 의원 입장에서는 먼 훗날 미래의 이야기고 민주당이 집권을 하더라도 노회찬 의원에게 그와 같은 대가를 기대하고 돈을 줬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 사유 속에서 아마 노회찬 의원이 여러 가지 고심을 했던 것 같은데 특히나 오늘 종편에서 유명한 프로그램에 대한 녹화날이었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본인이 그동안 해 왔던 말과 그리고 실제 사건이 벌어지고 난 이후에 어떤 해명을 해야 될까라는 여러 가지 그런 고민이 많이 컸을 것 같습니다.

[앵커]
유서를 보면 말씀을 하신 대로 금전은 받았지만 청탁은 없었다 이런 이야기가 있었고 가족에게 미안하다. 지금까지 전해진 내용은 전문은 모릅니다마는 이 내용 정도가 전해지고 있는데 가족 부분에 대한 압박감이 상당히 컸을 것이다. 혹은 허익범 특검 쪽에서 어떤 가족에 대한 압박은 혹시 없었는지 이런 부분에 대한 우려는 없을까요?

[기자]
일단 도 변호사에 대한 영장이 한 차례 기각이 됐기 때문에 특검의 수사가 거기까지는 진행되지는 않았을 겁니다. 노회찬 의원에 대한 소환계획도 아직 불확실한 상황이었고, 소환한다라는 방침은 있었습니다만. 앞서 말씀을 드렸듯이 제일 중요한 것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국회 특활비를 없애자라고 주장을 했던 앞장섰던 그런 진보정치의 상징, 또 깨끗한 정치의 상징처럼 본인이 활동해 왔지 않습니까?

그렇지만 본인이 물론 고등학교 동기동창, 경기고등학교 72회입니다. 72회, 말이 좀 어긋나서 그런데 황교안 전 대행도 72회이고 그리고 이종걸 의원, 이번에 대표 나온 의원도 동기이고 굉장히 쟁쟁한 동기들이 많은데 아무리 도 모 변호사로부터 받았다라는 것 자체, 아무리 청탁이 없었다고 해도 그 자체가 정치자금법 위반이 된다라는 걸 본인이 충분히 인지를 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더 이상 피할 도리가 없다. 특검의 수사를 피할 도리가 없다라는 것을, 그런 부담감이 굉장히 컸다라고 저는 개인적으로 생각이 듭니다.

[앵커]
노회찬 의원 하면 노동자. 서민 눈높이에서 관련한 정책도 많이 내고 이런 사회 부조리에 대해서 굉장히 비판을 많이 했던 진보 정치의 상징이기 때문에 본인이 이런 부분을 받아들이는 것도 굉장한 압박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일단은 지금 특검 수사가 이렇게 진행된 마당에 돌아오는 수사가 불가피한 이런 상황 아니였겠습니까?

[인터뷰]
맞습니다. 미국에서는 5당의 원내대표들과 함께 굉장히 순방을 적절하게 마무리 한 것 같습니다. 조금 전에 김성태 원내대표가 이야기를 했지만 미국 순방 과정에서는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고 하지 않습니까? 서로 다른 원내대표들이 함께 의기투합해서 미국 순방이었기 때문에 아마도 다른 정당에서는 이 이야기를 꺼내는 게 굉장히 불편했을 겁니다. 하지만 머릿속에는 귀국하고 난 뒤에 이 내용을 어떻게 국민들에게 소상하게 이야기를 할 것인지에 대한 심리적 압박이 굉장히 강했던 것 같고요.

실제로 미국 순방에서 사진을 찍은 모습을 보면 앞으로의 여야 협치를 강조하면서 환하게 웃으면서 뛰는 모습들까지 있었지만 결국 돌아오고 난 뒤에 진보 정치의 상징이라고 이야기했던 노회찬 의원 입장에서는 어떤 방식이됐든지간에 이 돈을, 불법정치자금을 수수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이 내용을 국민들에게 이야기를 하고 검찰에 소환조사를 받는 과정들 그리고 자칫 잘못하게 되었을 경우에는 구속영장이 청구되는 등의 여러 가지 상황들이 올 수도 있기 때문에 고심이 깊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고요.

특히나 정의당 같은 경우에는 최근 들어서 지지율이 두 자릿수로 급성장하는 등 진보정치에 대한 가능성과 기대감이 굉장히 커진 상황입니다. 하지만 노회찬 의원의 이와 같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당에서 출당을 해야 한다는 등 여러 가지 본인을 향해 쏟아지는 비난의 메시지도 아마 다 알고 있었을 것이거든요. 그런 여러 가지 내용들에 대한 현재의 상황들이 노회찬 의원에게는 굉장한 심리적 압박이 아니었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기자]
원내대표들이 미국 방문했을 때 마침 4당 원내대표를 보면 세 분이 노동운동을 했던 분입니다. 노회찬 원내대표도 그렇지만 김성태 원내대표도 그렇고 홍영표 원내대표도 인천에서 대우자동차 노조에서 활동하지 않았습니까?

노회찬 의원 경우에는 80년대부터 인천에서 인민노련이라고 해서 인천 부평, 부천지역의 노동조직을 조직하고 그 지역에서 오랫동안 활동을 많이 해 왔습니다. 그래서 미국 가 있는 동안에 어떻게 보면 국내 정치를 떠나서 그나마 노동운동을 같이 했던 분들과 같은 외국에서 같이 여행을 한다는 것이 허심탄회하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는 광역자치단체장 마련돼 있는 그런 상황이었을 거거든요.

하지만 김성태 원내대표가 조금 전에 기자가 언급했습니다만 말한 걸 들어보면 미국 방문 동안에는 드루킹 사건에 대해서는 전혀 본인은 한 차례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둘이서 사적으로 대화를 하는 와중에는 북한 문제라든가 그런 문제에 대해서만 의견을 나눴다라고 이렇게 이야기를 했는데 아마 노회찬 의원도 마음속으로는 같은 노동운동을 했던 동료들이기 때문에 굉장히 털어놓고 싶은 마음들이 굉장히 많았을 겁니다. 하지만 끝끝내 속에 담아 놓았기 때문에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앵커]
노회찬 의원 하면 가장 먼저 국민들이 떠오르는 것이 삼성 떡값 X파일 이게 의원직을 걸고 공개한 당시만 해도 굉장히 파장이 어마어마한 일 아니겠습니까?

[인터뷰]
그렇죠. 검사의 실명을 공개했던 삼성 떡값 검사 파문의 주인공이기도 했죠. 말씀하셨던 것처럼 노동운동을 굉장히 오래 했고 의원직을 하는 과정 총 3번의 국회의원을 역임했는데 첫 번째 비례대표 의원이었고요. 그 과정 속에서 한국 정치사에 여러 가지 족적을 남길 만한 언행, 행동들과 그리고 조금 전에 이야기했던 삼성 X파일에 대한 폭로 등에 대한 이야기들이 쭉 있었습니다. 또 최근에는 국정원의 특수활동비에 대해서 여러 가지 의혹들이 불거지기 시작하는 이 상황 속에서 국회에 대한 특활비에 대한 국민적 논란이 커지니까 사실 정의당과 노회찬 의원이 스스로가 가장 앞장서서 국회도 특수활동비를 폐지해야 한다 이렇게 주장하기도 했고요.

[앵커]
실제로 반납도 하지 않았습니까?

[인터뷰]
그렇죠. 반납도 하고 법안을 발의하려고 했는데 법안 발의 요건이 10명이상의 의원 동의가 있어야 하는데 정의당 의원이 총 6명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10명 의원의 동의를 받지 못해서 법안을 처음에 발의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던 여러 가지 개혁적인 입법활동에 대한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있기도 합니다.

지난번에 있었던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서도 강하게 목소리를 한 적이 있는데 그러다 보니까 진보정치의 상징처럼 보여졌던 노회찬 의원에게 비춰진 지금의 혐의들이 스스로도 감내하기 힘든 고통이었다라고 보고 지지자들 입장에서도 노회찬 의원의 상징성이 워낙이나 크다 보니까 만약에 수사를 받고 여기에 대해서 유죄 판결이 나게 되었을 경우에 그런 부분들은 끝내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상황이 아니었을까 이렇게 조심스럽게 추정이 됩니다.

[앵커]
지금 수사를 하던 허익범 특검팀도 굉장히 당황스러웠을 것 같습니다.

[기자]
그렇습니다. 그래서 일단은 수사를 당분간 속도조절을 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리고 노회찬 의원에 대한 수사는 일단 본인이 사망을 했기 때문에 당연히 공소권 없음 처분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고요.

그렇지만 드루킹 또 도 모 변호사에 대한 수사가 계속 진행될 수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에 당분간 유예기간을 거쳐서 수사는 진행될 수밖에 없을 겁니다. 많은 부분들이 노회찬 의원이 청탁은 없었다라고 표현은 했는데 청탁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어떻게 다르냐라는 굉장히 중요한 법률적인 차이가 있을 겁니다.

앞서 말씀을 드렸지만 청탁이 있건 없건 간에 이것은 정치자금법 위반이기 때문에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는 그런 죄입니다. 만약에 청탁이 있었더라면 과연 뇌물죄가 해당되느냐라는 것인데 그 당시에 노회찬 의원 경우에는 국회의원이 아닌 신분으로 자연인 신분이었죠, 예비후보 신분이었지만 선거를 한 달 정도 앞뒀기 때문에 사전 뇌물죄가 아마 적용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럴 경우에. 그럴 경우에 만약 사전뇌물죄라면 액수에 따라서 어느 정도의 뇌물 건넸느냐에 따라서 5000만 원 이상일 경우면 특가법이 적용이 돼서 7년 이상 그리고 3000만 원에서 5000만 원 사이면 5년 이상의 형에 처할 수 있다라고 법에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상당히 본인으로서는 압박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청탁이 있고 없고가 문제가 아니였다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앵커]
사실 드루킹 특검 같은 경우는 불법 댓글 의혹 이 수사를 하면서 김경수 지사와의 관련 의혹 이 부분을 수사를 처음에는 의혹이 제기가 됐었는데 자금을 특검팀이 흐름을 추적하다 보니까 노회찬 의원이 먼저 나와서 수사가 먼저 진행된 이런 부분이 있지 않습니까?

[인터뷰]
본질에 대한 수사에 집중하지 않고 본질에서 비껴간 수사에 집중하다가 이런 사고가 발생한 것이 아니냐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일부 있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작년도에 드루킹 김동원 씨의 트위터를 보게 되면 심상정 의원, 김종대 의원, 노회찬 의원에 대해서 굉장히 강하게 비판하는 목소리를 제기하거든요. 그러면서 여기에 대해서 뭔가를 알고 있는 것처럼 다 터뜨릴 거야라는 식의 이러한 트위터 메시지가 전달됩니다.

그러니까 지금 현재 도 모 변호사가 증언하고 있고 노회찬 의원에게 돈을 줬다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은 이 드루킹 김동원 씨가 특검 수사에서 진술했다는 것이거든요. 그다음에 핵심적으로 앵커께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본질로 돌아가게 되면 왜 네이버의 댓글을 조작하게 됐고 조작하게 된 근거지가 산채라고 불리는 느릅나무 출판사였고 이걸 운영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자금이 오갔으며 여기에 정치는 어디까지 개입되었는가를 우선적으로 살펴야 되는 것이고요. 그러고 난 뒤에 이 자금 속에서 뭔가 부정한 돈이 노회찬 의원에게 갔다면 여기에 대한 수사도 당연히 이루어져야겠지만 우선 순위에서 약간 후순위로 밀려져 있는 겁니다.

하지만 여기에 대해서 도 변호사를 긴급체포하게 되고 긴급체포하는 과정에 영장을 청구하니까 결국 노회찬 의원에 대한 수사가 훨씬 더 강한 범위로 이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아마 이러한 내용들에 대해서 강하게 음모를 제기하고 있는 분들은 정의당이 최근 급격한 지지율에 대한 문제라든지 또 현 정부 수사의 부담감 때문에 오히려 약간 세력을 잡겠다는 노회찬 의원에게 수사가 집중된 것은 아니냐라고 문제를 제기하고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에 아마 허익범 특검이 수사를 과연 어디까지 진행할 것이며 이 사건 수사의 본질에 제대로 집중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한번쯤 돌아볼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앵커]
노회찬 의원 사망으로 이 부분에 대해서 공소권 없음 처리가 될 것이고요. 그렇다면 특검의 수사 방향도 조금 앞으로 달라지지 않겠습니까?

[인터뷰]
그렇게 볼 수가 있는 거고요. 일단 본인 스스로는 사망했기 때문에 공소권이 없는 건 당연한 상황이고 아마 가족에 대한 문제라든지 그런 부분들에 대한 수사도 더 없을 것으로 판단이 됩니다.

지금 현재로서는 추가적으로 수사를 앞두고 있는 건 김경수 지사의 수사라고 보는데요. 얼마 전에 김경수 지사가 의원 시절에 보좌관을 지냈던 인물에 대한 소환조사 다 이루어졌고 이런 내용들을 토대로 아마 김경수 지사가 드루킹의 댓글조작 사건에 어느 정도까지 연루가 돼 있는 상황인지 그리고 핵심적으로 오사카 총영사 등에 대한 자리를 결국은 어떻게 만들어내기 위해서 어디까지 개입됐는지에 대한 여부를 확인하는 게 수사거든요. 여기 김경수 지사가 어디까지 연루가 돼 있는지 특검 수사를 통해서 밝혀져야 할 대목이 아닌가 봅니다.

[기자]
드루킹이 노회찬 의원에게 정치자금을 제공했다라는 의혹에 대한 수사는 이미 2016년에 한 차례 경찰, 당시 고양경찰서죠. 고양경찰서랑 의정부지검 고양지청에서 검경이 같이 수사를 했던 상황입니다.

[앵커]
선관위에서 수사 의뢰가 있었을 겁니다.

[기자]
그렇습니다. 하지만 당시에 검찰과 경찰의 수사가 드루킹 쪽이 내민 증거들을 보고 혐의 없음 처분을 내렸었거든요. 그 당시에 만약에 수사가 제대로 진행이 됐었더라면 지금 이런 비극적인 일까지는 이르지는 않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마 오늘 지금 이 시간에도 민갑룡 경찰청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진행되고 있을 텐데 그 부분에 대한 여야 의원들의 질책이 상당히 있을 것이라고 예상됩니다.

[앵커]
오늘 사고가 있었던 현장을 경찰이 보존하고 있고요. 저희가 그 현장 화면을 지금 보여드리고 있는 이런 상황인데요. 오늘 노회찬 의원이 투신했을 때 외투를 경찰이 발견했고 그 안에 신분증, 또 정의당 관련한 신분증 그리고 유서 이런 것들이 들어 있었다는 거잖아요.

[인터뷰]
네. 유서, 명함 등이 들어 있었다라고 하고요. 지금 대한민국 더위가 36도를 넘어간 엄청난 무더위인데 여기에 두꺼운 외투를 들고 나왔다는 건 애당초 나올 때부터 극단적인 선택을 염두에 뒀다라고 볼 수 있는 거죠.

지금 현재 유서에 대한 전문이 공개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어떤 심정이었는지를 저희가 추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겠습니다마는 밤새 굉장히 깊은 고민, 아마도 한숨도 못 자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고요.

오늘 아침 9시에서 10시 사이에 아파트 17층이 넘는 곳에서 극단적인 상황이 이뤄진 거 아니겠습니까. 정말 많은 생각이 있었을 것 같은데 일단 해외 순방을 마치고 돌아와서 처음으로 공식일정을 맞게 되는 오늘 월요일 아침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본인이 행해야 되는 여러 가지 일정들을 다 취소시킨 것 같은데요. 그 과정 속에서 굉장히 고심이 깊었을 것 같고.

앞서 우리가 느릅나무 출판사에서 강연했던 부분들까지도 이야기를 나눴는데 지금 이 드루킹 경제적 공진화 모임에서 강연했던 여러 정치인들이 있습니다. 노회찬 의원뿐만이 아니라 많은 강연을 하고 거기에 대한 대가성으로 강연료를 받은 것 같은데 아마 노회찬 의원뿐만 아니라 다른 정치인들에 대해서도 강연하고 돈을 줬던 부분들에 대해서 드루킹 등이 뭔가 모종의 계획을 꾸몄던 것 같은데 그런 일들에 대해서도 아마 수사가 전개되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이 듭니다.

[앵커]
특검도 오늘 아침에 긴급 브리핑을 열고 입장을 밝혔습니다. 노회찬 의원 유머도 많고 달변이었던 분인데 이런 안타까운 일이 있어서 굉장히 그립고 안타깝다 이런 이야기를 했는데 혹시 녹취가 준비가 됐으면 녹취를 잠깐 듣고 이야기 더 나눠보겠습니다.

[허익범 / 드루킹 댓글조작 사건 특별검사]
오늘 예기치않은 비보를 듣고 굉장히 침통한 마음이 앞섭니다. 우리나라 정치사에 큰 획을 그으셨고 우리나라 의정 활동에 큰 페이지를 장식한 분이 오늘 보도를 접하고 굉장히 안타까운 마음 금할 수 없습니다. 직접 뵌 적은 없고 하지만 먼 거리에서 늘 그분의 언행과 행적을 제가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늘 웃음을 띠시면서 유머도 많으셨고 달변이셨던 그분이 이런 비보를 듣고 벌써 그립고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의원님의 명복을 가슴 깊이 빌고 유가족에게 개인적으로 깊고 깊은 위로의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앵커]
개인적으로 굉장히 존경하는 정치인이었다. 그래서 그립고 안타깝다. 명복을 가슴 깊이 빌 것이다 이런 얘기를 했는데 수사를 담당했던 어떤 팀장의 역할로서 굉장히 마음이 착잡할 것 같습니다.

[기자]
그렇습니다. 우리 과거에 보면 검찰 수사를 받고 투신자살하신 분들이 꽤 많죠. 특히 경제, 기업인들 여러 분 그런 분들이 있는데 정치인들 중에서는 몇 분 계십니다만 노회찬 의원 같은 경우에는 특히 그동안 진보 정치의 상징 그리고 또 대중적인 인기도가 굉장히 높은 분 아닙니까? TV나 이런 데 매체를 통해서 아주 달변 그리고 속시원하게 하고 싶은 말들, 듣고 싶은 말들을 대변해 주는 그런 점들 때문에 굉장히 대중적 인기도가 굉장히 높은 분이었는데 아마 여야 할 것 없이 모두 노회찬 의원의 투신에 대해서, 사망에 대해서 정말 애도의 마음은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앵커]
그러니까요. 정의당이 항상 앞서서 이야기했던 부분들의 정책적 방향들을 민주당이 그 정책을 받아 가지고 정치적으로 구현하는 과정들이 있었고 이게 시간이 좀 지나고 나면 보수정당까지도 이어지게 되는 정책적 흐름으로 연결이 됩니다. 말 그대로 시대를 굉장히 앞서가서 현재 적용하기에는 조금 어려움이 있겠지만 미래를 바라보는 정책적 가치들에 대한 방향성을 굉장히 잘 설정하는 것 같고 현재 이 민주당이 추진하고 있는 최저임금 1만 원 시대를 열겠다라고 하는 것도 결국은 정의당에서부터 시작됐던 정책적 방향으로 볼 수 있는 거겠죠.

그러다 보니까 이 노회찬 의원 같은 경우에는 정의당에서 노회찬, 심상정이라고 하는 걸출한 두 명의 진보정치인 들이 정의당의 유력한 축으로서 활동해 오지 않았습니까? 두 사람의 정치인이 빠지게 됐을 경우 입게 되는 타격이 굉장히 컸던 것도 사실이고 지난번에 진보정치도 세대교체가 필요하다고 해서 이정미 대표가 실질적으로 선출되는 과정을 겪었지만 여전히 이번 지방선거를 통틀어서 보건대 노회찬, 심상정이라고 하는 두 정치인이 없다 보니까 광역자치자치장 선거에 나설 만한 유력한 진보정치인이 없다라는 것도 굉장히 드러나 있던 상황이었던 것 같습니다.

노회찬 의원의 사망이 사실 앞으로의 한국 정치에도 영향을 많이 미칠 것 같은데요. 가장 첫 번째로는 일단 민주평화당과의 원외 교섭단체를 공동으로 구성해 왔는데 일단 일단은 노회찬 의원의 안타까운 사망으로 인해서 의원직이 상실되었기 때문에 교섭단체가 깨지게 됩니다.

[앵커]
평화와 정의를 위한 모임 딱 20석으로 교섭단체가 구성이 돼 있는데.

[인터뷰]
맞습니다. 공동교섭단체가 구성돼 있는데 이게 사망함과 동시에 의원직이 상실이 되게 되거든요. 그러면 19석이 되기 때문에 교섭단체가 구성이 안 됩니다. 여기에서부터 시작되는 그리고 앞으로 정의당 내에서도 굉장히 유력한 주자 1명을 잃게된 상황이라서 안타까운 개인의 죽음과 더불어서 진보정치 대한민국 정치권에도 후폭풍이 여러 가지로 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앵커]
정의당, 오늘 경찰을 통해서 이 비보를 접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어느 당보다 가장 침통한 분위기 아니겠습니까?

[기자]
그렇습니다. 특히 노회찬, 심상정 두 의원은 단 한 명의 국회의원을 떠나 가지고 어떻게 보면 과거에 통합진보당 이석기 전 의원의 구속 이후 통합진보당이 해체된 이후로 진보 정당이 자치로 정의당이라는 당을 만들어서 진보정치의 맥을 이어온 중요한 두 기둥이었단 말이죠. 그 기둥 중 한 기둥이 무너질 상황이기 때문에 정의당으로서는 굉장히 누구보다도 가장 큰 충격에 휩싸여 있을 겁니다.

거기다가 불법정치자금 수수라는 아주 꼬리표까지 달게 됐고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굉장히 큰 충격을 받을 상황이지만 그래도 우리나라의 진보정치가 보면 과거 여러 차례 위기를 많이 겪어 왔습니다.

민중당이 물론 해체되는 그런 위기 그리고 백기완 선생으로부터 시작돼 왔던, 이어져 왔던 진보 정치의 정당들이 여러 차례 위기를 겪으면서도 진보정치를 원하는 국민들이 계속 있기 때문에 계속 살아남을 수 있는 근간이 되었던 것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아마 정의당도 지금의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면 또 다른 도약의 기회를 삼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기대감을 가져봅니다.

[앵커]
통진당 사건이 있었을 때 말씀하신 대로 진보정당의 해체 위기가 한 차례 있었는데 심상정, 노회찬 두 명의 걸출한 정치인 덕분에 진보정치가 지금 두 자릿수 지지율을 받는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거 아닙니까?

[인터뷰]
맞습니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심상정 의원이 보여줬던 토론회에서 이 노동자들에 대한 마음이라든지 그리고 진보 정치에 대한 가치 철학에 대해서 또 많은 국민들이 여기에 동의했던 부분들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현실적으로 의원들에 대한 숫자라든지 그리고 집권 가능한 부분들을 봤을 때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현재 갖고 있는 의석수의 한계. 그리고 진보정치가 대한민국 정치에서 뿌리 내릴 수 있는 한계가 분명 존재합니다만 그것들을 뛰어넘기 위해서 노력했던 정치인들이 분명 존재한 것이고요.

거기에는 심상정 의원뿐만이 아니라 노회찬 의원의 역할이 굉장히 주효했을 겁니다. 지난번 지방선거에는 시장선거에 출마를 하기도 한 적이 있었죠. 어느 정도 영향력을 갖고 있느냐면 집권에 대한 당선 가능성들은 좀낮은 상황이기는 했었으나 그 당시 노회찬 의원이 갖고 있는 표가 있기 때문에 그게 결국은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의 당선과 그리고 그 당시 출마했던 당시 의원과의 격차 만큼의 표를 또 가져가기도 했었던 부분도 있거든요.

그만큼 유력하게 대한민국 정치권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던 인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노회찬 의원이 떠난 그 빈자리, 아마 진보 정치인들이 과연 이러한 큰 자리를 어떻게 메우게 될지 여러 가지 고민이 클 것 같습니다.

[앵커]
진보정치를 지지했던 많은 분들이 참 지금 가슴이 먹먹하다 이런 느낌을 많이 받으실 것 같은데 노회찬 의원 하면 노동운동가를 거친 3선 의원입니다. 처음에 정치권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이 된 겁니까?

[기자]
노회찬 의원 같은 경우에는 1987년에 6.10항쟁 일어나지 않습니까? 그 이후에 89년도에 인천 지역을 중심으로 해서 인민노련이라는 조직을 만듭니다. 그 노동자 조직을 만드는데 거기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었죠. 그 사건과 연루돼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한 여러 해 동안 옥살이를 치렀을 겁니다. 그 이후에 옥살이를 치르고 나서 돌아왔을 때 과연 현실 정치에 진보 정치 20일인가 제 기억으로 그렇습니다만 그런 걸 통해서 정치에 입문을 하고 국회의원이 된 것은 17대 총선에 비례대표로 처음에 입문을 했습니다.

그리고 19대 때. 18대 때는 한 번 낙선했었고 19대 때는 그 당시에는 통합진보당 이름으로 노원 병에 나가 출마를 해서 거기에서 당선이 됐습니다마는 바로 곧바로 삼성 X파일 폭로 문제로 의원직을 상실했었죠. 그리고 그동안에 또 한 번 대통령 선거에 나가기로 했다가 접은 적도 있었고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를 했다가 또 낙선한 적도 있었고요. 또 동작갑입니까, 동작을입니까, 동작에도 한번 국회의원 보궐선거 출마했다 낙선한 적도 있고요.

그러다 20대 지난 2016년 4월 4.13 총선 때는 창원 성산 쪽 정의당 후보로 출마를 해서 3선 의원이 된 거죠. 노회찬 의원은 원래 부산 출신입니다. 부산 출신에다가 서울로 올라와서 경기고등학교를 다녔는데 그렇기 때문에 PK지역이 나름대로 일정 부분 영향력이 있고 또 창원지역이 굉장히 노동자 표가 굉장히 강한 지역이거든요. 그래서 그 당시에 창원 쪽에서 정의당 후보로 노회찬 후보를 영입하자라고 하는 그런 현장의 목소리들이 상당히 있었던 것으로 기억이 납니다.

[앵커]
그러니까요. 예전에 삼성 X파일 이 의원직을 걸고 본인이 의원직 상실할 것을 예상하고도 굉장히 대차게 폭로를 이어갔었던 이런 상황인데 이번에도 뭔가 법적으로 다퉈보지 이렇게 국민들이 보면서 굉장히 안타까울 것 같아요. 왜 이런 비극적인 선택을 했는가.

[인터뷰]
그러니까 얼마든지 저는 법적으로 다퉈볼 수 있는 여지가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러니까 본인 스스로가 만약에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대가성은 없는 상황이었지만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돈을 받았을 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거기에 대해서 충분하게 사법적으로 문제가 되는 부분들을 인정하고 여기에 대해서 사법적 처벌을 받을 수도 있는 내용으로 볼 수 있는 거거든요.

그런데 현직 국회의원이면서 원내지도부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던 너무나 안타까운 사건으로 볼 수 있는 건데요. 아마 가족뿐만이 아니라 특히나 노회찬 의원을 지지했던 굉장히 많은 지지자들이 있을 겁니다. 지지자들 입장에서는 노회찬 의원의 이같은 선택에 대해서 너무나 안타깝고 가슴 아프고 비통한 상황일 것으로 보여지고요.

이제 장례에 대해서도 아마도 많은 추모 행렬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 앞서 잠깐 말씀드렸지만 현직 의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굉장히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기 때문에 국회 차원에서도 나서서 노회찬 의원의 장례에 관한 절차 등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문제를 고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앵커]
청와대도 내부 논의를 거쳐서 예를 갖추겠다 오늘 이런 논평을 내놨습니다.

[기자]
당초 오늘 문재인 대통령이 국민청원에 대해서 답변을 대통령 본인이 직접 답변을 할 예정으로 있었습니다. 한 11시 50분쯤에 할 예정으로 있었는데 그 일정도 취소를 했고요. 일단은 오후 2시에 수석보좌관 회의가 지금 예정이 돼 있는 상태인데 그 일정은 취소한다는 이야기는 없습니다만 그 자리에서도 아마 노회찬 의원의 사망에 대해서 추모의 표현들을 하지 않을까 하는 예상은 해 봅니다.

[앵커]
잠시 뒤면 이제 정의당에서 논평을 내놓을 예정인데요. 저희가 정의당에서 논평이 나오는 대로 생중계로 전해 드릴 예정입니다. 노회찬 의원 하면 대학 시절부터 이런 노동운동을 많이 했었고요. 그리고 권영길 전 국회의원 선거를 지원하는 것으로 본격 정치권에 입문했다 이렇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인터뷰]
고등학교 시절에는 당시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학생운동회에 매진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고요. 고려대학교에 입학을 하게 되죠. 대학 시절 이후로도 노동운동에 헌신을 하게 되고 대통령 선거 당시 민주노동당에 대한 선거지원을 열심히 했던 역할에 대해서 노회찬 의원을 기억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노회찬 의원의 정치의 본격적인 활동은 17대 의원에 비례대표로 입성하게 되면서부터 그때 당시 400건이 넘는 4년 임기 동안 법안을 발의했다 이렇게 알려지고 있거든요. 굉장히 많은 적극적인 의정활동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고요. 노회찬 의원과 직간접적으로 인연을 맺고 있는 정치인들이 굉장히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나 17대 때는 비례대표로 입성했는데 그 이후로는 선거를 통해서 지역구에 계속 출마의 문을 두드렸기 때문에 18대 선거에서는 홍정호 의원과 노원병 다툼에서 낙선했던 경우가 있고요. 19대에서 노원병에 당선이 됐지만 그 당시에 말씀했었던 삼성 떡값 검사 문제 때문에 결국 의원직을 상실하게 되는데 상실하게 된 그 공간의 빈자리에 보궐선거에서 안철수 의원이 그 자리에 들어가게 됩니다. 안철수 의원과도 직간접적인 연을 갖고 있는 상황이고 동작에서의 보궐선거 때 같이 상대 후보로 맞붙었던 의원은 나경원 의원으로 볼 수 있거든요.

이렇게 정치활동을 오랫동안 해 오면서 맺었던 인연들이 상당히 많이 존재하는데 노회찬 의원은 우리가 촌철살인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지만 쓴소리를 하면서도 굉장히 부드러운 면을 가지면서 상당의 특유의 친화력이 있기 때문에 국회 내에서도 그렇게 극단적으로 서로 간에 몸싸움이라든지 누군가에 대해서 폄하하는 내용들을 듣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노회찬 의원의 이 안타까운 사망에 대해서 아마 이런 표현은 그렇습니다마는 정말 많은 국민들이 앞에 나서서 추모하고 애도하고 그런 물결들이 계속 이어지지 않을까 생각이 됩니다.

[앵커]
지금 노회찬 의원의 지역구 경남 창원성산. 여기 정의당 당원들도 굉장히 안타까운 반응들 나오고 있고요. 믿기지 않는다. 개인 축재할 분이 아니다 이런 얘기들이 지금 나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기자]
그렇습니다. 특히 창원 지역구 당원들 그리고 지역구 구민들의 충격이 굉장히 컸을 겁니다. 워낙 PK 지역만 해도 보수세가 굉장히 강한 지역이었을 겁니다. 그렇지만 물론 이 지역에 옛날부터, 과거부터 공단이 있고 노동자들의 힘이, 파워가 센 지역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20대 총선에서 정의당 출신 후보가 당선되었다라는 것은 굉장히 그 당시만 해도 개인적인 인기도 뿐만 아니라 굉장히 큰 인기도에 근간을 했습니다마는 굉장히 큰 충격이었고 아마 그 지역의 유권자들 또 당원들 모두 자부심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이런 결과가 나왔기 때문에. 특히 창원성산 지역의 유권자들 또 당원들 큰 충격에 휩싸였을 것 같습니다.

[앵커]
창원성산 하면 말씀하신 대로 경남의 보수 근거지 안에서 진보정치 일번지다 이렇게 불리는 곳 아니겠습니까?

[인터뷰]
네. 거기에서 특히나 노동자들을 위한 본인이 헌신해 왔던 삶이 궤적해 있기 때문에 굉장히 기적적으로 당선됐던 측면이 있었던 것 같고요. 애당초 처음에 노회찬 의원이 출마를 결심했을 때 사실 그렇게 긍정적인 분위기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지역구를 계속 옮겨다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하지만 정의당 입장에서는 적극적으로 현실 정치에 출마해서 당선 가능할 수 있는 정치인들이 많지 않은 상황이었고요. 그러다 보니까 노회찬 의원의 출마를 통해서 한 석을 얻어올 수 있었던 것이 정의당이 진보정치를 더 펴나갈 수 있는 큰 동력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죠. 지금 현재...

[앵커]
지금 정의당에서 입장을 발표할 것 같습니다. 들어보시겠습니다.

[최 석 / 정의당 대변인]
참담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오늘 오전 우리 당 노회찬 원내대표에 대한 갑작스럽고 황망한 비보가 있었습니다.

사건과 관련된 대략의 사실관계는 경찰의 발표 같으며 저희도 파악 중에 있습니다.

정의당은 금일 오후 3시 본청 223호에서 긴급회의를 열 예정에 있습니다.

고인과 관련된 억측과 무분별한 취재를 삼가줄 것을 언론인 여러분께 정중히 요청드립니다.

[앵커]
지금 최석 정의당 대변인의 아주 짧은 논평을 들어보셨습니다. 당초 이정미 대표가 직접 발표하지 않을까 생각을 했었는데요. 최석 정의당 대변인이 발표를 했습니다. 참담한 마음 금할 수 없다, 황망한 비보를 접했는데 오늘 3시 이후에 긴급 회의를 연다는 건데요. 마지막에 이런 당부를 합니다. 고인에 대한 억측 그리고 무분별한 추측 보도를 자제해 달라. 이런 당부를 했습니다.

[기자]
어차피 고인에 대해서 돌아가신 이후에 언론이라든가 각계 인터넷을 통해서 온갖 억측과 또 어떻게 보면 추모의 글도 있지만 폄하의 글도 상당히 많을 겁니다. 그런 것들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 일단 자제해달라는 당 차원의 당부인 것 같고요.

지금은 어차피 돌아가신 분에 대해서 공과를 따질 수밖에 없는 부분들도 있지만 너무 감성적인 부분들을 가지고 억측하고 접근하는 부분들은 삼가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나 하고 생각을 하고요.

그리고 특검도 마찬가지로 그런 부분들이기 때문에 당장은 수사를 진행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속도조절이 불가피해 보입니다.

[앵커]
그러니까 지금 얘기를 들어보면 수사에 대한 불만도 조금 있고요. 그리고 언론에서 여러 가지로 지금 추측성 보도들이 난무하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언론에 대한 불만도 있는 것 같습니다.

[인터뷰]
맞습니다. 정의당 입장에서는 사실 논평을 낼 수 있을 만한 메시지가 많지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언론을 통해서 오늘 이 뉴스를 보고 노회찬 의원의 사망 소식을 접했다고 이야기를 한 것처럼 아무도 쉽게 노회찬 의원이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것이라고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고요. 노회찬 의원이 미국에 있는 동안에도 여기에 대해서 노회찬 의원을 믿는다라고 정의당에서는 계속 논평을 내왔거든요. 실제 특검의 수사가 진행 중인 상황이었고 노회찬 의원에 대한 금품수수에 대한 여러 가지 보도가 있었지만 정의당 입장에서는 여기에 대해서 뭐라고 논평하기가 굉장히 쉽지 않았을 겁니다.

아마 오늘 3시에 모여서 이 특검 수사와 관련된 상황에 대해서도 정의당의 입장을 정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얘기했던 것처럼 고인을 폄하하거나 아니면 고민에 대해서 있지 않는 사실을 가지고 여기에 대해서 억측하는 부분은 당연히 없어야 될 것이고요.

특검의 수사가 진행됐던 상황에 대해서는 하지만 이 엄격한 사실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측면들은 언론에 있어서 분명하게 사실관계를 바탕으로 보도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 대해서는 그러한 우려들에 대해서는 최대한 다 지양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앵커]
그러니까 앞서 김병민 교수님께서도 얘기해 주셨지만 특검에 사실 처음에 드루킹과 관련돼서 제기된 의혹은 댓글 공작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수사를 하다 보니까 노회찬 의원의 정치자금부터 먼저 수사를 하게 된 이런 상황이 된 건데요. 정의당 입장에서는 이런 부분, 이런 수사에 대한 부분이 굉장히 좀 불만이었을 수 있겠다.

[기자]
그렇습니다. 그런 부분들이 정의당 입장으로서는 충분히 가질 수 있을 겁니다. 특검 수사의 본류가 아닌데 어떻게 보면 유탄을 맞은 것 아니냐라고 하는 섭섭한 감정들을 정의당으로서는 품을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리고 가뜩이나 정의당, 진보정당의 상징이라면 깨끗한 정치가 진보정당의 어떻게 보면 상징이 돼야 되는데 거기에 특검 수사를 받고 있는 드루킹 측으로부터 불법정치자금을 받았다라는 부분들이 어떻게 보면 굉장히 족쇄가 될 가능성도 상당히 있는 부분들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정의당으로서는 지금 굉장히 조심스럽게 접근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노회찬 의원 본인이 돈을 받은 부분을 인정했기 때문에 그 부분을 부인하고 넘어갈 수는 없는 부분들인데 하지만 앞서 말씀을 드렸듯이 수사의 본류를 벗어난 부분에 대해서 유명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곁가지가 타깃이 됐다라고 하는 그런 안타까움, 아쉬움, 섭섭함 이런 것들이 정의당 마음 속에는 있을 것이라는 추측은 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인터뷰]
아마도 과거에 노무현 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나서 여러 가지 억측들이 많았던 적이 있었거든요. 여기에 대한 사망에 이르게 된 경위에 대해서 자살이냐 타살이냐에 대한 여러 가지 억측들이 있기도 했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서 사실 있지도 않은 여러 가지 갖가지 의혹들이 난무하다 보니까.

[앵커]
논두렁 시계라든가.

[인터뷰]
그로 인해서 파생될 수 있는 사회적 문제들이 굉장히 커졌던 적이 있습니다. 노회찬 의원 같은 경우도 정말 있어서는 안 되는 이러한 안타까운 죽음이 발생했기 때문에 이를 둘러싸고 싸는 온갖 음모들이 난무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여전히 존재하거든요. 아마 정의당 입장에서는 이런 부분들 그러니까 고인에 대해서 최소한 가는 길 청와대도 얘기했지만 편안하게 보내드릴 수 있도록 온갖 억측과 여기에 대해서 잘못된 내용들에 대해서 SNS를 통해서 돌아다니고 있는 내용들, 이런 것들은 정말 지양해야 될 것 같습니다.

[앵커]
지금 국회에서는 인사청문회가 진행되고 있는데요. 여기에 참여하고 있는 박지원 의원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습니다. 노동전문 변호사 김선수 대법관 후보자 청문회 중에 노동자를 위해서 정치활동을 한 노 의원의 충격적인 소식을 접하니까 너무 가슴이 아프다. 솔직히 청문회를 이어가기 어려운 상태다, 어떻게 하죠, 이런 글을 남겼는데 지금 국회에서 같이 얼굴 보고 했던 의원들 다 같은 마음 아닐까요?

[기자]
그렇습니다. 오늘 청문회가 두 건이 진행이 됩니다. 지금 특히 민갑룡 경찰청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진행 중인데 그 자리에서는 과거 경찰의 수사가 부실하지 않았느냐. 만약에 경찰 수사가 2016년 당시에 제대로 진행이 됐으면 이런 비극적인 상황까지 이어지지 않았겠느냐라는 의원들의 질타가 아마 충분히 이어질 겁니다.

오전에 만약에 진행이 안 됐으면 오후에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이 되는데 추측컨대 정의당 의원들이 거기에 몇 명이나 속해있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청문회를 진행하기 힘들 정도로 본인들로서는 그런 마음 상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고요. 동료의원들, 다른 동료의원들 마음도 비슷한 상황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앵커]
한국당에서는 경찰의 드루킹 수사 굉장히 부실했다, 비판을 굉장히 강력하게 했었잖아요.

[인터뷰]
네, 맞습니다. 드루킹 수사에 대해서 사실 본질을 외면한 것이 아니냐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컸다고 볼 수가 있는 건데요. 일단 현역 의원의 갑작스러운 사망이 발생한 것이고 이게 본인 스스로가 극단적으로 목숨을 끊게 되는 초유의 사건이기 때문에 저는 국회가 아마 일정을 조금 중단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국회 차원에서 일정을 좀 중단하고 고인에 대한 추모를 통해서 일단 상황이 정리된 다음에 다시 청문회와 관련된 일정들이 진행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오늘 있게 되는 김선수 대법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 같은 경우에는 특히나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보수정당 입장에서는 정치적 중립이라든지 그리고 과거에 있었던 민변 활동 경력 등에 대해서 강하게 문제를 제기하는 청문회가 진행될 예정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 이게 자칫 잘못 여야의 정쟁 과정으로 비처지게 된다면 고인이 사망한 상황 속에서도 국회는 결국 서로의 이해관계를 위해서 싸운다라고 하는 국민들에게 질타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 될 수 있거든요.

그래서 청문회를 안정적이고 정상적으로 진행하기 위해서라도 일단은 지금 있는 일정들을 중단하고 고인에 대한 추모가 있고 난 뒤에 다시 이러한 일정들이 재개되지 않을까라고 조심스럽게 추정해 봅니다.

[앵커]
국회 일정이 조율될 필요가 있다라는 이야기를 해 주셨는데 노회찬 의원의 사망, 워낙 진보 정치를 이끌던 정치인이었기 때문에 앞으로 진보정치에는 어떤 영향이 있을까요?

[기자]
노회찬 의원이 우리나라 진보 정치에 영향을 미친 게 굉장히 큽니다. 앞서서 말씀드렸지만 여러 차례 진보 정당 제도권 정치의 위기 속에서도 꿋꿋하게 중심을 잡아둔 그런 역할을 해 왔는데 노회찬 의원은 우리나라 진보정치가 흔히들 NL과 PD 이렇게 구분을 하지 않습니까? 그중에 대표적인 PD계열로서 쭉 이어져 왔었죠. 1989년 인천 인민노련 때부터 PD계열이라는 한 길을 걸었는데 그동안에 우리 진보 정치인들이, 상당히 많은 정치인들이 입장을 나쁘게 말하면 변절이고 또 달리 표현하면 현실적으로 방향을 선회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당시에 같이 진보정치를 했던 김문수 전 지사 경우도 대표적인 인물 아닙니까? 김문수 전 지사도 과거에 PD 계열의 대표적인 인물이었는데 이렇게 자유한국당으로 바뀌고 여러 의원들이 이렇게 이재오 의원도 마찬가지고요.

여러 의원들이 현실 정치와 부딪혀서 입장 선회를 하고 하는 그 와중에서도 꿋꿋하게 지킨 사람이 노회찬, 심상정 두 의원이 진보 정치인 정의당에 하나의 큰 기둥을 축을 이루고 있다.
그 한 축이 무너진 상황이기 때문에 정의당 또 진보정당의 갈 길이 굉장히 어떻게 보면 좀 암울한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정당이라는 것이 한두 명 이렇게 개인기에 의해서 운영이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또 진보정치를 바라는 지지하는 유권자들의 성향도 분명히 있기 때문에 그런 유권자들의 그런 열망을 기반으로 해서 진보정당이 이번에 한번 잘못한 부분이 있으면 돌아보고 또 계속 이어져 나가고 더 발전할 수 있는 힘을 받을 수 있는 그런 계기로 삼았으면 좋겠습니다.

[앵커]
그러니까 현실 정치에서 사실 입장을 선회할 수 있는 이런 경우가 많은데 지금 정의당 의원들 같은 경우는 굉장히 꿋꿋한 어떤 정치 소신을 지켜오면서 지금의 정의당 국민적인 지지를 이끌고 있기 때문에 노회찬 의원 사망이 지금 시스템을 움직이기 때문에 크게 충격은 없을 것이다라는 이야기를 해 주셨는데 김병민 교수님은 어떻게 보하십니까?

[인터뷰]
전적으로 동의하고요. 진보정당이 있기까지 노회찬 의원의 역할이 중요했지만 수많은 의원들과 당직자들, 당원들의 힘에 의해서 많이 정의당이 탄탄한 현재와 같은 상황들을 유지하게 된 것도 맞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경제적 공진화 모임 그리고 드루킹 일당들이 노회찬 의원에게 사실상 손을 뻗게 된 경우는 노회찬 의원이 대중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진보 정치인의 대명사로 볼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여전히 대한민국에서의 정치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대중적인 지지를 얻어내야 되는 거고요. 정의당에 있는 수많은 인사들 중에서 가장 대중적인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었던 사람 한 명을 꼽으라면 노회찬 의원을 꼽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만큼 노회찬 의원의 빈자리가 저는 굉장히 정의당과 진보정치 입장에서는 클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요. 꽤 오랜 기간 동안 정치활동을 해 왔고 대한민국의 나이로 치면 환갑이 넘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같이 대화를 나눠보면 사고는 여전히 20대 젊은 청년들의 뇌구조와 전혀 다르지 않은 유연성을 보여주고 있거든요.

그런 노회찬 의원의 생각과 행동들을 같이 이어갈 수 있는 진보적인 대중 정치인의 출연, 탄생이라고 하는 부분들은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저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앵커]
조금 전에 저희가 노회찬 의원의 학창시절 또 노동운동 시절의 사진들을 조금 보여드렸는데요. 정말 정치 소신 하나를 꿋꿋하게 지키는 의원이었고요. 노동자, 서민의 입장을 대변했던 그런 아주 정치인 또 제도권 권위주의, 엘리트 주의를 깨는 데 누구보다 앞장선 이런 정치인이었잖아요.

[기자]
그렇습니다. 노회찬 의원의 이미지 자체가 아주 소탈하고 서민적이고 격의없이 대할 수 없는 그런 이미지가 상당히 강합니다. 원래 진보 정치인이라고 하면 어떻게 보면 이론적으로 무장되고 차갑고 이런 이미지를 주는 그런 부분들도 있는데 노회찬 의원 경우에는 굉장히 친근하고 서민적인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그런 대중적인 대표적인 인물이었죠.

노회찬 의원, 젊었을 때 어렸을 때는 부산에서 학창시절을 보냈었습니다. 그리고 고등학교 올라오면서 경기고등학교 72회 앞서 말씀을 드렸었지만 황교안 대행 그리고 이종걸 의원들과 동기동창이었고요.

한번은 그런 일이 있었다라고 합니다. 황교안 권한대행이 대표적인 공안검사 아닙니까? 공안검사 시절에 노회찬 의원이 노동운동을 하다가 같이 검사 사무실에서 만난 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때 황교안 대행이 포승줄도 풀어주고 같이 차도 마시고 친구로서 대해 줬다라는 걸 인상에 남는다라고 표현한 적도 있는데요.

노회찬 의원은 대학은 고려대를 나왔고요. 학교 다닐 때부터 계속 학생운동과 또 유신체제, 유신에 반대하는 그런 운동을 많이 했었다라고 해요. 그 이후에 1987년에 6.10 항쟁이 일어났던 이후에 1989년부터 인천 지역에 노동자 단체인 인민노련을 조직하는 데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죠. 그 전에는 그 지역에서 노동 운동을 쭉 벌여왔었고요.

그리고 그 건과 관련해서 1989년에 인민노련 건과 관련해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습니다. 그때 재판 과정에서 나는 사회주의자다라고 이렇게 천명한 것이 굉장히 또 널리 알려져 있는데 그 이후에 권영길 대선 후보를 지원하는 그런 일로 정치 입문을 시작했고요. 그리고 민주노동당 17대 비례대표 후보로 정치에 입문을 시작해서 정치 활동을 3선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앵커]
그러니까 노동자와 서민을 위해서 쭉 한길을 쭉 걸어온 것인 것인데 자신이 추구했던 어떤 정치적 지향점하고 지금 다른 방향의 의혹이 제기가 된 이런 상황. 이런 상황을 굉장히 견디기 힘들지 않았을까, 모든 국민들이 아마 이런 생각을 지금 하고 계실 건데요. 노회찬 의원 하면 촌철살인 멘트, 이 부분이 가장 국민들 마음을 시원하게 해 준 이 부분이 아닌가 생각이 되는데 혹시 추은호 위원님은 생각나는 발언이 있으신가요?

[기자]
노회찬 의원 하면 그래도 가장 많이 생각나는 것이 과감한 표현들 아닙니까? 누구나 다 삼성 X파일 검사 이름을 밝혔을 때는 그것이 실정법 위반이다. 내가 의원직을 상실할 수도 있다라는 그런 위기감을 알고 있었을 겁니다. 법사위원도 지냈기 때문에.

하지만 그런 위기, 그런 자신에게 닥칠 불이익을 감수하고 폭로할 수밖에 없는 그런 용기 이런 것들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거든요. 굉장히 용기있는 정치인이었고 그 과정에서 본인이 의원직을 상실하는 아픔을 겪기는 했습니다만 그것이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또 기업 문화 또 정경유착 이런 것들을 끊는 하나의 계기가 마련되는 역할을 하지 않았느냐 하는 생각이 됩니다.

[앵커]
김병민 교수님 혹시 생각나는 발언이 있습니까?

[인터뷰]
얼마 전에 있었던 토론 과정이었던 것 같은데 한국당 의원과 설전을 벌이다가 여기에 대해서 한국당과 주장하고 있는 바와 맞지가 않으니까 그러니까 박 전 대통령 탄핵당한 것이 아니냐 이렇게 한마디로 딱 정리를 하는 모습들을 볼 수 있는데 메시지를 장황하고 길게 얘기하지 않고 딱 한마디 얘기를 통해서 많은 대중들이 아, 그렇지라고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얘기들을 잘 끄집어내는 그런 공감의 능력들이 있는 것 같고요.

결국 상대방과 공감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하면 아무리 촌철살인이라고 하든 일방적인 주장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 같습니다. 대중과 충분하게 교감하면서 본인에 대한 이야기들, 메시지들이 권력과 기득권을 대상으로 그 벽을 허물 수 있는 메시지를 던졌기 때문에 이것을 두고 우리가 촌철살인, 굉장히 사이다 같은 발언이라고 해석하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앵커]
촌철살인, 사이다 발언, 용기와 소신의 정치인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지금 많은 국민들 애도의 마음을 표하고 있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겠습니다. 오늘 두 분 이야기는 여기까지 듣죠. 김병민 경희대 객원교수 그리고 추은호 YTN해설위원과 함께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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