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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영환, 前 북한 외교관
[앵커]
요즘 북한 TV를 보면 눈에 띄게 달라진 점이 있습니다. 외제 상표가 사라진 건데요.
과거 북한 매체가 공개한 사진 좀 볼까요? 아디다스나 나이키와 같은 외제 상표가 붙어 있는 운동복도 그대로 노출됐습니다. 그런데 최근 조선중앙TV가 방영한 프로그램을 보면, 영어로 된 외제상표를 검은색 테이프로 가린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사진을 보겠습니다. 도형 아랫부분에 영문표기 '아디다스'가 있어야 할 자리에 흰색 테이프가 붙어있죠?
김정은이 '수입병', 즉 외국제품을 선호하는 경향을 몇 차례 질타하고 나선 이후, 변화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는데요.
그런데 김정은, 이렇게 국산품 애용 강조하고 있지만,정작 본인과 부인 리설주는 외국산 명품 애호가로 알려져 있죠.
올 초 부부가 공식석상에 나선 모습입니다. 반지와 시계 눈에 띄는데요. 김정은은 스위스 명품 브랜드 '파텍필립'으로 추정되는 손목시계를 차고 있습니다.
김정은 부부의 명품 사랑, 이뿐만이 아닙니다. 사진 한 장 더 보겠습니다. 수백에서 수천만 원대에 달하는 스위스 명품 브랜드인 모바도 시계를 차고, 영국 명품 원단인 스카발 정장을 입고,몽블랑 서류가방을 든다고 국정원도 밝힌 바 있습니다. 부인 리설주 역시 프랑스 명품 브랜드 '크리스챤 디오르' 핸드백을 든 모습이 자주 목격됐는데요.
김정은의 실제 모습과 대외 행보, 좀 이중적인 것 같죠?
[앵커]
지금 이 자리에는 국가외교관 출신인 국가안보전략연구원 고영환 수석연구위원 스튜디오에 나와 있습니다. 어서오세요.
[인터뷰]
안녕하세요.
[앵커]
저희가 김평일에 대해서 먼저 여쭤보겠는데요. 이것 잠깐 비쳐주시겠어요? 이거를 보면 김정일이 여기 있어요. 김정일은 김일성과 김정숙 사이에서 낳은 거죠. 그리고 김성애와 김일성 사이에는 김평일이 있다는 말이에요. 그러니까 이복형제지간이죠. 이복형제지간이라 실제로 김평일이 못 들어왔잖아요, 김정일 때.
[인터뷰]
김평일이 제가 외교부에 있을 때 같이 외교부에 같이 있던 사람인데. 폴란드 대사를 17년 정도를 했어요. 불가리아 대사를 했고 그 후에 거쳐서 체코 대사로 일을 하고 있는데요. 여기서 보시면 북한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이거는 혁명의 기본가지. 이것은 곁가지. 곁가지 두목은 김평일. 그러니까 김정일에게 있어서 가장 큰 정적이 김성애와 김평일이 가장 큰 정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제일 먼저 김성애를 곁가지 두목으로 몰아서 쳐버리고 그다음에 김평일을 해외로 내보내서 나가 있었을 때 제가 불가리아 대사를 할 때 실제로 복도에서 만나본 사람이거든요. 그런데 외교부 부부장하고 같이 출장을 나갔다 불가리아 대사로서 참사관 방을 가는데 만났어요. 외교부 담당 부부장이 어떤 태도를 취했겠습니까? 돌아섰겠죠. 이 사람하고 곁가지를 만나면 안 되니까.
[앵커]
아, 들어가서 숙청을 당할 수 있으니까요?
[인터뷰]
아, 돌아섰는데 김평일이 보고 부부장 동지하고 찾았어요. 더 빨리 도망치니까 김평일이 도망쳐 뛰어서 왔어요. 저도 김평일에 부부장과 잡혔어요. 그래서 잠깐 이야기를 나눴어요. 그런데 김평일이 무슨 이야기를 했는가 하면 나도 장군님의 전사다. 왜 나를 자꾸 피하느냐. 그래서 대사동지 제가 바빠서요. 그리고 와서 한 게 무엇이겠습니까? 당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 10호실에 보고서를 씁니다. 몇 월 몇 일 복도에서 우연히 만나서 피하려고 했으나 김평일이 뛰어나와서 왜 자꾸 피하십니까? 답변, 우리가 바빠서요. 괄호 닫고. 그렇게 평양에 보고를 해야 되는. 그래서 심지어 공관장회의를 며칠 전에 했다고 하는데 공관장 회의를 하는데 거기에 김평일과 김광섭이 앉아있다는 것을 다 알려요.
왜냐하면 김평일이 옆 서너 줄이 비어 있고 뒤로 몇 줄이 비어 있고 앞줄이 비어있고. 그래서 옆에 가려는 사람이 없어요. 그리고 김광섭은 김평일의 누이동생인 김경진의 남편입니다.
김경진은 김일성이 굉장히 사랑하는 딸 중에 한 명인데. 김광섭이 지금 헝가리 대사로 가 있는데 김광섭도 체코에서 대사를 할 때 봤거든요, 옛날에 89년도에 봤는데. 어디 회의를 가서 앉지 않습니까? 그러면 통역 하나만 옆에 할 수 없이 있고 나머지는 다 피해 있어요.
그 사람과 말을 섞는 것 자체가 위험합니다. 그렇게 곁가지로 아주 굉장히 통제를 받고 감시를 당하고 대사라는 사람은 말이 대사지 10시에 나와서 신문 하나 읽고 밥먹으러 들어가면 그 사람의 일과가 끝입니다.
이 사람한테는 평양에서 오는 전문도 안 들어가고 이 사람의 허락을 안 받고 들어갑니다. 이 사람 옆에는 보위원이 항상 있어서 매 시간 뭘하는지 보고를 하는.
[앵커]
그러면 차석 대사가 굉장히 힘을 갖겠네요?
[인터뷰]
그렇죠.
[앵커]
차석 대사가 진짜 대사겠네요?
[인터뷰]
진짜 대사죠. 이 사람들은 허수아비. 공기 중에 있는데 그냥 없는 사람처럼. 봐도 못 본 사람.
[앵커]
그런데 참 좋을 것 같은데. 대사 이름만 걸고...
[인터뷰]
그런데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겠습니까, 그 사람들이. 사람이 분명 눈 앞에 오는데 오다 사라져요. 몇 발자국 다가오면 김평일인지 알아보면 사라져버리거든요.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그러니까 아버지한테 들어가서 공관장 회의할 때 왜 우리 형님이 이렇게. 그러니까 김일성이가 김정일이한테 동생들 좀 잘봐줘라. 예, 알겠습니다. 수령님이라고 대답을 하고 도주하는 거죠.
그래서 굉장히 정적이었는데 이 사람이 죽었어요. 15일날 평양에서 공관장 회의를 했어요. 이 두 사람이 참가를 해서 김정은과 뒤에서 사진을 같이 찍었습니다. 이건 여태까지 없었어요.
[앵커]
굉장히 감격했겠네요, 본인들도. 복권됐다고 생각을 하나요?
[인터뷰]
복권됐다기보다도 김정일 때보다는 훨씬 좋아졌다는 걸 느끼겠죠. 왜냐하면 김정일이 있을 때 이런 대사회의를 김정일은 했지만 회의를 집행한 게 아니고 대사 회의가 끝난 다음에 마지막 떠나기 전에 연회를 차려 준 적이 있고 김일성이 때도 사진을 찍은 적이 없어요, 대사회의 끝나고. 북한 역사상 처음으로 공관장 회의에서 공관장들과 회의를 하고 사진을 찍은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뒷줄에 김평일, 김광섭이가 다 서 있었고.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면 두 가지로 볼 수 있다고 봅니다. 두 사람은 정적의 범위를 벗어났습니다.
[앵커]
그러니까 아무런 힘도 없다.
[인터뷰]
아무런 힘도 없고. 이게 첫 번째 이유고. 두 번째 이유는 왜 아버지가 그렇게 사진도 안 찍어주던 사람을 불러서 사진까지 같이 찍었을까. 아버지에 대한 반감이 아닐까. 아버지가 아시지 않습니까? 여자관계가 좀 복잡하고 그리고 어머니, 고영희가 좀 불우한 상태에서 파리에서 사망을 합니다. 그런 불만이 아버지는 그랬어도 김경진이 김경희와 똑같은 고모입니다. 이것은 또 다른 고모부고. 그러니까 이 고모와 고모부를 불러서 사진을 찍고 자기 진짜 고모, 같은 배의 기본 줄기 고모부는 총살하고. 고모는 어디인가 연금을 시켜놓고 안 보이게 하고. 그런데 다른 고모와 고모부는 데려다 사진까지 찍는다는 것. 그러면 이것은 아버지에 대한 반감의 표시가 아닐까.
[앵커]
진짜 그럴 수 있죠.
[인터뷰]
그렇게 생각이 듭니다, 저는요.
[앵커]
그 분석이 진짜 딱 들어맞는 것 같은데. 그러면 실질적으로 지금, 그런데 김일성이 말이에요. 옛날에 그런 얘기를 한 게 사실이에요? 당은 김정일에게 맡기겠지만 군은 김평일에게 맡기겠다. 이런 얘기를 진짜 했었어요?
[인터뷰]
그것은 황장엽 비서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여기에서 황장엽 비서가, 김일성이 어떤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했냐하면. 정일이는 깐깐하니까 당을 맡기고 평일이는 통이 크니까 군을 맡기고 다른 동생, 김영일이라는 형제가 한명 더 있습니다. 동부 독일에서 간암에 걸려서 죽은 다른 형제가 한명 더 있어요. 걔는 정을 맡겨라. 그래서 당군정을 세 아들이 맡아라.
[앵커]
사이가 좋을 줄 알았나봐요.
[인터뷰]
김일성한테는 똑같은 아들이 아닙니까? 이 여자에서 낳은 아들이나 저 여자에서 낳은 아들이나 똑같은 아들이니까. 그런데 김평일이 당군정을 다 먹어버린 거죠. 그리고 이 사람들은 모두 곁가지라고 묶어서 이것은 기본가지. 이거는 곁가지. 기본가지가 잘 자라려면 곁가지를 잘라야 기본가지가 잘 자란다, 꽃나무를 키울 때. 그래서 이 사람들은 평양에 들어왔을 때 차도 어떤 차를 주는 줄 아십니까? 하얀 색깔의 벤츠를 줬어요.
[앵커]
눈에 확 띄게요?
[인터뷰]
북한에 하얀색 벤츠를 타고 다니는 사람은 이 여자, 김성애.
[앵커]
곁가지용이군요, 하얀색이.
[인터뷰]
김평일, 동생 김영일, 김경진, 김광섭. 다섯 대밖에 없어요. 벤츠는. 왜 이렇게 주느냐면 어디 가든지 보안원이건 보고원이건 하얀 벤츠가 오면 보고를 하게 돼 있어요. 그러니까 하얀 벤츠가 옥류관에 와서 국수를 먹고 간다고 했으면 곁가지가 어디에 있는지 압니다. 김정일이 그렇게 꼼꼼했습니다. 그 간부회의할 때 하얀 벤츠가 나오면 간부들이 바퀴벌레 나온 것처럼 쫙 흩어져요. 저는 그때 담배를 피웠는데 하얀 벤츠가 오면 우선 그 자리를 빨리 벗어나야 돼. 왜냐하면 시선을 마주쳐서 좋을 게 하나도 없어요. 과장동무 이렇게 하고 말을 걸면 나는 또 보고서를 써야 되거든요.
[앵커]
또 보고서를 써야 되니까요?
[인터뷰]
네. 그리고 제가 잘못되면 걸리니까 되도록 안 마주치려고 하는 거죠.
[앵커]
김평일. 정말 별별 생각이 들겠네요. 견제대상도 없고.
[인터뷰]
아무런 견제대상이 없고 김정은한테 유일한 견제대상은 누구겠습니까? 김정남입니다. 동남아 어디에 있는 김정남. 약간 야쿠자 같은 생긴 사람. 그 사람은 아직도 김정일의 아들이니까 그 사람은 정적이니까 그 사람에 대한 굉장한 감시를 하고 배척을 하고 신경을 써서 보고 있는데 이 사람들은 이미 한물 갔고 심지어 김평일이라는 사람과 같이 남산고급중학교에서 사진을 찍은 사람들 있죠. 다 골라내서 다 탄광을 보내고 광산 보냈어요. 아버지가 장관이건... 남산고급중학교라는 데가 차관급 자제들만 다니는 특수 학교인데 김평일하고 같이 재수없이 사진이 찍혔던 사람 다 골라서 다 광산에 보내고 가까웠던 사람은 수용소 보내고 다 그랬거든요. 아예 이 사람들은 그냥 없는 사람입니다, 북한에서요. 그런데 김정남은 조금 다르거든요.
[앵커]
그런데 김정은이 그렇게 김정남을 견제를 함과 동시에 지금 국정원이 14일날 국회에 보고를 한 것을 보면 군부의 40% 이상이 교체가 됐다. 그리고 인민부력부장만 4년 새 6번이 바뀌었다.
이게 결국 뭐예요? 장악력이 떨어져서 그러는 겁니까, 자기가 두려워서 그러는 겁니까? 아니면 왜 그러는 거예요?
[인터뷰]
가장 중요한 요인은 첫 번째는 자기가 후계자로 돼서 아버지가 죽었을 때 자기 옆에 남은 사람들은 다 할아버지, 아버지 때 간부입니다. 자기는 별로 알지도 못하는 간부들. 그런데 가슴에 훈장만 달고 일은 제대로 안 하고. 살금살금 눈치만 보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겠습니까?
그러니까 첫 시기에는 그렇게 해서 쳐버렸는데 2기에 들어와서, 집권 2년말, 3년차에 들어와서 왜 자꾸 간부들을 바꾸는가 하면 자기 지시가 먹히지 않는 거야. 그러니까 자기가 뭐라고 지시를 했어요, 마식령스키장 언제까지 해요. 미림도 언제까지 해요. 가봤는데 안 되거든요. 누가 책임자야? 그 사람이 책임자입니다. 불러와, 왜 이렇게 됐어? 이거 자제가 없고. 그러면 없애. 그러면 그 사람 날아가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이렇게 함으로써 얻은 것은 김정은 자기의 지시가 밑에까지 금방 내려가는 건 금방 세워놨어요. 이게 뭐냐하면 겉으로는 김정은 체제가 안정이 돼있고 김정은의 명령 지시가 그날로 밑에까지 전달이 된다는 소리예요. 대신 무엇을 잃어버렸느냐면 사람들을 자꾸 죽여버림으로써 신하들이 마음이 떠나버린거죠. 그러니까 그 전의 아버지 때는 아버지 때는 잘못하면 2년 동안 농사도 지어보고 탄도 캐보고 다시 생각하면서 반성을 해. 데리고 왔는데 이것은 안 되면 없애버려, 총살해. 그러니까 반성할 기회를 안 주는 거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겁이 나고 일단 엎드려서 명령체계는 섰는데 아, 이게 내가 주군이 아니구나.
[앵커]
그러면 쿠데타 가능성도 있는 거 아닙니까?
[인터뷰]
저는 100% 없다는 소리는 안 합니다. 항상 가능성은 있고. 히틀러 때도 발키리 작전이라고 있지 않았습니까? 김정일 때보다는 그 가능성이 서너 배 정도 그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거보다 더 가능성이 높은 것은 김정은한테서 죽을 위협에 놓인 사람들이 뭔가 거사를 치를 가능성, 혼자서.
[앵커]
그러니까 지금 말씀을 하신 것은 쿠데타라는 것은 조직이 움직이는 건데 그런 가능성보다는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있는 군 고위 간부들 중에 우발적이든 계획적이든 단독으로 이런 일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인터뷰]
단독이거나 한명, 두 명을 더 끼고 할 수 있을 가능성은 김정일 시대보다 적어도 몇 십배 높아졌다. 그래서 우리가 얘기하는 게 아니고 지금 북한에서 사람들을 총살하고 그러는 부서가 국가안전보위부거든요. 그 국가안전보위부 부장이 김원홍 대장이 있는데 그렇게 김정은의 신임을 많이 받고 있는 사람인데 지금 다시 말이 돌고 있는 것이 다음에 죽을 사람은 김원홍이다.
그러면 무슨 사건이 일어나겠습니까? 뭔가 자기가 위험하다고 느껴지면 한국에서 있었던 것처럼 뭔가 일을 꾸밀 일이 충분히 높다.
[앵커]
자기 목숨이 달린 문제니까, 그게.
[인터뷰]
그렇죠.
[앵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게 그렇게 많은 사람이 숙청당하고 처형당했는데 김양건은 아직 건재한가봐요?
[인터뷰]
김양건은 저희들이 이상하게 본 게 삼지연 8인방. 장성택을 처형하기 전 중요한 회의를 백두산 밑의 삼지연에서 했는데 대남비서 자체가 거기에 간 것 자체가 이상해요. 조직지도부나 군총참모부나 정치국장이 가는 것은 이해가 가는데 왜 김양건 비서가 갔을까. 왜 대남 사업을 하는 사람거기를 갔을까. 그리고 왜 자라농장이나 물고기 농장같은 대남발전과 아무 관계 없는데 왜 김양건이가 자꾸 다닐까. 그런데 그 전에 평양에서 돌던 소문입니다.
아직 확실하지는 않지만 평양에서 소문이 김양건의 와이프와 김정은 엄마와 자주 다니던 것이 목격이 됐다. 둘이 가까웠다. 그런데 이것은 아직까지 확인은 할 수 없는데 그런 말이 평양시 간부들 속에서 돌았다는 거죠. 그런데 그걸 그냥 저런 소문이 날 수 있으니까. 소문을 가지고 우리가 방송을 할 수는 없잖아요. 그런데 김양건이 장성택 치는 회의도 참가하고 김정은이 아무런 상관없는 경제 분야를 시찰할 때도 데리고 가고 군부대 데려갈 때도 데려가고. 그리고 방송을 한번 분석을 해 봤는데 녹화를 하거든요, 북한 방송을. 편안함을 느낍니다. 다른 간부들은 쫄아있는데 김양건은 다리도 꼬고.
[앵커]
다리도 꼬고. 그러다가 죽은 사람이 있는데.
[인터뷰]
황병서가 2인자라는 사람이 다리를 가만히 이러고 있는데 김양건은 웃어요. 아, 저사람이 뭔가 있는 거 아니냐. 특별한 신임을 받는 게 뭐가 있는 게 아니냐. 바로 그것이 고영희와 김양건 비서의 와이프가 옛날에 같이 다니고 가까이 지냈다. 이 말을 반증해 주는 게 아니냐 이런 평가가 가능한 거죠.
[앵커]
그러면 당분간 김양건은 건재한 상태로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네요.
[인터뷰]
왜냐하면 아까 제가 말씀을 드렸지만 김정일은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어머니에 대한 감정이 굉장히 애틋합니다. 그러니까 어머니에 대한 애틋함이 있는 동안에는 김양건은 살아나겠죠.
[앵커]
알겠습니다. 오늘 시간이 벌써 다 갔어요. 오늘 시간이 금방 갔습니다. 오늘 말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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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요즘 북한 TV를 보면 눈에 띄게 달라진 점이 있습니다. 외제 상표가 사라진 건데요.
과거 북한 매체가 공개한 사진 좀 볼까요? 아디다스나 나이키와 같은 외제 상표가 붙어 있는 운동복도 그대로 노출됐습니다. 그런데 최근 조선중앙TV가 방영한 프로그램을 보면, 영어로 된 외제상표를 검은색 테이프로 가린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사진을 보겠습니다. 도형 아랫부분에 영문표기 '아디다스'가 있어야 할 자리에 흰색 테이프가 붙어있죠?
김정은이 '수입병', 즉 외국제품을 선호하는 경향을 몇 차례 질타하고 나선 이후, 변화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는데요.
그런데 김정은, 이렇게 국산품 애용 강조하고 있지만,정작 본인과 부인 리설주는 외국산 명품 애호가로 알려져 있죠.
올 초 부부가 공식석상에 나선 모습입니다. 반지와 시계 눈에 띄는데요. 김정은은 스위스 명품 브랜드 '파텍필립'으로 추정되는 손목시계를 차고 있습니다.
김정은 부부의 명품 사랑, 이뿐만이 아닙니다. 사진 한 장 더 보겠습니다. 수백에서 수천만 원대에 달하는 스위스 명품 브랜드인 모바도 시계를 차고, 영국 명품 원단인 스카발 정장을 입고,몽블랑 서류가방을 든다고 국정원도 밝힌 바 있습니다. 부인 리설주 역시 프랑스 명품 브랜드 '크리스챤 디오르' 핸드백을 든 모습이 자주 목격됐는데요.
김정은의 실제 모습과 대외 행보, 좀 이중적인 것 같죠?
[앵커]
지금 이 자리에는 국가외교관 출신인 국가안보전략연구원 고영환 수석연구위원 스튜디오에 나와 있습니다. 어서오세요.
[인터뷰]
안녕하세요.
[앵커]
저희가 김평일에 대해서 먼저 여쭤보겠는데요. 이것 잠깐 비쳐주시겠어요? 이거를 보면 김정일이 여기 있어요. 김정일은 김일성과 김정숙 사이에서 낳은 거죠. 그리고 김성애와 김일성 사이에는 김평일이 있다는 말이에요. 그러니까 이복형제지간이죠. 이복형제지간이라 실제로 김평일이 못 들어왔잖아요, 김정일 때.
[인터뷰]
김평일이 제가 외교부에 있을 때 같이 외교부에 같이 있던 사람인데. 폴란드 대사를 17년 정도를 했어요. 불가리아 대사를 했고 그 후에 거쳐서 체코 대사로 일을 하고 있는데요. 여기서 보시면 북한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이거는 혁명의 기본가지. 이것은 곁가지. 곁가지 두목은 김평일. 그러니까 김정일에게 있어서 가장 큰 정적이 김성애와 김평일이 가장 큰 정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제일 먼저 김성애를 곁가지 두목으로 몰아서 쳐버리고 그다음에 김평일을 해외로 내보내서 나가 있었을 때 제가 불가리아 대사를 할 때 실제로 복도에서 만나본 사람이거든요. 그런데 외교부 부부장하고 같이 출장을 나갔다 불가리아 대사로서 참사관 방을 가는데 만났어요. 외교부 담당 부부장이 어떤 태도를 취했겠습니까? 돌아섰겠죠. 이 사람하고 곁가지를 만나면 안 되니까.
[앵커]
아, 들어가서 숙청을 당할 수 있으니까요?
[인터뷰]
아, 돌아섰는데 김평일이 보고 부부장 동지하고 찾았어요. 더 빨리 도망치니까 김평일이 도망쳐 뛰어서 왔어요. 저도 김평일에 부부장과 잡혔어요. 그래서 잠깐 이야기를 나눴어요. 그런데 김평일이 무슨 이야기를 했는가 하면 나도 장군님의 전사다. 왜 나를 자꾸 피하느냐. 그래서 대사동지 제가 바빠서요. 그리고 와서 한 게 무엇이겠습니까? 당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 10호실에 보고서를 씁니다. 몇 월 몇 일 복도에서 우연히 만나서 피하려고 했으나 김평일이 뛰어나와서 왜 자꾸 피하십니까? 답변, 우리가 바빠서요. 괄호 닫고. 그렇게 평양에 보고를 해야 되는. 그래서 심지어 공관장회의를 며칠 전에 했다고 하는데 공관장 회의를 하는데 거기에 김평일과 김광섭이 앉아있다는 것을 다 알려요.
왜냐하면 김평일이 옆 서너 줄이 비어 있고 뒤로 몇 줄이 비어 있고 앞줄이 비어있고. 그래서 옆에 가려는 사람이 없어요. 그리고 김광섭은 김평일의 누이동생인 김경진의 남편입니다.
김경진은 김일성이 굉장히 사랑하는 딸 중에 한 명인데. 김광섭이 지금 헝가리 대사로 가 있는데 김광섭도 체코에서 대사를 할 때 봤거든요, 옛날에 89년도에 봤는데. 어디 회의를 가서 앉지 않습니까? 그러면 통역 하나만 옆에 할 수 없이 있고 나머지는 다 피해 있어요.
그 사람과 말을 섞는 것 자체가 위험합니다. 그렇게 곁가지로 아주 굉장히 통제를 받고 감시를 당하고 대사라는 사람은 말이 대사지 10시에 나와서 신문 하나 읽고 밥먹으러 들어가면 그 사람의 일과가 끝입니다.
이 사람한테는 평양에서 오는 전문도 안 들어가고 이 사람의 허락을 안 받고 들어갑니다. 이 사람 옆에는 보위원이 항상 있어서 매 시간 뭘하는지 보고를 하는.
[앵커]
그러면 차석 대사가 굉장히 힘을 갖겠네요?
[인터뷰]
그렇죠.
[앵커]
차석 대사가 진짜 대사겠네요?
[인터뷰]
진짜 대사죠. 이 사람들은 허수아비. 공기 중에 있는데 그냥 없는 사람처럼. 봐도 못 본 사람.
[앵커]
그런데 참 좋을 것 같은데. 대사 이름만 걸고...
[인터뷰]
그런데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겠습니까, 그 사람들이. 사람이 분명 눈 앞에 오는데 오다 사라져요. 몇 발자국 다가오면 김평일인지 알아보면 사라져버리거든요.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그러니까 아버지한테 들어가서 공관장 회의할 때 왜 우리 형님이 이렇게. 그러니까 김일성이가 김정일이한테 동생들 좀 잘봐줘라. 예, 알겠습니다. 수령님이라고 대답을 하고 도주하는 거죠.
그래서 굉장히 정적이었는데 이 사람이 죽었어요. 15일날 평양에서 공관장 회의를 했어요. 이 두 사람이 참가를 해서 김정은과 뒤에서 사진을 같이 찍었습니다. 이건 여태까지 없었어요.
[앵커]
굉장히 감격했겠네요, 본인들도. 복권됐다고 생각을 하나요?
[인터뷰]
복권됐다기보다도 김정일 때보다는 훨씬 좋아졌다는 걸 느끼겠죠. 왜냐하면 김정일이 있을 때 이런 대사회의를 김정일은 했지만 회의를 집행한 게 아니고 대사 회의가 끝난 다음에 마지막 떠나기 전에 연회를 차려 준 적이 있고 김일성이 때도 사진을 찍은 적이 없어요, 대사회의 끝나고. 북한 역사상 처음으로 공관장 회의에서 공관장들과 회의를 하고 사진을 찍은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뒷줄에 김평일, 김광섭이가 다 서 있었고.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면 두 가지로 볼 수 있다고 봅니다. 두 사람은 정적의 범위를 벗어났습니다.
[앵커]
그러니까 아무런 힘도 없다.
[인터뷰]
아무런 힘도 없고. 이게 첫 번째 이유고. 두 번째 이유는 왜 아버지가 그렇게 사진도 안 찍어주던 사람을 불러서 사진까지 같이 찍었을까. 아버지에 대한 반감이 아닐까. 아버지가 아시지 않습니까? 여자관계가 좀 복잡하고 그리고 어머니, 고영희가 좀 불우한 상태에서 파리에서 사망을 합니다. 그런 불만이 아버지는 그랬어도 김경진이 김경희와 똑같은 고모입니다. 이것은 또 다른 고모부고. 그러니까 이 고모와 고모부를 불러서 사진을 찍고 자기 진짜 고모, 같은 배의 기본 줄기 고모부는 총살하고. 고모는 어디인가 연금을 시켜놓고 안 보이게 하고. 그런데 다른 고모와 고모부는 데려다 사진까지 찍는다는 것. 그러면 이것은 아버지에 대한 반감의 표시가 아닐까.
[앵커]
진짜 그럴 수 있죠.
[인터뷰]
그렇게 생각이 듭니다, 저는요.
[앵커]
그 분석이 진짜 딱 들어맞는 것 같은데. 그러면 실질적으로 지금, 그런데 김일성이 말이에요. 옛날에 그런 얘기를 한 게 사실이에요? 당은 김정일에게 맡기겠지만 군은 김평일에게 맡기겠다. 이런 얘기를 진짜 했었어요?
[인터뷰]
그것은 황장엽 비서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여기에서 황장엽 비서가, 김일성이 어떤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했냐하면. 정일이는 깐깐하니까 당을 맡기고 평일이는 통이 크니까 군을 맡기고 다른 동생, 김영일이라는 형제가 한명 더 있습니다. 동부 독일에서 간암에 걸려서 죽은 다른 형제가 한명 더 있어요. 걔는 정을 맡겨라. 그래서 당군정을 세 아들이 맡아라.
[앵커]
사이가 좋을 줄 알았나봐요.
[인터뷰]
김일성한테는 똑같은 아들이 아닙니까? 이 여자에서 낳은 아들이나 저 여자에서 낳은 아들이나 똑같은 아들이니까. 그런데 김평일이 당군정을 다 먹어버린 거죠. 그리고 이 사람들은 모두 곁가지라고 묶어서 이것은 기본가지. 이거는 곁가지. 기본가지가 잘 자라려면 곁가지를 잘라야 기본가지가 잘 자란다, 꽃나무를 키울 때. 그래서 이 사람들은 평양에 들어왔을 때 차도 어떤 차를 주는 줄 아십니까? 하얀 색깔의 벤츠를 줬어요.
[앵커]
눈에 확 띄게요?
[인터뷰]
북한에 하얀색 벤츠를 타고 다니는 사람은 이 여자, 김성애.
[앵커]
곁가지용이군요, 하얀색이.
[인터뷰]
김평일, 동생 김영일, 김경진, 김광섭. 다섯 대밖에 없어요. 벤츠는. 왜 이렇게 주느냐면 어디 가든지 보안원이건 보고원이건 하얀 벤츠가 오면 보고를 하게 돼 있어요. 그러니까 하얀 벤츠가 옥류관에 와서 국수를 먹고 간다고 했으면 곁가지가 어디에 있는지 압니다. 김정일이 그렇게 꼼꼼했습니다. 그 간부회의할 때 하얀 벤츠가 나오면 간부들이 바퀴벌레 나온 것처럼 쫙 흩어져요. 저는 그때 담배를 피웠는데 하얀 벤츠가 오면 우선 그 자리를 빨리 벗어나야 돼. 왜냐하면 시선을 마주쳐서 좋을 게 하나도 없어요. 과장동무 이렇게 하고 말을 걸면 나는 또 보고서를 써야 되거든요.
[앵커]
또 보고서를 써야 되니까요?
[인터뷰]
네. 그리고 제가 잘못되면 걸리니까 되도록 안 마주치려고 하는 거죠.
[앵커]
김평일. 정말 별별 생각이 들겠네요. 견제대상도 없고.
[인터뷰]
아무런 견제대상이 없고 김정은한테 유일한 견제대상은 누구겠습니까? 김정남입니다. 동남아 어디에 있는 김정남. 약간 야쿠자 같은 생긴 사람. 그 사람은 아직도 김정일의 아들이니까 그 사람은 정적이니까 그 사람에 대한 굉장한 감시를 하고 배척을 하고 신경을 써서 보고 있는데 이 사람들은 이미 한물 갔고 심지어 김평일이라는 사람과 같이 남산고급중학교에서 사진을 찍은 사람들 있죠. 다 골라내서 다 탄광을 보내고 광산 보냈어요. 아버지가 장관이건... 남산고급중학교라는 데가 차관급 자제들만 다니는 특수 학교인데 김평일하고 같이 재수없이 사진이 찍혔던 사람 다 골라서 다 광산에 보내고 가까웠던 사람은 수용소 보내고 다 그랬거든요. 아예 이 사람들은 그냥 없는 사람입니다, 북한에서요. 그런데 김정남은 조금 다르거든요.
[앵커]
그런데 김정은이 그렇게 김정남을 견제를 함과 동시에 지금 국정원이 14일날 국회에 보고를 한 것을 보면 군부의 40% 이상이 교체가 됐다. 그리고 인민부력부장만 4년 새 6번이 바뀌었다.
이게 결국 뭐예요? 장악력이 떨어져서 그러는 겁니까, 자기가 두려워서 그러는 겁니까? 아니면 왜 그러는 거예요?
[인터뷰]
가장 중요한 요인은 첫 번째는 자기가 후계자로 돼서 아버지가 죽었을 때 자기 옆에 남은 사람들은 다 할아버지, 아버지 때 간부입니다. 자기는 별로 알지도 못하는 간부들. 그런데 가슴에 훈장만 달고 일은 제대로 안 하고. 살금살금 눈치만 보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겠습니까?
그러니까 첫 시기에는 그렇게 해서 쳐버렸는데 2기에 들어와서, 집권 2년말, 3년차에 들어와서 왜 자꾸 간부들을 바꾸는가 하면 자기 지시가 먹히지 않는 거야. 그러니까 자기가 뭐라고 지시를 했어요, 마식령스키장 언제까지 해요. 미림도 언제까지 해요. 가봤는데 안 되거든요. 누가 책임자야? 그 사람이 책임자입니다. 불러와, 왜 이렇게 됐어? 이거 자제가 없고. 그러면 없애. 그러면 그 사람 날아가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이렇게 함으로써 얻은 것은 김정은 자기의 지시가 밑에까지 금방 내려가는 건 금방 세워놨어요. 이게 뭐냐하면 겉으로는 김정은 체제가 안정이 돼있고 김정은의 명령 지시가 그날로 밑에까지 전달이 된다는 소리예요. 대신 무엇을 잃어버렸느냐면 사람들을 자꾸 죽여버림으로써 신하들이 마음이 떠나버린거죠. 그러니까 그 전의 아버지 때는 아버지 때는 잘못하면 2년 동안 농사도 지어보고 탄도 캐보고 다시 생각하면서 반성을 해. 데리고 왔는데 이것은 안 되면 없애버려, 총살해. 그러니까 반성할 기회를 안 주는 거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겁이 나고 일단 엎드려서 명령체계는 섰는데 아, 이게 내가 주군이 아니구나.
[앵커]
그러면 쿠데타 가능성도 있는 거 아닙니까?
[인터뷰]
저는 100% 없다는 소리는 안 합니다. 항상 가능성은 있고. 히틀러 때도 발키리 작전이라고 있지 않았습니까? 김정일 때보다는 그 가능성이 서너 배 정도 그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거보다 더 가능성이 높은 것은 김정은한테서 죽을 위협에 놓인 사람들이 뭔가 거사를 치를 가능성, 혼자서.
[앵커]
그러니까 지금 말씀을 하신 것은 쿠데타라는 것은 조직이 움직이는 건데 그런 가능성보다는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있는 군 고위 간부들 중에 우발적이든 계획적이든 단독으로 이런 일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인터뷰]
단독이거나 한명, 두 명을 더 끼고 할 수 있을 가능성은 김정일 시대보다 적어도 몇 십배 높아졌다. 그래서 우리가 얘기하는 게 아니고 지금 북한에서 사람들을 총살하고 그러는 부서가 국가안전보위부거든요. 그 국가안전보위부 부장이 김원홍 대장이 있는데 그렇게 김정은의 신임을 많이 받고 있는 사람인데 지금 다시 말이 돌고 있는 것이 다음에 죽을 사람은 김원홍이다.
그러면 무슨 사건이 일어나겠습니까? 뭔가 자기가 위험하다고 느껴지면 한국에서 있었던 것처럼 뭔가 일을 꾸밀 일이 충분히 높다.
[앵커]
자기 목숨이 달린 문제니까, 그게.
[인터뷰]
그렇죠.
[앵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게 그렇게 많은 사람이 숙청당하고 처형당했는데 김양건은 아직 건재한가봐요?
[인터뷰]
김양건은 저희들이 이상하게 본 게 삼지연 8인방. 장성택을 처형하기 전 중요한 회의를 백두산 밑의 삼지연에서 했는데 대남비서 자체가 거기에 간 것 자체가 이상해요. 조직지도부나 군총참모부나 정치국장이 가는 것은 이해가 가는데 왜 김양건 비서가 갔을까. 왜 대남 사업을 하는 사람거기를 갔을까. 그리고 왜 자라농장이나 물고기 농장같은 대남발전과 아무 관계 없는데 왜 김양건이가 자꾸 다닐까. 그런데 그 전에 평양에서 돌던 소문입니다.
아직 확실하지는 않지만 평양에서 소문이 김양건의 와이프와 김정은 엄마와 자주 다니던 것이 목격이 됐다. 둘이 가까웠다. 그런데 이것은 아직까지 확인은 할 수 없는데 그런 말이 평양시 간부들 속에서 돌았다는 거죠. 그런데 그걸 그냥 저런 소문이 날 수 있으니까. 소문을 가지고 우리가 방송을 할 수는 없잖아요. 그런데 김양건이 장성택 치는 회의도 참가하고 김정은이 아무런 상관없는 경제 분야를 시찰할 때도 데리고 가고 군부대 데려갈 때도 데려가고. 그리고 방송을 한번 분석을 해 봤는데 녹화를 하거든요, 북한 방송을. 편안함을 느낍니다. 다른 간부들은 쫄아있는데 김양건은 다리도 꼬고.
[앵커]
다리도 꼬고. 그러다가 죽은 사람이 있는데.
[인터뷰]
황병서가 2인자라는 사람이 다리를 가만히 이러고 있는데 김양건은 웃어요. 아, 저사람이 뭔가 있는 거 아니냐. 특별한 신임을 받는 게 뭐가 있는 게 아니냐. 바로 그것이 고영희와 김양건 비서의 와이프가 옛날에 같이 다니고 가까이 지냈다. 이 말을 반증해 주는 게 아니냐 이런 평가가 가능한 거죠.
[앵커]
그러면 당분간 김양건은 건재한 상태로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네요.
[인터뷰]
왜냐하면 아까 제가 말씀을 드렸지만 김정일은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어머니에 대한 감정이 굉장히 애틋합니다. 그러니까 어머니에 대한 애틋함이 있는 동안에는 김양건은 살아나겠죠.
[앵커]
알겠습니다. 오늘 시간이 벌써 다 갔어요. 오늘 시간이 금방 갔습니다. 오늘 말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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